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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에 대해 이야기하면 으레 이런 문구가 나온다. 중세 시절 잊혀졌던 고대 문명의 정신을 되살리고, 인문주의의가 태동하면서 르네상스가 꽃피우기 시작했다고 말이다. 신 중심의 중세 문화와 달리 르네상스는 인간 중심의 문화이다. 인간을 절대적인 초월자에 종속된 존재가 아니라, 독자적으로 군림하는 존재로 인식하면서 비로소 르네상스 문화가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이때까지 르네상스 미술에 대해 서술할 때에는 미술품 자체에만 집중했다. 유화가 발명되면서 보다 새로운 기법이 선을 보였고, 원근법이 발명되고 정교한 명암 처리가 발달했으며, 독창적인 화풍이 선을 보였다는 이야기만을 하고 있었다. 르네상스 미술의 사상적 토양은 인문주의였건만, 막상 그 부분에 대한 서술은 이상하리만치 빈약하고 신경을 쓰는 사람도 많지 않다. 그저 '인간 중심의 문화'라는 표현 정도로 끝이다. 이래서야 미술품의 기술적 측면에만 집중하고, 거기에 담긴 '혼'은 무시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인문주의와 미술>은 제목에서 말하는 것처럼, 르네상스의 인문주의적 요소에 대해서도 심도있게 다룬다. 단순히 르네상스 시기의 유명한 저작을 훑는 데 그치지 않고, 여러 미술가들이 그런 요소를 어떻게 받아들였고 어떤 작품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했는지도 아울러 탐구하고 있다.
이런 측면은 르네상스 미술품의 도상을 본격적으로 탐구하는 대목에서 가장 강하게 드러난다. 르네상스 시대에 새롭게 등장한 소재와 작품 구도는 그 자체로도 르네상스 시대의 사상을 읽어낼 수 있는 통로가 된다.
다른 후원자들이 후원한 미술가들은 각기 다른 특색을 가진 미술품들을 만들어냈는데, 크게 세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일단 지역별로 유행하는 화풍이 달랐다. 다른 하나는 미술가들이 주문을 받는 처지에 있는 만큼 주문자의 취향을 십분 반영한 작품을 만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이유는 아예 후원자가 자신의 취향에 맞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를 선정해 작품 의뢰를 했다는 것이다. 대개 작가별로만 작품 분석을 하는 반면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인문주의와 미술>에서는 유명한 후원자들도 따로 살펴보고 있는데, 이런 측면에서 연유한 자세라고 해야 할 것이다.
책 말미는 다소 어둡고 가라앉은 분위기를 풍긴다. 그도 그럴 것이 르네상스 문화가, 혹은 르네상스 정신이 점진적으로 쇠퇴하는 모습을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조가 갑자기 명멸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서서히 발달했던 것처럼 서서히 스러지고, 이미 있던 사조를 서서히 밀어내 성장했던 것처럼 새롭게 태동한 다른 사조에 서서히 자리를 내어주면서 가라앉기 마련이다. 어느새인가부터 르네상스 미술의 넘치는 생명력과 빛나는 탐구정신은 점차 나태하고 기계적인 답습이 되어갔고, 종국에는 기술적으로도 퇴보하고 만다. 비단 미술 사조뿐만 아니라 문명을 구축하는 요소가 대개 밟았던 길을 르네상스도 밟았던 것이다.
르네상스는 아직도 빛나는 문화의 대명사로 쓰인다. 르네상스 이후에도 문화적으로 많은 진보를 이루었다는 것을 상기하면 어딘가 어색하게 여겨질 수도 있는 부분이다. 단순히 '시초'였다는 이유만으로 너무 큰 광휘를 부여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저 개화기나 문화의 태동기에나 쓰면 족할 표현이 아닐까-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후의 문화가 기술적으로는 더 발달했을지언정, 르네상스 정신의 생생한 활기와 약동하는 생명력에는 미치지 못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