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지 구니오와 미즈무라 미나에라는 두 명의 일본 작가가 아사히 신문에 연재한 왕복 서신! 얼굴도 모르고 단지 편지라는 근대적 통신 수단을 통해서만이 두 사람은 만날 수 있다! 저는 이 책의 컨셉이 이와이 슌지의 영화 <러브 레터>처럼 어딘가 아련한 향수에 호소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미지'의 대상에게 자기의 생각을 털어놓는다는 것은 얼마간 가슴 설레는 일이 아닐까요. 게다가 이 책이 주는 메시지 역시 '네러티브로의 귀환'이라는 데 있어서 저 위대했던 문학의 시대에 대한 그리움 같은 것이 저절로 샘 솟았습니다. 이 책은 문학의 위의가 예전만 같지 못하게 된 오늘날 문학이 우리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고 또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게 하는 책인 듯합니다. 그렇다고 이 책이 결코 무거운 학술 서적 냄새를 풍기는 것은 아닙니다. 다 큰 어린 아이처럼 천진하게 말하는 미즈무라 미나에의 친숙한 어조, 어린 아이와도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쓰지 구니오의 정감 어린 어조는 읽는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마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마케팅 대상 설정에는 다소 실패한 면이 있는 듯합니다. 전문가가 읽기에는 너무 소프트하고, 일반인이 읽기에는 다소 생경한 일본 근대 소설 이야기가 많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책을 중고등학생들에게 특별히 권해 주고 싶습니다. 이 책에는 읽어야 할 세계의 고전들이 두루 소개되어 있어서, 아마 감수성이 예민한 학생들이 이 책을 읽게 되면 다른 고전들마저 찾아 읽지 않고는 못배기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브론테 자매, 찰스 디킨스, 플로베르, 도스토예프스키, 프루스트, 토마스 만 등 종합선물세트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요. 세계의 문호들과 조우하는 과정에서 우리 동생들이 문학이란 곧 인간 탐구이고, 문학 속에서 인간의 위의를 되새길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 책에는 약간의 편견이 숨어 있는데, 미국문학에 대한 홀대가 그것입니다. 멜빌이나 호손 등 나올 법한 작가들에 대한 언급이 나오지 않는데, 이것은 두 저자가 유럽에서 공부한 사람들이기 때문만일까요. 아마도 편지의 주체가 바뀌면 대상도 바뀌게 되겠지요. 이 책을 읽으시면서 어떤 작품을 거론할 수 있을까 자기만의 목록을 만들어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친구와 편지를 독후감 편지를 주고 받아도 좋을 듯한데, 가령 나는 <작은 아씨들>에 나오는 '베쓰'에게 감정이입을 하면서 읽었다는 둥 하는 식의 편지 말입니다.
[인상깊은구절] 요컨대 '바보'라는 것은 '욕심이 없다'는 것뿐이 아닙니다. 그렇게만 생각한다면 문학의 본질을 이루는 언어의 '비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머리로 일한다'는 표현은 '손으로 일한다'는 표현과 달리 '비유'로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이반의 나라의 사람들은 모른다는 얘기입니다. 물론 그런 것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반의 나라의 사람들은 숭고합니다. 이 사실을 놓치면 <바보 이반>은 우스개 이갸기조차 되지 않습니다. 이반의 나라의 사람들의 숭고함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 이반의 나라의 가치는 문학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는데, 문학을 이해하는 사람은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어렸을 때 저를 괴롭혔던, 살고 싶다, 살고 싶지 않다, 는 문제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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