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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노아의 방주와 성경 속의 대홍수를 소재로 삼았으니, 그 이야기를 알고 보면 훨씬 더 생각할 것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교회를 다녀 본 적 없고, 노아의 방주를 모르는 아이라 할 지라도, 노아의 방주나 대홍수같은 것은 그저 배경으로 받아들일 뿐, 줄거리의 중심맥락을 이해하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을 것같다.
신이 대홍수를 내리기로 결심하고, 이를 알게 된 노아가 전 세계의 동물들을 단 한쌍씩만 태울 수 있는 대형 방주를 제작할 즈음, 비둘기는 전령의 임무를 가지고 동물들을 찾아다닌다. 특별한 선별과정도 없고, 자격심사 기준도 없이, 비둘기는 처음 만난 한쌍의 동물들을 무조건 방주에 초대하는데, 운 좋게 비둘기를 만난 두 마리 펭귄이, 같이 놀던 친구 펭귄 한 마리를 두고 갈 수가 없어서 기절시킨 뒤, 큰 가방에 넣어 방주로 들어가 벌어지는 일들을 그리고 있다.
참신한 소재가 좋았지만, 너무 종교적 색채가 강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버릴 수 없었는데, 막상 사서 읽어보니 괜한 의심이었다. 신에 대한 끝없는 존경심을 가진 비둘기와 되먹지 못하고 매일 싸움질만하는 불경한 펭귄들의 양립 양상이, 크리스챤이 읽든 무신론자가 읽든 수긍할 만한 테두리를 만들며, 어느 한쪽 편도 들지 않는 중립을 지킨다. 이야기 초반에 펭귄들을 묘사하길, 매일같이 싸우고 친구를 발로 차는 동물이며, "그들은 원래 그렇다."라는 말로 설명한다. 그런데 자신들이 원래 착하지 못하단 사실을 아는 이 펭귄들은, 신이 고작 그런 일로 세상의 모든 펭귄들을 죽일 마음이 드셨던 것인지 끝까지 궁금해한다. 그리고 신은 세상의 모든 생물들을 죽여놓고도 정말로 후회를 하지 않으시는지도 궁금해한다. 아무래도 나는 무신론자라 비둘기보다 불경한 펭귄들의 주장에 더 수긍할 수 있었다.
대종말과 같은 대홍수를 다루고 있지만, 이야기는 시종일관 유쾌하다. 조금은 모자란, 사실 좀 많이 모자라 보이는 비둘기와 펭귄 세마리, 그리고 만일 신이 있다면 바로 그 모습일 거라고 펭귄들이 생각하게 만든 자애로운 노아, 등장 인물은 이들이 다지만, 의무를 이행하려는 비둘기와 고향을 그리워하는 펭귄들이 주고 받는 만담이, 책을 읽고 있는 나를 웃기고, 울리고, 감동받게 하였다.
후반부에, 비둘기가 입에 올리브 가지를 문 통에 "아더더 브드.."하는 식으로 말을 하는 장면이나, 방주 하선 시, 한쌍 씩 땅을 밟아야하는 상황에서, 펭귄 세마리가 노아의 눈을 피하기 위해 벌이는 사건들에선 바닥을 치고 웃게 만든다.
다만, 청소년 문학치고 대상 연령이 제법 높은 것같다. 동물들이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 숨겨진 철학을 찾아낼 수 있는 정도의 나이여야 할 것이다. 초등학생보다는 중고등학생이 좋겠다. 하지만 그것도 욕심이다. 어른인 내가 보기에 아이가 그 내용을 다 이해하지는 못한 것같지만, 초등6학년인 조카는 이 책을 아주 좋아했다. 시끌벅적한 동물들의 행동이 코믹해서 좋았던 모양이다. 같은 책을 보더라도 아이들은 자기가 이해할 수 있는 만큼만 내용을 보는데, 그것도 나쁘진 않다고 본다. 시간이 지나면 어차피 이해하게 될 테니까. 사실, 어른이 읽어도 좋을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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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주부를 닮은 펭귄 세 마리와 책임감이 너무 강한 비둘기. 독일 아동극 대본상을 받았다고 해서 중간중간 무대에서 어떤 모습일까를 상상하며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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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마리 펭귄이 저희들끼리 놀다 티격태격하게 되었다.얘네들은 원래 좀 모자른 캐릭터다. "그런데 우리 지금 왜 싸우는 거지?" 이런 식으로 놀면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문제는 키 작은 펭귄이 나비를 밟아 죽이려고 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그러자 키 큰 펭귄들이 하나님한테 벌 받는다며, 하나님은 벌에 대한 다양한 방법을 갖고 있을 거라고 하자 키 작은 펭귄은 겁주려고 꾸며낸 얘기 하지 말라며, 하나님 같은 거 필요 없다고 화를 내며 급히 떠나버린 것이다.
그런데 둘만 남은 펭귄에게 비둘기가 소식을 전하러 왔다. 이 세상에는 서로 싸우는 인간들과 동물이 너무 많아서, 하나님도 이제 지쳐서 새로 시작하려고 하신다. 그래서 대홍수를 만들어 세상이 종말을 맞게 된다는 거였다.
처음에 키 큰 펭귄들은 방주에 탈 수 있는 두 마리로 선정된 것에 안도했다. 그러나 화나서 가 버린 키 작은 펭귄은 어쩌지, 에 생각이 미쳤다. 죽을 텐데. 결국 들켜서 쫓겨날 수도 있다는 각오를 하고 키 작은 펭귄을 가방에 우겨 넣는다.
드디어 비가 오기 시작하고. 비둘기는 8시까지 오랬는데 왜 이제 왔냐며 타박한다. 펭귄들은 12시까진줄 알았다며 능청을 떤다.
아. 그렇게 들어와서도 자꾸 시끄럽게 굴어서 비둘기가 불시에 쳐들어오고, 키 작은 펭귄을 숨기느라 갖은 고생을 한다.
그런데, 가방 안에 숨은 키 작은 펭귄이 비둘기 갔어? 묻자 아직 안 간 비둘기에게 들키게 된다.
이 위기를 어떻게 넘기지? 키 작은 펭귄은, 자기가 하나님인 척 대답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대목에서 나오는 말들. "네가 하느님이라는 증거를 대 봐." "넌 아무 증거도 없이 나를 믿어야 해." "그건 너무 힘들어." "내 말이 억지처럼 들린다는 거 알아. 증거가 있었다면 모든 것이 너무 쉬웠겠지. 세상에 하느님을 믿지 못하는 것은 없었을 테니까." ... "이게 다 속임수라는 거야. 어서 이 가방 열어. 그럼 모든 게 밝혀질 테니까." "그럼 마음대로 해. 그렇지만 그렇게 하면 넌 앞을 못 보게 돼." 비둘기가 망설이며 열지 않자, "왜, 망설여지나 보지? 현명한 생각이야. 너처럼 예쁘고 하얀 비둘기가 앞을 못 보게 된다면 그건 너무 안타까운 일이니까." "내가 예쁘고 하얀 비둘기라는 걸 어떻게 알았지?" "그거야 당연히 내가 너를 만들었으니까 알지." "하느님, 제가 못 믿는다고 해서 미안해요." "다 잊어버렸어." "하느님이 그렇게 이해심이 많으리라는 생각은 못했어요."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이나 동물들이 나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지." "솔직히 말해서 전 하느님한테 화가 많이 나 있었어요." "괜찮아. 난 다 이해할 수 있어. 누구나 관심도 없는 상대에게 화를 내지는 않지. 내게 화가 났다면 나한테 관심이 아주 없지는 않다는 말이구나." 이런 식.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나 하나님을 보고 싶은 펭귄이 슬쩍 가방을 열자 펭귄인 게 들통나고, 비둘기는 이제 방주에서 내릴 때가 됐는데 정작 자기 짝은 안 데려온 게 생각나서 공황상태에 빠진다. 결국 남는 펭귄 한 마리가 비둘기 짝인 척 꾸며서 방주에서 내리기로 한다. 노아 할아버지는 나이가 많아 눈이 잘 안 보일 테니까. 그렇게 행복하게 오래 오래 살았답니다 ^^^^ 하는 동화. 상상력도 기발하고 재미있지만 하나님에 대한 여러 오해들, 그리고 방주에 탄 동물들의 여러 모습들이 잘 그려져있다. 사실 방주에 탄 동물들이 뭐가 잘 나서 선택된 게 아니다. 게다가 타서도 카드놀이하고 싸우고 속이고 난리다. 방주 안이 어둡고 타르 냄새 나고 계속 흔들리고 배고프다며 불평을 하기도 한다. 구원의 수단과 방식에 대해서 자꾸 불평하는 옛 이스라엘 백성, 그리고 나의 모습과도 같다. 그런 모습과 상관없이 이제는 싸워도 벌을 주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것, 구원은 우리의 어떠함과 상관이 없다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었다. 이 책에는 이후 구원의 길이 예수님이라는 건 이야기하고 있지 않지만, 그냥 동화니까. 당연히 독자마다 다른 방식으로 볼 수는 있겠지만, 크리스쳔으로서 혹시 이 책이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더 키울까 염려가 되기도 한다. 한편 나도 펭귄 같은 생각 많이 했어서, 더 재밌게 읽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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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은 동물원에서만 보았지 남극 같은, 실제 펭귄의 고향에서 나는 그들을 만나보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그들을 아는 것은 극히 피상적이다. 물론 가끔 동물의 왕국이나 내셔널지오그래픽 같은 경로를 통해 우아한 자태들을 감상하기도 했다.
그래서, 나름대로 펭귄은 신비의 동물이다. 쉽게 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애완동물처럼 귀엽게 생겼기 때문에 많은 책들에서 그들을 주인공으로 하여 이야기를 꾸민다.
현재 우화에 주인공을 나오는 펭귄 책을 읽은 것만도 몇 권이나 된다. (빙산이 녹고 있다고?, 펭귄나라의 공작새에 관한 짧은 보고서...따위)
그 와중에 최신 작품으로 나온 "8시에 만나"는 기존의 우화가 아니라 동화로 탄생한 책이다. 그래서 신선하고 재미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놀라운 이야기들이 일어난다.
창세기의 노아방주 이야기는 누구나 알고 있어, 어쩌면 신선함이 떨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작가는 오히려 그 점을 철저히 이용하여 독자들을 호기심 가득하게 만든다.
아이들이 좋아할 우정에다, 나비의 죽음을 통한 생명의 존귀함, 그리고 하나님 존재에 대한 영적인 부분까지 고루 비빔밥처럼 잘 버무렸다.
부모나 아이들이 결코 후회하지 않을 무지개 같은 동화. 책을 읽고 나면 곧 뛰쳐 나가 나비를 찾고, 펭귄을 그리워하며 무지개를 보고 펭귄을 생각할 수 있는 동화.
그들은 땅에 내려 다시 어떻게 얼음 나라로 돌아갔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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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책 창세기 6장 7장에 보면 "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을 칠하라, 내가 홍수를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식 있는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자가 다 죽으리라." 하나님을 무시하던 시대에 살았던 노아는 하나님을 사랑했고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노아에게 배를 만들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순종할 수 있었고 배가 완성되자 모든 동물들이 짝을 이뤄 그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큰 홍수가 일고 온 땅을 휩쓸어 버린다. 노아의 하나님을 향한 순종과 사랑을 기뻐하신 하나님은 그와 가족들을 모두 안전하게 지켜주셨다. 여기까지가 노아에 대해 알고 있는 나의 짧은 스토리이다.
<8시에 만나!> 귀여운 꼬마펭귄 세 마리가 등장한다. 키가 큰 두마리의 펭귄과 키가 작은 한 마리의 펭귄, 사방이 눈으로 뒤덮인 이리보고 저리 보아도 눈 밖에는 보이지 않는 얼음과 눈밭이 깔린 하얀나라, 서로를 걷어 차기도 하고 이유없이 싸우기도 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펭귄들의 일상이 마치 우리집 삼형제가 날마다 싸우는 그 모습을 상상해서인지 많이 닮아 있는듯하여 미소가 절로 나왔다. 노아의 방주이야기를 떠 올려 보면 세 마리의 펭귄의 상징은 노아의 세 아들을 모태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온 세상을 휩쓸 폭풍이 몰아친다는 말에 펭귄들은 놀라 허겁지겁 짐을 꾸리지만 세 마리의 펭귄 중 두 마리만이 노아의 방주에 탈 수 있다는 안타깝고 슬픈 현실을 펭귄들은 지혜롭게 그 위기를 극복하고 노아의 방주에 올라탄다. 여기서부터 흥미진진함과 펭귄들의 재치있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 그렇다면 하느님이 우리를 만들 때 정신이 없어서 이것저것 마구 뒤죽박죽 만들어 놓은 게 분명해 우리는 새인데 몸에서는 생선 비린내가 나고 날개는 있는데 날지도 못하잖아." "대신 수영은 잘하잖아" 이런저런 생김새로 살아가는 많은 동물들과 사람들 어찌보면 하나님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재능과 끼를 살려 주셨는지 모른다는 메세지를 주는 것 같았다. 주위를 둘러 보아도 누구는 수영을 잘하지만 책 읽기를 싫어하고 또 어떤 친구는 책읽기를 너무 좋아하여 독서상까지 받지만 운동은 싫어하고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재능을 갖고 있거나 취미를 갖고 있다면 그것 또한 불공평하게 만들어주신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세상에 좋은 펭귄이 있으면 나쁜 펭귄도 있겠지 난 나쁜 펭귄이야 항상 그랬지 그건 나도 어쩔 수 없어 내 잘못이 아니야 나를 이렇게 만든 것도 하느님이니까 잘못은 하느님이 한 거야." 때론 나의 잘못을 부모님에게 또는 하나님에게 돌리려 하지는 않았는지 되새겨 볼 수 있는 구절이었다. 꼬마 펭귄들의 수 많은 대화 속에 삶을 살아가면서 나만 생각하는 이기심 때문에 친구들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 나의 외모에 대한 컴플렉스로 부모님을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하지는 않았는지 생각의 뿌리를 심어줄 수 있는 자양분으로 충분한 거름이 되는 책이라 생각되었다.
절대 어울릴 수 없는 펭귄과 비둘기는 결혼을 하였고 육식동물인 사자와 약자인 동물들이 함께 노아의 방주 안에서 몇 날 몇 일을 보냈으며 매일 같이 티격태격 했던 꼬마 펭귄 세 마리는 서로의 우정과 사랑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도 마찬가지이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으며 어떤 기준을 두고 양면성을 갖는냐에 따라 생각의 차이가 생기며 그 차이를 극복하며 어울려 살아간다. 펭귄과 비둘기가 서로를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을 하나님은 원치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동물들도 있다. 하지만 비둘기와 펭귄은 남들 말에 신경쓰지 않았다. 둘은 이미 서로를 아끼며 사랑하는 인연의 고리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평화롭게 자라기를 바라신다는 것이다.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바탕으로 어린이들의 시선에 맞게 재조명하여 만들어진 이 책이 성장기 어린이들의 어려움이나 고민들을 긍정적인 사고로 전환시켜 주리라 생각된다. 서로를 욕하고 헐뜯고 욕심을 부리는 사람들로 인해 세상이 온통 더러워졌지만 주변의 어려운 사람을 돌볼 줄 아는 넓은 마음, 내 이웃을 가족과 같이 아껴 줄 수 있는 깊은 사랑을 갖는다면 하나님은 더 이상 큰비를 내리시지 않을것이다. 많은 생각과 감동적을 안겨 준 책이었다. 2006년 독일 청소년 문학상 아동문학상, 2006년 독일 아동극 대본상 수상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는 책이라 그런지 저자의 개성있는 글은 펭귄 세 마리의 대화에서도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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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창세기」에 실린 노아의 방주가 너무도 발랄하게 재탄생했다. 8명의 가족을 의미하는 숫자가 '8시에 만나' 라는 제목으로 바뀐 이책, 올리브잎으로 홍수가 끝났음을 알려주었던 비둘기의 임무는 노아의 방주에 탄 모든 동물들을 총괄감독하는 역활로 바뀌었고 인간의 타락한 생활을 심판했던 홍수는 세마리의 펭귄모습을 통해 친구들의 우정을 돈돈히 하고 확인하는 매개체가 된다.
제법 큼직한 글밥에 아이들과 함께 비교적 편안하면서도 가볍게 읽을수 있었다. 그렇게 마냥 웃으며 즐겁게 읽다 어느순간 따뜻한 사랑을 만났다. 인생이란것이 선택이 아닐까 싶을만큼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선택해야할 상황이 산재해있는데 가끔은 피할수 있다면 피하고 싶을때가있고 때론 가벼운 마음으로 쉬운 선택이 있기도하다. 그 중에서 둘만이 살수 있는 선택이라면 분명 쉽지가 않을것이다. 그 상황이라면 난 누구를 선택할까?. 결코 쉽지않은 선택이었겠지만 난 누군가를 선택하지 않았을까 싶어진다. 하지만 펭귄 삼총사는 모두 함께 하기로 했다.
"착하게 산 것만 하늘나라로 가거든. 넌 못가. 넌 방금 전에 나비를 죽였잖아. "
"하느님은 세상에 없어. 그건 나를 겁주려고 너희가 꾸며낸 이야기야. 난 하느님 같은 것 필요없어. 지금까지 하느님에 대해 생각 한번 안하고도 잘 살아왔어. 너희도 그랬잖아. "
이때까지만 해도 그들에게 선택은 쉬워버렸다. 하지만 방주에 타야만 하는 결정적인 순간에 그들은 함께 했다. 그리고 힘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도우며 그 시간을 버티었다. 때론 불편을 하고 소란을 피우기도하는 동물들 사이에서 반입 금지된 음식물을 몰래먹고 숨어서 카드놀이까지 하면서 말이다.
거기에 대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너무 바빠서 였는지 아님 정말 머리가 나빠서였는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짝을 데려오는걸 깜박한 비둘기와 지금껏 자신의 짝을 찾지못한 키작은 펭귄이 오랜시간 함께 지내며 서로를 사랑하게된것이다. 또 하나의 반전은 수영을 잘하는 펭귄은 애초에 방주에 탈 필요가 없었다는것이다.
그렇게 잔잔한듯 진행되는 이야기안에 방주안에서 생활하며 생겨난 에피소드와 작가의 의도에 의한 반전의 결말까지 참으로 독특한 매력이 퐁퐁 발산되고 있었다. 또한 귀여운 펭귄들의 엉뚱한 반란과도 같은 스토리는 아이들로 하여금 무한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다소 무거울수있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사고와 삶의 진리까지를 포괄하고 있었다. 진중하면서도 유쾌한 멋진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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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독특하고 유쾌한 책을 만났습니다. 흔히 저학년 아이들용이라 생각되어질 만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