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1)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0%
  • 리뷰 총점8 10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0.0
  • 50대 8.0
리뷰 총점 종이책
진정한 나를 찾는 도저한 사유의 여정
"진정한 나를 찾는 도저한 사유의 여정" 내용보기
진정한 나를 찾는 도저한 사유의 여정- 이형권 『공감의 시학』       이형권은 『공감의 시학』(천년의시작, 2017) 서문에서 우리 시단을 강렬하게 뒤흔든 최근의 사건으로 두 가지를 꼽고 있다. 하나는 미국의 팝가수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몇몇 시인들의 성추행 문제로 불거진 문인들의 도덕적 해이 문제이다. 언뜻 전혀 다른 두 가지 사건으
"진정한 나를 찾는 도저한 사유의 여정" 내용보기

진정한 나를 찾는 도저한 사유의 여정

- 이형권 『공감의 시학』

 

 

 

이형권은 『공감의 시학』(천년의시작, 2017) 서문에서 우리 시단을 강렬하게 뒤흔든 최근의 사건으로 두 가지를 꼽고 있다. 하나는 미국의 팝가수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몇몇 시인들의 성추행 문제로 불거진 문인들의 도덕적 해이 문제이다. 언뜻 전혀 다른 두 가지 사건으로부터 그는 사회적, 인간적 공감의 부재라는 문제 상황을 이끌어낸다.

 

밥 딜런의 노래가 우리 시가 잃어버린 공감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다면, 시인들의 성 추행 문제는 공감의 능력을 잃어버린 우리 시단의 현실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사례로 기록된다. 중요한 것은 그가 이야기하는 공감의 능력이 타락한 사회에 대한 비판 정신과 긴밀하게 이어져 있다는 점에 있다. 공감(共感)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감각을 의미한다면, 그 말에는 이미 타자와의 연대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이형권 비평을 관류하는 비판과 소통의 의미망은 무엇보다 이러한 타자와의 연대성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1) 문학의 깊이는 타자와 자아에 대한 사유를 근간으로 확보되는 것이다. 감각적인 표현만으로 한 편의 위대한 문학 작품이 탄생할 수는 없다. 문장의 현란한 수사만을 탐닉하기 위해 문학 작품을 읽는 이는 없다. 사람들은 문학 작품 속에서 세계에 대한 깊은 사색과 인생에 대한 심오한 성찰을 얻고자 한다. 자연히 독자들에게 심오한 감동을 선사하기 위해서 작가는 창작 과정에서 사유의 깊이를 확보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100)

 

2) 세월호 침몰로 인한 어린 학생들의 집단적 죽음의 원인은 일차적으로 우리 사회에 타자를 환대하는 철학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상업자본주의의 유령이 온 세상을 뒤덮고 있는 시대, 세속적 권력과 자본의 가치만을 추구하는 극히 이기주의적인 시대, 이런 시대를 철학적으로 전복하지 않으면 세월호 사태는 다시 반복될 것이다. 세월호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저마다 타자를 배려하고 환대하는 정신적 태도를 간직해야 한다. 애초부터 타자로 존재해왔던 시인은 타자의 철학을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실천해 왔다.(102)

 

 

인용문 1)에서 이형권은 문학의 깊이를 타자와 자아에 대한 사유의 문제와 연결하고 있다. 그에게 타자를 사유하는 일은 곧 자아-나를 사유하는 일이다. 그리하여 그는 타자에 대한 사유가 깊어질수록 에 대한 사유가 깊어진다는 점에 착안하여 사회적 공감의 문제가 결국은 타자에 대한 이해의 과정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자아의 밑바탕에는 타자가 있다. 돌려 말하면 타자의 삶이 있기에 자아-나의 삶이 있는 것이다. 한나 아렌트의 말마따나 사유란 타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이다.

 

타자의 입장을 모른다면 사유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내려지는 셈이다. 따라서 문학적 사유는 타자의 입장에서 우리가 사는 이 세계를 바라보는 것을 의미한다. 타자의 사유에 대한 이형권의 이러한 생각은 인용문 2)에서는 타자를 배려하고 환대하는 정신적 태도와 결부되고 있다. 그는 세월호 사건을 통해 타자를 향한 배려와 환대가 부재하는 한국 사회의 현실을 목도한다. 세월호의 주검들은 타자이면서 곧 자아=나이다. 세월호의 타자들이 단순히 타자로 남는 순간, 우리 사회는 타자에 대한 사유의 길을 잃어버린다.

 

이렇게 본다면, 이형권이 추구하는 공감의 시학은 무엇보다 타자에 대한 윤리 감각을 요구한다고 볼 수 있다. 윤리 감각은 문학적 사유의 감각이다. 문화산업을 지배하는 자본의 욕망이 창궐하는 이 세계에서 시인은 시작(詩作)을 통해 이러한 윤리 감각을 표현한다. 그리하여 이형권 비평에서 윤리 감각은 진정한 시인을 가려내는 비평의 척도로 나타난다. 그는 시인을 추악한 시대에 매몰되지 않은 채 순수와 진실을 지켜나가는 존재로 규정한다.

 

시대적합성에서 멀어지는 것이 오히려 시적 진실을 지켜 나가는 길이 되어버린 이 사회에서, 시인은 시대와의 불화를 선언함으로써 고통 받는 타자의 삶과 연대하는 길을 기꺼이 선택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성자(聖者)로서의 시인상은 이 지점에서 발현되거니와, 이것은 그만큼 이형권 비평의 밑바탕에 시대와 불화하는 자의 윤리 감각이 깊숙하게 개입하고 있음을 예증한다고 하겠다.

 

시대와의 불화는 시대의 중심으로부터 소외된 타자들이 수용할 수밖에 없는 삶의 방식이다. 1960년대 이후의 한국시에 등장하는 민중의 형상에도 나타나는바 그대로, (한국)문학은 그 시대의 가장 낮은 곳을 살아가는 타자들에게 시안(詩眼)을 집중함으로써 문학의 윤리 감각을 표출해 왔다. 구체적으로 이형권은 시대와 불화하는 시인들의 정신을 코라의 노래를 부르는여성 시인들의 시에서 발견한다.

 

1920년대 나혜석의 시로부터 고정희, 최승자, 김승희, 김혜순, 김선우 시에 이르는 여성시의 도정을 살피고 있는 코라의 노래를 부르는 시인들-현대시와 여성 주체의 탄생이라는 글에서 그는 코라의 언어를 통해 시적 주체로서 거듭나는 여성들의 시 세계를 조망한다. 크리스테바의 용어인 코라의 언어는 상징계의 언어에 진입하기 이전의 상태이며, 상징계의 언어에 침입하여 그 문법 규칙을 전복하거나 각종의 수사적 표현을 구사한다.” 이성의 언어에 집착하는 상징계를 벗어난 자리에서 그()들은 이성의 언어를 갱신하고, 그 언어에 기반한 이성의 정신을 갱신한다.

 

여성 시인들에게 코라의 언어는 타자의 언어가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코라의 언어로 표현한다. 가부장적 남성의 시선-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세계를 그들은 코라의 언어로 그려낸다. 따라서 그들에게 코라의 언어는 곧 여성이라는 몸에 새겨진 생의 언어와 다르지 않다. ‘여성을 말함으로써 그들은 여성이라는 능동적 주체를 남성의 언어가 지배하는 상징계로 불러낸다.

 

코라의 언어는 남성의 언어가 지배하는 세계의 반대편에 있다. 그들은 코라의 언어로 배란, 월경, 출산과 같이 여성들의 몸에서 벌어지는 생의 사건들을 표현하고 재구성하여 여성만의 독특한 삶의 세계를 내보인다. 남성의 언어가 바깥으로 내몬 몸의 언어, 감각의 언어가 여성시에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는데, 타자로서 여성에게는 익숙한 몸의 언어를 통해 이들은 남성 중심의 사회에 구멍을 내는 문학적 윤리 감각을 시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형권의 비평은 이렇듯 타자와 공감하는 주체의 비평정신이 오롯하게 부각되고 있다. 이 책의 2부에 실린 개별 작가론에서 그는 타자를 바라보는 시인들의 다양한 시선들을 다채롭게 그려내고 있다. 신경림의 시에서 그는 가난하고 고달픈 삶 가운데서도 진실하고 정의롭고 정직한 마음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가는민중의 형상을 끌어내고 있으며, 정현종의 시에서는 다양한 생명들이 상관적으로 존재하는 역동적 생명의 세계를 밝혀내고 있다. 그런가 하면 오규원의 시에서는 일상과 시의 경계를 해체하는 시인의 정신에 주목하고, 배한봉의 시에서는 시원적이고 신화적인 순수성이 살아 숨 쉬는 자연의 세계를 읽어내고 있다. 리얼리즘에서 후기모더니즘에 이르는 시인들의 다양한 면모는 한국시를 대하는 비평가의 스펙트럼이 그만큼 넓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형권은 이처럼 고통스런 타자의 삶과 공감하는 비평의 세계에 깊숙이 빠져 있다. 그의 공감의 시학이 어느 순간 미학적 균형을 잃는 경우(이를테면 이 책의 88쪽에서 그는 마르시아스 심의 심미주의자를 특이성의 미학으로 분류하며 공감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데, 윤리 감각의 측면에서 볼 때 이 논의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도 있지만, 시인(혹은 소설가)이라는 이 시대의 타자들과 공감하려는 비평가의 자의식은 책의 곳곳에 충분히 드러나고 있다. 타자라는 또 다른 자아-나를 탐색함으로써 이형권은 타자를 거쳐 에 이르는 비평의 길을 모색한다. ‘에 이르는 길은 곧 타자에 이르는 길이다. 공감의 시학으로 표출되는 그의 비평은 그런 점에서 타자를 통해 진정한 를 찾는 도저한 사유의 여정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을 것이다.

o*****s 2017.11.13.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