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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화 씨는 '현실'을 치열하게 사시는 분이다. 때문에 그 분의 글들은 시대성을 깊게 함의하고 있다. 이러한 홍세화씨의 현실에의 참여와 치열한 행동은 우리에게 너무도 소중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만큼 그는 자신의 능력을 '희생'하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그의 평론집은 시대상을 너무도 깊게 품고있다보니, 대부분은 시간의 풍화작용을 견뎌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의 단행본 중 예외로 해야 할 듯 싶다. 우리 사회에 홍세화씨의 이름을 알려 준, 그 소중하고 아름다운 인물을 우리에게 소개한 이 책은 홍세화씨가 파리로 망명하여, 택시운전기사를 하며 느꼈던 단상들을 아름답고 거칠게, 슬프지만 기쁘게, 그리고 무엇보다 솔직하게 담고 있다. '꼬레'를 제외한 모든 나라를 갈 수 있는 그. 어찌보면, 해준것도 없이 그의 자유를 억압하고, 유무형의 폭력을 가했던 조국을 등진 채, '제1세계'에서 편안하게 살아갈 수도 있는 그였지만, 망명생활 내내 그의 머릿속엔 그가 떠나왔던 한국사회가 잊혀지지 않았던 듯 싶다. 그는 사회에서 누릴만큼 누리고 사는 '남아있는 우리들'이 민망해질 정도로 우리 사회를 너무도 사랑했고, 덕분에 우리는 이런 좋은 책을 선물로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사랑'은 맹목적인 '충성'이 아니다. 지극히 상업적이고 맹목적인 충성만이 남은 우리 사회, 그의 사회에 대한 '사랑'이야말로 이 책에서 꼭 건져야만 할 정수가 아닐까. 이상, 거의 5년이 지나 이 책을 다시 보면서(그래, 내가 이 책을 처음 만난건 출간된지 한참 후였다^^)새롭게 느꼈던 감상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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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전인가 대학입시를 치루고 학교 면접을 보는 곳에서 한 교수님이 물으셨다. 요즘에 가장 감동적으로 읽은 책이 무엇이냐고..답을 예상하고 간것도 아니고 전혀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였습니다 .'라고 그리고 나서 책내용중 감동적이었던 부분을 말했던 것같다. 5년전 한참 입시라는 큰문에 좌절하고 있을 때 무심코 읽었던 이 책은 내게 그만큼 절실하게 다가왔었다.굳이 책의 내용을 몇 자 적는다고 이 책의 그 깊이가 다가오지는 않을 것이다. 한 남자의 인생이 한국의 역사적 현실과 얽히면서 우리의 현주소와 다른 나라 즉 프랑스와의 차이를 경험하게 되고 그 속에서 인간적인 한 남자의 사설을 듣게 되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자 소중한 경험인 것이다.
이중 가장 기억나는 구절이 있다면 ..홍세화씨의 대학 시절 , 막연한 호기심과 의기심에 노동현장에서 뛰어보고 싶어 자진하여 택시 운전사가 되려고 하였다. 이를 지켜본 선배는 이런말을 하였다. '네가 그렇게 하는 것은 의식으로 그치지만 그들에게는 삶의 현장이고 생의 현실이다.차라리 문학동인지같은곳에서 활동하는 것이 옳을 것같다 .' (내용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대충 이러하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처한 어떠한 현실에서 막연한 호기심과 가끔씩 발동하는 의기심으로 무작정 뛰어들 때가 간혹 있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로 의식으로 그칠 뿐 그사람들의 현실을 대신해주지는 못한다. 그 사람들과 같은 현실에서 뿌리깊은 혁신을 시도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들에게 상처가 될 뿐이고 그에게는 호기로 그친 것뿐 그 이상은 되지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주위에는 버젓이 높은 위치에서 있으면서 과거에 호기에 그친 어떠한 경험을 예로 들며 자신을 추켜세우는 사람들을 간혹 보게 된다. 하지만 그 숨겨진 이면이 무엇인지 우리는 정확히 판단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그러한 부분에서 이 책은 그러한 한국의 현실과 그 현주소를 잘 그려내고 있다. 무엇보다 그러한 부분이 결코 남의 일이 될 수 없는 나 그리고 우리의 일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똘레랑스 우리는 관용이라는 말로 풀이되는 그 말의 의미는 수도 없이 들어왔다. 하지만 진정 그 의미가 관용으로 그치는 의미인지 아니면 그 이상의 의미인지 현실의 시점에서 그 의미를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어쩌면 이 책은 우리에게 그 해답을 요구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만큼 이 책은 우리에게 남겨주는 것도 많지만 우리로 하여금 해답을 요구하고 있는 것도 많다고 볼 수 있다. 택시를 몬지 얼마 안되는 작가가 한 손님이 말한 주소를 잘못 이해해서 어쩔줄을 모르자 손님은 친절하게 자신이 가고자 하는 위치를 말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기 마련이니까요...'
어쩌면 인생도 그러할 지 모르겠다. 우리는 간혹 부딪히는 낯선 경험에서 당황해하고 부끄러워하고 어쩔줄 몰라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그러한 경험이 익숙해 질 때면 처음이라는 그 때를 잘 떠올리지 못한다. 우리에게는 항상 처음이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 당시 내가 좌절하고 힘들어했었던 때 어쩌면 가장 큰 힘을 얻었던 구절이 이 구절이 아니었나 싶다. 처음을 생각하는 마음 ,..처음이기에 새로운 희망을 갖고 다시 도전해 볼수 있는 용기 난 어쩌면 이책에서 그러한 것을 찾았는지도 모르겠다.그리고 작가의 실수를 너그러히 받아줄줄 알았던 그 손님의 마음을 나 또한 가지고 싶었는지도 .....책을 통해 인생을 배운다고도 했다. 이 책은 역사적 현실을 통한 우리의 한국의 현주소를 읽을 수도 있지만 그 경험을 통해 진정한 인생의 의미 한켠을 맛볼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인상깊은구절] '네가 그렇게 하는 것은 의식으로 그치지만 그들에게는 삶의 현장이고 생의 현실이다.차라리 문학동인지같은곳에서 활동하는 것이 옳을 것같다 .' |
| 이 책의 첫부분에 있는 서장을 보면 거기에 이 책의 화자에 대한 모든 내용이 다 들어있다. 아름다운 빠리를 경쾌하게 소개 하고 있는듯 하지만 그의 말투 에는 상처 받은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어떤 외로움과 아픔이 숨어져 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내성적이며 소극적인 그가 있다. 신념에 의해 행동하다가 상처받은 그. 그는 프랑스 빠리에서 그 원인과 해결책을 찾으려 했던 것 같다. 그의 상처가 그렇게 컸는지 프랑스인들에겐 관대하면서 한국사람과 한국사회에 대한 불만이 상당하다. 그런 그를 보면 한국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비판과 반성의 목소리 보다는 오히려 그에게 연민의 감정이 앞선다. 그는 대안으로 똘레랑스라는 개념을 소개한다. 하지만 그를 상처받게 한 당시의 상황과 현실은 우리사회가 똘레랑스라는 미덕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소위 과정이 이었다. 진보의 흐름에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하나의 과정이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프랑스도 그런 변혁의 파도아래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아픔이 있었다. 그는 그것을 몰랐을까? 아니면 그런 희생을 당하지 않은 내가 '그것은 과정이 였을 뿐이에요' 라고 너무 쉽게 말하는 것일까? 그 시대를 경험하지 못한 나로서는 그가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지켜나갔다라면 어떠했을까 라는 상상도 해 본다. 그것은 그의 현실의 벽을 보지 못한 나의 주제넘은 생각일까? 그가 끝까지 개똥을 먹지 않았더라면 책의 내용이 그렇게 자위적이진 않을 것인데 하고 말이다. 오히려 프랑스파리에서 택시기사를 하면서 겪는 에피소드는 프랑스 사회와 그 사람들을 아는데는 많은 도움이 되었다. 저기 유럽에 있는 나라로만 느껴지던 프랑스가 친근해진 느낌이다. 그의 말대로라면 프랑스 빠리는 전체가 하나의 박물관 같은 아름다운 도시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
| 우리의 분단된 현실때문에 고통받는 수많은 사람들중 한사람의 망명기. 분명 우리사회의 간판들중 최고라 할수있는 K-S 간판을 달고도 남민전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귀국하지 못하고 이역만리 남의 나라에서 망명생활을 해야하는 저자의 이야기와 프랑스의 사회적인면과 문화적인면, 정치적인면들을 단편적으로 보게해주는 책이다. 저자의 프랑스 망명생활중 자신이 택시운전사가되어 많은 프랑스인들을 만나면서 그들이 가지고있는 '똘레랑스' 라는 그들의 사고방식을 우리에게 알려주고있다. 지극히 개인주의적으로 보이기도하지만 그것은 남을 배려할줄아는 정신이 바탕에 까려있는 사고방식이라는걸 알게해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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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읽었던 책이다. 이 책은 1979년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위원회) 사건으로 프랑스에서 해외근무를 갔다 돌아오지 못하고 망명생활을 한 홍세화씨에 대한 이야기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다른 것보다 프랑스의 똘레랑스란 말이 굉장히 인상 깊었다. 우리나라 말로 하면 관용이라고 해석하기도 하는데 그것보다는 상위의 개념인 것 같다. '내가 존중을 받으려면 상대방을 우선 존중하라'라는 의미를 가진 똘레랑스는 프랑스의 개인주의가 무엇인지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멋진 의미를 담고 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아름다운 개인주의 문화를 보여 준다. 우리 사회에 개인주의란 과연 어떤 의미를 닮고 있을까? 이 나라 사람들은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제대로 구별하지 못해 보인다. 개인주의는 단순히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며 자신에 대해 중점을 둔다는 의미가 아니다. 내가 사회를 이루는 한 구성원으로 이 땅 위에 한 개인으로 서기 위해서는 다른 개인에 대한 적절한 배려와 예의를 갖추어야 나 역시 대접 받을 수 있다는 의미를 지닌다. 타인에게 피해만 주지 않으면 된다고? 자기만을 생각하는 인간들이 어떻게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겠나? 인간이 무언가를 얻고 행동하기 위해서는 관계를 떠나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다. 하지만 그런 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니, 무조건 자기 이익만을 챙기기 급급하다. 그런 현상이 이 사회에 만연하고 보편화 되어 있다. 그러니 사회 전반에 암담한 구름이 걷히질 않는다. 엽기적 사건들 하며, 삶을 스스로 끊는 가슴 아픈 일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이기주의의 결말은 무관심이다. 그 무관심이 이루어낸 일들이 그렇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교육을 학교에서 가르쳐야 하는데, 이 대한민국의 교육이라는 것이 막장이라는 현실에 답답하기만 하다. 이 땅의 학교, 종교, 정치인들은 이런 일에 대해 깊은 책임 의식을 느껴야 한다. 특히 사회의 윤리를 담당하고 있는 종교인들은 더 깊이 반성해야 한다. 그들만 노력한다면 얼마든지 사회의 방향이 바꿀 수 있다. 방식만 다르지 기독교 뿐 아니라 한국의 모든 종교인들은 문제가 있다. 도대체 예배시간, 미사시간, 설법시간에 뭘 가르치는지 모르겠다. 함께 사는 공동체 의식을 좀 더 가르치란 말이다. 내가 소중하면 모두가 소중하다는 그 의식으로 함께 돕고 이겨내서 아름다운 죽음 이후를 맞이할 수 있도록 말해라. 매번 사후를 들먹거리며 겁이나 주면서 협박하지 말고 말이다. 역사적으로 종교가 타락하면 나라가 망하는 경우가 많았다. 큰일이다. 또 이 책을 읽으며 우리나라 현대사에 대해 다시 한 번 씁쓸함을 느꼈다. 체제의 희생양이 되어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망명을 선택한 주인공을 통해 대한민국의 구역질나는 현실을 다시 보게 되었다. 한 개인이 자신도 모르는 일에 연루되어 억울하게 누명을 당하고 처량하게 삶에 고뇌 하는 씁쓸함을 느꼈다. 끝나지도 않았다. 현 정권이 들어선 후 다시 이 나라에는 알게 모르게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우리 역사의 뒤틀림이 아직까지도 바로 잡지 못한 탓이다. 정말 대한민국에게 민주주의란 말이 아깝다. 민주주의? 우리나라 뿐 아니라 이 지구상 위에 민주주의가 제대로 정착한 나라가 있나? 민주주의란 말은 허울이다. 실제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이데올로기는 특수한 계층을 위한 방법체제일 뿐 힘없는 민중들은 단 한 번도 진정한 민주주의의 테두리 안에 있어 본 적이 없다. 어떤 사람들은 민주주의의 반대말이 공산주의라고 말한다. 우리나라 수구정신교육을 제대로 받으신 분들에게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민주주의 반대말은 독재다. 독재는 김일성뿐만 아니라, 박정희도 했다. 이데올로기는 그저 그들이 써 먹기 좋은 도구일 뿐이다. 공산주의의 반대말은 자본주의다. 공산주의가 실패한 이유는 그 체제를 선택한 나라들에 독재주의자들이 많아서 그런 것도 있지만 인간 본성이 지니고 있는 경쟁심을 없앴기 때문에 의욕이 없어서가 가장 크다. 또 이미 자본주의가 중요한 대부분을 점령한 상태에서 태동했기 때문에 그들이 설 자리가 없어서기도 하다. 공산주의가 무너진 후 자본주의가 답이라고 확신하는 사람들이 있다. 현재 자본주의도 위험하다. 일한만큼 가져가는 것이 자본주의라고? 아니 먼저 선을 잡은 자들이 대부분의 모든 것을 차지하는 것이 자본주의다. 현재 그로인해 자본주의의 특성상 벌어질 수밖에 없는 빈부격차가 엄청나다. 이것이 나중에 아마 큰 폭발을 일으킬 것 같다. 생각하면 암담하고 끔찍하기까지 하다.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점점 답을 모르겠다. 이것이 답이라 생각하면 그것에 대한 문제점이 다다닥 붙어 버린다. 그러다보면 머리가 복잡해지고 아파진다. 도저히 못 찾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안을 찾을 때다. 대안이 없는 비판은 쓰레기일 뿐이다. 이 글 역시도... 흠, 글을 쓰다 보니 배가 산으로 갔군. 참나... |
| 처음 책을 접했을 때 그리 기대는 하지 않고 읽었던 책입니다. 그냥 단순히 한국인이 프랑스에서 택시 운전을 하며 느꼈던 것을 쓴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단순한 수필정도의 글이 아니라 철학이 담긴 책같네요... 이 책의 저자인 홍세화씨는 단순한 택시 운전사가 아니라 사회에 대한 저항의식을 가지고 몇번의 학생운동에 가담하기도 했던 인탤리입니다. 아무래도 그 당시의 한국사회에 대해서 날카로운 시각을 가지고 있었던 이들중의 한 사람이었죠. 그가 몸으로 부딪히며 체험했던 프랑스 사회가 그에게 있어 큰 충격으로 다가간 것 같네요. 자신과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할 줄 아는 똘레랑스의 정신! 아마도 홍세화 씨 뿐만 아니라 저를 비롯한 이 책을 읽은 많은 분들이 충격을 받았을 것 같습니다. 똘레랑스 정신은 프랑스 사회가 문화 선진국으로 나아가는데 일조를 한 크나큰 가르침이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이런 프랑스의 똘레랑스 정신을 배우고 한단계 성숙한 민주주의로 나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 똘레랑스란 개념을 한국 사회에 소개한 명작. 이 책에 대해 왈가왈부할 필요는 더이상 없을 것이다. 10년 전에 읽었을 때도 그는 멋졌다. 그의 똘레랑스를 제대로 이해하긴 약간 어려웠지만 빠리를 떠도는 그는 아뭏튼 멋있게 보였다. 1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읽어보니 역시 명작은 세월이 지나도 그 감동이 새롭다는 점에서 이 책은 분명 가치가 있다. 그리고 안타깝다. 그가 그토록 부르짖던 똘레랑스와 앵똘레랑스의 몰락이 이 나라에 그다지 자리잡은 것 같지 않다. 한동안 민주화가 고도로 진행되는 것 같더니 극우파 들의 난동으로 말짱 도루묵이 되버렸다. 선거 역시 지역주의의 구태를 벗지 못한 자들로 인해 그다지 희망을 보여주지 못할 듯 싶다. 사회의 앵똘레랑스, 극우파들의 세력은 여전히 건재하다. 10년 전에 이 책을 읽어 본 사람들이 많을 거라 생각한다. 지금 이 시점에서 이 책을 다시 한 번 읽어 보는 것이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진보정당의 원내진출로 사회민주주의의 대한 관심이 그 어느때보다 커진 요즘 그에 따른 매우 중요한 요소인 똘레랑스를 일상생활의 소소한 얘기와 함께 쉽게 감동적으로 표현한 이 책을 읽는 것. 아마 전보다 훨씬 큰 감회를 안겨 줄 것이라 확신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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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상깊은 구절로 꼽았던 이 한 문단의 글을 통해 이 책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의 요약을 대신 하고 싶다. 이 부분을 읽는 순간 나는 흡사 전기에 감전되기라도 한 듯, 온 몸이 저릿거리며 머리가 삐죽삐죽 서는 느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저 한 문단을 한 호흡에라도 읽어낸 듯 숨이 가빠오기도 하였다. 이 한 구절에서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아 혹시 이 책은 그 중간부분에 전체를 꿰뚫을 장치를 해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홍세화씨가 자조적인 말투로 풀어놓은 저 이름이야기가 너무나도 절실하게 느껴짐은 단지 나 하나 뿐만 이었을까?
그렇다 전쟁의 화 중에 채 돌도 차지 않은 민족평화는 제대로 못 먹고 병들어 죽었다. 꿈틀거리는 근대화의 맹아들을 외면한 체, 시대 감각을 상실한 조선 왕조는 이미 병들어 곪을 대로 곪아 있었고, 역사적인 흐름을 생각한다면 그 병든 왕조를 대체하려는 움직임들이 일련의 결실을 맺어야만 했다. 그러나 그 혼란스러운 시기에 대륙 진출의 야욕을 품고 있던 일제의 무리들은 우리에게 그럴만한 시간을 주지 않고, 조금씩 이 강토를 좀먹어 들었고, 벌써부터 여러 열강들에 의해 휘둘리던 한반도는 이미 우리의 것이 아니었다. 그 이후에 벌어진 처절한 몸부림들…… 그것을 모두 언급하기는 어려운 노릇이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무언가를 지키는 것보다는 그것을 잃고 나서 되찾는 것이 곱절 이상으로 힘이 드는 일이라는 것이다. 각고의 노력 끝에 되찾은 우리의 강토, 그러나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그 갑작스러운 변화에 미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면 이미 자리잡혀 있어야 할 정치적인 능력이 결여된 까닭에, 그리고 여전히 탐욕스러운 강대국의 입김에 의해 "채 돌도 지나지 않은" 민족평화(民和)는 고난을 겪어야 했고, 결국 죽는 병이 아닌 병에 걸려 죽어 버렸다.
그리고 그 죽음의 여파로 民和의 모친께서는 세계 평화를 돌볼 여력을 잃으셨고, 世和(세계평화)는 외조부모의 손에서 키워졌다. 민족평화가 죽어버린 이 땅에서는 북과 남을 막론하고 혼란스럽고 괴로운 반세기가 지나갔다. 김지하 시인의, 홍세화씨의, 그리고 나의 어린 시절에 각인되어 있던 인민군의 이미지가 어쩌면 그렇게 한결같을 수 있는가? 어째서 우리는 북의 어린이들에게 거지떼들이라 소개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어째서 지구상에 존재하는 마지막 분단국이 되어 서로를 겨눈 총을 거둘 수 없는 것일까? 참으로 서글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군부에 의한 쿠데타가 '반공이라는 국시'에 의해 합리화되고, 부일경력이라는 부끄러운 과거를 갖은 보수세력은 자신들의 지위를 확고히 하고, 진보세력을 억누르기 위해 매카시즘으로 무장하고, 무자비한 총칼을 휘둘러 왔다. 결국은 일본이 우리의 역사에 쐐기를 박아 넣어 그 균형을 잃게 하였고, 그 틈새를 파고든 일부세력에 의해 우리 민족의 평화는 죽어버리고, 그 여파로 우리의 삶 자체가 그 근본부터 흔들리게 된 것이다. 단순히 한 집안의 가족사라 치부하기에는 그것이 시사하는 의미가 너무나 크다는 생각이 아직도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홍세화씨가 한국을 떠나게 된 것도 어쩌면 그러한 역사적 비극의 연속선상에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전쟁을 겪고 나서 우리는 더 이상 한 겨레가 아닌, 서로를 죽이려하고 죽인, 엄연히 말해 적의 관계에 서 버렸다. 때문에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잃게 되었고, 앞으로도 많은 것을 잃게 될 것이다. 한창 미래를 준비하고 자신의 능력을 계발하는 것에 주력해야 할 젊은이들이 몇 년의 세월을 같은 동족을 경계하는데 소비하여야 하고, 백년지 대계라고 하는 교육분야나 사회복지 분야 등 직접적으로 국민의 삶의 질에 투여되어야 할 국가의 예산이 국방비에 투자되어 미국 등의 군수산업체의 배를 채워 주는 것에 쏟아 부어 지는 등 그 폐해는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리고 그러한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 바로 홍세화씨와 같은 이 땅의 젊은이들의 모습이다. 그는 흔히 KS라고 일컫는 엘리트 코스를 거쳤음에도 결국은 당면한 현실적 문제에 의해 학생 운동, 그리고 반민전의 전사로서의 길을 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우리 사회가 그러한 절실한 문제에 직면하지 않았다면 그는 자신의 능력을 보다 생산적인(실질적으로 당시의 운동이 생산적이지 못했음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가시적으로 드러난 성과물들이 그들이 투여한 노력에 비해 극히 작았다는 점에서라도. 다만 그러한 현실을 안타까워 할 뿐.) 일들을 해 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외교관이 되는 것과 같은 개인적인 문제보다는 부조리한 사회의 현실이 절실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결국은 지배계급, 군부정권에 저항하는 몸부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당위였다고 생각한다. 결국은 그는 한국인임에도 한국에 돌아갈 수 없는 정치적 망명객의 처지에 놓이게 된다. 과연 얼마나 많은 이 땅의 사람들이 자신의 신념을 실현하기 위해서 그런 희생을 치르게 되었을 것인가?
결국 민족평화는 한국전쟁의 와중에 희생을 당하게 되었고 그 여파로 인해 세계평화는 한국을 떠나 먼 프랑스에서 이방인의 처지에 머물게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비극은 비단 한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 분단 국가라는 멍에를 짊어지고 있는, 남북 모두, 그러니까 꼬레 뚜 꾸르의 모든 사람들이 겪어 왔던 비극인 것이다.
그러나 홍세화씨는 자신이 빠리의 택시 운전사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보여 줌으로써 우리가 처한 이러한 현실을 보여 주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거기서 더 나아가, 그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해법을 보여주고자 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똘레랑스, 그것을 짧게 풀어쓴다면 관용 정도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와 다름을 인정하는 자세, 그것이 없다면 이 세상은 지옥이 되거나, 아니면 획일화된 복사판들의 삶의 공간이 될 것이다. 아니면 그 중간 정도의 세상이 될지도 모르겠다. 민족평화가 죽고 사라진 공간에서 세계평화마저 설자리를 잃고, 결국은 똘레랑스가 숨쉬고 있는 프랑스 빠리에 가서야 정착할 수 있었다는 것은 얼마간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인상깊은구절] 나는 가끔 나의 동생의 이름과 나의 이름을 돌이켜 생각한다. 이름이 사람의 운명을 결정한다고는 믿지 않지만 동생과 나의 이름이 잔인한 장난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우리 항렬의 돌림자는 화(和)자였다. 틀림없이 평화주의자였을 젊은 나의 아버지는 첫째인 내 이름을 세화(世和)라 지었고 둘째의 이름을 민족평화라 하여 민화(民和)라 지었다. 한국전쟁에 민족평화는 죽었고 또 세계평화는 방황하다 끝내 이렇게 온 빠리의 길을 누비고 있지 않은가. 아버지는 우리들의 이름을 잘못 지었다는 생각을 하신 적이 있지 않을까? 나는 감히 여쭈어보지 못했는데, 틀림없이 허허롭게 웃기만 하실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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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리에서 택시 운전을 하는 작가의 자서전적인 책. 책 첫장에는 빠리에 도착해서 관광할 수 있는 구체적인 코스에 대해 관광 가이드처럼 나와 있다. 그런데 책을 읽다보니 작가의 어린시절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있었다. 내가 이 책에서 기대한 것은 택시 운전사로서 빠리를 관광지로서 가이드해주는 것이었다. 일반 여행책자에서는 알려주지 않는.... 그런데 이후에도 자기의 자서전적인 내용이 꽤 많이 할애가 되었는데 솔직히 이렇게 많은 분량을 차지하면서까지 작가의 성장배경에 대해 알고 싶진 않았다. 내용의 70%정도 기대에 부응했던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