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끄럽습니다. 이 책 한권만을 읽고 아인슈타인에 대해 말한다는 것이... 이 책만을 읽고 아인슈타인이 어떠한 인물이었다고 이미 머릿속으로 잠정해버리는 것 또한 무섭습니다. 그래도 몇자 적는다면, 아인슈타인의 단면을 볼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생소했던 아인슈타인의 모습도 있었고, 익히 들어왔던 아인슈타인의 모습 또한 담겨 있었습니다. 나는 이 책을 보면서 내 머릿속으로 또 다른 아인슈타인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이 책을 보고 다른 책을 보면, 내가 정해버린 모습과는 또 다른 아인슈타인의 모습에 겁먹거나, 당황해 할까봐 걱정되기도 합니다. 그런 것을 제쳐 놓고서,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고, 많은 것을 느끼게 하며, 많은 것을 반성하게 할 수 있는 책이었던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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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놀랄 뿐이었다. 예상 밖이다. 이런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일 줄이야……. 그저 <최무영 교수의 물리학 강의>에 담긴 내용에 더하여 알고 싶었을 뿐이었다. 특히 과학에서의 이야기들 말이다. 과학에서의 그의 공헌, 이 책의 4장에 언급되어 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4장의 내용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아쉽게도 4장의 내용들은 일반인들이 아닌 전문가 그룹들을 위해 쓰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 내용들을 생각해보자면 그는 꾸준히 보편적인 이론을 만들고자 노력했다는 사실, 그 결과물이 2가지의 상대성 이론이라는 것, 그 이론들을 생각해낸 계기가 로렌츠의 변환과 관련 있다는 사실, 그리고 이론 물리학자들은 이제 앞선 과학자들처럼 경험적 사실만을 가지고 발전을 이룰 수 없다는 이야기들을 알 수 있었다. 불평은 이쯤에서 접어두고, 처음으로 돌아가서 이 책에 대해서 다시 이야기 해보자. 이 책은 그가 대외적으로 여러 언론들에 발표한 내용들을 편집하여 엮어놓은 문집이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이 책에서 중요한 것은 그가 과학 분야에만 관심을 가졌던 것이 아니라, 정치나 사회분야에서도 많은 관심을 가졌고 주목할 만한 안목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는 산업발전이 가속화되던 1900년대 초반을 살았으며, 동시에 세계대공황이라고 불리는 시대 또한 경험하였다. 그는 대공황의 원인을 많은 부분들 중에서도 특히 기술의 발전에 따른 실업률의 증가로 보고 있었는데, 대공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작은 정부 대신에 규제가 뒷받침되는 정부를 지지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사회주의라고 지칭하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그가 말하는 사회주의란 지금과 같은 집권자들이 모든 국민을 지배하는 구조가 아니라 지배층들과 모든 공동체들의 균등 분배를 지향하는 사회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놀랐던 부분이 지금의 현실과 그가 살고 있었던 그 시대가 매우 비슷하게 흘러간다는 것이었다. 여러 권의 책들을 읽으면서 알게 된 이 사실을 전혀 생소하다고 치부 할 수는 없지만, 아인슈타인이 생각하는 그 시대의 근본적인 문제점들이 지금과 완벽하게 똑같다는 사실은 조금 충격적이다. 역사는 돌고 돈다는 말이 그냥 존재하는 말이 아님을 다시 한 번 절실하게 느꼈다. 그는 또한 인류역사상 가장 참혹한 전쟁이라고 할 수 있는 2차례의 세계 대전을 겪었다. 그래서 그는 전쟁이라는 행위에 대해서 뼈에 사무치도록 증오하면서 평화주의를 외친다. 각국에서 실시하는 군비증강과 핵개발은 반드시 힘의 균형이 깨지는 순간 또다시 전쟁을 야기할 것이 명약관화 하므로 이와 같은 행위를 배척하고 대신에 초국가적인 기구를 설립하여 각국의 이해관계에 관해서 대화를 통하되 세계적인 공조 하에 무력행위를 저지하자고 주장한다. 그가 순수하게 평화를 외치면서 초국가기구 설립을 주장하던 내용은 오늘에 이르러서는 미국의 제국주의의 명분으로 제공되기에 이르렀다. 결과적으로 이 책에 담긴 러시아 학자들의 주장이 옳았던 것이다. 그는 한편 과학사회의 구성원들에 대해서 사상에 휘둘리지 않기를 부탁한다. 과학자들이 이념의 충돌로서 분리된다면 과학 발전이 더디어 지고 그것은 결국 과학자들의 본분을 망각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유대인이었다. 그래서 세계대전 중에 나치의 세력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할 수밖에 없었으며, 미국에서도 비주류의 삶을 살았기 때문에 유대인들의 시온주의를 열렬히 지지한다. 그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낙관론적 인식을 가지면서 위대한 민족의 통합을 촉구한다. 오늘날 이스라엘과 중동의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는데 조만간에 이 지역의 분쟁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더 접하고 나서야 여기에 대한 내 생각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인슈타인 그는 평화주의자였으며, 따뜻한 동족애를 가지고 있었으며, 인류에게 더 나은 삶을 제공하기 위해 꾸준히 연구를 한 인물이었다. 이 책은 과학자로의 아인슈타인 이외에 많은 아인슈타인이 있었다는 것을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인상깊은 구절모든 사람은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다른 사람이 말한 대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읽고 느낀대로 판단해야 한다.
자유란, 일반적 지식 사항이나 특별한 지식 사항에 대해 견해나 주장을 표명한다고 해서 그것을 말한 사람에게 위험이나 심각한 불이익이 따르지 않는 그런 사회적 여건을 말하는 것이다. 근본적 목표와 가치 판단을 명확하게 하고 또 개인의 정서적 삶에 그런 목표와 판단을 빠르게 정착시키는 것이 바로 종교가 그 사람의 사회 생활 속에서 감당해야 할 가장 중요한 구실인듯 하다. 우리 세대의 손에 어렵게 쥐어진 이런 성취의 결실은 마치 세살 짜리 어린애가 휘두르는 면도칼과 같은 형상이다. 놀라운 생산 수단을 지니게 되었지만 이런 도구는 자유 대신에 근심과 굶주림을 안겨 주었다. 우리 방식대로 살아야지 우리에게 생소한 결투와 음주 습관 따위를 흉내낼 일은 아니다. 동족을 사랑하고 조상을 섬기는 충실한 유대인으로 남아 있으면서도 교양 있는 유럽인, 건실한 시민이 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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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구입한것은 거의 8년전의 일이다. 지금은 아예 품절되었지만, 8년전 독서에 대한 열의가 불을 지펴 이책 저책 가리지 않고 구입해 보던 그시절에 지적 호기심과 궁금증에 이책을 구입했었다. 그후로 책장의 한부분을 장식하고 있었지만, 그동안 많은 책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선뜩 이책에는 손이 가지 않았다. 나의 세계관이라는 거창(?)한 제목이 주는 위압감과 더불어, 상대성 원리로 대변되는 아인슈타인의 과학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이책에 서려있을것 같은 두려움과 과학에 대한 별지식이 없음으로 인해 어려울것이라는 끝모를 공포감이 이유였다. 괜히 이책을 읽는다고 치켜들었다간 이해하지 못해 자괴감에 빠지지 않을 까 하는 두려움도 한몫 거들었지만... 하지만 구입해놓고 보지않은 책은 언제나 자신을 선택해 달라고 눈짓을 하고 있고, 그때마다 그 눈짓을 억지로 외면하고 지내다가 이제서야 이책과의 면담을 결심했다. 8년을 외면하고 지내다가 올해 그것도 연초에 이책과 마주한 이유는 한가지다. 올해 나의 화두중 하나가 "難知能知"(알기 어려운 것을 먼저 알기)이다.그러니 스스로와 한 약속을 지키는 의미이기도 하거니와 이제는 이해할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이책을 이제서야 펼쳐들었다.
이책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생전에 쓴 글중 가장 주목할 만한 글들을 골라 펴낸것이다. 우리가 단순히 과학자로만 알고있던 그는 수없이 많은 기고문과 연설, 성명서, 서한등을 작성했고,그러한 것들을 모아 쓴 책인 1934년의 "내가보는 세상" 과 1950년에 출간한 "만년으로부터", 1953년에 출간한 "나의 세계관"이라는 세권의 책에 실린 글이 이책에 실린 글의 모태가 되었다.
최근 몇몇 역사속 인물들에 관한 글을 접하면서, 우리가 그들에 대해 알고 있었던 지식이 얼마나 적었으며, 그 조그만 지식의 편린들로 역사속의 그들을 평가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었는지를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사람을 평가하는데 너무도 쉽게 우리가 알고 있는 단편적인 지식을 가지고 그 개개인을 평가한다. 역사속 인물들이 그러할진대 우리가 매일 많은 사람들을 접하면서 쉽게는 단순한 첫인상을 가지고, 아니면 그의 외관이나 그의 말투, 아니면 그가 내민 명함에 새겨진 직함만을 가지고 일방적인 판단을 내리게 되는데, 그러한 판단이 얼마나 잘못될 판단이었을까!
이책의 실질적인 저자인 알베르트 아인슈타인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학창시절에 배웠던 짤막한 지식으로 그저 상대성 원리를 발견한 과학자이며, 21세기가 낳은 최고의 천재이고, 원자 폭탄을 만든데 가장 큰 기여를 한 과학자라는게 내가 그에 대해 아는 지식의 전부였다. 하지만 이책에 통해 알게된 그는 과학자이기전에 박애주의자였고, 인문학자 였으며, 민족주의자였고 극도로 전쟁을 반대하고 징병제를 반대하는 평화주의자였다. 또한 삶의 자세에 대해 언제나 고민하고 생각하는 철학자이기도 했다.
"우리 인간의 운명이란 얼마나 기묘한가! 우리 모두는 저마다 이 세상에 잠시 머물다 갈 뿐이다. 사람들은 때때로(인생의)목적을 감지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무슨 목적 때문에 왔다 가는지 모르고 있다. 그렇지만 깊이 생각해보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일상생활을 통해 자신이 다른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안다.(중략) 나는 매일 골백번씩 내 자신의 내면의 삶과 외형적 생활이 살아있거나 이미 숨진 다른 사람들의 노력과 수고에 의지한다는 점과, 따라서 내가 받았거나 현재 받고 있는 것만큼 돌려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스스로 되새기고 있다" - P 19 -
각분야에 걸친 그의 해박한 자식과 사회 각분야에 대한 나름의 철학, 세계대전후 불안한 국제정세를 안정시키고, 전쟁을 방지하기 위해 그가 내건 '세계정부 구상"등은 그가 이룬 과학적인 명성이 오히려 초라해 보일정도로 세계평화와 자유, 교육, 종교,정치와 정부, 그리고 평화주의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 걸쳐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만한 곳이 있으면 어디든 가서 연설을 했고, 신문에 기고를 했으며, 잡지에 글을 남겼다. 오히려 그가 생전에 이룬 과학적인 업적은 그가 사회적으로 이룬 다른 업적에 비하면 오히려 초라해질 정도로 그는 세계평화와 전쟁을 방지하기 위해 엄청난 정력을 쏟아부은 평화주의자였다. 더불어 유태인을 너무도 사랑한 민족주의자이기도 했다.
이책 한권으로 아인슈타인의 사상을 다 알수는 없다. 그리고 이책의 말미에 네번째 챕터에 별도로 기재된 아인슈타인의 과학적 공헌에 기재된 물리학에 관한 여러논문과 기고문, 그의 대표적인 상대성 이론에 대한 글, 뉴턴의 역학에 대해 과학잡지에 기재된 글등은 나의 부족한 과학지식으로는 그냥 활자를 스치고 지나가는 이해정도에 그치기는 했지만, 오히려 이책을 통해 제대로 된 아인슈타인을 알게된것이 최고의 소득일듯 하다. 과학적으로 엄청난 성취를 이루었음에도 인류를 파멸로 몰아갈지도 모를 원자폭탄 제조에 깊이 관여했음으로 인해 느끼는 인간적인 고뇌, 시대상황때문에 어찌할수 없었던 그의 고뇌에 찬 글들을 보며, 그 아픈 시대를 지식의 선구자로 살아간 한 과학자의 회환과 가슴앓이가 마음으로 전해져 같이 아파할수 밖에 없었다.
"우리가 이 신무기의 탄생을 도운 것은 인류의 적들이 먼저 이 무기를 획득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나치의 성향에 비춰 볼때 그들이 먼저 이 신무기를 손에 넣을 경우 그것은 인류에겐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파괴와 노예화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영국과 미국을 온 인류의 운명의 신탁자로서, 또 평화와 자유를 지키는 투사로 생각하고 이 무기를 그들에게 넘겼다." -뉴욕에서 열린 노벨 기념식 만찬장 연설. 1945,1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