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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까지 난 지독한 근시였다. 안경 없이는 조금만 떨어진 것들도 전혀 볼 수 없었다. 머리를 자를 때도 내 머리가 어떻게 잘리고 있는지 보지 않은 채 완성된 결과물을 안경을 쓰고서야 확인할 수 있었다. 당연히 피드백을 할 수도 없었다. 그러니 결과가 마음에 안 드는 일이 부지기수였었다. 그렇다 늘 당장 코앞의 것만을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라식수술을 했다. 세상이 달라 보였다. 이젠 멀리 있는 것들도 안경 없이 잘 볼 수 있다. 조금 과장해서 100미터 이상 떨어진 글자도 다 읽어낸다. 멀리 볼 수 있게 된 거다.
이렇게 장황하게 내 눈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근시 사회]라는 책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제목을 참 잘 지었다. [근시 사회]는 근시가 돼버린(눈앞의 것만을 볼 수 있는) 사회에 대한 비판이다. 지금 당장 눈앞에 나타나는 효율성만을 생각하고 장기적인 안목이나 계획을 멀리하게 되어버린, 공공성을 잃어버린 미국 사회에 대한 비판과 해결책을 제시하는 책이다. 그렇지만 읽어보면 비단 미국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도 그대로 따라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개인들은 당장의 소비의 만족을 위해 신용카드 사용을 남발하고 기업은 주주 운동이라는 이름 아래 자사주 매입과 같은 주가 부양만을 신경 쓰고 연구개발, 직원 교육엔 소홀하다. 정치 또한 장기적인 대책과 공동체적 법률을 무신한 채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근시안적인 정치가 이루어지고 있다.
지난달 월급통장에 돈이 들어오기 무섭게 현*카드에서 내 한 달 간의 노동 대가 중 많은 부분을 가지고 바람처럼 사라져 버렸다. 매번 월급날이면 지난달 '충동적'으로 써버린 카드값으로 후회하지만 다시 '충동적'으로 카드를 긁는 나를 발견한다. '충동 사회'에 살고 있는 나는 '충동 인간'인 것이었다. 충동 인간들이 모여 충동 사회가 이루어진 것인가? 아니면 사회가 개인을 충동 인간으로 만든 것일까? 저자는 이에 대해 사회 쪽으로 모는 것 같다. 사회가 개인을 그렇게 만들었고 가장 중요한 이유는 공동체 의식의 손실이라 주장한다. 그러니 충동 사회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 또한 공동체의식의 회복이다. 공동체의식의 회복을 주장하는 저자의 결론에 공감하는 한편 나만 잘하면 된다는 개인주의에 너무나 익숙해진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란 고민에 빠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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