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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을 읽는 까닭은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와 소통하기 위함 이라고 한다. 고전은 언어와 같기 때문에 현재와 미래와 소통하기 위해서는 그 언어를 알아야 한단다. 그러나 언어를 안다고 해도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고전에 대한 독법이라고 한다. 역사는 다시 쓰는 현대사이고, 고전들은 각 시대가 선택하고 구성한 것 이기에 더욱 그렇단다. 추천사를 쓴 논어는 춘추시대를 살았던 공자와 그의 제자들의 언행록이다. 중국 사상의 주류였던 유교의 기본 경전이나, 공자가 죽은 지 300년도 더 지난 한무제 때 비로소 주류가 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말하길 논어와 같은 고전은 일생에 걸쳐 읽는 것 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논어 속에서 인간을 보고, 자신을 보며, 세계와 역사를 보고 싶다고 한다. 이 책은 저자의 그러한 다짐 속에서 논어를 해석하기 보다는 논어에 대한 에세이라고 생각해 달라고 한다. 한가지 해석에 얽매이지 않고,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달리 해석했다고 말한다. 논어의 구성은 전체 20편, 약 500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논어의 편명은 첫 문장의 첫 글자에서 취했다고 한다. 공자와 그 제자들의 언행록 이지만, 대부분이 제자를 향한 교훈이나, 제후나 가신과의 대화가 주를 이루고 있다. 그 중 몇 편만을 살펴본다. 우리가 논어에서 가장 많이 알고 있는 것은 첫 번째 편인 학이學而이다. 학습의 즐거움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1장에 한번쯤은 들어 봄직한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는다.”란 글이 나온다. 모두가 제가 잘났다고 우쭐대는 세상에서 깊이 새겨 볼만 하다는 생각이다. 2편인 위정爲政에는 공자의 일생이 나오는 것으로 유명하다. 열다섯에 배움에 뜻을 두었고(지학志學), 서른에 섰고(이립而立), 마흔에 미혹하지 않았고(불혹不惑), 쉰에 천명을 알았고(지천명知天命), 예순에 귀가 순해졌고(이순耳順), 일흔에는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따라 법도를 넘지 않았다. 우리가 학교 다닐 때 나이를 뜻하는 용어로 배운 이 단어들의 출전이 바로 논어의 2편인 위정爲政인 셈이다. 저자는 이 글귀를 생각하며 각기 자신의 일생의 한 부분을 돌아볼 수 있는 단서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5편 공야장公冶長에는 공자의 제자중 자하와 자장에 대한 평가가 나온다. 자하는 소극적인 성격이고, 자장은 과한 성격이라고 한다. 공자는 사(자장)는 지나치고, 상(자하)은 미치지 못한다고 하면서, 그러나 지나침은 부족함만 못하다라고 말한다. 우리가 흔히 쓰고 있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이 이렇게 해서 후대에 쓰이게 되었다고 한다. 논어는 공자가 제자들과 행한 언행록인 탓도 있지만 그의 제자들의 이름이 많이 나온다. 후대 사람들은 공자의 제자중 뛰어난 10사람을 공문십철이라 칭하는데 그들에 대해서는 11편 선진先進에 기록되어 있다. 덕행에 있어서는 안연, 민자건, 염백우, 중궁이 그들이고, 언어에 있어서는 재아와 자공, 정사에 있어서는 영유와 계로, 그리고 문학에 있어서는 자유와 자하가 바로 그들이다. 논어는 일개 민초인 우리들 자신의 수양뿐만이 아니라, 정치가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자로가 정치에 대하여 묻자 ‘솔선하고 위로해야 한다.’고 공자가 대답한다. 더 없느냐고 묻자, ‘싫증 내지 않고 하는 것이다.’라고 다시 대답한다. 13편 자로子路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작금의 현실을 생각해 본다. 이 나라 정치가들중 누가 과연 그렇게 행하고 있는지를.. 인류의 스승이라 일컬어지는 공자, 부처, 예수.. 그들의 생은 어떻게 보면 공통점이 있다. 보다 낮은 곳으로 향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깨우치고 단련시켰다. 오늘에 사는 우리들도 이들을 본받아 나 하나부터 타자를 생각하며, 자신을 깨우칠 때 그들이 생각했던 세상에 좀더 가까워질 것 같다. 나 하나를 떠나, 나 먼저 깨우치는 것에 의해 세상이 달라질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것 바로 이것이 고전을 읽는 맛일지도 모른다. 참고로 논어 20편의 편명을 살펴보면 1편 [학이學而], 2편 [위정爲政], 3편 [팔일八佾], 4편 [이인里仁], 5편 [공야장公冶長], 6편 [옹야雍也], 7편 [술이述而], 8편 [태백泰佰], 9편 [자한子罕], 10편 [향당鄕黨], 11편 [선진先進], 12편 [안연顔淵], 13편 [자로子路], 14편 [헌문憲問], 15편 [위령공衛靈公], 16편 [계씨季氏], 17편 [양화陽貨], 18편 [미자微子], 19편 [자장子張], 20편 [요왈堯曰]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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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순신은 우리 한국인에게도 널리 알려진 소설가입니다. 그러나 그의 식견은 참으로 넓고 깊어 여러 분야에 대해 두루 쓴 많은 저작들이 우리 독자들에게 유익한 바가 큽니다. 뭘 골라 읽어도 재미있고, 또 그만의 독특한 관점과 통찰이 들어 있어서 좋습니다.
하늘이 나를 버리는구나! 어떤 목표가 좌절되었다거나 요행수가 비껴갔다거나 할때 우리들 소인배들은 분을 못 이겨 이런 경솔한 언사를 내뱉곤 합니다만 사실 이 말은 함부로 쓸 게 절대 아닙니다. 만약 공자가 말한 천리, 천도라는 게 실제 기능한다면, 이렇게 입 함부로 놀리는 자의 머리 위에 골라서 천벌을 떨어뜨리지 싶습니다.
그럼 공자는 어떤 경우에 이 말을 썼는가? 바로 제자 안연이 죽었을 때입니다. 안연은 재능도 뛰어났지만 특히 공자가 칭찬한 건 그의 덕행입니다. 다른 제자, 이를테면 자로, 자공 같은 이들도 틈만 나면 "역시 안연이 제일이죠?"라며 스승에게 동의를 구했습니다. 다 라이벌이었을 텐데 거의 이론의 여지 없이 저토록 우열이 정해진 걸 보면 안연은 정말 모든 면에서 탁월한 위인이었나 봅니다.
예전에는 저 안연을 놓고 "아성(亞聖)"이라 불렀으나, 이후에는 그 칭호를 맹자가 대신하게 됩니다. 특히 우리 한국에서는 맹자의 호연지기가 연구의 대상이었는데, 서인의 진영에서 여차직하면 왕을 바꿀 수도 있다고 여겨서인지 이의 가르침을 중시했고, 유독 "의"에 대한 강박이 심한 풍조도 이에서 연유한 듯합니다. 물론 그것이 "의"이기만 하다면 의로움에 대체 지나침이라는 게 있을 수는 없죠.
공문십철도 이 책에서 논의되는데 십철에 드는 이들 중 재미있는 개성을 지닌 이들도 많습니다. 공자 하면 대뜸 따분한 분위기부터 떠올리는 이들에게 그 선입견을 깨 줄 좋은 읽을거리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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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도 큰 사랑을 받았던 빼어난 재능의 작가 진순신이 쓴 대중 교양서입니다. 서지 사항을 보니 이 책은 9년 전쯤 출간되었는데 그새 작가는 이미 타계했으며, 반 년 전에 타계한 거장 김용의 경우와 함께 큰 애도의 물결이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런 걸 보면 확실히 한 시대가 저물고 있음을 절감하게 됩니다. 진순신은 이 책 말고도 무수히 많은 히트작을 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중에서도 <비본 삼국지>가 기억에 남습니다. 그 책은 삼국시대 실제 진행의 대체적 사연을 다뤘다고 할 수 있으며, 그만의 독특한 관점과 통찰을 담았기에, 많은 삼국지 마니아들의 호응을 얻어 내었습니다. 현재는 P 모 출판사에서 약간 다른 제목을 달고 번역된 상태입니다. 논어는 공자 이후 2500년 중국 문명사에서 끊임 없이 주석과 해의가 시도되었으며, 가장 권위 있는 저술로는 주희의 <집주>가 있겠으나 특히 조선에서 지나친 교조화로 신성시되는 통에 적잖은 반발을 부르기도 했습니다. 대중 소설가인 진순신이 논어를 논했다는 점이 흥미로운데, 그토록 많은 베스트셀러를 내고 긴 시간 동안 전성기를 누린 작가의 공력이란 역시 고전에의 깊은 천착을 통해 이뤄졌음을 실감도 하게 됩니다. 공문 십철은 이미 <논어> 본문에서도 거명이 되는데, 덕행으로 뻬어난 인물은 안회, 염백우, 중궁, 민자건 등 네 명이며, 언어에는 자로, 재아 등 두 명이고, 정사에는 자로와 염유 두 명이 꼽힌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문학 분야에 두 사람이 평가되는데, 다른 종교 혹은 철학 유파와 대조하여 특이한 점은, 교리로서 "덕행"에만 치우친 게 아니라(물론 그것이 가장 상위의 덕목이긴 하지만), 실무와 레토릭 등에도 많은 가치를 두었다는 사실이겠습니다. "문학"은 특히 위진남북조와 수당송 시기에 빼어난 이들이 많이 등장했으며, 고려 시대에도 과거에서 경전의 이해만 묻는 게 아니라 제술과를 따로 두어 글 잘 쓰는 인재에 주목했다는 사실 등이 다 이것의 깊고도 먼 영향이 아닐까요. 물론 이런 전통은 조선 시대에까지 이어져, 소과의 두 분야인 진사시와 생원시 중 후자에 바로 영향을 끼칩니다. 그러나, 막연하게나마 후대인들도 생원(합격자)보다는 진사를 조금 높이 치는 경향을 가지는 것만 봐도, 역시 유가의 본령은 "덕행" 쪽에 있지 않냐는 기존 관념을 다시 주목하게 되네요. 공자의 제자 중 왜 이렇게 이름이 아들 자(子)로 시작하는 이들이 많은가에 대해서는, 주, 위, 노, 정(모두 춘추 시대의 국명입니다) 등을 고국으로 두었을 시 그 특볗한 출신을 따로 표상하는 전통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조심해야 할 게, 자하의 경우 본격적인 활약은 위(魏) 나라에서 했지만, 그 출신국은 위치도 다르고 한자도 당연히 다른 위(衛) 나라라는 점입니다. 앞에서 주위노정이라고 했을 때 위나라도 당연 후자임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묘하게도 공자와 그 제자들의 활동 시기가, 춘추와 전국 시대가 갈라지는 한위조 삼진 분립기와 겹치는 까닭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