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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은 사람들의 얼굴사진이 전시된 사진전시회장으로 작품은 시작된다. 눈을 감고서는 바로 그 눈을 감은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없다. 그래서 이 사진전은‘보이는 나와 만들어지는 나’라는 라캉의 거울이론을 떠올리게 하고, 이후 소설의 제재(題材)이자 사건의 중심이 되는 라이프캐스팅(인체를 본떠 조각을 만드는 기법) 석고상이 지니는 본질로서‘이중복제’, 그리고 레플리컨트(replicant), 미메티즘(mimetism)과 같은 미술용어와 미학이론으로 연결되어 문자 그대로 작품에 세련된 양식미를 더한다. 허나 이는 소설에서 그저 흘려버릴 멋스런 장식물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 작품의 묘한 매력은 인체의 손상이 없음에도 섬뜩함과 잔혹한 기운이 감도는 분위기라 할 수 있다. 자신의 아내를 모델로 하여 발표한 모녀상 연작이 평론가들의 혹독한 비평에 시달리자 은퇴하였으나 암으로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조각가는 16년 만에 유일한 혈육인 딸의 신체를 본 뜬 석고상을 완성하고는 지병으로 사망한다. 그러나 완성된 석고상은 목 윗부분이 댕강 잘려나간 채 “피 한 방울 흐르지 않는 가상의 살인”, “천연덕스러운 잔혹함”바로 그 자체인 소름끼치는 형상으로 발견된다. 석고상의 모델인 딸‘에치카’에 대한 죽음의 예고인가?
살아있는 인체의 본을 떠서 제작하는 라이프캐스팅이라는 조각기법에서 이미 야릇한 혐오감이 피어오르는데 기법의 속성상 조각가 생전 최고의 고뇌였다는 눈(目)의 처리는 더욱 불길한 전조가 되어 파고든다. 눈을 뜬 채 석고를 부을 수 없으니 감은 눈 이상을 묘사할 수 없는 한계.
일종의 거울상인 머리가 잘린 석고상의 존재에 무성한 추리가 가해지지만, 이내 망자의 딸인 에치카가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처럼 여느 추리소설과는 달리 본격적인 사건이 한참을 경과한 후 에야 발생함에도 긴장을 이끌어내는 것은 아마도 작가가 인터뷰에서 밝히듯이 수수께끼가‘서서히 풀려가는 경로의 재미’때문일 것이다.
거장의 컴백전을 준비하던 미술평론가‘우사미 쇼진’, 에치카를 추근대다 혼이 난 삼류사진작가 ‘도모토’, 죽은 조각가의 동생인 소설평론가인 ‘가와시마 아쓰시’, 망자의 내연녀, 이혼한 아내 ‘리쓰코’, 그의 남편 ‘가가미’등이 얽혀 사건은 종잡을 수 없는 혼돈에 빠져든다. 어찌보면 수상한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 같기도 하고, 혹은 모두 다 범인 같은 그런 상태.
또한 주인공인 탐정이자 추리소설가인‘노리즈키 린타로’의 잘못된 판단으로 결정적 과실이 발생하는 것은 이 소설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데, 어떤 의미에서 등장인물들 모두에 독자의 시선을 분산시켜 트릭을 보다 섬세하게 관찰케 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러나 이는 추리를 전개해 나감에 있어 탐정의 실수를 통해‘다른 해법들을 소거(消去)하는 작업의 일환’이라는 점을 이해하면 보다 명료한 독해를 가능케 한다.
그러함에도 도처에서 섣부른 단정을 하게하는 오해를 불러일으키는데 그럴수록 작품의 스릴에 더욱 깊이 몰입하게 되고, 중반에 이르면 도저히 책을 손에서 내려놓지 못하게 된다. 사라진 조각상의 머리, 급기야 진짜 시체의 머리가 더해지면서 이 두 개의 머리가 상징하는 유비성(類比性)에 거울(鏡)과 눈의 조각이라는 예술행위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상상의 세계를 그리는 매혹을 무어라 표현할 길이 없어진다.
절묘한 트릭, 진행 될수록 점증되는 서스펜스, 치밀하고 섬세한 디테일, 빼어난 세련미, 사건의 해결에 이르러 완벽하게 설득되는 상쾌한 로직은 추리문학을 숭고한 아름다움의 경지로까지 올려놓는다. “저편의 존재, 심연, 혹은 어둠이라는 표상 불가능한 것의 영역”에서 “의태라는 행위를 통해 예술의 다른 기원”으로 올라간 작품이라 하여야 할 것 같다. 라이프캐스팅기법에 잠자는 범인에게 물어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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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라도 작가의 작품을 읽어서 다행.
미안합니다, 작가님. 그동안 외면했어요. 단지 [녹스머신] 딱 한권의 책으로 당신을 판단했어요. 어려울 줄 알았죠. 재미없을 줄 알았죠. 이때까지 그래서 작가이름만으로 외면한 작품들도 좀 있어요. 이 책 한권으로 그동안의 모든 오해가 다 풀려서 다행이에요. 정통추리는 이렇게도 재미난 것을 모르고 살았었네요.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에요. 정말 다행이에요. 작가가 자신의 이름을 주인공의 이름과 동일시 한다는 것은 장단점이 있다. 일단은 동일시 함으로 이해서 독자들이 좀더 몰입해서 읽을수가 있게 된다. 자신이 주인공인냥 직접 현장에 뛰어 들어서 직접 체험하는 효과가 있다. 반면 너무 주관적인 입장이다보니 객관적인 면이 도외시 되는 경향 또한 있다. 제3자의 입장이 아니라서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좀 더 넓은 의미의 전능한 시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없어서 보이는 단면이 좁아진다는 것이다. 꼭 예능프로그램에서 보았던 '고깔대작전'과 같다. 실제로는 넓은 세상이 있지만 그것을 보지 못하고 고깔속의 작은 동그라미로만 보는 것이다. 당연히 보이는 것이 다는 아니다. 미쓰다신조의 작가시리즈는 '나'라는 일인칭시점을 사용하고 있다. 작가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으며 직업 또한 작가로 등장을 한다. 이 책에서는 그것과 약간 다르다. 작가가 좋아하는 엘러리퀸의 이미지를 그대로 땄다. 엘러리퀸 또한 작가 이름과 등장인물이 같고 이 책 또한 그러하지만 미쓰다신조의 시리즈와는 다르게 '나'라는 대명사를 사용하기보다는 린타로라는 이름을 사용해서 약간은 객관성를 띄는 것처럼 보인다. 노리즈키 린타로의 직업 역시 작가이다. 그러면서 아버지인 경찰의 임무를 도와주는 탐정이기도 하다. 탐정이기는 해도 일단 전문가가 아니므로 인해서 생기는 문제점들이 속속 보인다. 무언가 허술하고 빠뜨리는 부분이 자꾸 생기며 그로 인해 피해가 발생을 한다. 단순하게 그저 실수로 넘기기에는 조금 큰 피해이다. 물론 작가는 그것을 노리고 주인공을 배치한 것도 있을것이다. 뒤편에 실어 놓은 작가 인터뷰를 보면 더욱 잘 알수 있다. 홈즈같은 천제 탐정이 아니어서 생길수 있는 문제들은 일반독자들이 읽으면서 자신 또한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음을 느끼며 동감하게 된다. 앞서 말한 작가와 주인공이 동일시 되었을때의 장점에 속한다. 그러나 답답한 면이 없잖아 있다는 것을 놓쳐서는 안된다. 분명 보고 지나가야 할 것도 빠뜨리고 오히려 독자들이 챙겨서 '너, 이런거 잊어버렸어.' 하고 챙겨줄 정도면 조금 심각하긴 하다. 그런 약한 부분이 있는 것이 작가가 노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유명조각가가 병으로 인해 죽음을 맞이한다. 그 조각가의 동생은 알려진 번역가다. 장례식이 끝난후 그는 개인적으로 추리소설 작가인 노리즈키 린타로를 만나기를청한다. 경찰에도 알릴수 없는 그 집안의 문제는 무엇일까. 오래전 자신의 아내를 대상으로 '모녀상'이라는 작품을 만들었던 그가 자신의 딸을 모델로 삼아서 그와 똑같이, 자세만 조금 다른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가 남겼다는 조각을 보니 머리부분만 잘렸다. 처음부터 만들지 않은 것이 아니다. 완전히 만들어진 조각상에서 누군가가 목을 베어 간 것이다. 생각할수록 기이하다. 누군가 앞으로 이러한 일이 생길 것을 예언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 작품의 주인공인 딸의 목숨 또한 위험한 것이 아닐까. 그들은 경찰에 신고하는 대신 린타로를 이용해서 누가 이 작품의 머리를 가져갔을지 알아내기를 원한다. 그는 경찰의 도움을 받지 않고, 즉 아버지의 도움을 받지 않고 이 사건을 풀어낼 수 있을까. 이 조각상의 모델인 딸은 무사할까. 정통 추리소설의 형태를 그대로 따라가기에 무리없이 읽으면서도 흥미를 잃지 않고 순수하게 주인공을 따라서 사건에 몰입할 수 있게 만드는 작가의 능력이 놀랍다. 쉽게 풀어나가면서도 부분적인 면면을 놓치지 않는다. 단 하나의 사건이지만 잘 연결해서 지루하지 않게 구성해두었고 마지막에 나타나는 사건의 결과 또한 생각지 못했기에 더욱 놀라움으로 다가온다.
장마다 이어지는 루돌프 비트코어의 [조각의 제작과정과 원리]를 읽는 것은 또 하나의 색다른 즐거움이다. 이 책이 아니었다면 조각을 어떻게 만드는지 전혀 모르고 지나갔을테니 말이다. 루브르에서 많은 조각상들을 본 것이 기억난다. 그들은 눈을 감고 있었던가 뜨고 있었던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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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들어 마쓰모토 세이초 덕분에 사회파추리물에 대한 나의 오해를 풀었지만 (난 사회파라고 하면, 사회적 이슈가 강하다고만 생각했는데 트릭보다는 보다 더 사건의 동기 쪽에서 범위를 넓힌 그의 작품을 보니 자칫하면 시의성을 잃어버릴 사회파추리물의 재미를 만끽하게 되었다. 게다가 아주 오래전에 세로줄로 발간된 마쓰모토 세이초의 전집 6권을 rare item으로 획득했다 ^^V), 난 여전히 본격추리물인 새책이 당도하면 그걸 손에 뿌듯하게 들고 가슴이 콩당콩당 설레인다. '아, 이번엔 어떤 기발한 트릭을 보게 되까나~~' 물론, 이렇게 인위적인 트릭과 천재명탐정을 계속해서 보게되면 어느순간 갑자기 질려버린다 (그럼에도 난, 00관 살인사건 등 manor house mystery물이 제일 좋다). 그런 본격추리물의 한계를 노리즈키 린타로는 다시 극복해주었다.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는 와중에, 에도가와 란포의 탐정소설의 정의를 떠올렸습니다. 본격은 '수수께끼가 서서히 풀려가는 경로의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거죠. '경로의 재미'란 일정 정도의 서스펜스를 포함하고 있는 거고요. 그리고 마침 그 시기에 사람의 의사가 전달될 때에 오해라는 잡음이 생기면, 결과적으로 그곳에서 수수께끼가 발생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속에서도 '경로'가 관련될 거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어렴풋이 이 소설을 '경로'에 대해 쓰는 소설로 만들자고 생각했죠. 오해나 착각 같은 것은 순수한 추리로는 풀어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반드시 복선이란 형태로 포인트를 만들 수 밖에 없습니다.....p.540 (노리즈키 린타로 인터뷰, by 기시 유스케)
따라서, 이 작가가 설치해놓은 복선을 차근차근 풀어내기 위해서 (근데 읽다보면, 왠지 본능적으로 군데 군데서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바로 거기다!!), 읽는 속도를 보통보다는 줄여 찬찬히 읽어가면서 탐정의 시행착오를 따라가보자. 간간히 비웃어도 되지만, 그래도 역시 한수 위다.
엘러리 퀸부자처럼 아들은 추리소설작가, 아빠는 경시청 경시인 노리즈키 린타로는 어느날 고등학교후배이자 사진작가인 다시로 슈헤이의 사진전에 초대받는다. 맨마지막날 오후, 그는 거기서 가와시카 에치카라는 20대초반의 아름다운 처자를 만나게 되고 그녀의 배경을 알게된다. 언젠가 번역자의 병환으로 대신 작품후기를 쓰게된 인연으로 알게된 하드보일드 추리소설 번역가 가와시마 아쓰시의 조카이자, 유명한 전위조각가 가와시마 이사쿠의 딸인 것이다. 그녀는 미모와 혈연으로 인해 사진작가의 피사체도 되었지만 도모토 슌이라는 악질 사진작가의 스토킹을 받기도 하고, 아버지의 모델도 되었다. 여하간, 그녀에게 쏠리는 관심만큼이나 그녀를 둘러싼 상황은 가쁘게 변화하여, 결국 아버지인 조각가가 사망하게 된다.
목요일 사망, 금요일 에치카가 마지막 유작 점검, 토요일 조각중 머리가 잘린채로 잠긴 작업실 침입발견 등의 사건으로 가와시마 아쓰시는 노리즈키 린타로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과연 그 조각에는 머리가 있었던 것인지, 과거의 작품과 유작 간의 의미는 무엇인지, 장례식장과 집에서의 에츠카의 미묘한 행동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에츠카의 생모는 누구인 것인지 등 각 장마다 조각에서 눈을 표현하기 위한 과거부터의 시도와 작품연구 발췌내용이 계속해서 보통보다 좀 느린 흐림의 긴장과 산재된 미스테리로의 주위산만을 한 흐름으로 묶어놓으며 사건을 전개시킨다.
결국 나타난 또 하나의 머리, 두개의 머리 중에서 과연 제목 [잘린 머리에게 물어봐]는 어떤 머리를 의미하는지를 알게되면서 사건의 범인을 가르키게 된다.
엘러리퀸과 로스 맥도날드의 작품을 언급한 것처럼, 다른 일본본격추리물에서보다 시행착오확률이 높은 탐정의 발자취를 좇는 재미도 쏠쏠했으며, 맨뒤에 작가가 작품에 대해 말하는 부분이 실려있어서 너무 좋았다. 어떤 책에는 바로 작품본문만 실려서 (무엇보다도 작품은 스스로를 설명하겠지만, 적어도 시간이 얼마걸리든간에 힘들게 써서 지면으로 내놓은 이상 작가는 자기 작품에 대해 한마디 이상은 했을 터인데) 생뚱맞았던 경험에서 비춰보건데, 더욱 더 그런 작가나 작품에 대해 재미를 찾아 읽는 것 이상의 관심을 계속 갖게 된다 (반면, 그렇게 내놓은 출판사들에 대해선 정이 떨어지면서).
p.s: p.210~ 에서의 메두사 이야기 정말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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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이란, 우리를 최후의 진실, 유일한 진실로 이끌어가는 오류의 연속이다. - 로베르토 볼라뇨 - 살면서 종종 알려진 사실과 알게된 진실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마다 우리는 도대체 우리가 제대로 알고 있는 게 무엇일까? 묻게되곤 한다. 장하준의 최근 저서 '그들이 말해주지 않는 23가지'를 읽어보면 마치 영화 매트릭스에서 모피어스가 건네준 '빨간약'을 먹은 듯한 기분이 들게 된다. 우리가 상식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알고 보니 완전히 날조된 거짓말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충격이란! 그러고 보니,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거미의 계략'이란 영화도 생각 난다.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는 아버지의 살인 사건을 오랜 시간 후 고향으로 돌아온 아들이 추적해 보는 영화인데, 결국 드러나는 진실은 아버지가 그동안 알려졌던 사실과는 다르게 영웅이 아니라 완전히 비열한 배신자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상식이 거짓이 되고 영웅이 범죄자로 밝혀진다. 이런 일이 우리 주위엔 사실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과연, 우리는 얼마나 제대로 알 수 있는 것일까? 우리는 언제나 달의 한쪽 면 밖에는 못 본다고 한다. 핑크 플로이드의 앨범 제목 'THE DARK SIDE OF THE MOON' 처럼 그 이면에 존재하는 '달의 어두운 면'은 지구에 사는 우리로서는 도저히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에겐 아무리 보려고 해도 볼 수 없는 사물의 측면이 분명히 존재한다. 이건 우리가 가진 시야의 절대적 한계이기도 하다. 노리즈키 린타로의 '잘린 머리에게 물어봐'에도 이런 비슷한 얘기가 나온다. '결코 볼 수 없는 자신의 얼굴은 어떤 얼굴일까?'라는 질문이 바로 그것이다. 거기에 대한 대답은 눈을 감은 자신의 얼굴이 거울에 비친 모습이라고 한다.(P. 39) 책 초반부에 이러한 얘기들은 노리즈키 린타로가 생각하는 미스터리의 핵심을 드러내고 있다. 즉, 인간에겐 본질적으로 시야의 한계가 있으며 그것은 "SEEING IS KNOWING'이란 말에도 나타나듯이 곧 앎의 한계이기도 하다. 그렇게 사람은 완벽히 볼 수 없고 완벽히 알 수 없다. 때문에 필연적으로 '오해'라는 것이 생겨난다. 알려진 사실과 알게된 진실이 달라지는 오해가 말이다. 바로 이 '오해'의 존재가 노리즈키 린타로의 미스터리에 있어서 핵심이다. 이건 작가 자신의 말에서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사람의 의사가 전달될 때에 오해라는 잡음이 생기면, 결과적으로 그곳에서 수수께끼가 발생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P. 540) - 기시 유스케와의 인터뷰 중에서 - 이렇게 노리즈키 린타로의 미스터리의 핵심이자 근간은 '오해'이다. 그 오해는 결핍에서 생겨난다. 시야의 결핍, 인식의 결핍. 그건 존재론적으로 결정된 한계이므로 인간이라면 어쩔 수 없이 가지게 되는 태생적 결핍이기도 하다. '오해'가 린타로 미스터리의 근간이라면 '결핍'은 미스터리를 이끌어가는 동력의 근원이 된다. '잘린 머리에게 물어봐'에 나오는 모든 주요한 소재들이 다 공통적으로 결핍되어 있다는 것은 특히 주목을 끈다. 초반의 블라인드 페이스 사진전이 인간이 절대적으로 볼 수 없는 모습을 구현해 놓은 것이나, 가와시마 이사쿠의 인사이드 라이프 캐스팅이 결정적으로 구현할 수 없는 '눈동자'라는 한계의 존재가 그렇다. 주요 등장인물들은 또 어떤가? 이사쿠의 동생인 가와시마 아쓰시는 소원한 형과의 관계로 인해 가족이란 존재가 결핍이며 이사쿠의 딸은 어머니라는 존재가 결핍되어 있다. 이 소설엔 이렇게 어딘가 하나씩은 빠져버린 존재들과 소재들이 난무한다. 그런데 결핍은 언제나 충족의 욕망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 바로 이 충족의 욕망이 미스터리를 이끌어가는 동력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500여 페이지에 이르는, 미스터리 소설로서는 이례적인 길이를 가지고 있는 노리즈키 린타로의 '잘린 머리에게 물어봐'는 사실상 모두 이 결핍을 채우려는 행위들로 꽉 차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문제는, 이 결핍을 채우려는 행위들 조차 오해를 불러 일으킨다는 것이다. 사실 이 소설의 대부분은 이렇게 결핍과 오해의 연쇄과정으로 되어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마치 가와시마 이사쿠의 모녀상 연작 처럼 말이다. 가와시마 이사쿠의 최후의 유작 모녀상 2가 20여년 전의 모녀상 1의 거울에 비친 모습이라는 것은 흥미롭다. 에치카양의 상은 과거의 '모녀상' 연작을 통해 거울에 비춘 듯한 포즈를 취하고 있었어. 그것은 원래 거울 앞에 놓여야 했던 작품이야.(p.215) 20년의 시차를 두고 행해진 모녀상의 연작이 이렇게 거울에 반사된 모습인 것 처럼 소설 속의 기반이자 동력인 오해와 결핍 역시 각각이 서로의 원인이자 결과로 연쇄적이다. 왜 그런가? 그건 그것을 행하는 인간들 자체가 앞서 얘기했듯이 시야의 한계, 인식의 한계로 인해 애초부터 완전하게 안다는 것이 불가능한 결핍의 존재였기 때문이다. 때문에 노리즈키 린타로가 자신과 동명인 탐정을 좌충우돌의 실수투성이로 내버려두는 것도 이해될 수 있다. 전 옛날부터 사건의 개요를 안 순간에 모든 것을 알아채는 초인적인 명탐정 보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데 하면서 자주 실수를 연발하는 탐정을 좋아했습니다.가능성을 하나씩 제거하며 최종적으로는 사건을 해결하는 타입의 명탐정이죠. 특히 이 책의 경우에는 로스 맥도널드의 탐정 루 아처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여기저기 다니며 여러 사람들과 대화해 보고 때로는 속기도 하면서 다른 해법을 소거하는 작업을 하는거죠. (p.542) - 기시 유스케의 인터뷰 중에서 - 여기서도 알 수 있듯이, 린타로는 인간이 근본적으로 결핍이라는 한계를 지닌 존재로 보고 있다. 이 소설의 탐정이 시행착오를 겪는 것도, 소설이 탐문의 과정을 그리 길게 세세하게 서술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린타로의 인간관이 반영된 결과인 것이다. 인간 존재 자체에 내재된 결핍이란 한계 때문에 인간은 결핍와 오해의 연쇄 과정 속에 놓일 수 밖에 없다. 그러니 인간이 해야 하는 일은 가능한 한 그 오해의 가능성을 줄여나가는 것 뿐이다. 이것이 바로 린타로가 이 소설에 대해 가지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오해의 가능성을 줄여가면서 찾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모녀상 연작에 내포되어 있듯이, 결핍과 오해가 거울이 거울을 비추었을 때 그 상이 무한히 늘어나는 것처럼 그렇게 어느 것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구별조차 하지 못할 만큼 증식하는 재현과 반영들 속에서 확고한 진실을 찾아내는 것이다. 가장 오해의 여지가 없는 진실을. 그것이 바로 이 책의 영어 제목 GORGON,S LOOK 이 의미하는 것이다. 바라보는 것을 돌로 만들어 버리는 메두사의 시선. 그건 바로 재현과 반영의 연쇄된 가상들 속에서 진실을 石化 시켜서 찾아낼 수 있는 시선을 의미한다. 가상에서 실체로 변화시키는 그 응시 말이다. 그리고 이것은 오해의 가능성을 가급적 줄여가는 과정에 천착하는 린타로의 이 소설이 궁극적으로 욕망하는 대상이기도 하다. 아마도 그것이 이 소설이 '블라인드 페이스'라는 사진전이나 가와시마 이사쿠의 인사이드 라이프 캐스팅의 눈동자의 표현 등을 통하여 그토록 왜 유독 '눈'에 대해 많이 다루고 있는지에 대한 이유일 것이다. 소설 속 탐정 역할을 하고 있는 린타로의 사건 해결에 대한 집착은 바로 이렇게 '고르곤의 시선'을 향한 욕망의 또다른 표현이다. 그는 그렇게 페르세우스가 되어 진실을 응시할 수 있는 고르곤의 머리를 가지고 싶어한다. 마치, 이것을 암시하듯 책의 제목이 '잘린 머리에게 물어봐'라는 것은 흥미롭다. 여기서 잘린 머리는 물론 메두사의 머리를 의미한다. 메두사의 머리는 소설에서 유일하게 진실을 직시할 수 있는 존재이다. 그러니 당연히 물어봐야 할 존재이지 않을까? 뿐만 아니라, 이 소설의 진행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건을 진행시켜 나가는 매개체가 모두 다 머리인 점도 흥미롭다. 여기엔 두 개의 잘려진 머리가 나온다. 하나는 에치카를 모델로 한 조각상에서 잘려진 머리이다. 이사쿠는 자신의 20년만의 작품 공개일을 하루 앞두고 돌연사한다. 그 때까지 이사쿠의 조각상은 단 한번도 공개되지 않았기에 사람들의 호기심은 더욱 더 컸다. 하지만 작업장에서 조각상의 실물을 확인하게 된 관계자들은 아연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조각상의 머리가 사라지고 없었던 것이다. 여기서 누가 그 머리를 잘라서 가지고 갔는가가 이 소설의 미스터리의 시작이자 린타로가 본격적으로 뛰어드는 계기가 된다. 여기서 조각상이 머리 없이 몸만 남았다는 건 의미심장하다. 소설에서 메두사의 머리가 무엇을 뜻하는지를 고려한다면 이 조각상의 모습은 그야말로 진실이 사라져버린 현 상태를 의미한다. 그리고 그렇게 의뢰에 따라 탐정 린타로는 사라져버린 머리를 찾는다. 그는 그렇게 페르세우스의 여정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다, 또 하나의 머리가 나타난다. 앞서 잘려져나간 조각상의 머리는 바로 에치카를 모델로 한 조각상의 머리였다. 그런데 이번에 나타나는 머리는 그것의 진짜 주인공 실제 에치카의 머리가 된다. 석고상의 머리가 진짜 사람의 머리로 바뀌는 것이다. 머리가 잘리고 몸만 남은 석고상이 바로 거짓을 상징하듯, 거기서 잘려진 석고의 머리 역시 가짜 진실을 의미한다. 그것은 지금까지 에치카의 가족들이 알고 있었던 사실들이 진실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말그대로 오해라는 것을 드러낸다. 그런데 이제 그게 에치카의 진짜 머리로 바뀌는 것이다. 그렇게 도난에서 살인으로 바뀐다. 교환의 의미는 재배치의 의미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가짜 머리의 자리를 진짜 머리가 대신하는 것이다. 그렇게 진짜 머리는 진짜 진실을 의미한다. 가짜 머리의 자리를 진짜 머리가 대신한다는 것은 이제 알려진 사실과는 전혀 다른 진짜 진실이 그 머리가 도착한 것 처럼 드러나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 의미 그대로 '도난'이라는 가벼운 범죄가 '살인'이라는 진짜 범죄가 되듯이 그렇게 그저 불륜 정도로만 생각했었던 가족 관계의 파국이 사실은 '살인'이 포함된 엄청난 비극적 비밀이 숨겨져있었다는 것이 밝혀지게 된다. 메두사의 응시가 바로 진실을 石化시켜버렸던 것처럼 상자 속에서 튀어나온 에치카의 머리가 지금까지 오해와 결핍의 연쇄 속에서 감춰졌던 진실들을 만천하에 드러내 버리는 것이다. 노리즈키 린타로의 '잘린 머리에게 물어봐'는 500여 페이지가 넘는데다 꽤 지루하리만큼 세세하게 과정을 밟느라 느릿하게 진행되고 있어 사실 과연 재미가 있을까 생각하기 싶지만 막상 첫 페이지를 열고 읽다보면 어느새 속도가 붙게되는 신비한 소설이다. 공들여 세부사항을 복원하고 탐문의 과정 또한 별다른 충격없이 평범하게 진행되고 있는데도 작가가 복원해내는 리얼한 현장성이 아주 생생해서 그런지 꽤 몰입해서 읽을 수 있다. 거기다 지금까지 얘기해 온 대로 작가 나름의 인간에 대한 이해와 그 한계 가운데서 가능한 진실의 추구 방법이 아주 잘 드러나 있어 미스터리에서 얻을 수 있는 쾌감 이상의 것도 얻을 수 있다.(새삼 미학에 있어서의 눈의 의미라든가 메두사의 머리에 내포된 의미에 대해서도 한 번 쯤 생각해 볼 여지도 가지게 된다.) 최근의 미스터리 소설을 보면 연쇄살인이라든지 시체의 사지 절단 같은 아주 충격적인 전개와 묘사로서 독자의 흥미를 끌어가려는 경향이 많은 것 같은데 노리즈키 린타로는 확고한 철학을 바탕으로 한 뚝심있고 진중한 내러티브라면 별다른 충격적인 사건이 없어도 그 이상으로 읽는 맛을 느끼게 해 줄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아주 훌륭한 모범이라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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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린 머리에게 물어봐>는 추리소설가 겸 평론가인 노리즈키 린타로의 추리소설이다. 이 작품으로 제5회 본격미스터리대상을 수상했다. 린타로 부자는 조각상과 관련된 사건을 해결한다. 소설 두께가 제법 두꺼워서 지루해지지 않을까 우려가 되는데 생각보다 그렇지 않았다. 복잡한 스토리가 치밀하게 짜여있어서 이유있는 분량이었다. 사건에 대한 복선과 단서가 고루 분배가 되고 회수가 잘되었다. 단순히 추리만 재미있는게 아니라서 다시 읽어도 좋다. 추리소설을 잘 읽었다는 느낌을 확실히 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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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 있습니다.
제5회 '본격미스터리 대상', 2005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 1위를 차지했다는 노리즈키 린타로의 <잘린 머리에게 물어봐>. 작가와 동명의 주인공이 추리작가이자 탐정으로 등장해 사건을 해결한다.
조금 지루하지만 꽤나 논리적이고 꼼꼼하다는 평들이 많은 가운데, 550여페이지라는, 실제로 보면 더 두터워 보이는 작품을 스르륵 읽어내렸는데...
추리 미스터리 소설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뭘까? 기발한 트릭과 허를 찌르는 반전? 물론 기본적으로 추리 미스터리 소설에 있어 트릭과 반전이 생명과도 같은 중요한 요소임에는 틀림이 없겠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 중에 하나는 '응당 그럴 수 밖에 없었겠구나', '과연 그렇게 된 것이로구나'하고 납득할만한 당위성當爲性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반전을 위한 반전, 트릭을 위한 트릭만을 내세우며 인과관계, 당위성은 죄다 무시한 작위적인 추리 미스터리는 결국에는 독자들에게 외면받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 <잘린 머리에게 물어봐>는 뼈대인 사건과 해결, 트릭과 반전이 결코 허술하거나 과하지는 않지만 기본적으로 등장인물들의 행동과 사고가 쉬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기에 조금은 어처구니 없다는 느낌으로 책장을 덮은 작품이다.
애초에 '동생'이라는 애매한 단어를 가지고 16년동안 오해를 하고 아내의 살해공작에 가담한 예술가도 어처구니 없지만, 전모를 모두 파악한 뒤에도 이것저것 자세히 밝히지 않고 그냥 요상한 석고상 하나 만들어놓고 죽어버린 예술가는 정말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이 행동이 과연 '전위예술가'라는 단어 하나만으로 이해되는 것인가? 전위예술가, 예술가는 일반적인 사람의 사고와 행동을 하지 않는가?
거기에 남편으로 하여금 친언니를 성폭행하게 하여 임신하게 만들고, 남편과 짜고 친언니를 죽인 동생이나, 모든 진실을 알았으면 그냥 경찰에 신고해서 해결볼 일이지 굳이 무거운 석고상 머리 낑낑대며 들고 범인들에게 제발로 찾아가 살해당한 에치카나, 이해 안되기는 매한가지다. 게다가 정체를 감추기 위해 할머니 변장을 한채 시어머니 행세를 한다니... 풉.
또 한가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버지가 경시라고 아들이 경시인 것은 아닐진대, 민간인 신분으로 마음대로 경찰서 들락거리며 수사기밀을 떡하니 보고 듣고, 수사에도 참여하고... 이게 말이 되는 이야기인가?
이런 어처구니 없는 설정들을 차치한 채, 차근차근 정황과 증거를 밟아가며 진상에 다가가는 탐정의 추리는 그럭저럭 따라가며 볼 만 하다. 지나치게 에둘러가기에 읽다보면 이게 추리소설인지 일반소설인지 몽롱하고 아득해질 때도 많지만...
여러가지 이론이나 가외加外의 부분들이 작품의 몰입도를 떨어뜨리는 데 한 몫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 이것저것 읽을거리 덧붙여놓은 작품들을 좋아하기는 하는데 사건의 크기에 비해 쓸데없는 부분이 많아 사건자체의 농도가 너무 옅어졌다. 부피가 쓸데없이 크기는 인물들의 대사량도 마찬가지.
맨마지막 아쓰시의 대사도 어딘가 핀트가 맞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형님이 아내의 불륜상대를 그냥 자기인채로 오해한 채 죽었어야 한다니... 물론 그 때문에 마지막 석고상을 만들었고, 그 석고상 때문에 에치카가 죽은 것은 맞지만, 그보다는 형수를 죽이고 형님을 모욕한 가가미 부부에 대한 일갈과 분노가 먼저 와야 하는 것이 아닌가? 더욱이 에치카 마저 죽인 것도 가가미 부부인데...
마지막 여운을 주려했던 대사마저도 어처구니 없었던... 그냥 끝까지 어처구니 없었던 작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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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린 머리에게 물어봐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비채
이 책은 친절하게도 서두에 등장인물을 이렇게 소개해 주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런 친절한 행위를 너무나도 좋아한다. '도시 전설 퍼즐'로 제55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 단편 부문을 수상한 바 있는 노리즈키 린타로가 근 10년 만에 발표한 장편소설이라고 한다. 일본 내에서 어떤 상을 받았는지,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는 별다른 느낌이 없으나, 이 작품은 정통 미스터리의 스타일을 한껏 살린 작품으로, 작가 노리즈키 린타로는 작품 속 주인공에게 자신의 이름을 붙여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고, 여타의 탐정의 수준을 능가하는 작가 나부랭이에 지나지 않는 노리즈키 린타로의 실력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문화계가 전위예술 조각가의 귀환으로 온통 들썩이는 가운데, 이 작품을 공개하기 직전에 가와시마 이사쿠는 지병이 악화되어 세상을 떠나고 만다. 게다가 석고상의 머리 부분이 깨끗하게 잘려 도난당하는 특별하고 놀라운 사건이 발생하게 되고, 이는 조각상의 모델인 가와시마 이사쿠의 딸이자 노리즈키 린타로의 지인이기도 해서 연결점이 되기도 하는 번역가인 가와시마 에쓰시의 조카인 에치카에 대한 살인 예고장으로 받아들여진다. 기괴한 사건을 의뢰받은 탐정 노리즈키 린타로는 어떻게 이 장황한 미스터리를 풀고 잘린 머리를 되찾을 수 있을런지~ 노리즈키 린타로가 모든 정황을 깔끔하게 풀어낸 후에도 가와시마 아쓰시는 통탄해 마지않는 진실의 상처를 만나보게 될 것이다. 작가가 밝힌대로, 복선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오해'라고 할 수 있다. 늘 그렇듯이, 오해가 낳는 결과는 자못 엄청나다고 하겠다. 결코 사소하달 수 없는 오해로 인해, 가족 간의, 연인 사이에 벌어진 간극으로 결국은 살인이라는 끔찍하고 험난한 결과가 이어지게 되는데…. 2014.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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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도대체 어떤 상황이 되면 다른 사람을 죽이고 싶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일까. 추리소설을 읽다 보면 늘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대부분의 범인은 타고난 살인자는 아니다. 그래서 그 동기가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그 동기를 전혀 짐작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때로는 그 동기가 너무 복잡해서 하나로 연결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노리즈키 린타로의『잘린 머리에게 물어봐』가 바로 그런 작품이었다. 가와시마 이사쿠는 살아있는 몸을 석고로 뜨는 라이프캐스팅에 의한 인체조각를 하는 전위조각가이다. 뛰어난 작품성으로 한때는 큰 이슈가 된 인물이었으나 일본의 시걸이란 말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도한 작업이 평론가들의 혹독한 비판을 받으면서 작품 생활을 접고 조용히 은거하던 그가 10년만에 친딸인 에치카를 모델로 한 라이프캐스팅 석고상을 만든다. 그러나 작품이 완성되자마자 그는 쓰러지게 되고 결국 며칠만에 세상을 뜨고 만다. 가와시마의 장례식이 끝난 후, 석고상의 머리가 깨끗하게 절단된 채 발견된다. 도대체 누가 석고상의 머리를 잘라간 것일까. 이것은 모델이 된 조각가의 딸 에치카에 대한 살인 예고인것일까. 가와시마 이사쿠의 동생 아쓰시는 이 문제를 추리작가이자 탐정인 노리즈키 린타로에게 의뢰하게 된다. 수사 초기부터 가와시마 이사쿠의 전시회를 담당한 큐레이터 우사미 쇼진이 사사건건 끼어들어 노리즈키 린타로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지만 우사미는 의외로 이 사건과 가와시마의 석고상에 대해 통찰력있는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그러나 석고상의 머리를 잘린 범인이 밝혀질 때 즈음해서 조각가의 딸 에치카가 실종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목만 남은 사체로 발견된다. 도대체 에치카를 노린 것은 누구인가. 추리 소설에서 목이 잘린 사체라는 것은 일종의 트릭을 의미한다. 사체의 신원을 밝히기 어렵게 만들기 위한 전형적인 수법이랄까. 굳이 사체를 숨기고 싶으면 목을 자르지 않고 사체 자체를 파묻거나 수장시키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목을 잘라 머리만 들고 가게 된다. 잘린 머리는 작기도 하거니와 인간의 사체를 전부 옮기는 것보다 힘이 덜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때로는 다른 이유로 머리가 잘리기도 한다. 내가 전에 읽었던 다른 작품에서는 사체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머리를 잘랐던 경우도 있었다. 머리만 놔두고 몸통만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런 경우 사체의 신원이 밝혀지든 말든 상관없단 태도였달까.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사체의 머리는 신원확인을 하기 어렵게 하기 위해 잘리게 된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굉장히 미묘했던 것은 목이 잘린 석고상의 경우 머리가 발견되지 않았고, 에치카의 경우 머리만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에치카의 신원을 숨기고 싶었다면 머리를 숨겨야하는 것이 마땅한데 오히려 머리만이 발견되게끔 만들었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숨겨져 있는 것일까. 그리고 석고상의 머리는 왜 발견되지 않은 것이며, 우사미는 몸통만 남은 석고상을 왜 빼돌린 것일까. 우사미의 경우 그가 큐레이터란 것을 생각해볼 때 몸통만 남은 석고상을 빼돌린 이유가 설명된다. 이 작품이 작가의 유작인만큼 그는 전시회란 것에만 집중하고 있었니까. 이런 걸 보면 예술하는 사람들이란... 이런 말이 절로 나온다. 사건 수사의 단서가 될 수도 있는 증거품인데 몰래 빼돌리고 숨기기까지 하다니 말이다. 책을 펴들고 등장인물에 대한 설명을 읽으면서 이 책의 미스터리에는 가족문제를 비롯해 상당히 복잡한 인간관계에서 나온 갈등이 포함되어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가와시마의 가족관계는 꽤나 복잡했기 때문이고, 수사가 진행되면서 점차 드러나는 가족의 비밀은 머리를 어질어질하게 할 정도로 복잡기묘하기 때문이다. 생각이상의 것이 숨어 있었달까. 또한 예술가와 그의 작품이 관련되어 있는 만큼 그쪽에 관한 이야기에도 집중할 수 밖에 없다. 특히 우사미 쇼진이 내놓은 메두사의 머리에 관한 의견이라든지 하는 것은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우사미 쇼진은 무척이나 흥미로운 인물중의 하나인데 처음에는 분명이 노리카즈에게 큰 도움을 주는 인물이지만, 결국 사건보다는 예술이란 것에 더 집착하는 사람이다 보니 사건을 더 꼬이게 하는 인물이 되기도 한다. 그외에도 에치카를 스토킹하던 인물인 도모토도 에치카의 실종과 관련한 행적이 곳곳에서 드러나기 때문에 그에게도 신경을 잔뜩 기울일 수 밖에 없다. 이렇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우사미를 비롯해 노리카즈를 빼놓은 인물 모두가 수상쩍어지기 시작한다. 아버지는 현직 경찰, 아들은 추리소설가이자 명탐정이라는 노리즈키 부자의 이야기도 무척 흥미롭다. 아들 노리즈키는 처음에 아버지에게 이 사건에 대해 숨기고 독자적인 수사를 펼치지만 에치카가 실종된 후 목만 남은 사체로 발견됨에 따라 아버지와 공조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노리즈키는 수없이 많은 난관에 봉착하기도 하고 수수께끼의 중심에서 길을 잃기도 한다. 명탐정이란 수식어가 어울리지 않게(?) 많은 실패를 거듭한다고 할까. 하긴 노리즈키 역시 사람이니 실패도 할 수 있는 것이고, 딱 보면 척이다 라는 천재도 아니다 보니 수많은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을 하나하나 검증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직접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증거를 찾기도 하는 등 노리즈키의 수사는 매우 인간적이다, 라고도 할 수 있다. 이렇게 말하면 스포일러가 될 수 밖에 없겠지만, 이 작품의 경우 살아있던 사람의 머리보다 잘린 석고상의 머리가 더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우사미 쇼진의 해석도 흥미롭지만, 그 뒤에 감춰진 비밀이 더 흥미롭기 때문이다. 이는 후반부에서 충격적인 한마디로 정리되는데, 이는 이보다 앞선 노리즈키의 꿈이 복선이었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깨닫게 된다. 노리즈키의 꿈은 예지몽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심오한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오, 이게 그런 의미였군, 이란 말이 저절로 나왔달까. 그외에도 무심코 넘기기 쉬운 것들이 모두 복선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은 책의 결말부에서이다. 그렇게 보자면 작품 전체에 섬세하고 촘촘한 복선이 깔려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반전도 준비되어 있다. 오해가 만든 증오에서 나온 일그러진 관계, 그리고 그것이 과거로부터 이어져 되풀이되면서 또다른 참극의 무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 사건의 범인은 이제까지 읽었던 작품들 중에 가장 흉학한 범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기본적인 인간성이 결여되었다고 보여진다. 속물적이며 즉물적이라고 할까. 『잘린 머리에게 물어봐』는 겉으로 드러나는 사건은 연쇄살인도 아니요, 단 한명의 희생자만 나오는데다가, 진행이 좀 느린 편이라 초반부는 약간 지루한 감이 있지만, 중반부를 넘어가면서 속속들이 밝혀지는 사건의 인과관계에 집중하다 보면 그 치밀한 구성에 감탄하게 되고 인간적인 탐정 노리즈키가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을 논리적으로 증명해나가는 과정, 그리고 마지막에 그 진실을 한꺼번에 떠뜨려내는 부분은 결말이 주는 속시원함과 더불어 사건 속에 감춰진 어둠을 직시하게함으로써 비뚤어진 인간관계와 구제할 수 없는 인간성에 대한 씁쓸한 마음도 함께 느끼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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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노리즈키 린타로'의 대표작중 한 편을 읽었다. 그의 작품을 처음 접한 것은 한국과 일본의 추리작가협회가 교류의 일환으로 출간한 단편집을 통해서였다. '두 동강이 난 남과 여'란 제목으로 1999년에 출간된 책에는 일본 추리작가협회가 추천한 11편의 미스터리 단편이 실려 있었다. 당시에는 생소한 이름이었지만 지금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작가들인 '히가시노 게이고', '노나미 아사', '고이케 마리코', '나츠키 시즈코' 등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그 중에서도 그가 쓴 '두 동강이 난 남과 여'가 표제작이었다.
대강의 내용은 호텔 방에서 절단된 여자 상반신에, 남자의 하반신이 붙어 있는 엽기적인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문제의 핵심은 시체의 나머지 몸체는 어디에 있으며, 어떤 방법으로 현장을 벗어났느냐 정도인데 너무 기계적인 트릭이 사용된 탓에 현실성이 떨어진 작품의 수준에 몹시 실망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즈음 '아야츠지 유키히토'의 '관 시리즈'를 읽고 미스터리로서의 재미와 수준에 깜짝 놀라 이른바 '신본격파' 작가군에 대한 관심과 함께 일부 환상도 있었는데, 대표주자라는 작가의 단편이 다른 수록작 보다 떨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의 작품들은 좀처럼 국내에 소개되지 않아 그 때의 실망감에 말미암아 그는 '기계적인 트릭을 우겨 넣는 설익음'이란 인상으로 남았다.
하지만, 이 소설은 이러한 선입견을 깨끗이 날려 버리는 수준작이었다. 신본격파의 수작들이 그러하듯 정통 미스터리의 스타일을 한껏 살리면서 반전, 트릭, 의외성 등 미스터리의 장르적 공식에도 충실한 작품이다. 작가의 필명과 동명인 탐정이 등장하는 것도 고전적인 느낌을 주어 좋았다. '아야츠지 유키토'나 '아리스가와 아리스'도 마찬가지지만 신본격파 작가들은 어린 시절부터 정말 미스터리를 정말 좋아해온 사람들이라는 느낌이 작품 속에 베여 있어 자연스러운 친근감이 생긴다
살아 있는 몸에 직접 석고를 발라 본뜬 조각을 만드는 '라이프 캐스팅'이라는 기법으로 유명한 조각가가 오랜 공백을 깨고 친딸을 모델로 한 작품을 준비한다. 미술계의 화제가 되고 있는 와중에 조각가는 병이 악화되어 세상을 떠난다. 그런데, 그 조각상의 머리 부분만 잘려서 도난당하는 괴이한 일이 발생하고 조각상의 모델까지 실종되는 사건을 '린타로'가 해결한다는 것이 대략적인 줄거리이다.
이 소설이 뛰어난 이유는 '논리'와 '반전'에 있다. 차근차근 논리적인 소거법에 따라 범인이 좁혀지고 결말에서 '린타로'가 조각상의 머리가 잘린 이유와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부분은 '압권'이라 표현이 아깝지 않다. 정통적인 미스터리 스타일을 고수하기 때문에 '잔 재미'는 덜하지만 이야기 전반을 통해 공정한 논리게임을 극한으로 밀어붙이는 작가의 뚝심은 높이 살만하다. 요즈음 일본 미스터리의 러쉬 속에서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식으로 이 작품도 기대에 비해 다소 실망했다는 독자들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올해 나온 미스터리 중에서 손 꼽히는 추천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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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시마 이사쿠에게는 일본의 조지 시걸이라 불렸던 시절이 있었다. 사람의 몸에 직접 석고로 형태를 떠서 석고상을 만드는, 조작가의 삶을 살았던 시절이다. 자신의 임신한 아내를 모델로 만든 ‘모녀상’이라는 이름의 작품으로 상당한 명성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석고상 얼굴에서 눈을 표현함에 있어서 다양한 시도를 하게 되고, 그와 함께 남겨진 실패로 많은 비판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결국에는 조각가가 아닌, 작가로서의 삶을 살아간다. 그랬던 그가 돌연 컴백을 선언한다 ㅡ. 자신의 딸 에치카를 모델로 ‘모녀상’시리즈의 완결을 짓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시작한 작품은 거의 마무리되지만, 이사쿠는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남겨진 것은 머리 없는 조각상이다 ㅡ. 조각상의 머리는 어디로 간 것일까?! 그리고 왜 머리만 가져간 것일까?! 결국, 이 질문은 잘린 머리에게 물어봐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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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린 머리에게 물어봐』는 본격 미스터리 소설이다 ㅡ. ‘제5회 본격 미스터리 대상’,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위’, ‘본격 미스터리 베스트10 1위’, ‘주간 문춘 미스터리 베스트 2위’라는 엄청난 수상 경력을 가진 작품이다 ㅡ. 이 작품의 작가는 ‘노리즈키 린타로’이다. 그리고 이 작품의 주인공도 ‘노리즈키 린타로’이다. 단지, 작가가 미국 추리소설의 거장이라는 ‘엘러리 퀸’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 스타일을 따라가는 것일까?! 엘러리 퀸이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들어봤으므로 지금 당장에는 그 어떤 판단도 내릴 수 없을 것 같다. 어쨌든 이야기는 ‘노리즈키 린타로’라는 탐정에 의해서 진행되어간다 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