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흙’이라는 걸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바로 어릴 적에 얼핏 본 동화이야기이다. 아주 먼 미래, 길가에서 할아버지 한 분이 ‘흙’이라는 걸 팔고 있다. 엄마 손을 잡고 그 옆을 지나치던 아이가 할아버지가 팔고 있던 흙을 가리키며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 저게 뭐야?” “응, 흙이라고 한단다.” “흙이 뭔데??” “우리가 밟고 있는 이 아스팔트 밑에 있는 거야.” 암튼 이런 식으로 흘러가는 이야기인데 이게 꽤 나에게 충격적인가 보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모르고 이 부분만 아직까지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는 거 보면 말이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으로 알게 된 출판사, 휴머니스트. 만화책과 더불어 출판사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높아가던 때, 이 출판사에서 출간된 책들을 모아서 메일을 보내주더랬다. 그래서 가장 눈길을 끄는 [흙을 밟으며 살다]라는 책이다. 윤구병 작가의 책인데 이 작가가 쓴 책들을 보면 참말 제목 하나는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이 책을 포함해서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잡초는 없다], [조그만 눈을 들면 넓은 세상이 보인다], [자연의 밥상에 둘러앉다] 등. [흙을 밟으며 살다]를 두번째 초반에 읽을 때까지는 제목이 멋지니 딴 거 구입해서 읽어 봐야지 이랬는데 지금은… ‘흙’이라는 단어가 맨 처음에 얘기한 동화책이 생각나서 골랐는데 아, 이런 사람도 있구나, 아니면 아, 이런 공동체 생활도 있구나로 내가 느낀 점이라면 그거다. 즉, 변산에 공동체 생활을 하는 집단이 있다는 걸 이 책을 통해 알았고, 작가라는 사람이 참으로 많이 특이하다라는 거다. 처음에 읽을 때는 그런갑다 했는데 책에서 쓰지 않아서 그렇지 욕도 잘 할 거 같고, 혀를 내두를만한 사람이라는게 확 느껴진다. 특히 아내와의 싸움에서 지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걸 보면 으이구~~ 못 이기는 척 져주지는(근데 나중에 아내의 승리다 라고 쓰여 있다.)할 정도다. 나도 한 번 다 때려치우고 시골 내려가서 부모님 농사 짓는 거나 도우며 살까나 간혹 생각이 드나 이 안정적인 수입이 가져다 주는 기쁨 또한 포기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즉, 안정적인 수입이 있으면 언제든 시골로 들어갈 수 있다는 말 같은데 곰곰히 생각해 보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농사는 아무나 짓나? 뙤약볕에서 반나절만 일해도 쓰려질 거 같은데 업으로 하라면 도저히 이건 아니다 싶다. 작가는 교수를 그만 두고 부안으로 와서 농사 짓고 사는 거 보면 원래 그 사람의 운명이려니 하고 나는 생각하련다. 그렇다고 농사만 짓지는 않고 학생도 가르치고, 책도 내면서 나 같이 그의 공동체 생활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 또 그가 사회에 대해 느끼는 이런저런 생각과 의견들을 알 수 있게끔 꽤나 열심히 살아간다. 참, 이 책을 보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역시 땅은 함부로 파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나만 살고 죽으면 모를까 우리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땅은 함부로 내다파는 게 아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냐면 먹고 사는 데 가장 기본적인 것을 제공함은 물론이고, 내 노후에 와서 텃밭이라도 일구어서 입에 풀칠이라도 해야겠고, 타지에서 내 집 없는 설움을 겪어본 건 아니지만 집이라도 한 채 지어서 살았으면 하고. 옛날옛날에는 내 땅이 없어서 종살이 하고 소작농이 되고 일제시대에도 마찬가지이고. 뭔가 머릿속에 있기는 한데 거창하게 글로 표현을 하지 못 하는 게 안타깝다(이 죽일 놈의 표현력!). 나, 원, 꼴 같지 않은 놈들 같으니라고! 기업들이 땅을 사들여 그 땅을 농민들이 소작하는 형태에 대한 분노를 그가 책에서 할 수 있는 최상의 욕으로 표현하고 비판한 글제목인데 내용에 공감이 간다. 전 농민의 소작화라니… 암튼 뭔가 이상하고 꺼림직하다. 물론 요새도 소작농이 있긴 하지만 거기에 대기업이 끼어든다라는 건 무슨 소리인지.. 요즘에 대기업의 막대한 자본으로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확장 하는 걸 보면 상생경영은 왜 들고 나오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인데.. 이제는 땅으로까지 먹어 들려 하다니 이건 아니다… 사람은 죽어서 흙이 되는 거 이왕 죽을 거 욕심을 조금만 부리고 살아가야지. 마지막으로 우리 주변의 시커먼 아스팔트로 뒤덮여가고 장맛비에 휩쓸려가는, 4대강 공사로 인해 사라지는 많은 흙들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는데, 위의 이야기가 현실이 되질 모르겠다. 기우일까? 흙이 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한데, 또 오염이 되면 다시 재생되는 데까지도 물과 공기에 비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들었는데 어찌 막아야 될 방법이 없나? 비록 작가가 하는 얘기와 조금은 동떨어지더라도 흙에 관해서는 이 책을 읽으면서 여러모로 이 생각 저 생각 하게끔 해 준 시간이었다.
|
|
대학교 시절 이름만으로 유명하셨던 윤구병 선생님의 책.
선생님을 인터뷰하려면
과연 우리는 자연, 흙, 먹을거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자연의 섭리를 알고 흙과 벗하며 먹을거리를 만들고 있는
그리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아주 보편적인 것들의 뒤바뀜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런 여러가지 가르침 덕에
|
|
내가 가장 만나보고 싶은 작가님을 꼽으라면 그 중에 한 분이 바로 '윤구병' 선생님이시다. <어린이 마을>, <달팽이 과학동화>, <개똥이 그림책> 이 책은 우리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조카에게 정말 많이 읽어주었던 책이다. 그리고 그 책들을 고스란히 물려받아서 우리 아이에게 읽어주었던 때가 꽤 오래 지났다.
그 때 처음 윤구병 선생님을 알게 되었고, 도토리 계절 그림책으로 다시 만났다. 특히 [심심해서 그랬어] 책은 우리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교과서를 통해서도 만났기에 더욱 애착이 가는 그림책이다.
그 다음 좀 더 많이 알게 된 것은 보리출판사 탐방을 갔을 때이다. 거기서 윤구병 선생님께서 계신 변산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어떤 곳인가 궁금해서 이리저리 검색해 본 기억이 난다.
그리고 이젠 [흙을 밟으며 살다] 책으로 본격적인 만남을 갖게 되었다. 이번에 새로 나온 윤구병 선생님의 책 중에서 [꿈이 있는 공동체 학교]와 [자연의 밥상에 둘러앉다], [가난하지만 해복하게] 역시 궁금했지만, 그 중에서 제일 먼저 선택한 책이 [흙을 밟으며 살다]이다. 30년 동안 공동체를 꾸려오면서 쓴 에세이를 주제별로 몇 권의 책으로 나눠 출간한 것이다.
이 책에서는 1. 땅, 생명들의 놀이터 / 2.흙 위에서 자유로이 살다 / 3. 남의 덕에 우리가 사는 겨 / 4. 내가 꿈꾸는 공동체 이렇게 네 가지 주제로 첫 장에서는 농사 지으면서 느끼는 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두번 째 장에서는 윤구병 님의 살아온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어린시절과 청춘시절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그리고 3,4장에서는 작가의 생각과 견해. 그리고 변산공동체의 생활에 대한 모습과 앞으로 꿈꾸는 미래에 대한 모습을 알려준다.
나 역시 공동체 생활을 하는 곳에서 일주일 묵었던 적이 있다.
그 땐 왜 젊은 사람들이 시골에 와서 공동체 생활을 할까 궁금하기도 하고, 또 그들의 삶의 철학에 대해서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꽤 있었지만, 그 때로부터 10년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의 생각은 그 때와는 또 다른 면이 있는 것 같다.
또한 친정 부모님께서 퇴직을 하시고 시골에 가서 농사를 몇 년 동안 지으셨다. 지금은 많이 연로하셔서 건강상의 문제로 병원 출입이 쉬운 도시로 다시 오셨지만, 몇 년 시골에서 흙을 일구시며 땀을 흘려 농사를 짓던 부모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전화 통화를 할 때에도, 직접 찾아뵈었을 때에도 손수 심으신 나무가 잘 자라고 있는지 살펴보며 뿌듯해하셨고, 결혼 후 아이가 태어났을 땐 손수 지은 농산물을 한아름 안겨주시기도 하고, 직접 오이나 호박을 딸 수 있도록 아이가 오기까지 기다리곤 하셨다.
연고도 없는 시골, 그것도 하루에 버스가 단 세 차례 다니는 시골로 이사하신 후 아파트 하나 안 보이는 시골이라서 더 흐뭇해하신 친정 아버지의 얼굴이 떠오른다. 자전거 하나로 밭에 오가면서 농사를 지으시던 모습. 500평 작은 밭에 콩이며 땅콩, 옥수수와 들깨, 무와 배추 등 조금씩 자잘하게 심고 가꾸시는 모습은 얼마나 평화로워보였는지 모른다.
농사에 대해선 문외한이지만, 이 책에서 나오듯 오무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것이 얼마나 어려울까 상상이 되었다. 하지만 흙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는지라 그렇게 노력한 결과 그 수확은 더욱 고귀한 결실이 되었을 것 같다.
[흙을 밟으며 살다] 책을 읽으면서 자꾸만 부모님이 떠올랐다. 노인들만 거주하는 시골의 모습, 그리고 그곳 역시 집성촌이었기에 알게 모르게 친인척으로 구성된 마을 속에서 하나가 되기 위해 노력하시던 부모님. 자라온 삶의 모습이 달랐지만, 시골 속에서 함께 동화되기 위해 먼저 마음의 문을 여신 부모님이셨다.
지금은 건강 때문에 다시 도시로 왔지만, 늘 흙을 일구며 살고 싶은 친정 부모님을 위해서 열심히 주말농장을 분양받는다. 꽉 막힌 아파트와 수많은 차들과 거리 곳곳에 네온사인들. 시골 모습과는 다르지만 그래도 주말농장을 통해서 흙과 함께 지내실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흙이 우리에게 주는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윤구병님의 에세이는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로 참 진솔하고 흙내음이 난다. 쉽게 공동체의 삶에 뛰어들 수 없더라도, 왠지 그 속에서 함께 하고픈 충동을 준다.
점점 농촌의 인구가 줄어들고 고령화되며, 앞으로 우리의 먹거리는 어떻게 될런지 걱정이 된다. 이렇게 든든히 농촌을 지키며 일구는 분들이 더 많이 계신다면 참 좋겠는데 싶으면서도 내가 할 수 있다는 생각은 감히 못하는 지극히 소심한 나.
단순히 농사를 짓는 곳이 아닌, 부유한 농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삶.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몸으로 직접 보여주신 그분의 삶의 모습에 경의를 표한다. 자연 속에서 자급자족하며 풍요로이 살아가는 삶의 모습은 현재 우리의 모습과 정말 많이 다르다. 늘 쫓기듯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아이들은 공부 때문에 지쳐하면서 그렇게 살고 있는 우리를 돌아보면서 무엇이 최선이며 최고인지 다시 돌아보게 된다.
대학교수직을 그만 두고 낙향하고, 그 곳에 변산교육 공동체를 세우셨다. 그렇게 새운 공동체 안에서 농사를 짓고 그 농사를 지은 것으로 상품을 만들며 자녀들에게 공동체 삶이 무엇인지 손수 가르치셨다. 거의 모두가 농촌을 떠나 도시로 가는데, 이와 반대로 최고의 엘리트라고 할 수있는 대학교수에서 농촌으로 오신 분. 농촌은 가난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떨치고 자급자족하고 잘 살 수 있음을 손수 보여주셨다.
과연 무엇이 정답일까? 교육으로 인해 우리는 늘 맞고 틀리는 이분법적인 삶은 고집할 때가 있다. 맞고 틀린 것이 아니라 나와 다른 삶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자연 속에서 넉넉한 삶을 유지하고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이 요즘엔 참 부럽다.
나중에 우리 아이에겐 어떤 삶이 기다리고 있을까? 어릴 땐 우리 아이 역시 흙 속에서 뛰어놀고 잠자리며 매미며 개구리와 함께 실컷 놀았다. 눈이 내리면 커다란 눈사람을 만들기도 하고, 비가 오면 빗물 웅덩이에 종이배를 띄우기도 하고 풍덩풍덩 발 담그고 놀기도 했다. 놀이터에 가면 모래밭에 앉아서 커다란 모래성을 쌓기도 하고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노래를 함께 부르면서 놀기도 많이 했다. 나의 어린시절을 떠올리며 난 그렇게 아이랑 놀았는데, 어느 순간에 아파트 놀이터는 모래밭에 쥐들이 와서 병균을 퍼뜨린다며 모래를 다 없애고 푹신한 우레탄으로 바뀌었다.
그 다음 아이들의 놀이에서 흙과 모래를 갖고 노는 일은 싹 없어졌다. 우리 아이는 제법 커서 놀이터보단 친구들과 어울려 다른 놀이를 하는 것을 좋아했지만, 아파트에 사는 취학 전 꼬마 아이들에게 모래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놀잇감이 되어버린 것이다.
아파트 주변 야산과 논밭은 도시계획에 의해 정리되어 높은 담으로 둘러싸이고 하루에도 몇 번 씩 포크레인과 불도저, 트럭이 다니게 되었다. 내가 아이와 함께 놀았던 그 곳이 이미 다 사라져버리자 난 나의 어린 시절의 추억도 우리 아이의 어린 시절도 끝이 난 듯 한 느낌을 받았다.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간의 삶인데, 우리는 점점 더 흙을 무시하고 경시여기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요즘 아토피 아이들이 급증하는 것도 흙에서 멀어진 것이 하나의 이유가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게 아니라 자연과 점점 멀어지는 느낌이 든다.
책을 보면서 공동체 삶이 대단해보였지만, 가장 부러웠던 것은 농촌에서 아이들이 실컷 뛰어놀며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윤구병님의 책과 변산공동체 이외에도 난 김용택 선생님께서 계신 섬진강변을 꼭 가보고 싶은데,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언젠가 아이와 함께 이곳 역시 방문해보리란 생생각이 들었다.
소박하지만 풍요로운 삶. 시간에 쫓기는 게 아니라 여유자작한 삶, 일과 놀이가 다른 게 아니라 하나가 되고, 놀이와 공부가 하나가 되는 그 곳. 이 책을 읽고나선 더욱 변산공동체가 끌린다. 아마 조만간 [꿈이 있는 공동체 학교]와 [자연의 밥상에 둘러앉다] 책을 구입해 읽지 않을까 싶다.
30년 넘게 소신을 갖고 꾸려온 변산공동체,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흙의 소중함을 알고 흙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기에, 우리의 교육과 생활에 대한 뚜렷한 철학이 있기에 보다 발전된 모습으로 되어갈 것이다.
“인구의 50% 정도는 농촌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열악한 교육환경, 문화시설 때문에 못 들어오고 있습니다. 제대로 된 교육, 자급경제, 자율적인 문화공동체가 운영될 수 있는 길이 열려야 합니다. 나눔의 울타리가 커지고 전통양식과 현대적 기술이 접목된다면 그 길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앞으로 변산 공동체가 경제, 교육, 문화 생활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사회 전체를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대안적인 삶의 본보기는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라는 말처럼, 언젠가는 변산 공동체가 더욱 멋진 교육환경과 문화시설을 갖게 되길 바란다.
그리고 점점 사라지는 우리의 농촌이 보다 달라지는 획기적인 계기가 있으면 좋겠단 바람을 가져본다. 농촌을 떠나는 것이 아닌, 농촌으로 돌아갈 수 있는 그런 멋진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좋겠다. 또한 흙의 소중함을 알고, 자연을 사랑하며 우리 가족 역시 자연 속에서 융화되어 살아갈 수 있으면 하는 마음을 가득 담아본다. |
|
3년동안 엄마곁에서 농사일을 거든 적이 있다. 때문에 농촌현실이 어떤지 누구보다도 잘 안다고 할 수 있다. 내가 텃밭에서 하는 밭농사에 제초제를 쓰지 말자고 했다. 엄마 말씀이 절대 안된단다. 20년 전만 해도 제초제 없이 살지 않았나 했더니 "이제는 제초제 없이는 농사 못짓는다. 예전 그 징한 세월을 어찌 살았는지 모르겄다. 눈뜨면 풀 매느라 한여름에도 허리 한번 못펴고 살았다"고 하신다. 고집피워 제초제 없는 밭농사를 시작했다. 작물은 안자라는데 잡초는 쑤욱쑥 잘 자란다. 장마철에 밭이 질척여 며칠 못들어가면 아예 풀밭으로 변해버린다. 때문에 5무농법을 짓는 변산공동체의 노고를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논 7,000평과 밭 8,000명에 20가구가 산다면 식량도 자급자족하기에 모자라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논밭이 너무 작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나 오무농법(제초제, 농약, 화학비료, 항생제먹인 가축의 배설물로 만든 유기비료, 비닐)으로 농사를 짓는다면 일이 많아 이 논밭도 너무 넓은 편에 속하리라. 환하게 웃는 모습속에 고집은 대단하신가 보다. 그 뜻에 따라 모여든 젊은이들도 참 대단하다.
총 4장 중 첫장은 농사 지으면서 느끼는 땅에 대한 이야기다. 손모내기를 하고 콤바인에 넣지않은 볏짚으로 새끼를 꼬고, 나뭇잎을 모아 비료를 만들다. 기계를 아예 안쓰는 것인가 싶다. 이런 식으로 10년동안 땀으로 땅을 살려놓았더니 원래 땅주인이 내놓으라 한다. 참~~
둘째장은 윤구병씨가 살아온 이야기다. 재밌게 읽었다. 남다른 유년과 청춘 시절을 보내셨다. 지은이 말대로 정말 좋은 선생님을 많이 만나셨다. 사람 복이 유난히 많으신 분인가 보다. 사람복이 많다는 것은 그 분 성격이 개같지 만은 않다는 뜻일 것이다.
셋째 장과 넷째 장은 철학자 윤구병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보기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다소 딱딱하달 수도 과격하달 수도 있다 싶은 내용이다. 상당히 새로운 관점에서 세상을 볼 수 있었다. 아 철학자들은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이렇게 감탄했다. 지금 어떻게 살 것인가. 추상적인 철학이 아니라 바로 지금을 성찰할 수 있게 해 주신다.
좋은 생각을 많이 한다는 것과 좋은 행동을 한다는 것의 차이는 엄청나다. 윤구병씨는 좋은 생각을 많이 한 것 못지 않게 좋은 행동을 하고 계신다. 없어졌지만 있어야 할 것을 만들어 내신다. 땅을 살리는 길이 곧 사람을 살리는 길임을 알겠다. 여름 휴가 때 3박 4일 변산공동체에 가 땀흘리고 싶은 맘 굴뚝 같으나 울엄마 농사 도와야 하니 어쩔 수 없다. |
|
뭐랄까.. 조금 다르다. 자연과 함께 하는 다른 사람들에게서는 자신의 소소한 일과와 자연을 보고 느끼는 것들이 주로 소개되는데, 이 책에서는 사람이 읽힌다. 분명 변산공동체라는 자연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인데 자연보다는 사람의 이야기가 도드라져 읽힌다. 사람들을 바라보며 느낀 것들, 자연과의 관계도 그렇지만 사람과의 관계가 먼저 이야기되고 그렇게 사회, 세상의 이야기로 확산된다. 단순한 흙을 밟는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그렇다고 윤구병 선생님 자신의 이야기도 아니다. 자신의 살아온 이야기, 살아가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 이야기속에는 자신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옆에 누군가가 있어 함께 주인공이 되어있다. 그렇게 이 책에는 사람과의 관계가 있다. 하지만 단지 사람만의 관계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자연속에서 농사일을 하면서 깨달은 식물들과의 관계, 고추농사를 지으며 고추모종 옆에서 수북히 올라오는 풀들이 마냥 잡초같지만 그것들은 서로 상호관계속에서 경쟁과 보완의 작용을 주고받으며 함께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땅 위의 모든 것은 상호관의 관계를 이루며 함께 성장한다는 사실 역시 이야기한다. 그래서 잡초는 없다고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자연은 뭇 생명들이 겸허히 고개를 조아리고 들어가 살아야 할 터전이고 그 안에서 사람과 사람이, 땅위의 생명과 생명들이, 그리고 사람과 생명들이 관계를 이루며 살아야 한다는 것.. 아마도 이 책은 그 관계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핵가족화라는 말이 생겨나 지금껏 그 개념이 유지되고, 모든 것이 점점 원자화되어 관계마저도 단절될 때, 저자는 자연으로 돌아가 자연의 순리에 맞게 살아가는 것이 관계를 회복하는 길이라 이야기한다. 그 관계는 단지 서로간의 교류를 통한 알고지냄의 차원을 넘어, 삶을 유지하는 일에 역할을 분담하고 서로 공유하는 관계를 이룸으로서 생명의 보존과 유지, 생산까지도 일구어내는 일이라 설명한다. 그것이 자연을 구성하는 땅과 물을 바탕으로 이루어짐이 명백한 바, 지금의 왜곡된 도시집중사회에서 농촌으로 다시 돌아와야 함은 당연한 일이라 설명한다. 그것은 자신이 일군 공동체가 오랜시간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보여준 모습과 지금의 정착된 모습을 보며 이야기하는 확신이지 않을까.
윤구병 선생님의 오랜 시간 써왔던 글들을 모아 정리한 책이다. 하나하나가 참 좋은 글들인데 아쉬운 것은 각각의 글들중에는 시의성이 있어야 이해될만 한 글들이 있어 그것이 언제 쓰여졌는가를 알면 더 이해하기 좋은 글들도 있다는 것이다. 근 30여년간의 글을 정리한 것이니 최근의 일이 아니고서야 이게 대충 언제쯤 쓰여졌겠다 싶은 추측만 남는다. 하지만, 모든 의식이 편향되고 편향성과 경박함이 시간이 흐를 수록 더해가는 지금의 세상에서 선생님의 글은 30년이란 시간을 초월한 깨달음의 힘을 가지고 있다. 아니, 반대로 그 시대에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셨을까 하는 대단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선생님이 말하는 흙을 밟는 일, 그것은 관계의 회복이고 이제는 어떤 이들에게는 진부한 주장이 되어있겠지만 생명을 살리는 일이다. 다시 말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자연으로 들어가자는 주장이 아니다. 자연을 바탕으로 한 모든 것들과의 관계를 회복하자는 이야기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