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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 베네딕트를 세계적인 문화인류학자의 반열에 올려놓은 <국화와 칼>은 일본이라는 국가 그리고 구성원들인 개개인의 일본인들에 대한 심도깊은 성찰을 통해서 베일속에 감추어져 있는 일본을 수면위로 끌어올린 베스트셀러이다. 세계적으로 3천만부이상이 번역되어 읽혀진 그야말로 일본연구에 대한 바이블같은 존재이다. 물론 중간중간에 다소 오리엔탈리즘적인 편향적인 시각이 엿보이는 것 역시 사실이지만 일본연구의 총화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내용면에서 진일보한 저서임에 틀림없다. 그동안 국내에도 여러 출판사를 통해서 출간되었지만 사실상 독자들에게는 다소 딱딱하게 다가왔던 것 역시 사실일 것이다. 제대로 된 일본을 알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이 책을 손에 들었다가 끝까지 완독했다고 자부하는 독자나 저자가 표명하는 요지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독자들이 생각보다는 많지 않은것은 책의 질적인 내용보다는 전형적인 출판 방식에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러한 취지에서 이번에 출간된 <그림으로 읽는 국화와 칼>은 그동안 독자들에게 불만족스러웠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새로운 계기로 다가오는 것 같다. 우선 저자의 생각을 간략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도해를 첨부했다는 점에서 일본인들의 정서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는 점과 일본역사를 추론하여 내용과 부합하는 각종 그림이나 사진자료를 함께 게시함으로서 저자가 논지하는 바를 보다 효율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 눈에 돋보인다.
사실 우리에게 일본이라는 나라는 불편한 존재이자 韓민족에게 치유될 수 없는 트라우마를 짊어준 존재로 남아있다. 비단 세월의 흐름속에 이러한 과거를 묻고자 하지만 불현듯 느닷없는 그네들의 상식을 뛰어넘어버리는 망언들을 접할때 마다 우리는 일본의 정체성에 대해서 또다른 시각으로 곱씹어 보게 된다. 도대체 그들의 머리속은 어떠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길래 이런 일들이 별다른 여과없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일까?
<국화와 칼>은 사실상 세계2차대전 당시 진주만 기습을 당하고 나서 미국이 참전하면서 착수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출발되었다. 특히 미국인들에게 일본이라는 나라는 정말 이해하기 힘든 구조였고(일본을 강제 개화시킨 당사자 역시 미국이었다는 점에서 그 아이러니를 엿 볼 수 있다.물론 일본은 이것을 자신들 명예에 대한 수치로 파악했고 부던히 칼을 갈았던 것이다) 그런 일본을 정확히 파악하는 길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지름길중의 하나라는 생각으로 착수했던 용역 프로그램의 하나였다. 정부로 부터 요청을 받은 저자는 비단 적국인 일본을 직접 방문하여 샘플링을 하지는 못하였지만 미국내에 살고 있는 일본인과 그동안의 일본관련 서적을 바탕으로 불멸을 명작을 남기게 되었고 결국 일본의 패망으로 이어진 미군정시기에 정책의 근간을 이루는 지침서로서의 역활을 하게 된 것이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이 발발하기전까지도 봉건주의 시스템을 끌고온 보기드문 정치구조를 가지고 있는 집단이었다. 중국의 경우 봉건주의는 진나라가 전국시대를 통일하면서 막을 내렸지만 일본은 그때까지도 막부를 중심으로 지방 영주인 다이묘들을 위시한 철저한 봉건사회였다. 이러한 봉건사회의 특징이 고스란히 일본민족 개개인의 속성에 뿌리깊게 남아있는 명예 즉 세켄이라는 독특한 정서를 만들어 냈던 것이다. 일본인의 명예는 서양인이 갖고 있는 그 개념과 상당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47인의 사무라이>라는 인기있는 일본의 고전에서 그 단편을 보여주듯이 명예에 흠집을 받을 경우 피를 부를는 복수내지는 극단적인 자기희생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일본인의 특성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명예는 국가에 대한 충과 의무 그리고 의리라는 복합적인 요인들이 만나면서 일본 특유의 정서가 되어버린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철저하게 형식적이고 내면적인 행동양식이면에 극히 개인적이고 향략적인 행동들은 오히려 명예에 대한 부담을 경감시키기 위한 탈출구로서의 역활을 담당했던 것이다.
어느 국가나 민족에게는 양면성이 있기 마련이다. 그 극단적인 면이 바로 전쟁과 평화이다. 하지만 일본인들 처럼 그 양면성이 극적으로 표출되는 민족 또한 보기 드문 것이 사실이다. 군국주의의 절정기에 일본은 국가자체가 천황을 위시하여 하나의 병영국가였고 모든 자원 심지어 식민통치한 국가들의 자원까지 동원하여 전쟁에 목을 걸었고 모든 시스템은 날이 새파랗게 선 칼날 같았다. 하지만 패망과 동시에 언제 그랬냐듯이 점령군의 주둔을 쌍수들어 환영한 민족이 바로 일본인들이다. 이러한 극적인 변화를 받아들이기가 만만치 않지만 바로 이러한 특징이 일본인들의 정서를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루스 베네딕트는 일본전체적인 역사를 개관하면서 일본인들의 사상과 그 기원 그리고 그들의 이해하기 힘든 정서에 대해서 많은 부분을 할애하여 연구하였다. 그중 명예와 의리 그리고 의무가 지금의 일본을 만든 원동력으로 판단하였다. 이러한 점을 먼저 이해하고서야 일본의 행태를 제대로 판단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물론 지금의 시대에는 이러한 현상들이 많이 퇴색되고 변화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수천년동안 뼈속 깊이 뿌리잡고 있는 일련의 정서들이 쉽게 변화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일 것이다. 이런면에서 저자가 책 말미에 예견했던 몇가지 사안들에 대해서는 많은 생각을 가지게 한다. 저자는 일본인 특유의 집단적 기회주의 성향에 대해서 전후 세계를 정확하게 예측했다. 군국주의 노선을 과감하게 포기한 일본은 전후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룩했다. 물론 이러한 경제발전의 원동력에도 그들 특유의 명예와 의리 그리고 의무가 개입되었음은 명백한 사실이다. 또한 저자가 지적했듯이 미국의 지원이 있으면 그야말로 호랑이등에 날개를 달아 줄 것이라고 했듯이 일본은 미국의 보호아래 세계2위의 경제강국으로 발돋움했다. 그리고 저자는 끝까지 일본에 대한 기회주의 성향에 대해서 쉽게 단념하고 있지 않다. 언제든지 예전의 신념이었던 군구주의의 가치가 재확인되면 일본인들은 바로 전향할 수 있는 모든 사회적 정서적 역량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 지금의 일련의 사건들을 보게 되면 정말 날카로운 지적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저자의 주장이 일본의 전부를 말해주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또한 시대의 거대한 패러다임을 거부하고 독자적인 노선을 걷기엔 지금의 시대는 많은 제약과 희생이 따른다. 하지만 역사를 상고해 보면 알 수 있듯이 역사라는 수레바퀴는 돌고 도는 것이다. 그러면에서 어쩌면 화사하게 피어있는 아름다운 국화꽃 속에는 아직도 시퍼런 일본도가 그 날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언제든지 국화가 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민족이 일본이라면 너무나 가혹한 억측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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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여러가지의 한국사, 대한제국과 일본과 중국의 역사왜곡등에 관한 책들을 보면서 일본이란 어떤 나라인지 어떤 국민성을 가진 민족인지 더욱 궁금해졌다. 국화와 칼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을 연구한 일본의 분석 보고서이다. 실제 일본을 가 볼수는 없는 전시상황에서 미국내에 전쟁으로 인해 격리 수용된 일본인들에게 많은 자료를 얻었으며, 이 책은 여러번 출간되어 일본내에서도 엄청난 판매부수를 올렸으며 한국에서도 여러번 번역출간 되었지만, 이번에 다시 나온 책에서는 그림과 사진으로 이해하기 싶게 엮어 졌다.
일본인은 친절하다 하지만, 그 뒤에 숨어진 얼굴은 너무나 무섭다. 의무, 의리를 중요시 하고 자기가 섬기는 주군에게는 목숨걸어 충성하지만, 배신도 철저하게 하는 이중인격이며, 양성평등과는 아주 거리가 먼 여성관과 그저 소유물로 아는 육신의 장난감 정도로 아는 여성관이 일제 시대 정신대를 만들었고, 2차대전이 패하고 미군이 일본에 주둔할때 점령군을 위해 특수위안시설협회를 만드는 미 인륜적인 나라인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아이들은 어릴때 부모의 사랑을 많이 받고 살아야 하며, 늘 위로하고 칭찬하며 키운다. 일본의 아이들은 자립심을 키우고 수치심을 가르치며 잘못하면 놀림 받는것을 두려워 하게 만든 결과가 현재 일본에서 왕따가 많고 애정결핍의 성격파탄자가 많으며, 인간을 실험도구로 삼는 731부대의 생체실험 마루타라는 것이 생겨난 것이라 보인다.
종전 후 맥아드는 일본에 주둔해 이중성격의 일본인들이 지금의 일본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준것 같은데, 한국의 반똥가리는 반대했으면서 실수를 하신 것 같다. 왜? 왜? 이승만의 화술에 넘어 갔을까? 쪼그만 섬 몇개로 이루어진 나라가 세계정복을 꿈꾸다 망하고도 전쟁의 주범도 자국민들에게 신처럼 받들어 지면서 저렇게 잘 사는데 우리 나라는 황족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땅은 반똥가리 나고 수집년 동안 정신 상태도 많이 흐트러져 다시 민족성을 찾기 힘들어 진것 같아 너무 억울하다.
우리나라를 제대로 연구한 자료는 어떤 것인지 알고 싶다. 제대로 된 자료들로 엮어진 책을 만들어 우리의 후손들에게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우리의 민족성으로 빼앗긴 자존심을 찾아야 한다. 우리 민족은 더 많이 더 많은 곳에서 분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적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이 책을 본 것이다. 적을 알고 전쟁에 나가야지. 그리고 이겨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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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읽는 국화와 칼 루스 베네딕트 지음 김진근 옮김 봄풀 刊
기존의 <국화와 칼>이 무수히 출간돼 있지만 지루한 텍스트 위주라 독해가 쉽질 않았다. 그러나 이해가 빠른 건 빠른 것이고 여전히 난해하고 지루한 수사의 연속은 연속이다. 그 냉혹하게 구별되어진 계층간의 격리와 사회의 규율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면서도 늘 셋푸쿠든 가스관을 입에 물고 죽든, 자살도 미학적으로 처리하는 일본인의 양면성을 극명 자살을 미학으로, 순국으로 챙기는 가미가제 특공대가 알카에다에게 롤모델이 아니라고 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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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구매. 일본학 입문서를 꼽으라고 하면 국화와 칼을 꼽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책이 나온 시기가 시기이고(1940년대 중~후반) 지금은 여러 달라진 것들도 있긴 한데 그래도 근본적인 건 안바뀌기도 하고 아직 2차 세계대전이 종전한 지 100년도 안 되었고 당시 전쟁에서 싸웠던 사람들이 버젓히 살아있다보니 그게 쉽게 바뀌겠나...? 하는 것도 있는지라 지금 읽어도 꽤 괜찮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읽으면 읽을수록 일제가 남한과 북한에 남긴 흔적이 너무 크구나...싶은 생각을 지울 수가 없네요... 지금 북한이나 저때 일제나 솔직히 다른게 뭐지? 싶은 생각도 들어서 기분이 찝찝한 걸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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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우리의 적이고 우리를 짓밟으려 했던 일본. 또 한때는 경재적인 성장의 시작은 비슷했으나 어느새 일본은 작지만 무시할 수 없는 강대국으로 자리잡았다. 무한한 경쟁력과 조용한 듯하면서 그 존재감을 무시할 수 없는 일본이라 생각한다. 일본하면 떠오르는 일본의 이미지는 무얼까? 친절함,상냥함,예의바름,짧은 교복치마,사무라이,무사정신,칼,잔인하면서도 자극적인 만화..등.. 이렇게 극단적인 것들이 연상되는데 그런 부분이 조금 의문도 생긴다. 누군가의 앞에서는 절대적으로 친절한 모습만 보여주는 그들에게도 잔인하면서 무서운 사건이 일어난다는 소식을 접할때는 뭔가 맞지 않는 모습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만그런것은 아닐 것이다. 조금더 그들의 문화와 정서를 알고싶어진다. 『일본과 일본인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해낸 최고의 일본 해독서!』 문화 일류학자이자 시인인 루스 배네딕트가 일본인의 일반적인 성향과 그들의 문화를 연구한 책이다. 예전에 발간된 <국화와칼>은 글로만 이루어진 책이라서 책을 소화해내는데 조금의 어려움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적이있다. 이 책은 내용에 다양한 그림까지 있어 책의 내욜을 이해하고 일본을 이해하는데 조금더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인은 좁은 섬나라,척박한 땅,치열한 경쟁구조 속에서 무거운 의무의 짐을 짊어진 채 손에 쥔 칼을 휘두르며 자신만의 생존공간을 지켜나간다.그러다 여유 시간이 생기면 `국화 재배에 심취하는'낭만적 환상에 빠져들기도 한다.이런 행동의 본질을 파고 들어가면 잔혹한 현실에서 벗어나 자신의 나약한 영혼을 위로하려는 일본인의 애환을 엿볼 수 있다"--16p
국화와 칼을 일본인들의 심리상태이자 생활방식이라과 말을 하는 부분에서 더욱 이 책의 의미심장한 제목이 시작부터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책의 시작부분에 등장하는 4편의 그림이 이 책을 이해하는데 더욱 이해를 돕는 것 같다. 서문을 통해 기본적으로 일본인의 현실을 파악하고 총 13장의 분류로 일본에 대해 알아간다.
많은 전쟁을 치루었던 일본이 왜 그렇게 싸우려했는지 이 책속의 일본인은 내가 생각했던 그들보다 더 굉장했다. 그들이 신앙과같이 충성하는 계층제도라는 것을 비롯하여 그들이 고수하는 정신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밖에서 보여지는 그들은 그렇지 않았지만 그들의 삶은 세계가 그들을 주목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그래서 이겨야하고 굴복해서는 안된다고 한다. 그렇게 자존심을 지키고 전쟁에 폐했을 때 오히려 적진으로 가서 할복을 하는 쪽을 선택했다고 한다. 계층제도와 정신이 모든것을 이겨야한다는 그들의 사상의 또다른면은 포로가 되었을 때, 우호적으로 포로의 역할을 충실히 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의리,그들의 종교,그들의 충,그들의 보은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보는 내내 흥미로웠다. 서민의 일반적인 모습이라는 저자의 말이 맞다. 자주등장하는 삽화와 사진은 내용의 이해를 더욱 돕는다. 우리의 경쟁국가이고 우리에게 아픔을 줬던 곳이다.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일본을 정확히 알고 싶었다.그들이 왜그렇게 성장했고 강해졌는지를 알아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만의 독특한 사상과 생활방식이 하루아침에 태어난것은 아닌듯 보인다. 이 책을 통해 그들의 문화와 사상을 많이 배웠다.적으로 배척할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도 배울 점은 배워야한다는 생각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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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고 처음 든 생각은 우리나라, 정확히 말하면 이 책처럼 현재가 아닌 조선시대 우리나라에 대해 문화인류학적으로 누군가 세계에 조선을 알려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이 책이 쓰여질 당시의 일본은 유럽도 두려워할 정도의 군사력이 뒷받침 되었던 상황이었지만 아무튼 되돌릴 수 없는 역사가 정말 아쉽게 느껴쪘다. 또한 서양인의 눈으로 일본을 '국화와 칼'이라고 정의한 것에도 그 한계가 없을 수는 없지만 그마저도 동양의 관점이 아닌 서양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학문적으로의 큰 수혜를 일본이 받았다는 생각이 든다.
책에서 보여지듯 일본은 메이지시대로 인해 상상할 수없는 큰 도약을 한 것은 누구나 인정할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칼을 숭상하고 칼로 지배하는 막부시대를 유지하려 했던 끊임없는 반항을 알지 못하고서는 진정한 메이지 시대를 평가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을 읽는 한국 독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그들이 빠르게 변화를 받아들인 그 순간의 우리나라 역사를 안타까워하며 거울로 비쳐보듯 이 책과 함께 머릿속에 그려지는 그것들을... 일본인에 대해 쓴 내용 가운데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일본인의 명예에 대한 의리]와 [일본인의 예의], [일본인의 의무]를 생각하며 절묘한 정의로 그들을 표현했다 싶다. 이것들은 사실 서양식 교육을 받은 지금의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그 뜻이 이중적이기에 얼핏 일본인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명예에 대한 의리를 내세우면서 무자비한 폭력을 앞세운다든지, 예의를 존중하기 위해 용서를 모르는 복수를 한다든지, 의무를 다하기 위해 집단은 있으되 개인이 없는 것은 모든 것이 풍족한 이 시대에 맞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한 국가의 민족성은 역사의 시간과 함께 하는 것 같다. 일본의 역사가 전쟁의 궤와 함께 하기에 책에서 언급한 많은 전쟁의 예가 일본을 가장 잘 표현해준 것 같다. 분명한 것은 이중적인 잣대를 그들 스스로 만들어 놓고 그것을 삶 속에서 대대로 이어가고 있는 무서움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저자가 문화와 인류학의 관점에서 일본인을 바라보았다고는 하지만 이 책은 일본인조차 깨닫지 못할 객관적 자신들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다분히 담겨있음에 오늘날까지 전세계적으로 번역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 일본과 조선의 입장이 바뀌어서 일본의 고유어와 고유글이, 역사가, 황실이, 수십년간 교묘하고 체계적으로 말살당하는 상황에서도 일본인의 그 이중성과 잔인성이, - 조선과 달리 그들이 그러한 역사를 역사로 교육받고서도 섬나라이기에 핏속에 끓는 군국주의에 기반한 민족성이 남을 수 있었을까? 강한 의문이 들게 한 책이다. 어떤 책에서 읽었다. 전세게에서 유일하게 일본을 무시하는 사람은 한국사람밖에 없다고-나또한 극단적으로 일본을 폄하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칼을 숨기려 국화를 손에든 그들의 이중성이 책을 통해서는 전세계에 일본의 단결성과 우수성(?)을 알려준 매개가 되는 것 같아 이 고전 한권의 가치가 매우 크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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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력 확장의 자신감으로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침략하던 제국주의 시대, 유럽과 미국의 서양인들은 동양인을 침략과 수탈의 대상, 왜소하고 미개한(!) 인종으로 파악했으리라. 그런데 그렇게 무시하던 동양의 섬나라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하여 미국의 태평양 함대에 제대로 한 방 먹인다. 충격을 받은 미국 정부는 선전포고와 더불어 루스 베네딕트 교수에게 일본 분석을 의뢰하게 되고 그녀는 일본 이해의 기념비적 저작인 [국화와 칼]을 내놓는다. 전쟁은 새로운 군사기술이나 새로운 정치체제만을 낳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상대편에 대한 세밀한 분석도 가능하게 하는 모양이다. 루스 베네딕트 여사는 우선 일본사회, 일본국민이 가진 이중성을 고찰한다. 일본문화란 세련됨과 고요함, 온순함과 예의의 상징인 국화와 거칠고 야만스러우며 잔혹함과 무사도의 상징인 칼이 공존하는 문화라는 것이다. 대립하는 특성을 가진 국화와 칼이 공존하며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조화가 있어야만 하는데, 이 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자신의 ‘분수’를 아는 것이다. 똑같이 생긴 벽돌을 쌓아 집을 짓는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울퉁불퉁 멋대로 생긴 벽돌로는 결코 집을 짓지 못한다. 큰 벽돌은 주춧돌이 되어 기단을 받쳐야 하고, 작은 벽돌 하나하나는 모여 벽을 이룬다. 이처럼 일본 사회에서는 개성의 발현이 억제되며, 자신이 들어가 있어야 할 자리에서 역할과 책임을 다하는 자세가 중시된다. 튀는 사람은 왕따와 이지메의 대상일 뿐이다. 조화를 달성하기 위하여 규격화 못지않게 강조되는 것이 ‘질서’의 유지이다. 여기서 질서는 상호평등한 관계를 의미하지 않는다. 이 때 질서란 상명하복, 상의하달 식의 위계적이고 서열적인 관계를 의미한다. 따라서 국내적으로는 최고의 지도자라 할 수 있는 천황에 대한 충(忠)이 그 어떤 덕목이나 미덕보다 우선시되며, 국제적으로는 힘있는 국가의 리더십에 다른 국가들이 따르는 것이 당연하다. 역사적인 사실로 말하자면, ‘대일본제국’은 아버지, 또는 맏형의 역할이고, 다른 아시아 민족들은 대일본제국의 뜻을 잘 받들어 ‘구미 제국’의 침략으로부터 아시아를 지키고 보호할 ‘대동아공영권’에서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베네딕트 여사가 일본문화를 분석하는 키워드로 삼은 것, 그러니까 온(恩)을 갚기 위한 의무, 기리(義理)에 대한 집착 등은 결국 국가와 사회의 발전을 위해 개인이 감수해야 할 희생이자 의무를 표현한 셈이다. 천황으로 대표되는 상층의 은혜는 죽을 때까지 갚아야 하는(그나마 다 갚지도 못하는) 의무가 되는 셈이고, 주군, 동료, 나 자신을 향한 의리는 사회유지를 위한 희생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확대재생산된다. 일본인의 마음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자기수양과 후세 세대에 대한 교육은 조화를 위한 규격화와 위계적 질서를 강화하는 기제로 작용했다. 무아(無我)의 경지에 이른다는 것은 의무와 본분을 달성하기 위해 나의 존재를 잊는 것을 의미하며, 또한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반대로 자신만의 개성을 주장하는 것이 얼마나 파렴치한 것인지를 교육에서 가르쳤던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세계를 놀라게 했던 ‘가미가제 특공대’는 이러한 일본인의 특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덴노 헤이카 반자이’를 외치며 천황의 은혜에 죽음으로 보답하고자 하는 미학, 일본에 수모를 안겨주는 연합군(미군)에 대한 국가를 대신한 의리의 실현, 자신을 잊고 오로지 국가의 목적을 향해 돌진하는 무념무상, 무아의 경지... 그렇다면 [국화와 칼]이 현재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나는 [국화와 칼]을 읽으면서 과연 일본인들의 마음속에 언제부터, 그리고 어떤 결정적인 계기가 있어서 전체주의적 시각이 자리잡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물론 그런 게 다 일본의 전통적인 사고방식이라고 편리하게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인간의 인식이란 것은, 특히 사회 전체가 마치 전염병처럼 앓게 되는 ‘사회적 인성’이란 것은 어떤 계기와 정치세력에 의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지거나 이용되는 측면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순신에 대한 한민족의 존경과 자긍심은 예로부터 있었던 것이겠으나, 그것을 성역화하고 민족적 숭배의 대상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은 또다른 문제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생각해 보았을 때, 일본인들에게 조화와 위계의 관념을 확실하게 내면화시킨 것은 역시 메이지 유신이 아니었나 싶다. 주군에 대한 절대적 충성과 복종, 주군이 베푼 은혜에 대한 갚을 수 없는 의무(‘나는 저 분의 은혜로 이 자리에 있다’라는 관념), 주군에 대한 의리, 불명예를 갚기 위해서라면 죽음까지도 불사하는 죽음의 미학. 사실 이 모든 것은 ‘사무라이’의 도덕이었고, 사무라이의 미학이었다. 따라서 하급 사무라이들이 주축이 되어 에도 막부를 붕괴시키고 천황 중심의 정치적 혁명을 일으킨 메이지 유신이 이후 일본 정치와 일본국민의 정신형성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역할한 것은 사무라이의 미학체계를 전일본인들에게 각인시키고 그것을 내면화시켜 군국주의 일본으로 나아가게 한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다는 점이다. 이제 주군에 대한 절대적 충성은 개인, 즉, 천황에 대한 절대적 충성으로 대치되며, 천황이 곧 국가를 상징한다고 할 때 절대적 국가주의로 넘어오게 된다. 자기 분수를 지켜야 한다는 전통적 관념은 이제 국내정치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 모든 국가들이 따라야 하는 원칙으로 확장된다. 물론 그 속에서 일본은 최상위층에 있어야 함은 당연하다. 분수에 맞지 않게 튀는 사람은 은혜도 모르는 파렴치범으로, 사회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반체제적 인물로 낙인찍히고 공동체로부터 추방당한다. 이지메로 대표되는 일본의 배타적 문화는 바로 이 시기에 본격화 될 뿐만 아니라, 밖으로 발산하지 못하는 개성을 안으로만 파고들어 가는 소위 ‘오타쿠’ 문화 역시 메이지 유신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나는 최근 일본이 겪고 있는 어려움, 단적인 예를 들자면 일본항공(JAL)의 파산과 도요타 자동차의 위기, 몰락해 가는 1억 중산층의 신화는 결국 메이지 유신으로 구축해 온 일본의 발전모형이 파산에 이른 것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상명하복식 조직문화의 경직성과 비창의성, 엘리트주의와 정경유착에서 비롯된 부패, 창의성이 요구되는 시대에 표준화되고 규격화된 ‘모나지 않은’ 인간형이 가져온 한계와 규격을 벗어난 인간에 대한 이지메... 이런 것들이 성장의 한계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자... 그럼 일본의 이런 모습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분수를 지켜야 한다는 도덕은 우리 역시 어릴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오는 말이다. 인정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게는 근대화와 서구화를 추진했던 유신지사들의 모습은 1960년대 ‘조국근대화’를 부르짖던 우리 군사정부와 오버랩된다. 나 역시 국민학교를 다니면서 일주일에 몇 차례씩 ‘국기에 대한 맹세’를 다짐해야 했고, 월요일 아침마다 운동장에 전교생이 모여 이른바 훈화 말씀을 들어야 했다. 도덕과 사회 시간은 어떤 주제든 결국 조국과 민족에 대한 충성, 부모와 교사에 대한 절대적 순종을 가르치는 것으로 귀결되었으며, 우리가 나라에 충성하는 길은 학생으로서 지금 자리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라는 ‘자기 자리 지키기’를 반복하여 주입당했다. 사상과 생각은 통제되었고, 일치단결 이외에 다른 것은 이단시되었던, 국가와 민족은 절대 비판할 수 없는 성역의 위치였으며, 국가와 민족을 대표하는 지도자는 추앙받아 마땅한 절대적 믿음의 대상이었다. 이 모습, [국화와 칼]이 그리고 있는 메이지 유신시기와, 또는 세계대전 시기 일본과 너무도 흡사하지 않은가. 이 모든 것이 시간적 편차만 있고 공간의 다름만 있을 뿐이지 똑같은 우리의 자화상이 아니었을까. 이제 시간은 많이 흘렀고 많은 것이 변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사회는 일제의 잔재를 완전히 청산하지 못했으며, 국가와 민족의 절대적 가치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터부시된다. 최근에는 그나마 힘들게 쌓아왔던 절차적, 형식적 민주주의마저 침해받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법치와 질서, 사회적 안정이라는 이름 아래 말이다. 일본과 우리나라 사이에는 많은 차이점이 존재한다. 그렇지만 세상의 그 어떤 나라보다 우리와 많은 유사점을 공유하고 있는 나라가 일본이란 사실 또한 부인하기 어렵다. 현재 우리의 심성을 지배하고 있는 가치와 관념들이 근거하고 있는 물적 토대는 일본식 근대화 모델을 따라 추진했던 ‘조국근대화’에서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도 일본 못지않게 개인보다 전체를, 개성보다 분수를 지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전통을 이어 왔으며, 체면을 중시하고 ‘죄보다 수치를 더 심각하게 생각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국화와 칼]은 대단히 유용하면서 흥미로운 책이다. 일본에 대해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을 숙명적으로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에게 [국화와 칼]이 시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특히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일본식의 근대화 모델을 따라 지금 여기까지 걸어온 우리 사회에서 일본문화가 드리운 그림자를 고찰해 보는 데에 대단히 유용한 책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그것이 2010년 현재 우리가 [국화와 칼]을 새롭게 읽어내야 할 이유이다. 대다수 서양인은 낡은 규칙과 관습에 반기를 들고 행복을 얻으려면 장애를 극복하는 것이 강자의 면모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일본인은 의무를 이행하고자 개인의 행복을 포기하는 사람이야말로 강자라고 말한다. 그들은 강인한 성격이란 반항이 아니라 조화를 이룰 줄 아는 것이라고 믿는다.(p.3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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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와 칼' 의 책제목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책을 접하지 못했는데 그림과 같이 새로 출간되어 접하게 되니 흥미롭게 읽어 나갈 수 있었다.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인의 사고와 행동방식을 이해하기 위해 미국 정부의 의뢰를 받아 일본 문화 분석 연구 보고 자료를 위해 문화인류학자인 저자가 출간하게 되었다고 한다. 비록 한 권짜리 책이지만 국가의 운명을 좌우한 영향력과 학술적 성과를 거둔 책이라고 한다. 일본 사람이 아닌 미국 사람으로 일본에 대해 연구하고 이해하는데 많은 노력과 방대한 자료, 주변인 들의 산경험등 꽤 오랜 시간의 작업이 필요 했으리라 생각된다. 우리나라하고도 가깝고도 먼 나라로 일컬어지는 일본에 대해 겉모습으로 드러나는 부분만 알고 있었 는데 책을 읽어나가면서 새로운 부분을 많이 알게 되었다. 책제목에서도 나타나듯이 국화꽃의 순박하고 부드러운 면과 칼의 단호하고 날카로운 이중적인 면을 시사하는 바를 책을 읽어 나가면서 확실히 알게 되었다. 예의와 충정을 목숨과 같이 생각하고 '천황폐하 만세'라고 외치는 모습을 TV나 영화에서도 많이 봐 왔지만 사실적으로는 천황은 이름뿐이고 실제로 일본인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통치자는 주군이 었다고 한다. 또한, 명예를 중시하여 실패를 최대 굴욕으로 생각하여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식을 선택하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우리나라보다 더 심하게 남자의 권위주의와 가부장적인 사고가 더 강해서 여자는 결혼전 에는 아버지에게 복종해야 하고 결혼 후에는 남편을 섬기며 아들에게 조차도 복종해왔다고 한다. 일본인은 의리를 중요시 여겨 적군에게 포로로 잡히게 되면 자결을 하도록 훈련을 받아서 할복을 하는 사무라이들이 많았고 반대로 자결을 못한 사람은 다시 나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인정하고 적군에게 바로 승복하며 협조하는 이중적인 면이 있다고 한다. 일본인은 육체의 쾌락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라고 여기며 일정한 선을 넘지 않은 쾌락을 추구하며, 그 중에서도 하나가 더운 물로 목욕하는 온욕이 있어서 하루의 피로를 푸는 편안함을 즐겼다고 한다. 일본인은 '자중'을 중요시하여 생활 속에서 항상 신중하게 일처리를 하여 사소한 실수로 인생에 오점 을 남기지 않도록 자녀에게도 늘 '자중해야 한다'고 말하며 예절을 어렸을 때부터 철저히 가르친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일본에 대해 다방면의 모습들을 300여개의 사진과 도표로 잘 표현하고 있으며 일본인의 겉과 속의 모습들을 많은 자료들과 실제 경험들로 깊이 있게 잘 서술해 놓았다. 우리들의 마음 속에는 아직도 반일 감정이 남아 있지만 일본이 현실적으로 우리나라 보다 앞서 나가고 있는 나라인 만큼 배울점은 확실히 배워서 일본보다 더 강한 나라로 거듭 나길 바래 본다. 일본에 대해 깊이 있게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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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로 상징되는, 국가대표간 한·일전에 대한 우리의, 그리고 일본인들의 관심은 새삼스런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뜨겁지요. (저에게 이를 분석할만한 사회학적 능력은 없습니다만, 어렴풋이나마 추측해보자면)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일제의 식민지배로 표현되는 과거의 역사가 한·일전의 승리를 갈망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라1 이해된다면, 대체 일본인들이 한·일전에 보이는 극도의 흥분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정설인지는 모르겠으나, 일제 하 어느 우체부가 석굴암을 발견했고, 그 웅장함에 감탄한 일제가 석굴암을 분해해 일본 본토로 옮기려는 작업을 하다가, 생각해 보니 한반도도 자기네 땅인에 굳이 이건 본토로 옮겨야할 이유가 없지 않겠냐라는 이유로 다시 조립을 했다하더군요. 그래서 석굴암 본존불상을 둘러싸고 있는 수호신(?)들의 시선이 제각각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한·일전에 보이는 일본인들의 관심과 승부욕이란 게 혹시, --- 그렇게 오래되지 않은 과거에, 자신들의 식민 지배하에 있던 국가와의 대결에서 (지배자였던) 일본이 (피지배자였던) 한국에 질 수는 없다라는, 일종의 계층의식의 발로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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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은 이유로 탄생된 것이 바로 이 책이죠.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의 질(quality)을 떠나, 제 아무리 판세가 기울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전쟁중이었던 당시의 상황에서 자국의 승리를 가정하여 승전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까지 미리 대비하였던 미국의 치밀함에 '무섭다'라는 단어가 떠오르기만 합니다. 이러한 치밀함이 아마도, 현재의 미국이 지니고 있는 '파워'의 근간이겠지요. 암튼! 이 책을 펼쳐들었던 이유는 예의, (이 글을 쓰고 있는 2019년 8월 3일만큼은 아니었지만) 한국과 일본간에 과거사를 둘러싼 갈등이 전개되고 있었던 시점에, 도대체 일본이라는 나라는 어떠한 성격의 국가일까라는3 개인적 호기심을 해결해 줄 수 있지 않을까란 기대 때문이었고, 지지부진했던 저의 독서와는 달리 그 기간 동안 급격히 악화된 한일간의 관계는,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이에 대한 감상문을 쓰는 것에 적지않은 부담감을 주기도 하네요. · · · 이게 진짜, 승전 후 일본의 지배를 위한 준비의 일환으로 집필된 책일까란 의문이 들 정도로 이 책은 일본과 일본 문화, 일본인에 대한 다양한 영역에 대해 '발기발기 찢어 해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사 방법에의 한계로4 인해서인지, 혹은 집필의 목적 때문인지, 이 책은 일본인과 미국인의 사고 방식, 그리고 그와 상호작용되는 관계인 생활 방식에의5 차이를 설명하는 데에 많은 설명을 할애하고 있기도 하지요.6 그러한 연유로, --- 저 개인적으로는 이 책의 적지 않은 부분은 읽어내기에 좀 많이 지루하기도 했었더랬습니다.
작금 벌어지고 있는 한국과 일본간의 대립을 언젠간 해결하려 한다면, 언젠간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라 생각한다면, (당연히 일본인들의 노력도 필요하겠으나, 그건 그네들의 문제이므로 차치하고) 우리가 이 '전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자 한다면 당연히! 그들의 사고방식에 대한 이해가 선결되어야 하겠죠.7 --- 이 책을 통해 저자가 보여주고 있는 일본, 그리고 일본인들에게 작동하고 있는 '상상의 질서'라는 게 한두 가지로 국한되는 것은 아닙니다만, 제가 꼽아 본 가장 중요한 것은 '명예에 대한 의리'입니다.
현재와 같은 사회 분위기에서, '일본을 이해하자'라는 주장은 자칫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쌍욕을 자초하는 것일 수도 있겠으나, --- 승전을 가정하고 패전국에 대한 사전적 이해를 구하고자 쓰여진 이 책에서 보여지고 있는,
위와 같은 인식의 기반은, 감정에만 치우치지 않는 대응을 위해서라도 지금의 우리에게 또한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 책의 저자, 루스 베네딕트가 말하고 있듯, 지금의 한일 관계에 있어 우리가 준비해야 하는 것은 그들이 주장하는 논리를 깨부수는 것이지, 무조건적인 배척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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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일본의 대응이, 자국 내 총선에서의 승리를 위한 일종의 전략이라 분석했던 기사가 많았었습니다. 허나 정치 세력이 반한 감정을 전략의 하나로 사용하겠다라 계획하는 것에는, 그러한 전략이 먹혀들 것이라는 판단이 전제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며, 이는 곧 --- 그러한 전략이 먹혀들만한 사회적 기반이 존재한다라는 것을 의미하는 바,
선거가 끝나면 일본의 대응도 변할 것이다라 생각했던 우리의 대응은 너무도 저급한 수준이었었지요. 일본 제품의 불매 운동이 단기적으로 우리 국민들의 감정을 표출하는 일 대응방식으로는 평가받을 수 있겠으나, 다시는 이와 같은 논란이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선 --- '화이트 리스트'에서 우리를 제외시킨 일본의 '복수'를 비난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주장이 일본에게 '모욕이 아님'을 인지시킬 수 있는 반박불가의 논리를 개발하는 것이 우선시 되어야 할 것이며, 그 어떠한 논리도 먹혀들지 않는다면, '그들이 복수를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능력'이 지금의 우리에게 없음을 반성하며, 그러한 능력을 만들어 내자라는 내적 합의를 만들어 내는 것이, 소위 말하는 '정치'가 해야할 일이, 그리고 그를 이행하는 것은 결국 우리 모두의 의무가 아닐까 싶습니다. ※ '일본'에 대한 궁금함 :「사무라이의 나라」·「국가와 희생」·「이 세상의 한구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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