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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신의 진화>가 가지는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좀 긴 설명이 필요하다. 서양 철학사에서 헤겔 철학의 관념론적 기초에 철퇴를 가한 것으로 평가받는 루트비히 포이어바흐는 자신의 저서 <기독교의 본질>에서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신이란 인간이 생각하고 느끼는 그것과 다르지 않다. 인간이 갖는 가치 이상을 신은 갖고 있지 않다. 신에 대한 의식은 인간의 자의식이며 신의 인식은 인간의 자기 인식이다. 그대는 신으로부터 인간을 인식하며 그리고 다시 인간으로부터 신을 인식한다. 인간과 신은 동일하다. 인간에게 신인 것은 인간의 정신Geist이고 영혼Seele이며, 인간의 정신·영혼·마음은 인간의 신이다. 신은 인간의 내면이 나타난 것이며 인간 자체가 표현된 것이다. 종교는 인간의 숨겨진 보물이 장엄하게 밝혀지는 것이며 인간의 가장 내적인 사상이 공언되는 것이며 사랑의 비밀이 공공연하게 고백되는 것이다. 원래 철학자들은 어렵게 말하는 경향이 있어서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데, 한마디로 얘기하자면 신이 인간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만들었다는 얘기 되겠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을 보라.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슬퍼하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하고 시기질투하기도 한다. 까놓고 말해 결혼하고 애 낳고 희로애락을 느끼는 것은 누구인가? 사람이다. 사람이 자신의 모습을 투영해서 신을 빚어낸 것이다. 포이어바흐는 서양을 지배하고 있는 기독교라는 종교에서 인간의 ‘본질’을 찾아내려는 시도를 했다. 기독교라는 종교와 신을 만든 것은 인간이기 때문에 신을 탐구하면 인간의 본질에 다다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일 테다. 당시 포이어바흐가 서양 지성계에 끼친 충격파는 대단했던 것 같다.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그의 저서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에서 포이어바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논평하고 있다. 포이어바흐는 헤겔의 관념론적 체계와 완전히 인연을 끊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드디어 포이어바흐는 불가항력적으로 다음과 같은 의식에 도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시 말해서 헤겔의 ‘절대정신’이 천지개벽 이전에 존재하였다든가, 우주 생성 이전부터 ‘논리적 범주가 미리 존재했다’는 것 등은 피안의 조물주에 대한 신앙의 환상적 유물에 지나지 않는다……우리의 의식과 사유는 그것이 아무리 초감각적인 것으로 보일지라도 물질적•육체적 기관인 뇌수의 산물이다. 물질은 정신의 산물이 아니며 정신이 물질의 최고 산물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까지 이르러 포이어바흐는 돌연히 발걸음을 멈춘다.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헤겔의 관념론적 체계를 근본부터 허물은 포이어바흐의 유물론 사상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왜 ‘돌연히 발걸음을 멈춘다’는 단서를 달았을까? 포이어바흐는 <기독교의 본질>이라는 책을 썼다. 본질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그 무언가를 얘기하는 것일 테다. 이를테면 포이어바흐는 기독교라는 것에서 무언가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질을 찾아내려는 시도를 한 것이다. 하지만 엥겔스가 가진 변증법적 세계관에서는 ‘변하지 않는’ 것이라는 없다. 세상 모든 것은 변화발전의 과정에 있으며 사물이나 사건, 현상을 올바르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 변화하는 역사적 과정을 염두에 두고 연구해야 한다. 그래서 엥겔스의 친구인 카를 마르크스는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에서 대해 다음과 같은 논평을 한 것이다. 따라서 포이어바흐는 ‘종교적 심성’ 자체가 사회적 산물의 하나임을, 그리고 그가 분석하고 있는 추상적 개체가 한 가지 특정한 사회 형태에 속함을 알지 못한다. 기독교라는 것에 투영된 인간의 모습은 포이어바흐가 생각하듯 인간의 ‘본질’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서양 중세사회라고 하는 하나의 특수한 사회에 의해 형성된 특수한 인간형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라는 얘기다. 그런 이유로 사회가 변하게 되면 당연히 기독교도 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 ‘본질’이라고 할 수 없다. 로버트 라이트의 저서 <신의 진화>는 유대교와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교라는 종교를 유물론적인 시각에서, 그리고 역사적으로 변화발전하는 역동적인 과정 속에서 세세하게 고찰하고 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진화심리학의 관점에서 종교와 과학을 이야기한다. 이 책의 핵심은 제목에서 보듯이 인간이 진화해 왔듯 신도 진화해 왔다는 것이다. 여기서 ‘신’은 하나님이나 알라, 예수 같은 특정한 신 자체를 지칭하는 개념은 아니라 인간 혹은 신자들이 인식하는 ‘신’을 의미한다. 신 혹은 종교가 수렵채집사회, 족장사회의 원시종교에서 고대국가의 다신신앙을 거쳐 어떻게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일신신앙으로 진화되어 왔는지를 유물론, 그리고 진화론의 시각에서 면밀히 추적한다. 로버트 라이트가 종교를 보는 입장은 명확하다. 종교는 기본적으로 선도, 악도 아니며 자연선택에 의해서 진화해 왔으며, 사람들이 신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에 따라 발전해 왔다는 것이다. 다신신앙에서의 신은 보통 복수와 응징, 무섭고 편협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일신신앙으로 바뀌어가는 과정을 추적한 결과 그런 신이 점차 사랑, 관용, 이해의 신으로 성숙해 왔다는 점을 라이트는 발견한다. 종교전쟁, 성전, 종교박해 등으로 그러한 흐름이 중단되고 또, 역행하기도 했지만 결국 종교는 점점 더 많은 집단의 사람들을 사랑하고 배려하는 관용의 대상에 포함시켜 왔고, 그 대상의 범위를 오늘날까지 확대시켜 오고 있다고 말한다. 라이트는 종교가 이렇게 포용력을 넓힌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 바로 ‘도덕적 상상력’의 확장이라는 견해를 피력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도덕적 상상력’이란 타인의 입장에서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보려는 노력을 의미하는데, 라이트는 이것을 게임이론으로 설명한다. 수렵채집사회에서 점점 규모가 크고 복잡한 사회로 발전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과 넌제로섬(non-zero sum) 게임을 벌인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타인의 이익이나 행동이 자신의 이익이나 행복과 정비례관계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타인과 타인의 종교에 관용적이고 포용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다고 말한다. 수렵채집사회 이후로 인간은 그런 넌제로섬 상황에 많이 직면하게 되고, 인간은 그런 유연한 태도를 발휘해서 타인과의 넌제로섬 관계를 유지해 나간다. 통합된 제국의 다양한 종족의 국민을 다스리기 위해, 교역국가와의 관계를 매끄럽게 하기 위해, 때로는 바울처럼 전 세계에 기독교라는 종교를 전파하고 그 교단을 확장하기 위해서 종교는 관용과 사랑을 표방해 왔다는 것이다. 저자 라이트이 펼쳐내는, 신이 진화해나가는 모습 속에 우리는 인간 사회와 정신의 진화과정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그의 얘기가 다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즐거운 지적 탐험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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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장은 왜 창세기 1장보다 더 먼저 만들어졌을까 예수라는 이름은 로마시대에 아주 흔한 이름이었다. 동정녀 마리아이야기는 이집트의 오시리스신앙부터 아주 다양한 지역에서 이야기 되어졌던 것을 성경에 인용한 것이다. 유대교가 진화한 한 형태가 기독교이고 기독교가 진화하여 시대상황에 맞게 변화를 한 것이 이슬람이다. 불교도 석가모니의 가르침이 아니라 그 시절 그 시대사람들의 생각과 사상을 집대성한 것이 불경이라 나는 알고 있다.
종교와 과학, 문명과 문명, 종교와 종교간의 전쟁을 끝낼 새로운 제안 로버트 라이트는 놀라운 발견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한다,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의 진화에는 패턴이 있으며, 그들의 성서에는 숨겨진 암호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라이트는 성서가 쓰인 시대의 정황을 바탕으로 그 성서를 읽었고, 그 아브라함 종교들을 더 높은 도덕적 단계로 비상할 수 있게 한 동력을 보여 준다. 그는 이러한 동력을 통해 오늘날 이들 종교가 어떻게 조화로운 방향으로 갈 수 있는지 종교의 기원과 발달 과정을 살피며 그 길을 모색한다. 더 나아가 과학과 종교가 화해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시한다. 라이트는 고고학,신학,역사학.진화심리학의 프리즘을 이요해 기존의 통념을 무너뜨리며, 신들에 대한 우리의 전통적 관념이 어떻게 잘못됐든 그 신들의 진화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 긍정적인 작용을 할 것이라고 말한다. 지적 설계론과 진화론, 9.11이후 더욱 커진 이슬람세계와 유대-기독교로 대표되는 서방세계 간의 종교,문명 갈등이 충돌이 아닌 서로가 통합하고 화합할 수 있는 넌제로섬게임이 될 수 있다는 점도 밝혔다 이 책은 신에 대한 관념과 신이 어디서 왔고 신과 우리가 이제 어느 곳을 행헤움직일 것인가에 관한 당신의 생각을 영구히 바꿔 놓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