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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가 처음 허락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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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 책의 제목부터가 범상치 않다. ‘히말라야가 처음 허락한 사람’이라.. ‘인간이 산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산이 인간의 발길을 허락하는 것’이라는 발상은 나름대로의 우아한 山 철학이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것이다. 더 나아가 산을 ‘오르는 것’이라 하지도 않고 산의 품에 ‘안긴다’는 표현을 고집하는 원로 산악인도 있다고 한다. 어쨌든 이 간략한 제목은 산의 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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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 책의 제목부터가 범상치 않다. ‘히말라야가 처음 허락한 사람’이라.. ‘인간이 산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산이 인간의 발길을 허락하는 것’이라는 발상은 나름대로의 우아한 山 철학이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것이다. 더 나아가 산을 ‘오르는 것’이라 하지도 않고 산의 품에 ‘안긴다’는 표현을 고집하는 원로 산악인도 있다고 한다. 어쨌든 이 간략한 제목은 산의 품에 안겨 미소짓고 있는 텐징의 사진과 더불어 한권의 책 전체를 함축하고 있는 것 같아 첫장을 펼쳐보기도 전에 흐뭇하다. 이 책은 참으로 차분하고 객관적인 시각이 돋보이는 책이다. 그동안 출간되었던 ‘산서’라 불려지는 많은 책들이 서구인의 관점에서 기록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또한 그 기록의 대상도 항상 서구인, 혹은 그들의 극한을 향한 도전정신이었다. ‘K2’, ‘Vertical Limits''같은 영화가 그러했고, ‘최초의 8,000미터 안나푸르나’, ‘8,000미터 위와 아래’, 비교적 최근의 ‘희박한 공기속으로’ 등이 그러했다. 이러한 영화와 책들에서는 셰르파들의 역할이 매우 제한적이고 미미한 것으로 묘사되거나 아예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극단적인 사례이긴 하지만 어느 서구인 등반가는 눈사태로 7명의 셰르파가 매몰되어 사망했는데도 그의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행히 신의 가호로 유럽인은 한명도 죽지 않았소’라고 썼을 만큼 당시의 셰르파들은 극도로 미천하고 우울한 현실에 처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비록 서구의 작가에 의해 쓰여지긴 했으나 그 대상은 서구의 등반가가 아닌 ‘미천한 현지의 원주민’ 셰르파를 조명한 책이라는데 우선 주목하고 싶다. 책의 초반부는 티베트와 히말라야 언저리, 그리고 셰르파족의 우울한 현실을 얘기하고 있다. 티베트에서 태어나 자란 어린 텐징은 청년기를 지나며 우울한 현실로부터 탈출하기 위하여 고산 포터의 길을 택한다. 그리고 셰르파로서는 다소 큰 체격과 밝은 미소, 뛰어난 유머감각을 바탕으로 점차 그의 입지를 다져 나갔고, 다른 셰르파들이 오로지 임금에만 집착해 다투고 있는 사이에 텐징은 정상에 오르고 싶다는 열망으로 언젠가 찾아올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기회가 찾아왔고 텐징은 히말라야의 ‘허락’을 얻어 정상에 섰다. 이 위대한 초등은 전세계에 대단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지만 그렇다고 전세계에 텐징의 이름이 알려진 것은 아니었다. 오로지 에드먼드 힐러리의 이름만이 알려졌을 뿐이며 오늘날까지도 텐징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기야 당시 서구인들은 그들의 ‘쿨리’에 불과한 원주민이 세계의 지붕이라는 에베레스트의 초등자가 되었다는 사실이 썩 기꺼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텐징의 등반을 기억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나는 그의 초등이야말로 매우 의미가 깊은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의 초등은 고용주와 쿨리의 관계, 또는 서구 열강국가의 등반가와 가난한 후진국의 셰르파가 아닌, 그야말로 ‘대등한 협력관계’에 기초한 신뢰로 에베레스트를 올랐다는 점에서 힐러리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고산에 오르는 동안 파트너 상호간의 대등한 협력과 신뢰가 없으면 등반은 성공할 수 없다. 북한산 인수봉을 오르는 일에도 내 허리에 묶인 자일의 반대쪽 끝을 잡고 있는 사람에 대한 신뢰가 등반의 성패와 안전을 좌우하는데 까마득한 8천미터 위쪽에서야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책의 후반부는 초등을 둘러싼 복잡한 정치 상황과 민족적 갈등, 그리고 그 속에서 함께 퇴락해가는 텐징의 안타까운 노년기를 담고 있다. 산을 향한 갈망과 가족에 대한 깊은 사랑으로 충만해 있던 젊은 시절과는 달리 산아래 세속에서의 그의 삶은 경제적으로 부유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행복하지 못했던 것 같아서 더욱 안타깝다. 나는 여태까지 셰르파들에게는 알피니즘이라는 순수한 목적 때문이 아니라 그저 등반가에게 고용된 안내인일 뿐이며, 텐징 노르가이는 대단히 운좋은 셰르파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텐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기초적인 가정부터 수정하고 시작해야 한다. 텐징에게는 에베레스트의 정상에 서고 싶다는 열망, 순수한 알피니즘이 충만해 있었다는 전제를 항상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나는 이 두꺼운 책 한권에 서술되어 있는 기나긴 얘기를 텐징의 이 한마디로 단번에 모두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일곱차례나 에베레스트 등정을 시도했다. 하지만 적을 물리치는 병사의 긍지와 기력이 아니라 어머니의 무릎에 오르는 아이의 사랑으로 매번 산을 다시 찾았다.”
k*****1 2003.06.0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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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 등정의 초기 역사를 볼 수 있는 텐징의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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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모룽마(에베레스트)의 초등 50주년이 되어 번역된 책이다. 애초 힐러리와 텐징 노르가이(1914-1986)의 등정 기록들을 두고 50년이나 지속되었다는 논쟁이 뭔가 궁금해서 읽었다. 저자는 그런 주제를 헤쳐가면서 꼼꼼한 서술로 궁금증을 잘 풀어주었지만, 여느 등산기처럼 단순 명쾌한 서술은 아니었다. 오히려 초등의 기록이라면 힐러리의 책이나 번역되지 않은 텐징의 <설산의 호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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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모룽마(에베레스트)의 초등 50주년이 되어 번역된 책이다. 애초 힐러리와 텐징 노르가이(1914-1986)의 등정 기록들을 두고 50년이나 지속되었다는 논쟁이 뭔가 궁금해서 읽었다. 저자는 그런 주제를 헤쳐가면서 꼼꼼한 서술로 궁금증을 잘 풀어주었지만, 여느 등산기처럼 단순 명쾌한 서술은 아니었다. 오히려 초등의 기록이라면 힐러리의 책이나 번역되지 않은 텐징의 <설산의 호랑이>를 읽어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텐징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는(하지만 텐징은 문맹이었음) 그의 책보다 먼저 이 책이 번역된 것이다. 이런 복잡한 관심은 어쩌면 부득이한 것이었음을 알게 된다.



텐징 노르가이는 티베트에서 태어나 네팔에서 자랐고 네루 시대의 인도인으로 살았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변경에서 태어나 그 문화의 중심으로 들어갔던 유명인사의 삶이 어찌 순탄하기만 했을 것인가! 그런 지난 역사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산악인과 그 등산의 문화 코드를 저자는 세밀하게 배려해가며 텐징의 삶을 조명하였다. 어차피 영국인 필자이니 그의 관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하겠지만, 텐징 노르가이 자신은 등정 후의 삶을 인도 정부가 주관하는 등산학교의 일을 하면서 살았고 영국과 스위스를 왕래하면서 자식들은 또 미국에 유학을 보낸 사람이었다.



저자는 등산에 관한 일뿐만이 아니라 간간이 인도나 중국과 티베트의 문제, 네팔의 정치 등에 관해서도 간단한 설명을 곁들임으로써 이해에 도움이 되게 하였다. 생계를 위한 포터로부터 최초등정으로 유명인사가 되기까지는 텐징 자신의 삶만이 아니라 인도나 네팔도 정치적으로 독립이 되고 왕조가 바뀌는 격변의 시기였으므로, 이런 배경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텐징이 몸담았던 사회를 이해하기가 힘들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등산학교 이후의 후기 텐징의 삶에 대해서는 서술이 조금 소략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서구적 관점으로 원주민인 그들의 문화를 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특히 아들을 가지려는 생각에서 조카인 다쿠와 결혼한 것을 이기적이었다고 본 점이라든가, 노년의 삶을 불행이라고 본 점들이 그렇다. 마치 등반문화를 중심으로 한 비정치적인 텐징의 성향을 말하면서 원주민들(셰르파)의 노력을 평가해주려 하면서도 결국엔 본국의 합리적인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암암리에 전제된 의도처럼 말이다. 저자는 뉴질랜드인이었던 힐러리가 등정 부분에 대한 자전적 서술을 세 번이나 고쳐썼다는 점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유도 설명을 하지 않았으며, 더욱이 나쁜 소리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대신 저자는 위성감시가 생기기 전 냉전시대에 중국의 원자로를 감시하려고 미국이 난다 데비에 원자력발전소를 세우며 감시소를 만드는 데에 텐징도 협조했으리라는 추정을 끼워놓기도 하였다.



텐징이 정상에 섰을 때의 느낌을 저자는 이렇게 썼다. "텐징의 발 아래에 그의 과거가 있었다. 텐징은 동쪽의 카르타 계곡과 카마 계곡에서 태어나 삶의 첫 5년을 보냈고, 남쪽의 쿰부에서 10대 시절에 캄바 하인으로 일하며 탈출과 보다 나은 삶을 꿈꾸었다. 북쪽의 롱부크, 노스 콜의 슬로프에서 등반가로서 첫발을 내딛었다. 텐징은 젊은 시절을 보냈던 사원들과 농장 그리고 강과 숲들을 볼 수 있었다."(299쪽) 텐징이 "이제 됐다!(ah chah)"라고 느낀 이유일 것이다.



위의 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 책에는 수많은 지명과 산명이 나온다. 하지만 시공사 편집진에서는 지도 한 장 실어주지 않았다. 읽는 내내 궁금증이 있을 줄 안다면 최소한 히말라야 일대의 개략도라도 실어야 독자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네팔, 티베트, 파키스탄, 인도북부의 간단한 지도 정도야 뭐가 그리 어려울까! 우리 출판문화의 고질 중에 하나가 아닌가 싶었다.

j****1 2008.08.0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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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텐징 노르가이 : 히말라야가 처음 허락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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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징 노르가이/에드 더글러스/강대은.신형승/시공사 산과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읽어봄직한 책이다.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 등정에 성공한 사람은 에드먼드 힐러리라고 알고 있다. 그 역사적인 현장에 동참했던 또 한사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이 책은 바로 히말라야가 처음 허락한 사람, 텐징 노르가이의 이야기를 전하는 (매혹적인) 자서전이다. 195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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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텐징 노르가이/에드 더글러스/강대은.신형승/시공사


산과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읽어봄직한 책이다.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 등정에 성공한 사람은 에드먼드 힐러리라고
알고 있다.

그 역사적인 현장에 동참했던 또 한사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이 책은 바로 히말라야가 처음 허락한 사람, 텐징 노르가이의 이야기를 전하는 (매혹적인) 자서전이다.


1953년 5월 29일 오전 11시 30분경, 뉴질랜드인 에드먼드 힐러리와 함께 텐징 노르가이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다.

텐징은 미국, 영국, 네팔과 인도 국기들이 칭칭 감겨 있는 피켈에서 국기들을 펼친 다음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힐러리가 찍은 이 한 장이 전 세계 신문과 잡지의 첫 장을 장식했다.

결국 사진에 담긴 인물은 텐징 노르가이뿐이었다.

에베레스트 정상의 이 사진은 불가능에 대한 인간 승리의 기록이다.


티벳 국경에서 가난하고 천대받는 신분으로 태어난 텐징은 산을 보고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꿈을 키워나갔으며 살아가는 수단으로 셰르파 생활을 했던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정상에 꼭 오르겠다는 야망이 있었다.


1935년 19세의 나이로 에릭 십턴이 이끄는 등반대에 포터로 처음 참여한 텐징은 탁월한 체력과 성실성, 매력적인 미소가 주는 친화력 외에 한 가지가 더 있었다. 그것은 바로 행운이었다. 그는 그 행운을 이용할 올바른 정신이 있었고 기회를 보고 붙잡았다.


힐러리가 닐 암스트롱을 만나 나누었던 이야기에서도 이를 암시해 주고 있다.

달나라를 처음으로 걸은 사람에게 그 기회가 어떻게 찾아왔는지 물었다. 암스트롱은 “행운! 정말 행운이었죠!”라고 대답했다. 힐러리는 텐징과 함께 에베레스트를 최초로 오른 자신의 운명도 마찬가지였다고 생각했다.

 

텐징은 자신들을 평등하게 대우해 준 스위스 원정대를 좋아하였다.

때문에 정상을 등정한다면 스위스 원정대와 함께 하겠다는 생각으로 영국 원정대의 참여 권유를 처음에는 거절하기도 했다.

하지만 스위스 원정대장인 랑베르는 텐징에게 기회를 잡으라고 권했다.


1953년 영국 원정대에 텐징은 포터와 셰르파를 관리하는 사다로 참여했다.

힐러리와 텐징은 같이 등정을 해 본 경험도 없었고 전혀 공통점도 없어보였지만 두 사람에게는 드러나지 않은 더 큰 공통점이 있었다.

두 사람은 산이야말로 그들이 속한 비좁은 사회를 벗어나 꿈을 성취할 기회를 줄 수 있는 보다 넓고 밝은 세상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 야망이 두 사람을 에베레스트의 정상으로 이끌었을 것이다.

그렇게 텐징과 힐러리는 에베레스트의 정상에 우뚝 섰다.


힐러리에게는 기사 작위가 주어졌고 텐징에게는 조지 훈장이 수여되었지만 그들을 이용하고자 하는 각국의 이해 때문에 격랑 속에 빠져들었다.

그런 혼란 속에서도 두 사람은 개인의 이익을 떠나 침착하게 대응하려고 노력했다.


두 사람이 “거의 함께” 정상에 올라갔다는 성명서를 작성하여 논란을 종식 시켰으며 텐징의 국적 문제에 대해서는 자신은 네팔의 자궁에서 태어났고 인도의 무릎에서 자랐다는 품위 있고 시적인 설명으로 피해 나갔지만 결국 인도 수상 네루의 후원을 받아들여 20년 이상 인도에서 살고 가족 대부분도 인도에 거주했다.


이 후의 활동과 행적 등을 길게 언급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우리는 세계 최초로 지구상의 최고봉에 오른 그의 업적만이 아니라

그가 가진 불굴의 정신우리가 좋아하더라도 오늘날 매력적인 특성으로 여겨지지 않는 일관성, 끈기가 주는 큰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w******5 2011.09.2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