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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퇴계 이황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곤 학교 다닐 때, 교과서에서 배운 것이 전부인 피상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이다. 조선중기 율곡 이이와 더불어 유교를 발전시킨 철학자, 혹은 좀 더 나아간다면 기대승과 벌인 사단칠정론 정도를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보수적이고 관념적인 유교사회에서 당시를 대표하는 유학자의 틀에서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를 못했던 것이다. 또한 조선시대 성리학을 고루한 것으로 생각하고, 당파적 관점에서 그 시대의 사대부들을 바라본다면 퇴계 이황 역시 긍정적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지는 않으리란 생각이다. 그러나 그가 이루어놓은 학문적 깊이나 사상, 그리고 그의 삶속에서 우리는 어느시대, 어느 누구도 따라올수 없는 자성과 사유를 발견할 수 있다. 아마 그것이 현대에 들어와 퇴계 이황이 재조명되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오늘날 우리는 공부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공부하라고 잔소리하고, 자신마저도 공부라는 단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렇게 우리가 말하는 공부에는 학습이라는 뜻이 담겨있다. 무엇인가 배운다는 것, 머리 속에 주입시켜야 하는 것, 그리하여 시험이든 아니면 다른 평가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퇴계가 살았던 조선시대에 공부란 의미는 사람다움을 배우는 것 이었다고 한다. 즉, 지금으로 말하면 인성교육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인성교육에 관한 고전이라면 퇴계 이황의 [자성록]을 빼놓을 수가 없다고 한다. 퇴계가 후학들에게 답한 편지를 추려서 엮은 [자성록]은, 우리에게 공부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가 [자성록]에서 인성교육, 즉 마음공부의 핵심으로 언급한 것이 바로 이 책의 제목인 함양과 체찰이다. 함양이란 학식을 넓혀 심성을 닦는 것으로 마음공부의 중요성을 뜻하고, 체찰이란 몸으로 익혀 실천하는 것으로 생활의 중요성을 뜻했다. 즉, 퇴계는 알기만 하고 행동이 따르지 않으면 참된 공부가 아니라고 보았던 것이다. 퇴계가 말하는 마음공부는 그 시대만이 아닌, 현대에 사는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그는 공부란 조급하게 억지로 해서 되는 것이 아님을, 그리고 출세와 명예욕이 바로 마음공부의 적임을 우리에게 분명하게 알려주고 있다. 벼 싹을 잡아당겨 벼가 빨리 자라도록 도우려는 듯이, 지나치게 깊고 오묘한 데서 이치를 찾으려 하고, 그리고 세상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칭찬받는 것을 쫓는 당시의 세태를 비판한 것도 다 그런 연유이었다. 그러기에 그는 참다운 공부를 위하여 마음을 붙들어야 함을 [자성록] 곳곳에서 그렇게 강조했는지도 모른다. 조기교육, 입시위주, 스펙쌓기, 1등 만능주의, 등 교육의 온갖 폐해가 속출하고 있는 우리사회에서 한번쯤 생각해보아야 할 공부 법이 아닌가 싶다. 그는 또한 이렇게 닦은 마음공부가 생활 속에서 그대로 드러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치는 우리가 늘상하는 생활 속에 있는 것이고, 그러기에 공부는 끝이 없이 계속되어야 하며, 또한 그렇게 해서 알게 된 것은 행동으로 나타나야 한다고 말한다. 그의 삶 역시 앎과 행동이 그대로 일치되는 삶이었기에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각별할 수밖에 없다. 요즘들어 마음공부를 다시금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공부가 무르익지 않았으면 자리를 바라지 말라는 말을 가슴에 새기고 있다. 몇해 전부터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가슴앓이를 시작한다. 마음을 붙들어야 한다고 다짐하고, 또 항상 부족하다는 마음을 가지고 참다운 마음공부를 해보려 하지만, 세상 사는것이 마음대로만은 되지않는 것이기에 가슴앓이는 깊어질 수밖에 없다. 아직도 마음공부가 부족한 모양이다. 그러기에 퇴계 이황이 알려주는 함양과 체찰이 더없이 필요한 때인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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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이란 학식을 넓혀 심성을 닦는 것이고, 체찰은 몸으로 익혀 실천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퇴계 이황은 심성을 올바르게 갈고 닦는 것을 공부라 하였고 일상생활속에서 직접 몸으로 익히는 일이야말로 가치있는 공부라 말했다. 알고는 있으나 행동이 뒤따르지 않으면 참된 공부라 할 수 없다는 말씀이다. 퇴계 선생께서 쓰신 [자성록]은 공부, 구체적으로는 마음공부를 통해 자신의 삶을 성찰하라는 내용인데 지인과 주고받은 편지글 형식의 단아하고도 분명한 화법은 시대를 아우르는 사유와 사물을 꿰뚫어 보는 통찰의 힘이 느껴져서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반드시 읽혀지고 학습되어야 할 소중한 정신적 가치이다.
실용적이라는 점에서 서구적 사고 방식을 취한 현 교육방식은 효율적인 향상을 가져오기는 했지만 반면에 개인의 인성을 드높이는데 어느 정도 발전을 가져왔는지 우리 스스로 묻고 답을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더러 교육의 문제를 학교에서 찾고자 하는데 이는 학생들의 경우 학교에서 지내는 시간이 일상의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선생님과의 만남, 수업과 학습, 친구들과의 분위기, 단체생활에서 지켜야 할 규칙등을 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앞에 나열한 것들이 너무도 당연해서 가볍게 여기고 있지는 않았는지 새겨보아야 한다. 배움이 한창인 시절에 제대로 된 스승을 만나는 것은 일생일대 큰 획을 긋는 일이다. 내게 진정한 스승이 있었던가 가늠해보면 지금의 내 나이 정도의 과거 내가 만났던 선생님들의 흑백영상이 휘리릭 머리를 스쳐간다. 평범한 학생이었고 남다른 재주는 없었지만 그 때의 선생님들이 무심코 던진 말씀들은 하나하나 기억한다. 왜 인간은 긍정적이고 좋은 말보다 부정적이고 뭔가 감정이 섞인 듯한 말이 기억에 남는 걸까? 지금 생각하면 내 나이 정도의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그런 말을 해서는 안된다. 아이들의 인성과 감성에 털끝만큼 도움이 안되고 오히려 아이는 성장하여 기억에 남는 그 때의 엉성한 말의 속뜻을 분명하게 풀이하는 날에 깨닫는다. 어른들 또한 마음공부에 게으르고 현실개탄적인 일상만 추구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함양과 체찰]이라는 퇴계의 편지글은 [자성록]에서 말하는 몸과 마음의 공부법을 밝히는 글이다. 지금 이 시기에 옛글이 고리타분하다고 여기는 이가 있다면 퇴계 선생이 보여주는 대맥락의 전제들을 일깨울 일이다. 그 전제들만 읽더라도 나의 모습이 반추됨을 느낄 것이고 기계도 아닌데 사람에게 붙이는 스펙이라는 단어와 남이 가지지 못한 신기에 가까운 실력 향상을 경쟁력이라 칭하는 모순을 깨닫게 될 것이다. 가장 마음에 깊이 새겨진 전제는 <앎과 행동은 함께 굴러가는 두 바퀴다.>라는 글귀로 내 일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가치있게 여기는 부분이다. 지식만 터득하고 입으로만 지저귀는 안면을 아주 싫어하기에 그렇다. 작은 일이라도 스스로 알고 일상에서 실천하는 행동이야말로 나이를 막론하고 존경의 대상이 된다. 몸으로 부딪치는 모든 일이 공부다라는 말씀은 배움이 한창일 때는 무슨 의미인 줄 잘 모른다. 알겠거니 하고 어른의 입장에서 떠들어대지만 듣는 입장의 아이들은 그 말의 숭고한 뜻을 알아채지 못한다. 뇌의 활성화, 전두엽의 발달이 없이는 스스로 깨닫기 힘들다. 개인의 처한 상황과 경험만이 알려주는 위대한 전제 아닌가.
모든 것이 현재보다 부족하고 힘들었을 과거에도 시대를 풍미한 철학과 인문학적 사유는 깊이가 더했다. 성리학의 시대였던 조선은 유학이 스스로를 옮아매는 마인드의 경계를 벗어나 긍정적이고 올바른 인간상을 형성해가는 시대정신이었으리라. 근자에 동양고전과 올드한 스타일에 내 정신의 흐름을 맡기는 중이다. 올바르게 살고픈 마음에서 우러난 내 실천적 의지라고 생각한다. 틀에 박힌 가벼움이 지겨워지는 시기에 읽어본 책이다. 많은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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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에 대한 조급증이 마음의 병을 부른다/ 뜻을 세우지 않으면 근심이 끊이지 않는다/ 무르익지 않은 공부로 높은 관직을 바라지 말라/명예욕을 잘 다스려라/ 공부를 잘한다는 칭찬을 두려워하라/ 스스로 공부가 부족하다 여기는 마음을 유지하라......
퇴계 이황의 가르침과 삶은 표리부동의 것이어서 더욱 맑고 향기롭다.
옛 선인의 미덕은 단순한 겸손함만은 아니었던것 같다.
현대문명의 이기는 자신도 속이고 세상도 속이는 포장으로 위기를 모면하려한다. 경쟁과 치열한 자리다툼. 그 끊임없는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지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인재됨이 없어서일까. 진정한 퇴계이황의 지식인다운 처신이 그리운 시대이다.
이 시대 리더를 꿈꾸고 있다면 퇴계 이황의 앞서간 행적을 반드시 눈여겨보시라 권유해드리고 싶다. 적어도 퇴계이황의 바람직한 사상과 부끄럽지 않은 지도자의 모습에서 기본적인 덕목을 벤치마킹을 할수만있다면 불협화음은 커녕 존경받는 절대적리더가 되지 않겠는가하는 생각이 든다.
페이지를 뒤적이다보면 행간행간 퇴계이황의 사각거리는 도포자락소리와 그의 밝은 정신세계에 빠져들게 된다. 기대도하지 않았었는데 책을 읽으며 유유자적의 즐거움을 만나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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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위대한 학자 퇴계 이황은 중종, 명종, 선조의 지극한 존경을 받은 학자로 유명하다, 퇴계 선생은 벼슬에서 물러난 뒤에는 후진양성과 학문 연구에 힘을 쓰며 여생을 보냈다. 퇴계 이황은 학문을 통한 수양을 강조하며 마을을 읽는 철학으로 진정한 인간의 길을 제시한 학자다. 그의 학풍은 이이의 학풍과 대립했으며 그의 사상은 일본과 중국 유학계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배움을 통해 삶의 이치와 도리를 깨닫는 것이 퇴계 선생이 주장하는 공부의 의미이다. 공부하는 자세와 바람직한 선비상을 보여준 퇴계 선생의 지혜와 철학, 그리고 마음공부법을 담은 [함양과 체찰]을 만나는 내내 그가 자랑스러웠다.
책의 제목 '함양과 체찰'은 심성을 기르고 닦아 몸으로 익혀 실천한다는 뜻이다. 퇴계 이황은 누구보다 품성을 기르고 닦아 실천하는 삶을 강조한 학자다. 요즘 말로 바꾸면 인성교육을 강조한 학자라는 뜻이다. 그의 사상은 후학들에 답한 편지를 자신이 말년에 추려 엮은 [자성록]에도 잘 나타나 있다고 한다.
[함양과 체찰]은 '공부하는 자세'와 '학문하는 바른 길' 등 심성의 함양, 곧 마음공부의 중요성이 누누이 강조되고 있는 [자성록]을 토대로 퇴계의 가르침을 쉬운 말로 재구성한 책이다. 책은 이황의 철학과 학문은 물론 생애와 삶의 지혜, 이황이 지은 시와 직접 그림 그림을 소개하고 있어 이황의 인간적인 면도 엿볼 수 있다. 어렵지 않을까 살짝 부담을 안고 책을 펼쳤으나 일상 언어로 쉽게 쓰여진데다가 각 장마다 주해가 첨부되어 있어 쉽게 이해하며 읽었다.
이황은 자신이 주장한 함양과 체찰의 삶을 몸소 행한 실천하는 학자였다. 그의 청렴결백한 삶이 이를 보여주고, 학문과 기품이 이를 증거해준다. 그가 말하는 공부하는 사람이 갖춰야 할 덕목은 오늘날 우리가 반드시 새겨야 할 가르침이다. 평생을 공부하는 사람으로 살고자 했던 이황에게서 공부하는 태도와 학문하는 바른 자세를 배우며 그의 공부법에 탄복했다. 오늘날 우리가 따라야 할 지침으로 가득한 이황의 공부법과 학문, 그리고 사상을 읽기 쉬운 문체로 재조명해준 '미다스북스'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서양이나 중국 철학자들에 편중된 출간에서 벗어나 이제는 우리 선조들을 삶과 사상을 재조명하는 작업이 더욱 활발해져 자랑스런 우리 선조들을 더 많이 만났으면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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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성록에 담긴 퇴계의 마음공부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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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대는 지식이 넘쳐나는 세대이다. 못 배운 사람이 없고, 글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자신이 원한다면 대학교육도 언제든지 받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예전에는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특별한 일이 되기도 했지만, 사실 요즘은 특별한 일이라기보다는 누구든지 원하면 자신의 지식을 더 쌓아갈 수 있으며 학력을 높일 수 있다. 단지 조금 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20년, 30년 전보다는 더 나은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지식수준도 한층 더 높은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사람들은 더 황폐해져만 가고 있다. 매번 뉴스를 틀어보면 반인륜적인 범죄가 속출하고 있다. 자녀가 부모를 때려서 죽이고, 먹고 살기위해 배 아파 낳은 자녀를 버리거나 죽이는 시대가 되었다. 더 좋은 환경에서 더 나은 것들로 가득 채워지고 있는 이 시대에 어찌하여 이러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을까? 이러한 사회적인 문제를 ‘함양과 체찰’이라는 책에서 살펴본다. 이 책은 조선시대의 최고 지성인(지금도 퇴계 이황과 같은 지성은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퇴계 이황의 사상을 정리해 놓은 책이다. 퇴계 이황의 ‘자성록’을 배경으로 마음공부법에 대해 정리를 한 책이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현세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가늠해 볼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단순히 지식의 폭을 넓히는 교육을 해 왔던 지난 수년간의 교육방법이 이 책을 통해서 재평가되어질 수 있을 것을 생각되어지기 때문이다. 입시교육에 절어 있는 이 시대에 입시교육보다는 인성교육이 우선되어져야 함이 여실히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먼저 되어야 교육이 가능해진다는 말로 압축할 수 있을 것이다. ‘함양과 체찰’ 이 책을 통해 우리는 퇴계 이황을 만나게 된다. 그의 일생을 통해 그가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일평생을 세상이 주는 부귀영화가 아닌 학문을 닦는 것에만 관심을 가졌고, 그 학문을 후학들에게 가르치고 전수해주는 일에만 몰두했던 퇴계 이황 선생의 삶을 우리는 이책을 통해 생생하게 볼 수 있다. 요즘 들어 사람들 입에서 효를 중요시해야 한다는 말과 효를 교육시켜야 한다는 말이 여기저기에서 심심찮게 들려온다. 어쩌면 효를 교육시킨다는 말은 맞는 말이 아닐 수도 있다. 효란 교육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새겨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모가 그 부모에게 효를 행하는 모습을 보고 효가 자녀의 마음에 새겨지는 것이다. 퇴계 이황이 말하는 마음수련이 이와도 같은 것이라고 생각된다. 바로 몸으로 익히는 공부가 퇴계 이황선생이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라는 아이들이나 청소년, 청년들에게 세상은 조급하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느긋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해 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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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으며 아직 펼쳐지지 않은 마음을 수렴하여 본성을 보전 하는 공부다. 마음의 공부라고 볼 수 있으며, 존양 이라고도 한다. 체찰 : 몸으로 직접 살피는 일로 마음이 이미 펼쳐져 욕심에 빠지거나 나쁜 짓을 하지 않도록 사람의 욕심을 제거하는 공부다. 성찰 이라고도 한다. Page 93~94 제목부터가 좀 쉽지 않은 책입니다. 어떤 내용일까? 제목의 단어조차 알지 못하기에 함양과 체찰이 무엇인지를 찾는 일에 책을 읽었다고 하면 틀린 말이 아닐 것 같다. 책은 퇴계 이황 선생님의 일생과 그의 사상을 말해 주고 있으며, 동양 사상에 있어서 그의 역할과 그의 사고의 세계를 전달하여 주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본다면, 우리가 연구하는 서양의 철학자들 보다 500여 년 전 우리의 조상인 퇴계 선생님은 그 나름대로 사물의 이치와 철학을 만들고 우리를 가르쳐 주셨음에도 우리는 그 분의 사상을 따르거나 배우는 일에 조금 소홀하였음을 느끼게 만들어 주는 내용이었다. 앞부분은 선생님의 일생에 대한 요약이라고 보면 그 다음 부분부터는 선생님이 전하는 편지 속에서 서로의 사상을 논하고 자신의 의견을 보충하며 사물의 이치를 찾아가는데 고민하고 생각하고 어떤 것이 이치에 맞는 일인가를 찾아가는 편지의 내용을 위주로 한 가르침의 글이다. 많이 접해본 단어들이 아니라 글이 쉽게는 읽혀지지 않는다. 많은 동양의 사상에서 퇴계 선생님의 말씀과 알 듯 말 듯 한 동양의 중용과 겸손의 말들이 같이 들어 있기에 처음 몇 장은 어렵게 읽어 내려갔다. 한 줄이 담은 의미가 무겁고 생각을 묻고 답하는 글이기에 한 줄 한 줄 생각의 토를 달면서 읽어 내려갔다. 사물의 선과 악을 말하고 모든 사물에 이치가 있음을 경하게 생각하지 말라 하심 즉 미천한 사물에도 그 이치가 있음인데 사람은 어떻게 그 이치를 저 버리고 살 것인가 하는 질문으로 받아들여 본다. 아마도 동양사상이 가지고 있는 사상이 의와 도를 찾는 길이기에 공자의 인의 사상과 그 의미를 찾는 일 그리고 그 것을 후세에 전달하는 일에 매진한 것이기에 이황의 업적은 조금은 그 성현들의 말을 당신이 살던 시대에 좀더 명확한 언어로 후배와 자신을 채찍질 하면서 마음의 공부를 담아 가신 것이라 생각이 된다. 정치적, 사회적 개혁을 강력하게 부르짖었다기보다는 자연과 인간, 사물과 실제 세계에 대한 원리와 이치를 끝까지 캐물어 들어가는 공부에 몰두한 것이다. - Page67 퇴계 선생님의 생을 표현한다면 평생을 실제 사물에 대한 이치를 캐는 일에 몰두 하였다고 율곡은 말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마음을 공부하는 방법에 대하여 사물의 이치를 받아들이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그를 토대로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면서 후배들에게 사물의 이치를 공부하는 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아직 공부가 무르익지 않았는데 지나치게 높은 자리에 처했다거나 시대를 헤아리지 못하면서 세상을 다스려보겠다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이는 반드시 실패를 가져오는 길입니다. -Page 101 공부를 통하여 자신의 위치를 알고 세상에 전달하여야 할 시기를 가늠하기를 바라셨던 것 같습니다. 펼치기 위해 오만해 지기 위한 공부를 멀리하라 하셨고 공부의 기본을 자신의 마음에 두었음입니다. 유학자의 배움은 높은 곳을 오르려면 반드시 낮은 곳에서 시작하고, 먼 곳을 가려면 반드시 가까운 곳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Page236 급하게 가려는 사람들의 마음을 경계하라 하셨고 깨우침의 이치 또한 순차적으로 순리대로 이루어 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십니다. 이렇게 자신의 지식을 쌓는 일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공부하는 것을 멀리하라하시고 이익이 악을 만드는 근본이라 말씀하시며 스스로 자신을 평안한 상태 그러니까 아무 사심 없는 상태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 사물이 가져야하는 이치와 도를 찾는 일에 몰두하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렇게 찾은 도라 할지라도 타인의 말을 듣지 않고 교만해 지는 것을 두려워 하셨으며, 항상 소통하고 대화하며 자신의 지식감옥에 갖히는 일을 경계하라 하십니다. 이렇게 퇴계선생님은 함양과 체찰이라는 조금 생소한 단어로 우리에게 급하게 얻으려는 이익을 경계하라하시고 사물의 이치를 차곡차곡 이해하면서 자신의 도와 의를 다하기를 바라십니다. 어려운 듯 복잡한 듯하지만 선인의 가르침은 세상을 급하게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정말 자신이 원하는 삶과 그 삶을 영위하는 방법을 알려 주십니다. 무엇이 자신을 만들어 가는 길인지 스스로 공부하고 마음을 갈고 닦으라고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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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유교하면 흔히 중국을 생각하고 한국의 학자에 대해선 좀 경원시하는 것도 사실이다. 오죽했으면 성균관의 사당에도 공자와 이름도 알지못하는 중국의 학자들의 위패만 짜들있고 한국의 대표적으로 이황이나 이이 안향같은 분들의 의패는 구석에 박혀있는 실정이겠는가.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에게도 중국이나 일본보다 더 훌륭한 옛학자가 있었구나 그리고 그 대표적인 분이 퇴계선생님이구나란 사실을 알았다. 퇴계의 인생삶과 그분의 사상을 알기쉽게 풀이해 그냥 전문서적에 비해 해독하고 이해하기는 쉬웠으나 그래도 내 수준이 아직도 천착하는 상태라 이해하는데 부족함을 느꼈다. 그렇다고 옛성인들이 말씀하신대로 백번을 읽을수도 없는일이라 대강의 내용만 잡는다 책 뒷부분에 작은 제목으로 공부는 마침표가 없다는 말이 마음에 살짞 와닿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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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이치를 앎에 있어서의 어려움이 아니라 행함에 따르는 어려움입니다.
기대를 많이 했던 책이다. 조선 최고 지성이라 일컬어지는 퇴계 선생의 가르침이 담겨 있는 책이기도 했고, '마음공부법'이라는 일종의 타이틀롤이 마음에 들었다. 늘 부족한 뭔가를 채워주길, 책을 통해 찾는 사람으로서 '함양과 체찰'은 그 기대를 충족시켜 줄 책으로 보였다. 그러나, 일련의 경험을 통해보면 넘치는 기대는 허망한 실망감을 동반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일말의 불안감을 안고 넘긴 책장이지만, 책의 마지막장을 덮은 지금, 넘치는 기대를 넘어서는 만족감에 행복해 하고 있다.
책의 첫부분은 퇴계 선생의 생애와 학문에 대해 조명하고 있다. '함양과 체찰의 삶, 이황'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이 파트는, 퇴계 선생에 대해 간략하나마 알아볼 수 있는 부분이다. 지폐 속에도 등장하시는 분이건만, 다른 위인들에 비해 그 분의 생애나 학문적인 부분에 대해 무지했다. 어렸을 때 아버지를 여의고, 풍족하지 못한 살림속에서도 공부에 대한 마음을 잃지 않았던 것. 학문과 벼슬 사이에서 많은 갈등을 하고, 중년 장년이 되면서의 학문에 대한 고민, 다른 학자들과의 교류 등이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되어 있다. 퇴계 선생에 대한 예찬이 지나친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분이 고민하며 이루려 했던 학문에 대한 열망을 잘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책의 핵심은 바로 퇴계 선생의 저서인 '자성록'이다. 저서라는 말이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일종의 편지 묶음이기 때문이다. 옛적에는 중요한 편지의 전후 맥락을 알기 위해서나, 후에 편찬을 하기 위해 따로 글을 베껴 보관해 두었다고 한다. 퇴계 선생은 58세 되던 해에 이 편지들 가운데 몇가지를 추려 엮고, 이를 자신에 대한 성찰의 거울로 삼았다. 이것이 지금 우리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곳에서 주목하고 있는 '자성록'이다. 그의 나이 58세라고 하면 한창 학문이 무르익을 무렵이니, 그 안에 담긴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는 나같은 이는 쉽게 가늠하기도 힘들다.
주자학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그 키워드를 '일상'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고 들었다. 퇴계 선생이 자성록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도 크게 틀리지 않은 듯 하다. 각 편지에 실린 내용 그 어디에서도 일상에서의 수양, 공부를 강조하지 않은 부분이 없다. 그 부분이 참 인상깊었다. 늘 공부는 실용적인 것만 하려하고, 아주 어려운 것만이 진정한 학문이고 존경받는다는 의식이 참으로 잘못된 것임을 느끼게 해준다.
전체적으로 보면 비교적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는 책이다. 엮은 저자가 쉽게 다가올 수 있는 말들로 구성한 부분이 돋보이는 장면이다. 그러나, 앞 부분에 비한다면 뒷 부분의 내용들은 좀 어려웠다. 앞부분은 문장 자체가 콕콕와서 박혔다면, 뒤에 실린 문장들은 여러번 곱씹어 보아야 이해가 되는 것들이 많았다. 또,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 이는 그 시대의 주자학이니 성리학이니 하는 것들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쉽지 않을 듯 하다. 하나하나 찾아보고 읽는다면 더 많은 깨우침이 있을 것 같은 부분이다. 아울러 두루두루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며 퇴계 선생이 공부했던 학문에 대해 배워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 하다.
책의 앞부분을 읽으면서, 마음에 드는 부분을 밑줄치고, 한문장한문장을 마음과 머리에 새겨 '인간개조 좀 하자!'라고 마음 먹었었다. 그런데 책을 읽을수록 펜은 저 멀리 치워버리게 된다. 어느 부분 새겨두지 않을 부분이 없고 밑줄치지 않을 부분이 없었다. 450여년도 전에 쓰여진 책이 지금 이 시대의 상황과 현실에 너무도 적절한 가르침을 주고 있음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울림이 큰 문장들이 많다. 그 부분을 모두 옮기기에는 무리가 있겠지만, 몇 가지 발췌하여 소개해 보고 싶다.
무엇하나 얼굴을 달아오르게 하고, 반성하게 하지 않는 부분이 없다. 이 많은 깨달음을 퇴계 선생은 치열한 공부를 통해 얻었다고 생각하니, 편하게 앉아 책을 통해 그 공부를 하려고만 했던 내 자신이 무척 부끄러워진다.
퇴계 이황 선생을 조선의 최고 지성인으로 불리는 이유를 책을 덮고 나니 알 것 같다. 그분이 쌓아놓은 학문적인 업적만으로 붙여진 이름이 아니다. 몇십년이나 나이가 어린 제자와도 서슴없이 학문에 대해 논쟁하는 대목, 늘 학문에 대해 부족하다고 자신을 표현하는 겸양.. 이 모든 것이 그 분을 그리 부르는 이유를 말해 준다. 학문에 대해서는 날카롭고 거침이 없으나, 학문을 탐구하는 자에게는 한없는 자애로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는 퇴계 선생의 성품은, 그 반대의 삶을 사는 이들을 뜨끔하게 하지 않을까?
퇴계 선생은 마음을 다스리는 공부를 하라고 한다. 특별한 곳이 아닌 우리가 생활하는 일상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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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평생학습의 중요성이 새삼스레 강조되는 시절도 없는 것 같다. 자기계발 서적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역사를 새로 조명하는 연구도 활발하다. 특히 고전을 현대의 언어로 재해석하여 책으로 출간하는 경우도 많이 보인다. 예로부터 교육은 사람의 도리를 깨치는 인성교육이고 전인교육이었지만 지식습득의 장이 되어버린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특히 입시제도가 중심이 되어 버린 우리의 교육현장은 어린 학생들까지도 무한경쟁의 무대로 떠민다. 그래서 인성교육의 교훈을 고전에서 찾아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학문하는 바른길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 책이 바로 <함양과 체찰>이다. <함양과 체찰>은 조선이 낳은 세계적인 대학자인 퇴계 선생이 후학이나 제자들의 물음에 답한 편지들을 말년에 다시 추려 모아 책으로 엮은 <자성록>의 내용이 주를 이룬다. 퇴계 선생이 말하는 함양(涵養)은 인간의 본성을 보전하는 마음공부를 말하고 체찰(體察)은 마음에서 욕심을 제거하는 공부로 성찰을 말한다. 책 속에는 퇴계 선생은 율곡 선생에게 보내는 서신을 통해 성리학의 학문 수양 방법인 거경(居敬)과 궁리(窮理)를 인용한다. 거경은 내적 수양 방법이고 궁리는 외적 수양 방법이다. 책에서 말하는 공부법을 몇가지로 요약하자면 공부에 조급증을 가지지 말고 뜻을 세워야 하며, 명예욕을 다스리고 항상 부족하다는 겸손을 가져라는 것이 첫째다. 생활공부와 마음공부가 다르지 않다는 것과 아는 것을 행동하라는 것. 참다운 공부는 마음을 다스려 집중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넓게 익히고 교류하여 스스로 지식 감옥에 갇히는 것을 경계할 것을 이야기 한다. 아마도 그 당시에도 지금처럼 공부를 출세와 권력욕에 이용한 이가 많았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특히 기대성과 <사단 칠정론>에 대해 논하는 서신은 참 흥미롭다. 학교 다닐적에 제목은 들어봤지만 자세한 내용이 기억나지 않기에 더 흥미를 끌었다. 사단(인,의,예,지)과 칠정(희,노,애,락,애,오,욕)을 리와 기로 나누어 설명하는 부분은 사실 좀 어려웠지만 무슨 말인지 희미하게나마 알게 되었다. 2010년 올해는 조선이 낳은 세계적인 대학자인 퇴계 선생 탄생 510주년이 되는 해이다. 1970년 퇴계 서거 400주년 기념 학술행사를 시작으로 퇴계학에 대한 연구가 전 세계적으로 급속하게 늘고 있다니 다행스럽기도 하고, 같은 민족으로서 자부심도 느껴진다. 한국 양명학의 시조인 남시보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퇴계 선생의 독서법이 소개된다. 마음을 괴로울 정도로 심하게 읽지 말고, 많이 읽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답장으로 보낸 서신들로 미루어 퇴계 선생도 생전에 많은 책을 탐독하신 것 같다. 그래서 앞으로 나도 여유로운 독서생활을 하도록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