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도의 풍광은 깊고 우아하다. 긴 세월에 의해 만들어진 고아한 정경들과 검푸른 바다의 출렁임은 한번 보면 잊을수 없는 기억으로 조용히 남는다. 몇 번을 들어도 알 수 없는 그곳의 말은 이 곳이 우리 땅인지 잠시 생각해 볼 정도로 외지와 차이 난다. 제주도는 그렇게 이국적 정취와 매력이 가득한 곳이다. 이런 낙원 같은 곳에도 인간사의 근심 걱정이 있을까 싶은데 예전 이 곳을 훑고간 생채기는 꽤 짙다. 그 아픈 시간의 기록들을 작가 현길언이 상세히 펼쳐 보인다. 제주도가 한 때 신음 소리 가득한 광기의 현장이었던 시간은 지금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다. 불과 60여년 전 일이다.
'그 때 나는 열한 살 이었다'는 해방후부터 한국 전쟁 직전까지 제주도에서 일어났던 5년 간의 이야기를 담아낸 책이다. 글은 초등학교 2학년생인 세철이가 개학 며칠 후 학교에 가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어린 세철이는 해방을 맞아 모든 것이 달라져버린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어리둥절해 한다. 한 두달 전만 해도 일본이 이기고 있다고 힘주어 말하던 담임 선생님이 이제는 일본말을 하면 화를 내고 우리에게도 우리 글이 있다 말씀하신다. 하나 웬지 그 목소리는 자신없게 들린다.
세철이를 더 놀라게 한 것은 삼촌의 죽음에 대한 평가가 갑자기 달라진데 있다. 일본군으로 전사한 삼촌의 죽음은 얼마전 까지만 해도 순국이었고 영웅적 행위였는데 하루 아침에 갑자기 개죽음으로 취급되고 있다. 그렇게도 당당했던 교장 선생님네는 세철이네 집에 숨어지내는 신세가 되고 어느날 일본으로 도망치듯 돌아간다. 병약한 세철이는 학교에 자주 빠지게 되고 그 공백은 앙숙인 명환이가 급장이 돼 메우고 있다. 명환이는 삼촌의 죽음을 개죽음이라 말하며 세철이의 가슴을 헤집었던 아이다. 어린 세철이는 누구도 자신을 무시하지 못하도록 '뿔'을 갖고 싶어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마을은 소란해진다. 인심은 흉흉해지고 사람들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한다. 이념이 마을 전체를 휩쓸면서 사람들은 마치 편가르기 하듯 둘로 나뉜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세계를 그대로 반영해 하루 종일 전쟁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놀이에서 방아쇠 당기는 일이 아무렇지 않게 될 무렵 마을에는 자신의 이념과 다른 사람을 처단하는 일이 발생한다. 동네 유지이자 면장이었던 세철이의 아버지도 동네 젊은이에게 끌려가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사람들의 마음이 나뉘기 전 그들은 동네 형님과 아우였다. 아버지의 처참한 죽음으로 세철이의 형 세민이는 세상을 증오한다. 세민이의 눈에 빨갱이는 죽여야 할 대상이다. 작은 아들에 이어 큰 아들까지 잃은 세철이의 할아버지는 이제 손자까지 잃을까봐 떨며 애원한다.
죽은 삼촌의 친구였던 고민정은 잠시 학교에 고선생으로 있었다. 세철이는 일본군으로 끌려갔다가 살아 돌아온 고선생이 죽은 삼촌 같다. 고선생은 미군정 치하에서 영어 통역을 하며 학교에서는 연극도 가르치고 저녁엔 야학을 열어 중학생들을 가르친다. 세철이는 일본군이었던 고선생이 적군이었을 미군과 이야기 하는게 도무지 이상하기만하다. 고선생은 좌익 사상을 전했다는 이유로 경찰의 감시 대상이 되고 얼마 후 공비가 돼 산으로 들어간다.
어느 날 공비들이 산에서 내려와 마을의 양식을 강탈하며 불까지 지르는 일이 생긴다. 마을은 불바다가 되고 세철이네 집에도 공비들이 쳐들어온다. 그 무리의 우두머리는 고선생이다. 고선생은 외양간에 숨은 엄마와 세철이를 못 본체 하고 식량과 소만 가져가라 지시한다. '왜 반동의 집에 불을 안지르냐'며 따지는 부하의 말에 그는 '지금 가져가는게 얼마냐'며 '남겨두면 나중 쓸모 있다'는 말로 대신하고 철수한다. 세철이는 가슴을 쓸어내린다. 고선생은 한 때 고모와 혼담이 오가던 사람이었다. 세철이는 또 이해가 안간다. '고선생이 왜 우리를 살려주었을까'
고선생이 철수하고 난 얼마 뒤 고선생의 부모는 동네 사람들에게 끌려와 돌팔매를 맞는다. 아무 죄도 없이 고선생의 부모가 사람들에게 당하는 것을 본 할아버지는 '자식이 잘못하면 부모가 책임을 지게 된다'며 '다들 미쳤다' 하신다. 세상은 미쳐 날뛰고 자식이 어느 한 쪽에 손을 들면 부모와 일가 친척도 그 쪽 편으로 간주된다. 가족의 일원이 저질은 일은 남은 가족이 자신의 목숨으로 대신해야 한다. 피가 피를 부르는 나날들로 시간이 채워지고 있다.
얼마뒤 세철이와 앙숙인 명환이의 삼촌이 포송줄에 묶여 끌려 나온다. 이미 명환이네는 삼촌 때문에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잃었다. 명환이는 사람들보다 앞으로 나가 삼촌에게 돌을 던진다. 세철이는 명환이의 머리에 뿔이 난 것을 보게 된다. 세철이도 간간이 자신의 머리에 난 뿔을 볼 때가 있다.
미쳐야만 살 수 있었고 미쳤기에 사람을 죽였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이 책은 세철이의 입을 통해 '이해가 안된다'는 말을 자주 들려준다. 그런 시절을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현길언은 택했다. 아이들이 너무 일찍 어른들의 세계를 알아버렸다고 현길언은 안타까워한다. 그러나 미움과 사랑과 외로움과 배고픔과 그리고 죽음의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성장할 수 있었다 한다.
하지만 나는 성장이라는 말에 동의하기 주저한다. 차라리 성장이라기 보단 세상의 본질을 너무 일찍 알아버렸다는말이 적합하진 않을까? 사실(fact)은 변함 없는데 시대적 상황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고, 하루 아침에 말이 바뀌며, 그 바뀐 말에 대한 자신없는 답변을 붙여야하는 상황속의 사람들이 무엇을 배우고 어떤 성장을 이루어냈을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차라리 삶의 처세를 일찍 익혔다가 맞지 않을런지 모르겠다. 만약 성장이었다면 그 상처가 아직도 내지인들의 가슴에 그리 깊게 박혀 있을 수 있을까? 반세기가 넘었는데도 상처에서 흐르는 피를 나는 현지에서 보았다. 그 상처가 이제는 잘 아물었으면 좋겠다. 그러기에 작가도 이 글을 쓰지 않았던가 싶다. 나 또한 그런 바람으로 이 책을 읽었고, 지난 시절의 그들이자 우리이기도 한 제주의 아픔에 함께 했다. 역사의 아픔이 다 씻기는 날 제주도의 풍광은 더 찬연할 듯 하다.
사진출처: 조선 닷컴 최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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