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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농민전쟁의 지도자는 전봉준이었고, 주역은 동학도가 아니라 농민이었다. 그러므로 <동학란>이나 <동학혁명>이 아니라 <농민전쟁>이라 불러야 옳다."
그동안 1894년에 일어난 이 사건에 대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농민전쟁을 이끌었던 전봉준에 대해선 자칫 연루가 되면 역적으로 몰려 화를 당할까 무서웠기 때문이오. 해방이 되고서는 종교적(대종교) 처지의 모호한 관점 때문에 전쟁의 주역이었던 농민들이 동학교도로 둔갑한 사연 때문이었다.
저자인 우윤은 이 책을 통해 두 가지를 말하고 있다. 하나는 전봉준은 역사의 죄인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근대화의 물꼬를 튼 선구자였다. 다른 하나는 그 주체는 다름아닌 농민 자신이었다. 그렇기에 전봉준의 역사적 위치를 재조명해야 하며, 갑오농민전쟁은 농민 스스로 신분 평등과 관리를 선별할 권리를 추구한 민주제도를 꿈꾼 일대 사건으로 봐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갑오농민전쟁의 주체는 농민이었다고는 하나, 이들을 하나로 묶은 정신적 주체는 <동학>이었으므로 <동학혁명>이라 불러도 무방하다고는 하나, 저자는 확고한 어조로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왜냐 하면 그들을 하나로 모이게 한 것은 <동학>이 틀림없지만, 동학은 학문적 사상의 기틀로서 그당시 농민들의 울분을 해소할 수는 없는 구조적 한계를 드러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즉 탐관오리들의 탐학과 가렴주구, 조선 말기의 정치적 불안, 또 외세(일본)의 침략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농민들은 나라 안팎으로 수탈을 당하는데 지쳤었다. 이런 울분을 정신적 위로만으로 해결될 수 없고, 반드시 분출하여 해소하여야만 했던 당위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갑오농민전쟁의 주역들은 동학사상을 갖고 있었을지라도 동학사상을 포교하기 위한 혁명이 아닌, 부패정부를 향한 반군으로서, 외세를 축출하기 위한 의병으로써 기치를 올릴 수 었었던 것이다.
이는 갑오농민전쟁 이후 갑오개혁과 의병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졌다는 점도 눈여겨 볼만하다. 그만큼 당시 인민들이 개화사상과 구국운동을 자발적으로 펼치거나 활발히 참여했다는 점을 통해서도 이해할 수 있다. 저자는 더 나아가 1894년을 우리 민족의 민주주의 시발점으로 보아도 무방하다고 말하고 있다. 왜냐 하면 근대 사회라는 것이 정치적으로는 국민 참정권을, 사회적으로는 계층간 평등을 추구 사회이기 때문인데, 갑오농민전쟁을 치루면서 농민들이 이 모두를 원했기 때문이란다. 그 증거로는 집강소 설치와 폐정개혁의 항목을 들고 있다.
비록 갑오농민전쟁은 실패로 끝났고, 결국 조선은 일제에 의해 식민지로 전락되었지만, 우리 민족이 겨우겨우 해방을 맞고 한국전쟁이라는 불행에도 굴하지 않고, 세계가 깜짝 놀랄만큼 빠른 시일에 대한민국이라는 민주주의 국가를 이룩할 수 있었던 원동력을 여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