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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드니, 시간으로 세상을 설명하다.’ -‘지.금.’을 살면서 시간에 대해 사유하는 백만가지 방법
세상에 ‘후’하고 숨을 불어넣듯 시간이 부여되어야 세상은 펄떡거린다. 먹고 먹히고 부수어지고 재조합되는 모든 과정은 시간이 없다면, 시간이 멈춘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수많은 영화에서도 시간이 멈추는 것은 모든 상생활동, 성장과 노화가 멈추는 것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이들이 시간의 멈춤 또한 인지하지 못한다. 시간이 멈추면 인간의 사고 또한 멈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의 한제가 세상의 혼이 된 것은 당연한 것처럼 느껴진다. ‘세상의 혼’, 세상의 영혼은 바로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는 이러한 세상의 모든 시간을 철저히 자신의 일상에서 해석해내고 있다. 개인적 경험에서 비롯된 주관적인 시간개념들에 대한 그의 에세이는 자연스럽게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시간담론들과 연결된다. 아마도 그는 시간이라는 단어에 강박관념을 가지고 일상을 대하는 훈련이 혹독하게 된 사람같았다. 저자에 의하면 동시대를 사는 것, ‘지금’을 공유하는 것만큼 강한 유대의식을 가져오는 것은 없다고 했다. 아마 미래의 어느 시공간에 뚝 떨어진 개인이 무지막지한 개별의식에 외로워할 때 그는 동시대의 사람을 만날 때 가장 기쁠 것이라는 예를 들었다. 그의 얘기를 듣고보니 시간의 공유가 주는 유대의식에 대한 여러 장면들이 떠올랐다. ‘크로아티아 블루’라는 여행서의 저자는 현지의 가이드와 그저 함께 앉아 누군가를 기다려준 적이 있는데 그 가이드 청년이 가면서 그런 말을 하더란다. ‘우리는 시간을 함께 보냈어. 그러니 우리는 이제 친구야’. 유명한 홍콩영화 아비정전 중 장국영은 1분을 그저 보내고는 그 많은 시간 중 “0년0월0일 0시0분부터의 1분을 우리 둘이 같이 보낸거야” 라고 말한다. 그리고 나는 지금 저자의 글을 읽고 있다. 저자가 일상에서 사유하는 시간을 느끼는 그 ‘지금’을 우리는 그의 글로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과거인 저자의 지금을 공유하는 것을 시간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그것도 아주 다른 세상으로의 시간여행인 것처럼 흥미로운 체험이다. 아마도 이러한 경험은 저자와 우리의 세계선(듀드니가 설명한 웰즈의 개념을 이용)의 중첩으로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사유해온 시간의 모든 것이 나열된 그의 시간선이자 세계선에 우리는 접속한 셈이다. 영화 ‘트와일라잇’의 뱀파이어 가족 중에는 가까운 미래를 보는 아이가 있다. 소녀의 미래체험이 그저 흥미로울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제 생각해보니 ‘지금’과 동시에 미래를 간접체험하는 것은 마치 필름이 겹쳐 보이는 어지러움처럼 혼돈스러운 경험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간선의 중첩은 세계선의 중첩과 동시에 이루어지는 듯 하다. 그저 시간이었을 때는 개별의 기다란 형으로 설명할 수 있을 테지만 이것이 물체와 물체의 관계를 설명할 때는 그 선은 거미줄과 같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살아오면서 끊임없이 시간을 공유하고 부딪히면서 시간선을 중첩시켜왔기 때문이다. 갑자기 영화 ‘여자는 미래다’라는 한국영화의 제목이 떠오른다. 저자는 시간을 형상화한다면 우리 모두의 시간은 미래로 향하고 있어서 모두의 시간선은 미래로 향한다고 말한다. 모든 것은 미래로 간다. 그러고 보니 영화에서의 남자주인공들은 여자에게로 향하고 서로 경쟁적으로 여자에게로 다가간다. 아마 이 영화의 감독도 시간에 대한 사유 끝에 혹은 시간담론들에 대한 영향으로 이러한 제목을 내놓게 되지 않았을까. 저자는 지금, 순간, 시간이라는 것의 매혹은 시간에 대한 집착으로 커지고 그것을 기록하려는 의지가 바로 사진 등의 시각예술을 낳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인류의 능력을 벗어난 시간에 대한 호기심이 0.0001분의 1초의 시간을 ‘보이는 것’으로 잡아내려 한 접근방법을 택한 것이다. 사진은 순간을 인식하는 우리의 기억을 연장시키면서 순간의 확장과, 시간에 대한 인식영역을 확장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는 시간에 대한 인식과 담론을 더욱 자극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시간은 우리의 일상에서 더 세밀화되었고 사진은 눈으로 인지하거나 기억해내지 못한 어느 짧은 순간까지도 사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을 것이다. 그가 말하는 시각예술의 연대기를 들으면서 나는 (시차가 있는 국제전화와 같은)통신이 다른 시간대와의 순간적 연결, 과거와 미래를 엮는 묘한 시간의 뒤틀림을 가지고 온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 더 뒤틀린 것이 바로 시각예술 중에서도 영화와 같은 동영상예술일 것이다. (역자의 용어대로 하자면)'미속촬영’은 식물과 동물의 경계를 허문다는 그의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 이는 인류가 보는 것, 아니 볼 수 있는, 시각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의 기준에 의해서가 아닌가. 영상들의 시간조작은 아마도 지금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지금’의 저자처럼 개인적 시간에 대한 표현에 대한 욕구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꼭 1부 현재에 집착적으로 책을 물고 뜯었던 터여서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매우 짧았던)과거와 미래부분을 읽으면서는 계속 하나의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현재의 의미가 과거와 미래라는 순간 또한 결정지을 것이며 현재의 연속선에서 그 ‘지금’이 과거 혹은 미래로 이름만 달리 붙여질 뿐. 이 경계를 과연 구분지을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었다. 현재에서 과거의 유물, 오랜 시간을 존재해 온 무엇을, 혹은 누군가와 마주칠 때의 세계선이 중첩되는 ‘지금’에 의해서만 그 과거의 유물 혹은 사람은 ‘과거’로서의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말이다. 물론 이것은 관점의 차이일 뿐 결과는 차이가 없다. 과거의 존재, 그것의 퇴적으로 인해 ‘나’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과거라는 시간이 ‘현재’보다 더 선행되고 우선되는 개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이는 내 자신이 ‘과거’에 집착할까를 지나치게 우려한 결과일 수도 있다. 세계와 시간의 시작의 우선순위를 논의한 담론들에서는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만큼의 우매한 질문인 것처럼 느껴졌다. 시간과 세계라는 물질성은 동시에 시작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무언가의 탄생에는 그에 대한 바탕이 되는 작용들이 끊임없이 있었을 것이고 그들이 탄생하려면 또 그 이전의 작용들이 필요하고 어떤 생명이든 작용이든 그것이 탄생하려면 시간이라는 것이 존재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영원’이라는 개념을 미래가 아닌 과거에 두어야 하지 않을까. 미래로의 '영원'이라는 개념은 불확실하지만 과거의 영원만큼이라면 이는 공감이 된다. 과거의 시간 선상에는 분명 '영원'이 존재했으며 미래의 영원은 정말 세계(세상이라고 해봤자 내가 인지할 수 있는, 혹은 나의 죽음과 그주변까지겠지만)의 종말과 함께 더 이상 ‘지금’ 없어지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시간의 멈춤에 따라 세계도 '끝'이 아닐까. 저자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러니까 우리가 정한 과거로부터의 현재의 시간담론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이지만 시간을 사람들이 규정짓고 분절하고 더 쪼개고 시간을 시각화하려는 여러 담론이 여기저기에서 삐져나왔을 뿐 과거에 느끼는 지금이 현재에도 존재한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말하고 있는 듯 하다. 저자는 끊임없이 현재, 자신의 일상 속에서 각각 다른 주관적 시간들을 발견하고 그 지금들의 연속이 바로 시간이니 말이다. 경계를 알 수 없는 무지개를 무지개로, 모호한 무지개의 색깔층을, 단지 언어만으로 빨, 주, 노, 초 ... 라고 경계짓는 언어의 분절성처럼 시, 분, 초라는 시간에 이름붙이기 작업 또한 인류의 가장 큰 분절작업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시간이름문화는 로마인들이 인식하고 있던 것처럼 연속적인 것을 자르는 것에 불과하며 아무래도 자본주의의 약속에서만 의미가 있어 보인다는 회의도 든다. 저자의 감성적 시간 안에서 그것은 아침이 오려고 하는 찰나이기도 하고 해가 지려는 찰나이기도 하며 ‘순간’이지만 엄청나게 또렷하게 기억할 수 있는 긴 시간이기도 한 주관적 시간을 살고 있으면서 그저 보편적인 순간으로 묶으려는, 인위적인 인간의 산실만 같다. 이에 대해 아무 사유 없이 그저 시간을 살 수 있다는 것은 저자의 말처럼 시간개념이 하나의 신앙에 가깝기 때문인 듯 하다. 시간이름문화란 여느 사회적 약속, 언어 혹은 문화, 신앙과 다를 게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이 책을 읽는 독자의 반응은 정말 다양할 것이다.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좋든 싫든 시간에 대한 끊임없는 사유를 권유받게 된다. 그 결과로 시간을 꼼꼼하게 잘 쓰며 현실적 의미를 가지고 효율적인 결과를 위해 노력하는 자기계발적 의미로 받아들이는 독자도 있을 것이고 모든 순간의 중요성, 소중함에 대해 잊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나같은 경우는 이런 결과를 가져왔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안데스 산맥의 아이마라족 이야기에 영향을 많이 받았나보다. 그들이 특별히 다르진 않다. 우리도 과거의 존재들을 앞세대라고 하고 미래의 세대들을 후세대라고 말하지 않는가. 그들처럼 우리는 앞세대라고 말할 때 팔을 앞으로 뻗는 제스처를 할 것이고 뒷세대라고 할때는 어깨 뒤로 엄지를 가르킬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미래에게 이름을 붙였다. 이미 말한 미래가 지금이 되는 이 순간을 포함한 모든 미래에게 ‘좋은 미래’라고 이름을 붙였다. ‘좋은 미래’는 지금 내 뒤에 있고 열심히 나를 따라오고 있는 중이다. 아마도 ‘좋은 미래’는 내가 적당히 천천히 걸어주어야 내 뒤에 더 바싹 붙을 수 있을 것이다. 바쁘다고 ‘지금’에 지나치게 열을 올리고 ‘과거’의 꽁무니만 쫓아가려고 집착하다 보면 ‘좋은 미래’는 내 등에서 점점 더 멀어질 것이다. ‘좋은 미래’는 항상 같은 속도로 느긋하게 오고 있다. 내가 이 시간의 연속선상에서 즐겁고 느긋하게 몸을 놀려야 ‘좋은 미래’와 더 친밀해질 수 있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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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심오하고 신선한 책이다. 3월부터 11월까지 변화하는 자연을 느끼고 그 속에 시간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펼쳐보인다. 각 장이 시작될 때 묘사되는 자연은 그대로 시심을 드러낸다. 아는 만큼 느낀다는 것을 다시금 새겨보게 된다. 시간의 단위, 아주 작은 것부터 아주 큰 단위까지 사유는 변화무쌍하고 우주의 탄생에서 종말까지... 매우 인상적이었던 것은 1000조분의 1초라는 펨토초이다. 펨토미안이 인간을 보면 석상인줄 알꺼라고. 어떤 것은 눈을 뜨고 있고 어떤 것은 감고 있고. 그런데 아주 미세하게 움직이는 것 같은데, 나중에는 이것을 생명체라고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상상에 웃음이 툭 터진다. 우리의 우주는 시간과 함께 탄생했고 결국은 인류가 태어나게 되어있었다는 당연성. 그리고 언젠가는 소멸할 운명인 우주. 너무 많은 과학적 사실들을 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시간, 우주, 생명대 대해 생각하고, 무엇보다 지금의 소중함을 깨닫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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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대지와 풍경을 배경으로 한 한폭의 그림을 보는 듯 하다. 그 그림속에 우리에게 시간이 무엇이고, 왜 한정된 시간 속에 우리의 삶이 있으며 시간을 되돌리기 위해 머리속에 과거의 흔적을 남겨둔 인물들의 고뇌를 그린수채화가 그려진 병풍인듯하다. 첫번째 화폭에는 인류의 탄생에서부터 방금 타이핑한 한글자 쓰기를 마친 시점까지의 과거에 대한 그림을 그렸고, 두번째 캔버스에는 우리를 스쳐지나가고 있는 현재를 세번째는 미래에 대한 상상과 이론을 그림으로 옮겨놓은 듯 하다. 우리에게 있어 시간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국한된 세월의 흐름만으로 인식하고 있으나 시간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조차 부족했던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현대의 모든 전자기기에는 디지철시계가 흔하고 붇어있고, 이제는 장식용으로 벽면을 장식해 놓은 시계가 있다. 그러나 우리 시대 이전에는 하늘높이 떠있는 태양의 도움으로 시간을 측정할 수 있었고 물로 시간의 흐름을 측정할 수 있었다. 저자는 과거의 시간측정에 관한 한편의 에세이를 통해 시간을 측정하면 할수록 일초, 펩토초에 숨겨진 순간순간의 시간에 대해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려준다. 과거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남겨진 흔적에 의해 과거를 되짚어 볼 수 있다는것으로 그러나 그것을 체험할 수는 없음으로 개인에게는 그만큼 소중한 시간을 후회없이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기를 우리에게 바라는 듯하다.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시간과 공간과의 관계로 이는 분리해서는 생각할 수 없는 "시공간"이라는 개념을 탄생시킨 계기가 되었고, 미래를 여행하기 위한 수단을 개발하기 위한 기초가 된듯하다. 숫자로서 표현하기 어려운 그래서 더욱더 많은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 우주의 존재와 더불어 시작된 시간의 개념에 대한 해석이 아닐까 생각한다. 또한 미래는 어쩔 수 없이 우리가 맞이해야 하는 시간인가 하는것으로 이론적으로는 타당성이 잇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해하기 힘든것 또한 사실인것 같다. 우리에게 시간이 없어진다면 시공간을 초월하여 모든것이 "무"로 돌아가는것인지에 대해 상당히 흥미롭게 감상했다. 블랙홀에 빠져드는 순간 모든 사물이 "무"로 돌아간다는.....어찌보면 어릴적 공상만화에서 본듯한 사실들이 이제는 조금씩 이론적으로도 접근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한편으로 재미있는 사실이나 시간이 흐르지 않는 우주와 지구, 나는 어떤 형태의 모습일지 궁금해진다. 시간을 쪼갤 수 있을까? 쪼갤 수 있다면 우리는 그 속에서 영원할 수 있을까? "제논의 화살"이론에 대해 아주 흥미로웠고 비록 이론적이지만 시간을 반분에 반분을 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속에서 영원할 수 있을것 같은 착각을 한다. 본 "세상의 혼"을 통하여 저자는 우리에게 시간의 인식 단계에서 부터 미래의 시간에 대한 논의에 이르기까지 그림을 설명하듯 전달하였으며, 시간 측정의 역사와 타임머신에 대한 가능성(과거로의 희귀), 범우주적 관점에서 논의되고 의견이 분분한 면에 이르기까지 독자들에게 시간이 무엇인지 잔잔한 세폭 병풍같은 수채화로 우리에게 알려주고자 하는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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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해가는 시간의 흐름을 뜻깊게 생각하면서도 그 굴레 안에서 실제 되풀이 되는 하루 하루의 것에 대한 익숙함으로 다소 느슨하고 당연하게 여기게 되는 것들이 많다. 그래서인가 그 의미를 되새기지 못하며 시간의 흐름에 편승해 복작거리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어김없는 시간의 순환과 그러함에 따른 의미의 것을 모두 다 제대로 하지 못하기에 주관적 평가의 것으로 자기만의 의미 부여를 하거나 전체적인 동조의 평가에 의존하는 우리들에게 새로운 관점의 관찰을 더불어 해본다.
과거의 그 어떤 것에서 부터 지금 그리고 이후의 또다른 시간으로의 연관성을 생각해 보게 된다. 명확한 확인과 이해를 할 수 없지만 그 존재의 것에 대한 구분을 해가는 우리들은 같은 굴레 안에서 추구하는 것이 다를지라도 살아가고 있다는 삶의 의미는 같기에 공감하고 동질화 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간혹은 우리들이 그 의미를 보다 뜻깊게 부여하지 않고 무관심하게 일관하기도 하는 모습을 보인다.
함께 하며 끓임없이 거듭되는 사고와 행동을 통해 만나지게 되고 겹쳐지게 되는 시간성의 되풀이를 하고 그러한 것들로 인해 시간에 대한 집착과 재확인과도 같은 것들을 시도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찌보면 구분해 알고 행해가는 시간의 시,분,초와 같은 미세한 구분의 상황을 깊이 새겨낼 수 있게끔 노력하고 그것으로 보다 깊고 너른 생각의 기회를 만들려 하는 것이 아닌지 생각된다. 그래서 과연 그 흐름의 것들에서 의미있다고 여겨지는 것을 어떻게 함축시켜 가고 있는 것인지를 살펴 보게 된다.
보다 근본적인 시간의 의미를 알지 못했기에 서툰 시간의 수용과 누림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시절도 있고, 부대끼며 불안해 하는 매여진 시간의 때도 있었기에 어떠한 시간의 것으로 얼마만큼의 헤아림을 해 갈지 상상은 해보지만 감당하지 못하는 것은 그 어느 누구도 그 모두를 완전히 이해하고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시간에 대한 철학과 과학은 물론 여러 이야기들은 물론 시간의 형성과 시작 그리고 그 이후의 것까지도 생각하는 듀드니의 이야기는 미처 가늠하지 못한 여러 측면의 것들이기에 다소 생소하기도 하지만 새롭게 이해해 갈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일상속의 시간에 대한 생각의 것들을 해보며 이전의 발생과 전후의 것에 대한 이유나 과정을 것을 고찰해 보게 되면서 그러한 과정의 것을 다시금 소중하게 여기게 되고, 현재와 이후의 가늠할 수 없는 새로움에 대한 것을 자연스럽게 추론해 보는 기회가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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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열기가 뜨겁다. 스피드 스케이팅이나 쇼트트랙을 보다 보면 저절로 손에 땀이 나고, 다리에 힘이 들어간다. 0.01초 우리가 살면서 느껴볼 수 없는 시간의 단위. 하지만 선수들은 백만분의 1초, 천만분의 1초를 위해 땀을 흘리고, 올림픽을 기다린다. 그리고 그 몇 초의 차이로 승부가 갈라지고, 메달의 색이 달라지고, 희비가 엇갈린다. 승부의 세계는 냉정하고, 결코 시간은 돌릴 수 없다. 1초라는 시간에 대해 요즘처럼 많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얼마 전 봤던 ‘아마존의 눈물’에서 사냥을 언제 갈꺼냐는 제작진의 질문에 ‘해가 머리 위에 떠오르면 간다’라고 대답하던 장면이 인상적이였다. 원시부족인 그들에게 시계는 있지도 않지만 있을 필요도 없어 보였다. 그들은 조상 때부터 습득한 대로 자연의 시간에 맞춰 행동하면 그만이였다. 초조하지도 않고, 평온한 그들의 모습에서 출근시간에 쫓겨 아침밥을 거르고, 만원 버스에 시달리며 종종걸음 치는 우리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건 왜일까? 몇 년전 ‘아침형 인간’이란 책이 열풍이였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모이를 먹는다’는 속담처럼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빨리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알차게 보내야 성공한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 열풍 속에 어릴 적부터 몸에 밴 ‘저녁형 인간’인 나는 죄진 것도 없는 죄인처럼 움츠려 들었다. 왜 꼭 일찍 일어나야 하는 건가? 늦게 일어나지만 그만큼 저녁 시간을 잘 활용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誤히려 해가 져야 머리가 잘 돌아가는 사람도 있을 텐데 말이다. 어차피 그게 그거 아닌가.. 시간은 어디에도 없고, 잡히지도 않지만 지금도 흘러가고 있다. 우리가 시간을 느낄수 있는 건 시계의 째깍거리는 소리와 바늘을 움직임에서 뿐이지만 시간은 변함없이 움직인다. 과연 시간이란 뭘까? 왜 우리는 보이지도 않는 시간에 집착(?)하는 것일까? 이처럼 <세상의 혼-시간을 말하다>는 시간에 관해 작가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기록한 ‘시간대백과’ 같은 책이다. 봄에서 시작해 여름과 가을을 지나 겨울이 되기까지 과정을 과거, 현재, 미래와 맞춰 진행되는 이야기를 읽다 보면 분야를 아우르는 작가의 통찰력에 한번 놀라고, ‘시간’을 주제로 이렇게 많은 이야기거리가 있다는데 두 번 놀라게 된다. 미시적 시간과 거시적 시간 사이 나의 시간은 어떤 곳의 어디쯤에서 어떻게 흘러가는지 궁금하다. 또 하루하루가 쌓여 그 사람의 일생이 되고, 인생이 된다는데 죽음을 앞둔 순간 펼쳐질 삶의 순간들을 나만의 속도로 분별해서 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우주는 넓고, 시간의 속도도 다를 테니 어딘가에 존재할지도 모를 과거의 나와 미래의 나를 만나볼 수는 없을지 뭐 그런 공상과학 소설 같은 생각도 해봤다. 그러고 보면 ‘시간’이란 게 단순히 정의 내리기 힘든 대상이다. 누구나 갖고 있지만 모든 사람이 인지하지 못하며 공평하게 주어지는 것 같지만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지 만도 않은(자신의 선택이 아닌 타의에 의해 빛도 못 본 채 죽어가는 아이들을 비롯해 질병과 가난, 사고로 고통 받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세상에 아직도 많으니깐) 시간을 그래도 우리는 지금 갖고(?) 있으니 감사해야 할 것 같다. ‘우리가 헛되이 보낸 오늘이 어제 죽어간 사람이 그토록 바라던 내일’이라지 않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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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에 관한 책이니 시간과 관련해서 말하자면,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나의 리뷰는 정말 시간과 관련되어있다고 말하기엔 억지스러운 것 같았다.
사실 그 사이에 책을 완벽하게 다 읽었다.
..지금은 현재인가..방금은 과거인가..지금은 영원이기도 하지. 라는, 책을 다 읽고난 직후의 후유증으로 머리가 핑 돌때에 리뷰를 썼어야 했는데.
지금은 또 시간이 지나버려 그 때와는 또다른 느낌이긴 하지만, 뭐.
왠지 수필집일 것 같았는데 사색집 같기도 하고.하지만 철학적인 고찰이나 역사적인 기록이 들어가 있기도하고. 기묘한 책이'었다'. 책을 읽고나서, 책을 덮고난 후에 (물론 좋은 말들이 얼마든지 많았고 여전히 책에는 수십개의 포스트잇이 붙어있지만) 잔상이 오래남는 단어들을 부연묘사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시간의 상대성
내가 좋아하는 색즉시공(영화가 아님)처럼, 여기에서도 순간은 영원이다 라는 역설적인 메시지가 중간중간 나온다.
시간은 상대적이라는 것인데,
'나의 그이와 있으면 시간이 화살처럼 날아가는데, 저놈이랑 있으면 한시간이 반년같아.'가 바로 우리가 이미 시간의 상대성을 느끼며 살아가는 대표적인 예다.
나역시 최근 거의 한량 백조에 가까운 방학생활을 보내다가 갑자기 아침 7시부터 저녁 10시까지 각종 수업과 과외, 짬짬이 밥, 수다로 이어지는 개강생활을 하다보니지난 5일 전, 개강 직전의 월요일이 2주 전처럼 느껴졌는데
반대로, 장기적으로는 대학교에 갓 입학한지 너그럽게 2년 정도 된 것 같은데 사실은 5년전이었다.
내가 이 사실을 아인슈타인보다 먼저 알았더라면!... 에잇 분하다..
이러한 것과 더불어 이 책에서 다루는 시간의 상대성은 초의 분절과도 연결된다. 인간은 1초를 얼마나 쪼갤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쪼개진 n분의 1초를 현재의 1초로 환산한다면 현재의 1초는 얼마나 긴 시간이 되는 것일까. 여기에서 순간 = 영원 이라는 역설이나온다. 더이상의 스포는 하면 안 될 것 같다. 절대 생각나지 않아서가 아니다.
2. 시간여행
할머니의 패러독스, 란 말을 들으면 왠지 '나이 들으면 애가 된다'라는 역설적인 속담이 생각날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할머니의 패러독스란 내가 시간여행을 가서 젊은시절의 할머니를 죽인다면 나는 어떻게 되는가. 에 대한 문제이다.
이 책에서는, 물론, 이에 대한 답은 제시하고 있지 않다. 이 책은 과학책이 아니니까. 다만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시간여행의 허점이나, 과학적인 원리,이런 것들에 대해서 나같이 - 고등학교 물리시간에 자체자율학습으로 스도쿠를 공부한 -과학에 무지한 사람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설명해 놓았고, 자신은 어떻게 시간여행을 했나. 에 대해서 놀랍도록 평범하게 써 놓았다.
예를 들어서 나는 내가 책을 읽은 그 시점을 생각하며 이 글을 쓰고있다. 잠시 남자친구에게 전화가 와서 전화를 받는다. 전화를 끊은 후에는 2년 뒤에 결혼을 한다면 이렇게 밤마다 전화할 일은 없을텐데 하며 잠시 신혼의 므흣한 상상을 한다. 그 뒤 밤이 깊었다는 사실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다시 컴퓨터 앞으로 복귀한다.
이것은 시간의경과에 따라 서술된 아주 평범한 문장이긴 하지만 나는 방금 과거 - 현재 - 미래 - 현재를 잠시 다녀왔다.
물론 책에서는 작가의 경험으로 좀 더 쫀득쫀득하게 잘 써놨다. 위에 껀 패러디인데 패러디라고 할 수 있는지 저작권침해인지(아닐 것 같지만)모르겠다.
어쨌든, 요컨대, 우리가 그 때를 추억하는 바로 그 때가 시간여행이라는 거다. 그러니까 백투더퓨처를 부러워 하지 않아도 된다.
다른 키워드가 많지만 왠지 책내용 리뷰는 그만써야겠다.
음..그래서 느낀점은 내 눈에 순간적으로 지나가는 모든것들을 아끼고 사랑해야겠다. 시간은 매우 아름답고 소중한 것이며....어쩌고..는 아니고,
현대인들은 너무 바쁘다. 아침형 인간이 체질도 아닌데 일찍 일어나야하고, 돈을 더 주는 것도 아닌데 야근도 해야한다. 점심시간은 한 시간밖에 안돼서 밥먹고 소화 좀 시키면 바로 복귀해야하고 심지어 편의점은 24시간이다. 그 곳의 야간알바는 상상만해도 졸음이 쏟아진다.
그래도 뭐. 나는 전생에 착한 일을 많이 해서 그나마 이 시대에 인간으로라도 태어났으니, 이 책을 읽고 난 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닥치고 현명하게 살아서 비가오지않는 날에 15분은 산책하고, 하늘도 한 번 보는 정도가 아닐까.
어쨌든 이 장르 불문의 요상한 책이 난 참 좋다. 군더더기 없이, 문장 사이사이에 빈틈없이, 갈끔하고 쫀쫀하게 글을 참 잘 썼다. (잘 옮긴 걸지도 모르겠지만.)
예쁜 디자인과 기능의 스킨을 사고나면 같은 라인의 로션이 사고싶어지는 것처럼, 난 이놈과 똑같이 생긴 같은작가의 '밤으로의 여행'도 읽어보고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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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현재, 오늘, 지금이라는 시간과 관련된 개념 속에서 한 순간도 빠지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사실이다. 솔직히 크게 의식하지 않으면 시간 또한 공기처럼 늘 나와 함께 하는 것이어서 잊고 살아가기 쉽지만 시간에 대한 고민은 진정 인간이라면 필요하고 호기심을 가지고 탐구하게 되는 것이 사실일 것이다. 왜냐하면 나를 포함한 인간들은 어떻게 하면 시간을 잘 사용할 수 있을까를 끊이임없이 고민하게 되는 시간에 대한 욕심이 욕망의 저변을 장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과연 '시간'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라는 의문을 저자는 시간에 대한 모든 것을 이야기하면서 이 책에서 풀어내고 있다. 처음에는 <세상의 혼>이라는 제목에 치중하여 어떤 내용일까, 도대체 세상의 혼이란 어떤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에 생각이 맴돌아 있었는데, 이 책을 읽다보니 작은 소제목으로 나오는 '시간을 말하다'는 것의 의미에 더 깊은 탐구를 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전개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간에 대한 이야기는 이 책에서 막연하게 전개되지 않는다. 시간이라는 것은 한없이 막연해보이지만 우리의 실생활에 맞닿아 생각해보면 그것은 너무나도 구체적인 개념과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 책에서는 지금이라는 시간은 어떤 의미이고 그 형태를 어떻게 말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자세하게 다루면서 시간에 대한 개념을 독자들이 접근하기 쉽고 이해하기 쉽게 이야기를 해준다. 그리고 우리가 평소에 재미있다고 생각하며 호기심을 발산하게 되는 타임머신, 슬로머션, 시간여행 등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시간의 개념과 접목하여 당신은 시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독자들에게 이야기를 걸고 있어 시간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세상, 우주, 진리 등등의 개념들에 흥미를 갖고 읽기에도 좋은 책이다.
무엇보다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시간에 대한 여행을 해보면서 나의 시간 속에서 나 자신은 얼마나 행복한 삶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가를 돌아볼 기회를 얻게 되었다는 점에서도 이 책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 특별한 시간에 고민을 열어준 이 책은 한 번 읽고 덮을 것이 아니고 오늘, 지금 이 순간을 살면서 시간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는 순간순간에 다시금 읽고 의미를 찾아볼 책이라는 점에서 너무나도 고맙고 반갑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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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시간에 관한 철학적 문학적 과학적 시적 주제 뿐 아니라 일상적인 주제까지 다룬
그야말로 "시간의 모든 것"을 다룬 책이다.
내가 지금까지 한번도 시간과 관련지어서 생각지도 못한 것들과 시간과의 접점을 밝히는 글을 읽노라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시간으로 통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인 크리스토퍼 듀드니는 우주론에서 화석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방면에서 해박한 지식을 자랑하며
또한 그 이야기들을 정말로 아름다운 문장으로 표현한다.
크리스토퍼 듀드니를 시간의 요리사에 비유하자면 그는 세상의 모든 식재료를 능숙하게 다루는 요리사라고 할 수 있다.
전통요리부터 현대요리까지, 소박한 음식부터 화려한 음식까지, 그리고 다양한 나라의 모든 요리들을 다 맛있게 만들어 낸다.
아직은 봄이 오기 전의 어느 날 싸늘한 밤에서 시작하는 이 책은
비가 와서 길이 물에 잠기고, 첫번째 이파리가 돋아나고, 한 송이씩 꽃이 피기 시작하다가 이윽고 더운 여름이 오고,
카리브해의 아름다운 섬으로 휴가를 떠났다 돌아오고, 해가 짧아지고 가을과 겨울이 오는 계절의 변화에 맞추어
시간에 얽힌 이야기들을 하나씩 하나씩 아름다운 무늬를 넣어 길다란 직물을 짜듯 엮어나간다.
마치 저자가 출연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보거나 혹은 일기를 읽는 듯한 경험을 하게 하는 이 책의 서술방식은
저자와 함께 한해의 흐름을 같이 느끼고 시간에 대해 생각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에 "시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너무나 좋은 방식이라 생각된다.
책을 읽으며 머리를 한 대 때리는 듯한 통찰력 있는 글과 밑줄을 그어 놓고 여러 번 읽으며 외우고 싶은 아름다운 문장이 나올 때 마다 책갈피를 끼워 놓곤 했는데
그 책갈피가 너무 많아져서 나중엔 그냥 넘어가기도 하고, 끼워 놓았던 책갈피가 빠져버리기도 해서
이제는 조금 시간이 흐른 후, 내가 시간에 대해 무덤덤 해 질 때에 다시 한 번 꺼내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내가 처한 상황에 따라 시간은 슬로비디오처럼 길게 느껴지기도 하고 혹은 미속촬영 영상을 보는 것 처럼 짧게 느껴지는 때가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지구 반대편 사람들과 실시간으로 대화할 만큼 좁은 세상에서 바쁘게 살고 있다.
이에 대한 저자의 다음 글을 읽고는
마치 무엇인가 중요한 것을 잃어버렸는데, 그게 무엇인지 생각이 안날 때의 안타까움과 비슷한 감정이 느껴져서 정말 마음이 아렸다. [ 개인 거리와 프라이버시는 점점 더 희귀해지고, 무언가를 성찰하고 명상하고 헤매일 시간, 즉 세상에서 떠날 자유가 허용되는 자연스러운 마음으로 있을 시간이 없다. 그런 자유는 사치가 되었다. 천천히 시간을 들여 무언가를 하는 것은 오락적 방종이 되었다.]
나는 결코 "잃어버린 시간"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니
바로 "지금" 이 시간을 "영원"한 나의 시간으로 만들어
"지금" 안에서 "영원"히 존재하려면
내가 시간의 주인이 되는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지금도 그렇고 늘 시간에 쫓겨 다니기만 하니.....
나는 시간의 주인이 되려면 아직도 멀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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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의 산]에 이어 '시간'에 관한 사유를 깊게 해 준 책이다. 세상을 채우고 있는 것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연속되거나, 항상 누구든 곁에 있는 모든 것들은 그것들 중 하나가 될 것이다. 공기, 물, 아침, 밤, 태양, 흙, 하늘... 듀드니는 '시간'에 대해서 깊은 사유를 했다.
시간에 관한 에세이 같기도 하고, 백과사전 같기도 한 이 책에서는 현재, 과거, 미래의 시간에 과학적 근거를 더해 시간에 관한 지식을 쌓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건 독자인 나. 내가 '시간'에 대해 사유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이 책의 어느 부분에 등장할 때는 무척 흥미로웠지만 그 보다 내 손길을 페이지에 잡아두는 것은 그가 사색하는 시간, 꽃봉우리를 막 틔우는 철쭉. 반 시간동안 그것을 지켜보는 듀드니의 사색은 내가 꽃을 한참동안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고요한 밤. 밤의 사색도 그러하다. 도심의 아파트에 사는 나는 그런 시간을 좀처럼 갖기 힘들다. 최근엔 1년 중 두 세번도 안된 듯 하다. 그런 고요한 시간을 이 책으로 위안삼으며 아이돌보는 시간에 짬짬히 명상에 잠기곤했다.
'시계의 시간은 추상적으로 보이고, 달이 뜨고 별이 지는 것처럼 내가 경험하는 연속적 시간과는 단절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 page 81 여기에서처럼 우주 속의 거대한 시간을 비롯하여 책에서 언급하는 수많은 시간들 중, 다른 시간들은 나와 별 상관없다. 내가 경험하는 시간 속에서 과거가 존재하고, 현재의 시간이 있고, 미래가 계획된다. 늘 1초가 짹깍짹깍 흘러가지만 그 시간을 잡을 수는 없다. 그래서 현재는 항상 과거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기분이 울적해진다.
에세이집은 그닥 좋아하지 않지만 듀드니의 책은 예외가 된다. 아직 읽어보지 못한 [밤으로의 여행]도 나를 깊은 사색의 시간으로 안내할 것 같아 두근거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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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란 우리에게서 무엇일까? 아니 늘 우리와 마주하고 있는 시간의 본질은 과연 무엇일까? 우연하게도 작가는 그 근본적인 문제의 접근을 3월의 봄날 자신의 정원에 찾아든 올빼미와의 극히 짧은 만남으로부터 시작한다.
이렇게 시작된 작가의 시간으로서의 여행은 고대부터 현대의 현자들의 철학과 학문적 지식을 바탕을 동행시켜 시간에 관련한 세밀하고 진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우리에게 보여준다.
우리는 과거, 현재, 미래를 우리 마음대로 넘나들 수 가 없다. 우리에게 가능 할 수 있게 하는것은 잠시 꿈을 통해서나마 과거나 미래로 갈수 있긴 하지만, 그것은 막연한 환타스틱한 형태로의 단순한 인식일 뿐이다. 그러나 작가는 우리에게 굳이 형이상학적인 이론을 통하지 않고도 불과 몇 분전의 사물의 관찰을 통하여 스쳐간 시간의 움직임을 알려주기도 하며, 또한 우리에게는 그저 막연하기만한 시간의 실체를 자연철학은 물론 여러 가지 학문의 토대를 기초로 하여 이글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함께 시간의 순간 순간을 체험하게 함으로서 시간의 오묘함과 신비로움을 깊이 있게 통찰 할수있게 하는 근거를 제공해준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의 크기는 누구에게나 같다. 그러나 어느 누구는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 모자르다 하고 또 어떤 이는 시간이 너무 많아 어찌 할 줄 모른다 한다. 일례로 아인슈타인은 한때 기자에게 예쁜 여성과 데이트 할 때는 한 시간이 1초 같지만, 반면 뜨거운 석탄재위에 앉아 있을 때는 1초가 한 시간이다 라고 자신의 상대성 이론을 비유적으로 말했다 한다. 누구나 보편적이고 고정된 시간이 주어지는데 왜 사람마다 시간왜곡효과가 나타나는지에 대하여는 한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우리가 살아 숨을쉬는 지금이라는 현재의 시간은 우리가 느끼기에 극히 짧은 순간, 다시 말해서 시간을 무수히 쪼개어서 나누어 가다보면 하나의 그림처럼 정지되어버린 형태의 모습이다. 그래서 지금이라는 형태가 우리에게서 소리없이 사라지면 그것의 일부는 우리 기억속에 저장 되어 과거로 남게 되기도 하고 일부는 영원히 사라져 버려 잊혀진 형태가 되기도 하여 길게 펼쳐보면 하나의 역사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을 읽으면서 파노라마 처럼 전개되는 시간의 흐름을 작가의 의도대로 따라가다 보면 작가의 말처럼 어느덧 시간을 초월한 자신이 현재와 하나가 되는 행복한 체험을 하게 될 수 있음을 물론, 또한 작가가 지니고 있는 해박한 지식과 그에 따른 예리하고 매력적인 언어를 통하여 당신은 무궁무진한 사색의 희열이 주어질 것이다.
이것은 결국 우리의 고달픈 자아의 표면에 매끄러운 지적윤택을 위해 무엇으로 마구 마구덧칠 하려 하기전에 조용히 자신의 깊숙한 내면의 세계속을 눈을 감고 시간의 분침 이동을 단5분간만 이라도 움직여 보라고 작가는 우리에게 지적하는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