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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이 불어오기 직전이던 10월 말, 온 몸을 얼어붙게 만드는 한파보다 우리의 마음을 서늘하게 만들었던 사건이 보도됐다. 욕조에서 숨진 채 발견된 8살짜리 여아. 온몸에 든 멍 투성이, 부검 결과 갈비뼈 24대 중 16대가 부러져있었다. 부러진 갈비뼈가 폐를 찔러 아이는 숨을 멎고 말았다. 놀랍게도 범인은 여아의 계모였고, 수년 동안 아이를 학대한 사실이 추가로 밝혀졌다. 객관적인 수치는 우리의 감정마저 객관적으로 만드는 경향이 있다. 뼈가 부러져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16대의 갈비뼈가 부러졌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고통을 동반하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아이는 계모의 상습적인 학대로 허벅지 뼈가 두 동강 난 적도 있고, 뜨거운 물을 손과 발에 부어 화상을 입고 수포까지 일어났다고 한다. 아무리 친모가 아니라 할지라도 사람의 탈을 쓰고 어떻게 이렇게까지 행동할 수 있는 것일까?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나치의 유대인 학살 주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과정을 다루고 있는 책이다. 세계 2차 대전이 종식되고 독일의 패망 후, 아르헨티나에 숨어 살던 아이히만을 이스라엘의 비밀경찰이 납치해 재판에 회부시킨다. 특파원 자격으로 재판과정을 취재하기 위해 이스라엘로 떠난 아렌트는 일반적이지만, 일반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한 가지 사실을 독자들에게 폭로한다. 600만 유대인의 학살에 가담한 이 인간을 두고 언론은 정신박약이나 광기의 모습을 지닌 인물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법정에 나타난 아이히만은 정상인과 다르지 않았다. 아이히만은 지극히 평범한 인물이었다. 그러면서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로 책을 결론짓는다. 누구에게나 ‘악’이 잠재하고 있으며, 평범한 사람에게도 광기가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제시하면서. 그러나 결코, ‘악’이 평범할 수는 없다. 악 자체는 인간 스스로를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자신뿐만 아니라 그와 관계 맺은 사람들까지도 말이다. 아이를 숨지게 만든 계모 역시 주변 사람들에게 ‘멋진 엄마’로 불렸다고 한다. 아이의 반듯한 모습(엄마를 ‘어머니’로 호칭하거나, 이웃들에게 ‘안녕하십니까’하고 인사하는 태도 등)을 보고 아이를 잘 대해주고 올바로 키우는 엄마로 소문이 나 있었다는 것. 차라리 정신이상이었다고 한다면 이 사건을 받아들이기가(물론 아이의 죽음을 어떤 식으로든 받아들일 수 없다)지금처럼 어렵지는 않았을 텐데, 반듯하게 아이를 잘 키우는 엄마로 알려져 있었다는 사실이 충격을 더해준다.
그런데 보건복지부의 아동학대 조사결과에 의하면 2012년 한해에만 6400건이 넘었다고 한다. 학대자의 대부분은 부모였고, 이들 중 95% 이상은 아동의 친부모였다. 겨울에 신고되는 아동학대의 신고건수가 여름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도 제시했는데, 겨울엔 옷차림이 두터워 학대로 인한 신체적 징후를 파악하기 힘들고 방학과 학년이 마무리 되는 시점이 겹쳐 아동 보호에 소홀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동학대 신고건수는 해마다 증가추세에 있다. 부모의 자녀교육이라는 명목하에 행해지는 아동학대를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정말 아이를 학대하는 부모가 점차 증가하는 것일까? 정확한 수치를 파악해 보기는 어렵겠지만, 아동학대는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해외에서도 발생하고 있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어둠의 아이>의 저자 데이브 펠처는 친모로부터 수년 간 학대를 받은 자신의 경험을 성인이 된 후 담담하게 책으로 엮어냈다. 책에는 엄마로부터 당한 수많은 학대가 드러나는데, 그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울산에서 계모에게 학대를 받았던 아이가 이런 동일한 고통을 경험하지 않았을까 추측하게 된다. 책에서는 왜 친모가 데이브를 학대하게 되었는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자신의 친자식을 배가 고파 죽을 지경까지 굶기고, 흉기로 상처를 내고, 심지어 오물을 먹이기까지 하는 등의 만행을 저지를 만큼 잘못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데이브에게 엄마로부터 학대를 당하던 시절은 그야말로 끔찍한 시간이었다. 형제들도 점점 자신을 노예취급하기 시작했고, 아빠마저도 마녀같은 엄마에게 굴복해 자신이 당하는 학대를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데이브는 엄마를 증오했지만 그런 아빠를 향한 증오심이 더 커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가슴을 저리게 만드는 대목은 그 누구보다 자신을 향한 증오심이 커지는 고백을 통해서였는데, 이렇듯 한 아이를 향한 학대는 한 인생, 한 존재자체를 파멸로 이끌어 가게 된다. 결국 엄마와 아빠가 이혼하게 되면서 더욱 철저하게 홀로 남겨져 노예와 같은 생활을 이어가던 데이브는 아이들의 도시락을 훔쳐 먹고 행색이 초라하며 여기저기 구타를 당한 듯한 흔적이 있는 모습을 발견한 선생님들에 의해 구원을 받기에 이른다. 부모의 따듯한 관심과 사랑안에서 자라나야 할 아이들이 폭력과 죽음의 위협앞에 서 있다면 이런 상황을 무어라 설명해야 할까. 지금도 어디에선가 힘없는 아이들은 부모의 학대에 자신의 존재자체를 증오하며 삶을 저주하고 있을지 모른다. 결코 상상할 수 없는 그들의 고통을 이제는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가족에게 버림받은 아이들이 사회에서 적응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며, 한 아이의 탈선은 그만큼 사회의 어두운 그늘을 드리운다. 무엇보다 이 세상에 태어난 한 사람 한 사람은 사랑받을 자격을 부여받았으며, 사랑 받을 때 참 인간다운 모습이 나타나게 된다. 어두운 아이들은 사랑으로 밝은 웃음을 되찾아 주어야 한다. 그늘이 드리워진 아이들에게는 문제가 있기 마련이다. 가족의 사랑을 넘어 어두운 터널에서 고통당하는 아이들에게도 사랑의 손길이 뻗어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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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는 이런 제목의 책이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었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단 한순간도 충격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고, 모든 내용이 사실이라는 것조차 믿기 힘들었으며, 더군다나 친어머니에 의한 학대라는 것이 정말로 끔직 했다.
나는 데이브가 정말로 야만적이고 잔인한 학대를 당했다는 사실을 책을 반도 읽기 전에 깨달아야 했으며, 그의 어머니가 그를 칼로 찌르고, 유독가스가 가득한 화장실에 가두고, 찬물이 가득한 욕조에 머리를 쳐박게 했을 때 나는 정말로 분하고 억울했으며, 그를 가스버너에 태우려고 하고, 칼에 찔린 상처를 어린 데이브 혼자서 이를 악물고 소독했을 때는 정말로 같이 아팠고, 어떻게든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음식을 훔칠 계획을 세웠을 때는 진심으로 그가 성공하기를 바라면서 책을 읽었다. 특히 그의 어머니가 데이브에게 토해낸 역겨운 냉동 핫도그를 다시 먹으라 지시하고 아버지는 그저 바라보며 계속하라는 듯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는 부분에서 나는 그의 어머니에게 침을 뱉았다. 그녀는 악랄했고,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학대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은 무기력하고, 생각 없는 폐잔병이었다! 책의 마지막페이지를 덮을 때쯤에 나는 그의 어머니를 수백 번도 더 죽였을 정도로 분했다. 그녀가 죽기 전에 자신의 모든 행위를 반성했기를 바라며, 그보다 더한 처벌을 받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한편으로 데이브가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정말로 다행으로 생각한다. 그가 우리나라에서 태어났다면 짐작컨데 그는 죽거나 미치거나 아니면 아직도 학대당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아동에 대한 폭력을 외국에 비해 묵인하는 경우가 많다. 참견하기 싫어하고, 자신의 오해일까 외면한다. 부모가 아동을 바로잡기 위해 하는 것이 체벌, 선생님이 학생을 훈육하기 위해 하는 것이 체벌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설사 그 정도가 지나치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결코 쉽게 관여하려 하지 않으려고 한다. 우리나라가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아동을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의 인격체로 보려는 노력을 계속 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 아동의 권리는 지금과 같은 수준 이상 발전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은 결코 잊지 못할 것이며, 호된 매질과 괴로운 생활의 연속에서 단 한순간도 미치지 않았고, 12살 이후 공군 입대 등 많은 일을 해낸 데이브를
진심으로 존경한다. [인상깊은구절] 이제 선생님과 아이들이 내가 나쁜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어 기쁘다... |
| 어린 아이는 모든 것을 부모에게 의지한다. 그렇기에 부모는 아이에게 절대적인 영향과 권한을 갖는 존재로서 누구보다도 자상한 존재이지만, 반대로 한없이 잔인하고 공포스러운 존재가 될 수도 있다(마치 인간에게 신이 그러한 것처럼). 인간이 이토록 잔인할 수 있는 것인가. 누구에게나 잠재되어 있다는 폭력적인 성향을 인정하더라도,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불안정한 정신 상태를 염두에 두더라도, 이 책에 묘사된 어머니의 학대는 심했다 싶다. 암모니아를 먹어 거품을 물고 쓰러진 아들, 칼에 찔려 피흘리며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설겆이를 할수밖에 없는 아들, 뜨거운 스토브에 화상을 입고 공포스러워하는 아들.. 이런 아들을 보며 그 어머니는 동정이나 안타까움이 아니라, 한 생명체에의 정복에서 나오는 일종의 쾌락을 느낀듯하다. 신체적 학대 뿐만 아니라 고의적으로 아들의 정신을 황폐화 시켰다. 여러 해 동안 "내가 미워! 내가 미워!"라고 큰 소리로 외치게 했는가 하면, 항상 그가 잘못했기 때문에 벌을 받고 있으며 주위 일들이 잘못되어가고 있는 것이라고 세뇌시켰던 것이다. 또한 학교는 보냈지만 매일 같은 옷을 입게 하여 흉물스러운 차림에 냄새를 풍기고 다니게 만들었으며, 선생님의 칭찬이 담긴 편지를 찢어버리곤 빈정거리며 "너한테는 이름이 없어! 넌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라며 얼굴을 쿡쿡 찔렀다. 똥묻은 기저귀로 얼굴을 문지르고, 음식을 제대로 주지 않으면서 굶주림에 허덕이는 아들이 밖에서 뭘 먹고 들어오는지 보기 위해 억지로 토하게 하고 그 토사물을 먹게 하는 데에 이르면 할 말을 잃을 정도이다. 하지만 저자에게는 어머니가 변하기 전까지의 어린 시절 '화목한 가정'의 기억이 있었다. 만약 태어날 때부터 그런 식으로 학대받고 학교마저 갈 수 없었다면 그는 정상적인 정신 상태로 성장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어머니의 학대 속에서 구출된 뒤 사회에 적응하기가 그렇게 쉬웠던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그는 훌륭하게 적응해서 지금은 책까지 내지 않았는가(저자는 12세에 구출되었으며 18세까지 양부모의 손에 길러졌다한다). 자신을 현재 이 모양 이 꼴로 만든 것은 부모님 탓인 거라며 부모님을 원망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것은 좀 다른 경우다. 부모가 '적극적'행위로써 자식의 신체와 정신을 심하게 황폐화시키는 것. 정신병이라고, 그녀는 정상이 아니라고 말하고 끝내버릴 수도 있지만 어디 사소한 정신병하나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 인간 속에 내재된 잔혹함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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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어른들이 학교에 와서 12살 소년을 어린이 보호소로 데려간다. 그리고 말한다.
"이제부터 너는 자유다."
책을 펼치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이야기이다. 다행이면서도 앞으로 이어질 사건사고가 예상이 되는 문구.
이 책은 자유의 반대, 억압과 핍박의 이야기이며 생존자가 들려주는 자전적 소설이다.
데이브 펠처가 6살 때 어떤 이유에서인지 다정다감하던 엄마가 달라진다. 외할머니로부터 아동학대를 당한 충격으로 그녀 자신도 비정상적인 알콜 중독에 빠져 아들(데이브)를 폭행하고 고문하며 굶주리게 한다. 솔직히 그녀를 '미쳤다'는 말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엄마는 아들들 중에서도 유독 데이브를 괴롭혔다. 신데렐라의 한 장면이라도 보는 듯한 착각이 들정도로 시간 안에 설거지와 청소를 시켰다. 아이가 등교하기 전에 말이다. 데이브는 다른 형제들처럼 차를 타고 등교할 수 없었고 매일 뛰어가야 했다. 제대로 먹어봐야 하루에 한 끼, 그 마저도 형제들이 먹다남은 시리얼 찌꺼기였고 벌을 받을 때에는 열흘 동안 물 한 잔도 제대로 마시지 못하고 버텨야했다.
데이브는 늘 굶주렸다. 학교에서 아이들의 도시락을 훔치고, 급식실의 냉동식품을 훔쳐 먹으며 버텼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엄마는 데이브를 집안이든 밖에서든 거짓말쟁이와 도둑으로 몰았다. 엄마는 데이브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강제로 토하게 했고 히틀러가 노예들에게 하듯(예를 들자면 몇 시간이고 꼼짝않고 앉아있게 하는 벌) 대했으며 욕실에 암모니아와 세제를 섞은 양동이와 함께 데이브를 가둬 놓았다. 이것은 가스실에 갇히는 것과 같은 고문이었고, 개처럼 똥을 먹으라거나 가스버너 위로 올라가라는 등 끔찍한 학대는 6년 동안 계속 되었다.
데이브가 학대를 받는다는 걸 왜 이웃들은 모를까?
왜 학교 선생님들은 신고를 하지 않을까?
왜 데이브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을까?
뉴스에 비일비재하게 보도되는 자살, 왕따, 학교폭력, 다문화가정, 문제아 문제를 놓고도 우리는 비슷한 생각들을 하곤 한다. 그러나 그러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대부분 스스로 주변에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 갇힌다. 어린 코끼리에게 족쇄를 채우고 키우면 성인이 된 후에 족쇄를 풀어줘도 달아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어린 아이가 만날 수 있는 세계는 고작 가정과 학교 정도로 한정이 된다. 그러나 그 고작이 전부인 아이들의 세계에서, 가족 구성원이 주는 영향은 그 아이의 인생을 전반적으로 설계한다. 누군가 "데이브, 왜 멍이 들었어?" 하고 묻는다면 데이브는 엄마에게 세뇌교육을 받은 대로 말할 것이다.
"넘어졌어요"
"부딪혔어요"
"친구랑 싸웠어요"
"제가 도둑질을 해서 엄마가 벌을 줬어요."
불행한 가정의 아이들은 불행의 씨앗을 자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부모를 기쁘게 하기 위해, 인정받기 위해 열심히 하고 머리를 굴려보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이를 인정하지 않고 지나치기 마련이다. 아이는 늘 패배감을 맛보며 죽지못해 살다가 결국 죽거나 본인 또한 남을 해코지 하거나 자식을 폭행하는 어른이 되는 것이다.
데이브는 하루에도 몇 번씩 죽음을 마주하지만 끝까지 삶을 놓지 않는다. 지하실에 갇혀 살면서도 햇살과 자유를 상상하고,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낀다. 엄마와 싸워 이기기 위해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버티고 다시 일어난다. 그리고는 마침내 데이브를 눈여겨 봐 온 선생님의 신고로 진정한 자유를 얻는다.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았던 자유를…….
훗날 데이브 펠처는 말한다.
이 책은 단순히 생존에 관한 얘기가 아니라, 인간 승리의 얘기이자 찬사의 얘기입니다. 아무리 어둡고 답답한 곤경에 빠졌다 할지라도 인간의 마음이 그곳에 굴복해서는 안 됩니다. 육체적으로 살아남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의미 있는 것이 바로 인간 정신의 승리이기 때문입니다.
데이브는 참혹했던 6년 간의 유년기를 이겨냈다. 생각하기에 따라 모순된 비유일 수 있겠지만 지난 6년은 성인, 데이브를 완성시켰다. 자기 자신을 극복했기에 다정한 남편, 다감한 아빠…….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책 <어둠의 아이>를 읽으면
최악의 상황을 어떻게 겪느냐에 따라 이후의 상황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경험할 수 있다.
내가 불평했던 모든 것이, 사실은 얼마나 호화로운 것이었는지 반성하게 된다.
폭력과 편견의식, 부정부패 등 의식과 행위의 모든 면에 걸쳐
세상에는 내 선에서 끊지 않으면 되물림 될 수 있는 것들이 참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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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선생님들과 친구들이 내가 나쁜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돼서 기뻤다.
나는 단지 내 친구들처럼 귀여움과 사랑을 듬뿍 받고 싶었을 뿐이다."
이 문구에 끌려 나는 이 책을 집어들었다.
이 책은 캘리포니아 주 역사상 세번째로 가혹했던 아동학대를 당했던
피해자였던 아동이 자신이 겪었던 일을 직접 서술하고 있다.
아동학대에 대한 영화나 이야기는 간혹 들었으나
그래도 그건 영화이고 나와는 먼 이야기라 여겼기에 볼때만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하고 금방 잊곤 했었는데
이 책은 정말이지 끔찍했다.
한때 이 책의 저자도 행복했던 어린시절의 기억이 있었다.
러시안 강에서 온 가족이 행복했던 한 때를 보냈던 따뜻한 기억...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엄마가 변한다.
나는 그녀가 어째서 유독 데이브만을 괴롭혔는지 모르겠다.
그녀는 그 후에 아기를 2명 정도 더 낳은거 같은데, 그 아기들은 정성껏 돌본것 같다.
하지만 데이브만은 자신의 아이라 생각치 않았나 보다
나는 그녀가 유독가스를 만들어 데이브의 목을 타게 하거나 죽기직전까지 꺼내주지 않던 일
배를 칼로 찌르고도 설겆이를 시켰던 일
그리고 가장 끔찍했던.. 불을 켜둔 오븐 안에 들어가라고 말했던 때는 정말 믿을 수가 없었다.
그녀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결과적으로 데이브는 살아남았다.
그를 주의깊게 지켜본 학교 선생님 때문이기도 하지만
데이브 스스로도 살아남고자 모든 노력을 했다.
삶을 포기하지 않은 데이브가 정말 대단해 보였다.
이 책을 보고 다시 한번 아동학대의 무서움을 깨달았다.
자신이 낳은 아이라고 해서 마음대로 아이를 할 권리를 갖지 않았는데..
아이는 어리고 아는게 없어서 스스로를 방어하기가 힘이든다.
게다가 주위에 도움을 청하기도 어렵다.
자신을 괴롭히는 이가 가장 가까운 가족인데 누구를 믿는단 말인가.
게다가 이 책에서는 비단 엄마만이 그를 괴롭힌게 아니다.
다른 형제들도 살아남기 위해서 그에게 도움주기를 거절하고 심지어는 엄마의 행동을 따라하기까지 한다
잘못된 지식의 습득이다. 이것이 정말 무서운 것이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주위의 아이들에게도 더 많은 관심을 주어 제2,제3의 데이브가 생겨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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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인줄 알고 읽을 만큼......심한 어머니의 학대속에서..소년은...상처를 받고...그 상처속에서 사는 법을 배워나가면서...나는 그아이의 마음의 상처보다 어머니의 심한 학대에 대해서 어쩜 저럴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한것 같다..나중에 그가 그곳에서 빠져 나와 다른사람과의 관계에서 살짝 삐뚤어진 것들을 바로 잡아가는 것이 뿌듯했다.. 아동 학대를 받는 사람들이 저정도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어머니를 두려워 하지만 그래도 사랑받고 싶어 하는 아이들...참 마음이 아픈이야기였다...보는 사람이 아픈데...그는 얼마나... 그 어머니는 .......그런데 어떠한 상처를 받았길레...그렇게 삐뚤어진 생각과 행동을 할까? 상처 받는 아이가 있습니다...알아주세요!! 그러는 거 같은 책이 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