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연의 밥상에 둘러앉다》에서 발췌하고 필사한 내용입니다.
목숨은 목으로 드나드는 들숨, 날숨을 한데 아울러 이름이다. 숨 쉬는 모든 것들이 목숨을 지닌 것이다. 숨은 바람으로도 불린다. 바람은 밖에서만 부는 게 아니라 우리 몸 안으로도 불어온다. 또 몸에서 밖으로도 불어 나간다. 이렇듯 삶의 숨결이 바람을 타기 때문에 옛사람들은 목숨과 바람을 같은 것으로 보았다. 옛 그리스 사람도 그랬고, 옛 우리 '한아비'도 그랬다.
바람은 뭇 살아 있는 것들의 몸 안팎을 드나들면서 이것들을 살린다. 바람이 하는 아주 큰일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살림'이다. 바람은 다만 우리의 몸에 스며들고 몸에서 스며나는 일을 거듭해 우리를 살릴 뿐 아니라, 꽃 피우는 것들의 꽃가루받이에 징검다리 노릇을 맡아 열매는 맺게 함으로써 때로는 살아 움직이는 것들의 먹이를 마련해주기도 하고, 한해살이풀로 하여금 씨앗을 마련하여 여러 해를 두고두고 살게 하기도 한다. 이렇게 바람은 스스로 살아 있는 힘이자 살리는 힘이기도 하다. 삶의 '원천'은 삶이 샘솟는 물이라는 뜻이다. 모둠살이가 이루어지는 곳에서는 어디에서나 마찬가지였다.
물, 불, 땅, 바람이 스스로도 살아 있는 힘이고, 뭇 생명체를 살리는 힘이 오래된 깨우침을 몸과 마음을 다해서 받아들이지 않는 한 우리에게 '지속가능한 미래'는 없다. 우리 목숨과 삶과 살림의 바탕에는 이 크나큰 살림꾼들이 숨은 채로 드러나 있다.
빗물을 듬뿍 머금은 하늘의 먹장구름이나 한숨을 가득 머금은 농민들 가슴의 억장구름이나 그게 그거다. 물꼬를 트는 일은 아래로 흐르려는 물의 본성을 존중하는 일이다. 흐르고자 하는 물의 본성을 억눌러 한 곳에 가두면 그 물은 썩어서 독이 된다. 작게는 농작물의 뿌리를 썩게하고 크게는 둑을 무너뜨린다.
비 내린 뒤에 곧장 밭에 들어가지 않고 논둑이나 밭둑에서 풀을 깎는 것도 그저 소일 삼거나 소여물이나 퇴비 마련에만 뜻이 있는 게 아리다. 제초제, 농약 안 쓰고 농사지으려면 끊임없이 풀과 싸워야 한다. 도시에서 살다 귀농한 철부지들이 어디에서 '자연농법'이라는 소리는 들어가지고 농작물이 그냥 씨만 뿌려놓으면 풀과 사이좋게 자라 땀 흘리지 않고도 거둘 수 있는 줄 알았다가 큰코다치는 꼴을 한두 번 본게 아니다. 풀과 싸우는 길은 끊임없이 뽑아주거나 베어주는 수밖에 없다. 이랑과 고랑에 난 풀은 뽑아주고, 둑에 난 풀은 베어주어야 한다. 풀씨가 맺히고 영글어 바람 타고 흩어지면 이듬해 그만큼 많은 풀이 논과 밭을 채운다. 둑에 난 풀을 뽑으면 둑이 무너져 내린다. 따라서 뽑아줄 수 없다. 그러니까 틈나는 대로 부지런히 베어주어 풀씨가 맺히지 않게 해주어야 한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모습, 아침 5시에 해와 함께 일어나고 저녁 8시면 해와 함께 일을 마치고, 토종 씨앗을 찾아 헤매고, 제초제와 농약, 화학비료, 그리고 항생제가 듬뿍 들어 있는 사료를 먹여 키운 돼지나 닭으 똥으로 만든 이른바 유기질 비료도 마다하여 동네 어른들에게서 하루에도 열두 번씩 제초제 뿌리지 않고 농약 치지 않아 다른 논과 밭까지 병충해 피해를 입게 한다는 온갖 핀잔을 들어가며 다른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들을 모아 쓸모를 찾은 이 '원시적 삶의 형태'가 쓰레기 홍수를 막는 데 얼마만큼 도움이 된단 말인가.
이 마을에 들어와 살면서 들은 말 가운데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5월 단오 때까지는 염소가 즐겨 뜯어먹는 풀은 사람이 먹어도 좋다.'는 옛 어름들의 말씀인데, 그 말씀에 따라 살갈퀴나 씀바귀 잎을 뜯어 쌈을 싸 먹고 칤순을 뜯어 데쳐서 먹기도 하고…… 혀로 맛을 보아 독성이 느껴지지 않는 풀들은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먹어보았다.
고구마 순으로 효소를 담고, 물을 짜낸 건더기도 아까워 소주를 부었더니 온 여름 내내 아이들도 어른들도 그 효소 물로 다른 음료 대신 갈증을 식히면서 몸을 지켜낼 수 있었고, 또 손님을 맞아 뒤탈이 없는 술대접을 할 수 있었다
이번에 산 땅 500평도 묵은 지가 꽤 여러 해 되어 소개해준 분의 걱정대로 밭이 아까시나무 뿌리와 칡넝쿨과 가시덩굴투성인지라 다시 제 모습을 찾게 하는 데 땀깨나 뺐다. 한 가지 실수한 게 있기는 하다. 아까시나무 뿌리를 뽑아내는 데 진땀을 쏟았는데, 알고 보니 아까시나무 뿌리는 공기 중의 질소를 고정시켜 땅을 다시 기름지게 한다는 것이다.
소를 앞세우고 쟁기를 지고 다니는 분도 한 해에 몇 번 만나기 힘든 시골에서 노상 지게를 지고 산비탈을 오르락내리락하니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다.
|
|
"식량이라는 무기가 가장 큰 무기다. 사흘 굶어서 담 안 넘는 사람없다고. 식량 자원을 움켜쥔 자들이 '너희는 굶어죽을래. 내 말 들을래? 하면 꼼짝할 수 없다. 자기는 굶어 죽을 각오를 하더라도 처자식 굶겨죽일 수는 없다. 그러니까 무릎꿇을 수 밖에 없다. 우리가 자율성 독립이니 하지만. 자급자족이 없는 자율성은 없다. 그리고 자주독립도 없다." (본문 204쪽)
먹거리가 최대의 무기가 된 보이지 않는 전쟁, 새로운 식민지화가 가속
화되는 현실속에서 우리의 희망은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소중함
을 깨우치는 교육이라는 생각이 든다.
참과 거짓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인재를 가꾸고 길러내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참과 거짓은 양심에서 시작이 되고 이는 교육으로 구별되며 이러한 원칙
을 가진 사람이 많아질수록 생명연대가 가능해 진다.
이 세상에 잡초는 없다는 저자의 외침이 동그란 우물이 되어 가슴을 촉
촉하게 적셔주었다. 우리 아이들도 성적으로 등수가 매겨져 공부 못하는
아이들은 잡초 취급을 받는 현실에서 그들에게도 그들만의 효능과 약효
를 찾아내 이름지어주는 일이 바로 우리가 가장 시급하게 해야 하는 일
이다.
잡초를 없애기 위한 제초제가 잡초가 약초가 되는 날 사라지겠지...
찌질이들을 없애는 학력평가제가 찌질이들이 꿈많은 학생이 되는 날 사
라지겠지...
아무리 감추고 속여도 나도 알고 너도 아는 일이 있다.
원칙과 양심은 민중의 밑바닥에 흐르고 있다. 촛불을 밝혀든 자만이 보
여지는 민중의 세력이 아니다. 민중은 윤회한다.
* 5월 31일 소신공양하신 문수스님의 명복을 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