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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책 200권 읽기전에 이책부터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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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철학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저자의 솔직한 고백과도 같다.   P48 아주 사소한 이익과 명예에 잔머리를 열심히 굴리는 사람들이, 세상의 무게를 다 짊어진 듯 철학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볼때면, 필자는 커다란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머리가 멍해지면서 다시 회의에 빠진다.  철학을 한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가? 그가 말하는 철학하는 사람, 특히 자신과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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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철학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저자의 솔직한 고백과도 같다.

 

P48 아주 사소한 이익과 명예에 잔머리를 열심히 굴리는 사람들이, 세상의 무게를 다 짊어진 듯 철학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볼때면, 필자는 커다란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머리가 멍해지면서 다시 회의에 빠진다.  철학을 한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가?

그가 말하는 철학하는 사람, 특히 자신과 같은 철학교수에 대해 " 청빈을 내세울 정도로 청빈하지 않고, 세속을 따를 정도로 현실적이지도 못하다. 어떤 점에서는 이중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말로는 세상의 고뇌를 다 짊어진듯하지만 실제로는, 특히 한국에서는, 교수라는 안전한 지위에 걸터 앉아 콩이야 팥이야 가르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임시직을 얻어 이리 저리 떠밀리며 사는 와중에, 정년을 보장받은 채 책만 읽는 학자들이 세상의 고뇌를 과연 얼마나 알까?"

 

저자는 한 친구가 철학교수라는 직업이 '한량' 직업이 아니냐는 물음에 너무 뜨끔했다고 한다. 그 뼈아프게 날카로운 지적. 저자가 말했듯이 철학이 현실에 대한 대안이나 방향 제시 없이 과거 텍스트를 해석하는 수준에 머물어 공허한 언어적 수사에 빠져있다고 고백한다.

 

나는 철학적 사유, 철학적 행동, 철학이 있는 사람 등 철학은 어떤 심오한 진리나 신념으로 인식 했었다. 철학이 꼭 필요한가!? 뜻도, 이유도 모르면서 나는 왜 '그렇다'고 생각해 왔을까?
문사철 600권을 읽어야 인생을 논할 수 있다는 이 명제는 도대체 어디서 왔나?
문학,역사,철학 책들을 비방할 생각은 전혀없지만, SF 소설이나, 과학책을 통해서 오히려 세상을 똑 바로 볼 수 있는게 아닐까? 실체도 없고, 수사적 표현들로 난무한 철학책들을 200권씩이나 읽는다고 한들 인생에 대한 명쾌한 논리를 펼 수 있을까?
기껏해야 동양, 서양 철학사를 훑을 수는 있겠지. 하지만 현대인들이 아이폰에 열광하기도 하고, 패거리 문화를 형성하는가 하는등 카오스적으로 얽힌 삶에 대한 철학적 분석은 별로 없는 듯 하다.

 

현대의 개인주의를 부정적으로 보아 문명 위기로 말하는 것에 대해 저자는 자신을 실현하고 계발하는 모든 개인들, 시민 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생태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자원 봉사를 몸소 실천하는 자유로운 개인들도 가만히 보면 역사적 개인화 과정의 관계로 보았다.

 

지식을 권력화하는 것에 대해 인정하고, 느림을 넘어 빠름의 미덕 또한 존재한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도 말하고 있다.

 

자연주의적 형이상학을 부르짖는 사람들 그들에 대해
P133 그저 단순히 자연과 무위, 그리고 생명이라는 근사한 이념을 말하는 일로써 자신에게 명예와 더불어 실리까지 얻으려는 지식인들의 뻔뻔함. 실제로는 뼛속까지 정치적이면서도 겉으로 무위자연을 말하는 학자들의 위선. 실제로는 끈질긴 욕망의 소유자이면서 노자의 이름으로 '소유로부터의 해탈과 절대적인 무욕'을 말하는 공허함 혹은 위선. 이러한 공허맘이나 위선보다는 현실 문명의 분열적 아픔과 슬픔을 그대로 직시하고 서술하는 게 솔직하고 용감한 태도가 아닐까?

 

한때 김용옥의 강의에 열광했던 나! 그가 동양철학을 대중화 시키는데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그 자신을 볼때면 곡학아세로 지식을 늘어놓고 싶은 욕망에 지독하게 시달리는 사람으로 폄하하고 싶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시절 근 10여년을 매스컴에서 활약하고 온갖 이득을 취했지만, 정작 말해야 할 때는 비겁하게 몸을 숨기고, 침묵하는 김용옥.. 그런 그가 노자의 '무위자연'을 말하면서 유위로 철저하게 세속적으로 살면서 입으로만 외치는 선정적 도덕주의자!

 

P282 그러나 내가 그 후 점점 깨달은 건 철학이나 인문학은 비유나 수사학의 차원에서 머물기 쉽다는 점이다. 그게 하찮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말과 행동은 다른 것이다. 행동이 필요할 때 말로 그것을 대신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걸 혼동할 때, 말은 더러워진다.

 

보수와 진보에 대한 저자의 고찰중
p290 사람들은 당시 자유를 너무 쉽게 생각했다. 초등학생들마저 모든 게 노무현 탓이라고 노래를 부르던 시절이었으니, 그처럼 값싼 자유는 없는 듯했다.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을 사람들은 뒤늦게 겨우 깨달았다. 자유는 거저 온 것도 아니었고, 값싸게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여러 갈등이 있었지만, 지난 정부는 최소한 값비싼 자유를 값싸게 보장했던 정부였다.
현 정부와 더불어 그렇게 값싸 보였던 자유는 다시 너무 귀한 것이 되어버렸다.
결국 우리 사회는 자유를 안정적이고도 지속적으로 향유할 힘을 아직 갖추지 못했다고 할 수밖에!

 

끝으로 저자는 '엉삐우심' 주체들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을 보낸다.
'엉삐우심'은 [엉뚱하면서도 삐딱하고 우스운가 하면 그래도 심오한]을 줄인 말이다.
더러움에 빠지다가 그것을 무릅쓰는 더러운 주체, 혹은 '엉삐우심' 주체들은 인간주의적 혹은 계몽주의적 사상의 끝자락에서 노는 주체들이다.
휴머니즘 혹은 계몽주의적 사상의 죽음을 앞당기거나 재촉하거나 혹은 준비하는 주체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다름아닌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는 자들이다.
'엉삐우심'한 자들, 더러운 주체들은 다름 아닌 휴머니즘의 후예들이기 때문이다.

f*********5 2010.05.01. 신고 공감 4 댓글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