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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하면 아름다운 풍차마을이 떠오르기도 하고, 유명한 화가인 고흐, 렘브란트, 몬드리안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리고, 항상 함께 생각나는 것이 매춘, 안락사, 게이들의 결혼, 마약 등이다. 그만큼 네덜란드는 아름다우면서도 개방적인 국가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이야기를 서두에 쓰는 것은 '내 아들의 아버지'의 작가가 네덜란드사람인 '카렐 판 론'이다.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유럽에서는 상당히 명망이 있는 작가라고 한다. 그는 베스트셀러 작가 뿐만 아니라. 저널리스트, 텔레비전 프로그램 제작자로도 활약을 하고 있다. '내 아들의 아버지' 처음엔 한 여자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의외로 남자가 주인공이다. 그렇다면, 아내의 외도? 소설은 상상의 세계이기에 외도에 관한 이야기도 얼마나 다양하던가.... 자신의 아내가 남편모르게 결혼을 했다는 설정까지. 그런데, '내 아들의 아버지'는 아버지가 소설의 주인공이니, 아들의 아버지는 그가 아니라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나(아르민)는 30대 한 아들의 아버지이다. 아내 모니카는 10년전에 너무도 갑자기 감염성 질환에 걸려서 며칠만에 세상을 떠난다. 3살난 아들 Bo를 남겨둔채로. 아르민은 아내의 친구였던 엘런과 애인관계가 되는데, 그녀가 아르민의 아이를 낳기를 원하는데, 임신이 안되자 검사를 받게 되고, 자신이 아이를 갖지 못하는 무정자증 환자임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자신의 아들인 'Bo는 누구의 아들이란 말인가. 누구나 닮았다고 하는 눈매와 왼발이 오른발보다 5mm 정도 작은 것은 우연의 일치란 말인가.... ![]() 죽은 아내에 대한 배신감과 함께 아들의 아버지일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추적한다. 아내가 알고 있던 남성들을 한 번쯤은 의문해 보면서..... 그 추적과정에서 아르민이 느끼는 모니카와의 사랑들. 그 사랑을 의심해 보기도 하고, 아내의 불륜을 추측해 보면서 심한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 소설의 배경이 네덜란드이기에, 성에 대한 인식이 매우 개방적이다. 아르민과 모니카는 아들을 낳아 기르는 부부관계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결혼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르민과 모니카의 사랑에 모니카의 친구인 엘런이 끼어들기도 한다. 이성을 사귀는 과정에서 다른 이성과의 관계도 개방적으로 이루어진다. 이런 것들이 네덜란드의 성문화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르민과 모니카의 사랑, 아르민과 엘런의 사랑.... 히피적이고, 즉흥적인 자유연애와 동성 연애와 같은 이야기들이 우리나라에서는 상상이 안되는 것이기에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자유분방한 성문화속에서도 자신의 아들인 줄 알았던 자식이 다른 사람과의 외도에서 낳았다는 사실은 아르민에게 큰 상처로 다가온다.13년이란 긴 세월을 속아서 살아왔다는 생각도 들었던 것이리라. 이와같이 이 소설은 내 아들의 아버지를 추적한다는 아주 간단한 이야기로 출발하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과연 누가 Bo의 아버지일까에 관심이 집중되기는 하지만 강한 추리력은 없다. 어디에서 아들의 아버지를 찾아야 할지 실마리를 찾기도 그리 쉽지 않다. 더군다나, 이 소설은 이야기의 구성이 과거와 현재를 어떤 규칙성이 없이 그저 왔다 갔다 한다. 어떤 사건이나 단상에 의해서 과거의 이야기로 돌아갔다가 다시 현재로 돌아오는 무질서한 시간 이동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야기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상황에 따른 아르민의 심리 변화는 섬세하게 그려지고 있다. 그런데, 결말은 반전의 백미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추측조차 할 수 없었던 커다란 바위 하나가 가슴에 '쿵'하고 떨어질 정도로 큰 충격을 가져다 준다.
한마디로 '쇼킹' 하다고 표현해야 할까? 우리의 정서로는 아무리 소설이라고 해도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엄청난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 그 사실을 누가 알고 있었을까? 왜 아무도 이야기 할 수 없었을까? 그렇게 큰 비밀을 가슴에 안고 아내인 모니카가 남편인 아르민을 마주 할 수 있었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으로 남게 된다. '있을 수 있는 일'과 '절대 있을 수 없는 일' 그 사이에서 '진정한 사랑이란 어떤 것일까'하는 생각을 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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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처럼 네덜란드 작가의 작품을 읽게 되었다. 이미 유럽이나 미국에선 알려진 작가라는데 내겐 생소하기에 기대 반 호기심 반으로 책을 펼쳐 들었다. 이 작품을 대체 어떻게 평해야 할지 난감하다. 아내의 불륜에의해 태어난 아들, 그의 친부를 찾아가는 미스터리 추리형식이며 동시에 아들의 성장과정을 담고 있으며, 사랑과 가족의 의미를 새롭게 재해석한 소설이기에 딱히 한 마디로 정의 하기가 난감하다.
과학출판 편집자인 아르민은 10년 전에 아내 모니카를 잃고 13살된 아들을 키우고 있다. 여자친구와 교재 중 아이를 원하던 그는 병원을 찾게 되고 자신이 클라인펠터 증후군(무정자증) 환자임을 알게 된다. 자신에게는 13년간이나 키워온 아들이 버젖이 있는데, 그럼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 보의 아버지는 누구란 말인가? 사랑했던 아내의 불륜을 알게된 그는 아들 보에게는 이 사실을 말하지 않고 아내와 불륜관계였으며 아들의 친아빠가 누구인지 밝히기로 결심한다.
아내의 전 남자친구 로베르트. 아내의 전 주치의. 추려지고 급기야는 그들을 만나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여행을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아르민은 아내와의 첫만남부터 자유로운 히피 같은 결혼생활을 즐기던 과거와 보를 갖게 되면서 세가족이 함께했던 단란했던 추억을 회상한다. 결혼식이나 혼인신고 조차 하지 않고 동거를 시작하고 아이를 가지게 된 주인공 모니카와 아르민, 그들의 결혼관과 사랑에 관해 모니카는 말한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맺게 되면, 독자적인 개성을 가진 존재로서의 특질을 잃게 되는 거지. 하지만 나는 사랑이란 것은 실제로 사람들을 다른 이와 연합시켜서 더욱 그답게 해주는 것이라고 믿어. 보를 통해서 당신과 나는 앞으로 살아갈 인생 내내 서로 떼어 놓을 수 없는 관계를 맺게 되었어. 하지만 그 관계를 통해서 나는 이전보다 훨씬 더 자유로워졌다고 느껴. ”
사춘기 아들은 자신의 친아빠가 아니라는 술 취한 어버지의 고백을 듣게 되고, 마침내 밝혀진 진실 앞에 그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과연 보의 친아버지는 누구인가? 생각지도 못한 반전, 놀라운 결말과 마주하게 된다.
동성연애, 섹스나 자유 연애, 아들과 여자친구 문제 등 우리와는 확연히 다른 정서에 당황하기도 하였지만 자유분방한 주인공들의 모습 속에서 네덜란드란 나라와 문화에 대해 생각해 볼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한 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재미와 마지막 반전, 그리고 작가의 뛰어난 심리묘사는 작품의 재미를 더하고 있으며 작품 곳곳에 숨겨진 위트와 유머를 발견하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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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한 스토리를 독창적이고 상큼하게 다룬 작품, 내 아들의 아버지. 한국 드라마로 만들어졌다면, 분명 불륜이 난무하는 그렇고 그런 소재의 드라마라고 할 게 뻔한 주제를 이렇게 상큼하게 다루다니! 사실, 한국에서만도 혈액형 검사로 시작된 불씨가 친자확인 소송까지 이어지는 현실이 적지않다. 전문 법인까지 만들어질 정도면, 그리 적지 않다는 말이 된다. 만일 당신이 이제껏 키운 아이가 내 애가 아니라면? 상상만 해도 발에 힘이 풀리고 아찔할 것이다. 자식을 꼭 낳아야 한다는 사명감. 그것은 누구도 비켜갈 수 없는 본능인 종족번식때문이 아니다. 삶의 이유가 되기도 하고, 하기 싫은 일을 감례하는 동기부여가 되며, 때론 자식이 의지가 되기도 한다. 꼭 낳아봐야만 아는 것 아니지 않나. 가족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공감할 것이다. 핏줄이란 유대감, 원수 같아도 절대 놓을 수 없는 끈. 늘 엉키지만 그래도 한올 한올 조금씩 풀면서 모양을 잡아가는 것이 우리네 가족의 모습일 것이다.
그런데 하루 아침에 무정자증을 선고받는 다면 기분이 어떨까. 자신의 인생을, 함께한 과거를 통째로 도둑맞은 것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이제껏 쏟은 애정, 공들인 시간, 나와 닮았다고 믿어왔던 이곳 저곳의 생김새, 하는 짓이 꼭 빼다닮았다던 습관들. 이 모든 것이 다 물거품이 되며, 어디가 하소연도 하기힘든 '얘기치 못한 사기 피해자'로 전락하고 마는 끔찍한 일인 것이다. 그런 극악무도한 짓을 버린 인물을 저주할 수도 없다면 분노를 어떻게 터뜨릴 것인가. 아내 모니카는 이미 십년 전 세상을 떠나 고인이 되었다. 그는 결국 아들에게 비밀로 하고 아들의 아버지를 찾아 나선다.
발단을 길게 늘리지 않고, 군더더기 없이 시작했다. 당신은 불임입니다! "집이 없어졌습니다. 그러니 각자 알아서... 해산!" 이렇게 시작하는 <홈리스 중학생>만큼 파격적인 전반은 아니지만, 독창적인 느낌으로 이어진다. 남다른 시각으로 바라본 세상을 배치하며 전혀 거리낌없이 내용에 충실할 수 있도록 문학적으로도 손색이 없고, 개성이 잘 들어나면서도 반전이 존재하는 신기한 책이었다. 그의 연애관이나 친구 아르민이나 등장하는 사람이 범상치 않은데, 여기서 또한 현실과는 다른 또 다른 세계를 만난 것 같아 색다른 경험이었다. “우리 중에 스스로의 머릿속에서도 지워버리고 싶은 그런 짓을 저지르지 않은 사람이 있단 말인가? 자네라면 함께 잠자리를 했던 여자들로 구성된 배심원들 앞에서 가장 타락하고 파렴치한 죄를 고백하고 싶겠나?” 친구인 아르민의 말이다. 세 가지 근거를 정리한 수첩, 그 근거를 추론하는 상황, 그리고 마지막 그는 누구인가 밝혀지기까지. 독자는 여러가지 가설을 세울 것이다. 과연, 보(아들)의 아버지는 누구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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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아름다운 여자를 보면 이런 생각을 하죠. '어떻게 저런 여자가 나처럼 뚱뚱하고 추한 멍청이와 같은 종에 속하게 된 거지?'....... 세상에 어떻게 저런 일이 있나 하고 생각을 합니다. 무슨 말이냐고 하신다면, 하나님이야말로 참으로 짓궂은 장난을 잘도 치시는 분이라는 뜻으로 드린 말씀입니다. p. 326"
사랑하는 아내 모니카는 아들인 보가 다섯살때 세상을 떠났다. 번개처럼 시작된 사랑과, 생각치 못했던 임신, 급박한 결혼과 그 뒤의 행복했던 시간들이 찰나의 시간 사이에 벌어졌듯, 모니카의 죽음도 갑작스러웠다. 아르민은 아내의 죽음을 간신히 떨쳐내고, 아내 모니카의 절친이었던 앨런과 새로운 둥지를 꾸리게 된다. 그리고, 보가 열세살이 되었을때 병원에서 아르민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된다. 글쎄, 자신이 의학적으로 완벽하게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신체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이다. 혼란에 빠진 아르민은 그렇다면 13년간이나 고이 길러온 아들은 대체 누구의 아들인가?? 아르민은 보에게는 비밀로 하고, 본격적으로 아들의 친부를 찾기 시작한다.
네덜란드의 문학작품은 아마 처음 접해봤을 것이다. 이야기의 화자이자 주인공은 아르민과 그의 부모님들, 아르민의 부인인 모니카와 그녀의 부모님들, 그리고 그 주변 사람들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나가는 이야기는 상당히 스피디하다. 게다가 살짝 집중력을 흩뜨리면 살짝 헷갈릴 정도로 과거와 현재가 정신없이 섞여있다. 서사구조대로 풀려나가는 큰 틀 안에서, 그때 그때마다 지면을 할애하여 디테일한 설명을 풀어놓는 유럽식 서술법도 뚜렷히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방식은 꽤나 효과적이지만,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는데에 즐거움을 찾는 독자들이라면 중간중간 맥이 끊기는 듯한 느낌도 받을 수 있을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전반적인 분위기는 최근 한국의 현대문학들과 비슷한 느낌이다. 특히 가족에 대한 이야기들과 그에 대한 성찰들을 풀어놓는 방식들은 얼핏, 공지영 작가의 '즐거운 나의 집' 을 떠오르게도 한다. 배우자를 잃어버린 다른 한쪽과, 그, 혹은 그녀가 남긴 아이들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은 어디나 다 비슷하기 때문일까? 아르민은 끊임없이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 '모니카' 와 그녀가 외도로 낳은 아들 '보' 의 사이에서 혼란스러워 한다. 자신의 부모와 모니카의 부모, 그리고 이제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 모니카의 친구 '앨런' 조차도 아르민에게는 혼란을 가중시키는 요소에 불과하다.
남성의 친자확인 욕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폭넓은 공감을 얻어온 소재이다. 우리에게도 친숙한 '메밀꽃 필 무렵' 이라는 단편소설을 보아도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이 소재는, 남성의 뿌리깊은 본능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것이다. 이 작품 안에서 작가는, 이러한 욕구를 수반한 여러 환경들을 주인공 아르민과 그가 일하는 출판사의 동료인 데이브와의 대화를 통해 은유적으로, 때론 직설적으로 풀어내고자 하는 시도를 한다. 진화론과 인문사회적 해석, 다른 동물들과의 비교 등을 통해 보다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분석은 아르민이 겪는 감정의 혼란과 어울리며 이야기 자체를 보다 풍부하게 만들어준다.
이 작품에서도 나오지만, 남성과 여성은 본질적으로 그 역할이 다르다. 뱃속에서 10달 가까이 아이를 키워서 낳는 여성은 애초에 친자확인이라는 본능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 남성은 기본적으로 생식에 대한 욕구가 존재하고, 그 생식은 원초적인 투쟁을 전제로 한다. 이 작품 안에서 과학적으로 설명되는 정자의 역할은 우리가 기본적으로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전투적이고 체계적이다.
시종일관 남성의 원초적인 본능을 따라가는 이 작품은 그래서 더 도발적이고, 더 흥미로우며, 더 지적이기까지 하다.
그리고 이 모든 혼란들은 처음 시작되었던 '가족' 의 품 안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인간들은 끊임없이 타인과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간다. 그 관계들은 때론 강렬한 독이 되어 내장을 녹이기도 하고, 약이 되어 그것들을 재생시키기도 한다. 그것은 가족 안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맺은 관계는 혈연이라는 그물로 변해 서로를 옭아매고, 때로는 그 그물에 쓸려 크나큰 고통을 수반하기도 한다. 그리고 때로는 강력한 울타리가 되어 외부의 자극을 견뎌낼 수 있게도 만들어준다. 과거에는 이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구성원들은 고통은 무조건 감내해야 했고, 누군가는 반드시 희생해야만 했다. 하지만, 이제 그 가치는 서서히 변화하여 그물은 엉성해졌고, 울타리는 헐거워졌다. 가족 구성원들에게 새로운 가치관과 새로운 역할이 필요해진 것이다. '즐거운 나의 집' 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 또한 사랑이라는 전제 하에 새로운 개념으로 정립되는 가족의 모습을 보여준다.
위에도 언급했다시피, 마치 한국의 막장 드라마처럼 불륜에, 출생의 비밀이 얽혀있고, 거기에 가족과 친구들, 뿐만 아니라 아들의 친부를 찾아다니는 과정은 추리물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급박하게 사건을 추리해내는 이야기는 중반을 넘어서면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로 바뀌다가, 깜짝 놀랄만한 반전을 선사하며 마무리된다. 과학적, 논리적, 철학적인 대사들과 함께 속도감 있게 전개되는 이야기는 상당한 흡인력을 보여주고, 상당한 생각할거리도 던져주고 있다. 또한, 성적으로 상당히 자유분방한 네덜란드의 사고도 살짝 엿보는 즐거움도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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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의 아버지
언제나 생각만으로도 감사와 존경, 사랑 그리고 눈물이란 단어를 떠오르게 하는 단어가 있다. 바로 아버지라는 말이다. 아버지가 된다는 것이 어떤 건지 잘 모르지만, 제목만으로도 너무나도 읽고 싶다는 충동이 생기게 한다. 네델란드 작가의 책을 처음으로 접하게 된 계기도 되었다.
사랑하는 아내가 죽은 뒤 아들과 함께 살아가던 남주인공 아르민. 그는 어느 날 우연히 자신이 무정자증임을 알게 되면서, 그는 사랑하는 아들 보가 누구의 아들인지, 궁금해하며, 그 는 아내의 과거 남자들을 찾아가며 아들의 친아버지를 찾기 시작한다. 그리고 아주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는데,,, 나머지는 독자에게~
마지막까지 주인공의 무정자증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현상으로 인해 자기 아들이 아니라고 의심했던 모든 것이 해소 되리라, 하면서 끝까지 눈을 뗄 수 없었다.TV에서 방영되는 각종 드라마나 영화의 한 소재로도 자주 등장하는 불륜이야기이면서도, 주인공의 시점을 통해 나타나는 심리적 갈등이나 고민이 아주 잘 표현되어 있으며, 동성관의 섹스, 자유연애를 통해 현재의 사회의 이런 저런 성문화에 대해서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언젠가는 결혼하고 아버지가 될 나에게도 이런 일이 닥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라고 생각하니 아찔하기만 했다. 주인공 아버지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이해되며, 조금 걱정 또한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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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무정자증임을 알게 된 이후 아들의 진짜 아버지를 찾아 나선 한 남자의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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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을 읽는 순간 나는 이 책이 아버지와 아들의 부정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이루거라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내가 대한민국이라는 씨를 중요시 하는 나라에서 자란 바탕이 내게 이런한 편입견을 심어주었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 날 병원에서 들은 충격적인 이야기 자신은 이미 결혼도 한번 했었고 자신을 닮은 아들 ‘보’도 있지만 의사는 유감이라는 말과 함께 주인공 ‘아르민’이 무정장증이라는 병명을 말해준다. 의사 또한 아주 흔한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없는 일도 아니라는 식으로 ‘아르민’에게 말해준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주인공 ‘아르민’은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살아가는 것처럼 책의 내용은 이어진다.
과거 자신의 아내와 사랑했던 기억 그리고 아들인 ‘보’가 태어났을 때의 행복했던 기억 하지만 그 아들이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아르민’은 죽은 아내의 남자들을 생각해 낸다. 그리고 최종 3명을 골라 자신의 아들 ‘보’의 친아버지를 찾기 위해 여행을 한다. 책은 ‘아르민’의 과거 회상과 현재 생활을 충실히 넘나들면서 이어져 나간다. 자신을 너무 닮은 ‘보’를 보면서 진짜 친 아버지를 찾아줄 것만 같은 ‘아르민’ 대한민국에서는 쉽게 납득 불가한 사항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의 종결을 빨리 보고 싶었다. 작가는 마치 내게 질문을 하는 듯 했다. 과연 당신이라면 이 순간 어떤 결정을 내릴건가요하는 물을 끝임없이 던져주었다.
기나긴 여정 끝에 갈게된 진짜 ‘보’의 아버지... 생물학적 아버지와 사랑으로 키운 아버지... 책을 다 읽고 난후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바로 ‘아르민’이 ‘보’를 얻고 자신의 아내와 함께 바닷가를 아주 오랜시간동안 걸어가던 모습이다. 아이를 업은 ‘아르민’은 힘들만도 하지만 힘든 기색없이 행복한 얼굴로 아들을 보면서 바닷가를 걸어간다. 이 모습을 보고 아내는 눈물을 흘린다. 당시 아내의 눈물은 무엇이었을까? 죽은 아내는 진정으로 ‘아르민’을 사랑했고, 아들 ‘보’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죽은 아내가 남겨놓은 메모는 과연 어떤 의미였을까? 책은 매순간 생각하게 만든다.
‘아르민’은 ‘보’의 생물학적 아버지를 찾았지만 그 어떤것도 강요하지 않고 삶에 변화를 주지 않는다. 수주일 지난후 ‘아르민’은 그 이전의 일상처럼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고 아주 편안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음을 작가는 암시해 준다.
내 아들의 아버지는 과연 누구일까? 책은 이 질문을 우리에게 끝임 없이 해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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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의 아버지> 제목만 봐도 대충 어떤 내용의 책인지 알것 같다. 원 제목은 DE PASSIEVRUCHT 인데 우리 나라 말로 하면 <열정>이다. 열정과 내 아들의 아버지는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지만 막장드라마가 판치는 요즘 이런 제목이 사람들의 이목을 이끄데 한몫을 한건 사실이다. 사실 나도 제목에 혹해서 이 책을 선택했으니 뭐 더이상 할 말은 없다.
열세 살 아들을 둔 남자가 지금껏 자신이 불임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이 책은 시작한다. 자신과 아내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와서 자신은 불임이고 그 아들은 다른 남자의 아들이다. 어떻게 된 거냐고 따지고 싶지만 부인은 벌써 저 세상 사람이다. 갑자기 찾아온 혼란 그리고 충격 과연 이 사실을 아들에게 알려야 하는 걸까? 지금이라고 아이의 아버지를 찾아야 하는 것일까? 과연 아내와 잔 남자는 누구인가? 이런 고민끝에 주인공 아르민이 아들의 친아버지를 찾는 이야기다.
아르민은 아들의 아버지라고 의심대는 남자들을 만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아르민은 더욱더 괴롭기만 할 뿐이다. 자신의 사랑을 의심하고 자신이 사랑했던 죽은 부인의 사랑을 의심할 뿐이기 때문이다 괴롭기만 한 아들의 아버지를 찾는 책의 결말은 거의 마지막 부분에서 예상할 수 있었다, 그래도 그 충격은 컸다. 충격이 컸다기 보다는 책을 다 읽고 나서의 느낌은 어의 없다 였다. 이게 우리 나라와 외국문화의 차이인가? 란 생각이 들었다. 옮긴이는 재미있는 문화충격으로 다가왔다고 이야기 한다. 그만큼 이 책에 등장하는 동성과의 섹스, 자유연애는 문화충격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책은 빠르게 읽힌다. 지루하지는 않다. 하지만 아주 재미있다고는 말 못할 것 같다. 그냥 미국권이 아닌 다른 나라의 책을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면 더 좋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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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의 주류 외국문학은 이제는 영어문학과 일본문학으로 양분된 것 같다. 독일어나 스페인어로 된 작품조차 이제는 잘 소개되지 않는 것 같다. 하물며 네덜란드 문학이랴! (네덜란드가 자국의 독자적인 언어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이 작품을 읽으며 처음 알았다. 한국문학이 글로벌하게 어필하지 못하는 최고의 약점을 네덜란드문학도 같이 갖고 있었다.)
책 날개에서 언급된 것처럼 기가 막히게 코믹한 내용을 기대한다거나, 좌충우돌 이벤트로 정신이 없기를 기대한다면 이 작품을 접하지 않는 것이 낫다.
오히려, 작품의 큰 줄기가 되는 '내아들의 진짜 아버지'를 찾기 위한 틀인 '3억대 1의 경쟁' - 이는 배우자가 '한명'일 때 유효한 경쟁이고, 동일기간동안 배우자의 수가 증가할 경우는 서로서로를 이물질로 여기는 생체의 지극한 반응 중 하나인 '거부반응' - 작품에서 언급하듯이 말하자면 '적군과의 전쟁'으로 인해 정말 '네가 죽어야 내가 사는' 생존의 전쟁터로 돌변한다. (물론 이런 전제가 가능할 정도로, 네덜란드라는 국가의 분위기랄까? 너무도 개방적이고 자유분방한 - 나쁘게 말하면 심히 문란한 - 성생활에 대한 묘사도 큰 부분을 차지한다.) 이것이 세상의 험난함이 아닐까.
아내였던 모니카와의 사별 이후에 알게 된 자신이 '클라인펠터 증후군' 환자였다는 사실. (이 질환은 선천적으로 성염색체를 XXY로 갖고 태어나게 되어 신체적으로도 티가 나는 경우가 있는 것은 물론,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불임의 원인이 된다) 그리고 의심이 가는 관계자들을 추적하면서 결국 알게 되는 진실을 접했을 때의 씁쓸함. (진실에 대해서는 작품 앞 1/3쯤에 이미 작가가 분명히 언급하고 넘어간다. '반전'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고... 단지 '설마'가 '사실'이었다는 느낌?)
아무리 자신의 '생물학적 친자'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아들'을 바라볼 때 주인공이 갖게 되는 감정은 이 세상 아버지들의 그것일진대, 모두가 진실을 - 심지어는 아들마저 - 접한 후에 다가오는 모두의 아쉬움은 그들에게 다가온 운명의 장난일 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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