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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두절미하고 무척이나 재밌고 흥미로웠다. 기독교에 대해 전혀 모르거나 또는 반대로 절실한 기독교 신자라면 이게 뭐야 하며 불만을 토로할 수 있겠다. 전자라면 내용이 난해해서 일 테고, 후자라면 불경하게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는 달리 본인 의지가 아닌 타인의 의지로 교회를 다녔거나, 내 경우는 어머니의 반강요로 다녔다. 아니면 본인의 의지라 해도 다른 것에, 알다시피 우리는 이성 교제를 목적으로 다니는 사람도 여럿 봤다. 이들이라면 흥미로울 것이다. 아무래도 교회를 다니면서 귓등으로나마 들은 게 있어 성경 내용이 그나마 익숙할 테고, 성서 모독이네 뭐네 하는 비판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으니 말이다. <예수 복음>은 신약성경을 바탕으로 두고 있다. 하지만 예수는 그저 그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유대인으로 나온다. 아니 평범하다고는 할 수 없다. 신의 계시를 받은 메시아이니 말이다. 이 소설이 놀랍도록 흥미로운 게 성경 속 이야기 소재가 절대 평범하지 않기 때문이다. 약간의 상상력만 더한다면 판타지물 버금간다. 예수는 자신이 큰 죄를 지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자신이 아니라 아버지 요셉이 지은 죄다. 따지고 보면 요셉의 죄라고도 할 수 없다. 유대인의 왕 샬롯은 꿈에 베들레헴에서 유대인의 왕이 태어났는다 예시를 듣는다. 이때가 요셉의 아들 예수가 베들레헴 근처 동굴에서 태어났다. 샬롯은 군인들을 시켜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3세 미만의 모든 남자아이를 죽이도록 명령한다. 아마도 자신의 지위를 위협하는 예시로 받아들인 것 같다. 요셉은 휴식시간에 우연히 군인들이 나누는 이 학살 명령 소식을 엿듣는다. 그는 두려움에 그길로 예수가 태어난 동굴로 서둘러 떠난다. 아들 예수가 안전한 걸 확인하고 서둘러 떠날 준비를 한다. 그리고 그날 밤 악몽을 꾼다. 악몽 내용은 이렇다. 천사가 나타나 너는 베들레헴의 아이들이 살해 위험에 놓인 사실을 알면서도, 그들 부모에게 알리지 않았고, 오직 자신의 아들만을 구하려 했다. 결국 죄 없는 아이들을 죽음이 이르게 한 죄를 저질렀으니, 평생 그 죗값을 치려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좀 억지스러운 면이 있다. 예수는 아버지의 이러한 죄를, 그가 십자가에 못 박혀 처형당한 후에서야 알게 된다. 예수도 아버지의 죽음 이후 악몽을 꾼다. 아버지가 군인이 되어 베들레헴에 있는 어린 자신을 죽이러 찾아오는 꿈이다. 이때가 예수의 나이 14살 때이다. 이날 이후로 예수는 베들레헴에서 혼자 살아남게 된 죄책감을 가지게 된다. 성경에서는 왜 이렇게 인간을 죄인으로 만드는지 모르겠다. 아담과 하와의 원죄로부터 시작해 온통 죄, 죄, 죄다. 일단 태어난 것부터 죄를 지고 있으니, 주를 믿고 용서받으라는 거다. 계속 나불대 봤자 입만 아프니 죄 얘기는 이쯤 하자. 여하튼 예수는 죄책감에 집을 떠나고, 우연히 만나 목자와 함께한다. 뒤늦게 나오지만 이 목자가 악마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악마의 개념과는 조금 다른데, 굉장히 이성적이고 그냥 하나님 반대편에 있는 동료나 적수쯤 되는 것 같다. 시간이 흘러 예수도 목자가 된다. 여기서 목자는 악마가 아니라 양치기다. 예수는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 다 사막 한가운데에서 하나님을 만난다. 하나님은 예수에게 때가 되면 너에게 권세와 영광을 주겠다 한다. 그 대가로 너의 목숨을 가져갈 거라 한다. 예수는 하나님 말에 질문한다. 그게 언제이며, 어떤 권세와 영광인지를 묻는다. 이에 하나님은 질문이 많다며 나물한다. 빨리 양을 제물로 바치고 끝내자고 서두른다. 먼가 켕기는 게 있는 하나님이다. 이 양은 내 것이고 너는 이것을 나에게서 가져갔으니 이제 그 양으로 갚아라. 주의 뜻이 이루어지리다, 당신이 우주를 다스리기 때문이며, 저는 당신의 종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그 양을 제물로 바쳐라, 아니면 언약은 없다. 저를 가엾게 여기소서, 주여, 저는 벌거벗은 채 여기 서 있고 칼도 없습니다, 예수가 말했다. 혹시 양의 생명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아직도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이 말했다. 이런 문제 하나 풀지 못하면 내가 하나님이 아닐 것이다. 옜다. 하나님이 말을 마치지 마자 커다란 새 칼이 예수의 발치에 놓였다. 자, 어서 해라, 하나님이 말했다, 나는 또 할 일이 있다, 여기서 하루 종일 이야기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하나님을 만난 예수는 집으로 돌아간다. 가장 먼저 어머니와 형제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 집에 돌아온 예수는 하나님을 만난 사실을 가족에게 말한다. 하지만 어머니와 동생 야보고는 예수말이 불경하다 생각하고 비아냥대기까지 한다. 실망한 예수는 다시 집을 떠난다. 여기서 유대인의 신에 대한 신념과 고집은 알아줘야 할 듯싶다. 좌우지간 집을 떠는 예수는 이후 성경에서 나오는 일화들을 겪는다. 여기서 일화라는 말은 잘못된 것 같고 기적이라고 해야 될 것 같다. 적어도 이 글을 보는 기독교 신자에게 비판받지 않으려면 말이다. 이번엔 어부가 된다. 어부가 된 예수는 그가 가리키는 곳에서 물고기가 잡히고, 병든 자를 낫게 하고, 빵 한 조각과 물고기 한 마리로 굶주린 자들에게 돈 복사하듯 복사해 나눠주고, 물로 포도주를 만든다. 이렇듯 성서에 기록된 기적들을 행한다. 예수는 호수가 배에서 다시 한번 하나님을 만난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듣게 된다. 하나님은 인간들이 자신을 믿고 찬양하기 위해서는 희생이 필요하다 말한다. 다만, 말로 찬양하라 떠드는 것보다 희생을 통한 감정을 자극해야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그 희생양이 바로 예수다. 여기서 하나님의 뻔뻔함에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자신의 권세를 위해 인간의 아들 예수를 손 뒤 집 듯 고통 속에 죽게 만드니 말이다. 좌우지간 예수는 열두 친구들과 함께, 물론 성경에서는 열두 제자다. 하나님의 뜻을 전한다. 심판의 날이 멀지 않았도다, 주를 믿지 않는 자 지옥에 떨어지니, 주 예수를 믿고 구원받으라! 어디서 참 많이 듣던, 귀에 익숙한 말이다. 불신지옥! 예수의 기적은 계속됐다. 눈먼 자가 다시 보게 되고 절름발이가 걷고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얻고 귀머거리가 듣게 된다. 소문이 퍼지게 되자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믿고 따르는 자들이 늘어났다. 유대인의 왕 헤롯에게 생각이 있다면 메시아라 불리는 예수를 그냥 둘일 없을 것이다. 헤롯은 군인을 시켜 예수를 잡아들인다. 이제 예수의 죽음이 그리 멀지 않아 보인다. 예수는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오자 기가 막힌 생각 하나를 해 낸다. 앞서 하나님은 자신을 찬양하기 위해 예수를 희생양으로 삼으려고 했다. 이에 예수는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부정하고, 유대인의 왕이라 말하는 것이다. 그리하면 자신의 죽음이 하나님이 아닌 유대인을 위한 희생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은 자신의 계획에 먼가 잘 못 되었음을 깨닫게 되고, 혹여나 자신을 죽음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의 의도를 미리 파악했다. 역시 하나님은 보통이 아닌듯하다.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히고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예수는 천천히 죽어간다. 생명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데, 갑자기 머리 위의 하늘이 활짝 열리며 배에서 보았을 때와 똑같은 차림의 하나님이 나타난다. 그의 말이 땅 전체에 울려 퍼진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며, 내가 기뻐하는 자다. 예수는 그 순간 자신이 당했다는 것을 알았다. 희생 제단에 가는 양처럼 꾐에 빠진 것이다. 그의 생명이 처음부터 죽음을 위해 계획된 것임을 알았다. 그는 피와 고난의 강이 자신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와 지구를 홍수에 빠뜨릴 것을 기억하며 미소 짓는 하나님이 보이는 열린 하늘을 향해 소리쳤다, 인간들이여, 하나님을 용서하라, 하나님은 자신이 한 짓을 알지 못한다. 별점: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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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먼 자들의 도시"로 유명한 주제 사라마구의 작품 1998년 노벨상 위원회에서 주제 사라마구를 문학상의 저자로 수상하자, 로마 교황청에서 이 책의 내용을 문제 삼아 강렬하게 반대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만큼 이 책은 파격적이라 한번 읽어보고 싶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