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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기숙사로 책을 한 권 보내주셨다. 엄마는 종종 나한테 이상한(?) 책들을 보내주시곤 한다. "무조건 읽어라-엄마"라고 겉장에 써서. 이번에도 "이 불길한 느낌은 뭐지?" 하면서 봉투를 열고 책을 꺼냈다. 그런데 이번 책은 엄마의 lieblings list와는 좀 달라보였다. 머, 그런대로 가볍게 읽겠다 싶어서 하루 날 잡고 누워 책을 읽기 시작했다. 처음엔 살짝 지루했는데 읽다보니 점점 재미있어졌다. 이제는 남의 세상 이야기 같기만 한 격동의 시간들, 그 흔적들... 사실 난 사회 참여나 정치 등등에 별로 관심이 없다. 그냥 소박하게 아프리카 아이들 2명 후원하는 게 전부다. 하지만 테르짜니 아저씨의 글을 읽다보니 우리가 몸소 체험하는 팩트들이 한 개인 나아가 전체의 운명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성격 하는 우리 엄마도 매번 "경험의 다다익선"을 외쳤는데, 같은 맥락인 듯 싶다. 사람은 아는 만큼 보고, 경험한 만큼 생각하고, 또 성장한다는 뜻. 나는 임종을 앞둔 테르짜니 아저씨가 이탈리아 산골 마을로 아들을 불러 놓고 조용히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는 데 감동했다. 나 같으면 죽음이 무서워서 안절부절 하거나, 좌절하거나, 고통스러워했을 텐데. 사랑하는 가족들을 두고 떠나는 발길이 어쩜 그토록 자연스럽고 조용할 수 있을까? 수양의 결과겠지, 아저씨 말마따나 "내적 혁명, 고요한 혁명"을 이룬 결과이고. 특히 "아버지는 추억을 심어주는 사람이란다" 꼭지를 읽을 때는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살짝 붉어졌다. 우리 아빠 생각이 나서. 그리고 나도 나이 먹고 아버지가 되면 아들에게 저렇게 말할 수 있을까 싶어져서. "피자를 사 주는가, 반딧불을 보여주는가"는 아주 사소한 선택이지만 그 사소한 결정과 행동들이 모여 아이들의 생각과 행동의 방향에 영향을 미치는 것만은 틀림없다. 나도 어렸을 적에는 부모님을 따라 여행을 많이 했는데...지금 생각하니 그게 다 보물 같은 시간들이었구나... 정말 오랜만에 가벼운 맘으로 행복하게 생각하고 밑줄까지 그으면서 읽은 책이다. 방학내내 프로젝트 수행하느라 찌들어버린 동아리 친구들한테도 강추해야겠다. 맞아, 내가 변하지 않고서는 아무 것도 변할 수 없음이다. 내가 변하지 않고서 남에게 변화를 요구한다는 건 그러니까 깡패 짓거리. 올해는 나도 좀 "변화"를 추구해봐야겠다. 테르짜니 아저씨도 고맙고, 울 엄마 아빠도 고마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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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출신 슈피겔 기자의 인생 회고록이다. 죽음을 앞두고 아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형식으로 된 것이 특이하다. 좌파 성향의 기자로 아시아 지역의 전쟁과 혁명을 겪으면서 저자가 깨달은 바가 인상 깊다.
인간이 변하지 않으면, 물질에 대한 욕망과 사리사욕을 버리지 않으면 모든 것이 영원히 반복될 뿐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가 바로 이것인 것 같다. 욕망으로부터 해탈하지 않으면 윤회한다는 것은, 쳇바퀴 같은 삶을 산다는 것이다. 저자의 주장은 다만 개인이 아니라 사회 혹은 역사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이 다를 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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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차근 현대 사회엔 자극이 너무 너무 많아요. 그런 게 정신의 평안을 빼앗아 가지요. 집에선 텔레비전이 '왕왕'거리고, 자동차에선 라디오가 떠들어 대고, 광고로 도배된 버스와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휴대 전화... 그러니 시간을 갖고 차근차근 생각을 하는 게 불가능해요. 사람들의 생각은 짧게 '툭 툭' 끊어져 버리지요. - 티찌아노 테르짜니의《네 마음껏 살아라》중에서 - * 어수선한 때일수록 덩달아 왕왕대면 안됩니다. 그럴수록 차근차근 생각을 가다듬으며 더욱 차분하고 냉철하게 대처해 가야 합니다. 툭 툭 끊기는 것들에 맥없이 끌려다니면 자기 인생도 툭 툭 끊기게 됩니다. 차근차근 걸어가십시오. 그게 빠른 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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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세계 역사는 승자들의 기록에 불과하다. 그것도 2차 세계대전을 끝으로 대부분의 현대사는 저마다의 얼굴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는 우리와 상관없다는 이유로 외면해 버린다. 그래서 <꺼꾸로 읽는 세계사>를 보면 이스라엘의 건국과 베트남 전쟁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던 것과는 다른 입장을 보게 되는 것이다.
<네 마음껏 살아라>는 동아시아 현대 역사의 현장을 누비며 같이 살아온 특파원이었던 티찌아노 테르짜니가 암으로 생의 끝자락에 영화제작자인 아들 폴코에게 그동안의 살아온 이야기를 전해주는 자서전적인 책이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은 카를 마르크스도 했고, 아놀드 토인비도 말했다. 그런데 반복되는 역사는 대부분이 슬픈 역사다. 그래서 슬픈 역사일수록 반드시 청산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테르짜니는 과거 미국이 베트남에 저지른 만행이 현재의 외신기사를 읽다보면 지금 이라크에서 벌어지는 것과 다름없음을 안다. 그래서 역사는 반복된다는 거다. 특히 크메르 루주에 의해 이루어졌던 대량학살의 이야기가 앙코르와트 사원의 부조 조각으로 이미 천 년전에 예언되었다는 사실은 실로 놀랍다. 세계적인 관광지로 유명한 앙코르 와트 유적에 그런 슬픈 전설이 있다니 말이다.
어렵게 이뤄낸 혁명은 결국 수고한 사람들이 자기 몫을 찾는 과정을 통해 변질되어 버린다. 그래서 테르짜니는 혁명은 어린애 같아 처음에는 순수하지만 점차 비열한 어른으로 변질된다고 한탄한다. 책을 통해 본 동아시아 역사에서 베트남과 캄보디아, 중국 등 공산주의자들이 혁명을 성공하고도 자본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 보다 못한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세상이 바뀌기를 바라면서 흘렸던 수 많은 피는 결국 덧 없이 사라져 버린다.
테르짜니는 자유을 갈망해서 고향을 떠날 수 있었고, 세상을 바꾸기를 바랬기 때문에 역사의 현장에서 특파원의 신분으로 타인의 삶과 동화되어 살아갈 수 있었지만, 결국 그가 갈망하는 세상은 보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테르짜니는 히말라야를 찾았고 인도에서 신앙의 힘을 느껴보지만 그 곳 역시 평등하지 못한 사회라는 사실을 깨닳게 된다. 모든 것을 버림으로써 평온을 찾게 된 테르짜니. 의미있는 삶을 살았기에 삶의 끝자락에 와서 후회없이 죽음을 맞이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한 권의 책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경우는 참으로 드물다. 그런데 이 책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아마도 작년에 읽었던 리영희 선생님의 자전적인 책인 <대화>라는 책이 생각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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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한 경험만큼이나 정말 다양한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ㅡ. 가장 주목할 것은, 젊은 열정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었을, 세상을 바꾸고자하는 의지-그는 지금의 젊은이들에게는 그런 것이 없다고 말한다-였다. 언론의 힘으로 권력을 견제하기도 하고, 이상적인 사회가 있으면 그 모습들을 배우려는 노력들을 들려준다. 사회의 불합리, 부조리를 보고 대안으로 찾은 것이 중국이고, 중국어 까지 배우게 된다. 그리고 「마오 주석 어록」이 던져준 ‘나도 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세계관까지 가지게 된다. 하지만 그 결과는 참담했고, 환멸까지 느낀다. 급기야 ‘인간을 변화시키려는 사람’들을 두고는 끔찍한 살인마라는 이야기까지 한다. 결국 그가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자기 내면을 변화시키는 혁명이라고 이야기한다 ㅡ. 그리고 그가 향하는 곳이 인도이다 ㅡ. 인도 역시 크게 다르지는 않고, 결국 그는 히말라야에서 수련을 함으로써 보다 큰 깨달음을 얻게 되고, 그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것이다 ㅡ. 후회 없는 삶을 살았던 티찌아노이기에 이런 해탈의 경지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물론, 그가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고, 그 길을 그대로 따라가면 나 또한 그런 삶을 살 것이라고 생각할 사람은 없을 거라 생각한다. 『네 마음껏 살아라!』는 티찌아노가 살아온 길을 따라 과거로 가는 여행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고, 그를 통한 미래로의 여행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길이 되었든 이 여행의 종착점은 나 자신이라는 사실이다 ㅡ. 그가 던져준 수많은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결국은 “내 마음껏 사는 것!”ㅡ. 그것이 바로 삶의 마지막을 편안하게 맞이할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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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맞는 삶 내가 걸어온 길이 결코 특별한 게 아니라는 걸 네가 꼭 알아주었으면 해. 난 예외적인 사람이 아니야. 누구나 나처럼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갈 수 있어. 약간의 용기, 결단, 그리고 자의식만 있으면 돼. 자신만의 고유한 삶을 사는 거 말이야. 진정한 삶, 내게 맞는 삶, 자신을 올바로 인식할 수 있는 삶을 사는 거지. - 티찌아노 테르짜니의《네 마음껏 살아라》중에서 - * 누구에게나 자기의 길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모두 자기 길을 찾아가는 여정입니다. 자기 길을 찾아 자신만의 고유한 삶을 창조해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나다운 사람이 되는 것, 이것이 곧 '내게 맞는 삶'을 올바로 사는 것이며 '내가 내가 되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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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까지 읽어 약 2~3일만에 완독한 책이다. 티찌아노와 그의 아들이 대화방식으로 녹화한 것을 책으로 서술한 방식인데 일종의 인터뷰를 옮겨 놓은 책인다. 하지만 구독을 한 사람이라면 알게 되겠지만 우리가 흔히 접하는 시사나 정치 경제 잡다한 정보의 홍수가 아닌 암 선고를 받은 나이 지긋한 노인이 자신의 아들과 이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기는 메세지와 유언을 담은 책이다. 나는 이책을 정말 재미 있게 읽었다. 티찌아노와 그의 아들이 오르시냐의 푸르고 맑은 하늘에서 대화하는 모습을 회상을 하며.... 티찌아노라는 기자의 삶은 어릴적부터 이승의 종착까지 파란만장하면서도 뜻깊으며 역사의 현장을 목격한 살아있는 역사서라는 생각이 글을 읽는 순간마다 들었다. 어쩌면 그가 여러 직업들을 경험하고 기자생활을 하며 세계 방방곳곳을 누볐기에 그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 사회 초년을 살고 있는 나에 비하면 그는 직업에 얽메이지 않았고 결단력 있었으며 마치 자유로운 한마리의 나비에 비유할까. 이 글을 통해 현대 역사의 굵은 사건들을 다시끔 되돌아 보게 되어서 상당히 의미있었다. 그리고 겉으로 보이는 모든것을 믿지 말라는 말이 있듯 우리가 듣고 알던 역사의 한 순간이 사실은 정반대가 될수가 있고 깊은 무언가가 있음을 암시하고 들려주었다. 그의 말대로 현대의 역사는 끈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그러나 그 역사는 원래 그랬듯이 자연스럽게 물흐르듯 흘러갈 뿐이다. 지금 당장 우리에게 중요한건 기분나쁜 기사거리를 둘러만 볼 것이 아니라 정말로 진실한 자기자신을 탐구하고 자신의 삶을 되짚어보는 시간을 갚는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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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내내 아침이 오는 것을 그리워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렇게 빗줄기는 멈추지 아니하고 내린 듯 하다.그러기를 오후까지 연이어질지 몰랐다.이런때에 나 혼자 고즈넉히 어떠한 생각에 몰입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곤 하다.분명 것은 거슬러 올라가 과거로의 여행에서 현 시점까지 점을 찍어 놓듯이 하나의 선이 되어 이내 내 걸어온 길의 그림자밟기를 마침표 없이 이어지는 기억의 변증법이 진행되다가 곧 아침이 오는 소리와 함께 소소한 일상적 삶의 단상이 제시되기도 한다.간혹 한 줄기 내려온 빛을 보지 못하고 넋 나간 얼굴로 허공을 찌른적이 간간히 있던 내게 일전의 읽었던 '내 기억의 피아니시모'의 주인공 앨리스를 통해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에서 가족들을 불러 자신의 병에 대해 말을 건네는 장면은 아직도 내 뇌리속에 평생 잊혀지지 않을 정도로 깊숙히 각인 되어있다.이처럼 어떠한 책을 만나느냐에 따라 내 여행의 방향과 동반자가 달라지기도 한다.그런 연유로 늘 나서는 여행은 내게 적잖은 설레임과 두려움을 선사해 준다.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마치 죽음은 우리에게 등을 보이고 한 줌의 빛조차 허락하지 않는 우리의 생의 측면이기도 하나 살아있음에 해야 할일들이 너무 많아 고로 죽음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두 손을 놓기란 어리석은 일이 아닌가 싶다.굳이 앞서 '죽음'에 관해 거론한 것은 마지막 생의 끝자락에 놓인 아버지인 테르짜니와 아들인 폴코가 주고 받는 문답형식의 대화들을 통해 그가 지금껏 살아온 인생에 대한 회고(懷古)를 구분하여 암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길을 잃지 않고 히말라야에 들어가 영성수련을 하며 생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맞이하게 된다.그렇다면 테르짜니가 폴코에게 들려주려 했던 이야기는 진정 무엇이란 말인가.피렌체의 노동자들이 많이 살고 있는 변두리에서 태어나 동시대의 그야말로 굵직한 사건들을 몸소 체험한 베트남 전쟁,사회주의 중국을 통해 환멸을 느꼈고 소련붕괴,캄보디아의 킬링필드등을 적나라하게 이야기하고 있다.그 중 테르짜니는 신성한 땅인 인도에서 죽음에 앞서서 죽는 법을 어느 정도 배웠고 또한 욕망까지도 버릴 수 있었다고 한다.태어나서 살다가 죽는 것은 모든 인간에게 공통된 체험이라고 말이다.그렇다,사람은 죽고 싶은 것이 아니라 살고 싶은 자연스러운 욕망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책을 읽는 도중에 물연기 피어 오르듯이 연상된 人生爲笑 (인생위소)爲笑不僞 (위소불위)이다.이처럼 인생의 많은 굴곡이 있지만 결국엔 이루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며 그렇지 않은 것은 더 말이 필요없이 도태된다.이것이 그가 겪은 큰 소용돌이 속에서 얻은 인생의 진리다.인생이란 길거나 짧거나 영원에 비교하면 무(無)와 같다.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하나 그것은 생을 사랑하는 까닭에서이다.그 어떤 것도 우리가 의미를 부여하기 전엔 아무 의미도 없는 것처럼 말이다.마치 아들인 폴코에게 거듭 강조하고 강조한 하고픈 것을 하지 못하고 방황했던 자신이 아닌 용기를 가지고 길이 아니라해서 가지 못함이 아닌 흔들리지 않는 굳건함을 보여주면서 자신만의 올곧은 길을 가라 제시 해 준다.20세기 거칠고 거친 격변의 시대를 지나 온 그는 이중혁명에서 저널리즘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언론을 통해서 사회에 참여할 수 있음을 알았고 그런 연유에서 그의 꿈인 기자가 되어 독일 시사 주간지'슈피켁'특파원으로 일을 하게 되지만 결국엔 세계의 혁명을 부정하는 일찍이 무정부주의(無政府主義)였다고 말한 그의 글을 통해 진정한 변화는 곧 자신에게서 일어남을 의미함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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