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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인식하는 만큼 존재한다'는 말이 있다. 세, 계, 는, 인, 식, 하, 는, 만, 큼.. 글자를 하나하나 손으로 집어가며 읽다보면, 내 머릿 속으로는 어린 시절의 풍경이 아련한 모습으로 밀려들어 온다. 노량진에 살았던 유년시절의 나에게, 세계의 전부는 '노량진'이었다. 다른 곳은 '외계(外界)'라고 칭해도, 무방할 정도로 낯설고 신비로웠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어 20대 중반에 접어든 지금, 돈과 시간의 제약이 존재하여 다른 지역에 가지 못할지언정, 이제 나에게 '외계'란 없다. 나의 인식폭이 유년시절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이 넓어졌기 때문이겠지. 내가 한 번도 가지 못한 지역이라 할 지라도, 이제 나에겐 '세계의 일부'다.
'글쓰기의 공간'을 읽다가 저 말이 떠오른 건 알 수 없는 일이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 책은 세계는 인식하는 '방식'에 따라 다르게 존재할 수 있음을 설파하는 것 같았기 때문인 듯 하다. 글쓰기의 공간은 두루마리에서 필사본, 인쇄된 책을 거쳐 컴퓨터로 변화되어 왔다. 변화해 온 것은 비단 '공간' 뿐만이 아니다. 그 공간의 성격에 따라 글쓰기의 '방식' 또한 달라져왔고, 씌여진 글을 수용하는 방식 또한 달라져왔다. 그러나 그 변화의 과정은 단절적이지 않다. 컴퓨터의 워드프로세서는 두루마기의 디지털화(化)에서 출발했다. 새로운 공간은 예전의 공간과 경쟁적이면서도 상호협조적이다. 아이패드나 킨들파이어가 등장했다고, 책이 사라지진 않았다. 아이패드나 킨들파이어는 책들과 경쟁적 관계에 놓여있지만, 책의 페이지를 본따고 페이지를 넘어가는 모습을 본따 책이라는 문화적 공간을 디지털 디바이스 안에 재형성해냈다. 뿐인가. TV뉴스가 등장한 후에도 구매체인 신문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시각적 요소가 강화되며 발전했을 뿐. 올드 미디어와 뉴미디어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함께 변화/발전해나가는 관계, 이러한 관계를 저자는 '재매개'라고 칭하고 있다. 재매개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영토 위에서 바라본 세계가, 이전과 같은 모습일 수는 없는 일이다.
이러한 '재매개'의 총본산이 바로 우리가 하루하루 마주치며 사는 이 곳, 바로 '월드와이드웹'이다. 게다가 인터넷 등장 후 점차 발전해온 통신기술은 웹상에서 글 뿐만 아니라 사진, 영상 등도 단시간 내에 무한히 공유할 수 있는 토양을 이루어냈다. 하여 '월드와이드웹'은 단지 인쇄된 책의 발전물이 아니다. 이 곳은 도서관이며, 동시에 미술관이고, 또 영화관이기도 하고, 음악감상실이기도 하고, 광장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제 이 놀라운 공간 안에서 글을 쓰고 수용하며 세계를 인식한다. 이러한 공간의 변화 속에는 무너지는 책의 독점적 권위/권력, 수평화된 개개인들의 모습 등 다양하게 변화하는 세계의 모습까지도 담겨있다. TV나 신문의 뉴스에만 전적으로 의존했던 사람들은 이제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통해 전국, 아니 전 세계의 소식을 실시간으로 (그리고 차별없이 공평하게) 접하게 되었고, 이 추상적 변화는 올해 초 '아랍의 봄'이라는 구체적인 역사적 사건으로 발화했다. 얼마 전 논란이 되었던 '위키리크스' 역시 '월드와이드웹'의 개방성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새로운 모습의'고발서'라 할 만하다. 이처럼 새로운 글쓰기의 공간에서, 우리는 새로운 방식의 글쓰기를 하고 있고, 이를 새로운 방식으로 수용함으로써 세계를 이전과는 달리 '새롭게' 인식하고 있다. 그 인식 위에서 펼쳐지는 행동양식의 변화는 실로 흥미진진하기만 하다.
그러나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개개인에게 이 변화가 미칠 영향을 생각하는 일은 그닥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점점 빨라지고 실시간 지향적이 되어가는 새로운 글쓰기의 공간, '월드와이드웹'에서 사유의 확장은 점점 더 어려운 일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요사이 온라인 상의 많은 글들을 어딘가에 고이거나 축적되어 많은 논쟁과 이야기를 거쳐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타임라인'이나 '뉴스피드'의 거대한 물결에 올라타는 즉시 시간의 뒤켠으로 도도히 밀려나고 있다. 또한 이제 지식과 정보는 사방에 널렸으니 중요한 것은 주어진 정보로 통합적인 사고를 하는 능력이라는 목소리가 도처에 드높지만, 무겁고 깊이있는 구매체로부터 비로소 획득할 수 있는 '사고를 하는 능력'이 점차 도외시되는 마당에 이는 과연 유효한 말일 것인가. 게다가 '월드와이드웹'이 아무리 태생적으로 수평적이고 공평한 특성을 갖고 있다해도, 시간이 갈수록 자본의 논리가 침투하며 그 장점이 퇴색되는 경향이 관찰된다는 점 역시 간과할 수 없다. 포탈이 취사선택해주는 뉴스만을 골라 읽는 우리는, 과연 이전에 두 세개의 신문을 통독하던 때보다 정보를 고르게 수용하고 있는지?
변화 가운데 긍정과 부정이 교차하는 오늘날의 현실, 눈 앞에 펼쳐진 이 현실은 저자가 말하는 '재매개'에 대한 숙고가 절실한 문제임을 일깨운다. 앞으로도 글쓰기의 공간은 끊임없이 변화해나갈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변화를 통한 '발전'일 것인가, 아니면 '퇴보'일 것인가. 이를 결정하는 것은 앞으로 '재매개'가 얼마나 바람직하게 이루어질 것인가에 달려있을 것이다. '재매개'는 단지 형식과 장르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앞으로 새로운 글쓰기의 공간에서 살아갈 우리의 '인식'과 그로 접할 '세계'에까지 잇닿아있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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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조금 두껍지만, 가볍고. 작은 제목들이 책 읽는 것을 도와주는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과정에도 역사가 있다면 글쓰기의 공간의 변천사에 있지 않을까 싶었다. 종이가 없던 시절부터 종이가 발명되고, 인쇄가 시작되면서 그리고 웹으로 온 지구를 소통하기까지 우리들은 소통하기 위해 많이 노력해왔던 것 같다. 그렇지만 많은 발전을 이룩한 그 이면에는 문자텍스트의 변화된 위상도 있다. [즉시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문자텍스트는 더 변두리로 밀려나게 될 것이다] 요즘엔 뭐든지 빨라야한다. 진득하게 앉아서 정보를 얻는것보다 빠르게 핵심만 찝어서 정보를 얻어야한다. 게다가 어느 정도의 시각적 자극은 소용이 없다. 그래서 요즘의 글쓰기는 텍스트 그 자체로서 내용을 전달하는 것보다는 텍스트를 이미지로 변환시켜 시각적인 자극을 주고 그 속에서 빠르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 같다. 그 자리를 영상이 채워나가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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