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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책은 거의 습관처럼 찾아 본다. 글쓰는 데 도움을 받으려고 읽는 건 아니지만 글쓰기를 주제로 저자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싶은 이유에서다. 실무적인 글쓰기 책을 제외하고 찾아 읽는 글쓰기 관련 도서에서는 글을 대하는 저자 각각의 관점이 있다. 크게 세 가지로 나눠서 분류할 수 있을 듯하다. 대중에게 인지도가 높은 저자들의 책과 폭 넓은 대중에게 인지도가 있는 건 아니지만 글을 제대로 써보고자 마음 먹은 사람들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저자들의 도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실무적인 글쓰기(자소서, 기획서, 보고서 등) 노하우를 다루는 도서. 물론 각각의 분류가 명확하게 갈리는 건 아니지만 크게 이렇게 나눠 볼 수 있다는 말이다. 「공부가 되는 글쓰기」는 내가 분류한 세 개의 영역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전혀 다른 글쓰기를 이야기를 한다는 말은 아니다. '공부가 되는'이라는 타이틀의 일부에서 예상할 수 있는데 저자는 '범교과서적인 글쓰기'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접두사로서의 '범'은 뜻 그대로 결합된 '교과서'를 모두 아우룬다는 말이다. 쉽게 말해 모든 과목에서 글쓰기가 배움의 중요한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는 뜻. 국내 교육과정에서 글쓰기의 중요도는 지극히 낮은 영역에 속한다. 읽고 쓰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인식은 있지만 실제로 대입의 당락을 결정할 정도로 영향력을 발휘하는 과목이 아니다. 아니, 심지어 제대로 된 과목으로 인정받지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서 교사는 계약직이나 비상근직의 형태로 다른 교사와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낮은 처우를 받는다. 교사들 사이에서도 사서 교사를 정식으로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도 있다(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런 단면들이 국내 교육 현실에서 읽기와 쓰기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 가늠할 수 있는 판단의 척도가 된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읽고 쓰는 일의 중요성을 주장하려는 걸까? 간단하다. 교육 과정에서 읽고 쓰는 일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많은 이들이 사회에 나와 보고서, 기획서 한 장 쓰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짧은 글을 쓰는데 자신의 생각을 체계적으로, 논리적으로 구성하지 못 하고 생각이 정리되지 않으니 사고의 진전은 더디게 일어난다. 당장에 글쓰기가 발등에 떨어진 경우에는 실용적 글쓰기 강좌에 수십만원의 비용을 지출하기도 한다. 그러나 글쓰기는 그런식으로 돈을 많이 쏟아 붓는다고 쉽게 나아지지 않는다. 단어의 선택과 문장의 구성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글쓰기에 기적은 없다. "글쓰기는 우리가 어떤 주제에 접근해 그것을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이해하는 과정이다. 글쓰기는 내가 배우고자 하는 것에 대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를 깨닫게 한다. 개념을 글로 표현하는 것은 창에 서린 성에를 닦아 내는 작업과 비슷하다. 흐릿하고 모호했던 개념이 글을 쓰면서 서서히 명확하게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어떤 글이든, 메모든, 편지든, 베이비시터에게 전하는 쪽지든 무언가를 쓰면서 우리는 비로소 진정으로 자신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깨닫는다." 마치, 글쓰기에 관한 평소의 내 생각을 저자가 그대로 읊고 있는 듯했다. 쓰는 행위 없이는 사고가 구체화 될 수 없고 진보할 수 없다는 경험에서 비롯된 나만의 생각이 저자의 단어와 문장을 통해 인정받는 기분이었다. 정말 그렇다. 우리는 일상에서 스치는 감정과 감정에서 비롯된 관념을 단어로 붙잡아 문장으로 구상할 때 우리가 무엇을 알아야 하고 무엇을 모르고 있었는지 인식하게 된다. 또한 무엇을 몰라도 되고 어떤 판단을 해야 하는지 글쓰기를 통해서 구체화 된다. 정해진 정답을 찍고, 주관식으로 간단하게 적는 교육에서는 나만의 사고가 진전되기 어렵다. 알게 모르게 '정답'이라는 틀 안에 우리의 사고와 삶이 갇히고 만다. '범교과서적인 글쓰기의 유용성'은 실제로 수업에서 글쓰기를 적용한 교사들의 사례에서 증명된다. 글쓰기를 적용한 과목은 경계에 갇히지 않는다. 화학, 수학, 음악, 물리, 미술 등 글쓰기와는 전혀 관계가 없을 법한 과목에서도 유용하게 글쓰기를 활용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활용'이란 실용적인 의미가 아니다. 글을 씀으로써 각각의 과목이 담고 있는 고유한 영역의 본질로 다가갈 수 있게 되고 본질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진정한 배움이 일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글쓰기 자체가 지니고 있는 실용적인 이점도 있지만 책에서는 글쓰기를 통한 좀 더 포괄적인 배움을 인식하게 만든다. 그리고 각 영역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긴 인물들이 남긴 글도 살펴볼 수 있다. 찰스 다윈, 아인슈타인, 레이첼 카슨, 프레모 레비 등 한 분야에 깊이 빠져든 사람들의 글이 얼마나 구체적이고 논리적이며 명료하고 아름다운지 경험해 볼 수 있다. 방법론적인 글쓰기를 배우고 싶은 사람들은 만족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개인적으로는 음악을 잘 모르기도 하고 관심영역에서 가장 먼 분야라 해당 챕터를 읽는데 어렵기도 했지만) 글을 정말 제대로 써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왜 우리가 글을 써야 하고 글을 씀으로써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왜 글을 써야 하는지 정의를 내리고 싶다면 이 책을 반드시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나는 특정 책을 잘 권하지 않는 사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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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쓴다는 것은 글 쓰는 사람의 현재 좌표를 깨닫는 일이다. 글쓰기는 내가 무슨 글을 쓰고 싶어 하는지, 하고 싶은 말을 어떤 지식을 가지고 쓸지 그 지식을 제대로 익힌 상태인지 돌아보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부가 되는 글쓰기』는 글쓰기 교수법의 대가 윌리엄 진서가 글쓰기와 배움이 하나가 되는 공부의 길로 안내한다. 글쓰기가 사유의 한 형태라 전제하고 배움의 도구가 되는 동시에 이룬 배움으로 다시 멋진 글을 쓸 수 있다고 말한다.
윌리엄 진서는 자신의 주장과 견해를 뒷받침하기 위해, 이 책의 뒷부분을 여러 학문 분야의 탁월한 문장 인용에 할애한다. 인용된 글은 다윈이나 아인슈타인처럼 자기 학문 분야에서 높은 명성을 얻은 학자의 글로, 자신의 학문 분야를 철저하고 분명하게 익힌 사람이 자신의 사고를 전달하고자 할 때 별다른 미사여구 없이도 훌륭한 글을 쓸 수 있음을 여지없이 보여 준다. 글쓰기에 관심을 두는 독자나 글쓰기의 의미를 생각하는 독자뿐 아니라 학문 분야의 탁월한 글이 무엇인지 궁금한 분에게도 일독을 권한다. 글쓰기야말로 최상의 공부 수단임을 절절하게 깨닫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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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의 나는 업무 메일로 인한 스트레스를 굉장히 많이 받는 디자이너였다. 보통은 시안을 확인해달라는 메일만 보내면 되지만, 가끔은 '말씀주신대로 작업하려면 오래 걸립니다. 정말 원하신다면 돈을 주세요' 이런 요청을 해야 하거나, 또는 '말씀주신대로 작업하면 법을 위반합니다. 정말 원하신다면 알아서 책임지세요' 이런 안내를 해야 하는 상황이 있다. 그런 날은 그냥 혼나는 날이었다. 할 말 다 적은 것 같은데 설명이 부족하다고 혼나고, 상대방의 감정을 상하게 한다는 이유로 또 혼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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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 공부가 되는 글쓰기
윌리엄 진서 지음, 서대경 옮김
이 책에서 언급한 피카소에 대한 이해 과정처럼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우연히 바르셀로나에 피카소 미술관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곳에는 피카소의 초기작품부터 추상화에 이르기까지 변천사 별로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리 유명한 작품들은 아니고 대부분 스케치북에 연필로 끄적인 습작 같은 것들이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난 피카소의 작품들이 난해하고 장난 같고 심지어 좀 징그럽기까지 했다 입구에 전시된 초기 작품들은 화가 지망생이라면 누구나 그리는 인물화와 정물화 등 아주 평범한 것들이었다. 일행을 따라 몇 발짝 안으로 들어가니 조금씩 다른 그림들이 나타났다. 사물을 위에서 보고, 옆에서 보고 정면에서 본 모습을 마치 부속품을 모아두 듯이 하나의 화폭에 모아서 스케치하였다. 어느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도 정면과 옆면 위에서 본 것과 어둠과 빛 등 다양한 각도와 조건에서 바라본 모습을 조각조각 모아서 하나의 도화지에 그렸다. 우리가 알고 있는 완성도 높은 작품이 아니었다. 같은 그림을 여러 번 연필로 연습한 것이 분명한 엉성하게 그리고 색칠도 하지 않은 반복된 습작 물들 이었다. 학창시절 수학시간에 배웠던 기억의 파편 하나가 떠올랐다. 원기둥을 위에서 봤을 때는 원이지만 옆에서 보면 곡면이고 반을 자른 단면은 직사각형이었다. 그 사실을 배우며 나는 시각에 따라 달라지는 입체 도형이 보이는 모습은 각각 달라도 원기둥이라는 본질은 그대로라는 사실이 매우 신기했었다. 따지고 보면 다양성을 가진 대상을 한 방향에서만 그리는 것이 오히려 본질의 왜곡이 될 수도 있다. 그날 우연히 방문한 박물관에서 피카소의 시각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피카소를 보는 내 생각도 바뀌었다.
김창열의 물방울 그림을 K옥션에서 만났을 때 나는 1억원이 훌쩍 넘는 가격표를 몇 번이나 반복해서 확인했다. 화랑의 첫 번째 전시실 문 앞에 서자마자 정면의 거의 모든 벽면을 절반이상 채우고 걸려있는 물방울 그림에서는 영롱한 물방울들이 커다란 화폭에서 뚝뚝 떨어질 듯 가득 솟아나오고 있었다. 이곳 저곳의 전시실에 크고 작은 사이즈의 물방울 그림들이 몇 점 더 전시되어 있었다. 어떤 것은 신문의 활자 위에 뚝 떨어져 흐르는 물방울들이고 또 어떤 것은 다양한 한문 글자들과 어우러져 있거나 거친 벽처럼 보이는 화폭 위에 배경으로 뿌려진 물방울 그림들이었다. 다양한 크기의 투명한 물방울들은 그림에서 곧 떨어져 내릴 것처럼 맺혀 있었다. 어릴 때부터 워낙 미술에 조예가 없었던 나는 이 작품들이 왜 각광을 받는 지 도무지 짐작할 수가 없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고 멀리서도 보고 옆에 삐딱하게 서서도 보며 사람들이 왜 이 작품을 높이 평가하는 지 공감해서 나도 고개를 끄덕여 보고 싶었다. 하지만 내게 물방울은 물방울일 뿐이어서 그림을 감상하는 것조차 힘들고 지루해졌다. 피카소를 이해하게 된 것처럼 대가의 작품세계를 미술에 재능이 없는 나 같은 사람도 이해할 수 있게 누군가 해설을 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김창열 작가의 부고 소식을 들으며 그날 절벽을 마주한 것 같던 답답함에서 아직 한 걸음도 진전하지 못한 것이 조금 미안해졌다.
이 책에서는 글쓰기를 예술성 넘치는 문학작품 만들기로 국한하지 말고 원소주기율표와 베토벤과 피카소를 이해하고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전달하는 논리의 체계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글쓰기를 우리 삶 속 사회생활에서의 보고서작성, 미술과 음악을 설명하고 물리의 원리를 설명하는 것까지 우리 삶의 모든 소통에 필요한 요소로 꼽았다. 작가는 글쓰기가 우리가 어떤 주제를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이해하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개념을 글로 표현하는 것은 창에 서린 성애를 닦아 내는 작업처럼 흐릿하고 모호한 개념이 글을 통해 서서히 명확히 운곽을 드러낸다고 했다. 나는 알기 쉬운 다앙한 사례와 활용을 들어 설명한다. 일방적 주장을 피력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화된 논리와 경험을 담아 글쓰는 방법과 의미가 쏙쏙 이해되게 해 준 이 책을 읽은 누군가가 김창열의 물방울을 해석해 주었으면 좋겠다. 물방울 그림 뿐 아니라 삶의 많은 영역들의 모호한 개념들이 글을 통해 윤곽을 드러내어 우리의 삶이 더 풍요로워졌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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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사고를 명료하게 정리하고 조직하는 행위다 글쓰기는 우리가 어떤 주제에 접근해 그것을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이해하는 과정이다 글쓰기는 내가 배우고자 하는 것에 대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를 깨닫게 한다 개념을 글로 표현하는 것은 창에 서린 성에를 닦아 내는 작업과 비슷하다 흐릿하고 모호했던 개념이 글을 쓰면서 서서히 명확하게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어떤 글이든 메모든 편지든 베이비시터에게 전하는 쪽지든 무언가를 쓰면서 우리는 비로소 진정으로 자신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깨닫는다
저자가 하고자 하는 말은 분명하다 글쓰기란 한 문장 한 문장 써 내려 가면서 주제를 향해 다가가고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깨닫고 확인하고 파악하며 자신이 하고자 하는말을 명확하게 이해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이 과정은 글쓰기와 생각하기와 배움의 삼위일체이다 윌리엄 진서는 자신이 그러한 글쓰기로 많은 것을 배우고 익히고 사고했다고 고백하며 이 모든 것이 각 학문 분야에도 적용되는 동일한 원리라고 주장한다 명료한 사고를 하는 이는 명료한 글을 쓰고 그런 글은 잘된 글이자 좋은 글이라는 말이다
윌리엄 진서는 자신의 주장과 견해를 뒷받침하기 위해 이 책의 뒷부분을 여러 학문 분야의 탁월한 문장 인요에 할애한다 인용된 글은 다윈이나 아인슈타인처럼 자기 학문 분야에서 높은 명성을 얻은 학자의 글로 자신의 학문 분야를 철저하고 분명하게 익힌 사람이 자신의 사고를 전달하고자 할때 별다른 미사여구 없이도 훌륭한 글을 쓸 수 있음을 여지없이 보여 준다 글쓰기에 관심을 두는 독자나 글쓰기의 의미를 생각하는 독자뿐 아니라 학문 분야의 탁월한 글이 무엇인지 궁금한 분에게도 일독을 권한다 글쓰기야말로 최상의 공부 수단임을 절절하게 깨닫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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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여 전, 책을 번역하는 일을 시작했다. 내 이름으로 번역된 책이 나온다는 것이 참 뿌듯했다. 그런데 나는 독서량도 부족했고, 글쓰기 솜씨도 무척 모자랐다. 그런 문제점을 메꾸기 위해 도서관을 뒤지며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다. 특히 독서와 글쓰기에 관한 책들을 많이 읽으려 애썼다. 그러는 가운데, 한 출판사의 편집장님이 윌리엄 진서의 [글쓰기 생각쓰기]를 추천해 주었다. 재미있었다. 진솔하고 꾸밈 없는 그의 이야기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그때부터 책과 글에 관해 좀 더 친근감을 느끼게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올해에는 이 [공부가 되는 글쓰기](Writing to Lear)라는 책을 만났다. 무척 재미있었다. 계속 밑줄을 치면서 읽게 되었다. 그가 이야기하는 '과정 중심의 글쓰기'가 공감이 간다. [글쓰기의 문제 해결 전략]이나 낸시 소머스의 방법론에서도 들을 수 있었던... 그 방향으로 계속 책을 읽고 알아가 보고 싶다. 그리고 번역하신 분의 솜씨도 훌륭했다. 시인답게, 참 깔끔한 문장을 쓴다는 느낌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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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메스와 주기율표는 이 집의 수호신이며 글쓰기는 이 집의 문을 여는 열쇠인 것이다. 나는 잠실의 롯데월드 백화점 내에 있는 스와로브스키 매장에서 목걸이 셋트를 구경하고 있었다. 그 매장은 오스트리아 명품 크리스털브랜드로 우아한 백조를 로고디자인으로 하여 정면 벽에 배치되어 있었다. 스와로브스키의 크리스털 상품들은 여러 각으로 정교하게 커팅이 되어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차가운 듯 당당한 아름다움은 도도함을 보이기까지 했다. 한동안 이 매혹적이고 당찬 쥬얼리에 매료되어있을 때 매장의 직원은 내게 목걸이와 팔찌를 착용시켜 주었다. 그리고는 거울을 보여주며 단 한마디를 했다. 나는 그 직원의 한마디에 바로 “주세요” 하고 풀세트를 모두 구매했다. 훗날 동생이 말하는데 내가 고민하는데 10초도 안 걸렸다고 하면서 놀려댔다. 그 직원의 한마디는 “어머 그레이스 켈리 같아요” 세기의 결혼이라 불리던 모나코 왕자 라니에와 결혼한 여배우 그레이스 켈리. 신데렐라가 된 그녀를 내 마음 어느 동네에서는 참 많이 동경하고 있었나보다. 지금까지 미국 역사상 가장 우아한 여성1위에 오르는 그녀의 우아함을 이 쥬얼리에 살포시 얹어버리는 그녀의 상술에 나는 망설임 없이 기분 좋게 낚였던 것이다. 그녀는 그 순간 상품이 아니라 ‘우아함’이라는 이미지를 팔은 것이다. 벌써 15년 전 이야기이지만 그 목걸이나 팔찌를 찰 때마다 생각이 난다. 그 자체가 완벽하고 아름다울 때는 굳이 설명을 안 해도 된다. 짧은 한마디가 오히려 그 상품을 부각시키고 때로는 나처럼 덤으로 기분 좋은 상상까지 얹어서 가져가게 한다. 자연과학을 사랑했던 파브르는 「곤충기」를 30년에 걸친 대작을 썼다. 파브르는 개미의 세계를 단순한 문장과 직설적인 표현으로 묘사했다. 개미는 집단생활을 하며 군대가 있어서 정찰도 나가고 일개미도 있고 여왕개미도 있다. 글쓰기라는 작업을 통해서 개미의 생각을 역동적으로 독자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은 흥미롭고 경이로운 일이다. 나는 베르나르 베르베르 「개미」의 독특하며 흡인력 있는 심리묘사에 푹 빠져서 읽은 기억이 난다.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는 낚시가 취미였던 작가의 해박한 지식과 함께 쉽고 간결한 문체가 돋보인다. 간결한 문장은 거대한 청새치와의 씨름을 지루하지 않고 박진감을 느끼게 해주며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게 오히려 끌어당긴다. 글쓰기는 간결성, 명료성, 단순성이다. 간결한 진술은 독자를 배려하는 최상의 형태이다. 좋은 글은 짧은 문장으로 절제하면서 독자가 상상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하는 것이다. 그림을 보면 여백의 미를 중요시하지 않는가? 너무 좋은 이야깃거리가 많아서 친절하게 다 알려주다 보면 산만해진다. 과감하게 버리자. 작가가 글을 쓸 때 자신의 생각을 단순하면서 몰입도가 높게 쓴다면 독자들은 훨씬 쉽게 작가의 초대에 빠져들어 갈 수 있다. 여러 가지의 사례를 흥미롭게 제시하며 글쓰기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어 수학에 관한 작품을 쓸 때 수학적인 지식은 수학자가 제공하고 문장력을 요하는 부분은 문학가가 공동집필하는 것보다 수학자가가 직접 글을 쓰면 훨씬 더 훌륭한 작품이 된다는 예를 보여준다. 조앤 커트리먼은 글쓰기를 통해 수학을 사유하는 힘을 기르게 도와주고 탐구의 도구로 활용하게 도와준다. 글쓰기는 당신이 실제로 무엇을 알고 있으며,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 만약 당신이 모르는 부분이 있다면 당신의 지식이나 추론 과정어디에 허점이 있는 지 알려줄 것이다. 우리는 글쓰기를 통해 예술가의 의식에 접근할 수 있다. 독자를 그 예술가의 의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안내를 해줄 수 있다는 말이다. 로트레크는 화가이자 작가이다. 그의 글은 대단히 절제된 문장으로 그 특유의 활기를 전달한다. 꼭 필요한 만큼의 아는 단어만으로 고른 구체적인 어휘로 독자와 저자가 소통하게 한다. 무질서는 소음이다. 불필요한 중복, 모호성은 독자로 하여금 맥락을 이해하는 데 방해를 주는 소음이다. 쓸데없이 많은 수식어구, 현학적인 어투, 전문용어의 남용을 걷어내자. 잔뜩 허세 부리듯 어깨에 뽕을 넣었던 것들을 덜어내자. 독자가 나의 글을 읽다가 길을 잃지 않고 사유할 수 있게 배려해주는 것이다. 명품시계를 차고 있으면 시계를 보여주려고 괜히 이마에 손을 얹어보기도 하며 “내 시계 좀 봐 어때?” 하는 것처럼 말이다. 과시하지 말자. 글에서 힘을 빼자는 이야기이다. 글쓰기는 자존감을 높이는 도구이다. 내가 마케팅부서에 일하고 있는데 판매촉진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고 가정을 해보자.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나열한 것보다는 꼭 필요한 정보만을 서술적으로 작성함으로써 의도하는 방향대로 나아가는 보고서를 써야하는 것이다. 정보들의 같은 범주는 묶고 중복을 피하고 간단하면서 쉽게 정보가 전달이 되도록 간단명료하게 보고서를 작성해야할 것이다. 글쓰기는 우리로 하여금 사유하게 한다. 잘 쓴 글은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나는 좋은 글을 쓰고 싶다. 좋은 글은 힘을 갖는다. 글쓰기의 과정이 얼마나 중요하고 또 연습을 통해 좋아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글을 쓰면서 주제를 정하고 나의 개성을 어떻게 색을 입힐지,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을 절제하고 사유하며 간결하게 표현해야 된다. 어떤 글쓰기가 독자에게 작가의 작품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을 열어줄까? 헤르메스와 주기율표가 있는 곳으로 들어갈 수 있게 문 열쇠를 살포시 쥐어주는 것이다. 그가 헤르메스를 감상할지 주기율표를 보고 감동을 받을지, 어떤 평가를 할지는 독자의 몫으로 남겨 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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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을 막론하고 글쓰기는 공부의 기본이다. 그런데, 이런 원칙이 전공 영역에 따라 학교급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는 것 같다. 특히 중고등학교에서는 글쓰기는 국어 과목만의 일로 치부된다. 이 책은 전공을 막론하고 학교급을 막론하고 글쓰기는 공부의 기본이라고 말한다. 책은 세 부분으로 이루어졌다. 첫 번째, 어떻게 써야 잘 쓰는가? 답은 간단하다. 명료하고 알기 쉽게 써야 한다. 두 번째, 잘 쓰기 위해서는 좋은 글을 많이 읽어야 한다. 어느 전공을 막론하고 좋은 글은 있다. 자기 전공 분야의 좋은 글을 읽으면 가장 좋고, 그렇지 않더라도 다양한 좋은 글을 읽어야 한다. 세 번째, 다양한 전공에서(특히, 중고등학교에서) 글쓰기를 어떻게 공부의 도구로 활용하는 지 설명했다. 첫 번째는 유익했지만 식상했고, 두 번째는 무척 지루했다. 세 번째가 인상적이다. 특히, 고등학교 수학과 물리 시간에 글쓰기를 활용하는 사례가 구체적으로 적용됐다. 1) 배운 내용을 일기로 쓰기 2) 답을 제시하고 답이 나온 이유 쓰기(이때 마치 친구에게 설명하듯이 써야 한다) 2-1) 조금 더 구체적으로 답을 쓰고, 그 이유를 쓰고,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방안을 쓰고, 현실의 예를 들어 서술한다. 위에 정리한 수업 방법은 나도 꼭 내 수업에 적용해 봐야겠다. 글쓰기는 쉽지 않다. 기술인듯 예술인듯. 오묘한 분야다. 하지만 글쓰기를 통해 내 전공과 마음에 대한 공부가 향상되리라는 것을 확신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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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글쓰기는 공부한 결과를 확인할 때 쓰는 것으로 생각하는 데, 저자는 쓰기를 통해 공부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면, 모범적인 글을 볼 때 글을 읽고 그 글이 좋은 글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를 쓴다. 단답식 문제에서 답은 짧더라고 학생은 그 답이 나온 이유를 서술하고, 또 그 답이 현실과 어떻게 맞닿아 있는 이유를 서술한다. 과학 수업에서 실험 결과를 답으로 쓰더라도 공식만 적는 것이 아니라, 에세이 식으로 서술한다. 즉, 답이 나오는 과정과 이유 그리고 현실과의 접점까지 적는 방식이다.
쓰기를 통한 공부는 모든 교과에서 가능하다고 말한다.
미국 현장 교사들이 자신의 수업에서 글쓰기를 이용하는 방법을 알려주는데, 특히 인상 깊었다.
다양한 글쓰기 원칙들이 기억에 남는다. 글쓰기 과정은 사고 과정이다. 명확하게 써라. 수동 표현은 가능하면 쓰지 마라. 중언부언 하지마라. 글쓰기는 순차적 과정이다. 쉽지 써라. 세밀하게 묘사하다. 쓰고 싶은 분야에 대해 써야한다.(이건 얼마나 당연한 얘기인가)
잘 쓰는 방법은 좋은 글을 많이 봐야 한다는 글쓰기의 주장 대로, 글의 절반 정도는 좋은 글의 인용이다. 그 글들이 참 읽기 싫었다. 읽어야 되는 데 읽기 싫었다. 그래서, 편집구성에서 별 세 개를 줬다.
쉽고 단순하고 명확하게 쓰라는 저자의 말이 계속 떠오른다. 내 수업에 적용할 수 있는 사례들을 발견해 좋았다. 빨리 적용해 보고 싶다. 물론, 또 다시 절반 쯤 실망하겠지만.
유명 저자의 세 권짜리 글쓰기 책도 한 얘기 반복하는 경우가 많은 데, 이 책은 중언부언이 상대적으로 매우 적다. 이 부분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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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가 되는 글쓰기」는은 저널리스트이나 글쓰기 교사였던 윌리엄 진서가 쓴 글쓰기에 관한 책이다. 저자의 글쓰기 능력 때문인지 매우 잘 읽혀 그의 생각을 따라가기 쉽다. 뿐만 아니라 시인이자 번역가가 옮겨서인지 번역서 같지 않고 글이 매끄럽다. 글의 구조나 문장이 나무랄 데가 없다.
저자는 ‘글쓰기는 자신의 생각을 명확하게 하기 위한 것'으로 범교과적 글쓰기를 통해서 글쓰기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실제 범교과적 글쓰기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많은 대학의 교수들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이런 교수법이 학생들의 수업에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이는 글쓰기가 사고를 조직하고 명료버화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쓰기를 위한 배움‘과 ’배움을 위한 글쓰기‘가 동시에 이루어진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다양한 분야의 글쓰기 사례들을 제시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입증한다.
많은 사람들이 저자의 범교과적 글쓰기 교육의 필요성에 동의한다. 범교과적 글쓰기는 국어 교육에서만 글쓰기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배우는 모든 과목에서 글쓰기를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역사 시간에 대한 제국 시기에 대해서 배웠다면 학생들은 ‘친일 청산’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쓸 수 있을 것이고, 사회시간에 복지에 관해서 배웠다면 ‘선별적 복지 VS 보편적 복지’에 글을 쓰면서 배운 내용에 대해서 정리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과학 분야의 최재천, 정재승 교수의 대중서나 고전 연구가의 고미숙의 책들이 그런 예라고 할 수 있다. 지은이는 이런 각 분야의 몇몇 학자들만이 아닌 학교를 다니면서 우리가 범교과적인 글쓰기를 통해서 이런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나도 공부가 되는 글쓰기를 하고 싶다’ 또는 ‘그런 글을 쓰는 방법을 알고 싶다’라는 기대를 하며 책을 펼칠 것이다. 하지만 글쓰기의 어려움, 범교과적 글쓰기의 필요성 등 공감이 가는 이야기를 한 서론 부분을 빼고 책 한권에 달하는 수많은 사례로 채운 것은 매우 아쉽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글쓰기 능력을 향상 시키는 구체적인 방법을 배우기를 원하며 글쓰기 책을 읽는다. 하지만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글쓰기 능력의 향상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런 방법을 제시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글을 잘 쓰는 방법을 배우고 싶어하는 일반인들 보다는 글쓰기를 통해서 가르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이 가르치는 과목에 글쓰기를 어떻게 적용할 지 여기 나온 사례를 통해서 힌트를 얻고 감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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