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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갑자기(Suddenly, Last Summer)',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일을 알고 있다' 처럼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제목이다. 호기심뿐 아니라 실제로 지난 여름에 무슨 일이 벌어졌길래.. 그걸 밝히는 과정이 줄거리이고, 그걸 밝히는 것이 끝까지 이끌어가는 추진력인 작품이다.
59년 작인데 당시 그야말로 쟁쟁했던 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 몽고메리 크리프트, 캐서린 헵법 이 셋이 한 화면 안에서 잡히는 장면을 보는 즐거움이 상당했다. 더욱이 이들이 스타성뿐 아니라 연기력 또한 대단한 배우임을 알 수 있는 것이 이 작품은 장면 수가 정말 적다. 장소 전환없이 한 장면에서 십분 이상 대사를 주고 받으면서 끌어가는 장면이 여럿이라, 대사나 감정 처리가 미흡하거나 대사의 호흡이 짧으면 제대로 해낼 수 없는 배역이라는 점이다. 어떻게 보면 연극적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인데, 내용 또한 대중적이지가 않다.
1937년 여름, 세바스찬이 심장마비로 알려진채 죽음을 맞이하고, 그와 함께 있던 사촌 캐서린(엘리자베스 테일러)은 그 이후 그 당시의 기억을 하지 못한 채 정신병동에서 지내게 된다. 그러는 사이 세바스찬의 모친이자 캐서린의 숙모인 베너블 부인(캐서린 헵번)은 신경외과 존 쿠크로비치(몽고메리 클리프트)에게 거액을 기부 하겠다면서 캐서린의 뇌수술을 부탁하는데.. 베너블 부인은 아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그 상황에 대해서나 당시 캐서린의 행동에 의문을 품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 진실이 제대로 파헤쳐지거나 알려지기를 원치 않는 것이다.
요즘 말로 캐서린은 심한 트라우마를 겪고 정신이 불안해진 것인데, 존 쿠르로비치 박사는 이런 캐서린에에 신뢰를 얻으면 지난 여름에 벌어졌던 세바스찬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히고자 한다. 베너블 부인은 이런 박사의 행동에 제동을 걸며 캐서린의 뇌수술을 집도해달라고 집요하게 요구하는데..
현장에 함께 있었던 사람을 통해 사건의 진상을 정신 의학적으로 풀어가는 이야기야 요즘에는 수사물이나 스릴러, 심리극에서나 자주 등장하지만 이 당시만 해도 이런 소재가 기법이 흔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에 이런 기법으로 이야기를 끌고간 것이나 이런 대스타들을 이 정도로 통솔한 것을 보면 감독의 역량이 만만치 않아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조셉 L. 맨키위즈 감독, '이브의 모든 것''다섯 손가락'같은 명작을 연출한 사람이었다. 역시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는 말이 빈 말이 아니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팬으로서 이 영화는 즐겁게 감상할 수 있는 여러 요소가 있었다. 일단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등 화려한 수상 경력에서 보듯 20세기 최고의 연기력을 선보인 여배우로 꼽히는 '캐서린 헵번'에 비교해서도 결코 밀리지 않는 연기력을 과시했다는 점이 그렇다. 그리고 미모를 앞세워 단순히 멜러 연기만 한 배우가 아니라는 것, 이렇게 비대중적인 작품, 연기력으로 승부를 보는 작품 또한 마다하지 않는 배우라는 점도 그렇고. 더욱이 그녀와 유난히 잘 어울리는 몽고메리 클리프트와 연인이 아닌 의사와 환자로 연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두 사람이 함께 화면에 잡히면 열정적인 키스를 할 것 같이 여전히 어울리지만 '지난 여름 갑자기' 영화에서는 냉철하게 자신의 캐릭터를 잘 지켜가고 있었다.
요즘 드라마 시청자나 영화관객들은 지루한 걸 견디지 못한다. 오죽하면 시작하고 3분 안에 재미있는 장면이 안나오면 채널이 돌아가고, 작품에 대해 이내 시들해진다고 하는데, 그만큼 기다려 주지 않고 가차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도입이 병원의 긴 담벼락에 누가 봐도 정신적인 이상이 있는 환자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화면전환도 많지 않고, 그러니 요즘처럼 현란한 카메라 워킹이나 편집이 돋보이는 화면을 기대할 것이 아니라 배우의 동선과 표정과 대사를 보고 들으며 진득하게 봐야한다.
그런데 아쉬운 점은 역시나 번역이다. 오자는 그렇다 쳐도 짧은 자수에 내용 전달도 제대로 안되니, 쟈켓에 씌여져 있는 내용 소개를 보면 베너블 부인은 아들이 동성연애자라는 것이 밝혀질까 두려워한다고 돼 있는데, 번역을 통해서 보자면 대체 세바스찬에 대한 상황 전달이 제대로 되지를 않고 있다. 단순히 줄거리를 파악하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왜 베너블 부인이 조카 캐서린에게 뇌수술을 하려고 하는지, 왜 그렇게 전전긍긍하면서 아들에게 집착에 가까운 행동을 하는건지..엄마가 아들에게 연정을 품고 있었나? 착각할 정도로 작품의 주요 흐름을 이해하지 못하는 정도가 돼버릴 정도이니.
그럼에도 엔딩 부분은 꽤나 인상적이다. 세바스찬이 죽음에 이르게 된 경위를 마침내 기억해내게 된 캐서린이 그 사실을 고통스럽게 토해내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그리고 아들의 죽음에 대한 진상을 알게 된 베너블 부인이 여전히 까딱하지 않고 도도한 표정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자신의 방으로 사라지는 것도 그렇고. 캐서린은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은 뒤에, 멀쩡한 얼굴로 박사와 함께 떠나는 장면으로 '지난 여름 갑자기'는 마무리 된다. 그렇게 떠나는 캐서린을 보니 안도할 수 있었다. 세바스찬의 죽음 이전의 캐서린의 원래 모습 저렇게 야무지고 당찬 표정과 걸음의 소유자였음을 충분히 감지할 수 있었다. 당당하게 떠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지난 여름 갑자기'의 트라우마를 이겨내고 잘 살아 가리란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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