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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가 읽은 책(71) 귀향 -베튼하르트 슐링크-
"광대가 읽은 책(71) 귀향 -베튼하르트 슐링크-" 내용보기
구입한지 2~3달 후에 올리게된 귀향 앞표지입니다.   뒤표지는 스토리 요약과 LA타임스의 서평이 간단하게 적혀있네요   이 책을 쓴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소개와 각종 언론에서 이책의 칭찬글... 이 적혀있네요   각 장의 앞장에는 그 장에 나오는 내용이 요약되어 있습니다.   더 리더 책을 읽어주는 남자에서는 용어 해설이 따로 정리되어있어서 찾아보는
"광대가 읽은 책(71) 귀향 -베튼하르트 슐링크-" 내용보기
구입한지 2~3달 후에 올리게된 귀향 앞표지입니다.
 
뒤표지는 스토리 요약과 LA타임스의 서평이 간단하게 적혀있네요
 
이 책을 쓴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소개와 각종 언론에서 이책의 칭찬글...
이 적혀있네요
 
각 장의 앞장에는 그 장에 나오는 내용이 요약되어 있습니다.
 
더 리더 책을 읽어주는 남자에서는 용어 해설이 따로 정리되어있어서
찾아보는게 좀 귀찮았는데;;;
귀향에서는 용어해설이 밑에 있는게 마음에 드네요.
 
옮긴이의 말이네요
이 구절이 인상적이네요
(중략) 그렇기에 역자로서 독자에게 권하는 것은 한가지이다.
그냥 소설 속으로 풍덩 뛰어드시라. 그래서 자기만의 눈으로
세계를 이해하고 비판하고 안아보고자 노력하라.
모든 것을 다 알수는 없지만, 모자라면 모자라는 대로
자기만의 의지를 구축해보라.
그것이 이 시대의 감각에 맞는 인간이 아닐까?
어찌보면 이 책의 결말을 살짝 알려주시는것일지도 모르겠네요(먼산)

이 책을 쓴 베튼하르트 슐링크에 대한 소개글과 수상 경력이 적혀있습니다.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또다른 책들 소개이네요
더리더 : 책을 읽어주는 남자는 전에 읽어봤고
다른 남자도 한번 읽어봐야겠네요.
 
할아버지댁에 가게된 페터 데바우어
거기서 샤를이야기라는 소설을 읽게되고..
세월은 흘러 지나서 페터의 출판사로 투고 원고가 들어옵니다
'존 드 바우어'라는 이름의 남자가 보낸 '법률의 오디세이'라는 책...
 
법률과 오디세이
그리고 과거와 현재와
아버지와 아들
아버지와 아들이 느끼는 여러가지등등 모르겠지만..
(저는 딸이니까요;;)
더 리더 : 책을 읽어주는 남자보다 더 어렵게 느껴지고 읽었지만
왠지 모르게 끌리고 집중하게 만들고 과연 이라는 소리가 나오게 만드는
좋은 책이었습니다.
s*****4 2010.03.27.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결국 누구나 돌아가게 되는 ...귀향
"결국 누구나 돌아가게 되는 ...귀향" 내용보기
쉼 없이 끝까지 읽어내려 갔지만 막상 글로 옮기려니 쉽지가 않습니다. 읽는 내내 그의 생각을 좇아가느라 딴 생각을 할 새가 없었습니다. 그럴라치면 문맥의 의미를 몰라 다시 읽기를 반복했습니다. 잘 읽히기는 하는데 그렇다고 쉬운 글도 아닙니다. 이것이 슐링크 문학의 특징인가 봅니다. 예전에 ‘더 리더’를 읽으면서도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1인칭 ‘나’는 ‘그’의 이야
"결국 누구나 돌아가게 되는 ...귀향" 내용보기

쉼 없이 끝까지 읽어내려 갔지만 막상 글로 옮기려니 쉽지가 않습니다.

읽는 내내 그의 생각을 좇아가느라 딴 생각을 할 새가 없었습니다. 그럴라치면 문맥의 의미를 몰라 다시 읽기를 반복했습니다. 잘 읽히기는 하는데 그렇다고 쉬운 글도 아닙니다. 이것이 슐링크 문학의 특징인가 봅니다. 예전에 ‘더 리더’를 읽으면서도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1인칭 ‘나’는 ‘그’의 이야기를 서술하는 것보다는 한결 친숙하고 주인공과 독자 사이의 간격이 훨씬 좁아 보입니다. 그래서 텍스트 안에 쉽게 빠져 듭니다.

페터 데바우어는 어린 시절 방학을 항상 조무모와 함께 지냅니다. 두 분이 편집 작업을 했던 소설을 우연히 읽게 되면서 끝을 알 수 없는 이야기의 결말을 스스로 찾아보게 됩니다. 소설의 결말을 찾아가는 과정은 놀랍게도 자신의 아버지를 찾아가는 과정과 맞물리게 됩니다.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아버지의 존재를 할아버지가 연습장으로 쓰라고 준 이면지에서 찾게 되리라고는 상상치도 못했던 일이지요.

<오딧세이아>와 <기쁨과 재미를 주는 소설 총서>, 그리고 주인공과 바바라와의 사랑 이야기가 마치 톱니바퀴처럼 함께 이야기를 전개해 나갑니다. 이 세 에피소드는 모두 귀향의 다른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소설은 이 세 에피소드를 수시로 넘나들면서 마치 흩어져 있는 퍼즐을 맞추어 나가는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그 퍼즐에는 다소 어려운 조각들도 있습니다. 페터가 살아가는 시대라는 조각 말입니다. 급변하는 시대, 이념이 사라지는 시대, 그리고 실제로 허물어지는 독일의 장벽을 목격합니다. 지금까지 정의라고 여겼던 것들도 변할 수 있다는 것, 선을 위한 악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인지 수많은 질문의 조각들이 들어있습니다. 질문에 함께 고민하다보니 자꾸 어려워집니다.

독자를 단숨에 현혹할만한 기법을 가진 것은 아니나 분명 그의 소설에는 깊은 호흡이 있습니다. 기교가 아닌, 투박하지만 다시 보아도 질리지 않는 진정성이 있습니다. 스토리적인 재미와 더불어 음미해야 하는 순간들을 만끽한다면 ‘귀향’은 성공적일 것 같습니다.

YES마니아 : 로얄 u******1 2010.03.1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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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 / 베른하르트 슐링크
"귀향 / 베른하르트 슐링크" 내용보기
<더 리더> 이후 그의 이야기는 찾아서 읽게 되는 것 같다. <다른 남자>도 그의 이야기여서 선뜻 읽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야기에 확 빠져들게 하는 어떤 요소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잔잔하게 귀 기울일 수 있는 조용한 친구같은 느낌이다. <귀향>은 읽기 전에 그 책에 대한 소개부터 읽었다. 어린 시절 우연히 읽게 된 소설의 일부 그 소설을 마무리 부분을 찾게 되면서 찾게
"귀향 / 베른하르트 슐링크" 내용보기

<더 리더> 이후 그의 이야기는 찾아서 읽게 되는 것 같다.

<다른 남자>도 그의 이야기여서 선뜻 읽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야기에 확 빠져들게 하는 어떤 요소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잔잔하게 귀 기울일 수 있는 조용한 친구같은 느낌이다.

<귀향>은 읽기 전에 그 책에 대한 소개부터 읽었다.

어린 시절 우연히 읽게 된 소설의 일부

그 소설을 마무리 부분을 찾게 되면서 찾게 되는 자신의 과거

시종일관 미스테리로 작품을 이끌어간다는 소개

나의 호김심을 불러일으키기에는 충분했다.

 

전철을 타고 멀리 갈 일이 생겨 전철역 근처의 서점에 들렀다가

머뭇거리지 않고 그의 책 <귀향>을 사들었다.

 

개성이 강하지도 않고 미지근한 물과 같은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페터 데바우어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그리 다정다감하지 않은 어머니와 함께 생활하는 그에게

방학때마다 가게 되는 스위스의 할아버지, 할머니의 집이 그의 어린시절을 대변한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밤마다 식탁에 앉으셔서 하시던일

소설 총서를 만드는일

그리고 그러다가 나오게된 파지의 뒷면을 이용하여 공부하던 그

절대로 소설은 읽지 말라던 할머니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그는 우연히

카를의 귀향이야기를 읽게 된다.

 

어린시절에는 그향 한 병사가 전쟁포로로 잡혔다가 탈출을 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가족과 만나는,,, 그런 흔한 귀향 소설이라고 생각했는데

점점 읽으면 읽을수록 오딧세이와 같은 소재와 이야기로 구성되고 있는 이야기에 매료되고 그 흔적을 찾아나서게 된다.

 

그러던 중

사랑하는 여인 바바라도 만나게 되고

자신의 아버지의 흔적도 찾게 되고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며 자신의 참모습을 찾게 된다.

 

긴장감을 주는 미스테리물도

반전을 가져다 주는 흥미로운 사건이 있는 이야기도 아니었다.

 

한 인간이 자신의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

다양한 방법으로 그러한 것들을 표현하지만

오딧세이를 모티브로 한 소설을 등장시키고

그것을 법학적으로 해석하면서 정의의 문제 , 악의 본성등에 대해서고 이야기하고 있는 그야말로 잔잔한 물결과도 같은 이야기이다

 

주인공이 어린시절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집에서 보낸 시간

그것은 사소한 부분만 다르게 일어날뿐 항상 똑같은 것이 반복되는 삶이었다고 한다.전체적으로는 줄지어 고르게 굴러가지만 어떤 것도 방금 지나간 것과 똑같지 않은 파도와 같은 삶이라고 말이다.

 

소설에 대한 작가를 알아내고

그 작가가 자신의 아버지였다는 사실도 알아내지만

그러한 결과를 가지고 상대방과의 인과관계가 아닌 자신 스스로의 문제로 생각하면서 하나하나 해결하고 자신의 삶에 적용시켜나가는 그의 모습에 묵묵히 응원을 보내고 싶다...

 

책을 읽는 내내 어느 농부 마르텡게르의 귀향을 보면서 얼마전에 비슷한 이야기를 읽었었는데 하는 궁금함때문에 집중을 할 수 없었다.

생각하던 중 얼마전에 읽은 마쓰모토 세이초의 단편전에서 고파스칼이라는 단편에나왔던 이야기와 비슷하다는 것을 생각해내고는 얼마나 속이 후련하던지

타지를 돌던 사람들이 결국 고향으로 돌아오는 많은 이야기

귀향소설도 따로 분류를 했을 정도라고 하니..

많은 전쟁들을 통해서 고향을 떠나고 다시 고향을 찾고

그런 것 처럼

나도 모르게 나를 잊고 삶을 살아가던 우리가

다시 나를 찾는 행위 자체가 귀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n******m 2010.03.0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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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 돌아온다, 베른하르트 슐링크 [귀향]
"나를 찾아 돌아온다, 베른하르트 슐링크 [귀향]" 내용보기
가끔 난 오디세우스가 그립다. 벤첼 슈트라핀스키에서 고등 사기꾼의 기술과 거짓말을 배웠고, 급하게 인생 속으로 풍덩 뛰어 들어 모험을 찾고, 위기를 이겨내고, 신사의 매력으로 내 어머니를 얻고, 기쁨과 재미를 주는 소설을 유쾌하게 쓰고, 유희적 가벼움으로 갖가지 이론들을 개발한 그 오디세우스가 그립다. 물론 난 그것이 요한 데바우어나 존 드 바우어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라
"나를 찾아 돌아온다, 베른하르트 슐링크 [귀향]" 내용보기
가끔 난 오디세우스가 그립다. 벤첼 슈트라핀스키에서 고등 사기꾼의 기술과 거짓말을 배웠고, 급하게 인생 속으로 풍덩 뛰어 들어 모험을 찾고, 위기를 이겨내고, 신사의 매력으로 내 어머니를 얻고, 기쁨과 재미를 주는 소설을 유쾌하게 쓰고, 유희적 가벼움으로 갖가지 이론들을 개발한 그 오디세우스가 그립다. 물론 난 그것이 요한 데바우어나 존 드 바우어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것은 내가 아버지에 대해 꿈꾸었던 모습, 내 심장이 간절히 원하던 모습에 대한 그리움일 뿐이다. (p,390)



홀어머니와 함께 독일에서 살며 방학 때 마다 스위스 조부모님댁에 머물던 페터 데바우어는 조부모님이 교정하던 소설의 이면지를 연습장으로 사용하면서 2차 세계대전 때 포로수용소에서 탈출한 독일 병사 카를의 귀향 이야기를 읽고, 사라진 결말에 대한 궁금증을 지니게 된다.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한동안 이를 잊고 있던 그가 성년이 되어 다시 소설을 접하게 되면서 페터는 소설의 작가를 쫓는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와 겹쳐지는 귀향이야기는 페터에게 계속 호기심을 자극하고 잃어버린 결말을 찾기 위해 그는 더욱더 작가 찾기에 혈안이 된다. 아버지에 대해 일체 언급을 하지 않는 어머니, 어느날 밝혀진 자신의 거짓 姓. 그리고 소설의 작가가 어쩌면 자신의 아버지일지도 모른다는 직감과 속속들이 나타나는 확실한 증거물들.


페터는 작가로 추측되는, 컬럼비아대 정치학 교수로 재직중인 존 드 바우어를 만나기 위해 뉴욕으로 건너가 그와 친분을 쌓고, 그의 새 삶을 엿보게 된다. 이기적이고 기회주의적 성향이 거리낌 없이 드러나는 아버지를 보며 이제 페터는 더 이상의 의구심이나 호기심을 버리고 그가 사랑하는 여인 바바라가 있는 고향으로 되돌아온다. 페터의 귀향에는 다른이의 이간질도, 억측스러운 소문도, 사랑하는 여인의 배신도 없고 온기가 가득한 가정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내 기억 속의 방학은 깊고 잔잔하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는 시간이다. 그리고 고르게 흘러가는 삶, 반복되는 삶에 대한 약속이다. 아주 사소한 부분만 다르게 일어날 뿐 항상 똑같은 것이 반복되는 그런 삶, 전체적으로는 줄지어 고르게 굴러가지만 어떤 것도 방금 지나간 것과 똑같지 않은 파도 같은 삶 말이다. (p.38)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단편소설 <소녀와 도마뱀>에 이어 이 책에 또 한 번 <소녀와 도마뱀>이 등장한다. 벽에 걸린 소녀를 보며 잠들었던 '소녀와 도마뱀' 속 주인공과 비슷하게, 소년 페터는 이 그림을 안고 잠이 들곤 했다. <소녀와 도마뱀>을 읽으며 실재하는 그림인지 궁금했었는데, 이번에는 주석이 있었다. 화가 '슈튀켈베르크' 만으로는 찾기가 쉽지 않아 여러번 검색 끝에 찾아낸 그림의 원제는 <plakativ und volksnah>. 작가가 소설에서 말한 그림이 아마도 이 그림이 맞는 것 같지만 소설 <소녀와 도마뱀>을 읽으며 상상했던 그림과는 사뭇 분위기가 달라 괜히 찾아봤나 하는 생각이 가득 들었다. 

 

 

m*******e 2011.02.1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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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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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책을 한권 읽고 느낌이 좋으면 그 작가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그의 작품들을 찾아 읽고는 한다.이번 작품 또한 그런 의미에서, 전 작품 <더 리더>가 내게 좋은 느낌을 주어서 읽게 되었다. 물론 책 소개란이 더 마음에 들기도 했다. 내용의 소재가 내가 좋아하는 책이라든가 하는 그런 내용이 나오면 더 깊이 빠져 읽게 되는것 같다.스위스의 시골 할아버지 댁에서 방학시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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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책을 한권 읽고 느낌이 좋으면 그 작가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그의 작품들을 찾아 읽고는 한다.
이번 작품 또한 그런 의미에서, 전 작품 <더 리더>가 내게 좋은 느낌을 주어서 읽게 되었다.
물론 책 소개란이 더 마음에 들기도 했다.
내용의 소재가 내가 좋아하는 책이라든가 하는 그런 내용이 나오면 더 깊이 빠져 읽게 되는것 같다.

스위스의 시골 할아버지 댁에서 방학시절을 보내곤 했던 페터는
어느 날 할아버지가 읽기를 금지시켰던 독일병사 '카를'의 귀향을 다룬 이야기를 읽고 그 이야기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오디세이아의 변형'인 '카를의 귀향'의 결말을 알기 위해 작가의 자취를 찾기 시작한다.
마치 자신의 사명처럼.
아버지가 궁금하지만 그의 집에서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금기사항이었다.
그래서였는지도 모르겠다.
페터는 더 책에 매달리고 아버지의 자취도 찾아 나서게 된다.
결국엔 자신의 뿌리찾기, 자신의 자아찾기다.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에서도 그랬지만 이 이야기도 세계제2차대전의 전후 세대의 전쟁에 대한
생각들. 그리고 독일인의 모습들이 나온다. 
<귀향>에서의 페터와 <더 리더>에서의 미하엘의 모습들이 조금은 겹쳐져 보였다.  

작가는 내가 예상했던 결말을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럴거라 생각도 했지만
결말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페터의 자신을 찾는 과정을 푹 빠져서 읽었다.
맨 뒷장에 역자의 해설이 있는데 나는 절대 그것부터 읽지 않는다.
궁금해도 참고 앞장에서부터 서서히 빠져나가며 읽는다.
역자는 그런 얘길 했다.
처음에 역자의 해설부터 보는 독자가 있다고.
그럼 결말을 미리 알고 읽는거나 똑같지 않나.
나도 그러지 말기를 권해 본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h*****9 2010.05.13. 신고 공감 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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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찾는 문학적 오디세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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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출신의 작가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귀향>을 읽었다. 법을 전공한 작가답게, 이번 작품에서도 인간사에서 빠질 수 없는 법이라는 제도적 장치를 중요한 소재로 삼고 있다. 주인공 페터 데바우어의 아버지를 찾는 문학적 <오디세이아>가 악에 대한 인간의 본성과 어우러져 멋진 하모니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귀향의 전범이라는 <오디세이아> 이야기, 선과 악에 대한 심각한
"아버지를 찾는 문학적 오디세이아" 내용보기

독일 출신의 작가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귀향>을 읽었다. 법을 전공한 작가답게, 이번 작품에서도 인간사에서 빠질 수 없는 법이라는 제도적 장치를 중요한 소재로 삼고 있다. 주인공 페터 데바우어의 아버지를 찾는 문학적 <오디세이아>가 악에 대한 인간의 본성과 어우러져 멋진 하모니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귀향의 전범이라는 <오디세이아> 이야기, 선과 악에 대한 심각한 논쟁 그리고 아버지 부재의 극복이라는 진지한 주제들로 쉽지 않은 독서였다.

 

아버지가 전쟁 중에 죽었다고 믿는 페터 데바우어의 유년 시절의 이야기가 정겹다. 독일에서 홀어머니 밑에서 살지만, 방학이 되면 스위스에 사는 조부모님의 집에 가곤 하던 시절의 이야기. 특히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갖가지 전쟁에 대한 이야기는 자못 흥미진진하다. 역시, 아버지라는 존재의 부재가 드리우는 유년시절의 그림자랄까? 그런 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현업에서 은퇴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여가에 공을 들여 <기쁨과 재미를 주는 소설>이라는 총서를 편집한다. 그리고 화자이자 주인공인 페터 데바우어는 성장해서, 어려서 자신에게 금지되었던 총서의 이면의 글을 읽게 된다. 신화 속의 이야기가 그렇듯, 모든 금기는 깨지게 되어 있고 주인공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비밀에 도전하기 마련이지 않은가.

 

그가 접하게 된 금단의 소설은 카를이라는 독일군 포로가 러시아에서 귀향하지만, 집에 돌아온 그를 기다리는 아내는 낯선 남자와 아이를 데리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 소설의 결말에 집착하게 된 주인공은, 이 이야기가 사실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확신하고 그 연원을 쫓기 시작한다. 그는 ‘오디세우스의 모험’을 쫓으면서, 동시에 자신도 오디세우스의 그 위험천만한 여정을 따르게 된다. 독자는 자연스럽게, 카를이 그의 아버지가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하게 된다.

 

법을 전공으로 대학을 졸업한 페터는 출판사에서 일하게 된다. 그는 모든 것을 아는 어머니를 통해 아버지의 그림자를 쫓지만, 완고한 어머니는 항상 모호한 대답으로 얼버무린다. 그는 카를 이야기의 원형을 이루는 방랑, 모험, 위기의 극복, 좌절 그리고 귀향이라는 패턴이 <오디세이아>의 그것을 따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전후 독일에서 붐을 일으킬 정도로 유행했던 수많은 귀향 이야기 중에서, 카를의 이야기야말로 진수일 거라고 예감한다.

 

페터는 소설에 등장하는 실제 주소를 찾아갔다가 바바라라는 이름의 낯선 여인과 만나게 되고, 필연적(?)으로 그녀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페터는 바바라 남편의 ‘귀향’이라는 당혹스러운 상황과 맞닥뜨리게 된다.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여인으로부터 ‘버림’ 받았다고 생각한 페터는 회의주의에 빠져 자신을 분주함 속으로 내몬다. 그리고 다시 잠시 중단했던 카를을 찾기 위한 <오디세이아> 프로젝트의 수레바퀴를 돌리기 시작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바라의 친언니인 마가레트를 통해 카를의 모델이라고 믿어지는 폴커 폰란덴이라는 미지의 인물을 존재를 알게 된다. 모든 비밀의 열쇠를 쥔 자신의 어머니를 닦달해 보지만, 그녀는 완강하게 거부한다. 페터가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알고 싶은 욕망에 비례해서, 그의 어머니는 과거를 밝히고 싶지 않은 욕망을 드러낸다. 마치 접점을 찾을 수 없는 욕망의 평행선을 달리는 기관차 같다고나 할까.

 

통일 독일을 직접 체험하기 위해 베를린으로 날아간 페터는 우연한 기회에 대학에서 강의를 맡게 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바바라를 만난다. 여전히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 페터는 그녀에게 청혼한다. 그리고 이번에는 예전의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결혼을 서두르는 페터. 관청에서 결혼신청을 하다가 자신의 본명이 데바우어가 아니라 그라프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지지부진하던 페터의 아버지 찾기 <오디세이아>는 다시 한 번 급물살을 탄다. 게다가 우연히 입수하게 된 <법의 오디세이>라는 책의 저자 존 드 바우어라는 이름과 그의 저술을 통해 알게 된 모든 지표가 존 드 바우어가 자신의 아버지라고 가르킨다. 자, 과연 그는 자신의 아버지를 찾을 수 있을 것인가?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귀향>은 확실히 쉽지 않은 소설이다. 작가 슐링크는 페터가 그렇게 애타게 찾던 자신의 아버지를 만나 눈물의 부자상봉 혹은 자신을 버린 아버지에게 분노의 일격을 가하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천편일률적인 구성 대신 훨씬 더 복잡한 시놉시스를 구사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귀소본능의 지향점인 ‘귀향’이라는 간단한 주제를 가지고, 귀향의 고전 <오디세이아>와 악이 선을 위해 사용될 수도 있다는 지극히 파시즘적인 소재를 양념으로 곁들인다. 마지막 장에 나오는 존 드 바우어 교수의 세미나를 가장한 인간본능 테스트는 구세대에 대한 슐링크식 조롱이라고나 할까. 동시에 뛰어넘을 수 없는 기성세대 권위에 대한 좌절도 동시에 표출된다.

 

페터의 <오디세우스> 과정에서 작가는 곳곳에서 ‘카를’을 쫓는 실마리들을 차례로 배치한다. 조금 개연성이 떨어지긴 하지만, 그 정도야 애교로 봐주자. 그렇게 준비된 절묘한 조력들을 따라가다 보면 대서양 너머에서 새로운 정체성으로 가정을 꾸리고, 성공한 법학자의 삶을 사는 존 드 바우어라는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과 대면하게 된다. 어느 순간, 그가 정말 페터의 아버지냐 그렇지 않느냐는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전쟁 세대와 통일 세대라는 뚜렷한 구분에서 더 나아가, 과거에 빚을 졌다고 생각하지 않는 새로운 세대의 등장이야말로 작가가 말하고 싶은 21세기 독일의 현재가 아닐까.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귀향>을 읽고 났더니, 호메로스의 원전 <오디세이아>와 나탈리 제먼 데이비스의 <마르탱 게르의 귀향>을 읽어 보고 싶어졌다. ‘귀향’이라는 주제는 그야말로 고대와 현대를 아우르는 인류의 영원한 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h******1 2010.05.16. 신고 공감 0 댓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