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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연하게 풀어나가는 비릿한 회상의 연속 된 이미지들이 잿빛으로 묵직이 가라앉은 안개를 떠도는 느낌이다. *정키‘해리’가 ‘조야’를 안듯이 “심드렁하게도 아니고, 그렇다고 열정적이지도 않게”담담한 목소리가 안타까운 비애를 가득 머금고 사랑, 아니 그 이상을 들려준다. 작품의 문장은 ‘W.G.제발트’의 호흡이 긴 그 장문(長文)과 기억의 실타래를 풀어나가는 느낌이 닮아 있기도 하고, 손이 닿지 않는 더욱 아득한 간절함의 기운으로 빠져들게도 한다.
아직은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기 전인 1987년 서베를린으로 탈주한 동독출신의 ‘조야’, 숙련식자공으로 그리고 꽃 가판대 아르바이트로 여전히 타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여성에게 말을 걸어온 멋진 서베를린 남자‘해리’는 필연적으로 만날 수밖에 없었던 연인이 아니었을까? 하고, 이미 눈 을 감고 세상을 떠난 연인의 노트를 몇 해가 지나고서야 비로소 읽어내는 한 여성의 절절한 추억의 회상들에서 그래야만 했다고 괜스레 그녀의 사랑을 초월적인 무엇으로 이해하고 싶게 된다.
마약과 절도로 11년간 수감생활을 하다 집행유예로 풀려난 해리, “단 한 번도 그런 키스를 받을 거라곤 생각해 본적이 없었던”, “우스꽝스럽고도 보드라운 애기키스”의 기억을 준 남자, 섹스에서는 “그야말로 의학적 의미로” 다뤘고, “ 힘차고 따뜻했고, 결코 과민하지 않았”던 남자, “자칭 민주적이라고 하는 국가는 어떠한 폭력도 행사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던 좌익무정부주의자, “사이비 프롤레타리아에게‘68소동(68혁명의 해리식 표현)’이 남긴 건 몇 마디 문구와 주삿바늘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그래서 마약으로 “의식 확장 작업인지 의식 파괴 작업인지를 철저하게 해낼 수 있었던”남자에 대한 기억은 그녀의 온 마음과 육체에 깊이 각인되어있다.
이 연인의 시련을 담아내는 작품 속 베를린은 왠지 뜨내기들의 집합장소이고, 뿌리 없이 바람에 이리저리 뒹구는 나뭇가지 같은, 이념의 공황상태, 신념을 상실한 황폐한 공간이란 분위기로 다가와 ‘반파시즘 보호 장벽’이 무너지는 통독(統一獨逸)의 전후 시대상과 결합하여 더욱 을씨년스러움을 더한다. 이러한 혼란스런 시대의 정황이 어찌되었건 이 작품은 분명 사랑의 이야기다. 그러나 화려한 낭만과 통속적 쾌락의 추구와 같이 삶과 괴리된 부르주아적 연애담은 결코 아니다.
“다시 사랑이라는 병에 걸렸다는 걸 알아차리자마자, 난 나이가 많았으면 좋겠다 싶었어. 나의 성(性)이 나에게나 다른 누구에게나 전혀 중요하지 않게 되어버린 나이 ~ 中略 ~ 부작용이 있는 권력이나 탐욕도 아무 소용없는 그런 나이 말이야.”처럼 조야의 사랑은 무념의 평온과 상반되는 두려움이기조차 하지만, “운명이 내 손안에 있는 그 사람을 위한 투쟁이었어!”라는 말처럼 그녀의 일상은 온통 해리에 대한 보살핌과 연민, 나아가 “더 이상 지상에 존재하지 않을 때까지 같아지고 또 같아지고...”하는 타자 없는 동일화, 일체화로 보여 진다.
지독한 사랑을 하면 아마 다른 어떠한 이미지에 의해서도 지워지거나 밀려나지 않는 고정된 자신의 마음속에 끈끈하게 침착된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해리가 HIV양성반응자임을 알았을 때 숨고 싶고, 자신의 심장이 뛰는 걸 듣고 싶고, 울고 싶고, 매 순간 림프절 하나하나를 만져보고 싶었던 그 처절한 갈등의 고통이 엄습하는 시간을 무어라 표현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자신에게만 폭력을 가하는”착한악인을 향한 안타까움과 애틋한 연민으로 그를 더욱 갈구하는 조야를 이해하게 된다.
“미래의 씨앗이 움트는 베를린 이라는 배아세포 한가운데 누워 있긴 하지만, 나의 동베를린, 우리의 서베를린이 모두 해체된 그곳에 있고 싶지 않아” 떠나야만 했던 그 떨칠 수 없었던 업보 같던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연인의 이 사랑이야기는 서로 머리를 맞대고 매트리스에 누워 가는 호흡만 들려오던 작고 궁박한 방을 자꾸만 선연하게 그리게 한다. 죽은 연인이 남긴 유품 속 바닥에 놓여있던 노트, 그 노트를 읽고서야 죽은 자에게 써내려가는 이 위대한 서간문은 사랑의 진실이란 진정 무엇인지 슬프도록 적나라하게 들려준다. 작품을 더욱 진솔하게 만들어 낸 작가 ‘카챠 랑게-뮐러’의 파란만장한 삶의 경험들에 애착과 숭고한 정신을 읽게 된다. 부럽고 존경스런 작가이고 더할 수 없는 경외의 작품이다. 뒤늦은 감 없지 않으나 국내에 처음 소개된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지속적으로 소개되기를 기대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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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을 앓은, 그 도시(베를린)를 닮은 사랑 - 카챠 랑게-뮐러의 『차마 그 사랑을』
오, 해리, 만약 누군가가 네 노트를 손에 넣어 호기심에 읽었다면, 그 사람은 과연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너의 삶에 나라는 사람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네 삶이 바로 내 인생이었고, 지금도 내 인생인, 그런 나라는 사람이 있었다는 걸. - 『차마 그 사랑을』, 12쪽 역사는, 사랑과 닮았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서 사랑했다.’ 이 문장이 곧바로 역사가 되지는 못한다. 그러나 자신의 모든 것을 적나라하게 타인에게 내보이는 행위이기에, 사랑은 그것이 끝난 이후에도 두 연인의 기억 속에서 지속적으로 호출된다. 각기 다른 두 생이 하나로 합치되었다가 분리되더라도 그들은 다시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사랑이 역사가 되는 이유는 이렇듯 '사건'이 끝난 이후에도 치명적인 기호를 방출하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은 자신이 살아가는 현재가 후대에 오래도록 기억되리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그러니까 사랑을 할 때 자신의 생에 어떠한 의미로 남게 될 지 알 수 없는 것처럼. 사랑의 관점에서 역사를 파악하면서 우리는 흉터, 혹은 무늬로써의 기억과 마주하게 된다. 평범한 날들 속에 ‘우연’이 개입되어 사건을 낳고, 그 사건이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나날들에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사랑이 생성되고 소멸되는 과정과 역사는 분명 닮아 있다.
구동독 출신 작가 카챠 랑게 뮐러의 소설 『차마 그 사랑을』(문학동네, 2010)은 비극적인 역사가 고스란히 투영된 도시, 베를린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역사와 사랑이라는 화두를 다루기에 베를린만큼 적합한 도시는 없으리라. 1963년, 소련은 서베를린으로 탈출하는 동독인들을 막기 위해 서베를린 주위에 장벽을 쌓았다. 그 후로 1989년에 베를린 장벽이 붕괴하기까지, 36년간 베를린은 세계대전과 냉전의 결과물로써 20세기의 뜨거운 상징으로써 존재했다. 서독 정부는 동독의 영토 내에 장벽으로 고립되어 ‘육지 위의 섬’처럼 자리 잡은 서베를린을 살리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서베를린은 버티기 위하여 존재하는 공간으로 변모했다. 이를테면 인구 유지를 위한 교육․행정 기관의 집중으로 서베를린 인구의 절반은 서독의 다른 지역과 외국에서 온 외지인들로 구성되었다. 소설의 화자인 동독 출신인 여자 ‘조야’는 서베를린을 “뭔가로 부터 도망쳐”(17쪽) 나온 사람들로 이루어진 도시라고 언급한다. 탈주민의 서독 정착을 돕기 위한 ‘마리엔펠더 캠프’의 교육과정을 마친 조야는 서베를린에서 국가에서 할당해준 일을 하며 권태롭게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조야는 길거리에서 히피풍의 남자 해리와 마주친다. 그리고 공식처럼, 어김없이 이들은 사랑에 빠진다. 소설은 해리를 회고하는 조야의 편지로 우리가 만난 건 우연이었어. 아니면 뭐였을까. 아마도 운명, 뭐 그런 거겠지. 우린 그냥 지나쳐버릴 수도 있었으니까. 우리가 각자 길을 가고 있던 그날, 넌 혼자가 아니었고, 난 내가 태어나 서른아홉 살까지 살았던 곳을 떠나온 지 채 일 년도 안 된 처지였어. (13쪽) 우연으로 시작된(대부분의 사랑은 우연으로 시작된다) 사랑이 그렇듯이 조야와 해리의 사랑도 순탄하지 않다. 마약 중독 후유증 치료를 받는 해리와 낯선 서독에서 궁핍하게 사는 조야의 만남은 처음부터 타인과 사회로부터 축복받을 수 있는 연애가 아니었다. (아마도 동독에서 겪은) 상처뿐이었던 옛 사랑에 대한 기억 때문에 "사랑하지 않거나 혹은 그리 깊이 사랑에 빠지지 않았을 때만"(72쪽) 섹스를 하던 조야는 서서히 해리에게 깊이 빠져든다. 그리고 조야는 해리의 일기를 훔쳐보기 시작한다. 해리가 쓴 파편적인 메모에 의하면, 해리는 청춘기를 보냈던 '1968년' 세대가 그러했듯이 자유분방한 젊은 날을 보냈으나 중년이 된 후에 젊은 날의 자유가 남긴 것은 피폐한 생활뿐이었다. ‘68소동’이 남긴 건 몇 마디 문구와 주삿바늘 뿐이라고 자조하면서 해리는 전망이 없는 삶을 살면서 개인적인 메모를 끄적인다.
조야는 해리의 글을 읽으면서 왜 자신에 대한 언급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지 의문을 품게 된다. 왜, 사랑하는 이의 글에 자신과 관련된 내용이 전혀 없는 것일까. 그것만이 아니다. 해리는 사랑의 행위를 할 때 이상할 정도로 소극적이며 대부분의 남자들이 좋아하는 오럴 섹스를 기피한다. 조야는 해리를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젊은 연인들이 그러듯이 자신의 의도대로 소유되고 조정되지 않는 관계에 대하여 상대를 공격하거나 조급해하지 않는다. 온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한 믿음만 있다면 상관 없지 않는가. 조야는 많은 젊은이들이 순간의 소유를 연대감으로 착각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는다. 물론 이러한 신중함은 젊음의 열기가 가라앉은 이후에 얻은 것이지만. 이 사랑이라는 병에 약이라곤 단 하나뿐이었어. 호감 가는 사람, 하지만 내가 진짜 원하는 대상과는 비슷한 데가 가장 없는 사람과의 섹스. 하지만 해리, 내가 다시 사랑이라는 병에 걸렸다는 걸 알아차리자마자, 난 나이가 많았으면 좋겠다 싶었어. 나의 성(性)이 나에게나 다른 누구에게나 전혀 중요하지 않게 되어버린 나이. 그래서 어떤 치료제도 필요 없고, 부작용이 있는 권력이나 탐욕도 아무 소용 없는 그런 나이 말이야. (73쪽) 조야는 해리를 치료하는 재활기관에서 해리가 HIV(후천성 면역 결핍증) 바이러스 보유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것이 해리가 오럴을 피하며 언제 끝날 지 확신할 수 없는 자신의 삶에서 조야를 기록으로 남기지 않으려한 이유였다. 해리는 조야가 자신의 병을 알게 된 이후에도 태연하게 그녀를 대하려고 노력한다.
질병 자체가 아닌 질병에 대한 인식과 예민한 정보가 자신에게 더욱 상처가 된다는 사실을 해리는 이미 체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병을 알게 된 이후, 조야는 더욱 힘껏 해리를 껴안는다. 해리의 병에 대해 품었던 자신의 공포가 부끄러웠기 때문에. "어떤 보호막도 없다는 점"(196쪽)에서 자신은 해리와 다를 바가 없다는 불안감이 오히려 그들의 관계를 더욱 견고하게 만든다. 해리가 폐렴 합병증으로 죽게 되는 1990년까지 조야는 해리의 곁을 떠나지 않는다. 조야가 해리의 마지막 나날을 지키는 동안 세상은 숨가쁘게 돌아간다. 해리가 죽기 한 해 전에는 베를린을 둘러싼 장벽이 무너졌으며 베를린을 둘로 나누던 '체크 포인트 챨리'도 유명무실해졌다. 조야는 해리가 죽은 1990년에 곧바로 다른 사람과 결혼하고 베를린을 등진다. 조야는 "나의 동베를린, 우리의 서베를린이 모두 해체된 그곳에 있고 싶지 않아"(263쪽)서 떠난다고 해리에게 마지막 편지를 남긴다.
베를린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소설은 1980년대 후반의 베를린에 바치는 하나의 오마주로 다가온다. 분단 상황에서 섬처럼 떠 있는 베를린은 의지할 곳이 없는 사회적 부적응자였던 해리와 조야의 만남과 어우러진다. 어떤 역사적인 슬로건이나 기록도 그 안에서 살아가는 보통의 존재들의 삶을 대변하지 못한다.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체포되는 동독의 권력자 호네커를 TV로 보면서 그를 "추락한 독재자"가 아닌 다시 감방으로 돌아가야 하는 불행한 "감방동료"(267쪽)라고, 죽음을 앞둔 해리는 무덤덤하게 말한다. 조야는 마지막 편지에서 해리에게 말한다. "원래 모습대로 있을 수 없는 두 개의 도시 베를린. 더구나 한때 그랬던 것처럼 다시 하나가 되는 게 아니라 아무도 알지 못하는 어떤 새로운 것이 된 그 베를린에서 나 자신이 낯설게 되는 것보다는 그게 더 정상적이지. 변화가 마무린된 베를린은 어쩌면 마음에 들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혼란, 철거, 투기, 불안을 의미하는 이 시작 단계에서는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두 개의 베를린일 뿐이었어." (263쪽) 베를린은 전쟁이라는 사건으로 인하여 두 개로 분리되고, 통일과 함께 다시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두 개였던 베를린은 하나가 되었지만 해방과 자유의 환호가 지나간 후에는 혼란과 철거, 투기, 불안이 난무하는 낯선 공간일 뿐이라고, 조야는 회고한다. 사랑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사랑을 겪은 후에 우리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사랑이 끝난 후에 남는 것은. 예전의 자신이 아니라 새로운 불안에 시달리는 또 다른 '나'이므로.
조야와 해리의 만남은 베를린의 정치적인 변화와 겹쳐지면서 역사가 관통한 그 공간을 사랑에 대한 은유로 변화시킨다.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동․서 베를린처럼 사랑의 대상이 더 이상 우리 앞에 존재하지 않더라도, 기억은 다시금 그것을 현재로 불러온다. 지금의 베를린이 분단의 역사 위에 존재하는 것처럼. 1980년대 후반, 베를린에는 얼마나 많은 해리와 조야가 있었을까. 개별적인 기억들은 역사가 되지 못한 채 다만 사연으로만 남는다. 그 사연에 숨결을 불어넣는 것은 문학이라는 상상과 해석이다. 카챠 랑게 뮐러의 소설은 이런 질문으로 우리를 이끈다. 당신이 겪은 사랑은 기억 속에서 무늬인가, 흉터인가. 당신이 사소한 우연을 기대하고, 길을 걸으며, 먹고 마시는, 그 공간은 당신의 사랑과 닮아 있지는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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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독여자인 조야는, 서독 베를린으로 옮겨, 운명의 남자를 만난다. 사실, 조야는 개방적이고 유연한 서독남자를 만나고 싶어했던 것 같다. 그를 만난 후 2년 뒤 독일이 통일이 되었으니 그 사회적 배경은 어떨지 그 배경 속의 사랑이 어떨지 기대하며 읽게 되었다.
하지만 읽다보니, 배경이나 서로 자라온 환경이나 사상이나 이런 것들을 다 멀리하고. <사랑> 그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정말 사랑에 빠져버린 두 남녀이야기다. 그렇다고 드라마틱하다거나 열렬하고 자신의 사랑을 뽑내듯한 연애이야기가 아니다. 서로를 바라보며 배려하는 사랑이야기다. 그래서 눈 먼 사랑의 도시 베를린이다.
거기에, 조야는 해리보다 나이가 많다. 그래서 투정부릴 수도 화낼 수도 없다. 그저 바라보며 그 순간을 함께할 뿐.
결국 해리가 병이 깊어지고 조야를 떠나게 된다. 해리가 떠난 뒤 느껴지는 사랑의 깊이는. 여자들이 백프로 동감하는 고백록같다.....
표지도 이쁘고 제목도 처연하여. 별만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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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챠 랑게-뮐러. 참으로 낯선 이름의 작가의 책과 만나게 됐다. 작가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제목에 눈이 먼저 이끌렸다. 제목에 들어가 있는 “차마”란 단어가 참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미지의 작가와 책에 대한 알 수 없는 끌림으로 <차마 그 사랑을>을 집어 든다. 랑게-뮐러는 구동독 출신의 작가로 공산당 간부의 딸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반체제적인 투사의 이미지를 투영해 주었다. 다양한 삶의 편린을 몸소 보여주던 랑게-뮐러는 늦깎이 작가로 데뷔하고 주로 단편을 발표해왔다고 하는데, 이 소설 <차마 그 사랑을>은 2007년에 발표된 장편소설이다. <차마 그 사랑을>은 기본적으로 빨치산 여전사의 이름을 딴 조야와 서베를린 출신의 허우대 멀쩡한 호남자 ‘정키’ 해리의 러브 스토리다. 다만, 풋풋하고 아기자기한 소설에도 잠깐 나오지만 애기키스같은 그런 사랑이 아니라 동독을 탈출해서 서베를린의 꽃 가판대 아르바이트를 하는 여성과 마약에 찌들어서 11년간이나 감방 생활을 한 끝에 갱생의 끄트머리에 서 있는 해리의 ‘발작적’ 사랑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랑게-뮐러가 그려내는 두 주인공과 다른 인물들은 모두 통독을 전후한 계급사회의 근저를 톡톡 건드린다. 서베를린 출신의 해리에게는 11년간의 징역살이와 보호관찰이라는 족쇄를 채우고, 오히려 공산권이었던 동독을 탈출한 조야에게는 무한대의 자유를 선사하지만 대신 가난이라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선물을 안겨 준다. 소설의 시작에서 조금은 진부하게 조야와 해리의 만남을 운명적으로 다룬 작가는, ‘자유를 희구하는 무욕의 행복’이라는 주제에 조심스러운 접근을 시도한다. 운명의 1987년 4월 17일, 베를린 장벽이라는 이데올로기가 무너지기 2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조야. 그녀는 해리가 남기고 간 노트를 반추하며, 자신의 사랑을 복기한다. 조야에게 해리는 그 존재만으로도 행복을 담보한다. 조야가 해리에게 느끼는 사랑이라는 감정의 본질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나는 조심스럽게 헌신이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구제할 수 없는 마약중독자 해리는 결점투성이의 남자다. 하지만, 조야는 해리의 “검은 파도” 같은 매력에 자신의 시선을 도저히 다른 곳으로 돌릴 수가 없을 정도다. 조건부 사랑의 너무 길들여진 요즘 세태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져 버리는 아니 목숨까지도 아깝지 않을 만큼의 파멸적 사랑의 스케치가 심상치 않게 다가온다. 랑게-뮐러는 <차마 그 사랑을>에서 니힐리즘의 심연을 탐미적으로 헤쳐나간다. 소설에 제목에 나오는 대로 “차마 그 사랑을” 뒤에 무슨 말을 넣으면 좋았을까. HIV 양성에 간염, 폐렴 등 종합병원을 무색케 하는 해리의 병명과 때 이른 이 세상과의 이별은 조야를 시간 속에 박제해 넣는다. 사회주의 이상향을 상징하는 조야의 헌신과 희생의 대척점에 타락한 자본주의와 마약 그리고 극단적 이기주의 무장한 해리가 서 있다. 이 둘의 기묘한 만남, 그 자체로도 충분히 이야깃거리가 되지 않을까. 솔직히 소설을 관통하는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의 몰락 같이 복잡한 이야기는 외면하고 싶다. 지난 20년이라는 세월은 어쩌면, 그런 지난 세기의 중대한 일조차도 망각하게 하는 영겁의 시간은 아니었을까. 그런 시대의 물결보다도, 지나간 자신의 사랑에 천착하는 개인의 이야기에 더 귀가 솔깃해졌다. 조야가 과연 새로운 사랑을 만났을지 그게 궁금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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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통의 편지가 되어 하늘로 배달된다. 그는 과연 그녀를 사랑했던 걸까?
첫눈에 반해버린 두 사람은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더불어 살게 된다. 흐르는 시간에 몸을 내던지며 서로를 탐닉하고 부딪치며 서로의 존재를 서서히 알아간다. 사랑하는 사람의 과거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자동차인 것인가. 조야는 얼마 전까지 감옥에서 수감된 전력과 마약중독이라는 사실을 해리는 아무렇지 않게 얘기한다. 그것도 별 것 아니라는 것처럼 말이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조야에겐 아무것도 듣지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조야는 '사랑'을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집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난 조야는 밥을 굶는 고통보다 고독이 더 참을 수 없었다. 첫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듯 애잔한 사랑 또한 슬프게 떠나는 것인가? 한 편의 영화처럼, 새빨간 거짓말처럼 해리는 에이즈 판정을 받게 된다. 다행이 조야에겐 옮기진 않았지만 죽어간다는 사실에 더욱 아파해야만 하는 안타까운..... 타지에 혼자 살며 겨우 찾은 보석을 그대로 떠나보내야 한단 사실에 썩은 동아줄이라도 부여잡고 매달리고 싶은 심정이다. 드디어 한계에 다다른 조야는 결국 온갖 방법을 동원해 자신을 파괴하기에 이르는 데 그 심정을 차마 눈뜨고는 볼 수 없을 지경이다. 그 사이에 홀로 죽어가는 해리와 자신을 좀먹는 행동을 일삼는 조야. 결국 죽은 뒤 해리를 찾아 그리워하며 한탄한다. 남은 유품을 살펴보다 일기장 하나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 일기장엔 정작 자신의 내용은 물론 이름조차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해리는 조야를 사랑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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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독 여성과 서독 남성의 만남과 사랑이라.. 생각지도 못한 내용이었던지라 무겁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책장이 가볍게 넘어가기 시작했다
여성스러움이 물씬 풍기는 책 표지를 펼쳤을 때 삐죽하고 삐져나오는 노란색 겉면을 보고 제목과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 아닌가 생각했다 봄에 어울리는 상큼하고 예쁜 노란 표지??
책을 읽다보니 노란표지의 의문도 같이 풀려지는 듯 하다 마약과 에이즈에 쩌든 해리의 글에 녹아든 노란 오렌지색 커튼 .. 조야가 이유도 모른채 달아준 이 태양처럼 노란 커튼의 비밀은 나중에 해리의 노트를 통해 세상과 소통 할 수 있는 커다란 빛 같은 존재인 걸 알 수 있다
이 책에서 사랑은.. 핑크빛이어야만 한다는 고정관념은 필요없을 것 같다.. 별로 좋지 않은 우울하기만 할 수도 있는 둘의 삶의 배경 속에서 남다른 방식으로 사랑을 느끼고 다시 연인의 품을 떠나가지만 결국 글로서 다시 만나게 된다
해리가 남긴 문장에서 등장하지 못하는 조야의 입장을 생각한다면 기분이 썩 유쾌하진 않지만 그의 대한 연민으로 또다른 글을 이어나가는 조야라는 여인은 꽤 삶을 가볍게 바라볼 줄 아는 강한 여성이란 생각이 들었다
무겁지 않은 문체로 자칫 어두워질 수 있는 소재를 가볍게 풀어놓아 부담없이 읽을 수 있었고 사랑을 다른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시선으로도 바라볼 수 있는 점도 새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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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독에서 서독으로 이주한 조야는 숙련 식자공이자 꽃 가판대 아르바이드를 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어느날 거리에서 한 서독 남자를 만나게 된다. 조야와 해리는 처음 우연히 만나던 날 빠져들게 되고 그 이후로 항상 함께 한다. 해리를 알아가면 갈수록 조야는 힘겨운 사랑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십일 년을 감옥에서 보냈고 마약중독자이자 에이즈 환자인 해리.
해리는 조야를 사랑하고 항상 조야곁에 머물지만 마약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폐렴, 에이즈 합병증 등으로 거듭되는 입원을 하게 된다. 작가는 1951년 동베들린에서 동족 지도층의 딸로 태어나 청소년 시절부터 '반사회주의적 행동'으로 고등학교에서 퇴학당하고 무단 가택 점거에 가담하는 등 반체제 성향을 보였으며 숙련 식자공 직업교육을 받기도 하고 정신 병원에서 간호 조무사로 일을 하기도 하는등 다양한 경험을 했다고 한다. 그러한 경험들이 이 책속에 그대로 묻어난다.
해리를 사랑하는 조야의 마음은 해리가 더 이상 자신의 곁에서 떠나지 않기를 자신이 모르는 시간이 없기를 애타게 갈구한다. 해리가 자신의 사랑에서 벗어나서 몰래 마약을 하고 전화를 받지 않고 멀리 떠나가도 간절히 해리만을 사랑한다. 젊음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사랑이란 그렇게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 빠져드는 것이 아니라..자신도 모르는 어떤 다른 세계에 깊이 빠져드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 사랑에 메달리게 되는 것이다.
해리는 마약중독자이고 에이즈 환자이고 생활력이 딱이 없는 그런 남자이지만 그런 해리를 조야는 끊임없이 사랑한다. 그리고 해리 곁을 떠나지 못하고 항상 해리가 자신 곁에 있어주기를 간절히 원한다. 마약중독자일뿐 아니라 에이즈 환자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게 되자 해리를 조야를 도와주려던 사람들도 모두 떠나가지만 조야는 해리의 곁을 떠날수가 없다. 해리는 그런 조야가 자신으로 인해 감염되기를 원치 않는다. 진정한 사랑이란 그런 것이리라. 해리가 이 세상을 떠나고 해리의 수첩을 발견하게 되고 조야는 조야에 대한 사랑이나 조야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기를 바라며 조야의 노트를 읽는다. 그렇지만 어디에도 조야에 대한 이야기는 담겨있지 않다.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그 속에서 나의 이야기가 담겨있기를 바란다. 확인을 하고 싶은 것이다. 정말 제목 그대로이다. 차마 그사랑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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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멀게 한다. 사랑이라는 이름은.
그녀는 그에게 눈이 멀고 그의 아픔과 추함은 보지도 않고. 느끼지도 못하고.
그녀의 사랑은 그의 추함을 망각하게 하는 각성제였을까. 그의 모습을 아름답게 보이게한 환각제였을까.
누구나 한번쯤은 사랑에 눈이 먼다고 했었다. 그녀는 눈이 멀었다. 세월이 오래 지난 뒤에도 그녀의 사랑은 죽어버린 그임에도 진행형이다. 마지막에 그녀는 영화를 그린다 그와 그녀가 머리를 맞대고 있는 그림을 그린다.
안타까웠다. '정키' 그 어두운 함정에 빠져 허우적 되었을 그를 보며 그녀는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어둠의 그늘을 볼때마다 나는 너무도 안타깝다.
해리의 메모에서 '세련된 악마'라는 말이 있다. 해리는 세련된 악마가 필요하다고 했는데 주관적으로 해석하기에 그것은 약이 아닐까 싶었다. 그러나 그 약은 전혀 세련되지 않다. 오히려 스스로를 잠식시키는 질병일 뿐이다. 그리고 HIV(후천성 면역결핍증), 흔히 에이즈라고 하는 질병에 양성반응을 보인 해리. 모든것은 전혀 좋지않다.
조야는 눈이 멀었지만, 해리는 세상에서 멀어져간다.
조야는 떠난다. 해리를 두고 떠날수 밖에 없다. 항상그렇듯이 남겨진 자의 슬픔과 보낸자에 대한 그리움만 남는다.
※사랑에 눈이 멀어버린 그녀의 이야기. 그녀의 감정에 충실히 잘 몰입할수 있었던 소설이었다.
궁금증이 하나 남는다. 해리는 조야를 사랑했을까? 그것이 조야의 짝사랑이었든, 함께한 사랑이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는 문제이긴 하다만.... 개인적으로 <냉정과열정사이>처럼 <차마 그 사랑을>도 해리의 시점에서 그려진 소설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소 뻔하지만 강렬한.
★★★☆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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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말한다 운명이라는 것을 그리고 운명의 순간에서 눈이 맞은 그 '사랑'이란 묘한 감정을 카챠 랑게-뮐러의 '차마 그 사랑은' 그런 남녀간의 심리를 묘하게 그리고 차분하게 펼쳐나간다 깨끗하게 단정된 어투의 이 소설은 '우연히' 사랑을 찾게되는 사랑의 감정들을 일률적으로 말하고 있다
좋은 내용의 서적을 좋은 이벤트로 참여하게 되는 기회를 얻는 건 영광이다. 그 기회를 주신 '스타벅스 가십 관계자님'들께도 '출판사 문학동네' 에게도 같은 마음으로 감사를 표한다. 일단 사랑이란 난해한 주제에 대해 랑게-뮐러는 어떻게 표현했는지 보자. 배경은 서베를린 거리. 정확히 말하자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근 2년전으로 초점을 맞추어 간다. 주인공은 두 사람이다. '조야'와 '해리' 둘다 어떤 행복한 삶을 사는 인물도 아니고 자유를 추구하는 이상향을 가진 사람들도 아니다. 보조금을 받으면서 꽃 아르바이트를 하며 자유를 찾고 서독남자와 사랑해서 안정된 삶을 꿈꾸는 여자 조야. 마약복용으로 감옥에 있다가 출소되서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지도 못하고 여전히 마약을 끊지못하고 에이즈까지 걸린 해리. 이 둘이 '차마 그 사랑을' 이랑 소설의 카챠 랑게-뮐러가 탄생시킨 또 하나의 자신이다.
그들은 말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운명적인 사랑으로 서로는 존재한다고 그들은 운명적으로 만났음에 틀림없다 그리고 사랑한다고 믿고 사랑했다. 그것은 절대 그들 마음에 변하지 않는 논리다. 하지만 사랑은 현실이라고 혹자는 말한다. 남자와 여자라서 다른 그들이 서로를 이해시키기도 서로의 이상향이 다른 그들이 맞추어 살아가기도 이해하고 배려라는 것이 스스로를 옥죄하고 가둬버리고 그러면서 사람이 변했다 사랑이 변했다 라고 말한다 자신의 입장에서만 그를 배려하기 때문에
'조야'는 그랬다 그녀의 방식이 해리에게는 이해하고 사랑이 아닌 것이다 그런 해리에게도 지쳐가는 '조야'는 서독의 흡수통일로 인해 갑자기 달라진 자신의 생활들을 적응하지 못하고 그녀는 해리를 단념하고 자신을 포기하는 데에까지 이른다 그런 순간 그녀에게 다시 희망의 '빛'을 찾아준 것이 바로 지난 날 해리와의 사랑이다. 그렇게 힘들어해놓고 결국엔 해리와의 사랑이 그녀를 다시 숨쉬게 해준 것이다
시대적 배경으로 말미암아 한 청년과 처녀로 우리 현실을 꾸짖고 비판하게 해준 '차마 그 사랑을' 읽어보면 글체가 참 깔끔하면서도 시원하다 그러면서 섬세하다는 느낌을 놓칠 수가 없다.사랑을 하는 사람과 사랑을 받는 사람 그 모든 것이 그들에게는 최선을 다하고 목숨을 걸만큼 가치있는 일이다. 추억으로 남길 수 있는 그 현실이 그 과거가 언젠가는 나를 되돌아볼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마음을 편안하게 소설책을 읽어본 날이 까마득하다. 언제 책을 읽었는지 소장하게 되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책을 읽어서 감동을 받고 잘 읽었다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책이 좋은 책이라고 하는데 난 오늘 참 좋은 책을 읽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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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그녀의 사랑이 어땠을지, 그녀는 그의 일기장을 통해서 과거의 기억을 더듬고 있었다. "사랑이구나" 생각이 들었을때는 이미 모든것이 늦은 순간이였다. 더이상 그전의 상태로 자신을 돌릴 수 없었다. 세계사적 전환기인 독일 통일 직전의 1987년 서베를린, 숙련 식자공이자 동독 탈주민 조야는 꽃 가판대 아르바이트를 하며 외롭게 살아간다. (273쪽) 조야는 서베를린 사람, 잘생긴 연하의 해리는 서독 남자였다. 그녀의 말대로 해리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식당에서 자신을 닮았다던 어이없던 삐애로를 들고선 그걸로 끝이였다면 좋았을지도 모른다. 사랑이 찾아오는 적합한 시기라는 것이, 거기에 걸맞는 사람, 그 사랑은 그녀의 인생에 느닷없이 쳐들어온 셈이였다. 적어도 조야는 어쩌면 인생에서의 최악의 남자 해리를 사랑하게 되어버렸다.
아무 생각없어 보이던 해리를, 마약에 찌들어서 조야가 어떻게 해서든지 구해내고 싶었던 그 사랑을, 조야의 사랑을 지켜내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해리의 내용만 적힌 노트속에서 조야는 어디에도 자신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없었다. 조야의 빈정거림은 시작되었다. 조야를 머리에 아로새길정도로 자신을 사랑했거나 아니면 조야는 해리 인생에 무의미 했던것일까? 마약에 벗어나기 위해서 도와주던 사람들을 빈정거리는 투로 적어내려간 노트를 보면서 어찌 조야가 좋은 감정을 가질 수 있겠는가. .아픔이 지나고 난 뒤라 덤덤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조야의 이야기는 만화의 주인공을 더빙하듯이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성우처럼 느껴졌다. 절제된 감정속에서 조야의 아픔이 느껴졌다. 그 말투는 꽤나 비관적이고 먹고있던 과자를 내게로 툭 던지는 것처럼 썩 기분이 내키질 않았다. 조야는 해리라는 남자를 알아가면 갈수록 충격적인 사실들을 알게 된다. 행복할때나 슬플때나 함께 한다는 말처럼 최악의 상황에서도 조야는 해리의 모든것을 받아들인다. 구렁텅이에 빠진 해리를 끄집어 올리기 위해서 조야는 무던히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사랑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을 끝까지 안고 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조야의 공든 탑은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고 만다. 해리는 조야를 사랑했던 것일까? 힘들고 아팠던 사랑이지만 조야에겐 너무 소중하고 행복했던 기억이였는지 모르겠다. 해리가 죽고 십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서야 조야는 자신의 사랑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힘들었지만, 자신에겐 너무 사랑스러웠던 해리의 노트를 통해서 그와의 시절을 재회해 본다. 시대적인 아픔, 분단이라는 아픔 그속에서 겉돌아야만 했던 그들의 이야기가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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