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억이 나는 나이 때부터 나에게는 묘하게도 극지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그렇
다고 그 극지가 아마존이나 아프리카의 오지는 아니었다. 언제나 나의 마음이 향
하는 곳은 묘하게도 얼음의 땅에 대한 동경이었다. 어쩌면 그것은 여름에 약한
자신을 잘 아는 내 머리가 그쪽으로 관심을 향하게 한 것일 지도 모른다. 그 시작
은 어떻게 되었든, 극지에 대한 관심은 얼음의 땅에 대한 관심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남극과 북극 모두를 향해서 말이다. 그래서 그 얼음의 땅을 담은 다큐멘터리
들은 언제나 나의 시선을 끌고는 한다. 아마도 단지 꿈꾸는 것만이 허락되었다는
것을 자기 자신이 너무나 잘 알기에, 그 동경을 조금이라도 달래려고 하는 것일 지
도 모른다. 그렇게 북극의 눈물은 단순한 다큐멘터리라기 보다는 내 꿈의 한 부분
을 채워주는 작품이었다.
부족한 그 이야기들은 그 얼음의 땅에도 생명들이 존재하고 그 생명들이 치열하게
살아간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처절하다고 할 수 있는 생존 본능이 이 작품을 보면
서 서글픈 느낌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삶의 영역이 파괴는 것이 그 땅에서 살
아가는 생명들의 잘못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사는 인간들의 행동으로 벌어진 일이
라는 것에서 그들의 삶이 파괴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서글픈 것이 아닐까 한다. 그들
스스로는 어찌할 수 없는 그 파괴의 모습들을 그들은 오롯이 받아들여야 하는 모습
을 북극의 눈물은 보여주기 때문이다. 북극의 눈물은 북극을 배경으로 한 생명들의
나름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 배경이 되는 모습들은 우리가 떠올리는 그런 북
극의 모습은 아니다. 북극은 이미 얼음의 땅이 아니게 되었고, 이 다큐멘터리에서
보여주는 북극의 풍경들은 낯설다. 아니 익숙해서 낯설다. 이미 북극도 우리가 도시
를 벗어나 달리다 마주하게 되는 헐벗은 땅들과 비슷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에서만 그친다면 북극의 눈물은 그냥 환경파괴가 무섭다고 생각하고 넘
어갈 수 있는 그저 그런 다큐멘터리였을 것이다. 이 북극의 눈물이 서글픈 마음을 갖
게 하는 것은 그 파괴된 공간에 오랫동안 살아왔던 생명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
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어찌할 수 없는 변화에 자신들의 삶의 공간을 내어
주고 자신들이 선택하지 않은 변화를 받아들여야 하는 생명들을 이 북극의 눈물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북극의 눈물이 서글픈 것은 세상의 변화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삶
을 파괴 당하면서도 하소연 할 곳 없는 우리들의 모습을 그곳에서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극의 눈물은 그렇게 북극을 통해서 우리의 눈물을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