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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살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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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기치 않은 형의 교통사고로 인해서 흔들리게 되는 가정의 구성원들,고통의 그늘에 드리워 혼란스럽고 복잡한 것이라면 잠시 가슴을 쓸어 내릴 수 있겠지만 그렇지못한 상황에 맞부딪치게 되었기에 분노하고 좌절할 수 밖에 업게 된다. 불행으로부터 멀찌기 떨어져 당당히 살아갈 수는 없지만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와 확신이 있었기에 평범하고 안정적인 삶의 일상을 보내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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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기치 않은 형의 교통사고로 인해서 흔들리게 되는 가정의 구성원들,고통의 그늘에 드리워 혼란스럽고 복잡한 것이라면 잠시 가슴을 쓸어 내릴 수 있겠지만 그렇지못한 상황에 맞부딪치게 되었기에 분노하고 좌절할 수 밖에 업게 된다. 불행으로부터 멀찌기 떨어져 당당히 살아갈 수는 없지만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와 확신이 있었기에 평범하고 안정적인 삶의 일상을 보내고 있던 헨리의 가족에게 날벼락과도 같은 사고의 여파는 크기만 하다.

 

충격적인 사고로 해서 프랭클린 형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들이 줄어 들게되는 안타까운 지경에 이르는 것도 모자라 다시금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없는 존재가 되었기에 그 사고의 주체자로 지목된 캄보디아 이민자 차이 초우안에 대한 적대감은 커져갈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러한 와중에 처벌 수준에 대한 부당함과 함께 새로운 이민자들에 대한 불평과 불만의 소리를 키워만 가는 혼란이 되풀이 되는 가운데 마땅히 있어야 할 형이 없는 졸업식이 거행되고 헨리는 형과 함께 오르기로 했던 카타딘으로 출발하게 된다.

 

그런데 우연히 얻어 타게 된 차에서 다시 부딪치게 된 차이와 헨리. 그들은 마치 운명과도 같은 일들을 겪으며 그동안 감정적인 것으로 해서 응어리져 있을 수 밖에 없는 복잡한 상황의 것을 헤아려 보게 되고, 그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되면서 근본적인 이해와 배려를 나누게 된다. 그렇게 함께 하는 과정을 통해 이전에는 감히 용서할 수 없을 것이라고 여겼던 일들에 대한 조심스런 정리와 함께 앞으로의 삶에 대한 대처와 극복에 대한 깨우침을 가져볼 수 있는 기회를 갖고 각자의 불행을 덜어내고자 하는 성장의 지혜를 얻게 된다.

 

다양한 삶의 형태 그리고 그에 대한 준비와 대처가 제대로 되지 못한다면 우리는 여전히 불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삶의 것이 막연한 준비와 계획에 따라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지라도 진정 어떠한 삶의 방향으로 무슨 노력을 해가야 할 것인지는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좀 더 포괄적인 삶의 사고와 실천을 해가게 된다면 더불어 성장해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m*******7 2010.09.28.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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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러블]- 불행과 더불어사는 법
"[트러블]- 불행과 더불어사는 법" 내용보기
"불행으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집을 지으면, 불행이 결코 찾아오지 못하지." (본문 13p)불행으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집을 지으면 불행이 결코 찾아오지 못할 것이라고 믿는 스미스 집안은 삼백 년 동안 불행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바닷가 말을 블리스베리에서 살았다. 자기 방의 여닫이창에서 깃털 같은 파도를 내다볼 수 있고, 발코니로 나가면 수평선까지 펼쳐져 있는 반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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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으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집을 지으면, 불행이 결코 찾아오지 못하지." (본문 13p)

불행으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집을 지으면 불행이 결코 찾아오지 못할 것이라고 믿는 스미스 집안은 삼백 년 동안 불행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바닷가 말을 블리스베리에서 살았다. 자기 방의 여닫이창에서 깃털 같은 파도를 내다볼 수 있고, 발코니로 나가면 수평선까지 펼쳐져 있는 반짝이는 바다를 구경할 수 있는 집에서 헨리는 바다가 잔잔한 만큼 불행도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헨리의 열네번 째 생일 날 형 프랭클린은 헨리를 ’칼날 산등성이’라 불리는 카타딘 등반에 데려가기로 약속했지만 형은 달리던 중 차에 치어 팔 한쪽을 잃은 채 병원에 누워있게 되었다.
’불확정한 뇌 기능’ 진단을 받은 프랭클린의 사고로 헨리의 가족에게 불행이 찾아왔고, 헨리는 바다에서 필사적이고 숨이 넘어갈 듯한 강아지이 형의 모습과 오버랩되면서 강아지 검둥이와 함께 지내게 된다.

프랭클린을 차로 친 사람은 전쟁을 피해 온 캄보디아 이민자인 차우 초우안이었고, 의식이 돌아오지 않던 프랭클린이 의식을 찾고 예언자처럼 다급하게 헨리를 향해 한 처음이자 마지막 말은 ’카타딘’이었다.
"넌 해내지 못할 거야. 산 중간쯤 가다 포기하겠지" (본문 14p) 헨리의 나약함을 지적했던 형의 말을 곱씹으면서, 헨리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할지를 깨닫게 된다.

’카타딘을 올라가야겠어. 내가 절대로 해내지 못할 거라고 형이 생각한 일을 하는 거야. 그리고 돌아와서 형에게 말하는 거야. 그럼 형도 불가능한 일을 해낼 거야. 형은 나을 거야.’ (본문 115p)

재판을 통해서 헨리는 초우안네 가족을 처음 만나게 되었고, 차이는 자신의 과실을 인정하였다. 차이는 집행 유예 2년에 스물한 살이 될 때까지 운전면허가 최소되고, 사회봉사 200시간을 받게 되며, 스물한 살이 되면 면허를 돌려받고, 이 사건은 차이 초우안의 경찰 기록에서 삭제가 된다. 형은 평생 한 팔이 없이 살아야 하는데 차이는 몇 년 뒤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몇 년 뒤에 차를 다시 몰게 된다는 사실은 헨리를 분노하게 되었고, 이 재판 결과는 바닷가 마을 블리스베리를 발칵 뒤집어 놓는다.
부상자를 도우려했고 경찰관을 찾아 교통사고 사실을 알린 차이의 행동과 상관없이 차를 운전한 사람이 캄보디아 인이었다는 사실이 그들을 분노케 했으며, 바닷가 마을 블리스베리의 누군가는 초우안 가족이 운영하는 머턴 석재 공업사에 불을 질렀다.

프랭클린 형이 결국 죽음에 이르고, 헨리는 검둥이와 친구 샌번과 함께 가족들 몰래 카타딘에 오르기로 한다. 히치하이크를 하던 중 차이가 몰던 픽업트럭과 만나게 되고, 헨리는 자신이 원수처럼 여기던 차이와 여정을 같이 하게 된다.
그들의 아이러니한 여정 속에서 헨리는 차이에 대해서 알아가게 되고, 형의 사고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된다.
헨리는 형의 죽음 이후 카타딘을 등반하려는 자신의 목적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했지만, 여정을 통해서 그 이유를 찾아간다.

"제 형을 위해서 오르려고 해요."
"우리는 함께 산을 오를 계획이었어요. 그런데 형이 죽었어요. 그래서 저는 형을 기억하는 마음으로 산에 오르려고 해요."
"일종의 추모구나. 그렇지?"
"네."
"그런 이유로 카타딘을 오르는 건 바보 같은 짓이야."

"제가 왜 카타딘에 오르려고 하는지 알 것 같아요."
"그래?"
"불행과 더불어 사는 법을 알아내기 위해서예요."
(본문 323,325p)

전체적인 이야기의 축은 가족에 들이닥친 불행으로 인해 힘겨워하는 한 소년 헨리가 불행과 더불어사는 법을 깨닫고 배워가는 모험을 통한 성장 소설이다. 그러나 그 과정 속에서 저자는 많은 것을 담아내고 있다.
캄보디아의 전쟁 속에서 누나와 형을 잃고 전쟁을 피해 조국을 떠나 타지에 와서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게 되는 이민자들의 삶과 이민자들에 대한 편견과 인종차별을 저자는 차우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아들의 죽음은 사고였습니다. 끔찍한 사고였지요. 비극적인 일이지만, 결국은 사고였습니다. 누가 뭐라고 하든, 누가 무엇을 하든, 프랭클린을 되돌아오게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가족은 이런 사실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바닷가 마을 블리스베리의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하기를 부탁드립니다." (본문 179p)

신문에 실린 헨리 어머니의 글에도 이민자에 대한 블리스베리의 사람들의 분노를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고, 초우안씨네 가족은 그들의 분노를 고스란히 받아들여야 하는 불행을 맞이하게 되었다. 불행이 낳은 또 다른 불행.
헨리는 여행을 통해서 불행으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져 지은 자신의 집이 가지고 있는 가문의 비밀을 알게 되었고, 결코 불행과 떨어져있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 말은 틀렸다, 하고 헨리는 생각했다.
우리는 불행이 있는 곳에서 살아야 한다. (본문 357p)

세상은 불행이다. 그리고.........은총이다. 정말로 그렇다. (본문 398p)

이야기 중간중간 배치되고 있는 소년(차이)의 일기가 가미되면서, 이야기는 또다른 이야기와 대면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초반부 이야기는 살짝 지루한 느낌을 주면서 느리게 진행되는 듯하지만, 헨리와 차이 그리고 샌번의 여정을 통해서 이야기는 점점 흥미로움으로 몰입을 유도한다. 헨리의 불행과 차이의 불행이 하나가 되면서 이야기는 절정에 이르게 되고, 헨리가 처음 불행을 안고 시작된 가문의 비밀을 알게 되면서 카타딘에 오르는 과정 속에 헨리가 성장하는 모습이 진하게 베어나온다.
두 소년이 불행과 더불어 살아가는 과정이 알싸한 감동으로 전해지며, 그릇된 편견과 인종 차별에 대한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불행과 사회적 편견에 정면으로 부딪친 두 소년의 힘겨웠던 여정이 정말 값진 모험이었다는 것을 마음 속에 담겨진 감동과 여운을 통해서 곱씹을 수 있었다.


s*****2 2010.11.2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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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러블] 불행과 함께 사는 법을 배워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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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으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집을 지으면 불행이 결코 찾아오지 못할 것이다. (p.7)   한때는 불행이란 극복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불행을 극복하지 못하면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어떤 불행은 내 의지로 극복할 수 없음을 알게 되면서 불행을 극복하는 일은 내 몫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불행이 일어날 기미가 보이는 곳엔 가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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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으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집을 지으면

불행이 결코 찾아오지 못할 것이다. (p.7)

 

한때는 불행이란 극복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불행을 극복하지 못하면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어떤 불행은 내 의지로 극복할 수 없음을 알게 되면서 불행을 극복하는 일은 내 몫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불행이 일어날 기미가 보이는 곳엔 가지 않는 것이었다.

 

그 산을 오르고 나면 배짱이 생길 거야.

그럼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있어. (p48)

 

나의 짐작은 번번이 빗나가 불행이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불행이 생겼다. [트러블]은 불행으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집을 지어 불행이 찾아오지 못할 거라는 아버지의 말처럼 늘 불행이 비켜갔던 헨리 가족에게 불행이 닥치면서 시작한다. 헨리의 열네 번째 생일 날 형은 교통사고를 당한다. 결국 형은 세상을 떠나는데 형을 죽인 범인 차이는 면허정지의 간단한 형벌만 받는다. 헨리 가족의 삶은 산산조각이 난다. 헨리는 형과 함께 가기로 했던 카타딘 산에 혼자 가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또 한 소년도 집을 떠난다. 불행을 많이 겪어도 불행에는 익숙해지지 않는다. 소년은 가족과 함께 보트를 타고 고향을 떠나왔다. 그리고 사랑해선 안 될 한 소녀를 사랑했다. 소년은 픽업트럭을 몰고 집을 떠난다.

 

헨리는 검둥개, 친구 샌번과 함께 카타딘으로 가는 길에 차이가 운전하는 픽업트럭을 타게 된다. 그들의 동행 길은 언젠가 터질 시한폭탄이다.

 

 

처음 산에 오를 땐 정상만 오르면 모든 게 해결될 것 같았다. 막상 정상에 오르고 다시 산을 내려가려고 하니 길은 어두워서 보이지 않고 다리는 후들거려 걸을 수가 없었다. 그때 알았다. 오르는 길만큼 내려가는 길도 힘들다는 것을. 헨리는 불행과 떨어져 집을 지은 것이 아니라 불행 위에 집을 지은 가족의 비밀을 알게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진실은 때로 진실이 아니다.

 

[트러블]은 성장소설임과 동시에 비극적 사랑이야기이지만 그 안에는 인종 갈등, 가족의 해체, 보트 피플 등 만만치 않은 사회문제들을 담고 있다. 헨리와 소년(차이)의 시점에서 전개되던 이야기는 헨리와 차이가 함께 여행을 떠나면서 합쳐지는 독특한 구성을 취하고 있다. 처음 혼자였던 사람들은 함께 불행을 겪으며, 견디며 앞으로 나아간다.

 

살면서 불행을 단 한 번도 겪지 않은 사람은 없다. 헨리도, 샌번도, 차이도, 루이자도 모두 불행을 겪었다. 얼마 전에 읽은 [내 기억의 피아니시모]의 앨리스도 조발성 알츠하이머라는 불행을 겪었다. 불행을 멀리하고 싶지만 불행이란 녀석은 내 몸에 달라붙어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우린 불행과 함께 더불어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렇게 현재를 살다보면 불행의 깊이는 얕아지고 행복도 다가올 것이다.

 

세상은 불행이다. 그리고……

은총이다. 정말로 그렇다.(p.398)

YES마니아 : 로얄 m****6 2010.02.16. 신고 공감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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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러블 (불행과 더불어 사는 법을 이야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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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과 더불어 사는 법!서로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내어주는 삶의 한 자락이 필요하다.대홍수가 이 세상을 모조리 쓸어버리기 직전, 땅 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노아의 방주에 몰려들어 구원을 요청했다. 이때 ’행복’도 달려왔다고 한다. 그러나 노아의 방주는 ’짝’이 있어야지만 탈 수 있었다. 짝을 찾으러 급히 나간 ’행복’은 ’불행’을 짝으로 데리고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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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과 더불어 사는 법!
서로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내어주는 삶의 한 자락이 필요하다.


대홍수가 이 세상을 모조리 쓸어버리기 직전, 땅 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노아의 방주에 몰려들어 구원을 요청했다. 이때 ’행복’도 달려왔다고 한다. 그러나 노아의 방주는 ’짝’이 있어야지만 탈 수 있었다. 짝을 찾으러 급히 나간 ’행복’은 ’불행’을 짝으로 데리고 와서 노아의 방주에 올랐다. 이 때부터 행복과 불행은 짝이 되어 같이 다니게 되었다고 한다.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끝없이 행복을 추구하고 불행을 멀리하려 하지만, 불행이 오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인생은 없다. 진정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불행에 대처하는 자세’를 배워야만 한다. 세계적 권위의 문학상을 휩쓸며 그 이름이 곧 신뢰도의 척도가 된 작가 게리 D. 슈미트, 그는 <트러블>이라는 성장소설을 통해 ’불행과 더불어 사는 법’을 이야기하고 있다. 어느 날 한 개인에게 몰아닥친 불행의 불꽃이 가족 전체를 삼켜버리고, 그 불꽃이 지역 사회에 옮겨 붙으면서 인종분쟁이라는 사회적인 파장을 일으키며 겉잡을 수 없이 커져버리는 동안 개인과 개인, 가족과 가족, 인종과 인종의 불행과 행복이 씨줄과 날줄로 촘촘하게 엮이는 구성이 돋보인다. 차분하지만 ’가문의 비밀’이라는 숨겨진 코드가 강렬하다. 꽤나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데도 이야기는 동화처럼 투명하고, 격정적이지 않으면서도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 온 가슴에 차오르지만 한 발 한 발 힘겹게 전진하며 결국 비극이 빚어내는 아름다움과 마주하게 된다.


"불행으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집을 지으면 불행이 결코 찾아오지 못할 것이다." 헨리 스미스의 아버지는 헨리에게 입버릇처럼 그렇게 말했다. 그래서 스미스 집안은 정확히 삼백 년 동안 같은 곳에서 살았다. 불행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바닷가 마을 블리스베리에서(7).

불행과 멀리 떨어져 살았던 헨리 가족에게 어느 날 예고도 없이 불행이 들이닥쳤다. 모든 이의 우상이었던 헨리의 형 프랭클린이 트럭에 치이는 대형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헨리네 가족의 삶은 온통 불행으로 휩싸이게 된다. 그런데 헨리네 가족을 집어삼킨 불행의 불꽃은 지역 사회로 옮겨 붙는다. 헨리의 형 프랭클린이 같은 학교에 다니는 캄보디아 이민자인 ’차이’의 트럭에 치인 것이 문제였다. ’난민’이 되어 흘러들어온 캄보디아 이민자들, 그 땅의 주인임을 자처하는 지역 사람들에게 그들은 ’무단 침입자’였으며, 야유와 멸시를 받아 마땅한 사람들이었다. 그런 캄보디아 이민자의 트럭이 프랭클린을 친 것이다. ’차이’는 단순한 사고라 했지만, 사람들은 숨겨진 의도가 있을 것이라 의심하면서 점차 폭력적인 인종분쟁으로 불행의 불길이 번진다.

형의 불행이 ’잘려나간 팔’에서 그치지 않고, 결국 죽음으로 끝을 맺자 절망한 헨리는 형과 함께 오르기로 했던 ’카타딘 산’으로 향한다. 불행과 더불어 사는 법을 알아내기 위해서. 익사할 뻔한 것을 헨리가 구하게 되어 함께 살게 된 ’검둥개’와 친구 ’샌번’과 함께. 

헨리는 ’카타딘 산’에 오르는 동안 우연히 형을 죽인 ’차이’의 트럭을 얻게 타게 된다. 그렇게 헨리는 ’차이’와 만나면서, 불행으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집을 짓지 못했던 ’차이’의 불행을 목격하게 된다. 형을 죽인 그 ’차이’의 처절한 불행을 말이다.

또한 헨리는 우연히 카타딘에서 모은 물건을 전시한 작은 박물관을 들르게 되었다가 그곳에서 놀라운 ’가문의 비밀’을 목격하게 된다. 북쪽 지방 해안에서 가장 멋진 해변을 소유하고 있고, 아버지는 잘나가는 회계회사의 사장이며, 교회에는 1680년부터 내려오는 헨리네 전용 자리가 있고, 학교에서는 교장 선생님에게 특별 대우를 받으며 누려온 그 모든 부요함과 달콤한 행복이 사실은 누군가의 행복을 짓밟은 엄청난 불행 위에 지어진 것이라는 충격적인 사실과 마주한다. 

뿐만 아니라, 형의 죽음 뒤에 가려진 엄청난 진실까지. 


"아무리 멀찌감치 집을 지어도 결코 떼어 낼 수 없는 불행. 태평양을 건넌다 해도, 심지어 대륙을 건너간다 해도. 새 언어를 배운다 해도"(337).

캄보디아 난민들을 무단 침입자 취급을 하며 주인 행세를 했던 백인들은 인디언의 땅을 빼앗고 그들의 불행 위에 집을 지은 것이었다. 우리는 나의 행복을 위해 의도하지 않게 다른 사람을 불행에 빠뜨리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불행을 막아내는 동안 그 불행이 나를 덮쳐오기도 한다. 우리는 그렇게 불행에게 삶의 자리를 내주어야만 한다.

<트러블>이 말하고 있는 ’불행과 더불어 사는 법’은 무엇일까?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 불행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불행과 공존할 수 있을까? <트러블>을 통해 내가 배운 것은 서로에게 닥친 불행을 이해하고, 서로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서 찾아진다. 매를 맞고 굶주린 채 바다에서 익사할 뻔한 검둥개를 헨리가 구해준 것처럼, 매를 맞고 굶주린 채 바다에서 익사할 뻔한 ’차이’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 안에서 서로에게 닥친 불행이 치유될 수 있는 길을 본다. 결코 떼어낼 수 없는 불행이 우리를 덮쳐온다 해도 서로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 안에서 우리는 은총을 발견할 수 있다. 불행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꽉 채운 삶이 아니라 삶의 한 자락 누군가를 받아들일 여백이 필요하다.


"매를 맞고 굶주린 채 바다에서 익사할 뻔한 것을 헨리가 구해 준 검둥개. 헨리는 다시 검둥개를 쓰다듬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전에는 생각하지 못한 사실을 하나 깨달았다. 검둥개는 어떻게 해서 바다에 빠졌을까? 헨리는 차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검둥개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자기가 참 바보였구나 하고 깨달았다. 
헨리가 알게 된 사실이 또 하나 있었다.
세상은 불행이다. 그리고 …… 은총이다. 정말로 그렇다"(398).



c***1 2010.02.1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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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러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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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부터 본토인과 이민자의 불협화음을 암시하는 것일까. 단순한 사건이 큰사건으로 일순간에 사회면을 차지하는 모습을 보게된다. 또 불행은 갑자기 어느날 찾아온다. 첫 페이지를 펼지는 순간 "불행으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집을 지으면 불행이 결코 찾아오지 못할 것이다."(p7) 라는 글 귀가 인상에 남는다. 하지만 스미스 집안은 불행은 피하지는 못했다. 우리도 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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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부터 본토인과 이민자의 불협화음을 암시하는 것일까. 단순한 사건이 큰사건으로 일순간에

사회면을 차지하는 모습을 보게된다. 또 불행은 갑자기 어느날 찾아온다. 첫 페이지를 펼지는 순간

"불행으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집을 지으면 불행이 결코 찾아오지 못할 것이다."(p7) 라는 글

귀가 인상에 남는다. 하지만 스미스 집안은 불행은 피하지는 못했다. 우리도 스미스 집안과 마찬가지

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나만 잘한다고 해서 불행이 옆길로 돌아서 가는것은 아니다. 물론 예방하는

차원에서 조심할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일들이 그렇게 진행된다면 인류의 모든 사람들이 불행을 겪지

는 않을 것이다.

 

한소년이 바라본 가정의 불행 그리고 형 플랭클린의 교통사고는 이민자와 본토인의 트러블을 적나라

하게 보여주고 있다. 형의 자리에 대신해 들어온 검둥개. 형과 이루지 못한 일을 헨리는 검둥개와 함

께 하기로 한다. 헨리가 카타딘을 오르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속에서 형을 죽인 차이와 만

나게 된다. 하지만 헨리는 차이가 밉지 않았다. 오히려 내전으로 인해서 이곳에 오게 된 차이를 이해

하는 쪽으로 기운다고 봐야할것 같다. 재판과정에서 드러나는 이민자에 대한 학교에서의 차별은 어른

들의 삐딱한 시선을 말해주고 있는것 같다. 또 다음 세대의 아이들은 어른들의 사고방식을 이어 받을

것이고 여전히 이민자들은 부당함을 감수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한소년의 사고가 단순한 사건이 아닌 인종차별적인 면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리고 형의 죽음으로 바라

본 한소년의 성장기는 그렇게 단순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헨리라는 인물이 이민

자를 바라보는 눈은 어른들과는 상당히 다른면을 발견한다. 그리고 어른들의 부조리한 모습을 보여주기

도 한다. 무거운 주제임에도 소년을 내세워 성장통과 더불에 풀어간 것은 훌륭한 발상으로 다가온다.

어떻게 문제를 풀어가든 그것은 그들의 몫인것이다. 또 불행은 피한다고 해서 피해지는것이 아니다. 다만

불행이라는 단면도 잘 활요한다면 더 나은 내일이 있는 것이다. 어른들이 보아도 생각이 많아지게 만드

는 책이다. 인종차별이라는 문제가 본연 미국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

다르게 다가온다. 우리가 겪었던 문제를 지금은 우리가 하고 있는  셈이다. 불행과 인종차별이라는 두 주

제가 만나 정말 트러블과 앙상블을 이루면서 느끼게 해주는 책인것 같다.

b*****8 2010.02.1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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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러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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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 함께 오르기로 했던 카타딘에 헨리는 친구 샌번과 검둥개, 그리고 형을 죽게 만든 차이와 함께 오른다. 카타딘을 오른다고 해서 불행이 비껴가리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 왜 이곳에 오려고 했는지 그 해답을 알 수 있으리라 생각지도 않는다. 다만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기에, 누군가가 올지도 모르기에 카타딘을 오른다.    형 프랭클린의 사고로 헨리의 집안에 불행이 덮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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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 함께 오르기로 했던 카타딘에 헨리는 친구 샌번과 검둥개, 그리고 형을 죽게 만든 차이와 함께 오른다. 카타딘을 오른다고 해서 불행이 비껴가리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 왜 이곳에 오려고 했는지 그 해답을 알 수 있으리라 생각지도 않는다. 다만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기에, 누군가가 올지도 모르기에 카타딘을 오른다. 

 

형 프랭클린의 사고로 헨리의 집안에 불행이 덮쳐온다. 프랭클린 형은 블리스베리에서 영웅과 같은 존재였다. 그런 형을 죽게 한 차이는 캄보디아 이민자였기에 이 사고는 한 집안의 불행을 넘어서 공동체의 문제로 번지고 만다. 프랭클린이 잠깐 깨어났을 때 외친 "카타딘", 이 말은 헨리에게 가족들을 지키라는 의미였을까. 이 곳에 모든 해답이 있다는 의미였을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카타딘에서 모든 사건이 끝이 나는 것을 보니, 단순히 헨리와 프랭클린이 함께 오를려고 했던 산이라는 의미를 넘어서는 것 같다. 루이자의 말처럼 헨리가 카타딘을 오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 프랭클린이 그저 무심하게 던진 말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헨리는 이 카타딘을 오름으로서 세상의 불행에 맞설 수 있는 용기를 얻고 세상을 향해 화해의 손길을 내밀 수 있게 된다.  

 

프랭클린 형의 사고 후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 아버지와 방에서 나오려 하지 않는 누나 루이자의 모습은 이 집 안에 드리운 불행의 그림자를 더욱 짙게 만든다. 거기다 루이자의 과도한 흐느낌은 이 사고에 우리가 모르는 어떤 일이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닌가 충분히 예측할 수 있게 한다. 카타딘으로 향한 헨리와 샌번, 그리고 검둥개가 차이를 만나 함께 동행하게 된 것은 우연일까, 운명일까. 마지막 책장까지 넘긴 지금이야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 당시에 헨리에게는 정말 말도 안되는 일이었을 것이다. 형을 죽인 사람의 차를 탄다? 말도 안되는 일이다. 그렇지만 헨리는 안다. 차이에게 주먹을 휘둘러 흠씬 패 주어도 가슴이 후련해지지 않는건 형의 죽음이 사고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며, 형이 다시 살아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이다.

 

성장소설이긴 하지만 인종문제까지 날카롭게 파고든 "트러블"은 누가 옳다, 그르다를 따지기 보다는 공동체에서 벌어지는 인종문제가 한 가족의 불행과 맞물리면서 어떻게 서로가 화해를 해 나가는지를 보여준다. 정치적인 문제를 거론하지 않고 프랭클린의 사고 후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검둥개를 돌보며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프랭클린의 죽음으로 헨리의 아버지는 "프랭클린이 죽지 않았다면 훌륭한 어른으로 컸을까"를 자문하고, 아들의 죽음이 지역사회에서 큰 사건으로 발전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이제 헨리의 가족들은 불행을 결코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집을 지었지만 불행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이제 이 불행과 더불어 사는 법을 알아내야 한다. 헨리가 카타딘에 오른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이 불행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말이다. 


y*****6 2010.02.1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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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이 있기에 행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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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을 불행을 무서워하고 피하고 싶어한다. 어느 누가 불행을 좋아하고 가까이 하고 싶어할까? 이 책의 주인공 헨리의 아버지도 '불행으로보터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집을 지으면, 불행은 결로 찾아오지 못한다'는 말을 좌우명처럼 생각하며 화목한 가정을 꾸려나간다. 하지만 불행은 어느 때나 어느 곳에서나 찾아오는 법이다. 17살 생일날, 핸리는 형 프랭클린의 교통사고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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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을 불행을 무서워하고 피하고 싶어한다. 어느 누가 불행을 좋아하고 가까이 하고 싶어할까? 이 책의 주인공 헨리의 아버지도 '불행으로보터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집을 지으면, 불행은 결로 찾아오지 못한다'는 말을 좌우명처럼 생각하며 화목한 가정을 꾸려나간다. 하지만 불행은 어느 때나 어느 곳에서나 찾아오는 법이다. 17살 생일날, 핸리는 형 프랭클린의 교통사고 소식을 듣게 된다. 뛰어나고 모범적인, 헨리의 우상이었던 프랭클린은 사고로 한쪽 팔을 잃고 의식불명에 빠진 채 깨어나지를 못한다. 그리고 사고의 가해자는 캄보디아에서 온 이주민 차이 초우안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평소부터 바닷가 마을 블리스베리에서 기분 나쁜 이방인으로 통했던 머턴주민이기에 차이 초우안에 대한 사람들의 비난은 끊임없이 계속 된다. 결국에 프랭클린은 숨을 거두고 차이는 가벼운 판결을 받고 사건이 마무리되는 데서 블리스베리 주민들의 분노는 극한에 달한다. 한편, 형의 죽음에서 오는 슬픔, 그리고 차이 초우안에 대한 분노로 어찌할 바를 모르던 헨리는 생전 형과 약속했던, 칼날 산등성이라는 별명이 붙은 험난한 산 카타딘에 오를 결심을 한다. 단짝친구 샌번과 검둥개와 함께 길을 나선 헨리는 가장 보기 싫은 사람과 마주치게 되는데...

 

어느날 갑자기 찾아 온 불행, 그리고 본토인과 이주민의 갈등...책의 내용은 심각하기 그지없다. 예고없이 찾아 온 불행에 가족들이 얼마나 상심하고 슬퍼하는지가 절실히 느껴졌다. 그리고 과하다 싶을 정도의 사람들의 차별과 괴롭힘은, 이미 미국에 많은 이주민이 살고 있는 우리나라의 실정이 떠올라 결코 간과할 수가 없었다. 가족들에겐 자랑스럽기만 했던 프랭클린의 이중적인 모습, 그리고 가난한 이주민이라는 이유만으로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해야만 했던 차이. 이를 신경쓰고 개선해야할 학교가 오히려 차별을 부추기는 모습은 화가 나면서도 가슴이 아팠다.

 

상실을 겪어 본 사람이 상실을 겪은 사람의 마음을 아는 법이다.

어떤 상실이든 결국은 매한가지니까 -p269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프랭클린의 교통사고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는 걸 알게된다. 그리고 차이에게는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어떤 괴로움 속에서 살아왔는지가 속속 밝혀진다. 자신의 형을 죽인 차이 초우안에 대단 분노로 헨리의 인종차별적인 생각은 더욱 깊어져만 가는데, 이 분노는 과연 풀릴 수 있을까? 카타딘을 향한 여정 속에서 헨리는 여러 인물들과 마주치게 되고, 베트남 전쟁과 일자리를 이주민에게 빼앗긴데서 오는 증오를 품은 사람들에서부터 친절한 식당 주인에 까지 그들에게서 여러가지를 목격하고 배우게 된다.

 

무척이나 심각하고 민감한 소재를 다룬 책이지만, 작가의 기량일까? 책을 보는 동안 무거운 기분이 든 적은 그다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어느 순간 미소를 짓고 있는 내 모습을 자주 발견할 수 있었다. 불행은 괴롭기에 되도록이면 마주치고 싶지 않고 피하고 싶은 법이다. 하지만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불행과 함께 하기로 마음먹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이 바로 행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불행과 행복, 상반되는 개념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때때로 이 둘은 결코 떨어질 수 없는 사이란 생각이 들었다. 불행을 피하기만 하고 눈을 돌리기만 해서는 안되며, 불행이 있기에 더욱 강해질 수 있는 자신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배울 수 있었다. 마지막 이 부분, 헨리의 생각에는 나도 백배 공감한다!

 

세상은 불행이다. 그리고...........은총이다. 정말로 그렇다 -p398

o*********3 2010.02.1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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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트러블-불행과 함께 사는 법을 찾아서
"[서평]트러블-불행과 함께 사는 법을 찾아서" 내용보기
'불행으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집을 지으면 불행이 결코 찾아오지 않는다'라고 믿었던 한소년이 있었다. 스미스 집안은 300년 전부터 바닷가 마을 블리스베리에서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아왔으나 열세 살 소년 헨리와 소년의 가족은 어느날 그 믿음이 사실이 아니라는것을 깨닫는다. 블리스베리의 롱벨로 고등학교의 럭비 스타이자 헨리의 형인 프랭클린이 같은 학교 학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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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으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집을 지으면 불행이 결코 찾아오지 않는다'라고 믿었던 한소년이 있었다.

스미스 집안은 300년 전부터 바닷가 마을 블리스베리에서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아왔으나 열세 살 소년 헨리와

소년의 가족은 어느날 그 믿음이 사실이 아니라는것을 깨닫는다.

블리스베리의 롱벨로 고등학교의 럭비 스타이자 헨리의 형인 프랭클린이 같은 학교 학생이자 캄보디아 이민자인

차이가 몰던 차에 치여 큰 부상을 당하고 결국은 사망하고 만다.  사람들은 낯선 이민자인 차이와 그의 가족들에게

분노를 느끼고 형의 죽음에 절망하고 분노한 헨리는 형이 죽기 전에 함께 계획했던 일을 실행에 옮기기로 한다.

죽기전에 형이 헨리에게 유일하게 했던 말 바로 '카다딘'산을 오르는 것이다.

 

죽음과 불행은 누구에게나 닥칠수 있는 일임에도 막상 그일이 닥치면 사람들은 절망하고 슬퍼하고 결국은 분노한다.

하물며 불행이나 죽음은 다른사람들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어린 소년 헨리에게 우상이었던 형의 죽음은 받아들일수

없는 엄청난 고통을 안겨주었다. 헨리는 친구인 샌번과 바닷물에 빠져 죽기직전 구해주었던 '검둥개'와 함께 무작정

카다딘으로 향한다. 단지 형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여행이 아니었다.

끊임없이 자신이 왜 카다딘으로 향하여야 하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한채 그렇게 우여곡절의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여행길에서 헨리는 꿈에도 보기 싫은 사람, 바로 형을 차로 치어 죽인 차이를 만나게 된다.

차이 역시 불행으로 부터 도망치기 위해 무작정 길을 나섰던 것인데 이 만남으로 헨리와 차이는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깨닫는다 자신이 왜 '카다딘'으로 향해야 하는 것인지..

'불행으로 부터 멀어지는 곳은 없다. 우리는 불행과 함께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이책을 덮을 때 즈음이면 얼마나 잘 쓴 책인지를 알게 될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절망과 슬픔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에 대해..

아직 면역되지 못한 삶의 어두운 면에 대해 겁내지 말고 피하지 말고 당당하게 맞서서 이겨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은 세계 1위의 국가 미국이 어떻게 남의 땅을 자신의 땅으로 만들고 세계의 주인행세를 하는지..

미개인을 구원하고 평화를 구현하겠다는 그럴듯한 명분과 전쟁의 두얼굴..그로 인해 벼랑으로 떨어진 사람들의

손을 선심쓰듯 끌어올리는 고도의 전술들...여행길에서 만난 베트남 참전 어부들과 차이는 바로 그런희생자들이다.

멋대로 끼어든 자들이 자신이 피해자라고 말하고 극심한 인종편견을 가지게 되는 치밀한 음모가 느껴진다.

어린 헨리는 묘하게도 강대국 미국의 독립기념일날 명문가인 자신의 성.. 스미드 집안의 비밀을 알게된다.

위대한 독립의 날이 아닌 침략의 역사였음을...

보트피플로 미국까지 오게된 차이의 불행한 과거를 따뜻하게 감싸안으며 형의 죽음에 대한 진실도 알게된다.

 

"어떤 폭풍도 영원히 몰아치지는 않아" -279p

 

형을 잃은 동생, 아들을 잃은 부모, 비밀스런 출생과 인종편견으로 상처받은 캄보디아 소년..더구나 그 벽을

결코 뛰어넘을 수 없는 슬픈 사랑을 선택한 소녀, 부모에게 관심받지 못하고 팽개쳐졌던 소년..

이모두는 서로를 껴안는다.

결국 '카다딘'은 불행과 어둠을 극복해 넘어야하는 벽이고 정화(淨化)이며 안락하기만 할것 같았던 삶에서

깨고 나와야 하는 두터운 껍질이었다. 스스로 알을 깨고 나와야 하는 새처럼...

 

굵직굵직한 상을 수상한 작가의 관록이 그대로 돋보인다. 무거운 주제지만 언제든지 문은 열려있다고 알려주는

마이크 아저씨와 '난리 뻐꾹 티셔츠 아저씨'같이 유쾌한 사람들이 있어 가끔은 웃을수 있어서 행복했다.

 

h********5 2010.02.0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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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은 가까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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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살면 불행이 찾아오지 않는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헨리 스미스의 아버지. 스미스 집안은 정확히 삼백 년 동안 같은 곳에서 살았다. 그곳은 불행이 찾아올 수 없는 바닷가 마을 블리스베리였다. 하지만 헨리의 열네번째 생일에 형 프랭클린이 차에 치이는 사고가 일어나 팔을 잃고 혼수상태에 빠졌다. 뇌손상도 있어서 수술을 했다. 좋아지지 않고 죽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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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살면 불행이 찾아오지 않는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헨리 스미스의 아버지. 스미스 집안은 정확히 삼백 년 동안 같은 곳에서 살았다. 그곳은 불행이 찾아올 수 없는 바닷가 마을 블리스베리였다. 하지만 헨리의 열네번째 생일에 형 프랭클린이 차에 치이는 사고가 일어나 팔을 잃고 혼수상태에 빠졌다. 뇌손상도 있어서 수술을 했다. 좋아지지 않고 죽고 만다. 사고를 낸 사람은 캄보디아 난민 소년인 차이 초우안이었다. 프랭클린은 럭비 선수로 모든 아이들의 영웅이었다. 헨리는 훌륭한 사람이 될 형을 죽인 차이 초우안이 미웠다. 형은 죽었는데, 차이는 운전면허정지와 집행유예가 됐다는 것을 알고는 어떻게 그럴 수 있나 했다. 그런데 누나 루이자는 차이 초우안을 감싸는 듯한 말을 했다. 진실을 모른다고 한 것 같기도 하다.

프랭클린이 죽기 전에 헨리와 함께 카타딘에 오르자고 한 것을 혼자서라도 하려고 했다. 혼자 가지는 않았다. 헨리가 바다에서 구해준 검정개(이게 이름이다)와 친구 샌번과 함께 길을 나섰다. 샌번이 정말로 같이 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헨리가 카타딘에 오른다고 하니, 샌번도 같이 가기 위해 훈련을 했다. 하지만 헨리는 샌번과 같이 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쩌다 보니 같이 가게 된 것이다. 카타딘까지 갈 길은 멀었다. 두소년과 개 한마리를 태워줄 차는 없다고 샌번이 투덜댔다. 그런데 태워주는 픽업 트럭이 있었다. 그 사람은 차이 초우안이었다. 검정개가 차이를 아주 잘 따르자 헨리는 기분이 안 좋았다. 아니, 이것보다 자기 형을 죽게 만든 차이의 차를 얻어타는 게 싫었다. 하지만 다른 차가 없어서 그대로 타고 가기로 한다.

그렇게 함께 여행을 하다가 친해진다. 처음과는 다르게 차이도 카타딘에 오르는 것을 헨리는 당연하게 여겼다. 하지만 맨 처음에 갔던 음식점에서 만난 어부들이 나타나서 헨리는 총에 맞았다. 이 사람들은 차이를 베트남 사람으로 봤다. 베트남 사람들 때문에 자기들 일이 없어졌다면서 엉뚱한 사람한테 화풀이를 한 거였다. 헨리의 부모님과 누나 루이자가 나타나서 병원으로 갔다. 헨리가 집을 나간 뒤에, 뒤를 추적하고 있었기 때문에 바로 올 수 있었다. 하지만 샌던의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샌던네가 부자 같기는 한데 부모님한테 사랑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 또한 불행이 아닐까 싶다. 병원에 있을 때 헨리는 루이자한테 프랭클린의 사고에 대한 진실을 듣는다. 루이자가 전에 방에서 나오지 않았던 것은 그것 때문이었다.

헨리는 형이 죽었다는 불행을 잊기 위해 카타딘에 오르려고 했다. 카타딘에 가는 도중에 알게 된다. 자신이 카타딘에 오르려고 하는 진짜 까닭을. 그것은 불행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것이었다. 또 하나 더, 헨리가 살고 있는 집도 예전에 불행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불행은 결코 멀리 떨어질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느낀 듯하다. 그것은 맞는 말이다. 삶과 죽음이 늘 가까이 있는 것처럼 행복과 불행 또한 마찬가지다.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다. 불행은 자신한테만 닥쳐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극복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한테 일어난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쓸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괴로운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어하는 마음은 잘 안다.

이 책 안에는 인종 차별에 대한 것도 나온다. 옮긴 사람은 갈등이라고 했는데, 갈등보다 차별처럼 보인다. 차이는 캄보디아인이어서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했다. 확실하게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것을 앞에서 한 사람이 프랭클린 같다. 어쩌면 차이가 자기 여동생 루이자와 사이가 좋아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차이의 아버지도 그것에 대해 안 좋게 생각했다. 이것은 갈등인가? 미국인이 싫어서라기보다 차이가 자신의 아들이 아니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딱히 해결되는 것은 없다. 그저 헨리가 조금 성장할 뿐이다. 조금이 아닌가? 그리고 샌번과 차이도…….



희선




☆마음에 남다

“제가 왜 카타딘에 오르려고 하는지 알 것 같아요.”

새디어스 백스터는 다시 자전거 바퀴를 돌렸다.

“그래?”

“불행과 더불어 사는 법을 알아내기 위해서예요.” (325쪽)

매를 맞고 굶주린 채 바다에서 익사할 뻔한 것을 헨리가 구해 준 검둥개. 헨리는 다시 검둥개를 쓰다듬었다. 그러다 갑자기 전에는 생각하지 못한 사실을 하나 깨달았다. 검둥개는 어떻게 해서 바다에 빠졌을까? 헨리는 차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검둥개를 내려보았다. 그리고 자기가 참 바보였구나 하고 깨달았다.

헨리가 알게 된 사실이 또 하나 있었다.

세상은 불행이다. 그리고……. 은총이다. 정말로 그렇다. (398쪽)

n***8 2010.05.2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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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러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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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많은 상을 수상했기 때문에 더욱 더 읽고 싶어지는 책인 것 같아요.그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검증이 되었다는 뜻이겠죠?사실 상을 받은 작품이랑 많이 읽는 작품이랑은 어느 정도 차이가 있기 마련이죠?하지만 이 책은 이야기의 내용도 그렇고 감동과 재미를 함께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아요.작가의 2008년도 뉴베리 수상작인 '수요일의 전쟁'을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왠지 이 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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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많은 상을 수상했기 때문에 더욱 더 읽고 싶어지는 책인 것 같아요.
그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검증이 되었다는 뜻이겠죠?
사실 상을 받은 작품이랑 많이 읽는 작품이랑은 어느 정도 차이가 있기 마련이죠?
하지만 이 책은 이야기의 내용도 그렇고 감동과 재미를 함께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아요.
작가의 2008년도 뉴베리 수상작인 '수요일의 전쟁'을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왠지 이 책을 읽고 나서 한 번쯤 읽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는 것 같아요.
트러블이라는 책의 제목에서 보듯이 조금은 아니 어떻게 보면 아주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우리는 항상 행복해지려고 노력하지만 언제나 행복은 모래위의 성처럼 아슬아슬한 것이고 항상 그 밑에는 불행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 아닐까요?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 조금만 방심하고 발을 헛디디면 아득한 불행 속으로 빠져버릴 것 같은 위태로운 삶 말이죠.
불행을 모르던 헨리에게 어느날 갑자기 불행이 찾아오게 되죠.
인간의 본성은 성선설일까요? 아닌 성악설일까요?
한 때 무척 고민했던 문제인데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어떨때 보면 인간만큼 폭력적이고 나쁜 존재도 없는 것 같다가도,
어느순간 보면 인간처럼 아름답고 희생적인 사람도 없는 것 같아요.
최근의 아이티 지진을 보면서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도움의 손길을 주잖아요.
이 책에 담겨있는 조금은 불편한 우리의 진실들을 보면서
수많은 편견에 사로잡혀 제대로 된 진실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요.
아이가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이런 편견들은 본받지 말고 함께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행복한 사회를 꿈꾸어 보는 건 어떨까요?
n******s 2010.02.1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