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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린 금아 피천득 선생님의 수필 "신록예찬"이 지금까지 생각난다. 글들이 참 신선하고 청초했나보다. 아니면 그 푸릇푸릇했던 마음에 몰래 흠모했던 사람이 있었나보다. 5월의 빗살무늬 햇살처럼 글에서 느껴지는 그 따뜻함이 참 좋았다. 시간이 훌쩍 지나 다시금 피천득 선생님의 글들 173절을 가려 뽑아 엮은 수필집을 들여다보았다. 엮은 이 역시나 피천득 선생님의 인품과 글을 흠모하셨다고 하니...... 청출어람이 따로 없는 것 같다. <인생은 작은 인연들로 아름답다>이다.
수필 하면 가장 생각나는 뜻이 붓 가는대로, 마음 가는대로....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가 떠오른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소재를 개성에 맞게 쓰는 지극히 주관적이라 할 수 있는 글. 그래서 더 매력적인 것 같다. 쓰기에도 읽기에도 부담이 없지만, 한가지 필요한 것....
수필은 청자(靑瓷)연적이다. 수필은 난(蘭)이요., 학(鶴)이요, 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연인이다. 수필은 그 여인이 걸어가는 숲 속으로 난 평탄하고 고요한 길이다. (▶수필 중에서)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이 필요할 것 같다. 사물과 인간, 자연을 바라다보는 따뜻함과 사랑의 마음, 호기심도..... 이런 마음 텃밭이 되어야 자기만의 개성이 묻어나는 글들이 자연스레 표현되어 나오는 것이 아닐까싶다. 그래서일까? 피천득 선생님의 수필은 너무나도 인간적이다. 그리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선생님의 삶에서 묻어나듯 소박하지만 섬세하고, 간결하다.
봄은 새롭다. 아침같이 새롭다. 새해에는 거울을 들여다볼 때나 사람을 바라다볼 때 늘 웃는 낯을 하겠다. (▶신춘 중에서)
겨울이 되어 외투를 입는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봄이 되어 외투를 벗는다는 것은 더 기쁜 일이다. (▶조춘 중에서)
긍정의 기운이 느껴진다. 봄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 담겨져 있다. 살아온 날들이 어땠는지 알 수 있다. 해맑은 아이마냥...... ~들여다보고, 바라다보고..... 겸손을 배운다.
문학은 낯익은 사물에 새로운 매력을 부여하여 나를 풍유豊裕하게 하여준다. 구름과 별을 더 아름답게 보이게 하고 눈, 비, 바람, 가지가지의 자연 현상을 허술하게 놓쳐버리지 않고 즐길 수 있게 하여준다. 도연명을 읽은 뒤에 국화를 더 좋아하게 되고, 워즈워드의 시를 왼 뒤에 수선화를 더 아끼게 되었다. 운곡耘谷의 (눈 맞아 휘어진 대)를 알기에 대나무를 다시 보게 되고, 백화白樺 나무를 눈여겨 보게 된 것은 시인 프로스트를 안 후 부터이다. (▶순례 중에서)
보고 느끼고 사유하는만큼 누구나 시인이 되고, 글쟁이가 될 수 있음에 아주 많이 공감했다. 아는만큼 사랑하게 되고, 보는만큼 시야가 넓어진다. 마음 씀씀이 또한 유柔해지겠지. 들꽃 풀꽃, 산야초를 알음알음 알게 되니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 지천에 피고 지는 것이 보이더라. 희안하게 삶이 더 풍요로워지고 넉넉해지더라.
단편적이지만 피천득 선생님의 수필들을 엿보았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글들이 식상하지않고 살아 숨쉬는 것 같다. 한 권의 책으로 나온 수필집들을 다 읽어보고 싶다. '모든 사람을 좋아하고, 아무도 미워하지 아니하며, 몇몇 사람을 끔찍이 사랑하고 싶다'던 피천득 선생님의 유,무형의 인연들을 만나고 싶다.
봄도 좋지만 나는 가을이 더 좋다. 봄을 좋아하는 선생님의 글들을 가을에 읽어보니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사랑이, 사람이 그립다. 가을앓이가 시작되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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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톤을 든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는 찬란한 존재다. 그러나 토스카니니 같은 지휘자 밑에서 플루트를 분다는 것은 또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 다 지휘자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다 콘서트 마스터가 될 수도 없는 것이다. 오케스트라와 같이 하모니를 목적으로 하는 조직체에 있어서는 멤버가 된다는 것만도 참으로 행복된 일이다. 그리고 각자의 맡음 바 기능이 전체 효과에 종합적으로 기여된다는 것은 의의 깊은 일이다. 서로 없어서는 안된다는 신뢰감이 거기에 있고, 칭찬이거나 혹평이거나 '내'가 아니요 '우리'가 받는다는 것은 마음 든든한 일이다. 자기의 악기가 연주하는 부분이 얼마 아니 된다 하더라도, 그리고 독주하는 부분이 없다 하더라도, 그리 서운할 것은 없다. 남의 파트가 연주되는 동안 기다리고 있는 것도 무음의 연주를 하고 있는 것이다. 피천득, ‘플루트 플레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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