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2)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50%
  • 리뷰 총점8 5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0.0
  • 50대 9.0
리뷰 총점 종이책
후스
"후스" 내용보기
얀 후스, 그는 종교개혁자의 새벽별과 같은 인물이라 할 수 있다. 토마시 부타의 얀 후스의 전기는 후스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게 한다. 후스가 없었다면 존 루터나 칼빈도 없었을 것이다. 그가 종교개혁의 밑거름을 준비했기에 위대한 종교개혁이 일어났다.  2015년은얀 후스가 화형당해 순교한 지 600주년이 되는 해였다. 벌써 600년이고, 2016년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는 해이다. 1915
"후스" 내용보기

얀 후스, 그는 종교개혁자의 새벽별과 같은 인물이라 할 수 있다. 토마시 부타의 얀 후스의 전기는 후스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게 한다. 후스가 없었다면 존 루터나 칼빈도 없었을 것이다. 그가 종교개혁의 밑거름을 준비했기에 위대한 종교개혁이 일어났다.  2015년은얀 후스가 화형당해 순교한 지 600주년이 되는 해였다. 벌써 600년이고, 2016년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는 해이다. 1915년 순교 500주년을 맞아 프라하 광장 한가운데 얀 후스의 청동상을 세울 정도로 체코의 국민적인 성인으로 추앙을 받고 있다. 종교개혁 100년을 앞서 공개적으로 교황의 면죄부 판매와 성직 매매, 교회 부패에 맞선 인물로 ‘종교개혁의 선구자’로도 칭송을 받은 인물이다.  이 도서는 얀 후스의 전체적인 활동과 사상, 삶을 폭넓게 다뤄 진면목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안내해 준다. 진정한 그리스도의 모습을 통해 큰 도전을 받을 것이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b********1 2016.04.20.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얀 후스를 만나다 - 토마시 부타(Tomáš Butta)
"얀 후스를 만나다 - 토마시 부타(Tomáš Butta)" 내용보기
얀 후스는 "종교개혁"이란 범주를 떠나서도 높이 평가 받을 만한 지점이 많이 발견되는 위인입니다. 그가 기성의 권위에 도전했던 건 그저 종교 교리상의 찬부에 기인했다기보다, 도탄에 빠진 민중의 삶과 체제의 모순을 함께 개혁하려 든 그 의지의 소산이라고 봐야 타당할 텐데요. 한편으로 그는 극단적인 고통과 심적인 번뇌 속에서도 인격의 평정과 균형을 잃지 않은, 한 인간으
"얀 후스를 만나다 - 토마시 부타(Tomáš Butta)" 내용보기

얀 후스는 "종교개혁"이란 범주를 떠나서도 높이 평가 받을 만한 지점이 많이 발견되는 위인입니다. 그가 기성의 권위에 도전했던 건 그저 종교 교리상의 찬부에 기인했다기보다, 도탄에 빠진 민중의 삶과 체제의 모순을 함께 개혁하려 든 그 의지의 소산이라고 봐야 타당할 텐데요. 한편으로 그는 극단적인 고통과 심적인 번뇌 속에서도 인격의 평정과 균형을 잃지 않은, 한 인간으로서도 본받을 점이 많은 일생이었습니다.

그는 누구보다 우선적으로 떠받들어져야 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서, 가장 보잘것없고 가진 것 없는 민중의 생을 보살피지 못하는 교회의 가르침이란 아무 소용 없다는 인식에 도달했습니다. 이를 위해 그는 어느 정도 보장되어 있던 안락한 미래를 등지고, 책에서 배운 바를 실제의 삶과 일치시키려는 고행의 경로를 택했습니다.

유려하면서도 심금을 울리는 설교자로서 그는 보헤미아 일대를 넘어 전 제국(신성로마제국)에 걸쳐 명성이 높았습니다. 그가 강조한 건 첫째 "이문이 많이 남는" 장사로 알려진 성직자의 자격에 대해 이를 결코 매매의 대상으로 삼아선 안 되며, 엄격한 교육과 수련의 절차를 거쳐 성스러운 존엄이 유지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성직이 매매 대상이 되면 이런 성직자가 제 본본을 수행할 자격을 못 갖출 뿐 아니라, 주일 헌금을 빙자하여 개인 착복의 수단으로 삼기 일쑤이며, 나아가 권귀의 압력에 쉽게 굴복하는 하수인으로 전락하기 쉽다는 이유에서였죠.

마르틴 루터가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여 민중이 접근하기 쉽게 한 공적이 있듯, 후스는 그보다 훨씬 이른 시점에 역시 자신의 출신 지역민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토착어 성경을 발간했는데, 위대한 개혁가들이 한결같이 보이는 공통점이기도 합니다.

황제는 문제점을 공의회에서 함께 토의하자고 그를 초청한 후, 호수의 절경으로 유명한 그곳에 도착한, 그리고 황제의 신변 보호 약속을 철석같이 믿은 그를 체포하여 결국 화형대에 올립니다. 소수파의 믿음을 탄압한 것보다도, 황제쯤이나 되어서 그것도 신변 보장 같은 기본적인 약속을 안 지키는 모습에 경악하게 되는데요. 이런 건 이미 황제는커녕 동네 백정이나 양아치만도 못한 무식하고 비천한 처신이죠. 신을 믿지 않는다면 최소한 조상한테 부끄러운 줄이나 알아야 합니다.

그가 죽으면서 남긴 말이 유명한데요. 자신의 화형대 발치에 자신의 육신이 더 잘 타오를 수 있게 땔감을 나르는 노파를 두고 (다 저런 비참한 사람들을 위해 일생을 헌신한 그였건만) 한 마디 이른 것이, O sancta simplicitas!였습니다. 번역하면 "아, 저 성스럽기까지 한 단순함을 보라!" 정도이겠는데요. 이처럼 그는 자신의 신조에 확신을 가졌고, 자신이 과연 옳았는지는 오로지 절대자만이 판단하리라는 믿음 하에 아무 회한 없이 죽음을 택했습니다. 이런 용기와 일관성은 인간 보편의 미덕으로 칭송되어 마땅합니다.

v*****7 2016.10.1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