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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과거를 모른 채 살아가는 주인공이 학생들에게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 하지만 독특한 느낌을 주고 있는 것도 하나의 특징이다. 그 아이러니를 알고 있는 중인공은 맞지 않는 옷을 벗어버리려는 듯 발버둥치는 모습이 행여 땡깡 부리는 어린 아이처럼 보이기도 했다. 학교 안의 선생들이란 정치 싸움하느라 바쁘고 자신은 교실에서 매일 똑같은 말만 읊조리는 앵무새 역할을, 집은 한가롭고 평화롭기만 하다. 전에는 겪어보지 못한 안락한 평화가 그를 더욱 옥죄게 만들고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무에 불과한 것이란 걸 깨닫는다. 결국 자신의 자아를 찾는 주인공에게 ‘형’이라는 변수가 등장하는데 형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누가 진짜 나이고 형인지 알 수 없는 수수께끼를 풀며 나아가고 있다. 초기작이지만 흡입력 있고 한번쯤 자아로부터 독립하여 자신을 바라볼 수 있게 한다. 중간중간에 나오는 유태인 이야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이야기, 루이16세의 도피 이야기는 내용 외적으로 재밌는 사실을 던져주며 흥미를 더해갔다. 개성 강한 문체가 돋보이며 한 번 더 읽고 싶다고 느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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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지적인 소설이다. 바스티유 광장에 찍혀진 어느 사진을 단서로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 여정은, 누군가는 그냥 지나쳤을지 모르는 일이건만, 소설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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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지 않은 분량의 책이지만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책이 어렵다기보다 사유를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고, 역사의 의미를 묻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의문을 품게 한다. 처음으로 읽은 작가지만 <호프만의 허기>란 작품을 들은 적이 있기에 낯설지는 않다. 단지 이 책을 읽기 전 예상한 것 이상으로 생각이 많아지면서 혼란을 가져왔다. 그것은 소설 중 하나의 이야기를 둘러싸고 벌어진 의문의 목소리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려 있다. 마지막 문단에서 이 의문은 더욱 커진다. 나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왜 그런 생각들로 이어졌는지 알 수 있다. 그것은 그 개인의 역사가 뿌리를 잃었기 때문이다. 그가 만약이란 가정에 의미를 두고, 집착하는 것도 그 뿌리를 찾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한 것이다. 그는 유태인이다. 그의 부모는 2차 대전 그 참혹한 홀로코스트로 죽었다. 그에겐 부모와 가족의 기억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 민족과 개인사의 비극 때문에 그가 자란 곳에서 약간의 특별 대우를 받지만 그가 원하는 것은 뿌리와 유대감이다. 이런 상실감은 결혼을 한 후 가족이 생긴 뒤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그가 프랑스 대혁명 시기의 루이 16세의 도망에 만약이란 가정을 하고 집착하는 것은 바로 이런 개인사 때문이다. 만약의 연속으로 가정을 만들어내면서 자신이 결코 가지지 못한 부모의 기억을 상상으로 채운다. 근거 없는 이런 상상은 부실하기 그지없다. 역사학자로 남지 못하고 생계를 위해 학교 교사로 재직하고 자신의 논리나 사유가 아니라 언론이나 다른 주장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학생들의 존재는 환멸감만 키울 뿐이다. 이런 그에게 일탈이 생기는데 하나는 폴린과의 불륜이고, 하나는 비디오 보기다. 폴린은 유대인이다. 그녀와는 같은 민족의 유대감이 생기지만 역사를 보는 시각에선 차이가 있다. 그리고 그녀를 찍은 사진 속에 한 남자를 본 직장 동료가 한 마디를 던진다. 그가 아니냐고. 이 말은 그에게 새로운 상상을 하게 만든다. 그가 뒤늦게 알게 된 쌍둥이 형 필립에 대한 것이다. 이 일은 그가 결코 쌓을 수 없었던 가족의 역사를 만들 기회가 된다. 하지만 이런 집착은 그의 공허감을 더욱 부채질할 뿐이다. 그가 파리로 떠나 역사를 연구하겠다는 생각은 현실 도피로 변질되고, 수많은 논문의 주제는 공상에 그칠 뿐이다. 그러니 그의 역사에 대한 사유가 단절과 가정과 왜곡으로 이어지는 것이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바스티유 광장은 그가 쓰고자 하는 논문의 제목이자 역사적 명소다. 그가 집착하는 루이 16세의 탈출을 가정 속에서 돌이키면서 성공시키고자 하는 것은 바로 수용소에서 죽은 부모의 과거를 돌이키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이 말은 폴린이 지적한 것이지만 그의 심리를 정확하게 나타내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과거의 결핍과 현재의 불만족이 그를 과거에 집착하게 만들고, 현재 가족 속에서 현재와 미래를 만들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한다. 두 딸과 함께 하는 시간이 드물고, 불륜에 빠진 그가 두 딸에게 자신과 같은 경험을 안겨주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비록 엄마와 외가 쪽이 있다고 하여도 아버지 부재의 아픔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에필로그 속 짧은 에피소드가 그의 미래를 어떻게 바꿀지 궁금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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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티유 광장은 프랑스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서울 사람들에게 시청 광장의 의미와 비교해도 될지... 그것과 비교를 한다고 해서 내가 생각하는 느낌을 가져다줄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그런 의미를 갖고 나는 ‘바스티유 광장’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레온 드 빈터의 장편소설이다. 그리고 소설은 파올이 쓰고 있는 ‘바스티유 광장’이란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책 속의 또 다른 책 이야기를 작가는 펼치고 있다. 사람들의 의식엔 어쩌면 그동안 살아오면서 사회에 대한 분노와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 부단한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좌절을 맛보기도 하고 시간에 기대기도 한다. 과거의 모습이 자신의 현재의 모습을 대변한다는 말이 있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그런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현재의 모습을 과거에 기대어 현재 어떤 부분들에 영향을 주었는지 그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해내고 있다. 삶은 시간의 흐름대로 흐르지 않는다. 그러나 역사는 시간의 흐름대로 정리하고 해석하려고 한다. 이 소설을 역사적인 관점에서 보아도 좋은 것이 파올이 역사 논문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가족의 울타리에 얽매인 한 중년 남자의 처절한 모습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리고 유태인으로 살아온 운명과 진지한 삶에서 느끼는 무력감을 다양하게 보여주는 부분, 또한 자신의 형을 찾아 나서는 모습은 어쩌면 프랑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전쟁의 모습과도 비견되는 부분으로 읽히기도 한다. 읽어갈수록 유대인이 가지고 있는 역사의 한 단면을 상처와 현재의 모습을 적절하게 섞어놓아 삶을 아니 지금의 모습을 더욱 더 진지하게 해 주는 면도 발견할 수 있다. 느낀다는 것은 무언가의 영향이 있기 때문이겠지만 나는 이 책을 통해서 내 과거의 삶의 모습을 통해 현재의 내 모습을 떠올려 보기도 했다. 전쟁이란 삶을 두 동강이의 마음으로 만들어 놓는다. 그 속에서 살아남은 자의 모습은 늘 불안감에 휩싸이기도 한다. 넓은 광장은 그래서 늘 사람들로 부적거리는 것이며 그 속에서 마음을 달래기도 한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광장을 통해 작가는 삶의 모습, 즉 내면의 마음을 끄집어내려고 노력한 흔적을 이곳저곳에서 다양하게 보여준다. 전쟁 속의 가족의 모습들이 생생하게 보이고 있는 것들을 읽으면서 나에겐 간접적인 체험의 효과를 가져다주었다. 늘 굶주리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다양한 다큐멘터리에서 느꼈던 느낌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느꼈던 다양함이 더욱 더 강하게 다가왔다. 아마도 상상력을 통해 다양하게 뻗어가는 생각으로 인해 그 모습이 더욱 크게 다가온 것 같기도 하다. 최근에 읽은 소설들 가운데 비교적 짧은 분량의 이 소설이 나에게 고독을 불러일으키는데 많은 영향을 미칠 것 같다. 과거가 현재에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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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에코, 밀란 쿤데라....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에 비견되곤 한다는 작가였다. 나는 우선 호흡부터 가다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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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서서히 책장을 넘기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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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런 작가였구나. 아주 대담하고 솔직하게 말하자면 정확히 말해서 내가 기대했던 '필'은 아니었다. 하지만 꽤 '나이스'했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일상과 익숙해진 인생 자체에 대한 혐오로 인해 무기력증에까지 빠져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 그러다가 이 남자는 자신이 쓰려던 논문으로 인해 새로운 돌파구를 찾게 된다.
조사를 위해 파리로 떠나고 그곳에서 새로운 사랑을 만난다. 그리고 그녀의 사진들을 찍게 되고 그 사진 속에서 언젠가 자신의 뿌리를 찾는 과정을 거치다가 듣게 된 적이 있는 쌍둥이 형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 그 뒤로 그는 열정적으로 그를 찾는 여정에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할애한다.
주인공은 자신의 저작에서 역사의 외면에 드러난 합리성을 불신하라 말한다. 필연이란 없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전쟁 고아가 된 주인공은 애초에 결핍을 가지고 있는 존재다. 그리고 우리는 결핍을 품고 살아오다 권태에 빠진 한 남자를 마주하게 되는 것. 그러다가 그의 인생으로 신선한 바람이 불어왔을 때 그는 그것 하나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게 된다. 거부할 수 없는 그 생의 근본이 그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고 대답을 강요한다. 결국 그는 그 대답을 찾기 위해 그의 쌍둥이 형을 찾아가는 길을 떠난다.
그는 진정 형을 만나게 될 것인가? 그리고 우리는 우리 인생의 합리성에 대해 어떤 결론을 내리게 될까?
궁금하다면 이 책을 펼쳐보시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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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해하다. 주인공 "나"의 의식과 감정에 온전히 빠져들기 어렵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나는 유대인도 아니고 그 전쟁을 겪은 세대도 아니며 무엇보다 그들의 역사에 폭넓은 지식을 갖고있지 못하다. 때문에 주인공이 겪는 이러한 심리적 착란 증세와 집착이 이해가 될 듯 하면서도 점점 멀리하고픈 생각만 가득하다는 것이 이 책을 읽는 동안의 딜레마였다. 어쩌면 시간의 순서와 전혀 상관없이 주인공의 사유에 따라 진행되는 글의 순서도 한 몫을 한 듯하다. 원인과 결과를 유추하기 전에 또다른 원인이나 사건이 나타나고 때문에 결과를 추론해내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 그렇다고 끝까지 의문투성이인 채로 끝나지는 않는다. 결국 독자는 그가 무엇을 고민하고 추구하려 하는지를 깨닫게 된다. 그럼에도 이 열린 결말에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제 이야기가 막 시작된 듯한데 툭! 하고 끝내버린 느낌. 고등학교 역사 선생님인 파올은 한 가정을 책임진 가장이다. 하지만 전쟁 고아(홀로코스트 속에서 홀로 살아남은)로 자란 자신의 정체성에 자신이 없다. 파올은 이름조차 몰랐던 부모의 존재를 찾기도 하고 상상도 하면서 자신을 찾아가려 노력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타난 쌍둥이 형의 존재. 그럼에도 왜 지금 그는 홀로일 수밖에 없는 걸까. 편안한 가정도 그에게 위안이 되지 못하고 "역사"에 대해서는 전혀 배우고 싶어하지도 않는 학생들 사이에서 파올은 점점 염증을 느낀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일탈". 그렇게 시작된 그의 연구와 함께 프랑스에서 만난 폴린, 그리고 사진 속에 찍힌 자신과 같은 얼굴을 가진 한 남자. 이 모든 것들은 결국 파올의 정체성과 연결된다. "당신은 태어나서 부모님 얼굴조차 본 적이 없지요. 당신은 고아로 부모님이 수용소 가스실에서 학살당했다는 의식 속에서 성장해왔기에, 결코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돌이키기를 원하고 있는 거예요. "...99p "만약..."이라는 단어는 항상 후회를 남긴다. 조금만 상황이 달랐다면 조금 더 나은 오늘이 있었을텐데... 라는 후회. 파올이 집착하는 루이 16세 가족의 탈출기는 바로 이런 만약이라는 가정 하에 무수히 바뀌게 될 역사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은 바로 파올 자신의 정체성과 직결된다. 만약 부모님이 살아계셨다면, 친척들이 존재했다면, 형 필립이 살아있다면.... 사진 속의 남자가 정말 필립이었을까. 그저 파올의 착각이었을까. 그 사람이 정말로 형이든 그렇지 않든... 평안과 안정을 줄 가정조차 버릴 정도로 파올에게 중요한 것이었을까. 역사는 이미 일어난 일들이 쌓인 결과이고 때문에 지금의 파올조차 역사의 일부에 불과하다. 그토록 우연을 부정하고 싶었던 한 남자의 처절한 여행이 하편으론 가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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