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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나는 이런책들과 작가들이 많이있어야한다고본다..평신도가 이런글을 쓴다는것..목회자들이 부끄러워해야할일이고. 동시에 그만큼 평신도와사역자들간에 괴리감이 느껴지는 책이라고도 본다.. 작가와 또 몇몇분들은 이평신도와목회자를 구분짓는 말에 반발감을 느낄수도있겠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공감도많이 했거니와,... 전체적으로는 아쉬움을 느끼는 부분이 많았다.... 내가 목회자라서 그런가???? 동감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몇몇 있었다...
먼저, 이단에 대한 부분...왈도파나 카타리파에 대한부분.. 그리고프로테스탄트도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박해를 가한 부분.. 종교개혁자 칼빈도 사형을 집행했고 루터또한 전쟁을 옹호했다.. 그리고 여러 기독교의이름을 가지고 박해를 가하고 폭력을 가한 역사.. 우리는 먼저 인정해야한다고 본다. 그리고 하나님앞에 역사앞에 회개해야한다고 본다..
그러나..여기서부터 생각이 좀 나뉜다고 본다.. 먼저 생뚱맞은 이야기를 좀 하고싶다. 아포칼립토라는 영화를보셨는지???? 멜깁슨감독의 영화인데 마야부족의 내용을 담은영화이다.. 길게 쓰면 지루하니. 간단하게 내주장을 쓰자면... 일단은 영화가 재밌으니..영화를 꼭보길 바라며.. 멜깁슨감독의 의도를 보고 영화를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멜깁슨은 독실한 가톨릭신자이다.....
멜깁슨은 이영화에서 서양의 침공..아니., 서양의 제국주의화..기독교전파를 옹호한다...물론 그과정에서 무력충돌이있었고 원주민 학살이있었다.. 물론 그것은 잔인하다.야만적이다..인간적이지 못하다... 그러나...음..하나님의 시각에서는???? 그 원주민들을 그냥 내버려둬야 했었나?? 아니면 잠간 동안의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피를 흘려서라도 남은 그들과 그의 후손들을 영적으로 구원하셔야 했었나???
영화는 그것을 궁극적으로 다루고있다고 본다.. 그리고 영화내내 나오는 잔인한 풍습과 살인. 인간제사..우상숭배의 풍습들...
이미 그 내부에서 몰락되어가고있는 문명들...
하나님을 모르고 죄에 물든 그 사람들... 하나님시각에서는???
마찬가지로 탈레반..미국이 아프칸을 침공한다고 뭐라하는 사람들이많았지만.. 아프간의 탈레반통치하에서 사람들의 상태는 어떠했는가???? 우상숭배. 여성억압. 독재. 살인.강간. 여성할례... 그들의 민족과 독립을 존중한다는 이유로 그런 인권억압과 악한죄악들을 내버려둬야 하는가????
그렇다고 전쟁을일으켜서는 안된다?? 평화적인 방법으로?? 언제까지??? 그게 언제까지 된다고 보는가?? 나는 작가한테 그질문을 던지고싶다....
과연 작가도 역사를 잘알기때문에...전쟁과 무력없이 평화적인 방법으로 기독교가 전파될수있었을까???? 제 3세계에??? 그렇다면 미국은 ???? 미국이 전쟁없이 세워진 나라인가?? 무력없이?? 미국이 건국될떄에도 엄청난 피와 전쟁과 역사의 사건들이있었다..
어떤 나라건 어느역사건 마찬가지다.. 이세계는 역사는 피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기독교가 교회가 각성하고 회개해야할부분들이 많은것은 사실이다...
그러나...역사를 되돌린다고 해도. 그런일들이 벌어지지 않았을까.....
평화는..입으로만 되는것이 아니고 피를 흘리지않아서 되는것이 아니다..
그과정속에서 오늘날의 어떤 완성된 국가체제와 민주주의 체제를 갖춘것이지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 그책임을 물을수잇을까...
마찬가지로 십자군전쟁도 그렇다... 십자군전쟁에 대해서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는사람들이 많이잇지만.. 절대신앙을 가지고있고..이슬람의 세력이 그들을 억압하는상황속에서,,,, 그리고 성지와 유물,,왕권..신앙이 절대적인 중세상황속에서 또.. 사단마귀. 이방세력인. 하나님과 대적인 이슬람의 세력들이 성지를 차지하고잇는 상황속에서 당연히 십자군을 생각하지 않았을까....
여전히 오늘날도 구약의 논리와 윤리의식이 맹위를 떨치고잇는 상황속에서 십자군들은 하나님을 믿지않는 이방족속들을 멸하여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이단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왈도파나 카타리파...
하나님이 판단하셔야 겠지만...중세의 엄격한 시각의 눈으로볼때 그들은 엄밀한 이단이었다...
그리고 교회는 그들과 대립할수밖에없었고. 사람들의 영혼을 멸하고 파괴하는 그들을 무력으로라도 제압할수밖에 없었다... 옹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떻게 보면 그들의 행태는 그렇게 정죄될만한 것은 아니었다고 본다.....시대적인 한계랄까..
루터나 칼빈도 그시대의 한계성에 갇힌것이라고 본다..
오늘날도 이단은 건재하다. 그러면 오늘날은 어떻게 해야하는가.. 이단과 다른 종교들.. 작가의 말처럼 '종교적 불관용이 문제다'라는 명제를 가지고 그들을 관용하고 받아야들여야 되는가????
그게 성경적이고 인간적이고 윤리적이고 복음적이고 하나님의 사랑인가???
성경말씀을 하나 인용하고자 한다. '내가 화평을 주러 온줄로 생각지 말라. 검을 주러 왔노라..'
주님은 우리에게화평이 아니고 검이요. 평화가 아니라 전쟁을 주러 왔노라고 하셨다..이게 무슨말씀같은가...물리적인 전쟁을 말씀하신것이 아니라는 것은 너무나도 잘알것이다,..이것은 영적전쟁을 의미하는 것이다...주님은 작가의 주장과는 다르게 너무나도 절대적이고 신본주의적이고 꽉막힌 말씀들을 많이 하셨다...
나외에는 다른 이름으로 구원을 얻을수없다.....
이말씀이 이미 전쟁을 선포하고있지 않은가/// 이미 우리는 종교적 관용을 베풀수없는 존재들이다....
우리의 교주가. 우리가 섬기는 주님이 바로 그런 분이시기때문이다...
그리고..저자가 책에서 내내 말하려고 하는.. 그 교회속의 세상에 대한비판.....
그러기에 종교개혁도 전쟁을 일으켰기에 피를 흘렸기에..비판할수밖에 없다는 저자의 사상은 나로써도 비판할수밖에 없다. 위에서 내가 말한것과 맥락이 같은데..... 종교개혁을 했기때문에 피를 흘렸다..그래서 종교개혁은 꼭 옳지만은 않다. 라는 것이 저자가 하고싶은 이야기인거 같은데.... 그것은 너무 결과론적이고 종교개혁의 영적가치에 대해서 무지한 것인거 같다.
종교개혁을 했기에 많은 사람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을수있었고 하나님을 만날수잇엇고 개인적으로 성경을알수잇어고 해방과 복음의 자유를 찾을수잇었다....
오늘날까지 우리는 종교개혁의 혜택을 누리고잇는것이다.. 그후에 일어난 전쟁들과 충돌에 대해서는 필요악...어쩔수없는 인간들의 한계.. 위에서 말한것처럼..전쟁중에서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 악한 인간들의 행태지만..그가운데 선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봐야지..피를 흘리고 전쟁이 일어났기때문에 프로테스탄트도 남들에게박해를 가하고 죽이고 살상했기때문에 나쁘다....이런논리는.... 참으로 인본주의적이다..미안한 이야기지만.. 우리가 믿는 신앙과 성경이 그 자체가 인본주의적이 아니다....
동성애에 대한 글도 마찬가지... 우리는 흔히 이런말을 한다. 동성애는 미워하지만 그사람은 사랑해라..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그러면 하나님은 죄는 심판하도 지옥에 던져도 그죄를 지은 사람은 하나님을 거부한 사람은 지옥불에 던지시면안되는 것이다. 인본주의의 함정이 바로여기에있다....
인간을 귀중히 여기고 소중히여기고 사랑하는 것은 좋지만 심판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죄에 대해서 엄히 경계하시는 주님에 대해서 소홀히여긴다. 주님이 간음한 여인에 대해서 뭐라고 하셨는가.. '나도 너를 뭐라고 하지는 않지만....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말라!!!!! 죄를 짓지 말라!!! 다시는 !!!
우리가 동성애자를 바라보는 시각도 이래야한다고 본다. 불신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교회의 실험에 대해서/. 글을 읽는내내 불편한 심기를 버릴수가없었다...
내가 목회자이기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저자의 말이 맞는 부분도 많이있기도 하거니와.... 좀 아닌거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기때문이다...
일단.. 평신도 설교권을 주장하는데. 저자의 이말은 논리적으로 모순이있는게/. 그렇게따진다면 저자가 일하는 법정에서도 일반사람들에게 판사와 변호사와 검사와 같은 권리를 주어지는 게 맞다. 그렇지 않은가????
만인제사장이라는 종교개혁적 가치에는 동의하지만. 그것이 전문적인 영역까지 세밀하게 그렇게 다 똑같다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목사에게는 설교권이잇다. 평신도는 교회내에서는 없다. 그게 맞다고 본다. 만약 설교하고 싶다면 신학을 전공하라. 신학교를 가라.. 변호사도 마찬가지고 의사도 마찬가지고 교수도 마찬가지다.. 그렇지 않은가????
교회에서 평신도에게 설교권을 주자는 애기는 위에서 말한것처럼 전문성을 상실하자. 모든자격없는 사람들에게 자격을 주자.라는 말과같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이미..선교단체에서는 평신도설교권이있다. 광범위하게 이미 행해지고잇다,.....간사라는 이름으로 많은 평신도들이 설교를 하고 강의를 하고 목사들 못지않게 많이 사역하고있다..
개인적으로..그것들은 반대하지 않는다....그런 사역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많이 역하시기때문이다... 교회에서도 장로나 수준이 있는 평신도가 강의를 가끔한다든가..하는 것에 대해서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설교에 대해서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위에서 말했지만 사법고시 통과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 변호사를 주고 판사가 되게 하고 검사가되게하면 말이 되는가??? 교회도 마찬가지다....교회를 너무 띄엄띄엄 보는 거 같애서 기분이 상하는데.. 목사가 아무나 될수잇는것이 아니다....
지금 한국신학교가 대충 목사를 배출해내는 거 같아서 정말 괴롭지만....
암튼 지금 엄격한 과정을 엄밀히 거쳐서 목사를 배출해낸다...
그러면. 설교권이 잇는것이다... 목사의 자격이있는 것이다....
저자의 말대로라면 목사는 교회에서 설교할수있어야 되고 법정에서는 변호사도 할수있어야한다. 법률지식만 갖추면 말이다..나도 그렇게 했으면좋겠다..^^
그리고 너무 목사들을 무시하고 낮게 보는 듯한 어투들이 좀 걸린다.. 지금까지 한국교회가 보여준..목사들이 보여준 것이 그랬겠거니와... 마음이 아프고 반성할점도 많다...인정한다.... 나도 목사가 된지 얼마되지도 않았지만.. 나도 기성세대 목회자들을 보면 갑갑할때가 많다......
글을 정리하려 한다.... 좀 횡설수설한거 같다.. 전체적으로 내가 저자에게 반대를 한다거나 완전히 누구처럼 좌파빨갱이라고 매도하고싶지는 않다... 그러나 지금까지 써온것처럼 아쉬운 부분들이 있다... 교회는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있는데...반대다. 교회는 비판해야한다. 썩은 것을 도려내고 상처를 잘라내야 살아나고 건강해질거 아닌가....
종교개혁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역사속에서.... 때로는 교회를 지키기위해서 세상권력을 이용하셨다고 생각한다... 교회가 거룩하고 하나님의 빛이 되는 교회이지만....
그리고 교회가 세상권력을 등에업고 횡포를 부리거나 반성경적인 행태를 일삼는 것은 분명히 죄악이고 문제이지만....
세상권력을 이용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는것 또한 하나님의 구속사적인 역사속에 계획가운데 있다고 나는 감히 확신한다....
마지막으로 질문을 하나 할까한다...
루터가 프리드리히에 의해서 보호를 받은것은 하나님의뜻일까 아닐까...
바울이 로마시민권을 주장한것은 하나님의뜻일까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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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신성 로스쿨 교수' 김두식이 2009년 1년간의 안식년을 마치고 돌아와 [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를 펴냈다. 2009년이면 로스쿨 개원 첫해라서 그야말로 혼돈 속에 일년을 보냈는데, 그런 혼란을 피해 미국에서 안식한 김두식은 참으로 행운아라 할 수 있겠다.
김두식은 돈이나 사회적 지위라는 '세상'이 교회 안에 들어와 세속화된 교회를 고발한다. 그런데 김두식이 변호사이자 교수가 아니었다면, 기독교계에서 지금처럼 주목을 받을 수 있었을까? 그리고 '형법학자' 김두식의 연구실적은 정말로 '없다'고 할 수밖에 없는데, 기독교계가 (정확히는 '복음주의 운동권' 패당이) 변호사/교수라는 것에 눈이 멀어서인지 이를 제대로 검증하지 못한 것도 문제라고 할 수 있겠다.
무례하고 공격적인 김두식의 동료들 지금의 김두식이 있기까지는 김두식을 생산하고 소비해온 집단, 이른바 기독교 활동가들이 있었다. 이들의 작태는 김두식이 고발한 '무례하고 공격적인 기독교'가 사실에 근거한 것임을 역설적으로 알려준다. 그네들은 자기네와 뜻이 맞지 않는다고 '보수'교회 앞에서 시위한다며 예배 등 교회업무를 방해하고, 뉴스앤조이나 복음과상황에 '기사'라는 이름으로 막말을 쏟아내고, 나이 어린 청년이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교회생활에 대한 개인의 감상 몇 줄 올린 것을 "보수교회의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며 마구 퍼가서 명예를 훼손하고, 이명박 대통령 당선, 광우병 시위 등 사회적인 이슈 터질 때 사람들 돈 모아서 신문 광고 내고, 최근에는 천안함 음모론 퍼나르는 중이다.
평균과는 거리가 먼 김두식의 초상 김두식은 목회자들이 삶의 현장과 괴리가 있음을 지적하지만(p.24) 김두식의 삶은 평균적인 삶과는 거리가 멀다. 책에서는 '그럭저럭 너무 늦지 않은 나이에’라고 되어 있지만, 고대 법대 86학번인 김두식이 1991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것은 고시열풍이 불었고 사법시험 합격자가 1000명까지 늘어났던 지금의 시각으로 봐도 상당히 빠른 것이다. 사법시험 합격자 평균연령은 30세 남짓이다. 거기에 서울지검 검사-미국 코넬 LL.M-한동대 교수-경북대 교수로 이어지는 그의 경력은 남들이 질투할만 하다. 다만, 그렇게 잘 풀린 덕분에, 삶의 현장과는 괴리있는 목회자들에 대한 김두식의 문제제기는, 곧 자신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로스쿨과 미국 김두식은 친미 기독교를 비판하였지만(pp.74-), 그 자신은 미국식 로스쿨 제도를 추종하고 있다. 최소한 명문대 학사 출신에(외국 박사도 적지 않다), 3년간 학비 1억원 이상 들여야 하고, 로스쿨 교수들의 수업으로는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아 신림동 사법시험 학원 강의를 들어야만 하며, 변호사가 되어도 대다수는 기업 평사원으로 입사하는 길을 걸어야 하는 제도를 '사법개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안식년을 마치고 돌아온 지금, 로스쿨 학생들이 김두식 자신이 관심 있어 하는 주제(예컨대 인권문제)에는 무관심하고 [형법요론](사법시험 수험서)만 눈에 불을 켜고 회독수 늘리려는 것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김두식은 로스쿨의 현실을 보며 자신의 이상과는 다르다고 할지 모르겠으나, 로스쿨은 김두식과 그의 동료들(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법과사회이론학회 등)이 설계한 그대로, 그리고 많은 이들이 제기했던 것보다 더 큰 문제를 드러내며 굴러가고 있다. 어쨌든 자신(들)의 뜻대로 굴러가고 있으니, 문제점을 보거들랑 회개를 할 일이지 '기득권층' 탓할 것이 아니다. 아울러 나는 김선일에 대하여 비아냥대던 목사에 대하여 언급한 부분(pp.90-91)을 보며, "로스쿨 제도 시행되면 가장 불쌍해지는 인생이 박사과정 공부하다가 군대간 학생이다"라고 낄낄거리던 김두식의 동료교수 생각이 났다. 로스쿨 제도가 시행이 되면 학문으로서의 법학은 사망선고를 받게 되니, 박사과정생은 그야말로 갈 데가 없다는 의미이다. 자신도 같은 과정을 거쳐 교수가 되었음에도, 후학들을 조롱하는 그 교수에 대하여 김두식도 나처럼 분노할 수 있을까.
김두식 교수, 그래서 동성애가 죄란 말입니까, 아니란 말입니까? 동성애자를 따뜻하게 대하는 것은 목회자들에게 맡기라. 법학자, 그것도 범죄와 형벌을 논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 형법교수가 동성애에 대하여 죄인지 아닌지 판단을 하지 않으면서, 예수님 말씀을 핑계로 답을 회피하는 것은 정치적으로는 옳을 지 모르겠으나 형법교수로서는 직무유기이다. '평균적 목사'들은 신학교에서 문-사-철을 바탕으로 하는 신학 공부를 하느라, 성문법인 성경, 판례법인 여러 전통들을 검토하여 죄인지 아닌지 여부를 따지는 일에는 익숙치 않아 보인다. 김두식은 내면의 죄의 본성과 싸우느라 남의 죄에 별로 관심이 없다고 했는데(p.250), 정말 그렇다면 교수직을 사임하기를 바란다.
그나마 괜찮은 ‘서울’에 있는 교회 김두식은 경북대 교수인데, 학생들은 어쩔 수 없이 (주로) 서울 집을 떠나 대구에서 비싼 방 얻어 공부하고 있으며, 아마도 상당수는 대구지법 앞에서 개업을 하려 할텐데, 자신은 매주마다 서울 남산 기슭에 있는 교회를 출석하고 있다. 대구에는 그렇게 교회가 없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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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식교수님의 새 책! "교회속의세상, 세상속의교회" 김두식 교수님 책의 애독자인 나, 이 책을 읽는다고 했더니 누군가가 전체적인 감상평을 물었다. "느낌이 어때요, 재밌어요. 감동적이에요, 뼈아파요, 후련해요, 불편해요?" 나는 "한국교회에 관한 이야기야 잘 알고 있어도 들을 때마다 아프죠. 전반적으로 재밌고, 일부 감동적이고, 매우 뼈아프고, 가끔 후련하고, 불편하진 않아요." 라고 대답했다. 우리들의 기반이자 사랑이자 슬픔인 교회에 대해 이런 책을 쓰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피할 수 있었으면 피하고 싶은 책"이라고 저자도 고백하고 있다. 1, 2, 3장 전반부에 교회답지않은 현재 교회의 모습을 지적하는부분에선 여러번 가슴이 먹먹해졌다. 특히 김선일에 대한 회고부분... 잠시 책을 덮게 될 만큼 맘이 아팠다.. 교회가 국가에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거나, 감당하려고 하기보다 가장 교회다워지는 것이 그래서 세상과 뚜렷이 대비되는 것이 가장 '정치적인 실천'일 수 있다는 말이 맘에 와 닿았다. 4, 5, 6장은 주로 중세유럽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데, 익숙하지 않은 내용이라 좀 복잡하고 난해했다. 교수님 전공도 아닌데, 이렇게 기독교사를 관통하는 이해를 가진 저자의 해박함에 다시 한번 놀랐다. 내가 가장 좋았던 장은 7장 "질문바꾸기: 고통받는 사람들의 친구가 되는 교회" 이다. 동성애를 다룬 부분에서 "존 스토트의 동성애 논쟁" 을 읽으면서 들었던 답답함이 많이 해소되었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김두식 교수님이 존 스토트보다 훨씬 나은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것 같 다. 물론 섹슈얼리티를 조금 공부한 나로서는 동성애자/이성애자를 확실히 구분하시는 교수님의 견해가 좀 아쉽긴 하다, 그치만 알아도 쓸데없는 논쟁에 휘말리기 때문에 일부러 안 쓰셨을지도 모른다. 보수적인 기독교인은 동성애에 대해 무조건 반대하고, 진보적인 진영에서는 기독청년들의 이런 고민에 대해 그저 "아직도 그런 걸로 고민하니? 후지다" 정도로 가볍게 치부하고 넘어간다. 이처럼 성적지향에 대해 진지한 토론이나 고민을 하기가 어려운 현실에서 교수님의 문제제기와 해법은 울림이 컸다. 한국교회가 아니 청년들만이라도 다른 성적지향에대해 이정도의 감수성을 가진다해도 엄청난 변화가 될 것이다. 그리고 8-9장에서 한편으론 교수님이 새로운 실험의 예로 들어 주신 것들 중에 우리 교회에서 준비하고 있거나 이미 하고 있는 것이 여러 개 있어서 뿌듯했다. 예배중 평신도들의 5 분스피치나 형제들 공동생활관, 공동체에서 함께 자란 지체들이 신학교를가서 목회자가되는 것 등... 가난한 자를 돕는 교회에서 그치지 않고 가난한 자와 함께 하는 교회, 가난해지는 교회, 돌봄공동체가 되는 교회 등 앞으로 해야할 일이 많지만 우리 교회는 이런 생각도 나눌 수 있는 공동체라고 믿는다. 새삼 좋은 교회에서 신앙생활 할 수 있다는 게 감사했다. 많은 친구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읽고 함께 토론해봤으면 좋겠다. 특히 함께 교회를 이루어가는 교회 지체들과 함께 읽고 싶다. 이 책의 인세 모두 가난한 이웃을 위해 쓰인다고 하니 권하기에 더 주저함이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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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는 날 몸살로 출근도 못하고 있는데 집배원이 초인종을 누르고 가져다 준 우편물에 두 권의 이 책이 있었다. 블로그쪽지로 내게 책을 보내겠다고 하신 분에게 쪽지로 주소를 보냈는데, 쪽지에 이름을 안 써서 다시 이메일로 보냈더니 출판사의 두 사람(?)이 따로따로 보낸 모양이다. 이거 감사해서 안 읽을 수가 없다. 3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지만 사실 이런 류의 책은 쉽게 진도를 낼 수 있는 편인데 이 책에는 내가 모르던 교회사를 묘사한 내용이 많아서 읽기가 쉽지 않았다. 저자가 서문에서 건너뛰라고 한 배려를 이해할만하다. 김두식교수의 책을 몇 권 읽었고 김두식 교수랑은 10년전쯤의 온라인 메일을 한번 주고받은 사이였다고 지난번 감상문에 쓴 바 있는데 동시대를 살았고 같은 기독교문화 속에서 생활하고 비슷한 고민을 해온 이로서 그의 글이 반갑다. 사실 요즘 교회가 욕을 많이 먹고 있다. 지난 번 "왜 기독교인은 예수를 믿지 않을까"란 책의 감상문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기독교가 당하는 비난의 근거는 보이는 교회의 믿음 있어 보이는 사람들의 잘못에 기인한 바가 많다. 교회도 하나의 조직이고 거기에는 불완전한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상적인 "완벽한" 모델의 교회는 세상에 존재하기 힘들다. 그렇다고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교회가 개혁을 포기하고 기득권의 자리에 오른 순간 교회는 타락해온 것이 교회사가 보여주고 있다. 중세의 종교개혁을 피상적으로만 알던 나에게 김교수는 그 피비린내나는 시대상을 고발한다. 교회가 민감하게 다루는 '이단'론에 대해서도 김교수의 지적을 "이성적으로" 바라본다면 흠잡을 수 없다. 공교롭게도 저자가 언급한 100주년 교회의 장로, 권사 지칭문제가 '이단'은 아니지만 '면직'사태로 확대된 말도 안되는 일이 우리 교단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형편이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마지막 지상명령을 수행해야 한다는 당위를 잊어버린 순간 세속화된다. 마음의 상처를 치유받고, 위로받고자 찾은 교회가 그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교회는 교회답지 못한 것이다. 교회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보험회사에 대신 내줬다는 저자의 지적은 새롭다. 저자의 지인들이 함께 벌인 5년 프로젝트도 신선하다. 그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텐데 저자처럼 같은 마음을 가지고 행할 수 있는 공동체원들을 쉽게 만날 수 없는 교회내의 인간관계가 아쉽다. 점점 개인화되어가고 기독교인의 증가는 정체 혹은 퇴보하는 이 시대에 그 옛날 아름다운 교제와 나눔이 있던 교회의 모습을 발견할 수 없다면 교회는 절망적이다. 저자의 고민은 적어도 성경을 읽고 혼자서 공부하거나 함께 공부한 경험을 가진 신앙인이라면 당연히 해봤을 고민이다. 문제는 저자처럼 고민으로 그치지 않고 행동하지 못한 채 '한 때 그런 적이 있었지...'하며 합리화하는 게 대부분이란 점이 아닐까. 교회는 성경의 문자적 해석을 근거로 율법에 얽매여 사는 사람들의 공동체가 아니다. '사랑'이 없는 교회는 예수님이 비판하신 유대교회당과 다를 바 없다. 이 책이 이런 고민하는 모든 평신도와 목회자들에게 '전통'이 아닌 '성경의 본 뜻'을 알게 하는 수단이 되면 좋겠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기도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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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40이 되니 교회에 대한 고민은 접고 살았다. 교회가 다 그러려니... 이 책 읽으면서 교회에 대한 고민을 다시 하게 되었다. 화려하진 않았지만 소박했던 시골교회. 서로가 서로를 위해 진심으로 기도하고 위로하고 무엇이든 나누고 싶어 했던 교회...
찬양단을 조직하고 싶었지만 교회에서 악기를 사 주지 않아 아르바이트 하나씩 더해서 악기를 마련하고 목요 찬양을 만들었던 그때의 추억들.
우리 교회에 무엇이 필요한지, 예수님이 원하시는 교회가 무엇인지 이 책 통해서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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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한다. 어둠 속에서 빛이 더 빛을 발하듯이 어두운 세상에서 빛이 더 발하여야한다. 교회는 세상을 더 밝게 비춰주어야한다. 더 밝은 세상이 되도록 해야한다. 소금이 맛을 잃으면 버려지 듯이 교회 역시 마찬가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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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이미 알고 있거나, 누구나 고민하는 내용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었다. 물론 글의 스타일은 훌륭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읽으면서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 이미 있는 내용들이지만 쉽게 용기내기 어려운 이야기들, 교회사와 관련된 이야기, 교회와 교회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하면서...부끄러움과, 위로와 깨달음, 도전, 그리고 하나님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요즘 재미나게 읽고 있던 옥성호의 책을 읽다가 고민했던 부분들, 내가 잘못생각하고 있는 건가 했던 부분들에 대해서, 나의 시각과 비슷하거나 한층 통찰력있는 그의 글을 읽으면서 오히려 기존의 생각을 확고히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특히 교회사의 이야기라든가, 김선일, 동성애, 교회 속의 세상이야기는 독서를 하는 즐거움을 그 자체였다. 오랜만에 페이지를 넘기는 것이 아깝다라는 생각이드는 책이기도 했다.
다만, 종교개혁 시대의 역사이야기는, 나의 경우는 이미 다른 여러 책들을 통해서 그 시대의 역사를 어느정도는 알고 있었기 때문에 무난하게 읽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당시 역사의 맥락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조금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교회가 가지는 보수성과 전통성에서는 무엇하나 움직이고 행동하는 것에 제약이 따른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생각의 전환과 도전은 많은 기독교 인들에게 부담과 고민이 될지도 모른다. 물론 거기에도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아직도 부족하고, 무엇하나 내세울 것 없지마는...이런 책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고, 내 안에 내려 놓지 못하는 욕심과 짐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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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얼마나 부끄럽고 또 주님께 얼마나 죄송했는지 모릅니다.
지금의 교회를 만들고, 지금의 교회를 이 모습대로 있게한 것은 바로 '나' 입니다.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그래서 그게 죄입니까?, 죄가 아닙니까?" 이 질문은 제가 항상 주님께 묻던 질문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자 하는 저에게 주님이 주는 대답을 이제야 겨우 찾았습니다.
"다른 사람 볼것없다. 너를 봐라. 너의 삶이 죄된 삶인것 같으냐? 아닌것 같으냐?"
교회가 답답해서 다른곳에서 정답을 찾고 다른곳에서 위로를 얻고 싶을때가 많았는데, 교회를 답답하게 만든것이 누구인데, 이제와서 발을 빼려고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주님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주님이 사랑하시는 교회에서 정답을 찾고, 교회를 지키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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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류의 책이 읽어보고 싶었다. 세상 속에서 교회는 어떤 모습으로 비춰지는지 뭐 그런게 궁금했다.
김선일 선교사의 죽음이나 이라크 전쟁에 대한 저자의 견해에 일부 공감한다. 지난번 송정미씨 콘서트에서 김선일 선교사의 장례식에 관해 들으면서 많이 눈물이 났다.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그의 죽음에 그렇게 큰 공감을 갖지 못했을 것 이다. 그리고 영화 그린존을 보면서 이라크 전쟁이 모두 허상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 얼마전에 부시 대통령이 우리 나라에 와서 간증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약간 허무한 생각이 든 것도 이 책과 영화의 영향일 것이다.
전문직 종사자로써, 신학을 공부한 저자는 책의 중간 지점에서 기독교의 뿌리부터 알려준다. 콘스탄티누스나 칼뱅, 루터 같은 이름은 역사 속에서 기독교의 창시자 같은 인물들로만 묘사되는데 이 책에서는 아주 상세히 그들의 행동을 알려준다. 기독교라는 것이 정치와는 뗄 수 없는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만큼.. 역사속에서의 기독교는 그렇게 멋져 보이지 않았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살아 가는 것, 바로 세상 속의 교회로 살아가는게 쉽지 않은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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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속의 세상이라는 문구가 현대한국교회의 문제점을 잘 꼬집고 있는 제목이라 구입해서 읽어 보았다. 한국인들이 교회에 실망하고 있는 부분은 구원을 외치는 교회가 그 안에서의 행태는 세상의 구조와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쟁과 영업성과 가끔은 속임수까지... (어디까지나 문제있는 목회자들의 이야기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한국교회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날카롭게 잘 지적했다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계속 읽어나가면서 너무 앞서 나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하는 부분이 좀 있었다.
이단 부분과 저자 개인의 신앙관이 겹쳐지는 부분들. (전쟁이나 동성애 같은 부분)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기독교 공인이나 그 후의 이단 문제들, 현재 사회에서 이슈가 되었던 병역문제나 동성애 같은 부분들은 저자 본인의 주관이 좀 많이 반영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의 문체가 대천덕 신부님의 문제와 많이 비슷했다. 차이점은 대천덕신부님의 책을 읽으면서는 성경에 대한 느낌이 충만했는데 이 책에서는 민감한 부분을 다루어서 그런지 저자의 시각이 많이 들어갔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면에서 50% 동감이 가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하튼 현대 한국교회가 거울로 삼기에는 부족하지 않은 좋은 책이었다. 누구도 쉽게 할 수 없는 말을 저자가 책을 통해서 해 준 것에 감사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