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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어머니의 기저귀를 아는가? 혹시 지금 모시는 어머니가 늙어 치매가 오면 어떻게 하지? 하는 불안감을 느껴본적이 있는가...
전희식의 전작 <똥꽃>을 처음 접했을 때, 대단하고 놀랍다는 느낌보다는 가슴이 서늘해지다가, 다시 미어지는 슬픔에 빠졌던 기억이 난다. 그동안 애써 부모의 늙어가는 문제, 그리고 어떤식으로 다가올지 모르는 치매에 대해 비껴가려 했던 나의 발목을 <똥꽃>이 잡아챘던 것이다.
바로 그 때문이었다. 나의 마음이 더욱 무거워졌던 것은...전희식과 그 어머니가 일으킨 기적을, 내가 만일 그 상황이라면 똑같이 할 수 있으리란 엄두가 나질 않아서였다.
그러나 <똥꽃>은 어머니에 대해 '봉양'의 마음 준비만 해 나가던 내게 '존엄'이라는 화두를 던져주었고...살아가는 의미 자체를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똥꽃>이 치매에 대한 편견과 공포를 근본적으로 짚어 내게 충격을 주었다면, 이번에 나온 후속작 <엄마하고 나하고>는 나에게 희망과 안식을 주었다.
<엄마하고 나하고>에는 치매 어머니를 세상밖으로 끌어낸 저자만의 방법이 제시된다. 그동안 어머니와 함께 하며 자연치유의 기적을 심화시킨 터라 지은이가 어머니를 돌보는 내공도 훨씬 더 깊어진 듯 하다.
그러면서 저자는 세상을 향해 조심스레 목소리를 낸다. 좋은 부모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자식 먼저 되자고. 부모 모시는 자식은 없고, 온통 자식 모시는 부모만 있는 세태라서다.
그가 어머니를 돌보고 함께 하는 일은 감사한 마음이 있어서다. '어머니, 어머니 인생 말년에 막내아들을 초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라는 그의 평범한 말이 비범하게 마음에 닿는다.
농부 전희식이 세상 모든 엄마와 자식들을 위해 전하는 '엄마하고 나하고'는 무주 푸른꿈 고등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그의 철학서이기도 하다. 생각을 잘하되 그 생각에서 자유로워 질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자유는 없을 것이란 그의 말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의 치열한 사색의 결과다.
무엇보다 이 책을 보면서 행복했던 것은 전희식이란 보배가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다. 좀 더 폼나는 삶을 살수있는데도, 그는 그런 것에 개의치 않아도 된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생각만 하는게 아니라 직접 실천하는 삶이 더욱 아름답다는 것을...
인간존엄에 대한 치열한 각성은, 머리속에만 존재하는게 아니라, 이렇게 가장 가까운데서 실천으로 나타난다는 그 고귀한 진리를 나는 깨닿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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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어머니 인생 말년을 함께 할 수 있도록 저를 초대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똥꽃의 저자 전희식씨가 전하는 두번째 이야기 [엄마하고 나하고] 이 책은 베스트 셀러도 아니다. 그렇기에 많은 이들에게 읽혀질것 같지도 않다. 그다지 재미도 없다. 그런데 왜 읽느냐고? 바로 윗글때문이다. 윗글때문에 읽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부모님을 모시는데(?) 도움을 받고자 함이기도 하다. 나 또한 홀로 계시는 부친을 위해 시골로의 귀향을 선택했다. 평생을 농촌에서 살아오신 부친이시기에 늙은 나이에 도시에서 산다는것이 힘들다는 의견, 그러기에 젊은 우리가 들어와야 한다는것, 참 묘한 진리이지만 따르기로 했다. 그렇게 시작한 농촌생활 아직 정정하시기에 오히려 도움을 받으며 살아간다. 부모를 모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우리는 자식은 돌보고 부모님은 모신다고 한다. 그리고 또 하나 자식돌보듯 아니 그반만의 정성으로 부모를 모신다면 효자효부아닌 사람없다는 말, 살아가면서 그 말이 실감된다. 나도 한 아이의 부모이며 내 부모님의 자식이기때문이다. 치매 어머니를 위해 시골행을 택한 전희식씨, 그로 인해 아내와 자식들과는 떨어져 사는 그와는 다르게 난 남편은 도시에서 딸과 난 시골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또 다른점, 그의 어머니가 고령의 연세이며 치매를 앓는다는것과 달리 내 부친께서는 아직은 건강하시다는것 그것이 감사한 일이다. 여자가 혼자 살면 쌀이 서말이요, 남자는 혼자 살면 이가 서말이라는 말이 있듯이 자식들 출가 시키고 홀로 살아오신지 15년 부친께서도 살림의 이력이 붙을만한데 아직도 살림에는 어설프다. 왜일까? 저자의 이야기는 재미난 소설이 아니다. 오히려 현재를 살아가며 격어가는 삶의 진솔한 이야기 들이다. 노모께서 억지를 부릴실때 아침상을 세번 차렸다는 말에 또다시 발동한 내 버릇 (나라면 어럴때 어떤 기분이 들까? 나라면?) 상상만으로 참 힘들것 같다. 그것이 현실이 된다면 나는 견딜수 있을까? 이제부터 모시는 삶이기에 언젠가는 닥쳐올 현실인데도 아직 내가 견딜수 있을거라 여겨지지는 않는다. 너무나 먼 미래처럼 느껴지고 다가오지 않기를 바래본다. 옆에서 지켜보는 것과 닥친 현실은 다르다. 잠시 잠깐 지켜보고 위로하고 돌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며 부딪혀야 하는 사람과는 달라도 너무나 다른것이다. 긴병에 효자 없다는 말, 그래서 그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읽고 들어 보는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행복이다. 저자의 글을 읽으며 먼저 든 생각이다. 목암(저자의 호)은 그렇게 세상과 소통했고 필요한 이들에게 도움을 주며 위로를 받기도 한것이다. 나도 귀향일기를 써보고 싶다.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는 시골 풍경들과 농촌 생활을 나만의 일기장에 기록해보고 싶다. 어제는 춥더니 오늘은 개나리가 활짝 피었고 목련이 피어 봄날임을 알려준다. 이제 벚꽃도 피어나려 한다. 여기는 이상기온 탓인지 벚꽃이 아직 피어나지 않았다. 늦게 보더라도 아름답게 만개한 건강한 벚꽃을 만나고 싶다. 아스팔트 길이 아닌 땅을 밟는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딸 유진에게 알려주고 싶다. 그렇게 쓰여진 글이 십년후, 이십년후에 나에게 알려줄것이다. 그때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음을~~~ 치매 어머니, 아들과 함께 다시 세상을 만나다 아침을 세번 차렸다는 말에서, 노모가 찾으시는 누군가를 찾아 함게 헤메는 모습에서 그의 진정성이 느껴진다. (나라면 그렇게 할수 있을까?) 아니, 난 못할것이다. 보는것과 직접 겪어야 하는것은 다르니까, 나도 시골에계시는 부친을 모시기 위해 어려운(?) 선택을 해야 했다. 말하기는 쉽지만 결정하기까지 일년의 세월을 흘려보냈다. 다른이들은 말한다. 자식 생각도 하라고, 부모를 모시는 것도 좋지만 아직 어린 자식 교육도 생각해야 한다고, 고민하는 나에게 힘이 되어준것은 신랑 그냥 더 이상 고민말고 가란다. 나중에 때늦은 후회를 하지말고 당신같으면 평생을 가슴에 후회를 앉고 살아갈 사람이라고 내 걱정 말고 그냥 가라고~~~그래서 이사를 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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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보고 난 바람에 흔들리는 이름없는 풀들과 나무를 먼저 생각했습니다. 매일 비슷한 시간에 걷는 들 길에서 비슷해 보이는 나무와 지천에 깔린 풀들이 겨울과 어울리며 저의 시선과 마주합니다.이름을 부름으로 인해 존재성이 드러난다고 어느 시인은 읊었지만 전 나무와 풀들의 모든 이름을 잘 모르지만 꼭 알아야만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지는 않습니다. 단지 제가 이름만 모른다고 해서 그 존재가 약해진다던가 의미가 없으리라는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언제나 그들 세계속에서 아름답고 당당하게 살아왔고 또 생명을 이어나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단지 인간만의 시선이 아니더라도 말이죠.
어머니는 자신의 세계를 어쩌면 참으로 당당히 살아가시는 것처럼 보입니다.오히려 할머니를 단편으로 보고 살아가는 주변 사람들이나 요양사나 기관 사람들의 우매스러움을 통렬히 꼬집는(의도했던 안했던) 일화들을 보면서 피식피식 몸 안에서 나오는 웃음을 견디지 못하기도 했고 때론 내 자신의 부끄러움에 몇 줄을 읽다가 슬며시 책 장을 닫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아래의 글을 읽으면서 뭉클한 마음을 주체하기 힘들기도 했습니다.
"...아들의 말이 떠올랐다 (중략) 아버지의 자연농사법이나 늙으신 할머니 모시고 사는 것이 다 순조로운 순리의 삶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우라부지를 만병통치약처럼 기억하고 계시는 할머니 그리고 어머니의 인생 말년을 감사와 행복으로 채우고 있는 작가와 그 남편과 아버지를 이해하고 감싸 안아주는 부인과 아들 딸들의 자연스런 내림을 보면서 수 많이 떠들어 대는 가족문제니 사회풍토니 하는 지식인들의 허세스런 말들을 조용히 땅에 묻어버리고 싶었습니다.
작가의 말씀처럼 자식만 보고 사는 현시대의 시각은 올바르지도 아름답지도 않습니다. 부모를 모시고 있고 자식이 있는 저로서 오랫만에 만난 단비같은 말씀이었습니다. 저 들의 나무와 풀들이 겨울을 이겨내고 봄비를 맞이 하듯이 말입니다.
지리산 자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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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꿋꿋한 모습의 어머니, 언제나 그대로일것 같던 내 어머니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신다면???
때늦은 후회로 가슴치기도 할 것이고, 노화의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받아들이기도 할것이나, 일상은 그야말로 뒤죽박죽 전쟁터가 된다.
부모가 자식을 감내하기는 쉬워도, 자식이 부모를 감내하기는 쉽지 않은 법!
그래도 모녀간에는 살가운 정이 있어 그나마 낫지만, 저자의 경우처럼 모자간에 일상을 함께 한다는 것은 흔치 않은 모습이다.
우리 정서상 부모님의 노환(치매)은 잘 드러내지 않기 마련이라, 모시는 자녀들이 정서적으로 위안을 받거나 공감을 나누기 어려운데,
저자처럼 책이나 인터넷 카페를 통해서 드러내보이는 경우, 다른 이들에게 많은 지혜와 위안과 희망을 주기 때문에 매우 고마운 일이다.
부모님이 건강하시든 편찮으시던, 예방주사 맞듯이 모든 자식들이 읽어보기를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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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自然) 외딴 시골에서 치매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농부 전희식님이 『엄마하고 나하고』(한국농어민신문)라는 제목의 수필집을 새로 발간했습니다. 사투리로 맛깔나게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내면서 치매 어머니와 노년 삶의 위엄을 성찰하게 해주면서 에세이로서의 문학성도 뛰어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작품성과는 별도로 같은 치매 어머니를 모시는 저로서는 전희식님의 방식에 이견을 갖고 있어 그의 전작(前作) 『똥꽃』의 인터넷 서평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 바 있습니다. ① 고령자는 치매 외에도 다른 노환이 많을 수 있기 때문에 큰 병원과 가까운 도심에 거주하는 것이 유리하다. ② 고령자에게는 자연 환경보다 인문 환경이 중요하다. 자신과 교분을 맺어온 사람들과 인위적으로 단절되지 않도록 배려할 필요가 있다. ③ 고령자에게는 외적 자극이 필요하다. 단조로운 시골 풍경에서 의미를 읽어내는 일은 고도의 지적 능력이 필요로 하는 일이다. 사람이 많은 곳의 활기가 노인에게 더 필요할지 모른다. ④ 시장은 인류가 발명한 위대한 유산이다. 시장과 격리된 어떤 시도도 실패했다는 것을 인류 역사는 보여주고 있다. 시장과 격리되기 보다는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재구매할 수 있는 최소한의 생계 발판이 필요하다. 요컨대 전희식님 나름의 '자연치유' 방식의 하회(下回)가 궁금했던 것인데 신작 『엄마하고 나하고』에서는 자신의 확신이 누락되어 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전희식님은 좀 더 자기 방식의 효험을 설득력 있게 제시했어야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현재 저는 어머니와 함께 출퇴근을 하며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종일 일을 할 수는 없는 형편이지만, 어머니 삶에 리듬을 부여하고 또 한방치료서비스를 재구매하기 위한 최소한의 생계는 마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 상태를 나름의 지표를 통해 측정하여 데이터화 하고 있습니다. 저로서는 최선의 시도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전희식님의 방식과는 극단적 차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치매와 같은 병은 간병인의 의지는 물론이고 세계관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간병인이 세상을 보는 시각에 따라 어머니의 치료 방향과 수준이 결정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전희식님과 저의 차이를 낳게 하는 것이겠습니까? 저는 자연관(自然觀)이라고 봅니다. 전희식님은 도회와 대별되는 가공되지 않은 시골에서의 자연적 삶을 추구하시는 분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생사장(生死場)에 있어 도회와 시골의 구분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이분법을 넘어선 자연을 궁구하는 도정에서 어머니의 삶을 해석하고 싶습니다. 특히 치매에 있어서는 그래야 운신의 폭이 넓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