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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한겨레신문이 창간되었을 때부터 구독을 했다. 리영희, 송건호라는 라는 이름 때문이다. 신문은 아직 촌티를 벗지 못했지만 이 시대의 아픔과 진실이 가장 많이 묻어난다고 나는 믿고 있었다. 내 주변의 선배들이나 친구들은 한겨레신문을 본다는 것만으로 나를 삐딱하게 봤다. 어느 날 새벽에 배달된 한겨레신문을 새벽예배를 드리러 오셨던 장로님이 발견하시고, 담임목사님에게 “빨갱이 신문을 보는 친구가 있으니 보지 못하게 하라”고 건의를 하셨다. 담임목사님도 “문제를 일으킬 필요가 없으니 신문구독을 정지하라”고 하셨다. 그 당시에 한겨레는 일부 계층들에게는 빨갱이 신문이었다. 그렇게 낙인찍히는 것에 일조하신분이 리영희 선생이다. 군사정권에 의해 총 아홉 번 연행되고 다섯 번 구치소에 가고 세 번 재판받고 언론계와 대학에서 두 번씩 쫓겨난 기록적인 경험을 가진 리영희 선생에 대해 일부 계층은 ‘빨갱이 새끼’라고 불렀다. ‘빨갱이 새끼’였던 리영희 선생이 지난 5일 향년 81세로 숨을 거두었다는 뉴스를 보고 안타까움이 밀려온 것은 또 한 분의 정신적 지주를 잃었다는 슬픔 때문이다. 우리 시대에 리영희 선생은 ‘실천하는 지성’이었고 또 '사상(思想)의 은사'였다. 종로의 ‘반디앤 루이스 서점’에는 초라하게 리영희 코너가 마련되어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외면하고 있다는 것을 인터넷 뉴스를 통해서 알았다. 이 시대의 젊은이들이 리영희를 기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나도 민주화된 시절에는 리영희를 읽지 않았다. 세월의 흐름도 있겠지만 시대의 변화는 리영희를 잊게 만들었고 이 정부에 들어와서 다시 리영희가 기억되는 것은 민주주의가 퇴보한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리영희를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손에 든 것이 ‘리영희 프리즘’이다. 이 책은 리영희 선생의 팔순(2009년 12월)을 기념하기 위하여 기획된 책이다. 그들은 이 책을 리영희에게 바친다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리영희가 글을 쓴다는 것은 우상에게 도전하는 행위인데 그에게 헌사를 한다면 이미 리영희도 우상화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렸을 때 프리즘을 가지고 놀던 기억이 있다. 빛을 굴절시키면 무지갯빛 색깔이 영롱하게 나타나 그 아름다움에 반했다. 리영희라는 아름다운 색에 반한 사람들, 그를 이 시대의 진정한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싶은 10명의 사람들이 리영희의 삶과 사상을 다양한 관점으로 돌아보면서 쓴 책이 바로 리영희 프리즘이다. 리영희 프리즘에 의해 나온 색깔들은 그의 사상, 책읽기, 전쟁, 신, 영어, 지식인, 언론인, 사회과학, 젊음이 이해하는 리영희의 사상, 그리고 리영희와의 대담등 10개의 소제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명권이 바라본 리영희의 예쁜 색깔은 리영희가 사상의 은사라는 것이다. ‘생각한다는 것과 대비되는 것이 바로 우상이다. 우상은 생각 없음, 또는 생각하지 못하게 함이라고 할 수 있다. 리영희가 어떤 것을 우상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사람들이 그것을 숭배한다는 데 있다기 보다 그것에 대해 따져 묻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는데 있다. 그것은 낡은 습관처럼 사유되지 않은 채 무심코 지나치는 것이 될 수도 있고 종교적, 도덕적 금기로 인해 사유가 금지된 것일 수도 있고, 정치적 이유에서 사유가 처벌의 대상이 되는 것일수도 있다. 이런 이유들은 자주 섞이고 결탁해서 하나의 사유 불가능 체제를 구축한다. 우상이란 어떤 면에서 ‘대상’이라기보다는 ‘상태’ 더 나아가서 하나의 체제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한편 생각할 수 없는 대상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생각이 일어나지 않은 상태, 생각을 가로 막고 불온시하는 체제라고 할 수 있다.‘ (17-18쪽) 같은 시대의 지성인이었던 이어령이 ‘우상의 파괴’라는 논쟁적인 글을 써서 혜성과 같이 등장했을 때 이어령의 우상은 확실한 실체였다. 그 당시 문단의 거목이었던 서정주, 김동리 등에 대한 과감한 공격이 많은 사람들을 통쾌하게 하고 공감대를 가져왔다는 사실을 이어령의 글을 통해 알았다. 나도 우상은 실체인줄 알았다. 기독교에서도 우상 그러면 눈에 보이는 실체를 말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고명권도 언급했지만 우상을 ‘생각 없음’이라고 한 정의는 충격이었다. 생각 없이 사는 것은 우상을 섬기고 사는 것이다. 특히 우상이라는 단어는 기독교인들이 가장 혐오하는 것이다. 구약성경 사사기에는 기드온이 몰래 가서 우상인 아세라 목상을 깨트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지금 이 시대에도 우상을 문자적으로 해석을 해서 갈등을 일으키는 기독교인들이 있는데 이것은 생각 없음에서 나오는 맹목적인 믿음이다. 리영희에 의하면 우상을 깨트리는 사람들이 스스로 우상을 섬기고 있는 것이다. 리영희를 통해 받은 예쁜 빛깔의 색은 바로 인간은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리영희를 존경하고 그를 ‘사상의 은사’ 생각의 스승‘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가 훌륭한 정보나 견해를 들려주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우리를 생각하게 했기 때문이다. 이점에서 스승이란 우리에게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존재. 우리를 각성케 하는 모든 존재에게 부여될 수 있는 이름이다.’(16쪽) 젊은 시절 내 친구의 형님은 일부러 동국대학을 다녔다. 그곳에 양주동이라는 스승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식을 파는 선생님들은 많을지 모르지만 아비와 같은 스승이 많지 않은 현실에 리영희는 좋은 스승이었다. 왜냐하면 리영희를 통해 지식이 아니라 각성을 전달받았기 때문이다. 그의 글을 읽으면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었다. 리영희가 가지고 있는 힘이었다. 책은 읽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을 변화시켜야 한다. 좋은 책은 생각하게 하는 힘이 있다. 나아가서 나를 변화시킨다. 이렇게 변화된 사람이 많기 때문에 리영희를 사상의 스승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어떻게 리영희의 글이 어떻게 우리를 각성 시킬까 천정환은 그 이유를 리영희의 독서에서 발견했다. 리영희는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아버지가 주문해서 본 일본잡지를 읽기 시작했고 소년과 청년기 시절에는 웬만한 문학 전공자보다 더 많은 문학작품을 읽었다. 청장년기 시절에는 국제관게 전문 저널리스트, 사회과학자로서 리영희는 ‘전공독서’를 시작한다. 이때부터 그는 보수적인 책과 진보적인 책들을 아울러 읽어 나갔다. 이때 그가 읽었던 대부분의 책들은 영어, 일어, 프랑스어로 된 외국 책이었다. ‘자기 생과 앎을 소명을 지닌 프로젝터로 만드는 것. 또한 그것을 늘 또렷이 스스로 의식하고 스스로 설정한 지적과제를 충일하게 채워 나가는 책읽기다. 그럴 수 있다면 공부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하는 평생의 내 공부가 되는 것이다. (43쪽) 리영희는 책만 많이 읽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읽은 책들을 잘 정리해 놓았다, 이것은 그가 얼마만큼 책을 읽고 생각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하나 아쉬운 것은 그의 종교관이다. 이찬수는 이 책에서 리영희의 종교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예수를 믿는다면서 대부분 교리를, 성서를, 예수의 근본정신을 피상적으로만 이해하거나 자기중심적으로 오해한다. 예수를, 진리를 이기적 욕망 충족의 수단으로 착각한다’(87쪽) 기독교에 대한 이찬수의 비판은 정당하고 또 우리의 현실이다. 예수를 도덕적인 인물로 보고 그의 삶을 배우고 의미를 찾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선행해야 되는 것이 예수를 나의 구원자로 보는 신앙고백이 있어야 한다.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예수나 붓다가 같은 성자로만 보이기 때문이다. 리영희 선생도 이런 관점을 가지고 있다. ‘그의 종교 비판은 인간의 종교성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니고 인류의 스승 예수나 붓다 같은 분에 대한 것은 더욱 아니다. 그의 비판은 제도화된 종교를 향한 것이되, 예수나 붓다 같은 분의 가르침이 구현되기는커녕 이기적 욕망이 진리의 이름과 혼동되고 주객과 본말이 전도된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담긴 비판이다.(98쪽) 믿는다는 것과 안다는 것은 다르다. 종교는 분명한 신앙의 대상을 가지고 있고 이 대상이 없으면 그저 인류의 스승으로 보일 뿐이다. 문제는 인류의 스승으로 보고 있는 분의 삶이 신앙의 대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보다 더 깊고 더 올바르다는 생각이 들 때다. “이 아이러니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 믿는 사람들에게 남겨진 과제다 이 책은 리영희를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개론서와 같다. 마치 징검다리를 건너는 것과 같은 즐거움이 있다. 왜냐하면 한 인물을 흠모하며 다양한 관점으로 본 저자들의 다양한 생각에 공감이 가고 나도 그들 중에 한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이 책의 마지막 김현진의 인터뷰는 인간 리영희를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특히 이 말 가슴에 새기고 싶다. 'Simple life, high thinking' (생활은 간소히, 하지만 생각은 높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와는 정 반대로 생각은 간소하고 생활은 높은 것을 바랄 것 같다. 이제 친숙했던 사람들의 이름이 내 주변에서 추억속의 인물이 되는 것을 보면 나도 참 인생을 많이 살았다는 은근한 서러움이 있다. 삶이 나이에 규정되지 않는 것이라면 삶은 언제나 새로울 수 있다. 그 새로운 삶은 'Simple life, high thinking'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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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리영희 선생을 처음 만난건 70-80년대 학번이 다 그러하듯 신입생 시절이었다. 남모를 방황에, 학교에 다닐 흥미도, 의미도 찾지 못한체 그저 서성이고 있는 나에게 선배들은 은밀(?)하게 다가왔고, 그래서 어쩔수 없는 강요(?)에 의해 읽은 책이, 이 책에서도 언급되는 [우상과 이성] 그리고 [전환시대의 논리] 이었다. 그 다음은.. 나도 그 책을 읽은 다른 사람들과 똑 같았다. 엄청난 충격과 함께 방황은 더 깊어졌던 것 같다. 그렇게 학교생활은 지나갔고, 강산이 두서너번은 변할 세월이 흐른 얼마 전 [대화]를 읽으면서 다시 한번 그를 생각해 볼수 있었다. 이책은 비판적 지성의 상징으로 불리는 리영희 선생의 팔순을 기념하기 위하여 기획되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리영희 선생에게 바치는 책은 아니라고 한다. 그를 사상의 스승으로 부르는 사람들은 리영희 선생이 글을 쓴다는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행위임을 알기 때문에, 그가 달가워하지 않을 것 이란 걸 알고 있단다. 리영희에 있어 인간의 반대말은 노예이다. 이책은 인간 리영희에 관한 것이 아니고 인간 리영희의 프리즘을 통하여 리영희의 인간에 관한 고민을 해보기 위한것 이라고 서문에서 리영희 선생을 사상의 은사, 생각의 스승으로 부를 수 있다면 그것은 그가 우리에게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존재, 우리를 각성케 하는 존재였기 때문이라고 70년대 후반, 80년대 초반의 학생, 청년들은 권력자들이 은폐해 놓은 어떤 진리를 리영희 선생의 책에서 발견하고 자유로운 존재들이 되어갔고, 세계와 자신에 대해서 자기의식을 가진 존재들이 되어갔다고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는 이야기 하고있다. 그들이 자유로운 존재가 될수 있었던 것은 물론 리영희 선생의 책이 기폭제가 되었든. 아니든 간에 그들은 많은 책을읽고 많은사유를 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우상은 사라지고 이성은 갈곳을 잃고 방황하는 이때에, 또 우리가 학생에서 직업인이 되고 교양에서 전문으로 넘어갈 때, 혹은 청년에서 장년으로 넘어갈 때, 우리의 앎과 독서는 길을잃고 위기에 처하기 십상이라고 한다. 이렇게 밥벌이와 기성질서의 노예가 될때 리영희 선생은 책읽기가 어떤것 이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고 한다. 그것은 자기생과 앎을 스스로 의식하고, 스스로 설정한 지적과제를 충일하게 채워나가는 책읽기 여야 한단다. 또한 이 책에는 한국전쟁 당시 7년동안 군에 복무한 리영희 선생은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을 어떻게 보았는지에 대하여 본인이 마음속으로는 예수를 믿고, 석가를 믿지만, 교회와 절, 즉 교리와 제도에 갇힌 종교를 비판하며 보편적 종교정신을 강조하는 리영희 선생의 종교관을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는 질적으로 더욱 나빠졌다고 한다. 권위주의 시대처럼 너무나 명백한 부정의 때문에 정의가 쉽게 파악되는 시대는 아니지만, 삶의 질의 악화는 정의가 버려졌음을 증언하고 있다고 그 밖에도 이 책에는 기자의 존재 가치와 정신에 대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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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80년대 한국의 청년들, 그리고 대중의 사상적 은사였던 이영희 선생을 왜 지금 다시 논의하여야만 하는가? 다시 말해 ‘의식화’로 대변되는 정신의 혁명, 대중의 깨어남이 요구되는 까닭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이 당위의 질문에 대하여 이 저술은『전환시대의 논리』,『우상과 이성』으로 상징되는 잠자던 대중을 깨웠던, 즉‘깨어난 자들의 끊임없는 증식’을 통해, 도저히 무너뜨릴 수 없을 것 같던 독재의 암흑이란 철벽을 부수고 일궈냈던 민주화의 성취가 오늘에 다시금 어떠한 의미로 다가서는지를 세대와 분야를 아우르는 인물들의 담론으로 펼쳐내고 있다.
여기에는 인권이 유린되고, 자유는 억압되었으며, 밀실로 붙들려가 폭력에 시달리고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나가는 민주주의의 실현은 요원하기만 하였던 악독한 독재정권이 지배하던 시절, 역사의식도 없으며, 세계사적 흐름을 읽지 못하던 무지몽매한 지배계급의 폐쇄적 폭압의 시대에나 필요했지 오늘에 새삼스레 대중의 집단적 각성, ‘의식화’의 논리를 꺼내드는 것은‘꼰대’들의 구시대적 발상이라는 냉소도 있다. 더구나 온통 물화(物化)되어버린 사회, 당장 밥벌이라는 생존의 문제에 허덕이고 있는데 무슨‘자유’타령이냐, ‘자본주의에 편입’되기 위해 발버둥치기에도 모자란 형국이란 말이다. 라는 88만원 세대의 항변도 있다.
그러나 잠시라도 소위 자기 계발이란 것을 소홀히 하면 경쟁에서 패배할 가능성이 높으니‘자본의 도구’가 되는 종속을 택하는 것이 옳다는 이러한 단순화된 양자택일의 논리는 왠지 설득력을 갖추기엔 미흡하지 않은가? 당장은 안전한 자신의 보위가 되는 듯 보이지만, 이는 결국 부정의와 불평등, 비인간화, 인간소외를 고착화시키고 자본의 노예로 길들이려는 지배계층에 굴종하는 삶을 완성하는 것 이상이 아닐 것이다. 오늘의 우리사회를 지배하는 신자유주의라는 무한경쟁 시장의 논리, 즉 시장만능의 이데올로기는 경쟁의 원리, 약육강식의 원리, 탐욕의 원리만 작동되고, 이를 위해서는 인권, 자유, 민주주의는 기꺼이 희생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국가경쟁력 제고라는 미명하에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자유를 부인하던 군부독재 시절로 역진된 형국과 한 치의 차이도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무감각, 무의식을 자처하고, 지배자들에게만 가치판단을 맡길 때, 어느덧 회복할 수 없이 잘 길들여진 비인간화된 노예의 삶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불평등, 억압, 배제와 차별이 고착화된 사회, 작은 물질에 자신의 자유를 내어준 사람들이 기대할 수 있는 사회의 모습일 것이다.
‘완전한 사고 정지증’에 걸린 듯한 오늘의 사람들에게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집단적 각성, 의식화가 지닌 의미의 오늘에서의 재해석을 필두로, 신자유주의적 세속(反)윤리의 틀을 벗어나 경쟁의 바깥으로 탈주하는 것으로서의 책 읽기,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이 지니는 역사적 의미의 이해를 통한 전쟁의 파렴치한 속성들 - 권력과 민중 격차의 극대화, 제국주의의, 계급원칙의 적나라한 불평등... -에서부터 “사대주의에 기초한 허구적 주류의식과 무지몽매함”으로 한국전쟁의 참화와 분단국가의 서러움을 겪고서도 전쟁에서 완전히 벗어날 길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오늘날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의 또다른 냉전체제의 병리현상을 지적하기도 하며, 정말 기형적인 한국 기독교의 본말이 전도된 제도 종교로서의 비판과, “예수를, 진리를 이기적 욕망충족의 수단으로 착각”하여 “욕망에 마음을 굽히고 돈에 허리를 굽히는 행위가 사실상 우상숭배라는 사실에는 아랑곳하지 않는”종교인에 대해 생각한다.
한편, 영어를 강조하는 상상력빈곤의 이 사회의 진정한 속셈인 “지배세력의 입장에서 볼 때 영어가 사회적 차별을 정당화 할 수 있는 효과적 수단”이라는 통찰과, 창조적 사유의 자리가 없는 실용영어가 지니는 허위, 그리고 무엇보다 원어민 교육을 받아 혀 꼬부라진 그럴듯한 발음에도 정작 “비판적이고 포괄적인 사고력이 없는” 맹탕의 영어로 일그러진 한국인의 초상을 말한다. 그럴듯한 발음의 영어를 구사하지만 사유와 지식이 없는 무식한 영어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점이다. 특히, 지식인에 대한 사회적 책무가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은 이 저술과 이영희 선생의‘배우게 하는 사람’이라는 스승의 개념과 연결되어, 학벌세상의 승자인 우리 사회의 지식인들을 향해 매운 회초리를 든다. 삶과 앎이 불일치하는 한국 지식 사회의 고질병은 물론, 탈근대적 과제와, 여전히 매우 질 낮은 민주주의와 같은 근대적 과제까지 중첩된 한국사회에서의 합당한 지식인의 역할을 논의한다. “현학의 하늘에서 대중의 땅으로 내려와 그곳에서 지식인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체득해야 한다는 권유”는 ‘한나 아렌트’가 말하는‘자각한 파리아(pariah,주변인)의 관점’그것으로서, 지식인의 계몽자로서의 기능을 강조한다.
극단적인 신자유주의와 시장지상주의를 밀어붙이는 이 정권은 점점 대중의 사회안전망을 축소하고 개인의 행복이나 복지가 모조리 개인의 책임이 되는 사회로 퇴행시키고 있다. 또한 교육은 “‘약자를 보호하자’가 아니라, 심지어‘강자가 어떻게 약자를 더 잘 먹을 수 있을까’를 가르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옛날 옛적부터 잘 먹고 잘산 놈들이 제 권리를 잠시 빼앗겼는데 도로 찾으려 일어나는, 반동이 일어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인 것은 역사의 경험이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진정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평등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고 보편적 복지가 높아지고 생산성도 높아질 수 있도록 가치관, 인간관, 세계관을 개량하는데 노력을 경주하여야 할 것이다. 눈앞의 풍요 속에 매몰되어 진정한 가치들이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악덕한 제도, 정치, 사상에 굴종하지 않는다는 저항적 인간을 목표로 하는 자기의식의 전환을 이야기하는 이 저술은 그래서 지금에 다시 이영희를 말하고, 집단적 깨어남을 말하여야 하는 필연적 요구를 담고 있다.
오래전 대학신문사에서 독재정권의 말로를 지켜보고, 그리고 더욱 악질의 군사정권이 들어서는 폭력의 시대에 이영희의 저작들을 읽고, 민주화운동을 취재하며 학우들과 울분을 토해내던 그 시절을 떠올린다. 더 이상 이러한 집단 의식화를 얘기하는 세상이 아니기를 바랐건만 소비지상의 물화된 신자유주의라는 우상으로 바뀐 대상이 30년 전으로 사회를 역진시키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역사와 철학, 문학과 예술 등 다방면의‘특수 지식인’들이 바로 이러한 각성을 위해 대중을 향한 노력을 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변혁은 반드시 올 것이란 말을 되새기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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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 프리즘>은 고병권, 김동춘, 안수찬 등이 리영희 선생의 팔순을 기념해 기획한 것으로 선생의 삶과 사상을 통해 21세기 오늘날의 '우상과 이성'을 통찰하고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엮은 책이다.
깨어남이 고통스러울지라도
영화 <매트릭스>에서 모피어스는 네오에게 '빨간 약'을 먹을 것인지, '파란 약'을 먹을 것인지 선택하라고 한다. '빨간 약'을 먹으면 그동안 진짜이라고 믿어왔던 세계가 실상은 가짜이며 기계들이 만들어 놓은 매트릭스에 불과하다는 '진실'을 마주치게 되겠지만 지금보다는 훨씬 더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반면에 '파란 약'을 먹으면 영원히 진실을 알지 못하는 대신 '가짜 세계'가 선사하는 행복한 환상 속에서 살게 된다. '빨간 약'을 선택한 네오는 기계들이 만들어 놓은 가짜 세계의 꿈에서 깨어나 진실을 인식하게 되고, 기계에 저항해 인간의 진정한 자유를 찾기 위한 고단한 투쟁을 시작한다.
진실이 늘 천사의 얼굴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옛말에 '모르는 게 약'이라고, 진실은 대개 고통스럽다. 때문에 진실을 찾고 지켜내는 길에는 많은 희생이 따른다. 심지어는 죽음까지도 각오해야 한다. '생각을 깨운다'는 것은 이러한 진실을 찾아내고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진실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살아나감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진정한 각성이 일어나도록 하는 것이다. 비록 그 과정이 고통스러울지라도 말이다. 리영희 선생은 "사람들의 잠을 깨워야 하는가, 그 깨어남이 고통스러울때 조차"라는 화두를 끌어안고 온 몸으로 치열하게 시대의 어둠을 헤쳐왔다.
다시 '리영희'다
선생은 반공, 반북, 국가주의라는 '우상'의 맞은 편에 '이성'을 놓으며 평생을 싸워왔고 투옥과 해직을 반복해가며 고통을 받았다. 1990년대 들어 "내가 할 역할은 다 했고 남은 역할은 내가 변치 않고 그 자리에 그 모습으로 있어 주는 것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어."(<대화>, p695)라며 은퇴 아닌 은퇴 선언을 하긴 했으나, 투쟁과 극복의 대상으로 여겨졌던 '우상'은 그 겉모습만 조금 바뀌었을 뿐 아직도 건재하다. 인간의 이성과 자유를 억압하는 '우상'이 존재하는 한, 비록 선생은 가셨지만 남은 이들은 선생을 그리워하며 '리영희'라는 이름을 현실 세계에 불러낼 것이다.
생활은 간소하게, 하지만 생각은 높게
<리영희 프리즘>의 마지막 장에서 선생이 생전에 남긴 마지막 인터뷰가 실려있다. (이 책이 가장 최근에 출간됐으니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마지막 인터뷰일 것이다.)
선생은 미국식 자본주의를 숭상하는 한국의 현실에 그저 참담해질 뿐이라며 새로운 미래에도 갈등은 있겠지만 변화와 발전은 반드시 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동구 사회주의권 몰락 이후 프란시스 후쿠야마가 말했던 '역사의 종언'에 동의하지 않는다면서 끊임없는 갈등 속에 펼쳐지는 새로운 미래가 곧 역사의 변증법이라고 했다.
90년대 학번인 나는 사실 선배들 세대처럼 선생의 글을 통해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까지는 받지 않았다. 87년 민주화 이후 이른바 포스트 모더니즘이 유행하던 그 시기, 90년대 중후반에 대학을 다닌 내 또래들에게는 리영희 선생보다는 서태지의 등장과 교실 이데아 같은 노래들이 더 큰 문화적 영향을 미쳤을 터였다. 오히려 뒤늦게 접한 <대화>같은 책을 통해 어둠의 시대를 헤쳐 온 시대의 스승으로서 그의 삶을 알게 되고 존경하게 됐다. 그는 삶이 곧 글이었고, 글이 곧 삶이었다. 끊임없이 저항하고 투쟁하며 지식인으로서의 책무를 다하고자 했던 그의 삶 자체가 후대들이 본받아야 할 표상이 아닐까.
선생은 젊은이들에게 "생활은 간소하게, 하지만 생각은 높게"가지라고 충고한다. 혁명이 필연적이라고는 하나 저절로 오지는 않는다. 자본주의적, 물신주의적 세계관과 결별하고 부단한 의식의 혁명을 이루어야 현실의 혁명도 온다. 지식과 정보가 아닌 '각성'을 주는 사람. 생각하게 만드는 선생은 진정 '사상의 은사'다. <리영희 프리즘>의 부제처럼 '리영희'라는 이름 자체가 '우리 시대의 교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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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인들에게 ‘사상의 스승’으로 펼가되고 있다는 사실은 당사자에게 대단한 영광이 아닐 수 없다. 일제 강점기와 해방 그리고 한국전쟁과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졌던 독재정권 하에서 치열하게 살았던 리영희를 일컬어 사람들은 ‘사상의 스승’으로 칭하고 있다. 그는 신문기자와 대학교수로서 항상 ‘현장’을 주목하면서, 평생 동안 끊임없이 '자기 성찰과 실천'의 삶을 살아왔다. 이 책은 리영희의 팔순(2009)을 기념하여 다양한 방면에서, 그가 남겼던 사상의 궤적을 추적하고 그 의미를 되짚어보는 작업의 결과물이라고 하겠다. 이 책이 출간된 후 얼마 되지 않아 당사자가 작고(2010)했지만, 그는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친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모두 10명이 참여해서 출간된 이 책의 부제는 ‘우리 시대의 교양’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리영희 선생의 팔순을 기년하기 위해 기획’했지만, 책의 서문에서는 정작 당사자에게 ‘바치는 책은 아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단지 ‘사상의 스승’으로 여기는 리영희 선생의 삶 혹은 남긴 글에 대한 필자들의 생각을 풀어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그가 ‘비판하고 저항하던 시대는 바뀌었지만, 권력과 우상은 더욱 노회해져 인간의 자유롸 이성을 억압’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현재’의 시대를 필자들이 주목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자본주의의 가치만이 중시되고 있는 지금 현재의 ‘물신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우상숭배자들이 오히려 보편적 진리에 대한 존중을 우상숭배로 몰아’가는 시대라고 규정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리영희라는 프리즘을 통해’ 이 시대의 문제를 진단하고 고민하겠다는 필자들의 생각을 담아내고 있다고 이해된다.
필자들의 글에는 제목과 더불어 기획 의도가 명확히 제시되어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예컨대 ‘생각한다는 것은 무엇인가’(고병권)라는 제목의 글에는 ‘리영희와 생가하기’라는 기획 의도가 병기되어 있다. 이밖에도 ‘책 읽기’(천정환)과 ‘전쟁’(김동춘), ‘종교’(이찬수)와 ‘영어 공부’(오길영), ‘지식인’(이대근)과 ‘기자’(안수찬), ‘사회과학’(은수미)과 ‘청년 세대’(한윤형) 그리고 리영희 선생과의 인터뷰까지 폭넓은 주제의 글들이 수록되어 있다. 인터뷰(김현진) 제목에서 드러나듯, 리영희 선생이 이 시대를 ‘가혹하게 정직하고, 칼날처럼 순결하게’ 살았음을 증언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기도 하다. 그렇기에 그로부터 직접 혹은 간접적인 영향을 받았던 인물들이 나서, 이처럼 리영희 선생과 다양한 주제를 엮어 논할 수 있는 이유라고 여겨진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아울러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 필자들에 제시한 ‘프리즘’은 여전히 유효한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하겠다.(차니)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
사실, 참 어렵다. 이 책에 대해 설명하고, 평한다는 게 말이다. 많은 지식인에게 '사상의 은사'였던 리영희 선생님에게 바치는 책. 이 책만 읽고도 리영희 선생님을 제대로 다시 알고 싶어진다는 마음이 강렬히 든다. 그만큼 많은 이에게 영향을 미쳤고, 영향을 미치고 있고,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의 책을 읽고 큰 충격에 빠져 쥐구멍에 숨어 들어가고 싶었던 사람도 있다고 했고, 모든 생각이 무너지고 새로운 사상을 보게 되었다는 이들도 있다. 그를 존경하고 추종하는 자는 많았으나, 선생님은 패거리 문화를 질색했기에 편을 만들지도, 집단을 만들지도 않았다. 그는 하나로 존재했고, 하나로 존재하는 것조차 자율적이고 의지적이었다. 그리고 그가 써온 모든 글들에 책임을 졌던 사람이다.
<리영희 프리즘>을 읽게 되면, 그가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생각, 책 읽기, 전쟁, 종교, 영어공부, 지식인, 기자, 사회과학, 청년 시대. 그리고 다시 그. 그는 많은 젊은이를 '의식화'하게 했고, '생각'하게 했으며, '사유화'하게 했다. 그것만으로도 그는 범죄를 저지른 사람 취급을 받았고, 실제로 젊은이들을 '의식화' 했다는 이유만으로 법정에 불려나가기도 했다. '보이지 않는 힘', '움직이게 하는 힘' 그것은 강요된 행동이 아니었다. 그의 글만으로, 그의 말만으로 시대의 젊은이들은 하나 둘 깨어났던 것이다.
'의식화의 은사', '의식화의 원흉'으로 불렸던 그는 '범죄를 야기한 범죄', '메타 범죄'를 일으킨 주범이 되어 '부산 미문화원 방화 사건'에 재판정에 서기도 했다. '간접적 주범'이 된 이유는 실제 주범이 그의 책을 읽고 방화 사건을 저지르게 했다고 해서이다. 이것은 거역할 수 없는 힘, 무시무시한 힘이었다.
그는 '우상'을 파괴하라고 말했다. 그 유명한 '우상 파괴론'에 의해 하나만 믿고 있었던 사람들은 둘을 알게 되고 셋을 알게 되며, 넷을 알게 된다. 다양한 문화와 사람을 인정하며 사는 '지금'이 그냥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맹목적으로 믿었던 사회적, 국가적 이념들이 조금씩 파괴되며 다른 것도 생각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북괴'를 '북한'이라고 고쳐쓰고, '빨갱이'라는 말이 낡아서 회상하는 단어가 되게 했다. 그것은 하나의 혁신이었고, 변혁이었다. 지금 내가 믿고 있는 것을 의심하는 것. 그것은 지금도 끊임없이 이루어져야 할 일들이다.
전쟁의 이면을 똑바로 봐야 한다는 일침, 몸소 보여준 방대한 책 읽기, 책 읽기 안에서 이루어낸 언어 능력, 언어 능력과 세계를 보는 통찰의 맞물림, '힘'에 의해 좌지우지 되지 않고 대중이 알아야 할 기사를 써내던 타협없던 기자 생활.
행동하는 '사유'人이었던 그를 스승으로 기억하고 싶은 사람이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는 70년대 대학생들을 '사유'하게 했고, '의식화'했다. 그 힘으로 세상은 변했고, 현재에 와 있다. 그가 절필을 선언한 것은 지금까지 끌어온 시대를 후세들에게 넘겨주고 싶어서 일 것이다. 세상을 보는 시각이 낡았다거나, 생각처럼 행동하지 못하는 사람이라서가 아니다. 그는 그를 '우상화'하는 것도 거부하는 이다. 자기 생활에 주인이 되길 바라고,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길 바라는 이다. 치열한 싸움이 곧 변화를 만들고, 세상이 바뀌어 나갈 것이라고 믿는 이.
'Simple life, high thinking.' 그가 전하는 한 마디. 가슴을 울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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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를 모르고 리영희 프리즘을 읽는다는 것이 마치 다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 하나 얹어놓는 염치없는 짓처럼 느껴졌다. 생각 끝에 강 준만의 ‘한국 현대사의 길잡이 리영희’로 예습을 하기로 했다. 읽기 시작했다. 리영희 선생이 어디서 태어났으며 학교는 어디를 다녔고 어린 시절을 어떻게 보냈는지를 하나하나 알아가면서도 내 눈길은 책장에 누운 채로 대기해고 있는 ‘리영희 프리즘’에만 고정되어 있었다. 진도는 나가지 않으면서 그래도 위 학년 교과서를 기웃거리는 꼴과 다름이 없다. 어찌할까? 결정했다. 월반하기로. 선택은 좋았다. 지지부진하던 진도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간혹, 공부 방법을 바꾸어 보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다.
프리즘은 빛을 굴절, 분산시키는 광학도구를 이르는 말이다. 리영희 프리즘은 리영희라는 빛을 서로 다른 각도로 굴절 ,분산시켜 우리의 눈에 다양한 스펙트럼을 만들어 보여준다. 리영희를 알고 있는 사람이든, 나처럼 모르는 사람이든 각도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는 리영희 선생의 빛을 볼 수 있다. 아마도 ‘리영희’가 아니라 ‘리영희 프리즘’인 것은 이미 그에 의해 ‘의식화’를 거친 사람들만 향유하게 될 지도 모르는 이 책의 운신의 폭을 확장시켜주는 역할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리영희의 아들이 아니다. 70년대에 태어났고, 80년대엔 너무 어렸으며, 90년대에 비로소 젊은 시절을 보냈으니, 그의 드높은 이름에 대한 감동이 나에겐 없다. ……굳이 따지자며 방계 증손자뻘 되려나, 그러나 리영희는 아마도 “너 같은 손자 듣도 보도 못했다”할 터이니, 그나마 쉽게 내뱉을 말은 아니다. (p. 148. 리영희와 기자 /안수찬)
이 책을 대하는 내 심정이 이와 비슷하다. 아니다. 여기에도 이르지 못한다는 것이 맞는 표현이겠다. 안 수찬은 한겨레 기자로서 리영희 선생의 후배가 되니까 증손자뻘 이라는 말이 일리가 있어도 보이지만, 난 별 절실함이 없이 무난한 대학생활을 했던 92학번이다. 90학번이나 91학번과도 다르다. 92학번은 정치적 학생운동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세대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 누군가 내 말을 듣고 ‘그건 당신 생각이고’라고 반박한다면 분명히 내 변명은 구차하다 못해 쥐구멍을 찾기에 정신이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야겠다. 92년에 스무 살이었던 나는 등록금 투쟁이나, 관선이사 파견 등 학내 문제에 관련된 시위 말고는 제대로 된 데모를 해 본 적이 없다고, 최루탄의 매서움은 전날 내가 하교한 후 있었던 관선이사 파견을 반대하는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전경들이 발사한 것의 흔적이 다음날 집회에 참석한 내 눈에 우연히 들어간 것이 다였다고, 하지만, 그 맛은 정말로 매웠다고 말이다.
의식화라는 말은 나에게 있어서, 실체를 알지도 못하면서도 본능적으로 거부해야만 했던 일종의 터부와 같았다. 늘그막에 낳은 자식이 번듯한 대학교의 학생이 된 것을 자랑으로 여기시던 아버지는 입학식 날 아예 못을 박으셨다. ‘데모는 안 된다. 세상이 네 마음에 들지 않아도 데모는 안 된다.’ 난 아버지의 말씀을 잘 들은 셈이다. 졸업할 때 까지 큰 사건이 없었던 것도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난 세상 돌아가는 것에 관심을 가질 만큼 정신적인 여유가 없었다는 것이 변명이라면 변명이다. 나는 가난했다. 등록금을 벌기 위해 항상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고 4학년 때부터 시작한 학원 강사 생활은 졸업 후에도 나의 직업이 되었다.
리영희라는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90년대 대학교를 다닐 때가 아니라 서른이 넘은 2000년대였다. 어디선가 듣고 도서관에서 ‘대화’라는 책을 찾았지만, 읽지는 못했다. 책의 두께에 일단 좌절했고, 몇 장 들추어 본 후에는 그 속에서 뿜어 나오는 기에 눌려 다음 기회에 하면서 서가에 책을 되돌려 꽂았다. 그리고 이제야 리영희를 대면하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정도는 아니다. 편법이라고 해야 맞을 것 같다. 정면으로 도전(내게 ‘전환시대의 논리’라든가 ‘우상과 이성’을 읽는 행위는 아마도 안나푸르나 꼭대기에 오르는 도전과도 같을 것 같다)하지는 못하고 에둘러가는 방법을 택했지만, 나처럼 그의 아들이 되기가 애당초 불가능한 사람들에게는 가장 적절한 코스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한다.
프리즘에서 뻗어 나온 열 개의 스펙트럼은 리영희로부터 출발한 것은 동일하지만, 서로 다른 스타일로 리영희를 서술한다. 무엇보다 저자들의 목소리가 살아 있어서 좋았다. 리영희를 단순히 서술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아홉 개의 주제가 서로 중복되지 않으면서 각자의 스타일로 리영희를 굴절시키고 분산시키면서도 산만하지는 않았다. 맨 마지막 리영희의 인터뷰를 통해 아홉 개의 고리가 하나로 모아지고 마무리 되었다. 책을 덮는 순간 뭐라고 할까 구 회 말 만루 상황에서 세이브를 챙긴 마무리 투수의 기분 같다고 해야 할까. 짜릿하면서도 울림이 있고, 흐트러짐 없이 완벽하게 끝을 내는 뒷심을 느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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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를 처음 접한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리영희를 극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를 찾을수 있었다. 사상의 은사라고 불리는 리영희. 이 책은 리영희 선생의 팔순을 기념하기 위해 기획된 책이라고 한다. 그에게 있어서 글을 쓴 다는 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행위이기에 이 책은 그에게 바치는 책이 아니라고 추천사에서 말하고 있다.
일제 식민지에 청소년기를 보내고 분단과 전쟁의 한복판에서 젊은 시절을 보낸 시대적인 아픔을 지니고 살아왔다. 그 시대적인 요구를 바라보며 사유하고 살아가려는 지성인의 목마름이 있다. 7년 동안 통역 장교 생활을 하고 기자 생활을 하면서 가난은 그의 주위를 맴돌았다고 한다. 지금도 역시 부와는 거리가 먼듯하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를 고민하고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를 여러모로 고민한 흔적이 보이는 그의 글들은 많은 지성인들의 목마름을 채워주기도 하면서 정치적인 주동자라는 이름도 지을수 없었다.
그가 직접 주도 하기보다는 그의 글이 그들을 움직이게 만들었다는 명목으로 검찰에 불려가기 수차례였다고 한다. 도대체 그의 어떤 글들이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흔들었단 말인가를 이 책에서는 이야기하고 있다. 그의 됨됨이 그의 철학을 알고 싶어지고 그에 대해 알아가면서 점점 끌리게 된다. 리영희에게 인간의 반대는 동물도, 식물도, 무생물도 아닌 노예라고 한다. 그러므로 인간이 된다는 것은 노예로부터 벗어나 자유인이 되는 것이다. 나는 과연 자유인인가? 를 되물어보게 한다.
사람들은 그의 글을 읽고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을 받았다"
"진실을 안 것에 대한 두려움에 시달렸다"
머릿속에서 지진이 일어났다"
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불을 둘러쓰고 리영희를 읽으며 그들은 전율했다고 한다. 도대체 어떤 것들이 그들의 사고를 그렇게 뒤흔들어 놓았을까? 왜 권력은 그를 그렇게 두려워 하고 그를 가두기를 원한 것일까?
"가난하기는 하지만 먹을 것은 먹고, 사치스럽지는 않지만 입을 것도 입고 있습니다. 병이 나면 치료도 받고 있는 것이 객관적 현실입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묘사하여 우리나라 사람들의 편견과 인식 착오를 바로 잡으려는 의도로 쓴 글이 고무.찬양이 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공산주의 사회의 진실을 이데올로기적 고정관념과 30년 전의 냉전의식을 토대로 해서 신앙처럼 믿고 있는 인식 착오는 자기기만 일 뿐입니다." 이때 검사는 진실 보다는 성경 구절 위반 여부에 더 촉각을 세우는 목사처럼 말한다. "무슨 말을 해요. 객관적 진실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여기서 문제가 되지 않아요. 우리나라 학교의 교과서에 쓰여 있는 대로냐 아니냐가 문제인 거예요."
..................본문 18페이지에서
기독교라는 잘못된 사람들의 믿음에 대해, 영어에 몰입하고 있는 이 나라의 말도 안되는 현실을 그리고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인권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볼수 없는 시대적인 아픔들을 그는 통찰하고 있고 그러한 그의 통찰은 그를 알고 있는 그의 글을 읽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투시안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한 그의 통찰력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도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기자의 생명이 어디에 있는지를 말하고 있다. 오늘 우연히 어떤 버스에 붙어있는 광고를 보았다. 어떤 신문사인데 시대를 이끌어가고 있다는 그런 내용을 담고 있던듯 하다. 그들이 시대를 이끌어 간다는 것은 무엇이지? 국민들의 입과 눈을 닫고 일렬로 죽음의 길로 이끌어간다는 것일까? 일말의 움직임도 용서치 않고 오직 그들이 이끄는대로만 걸어야 하는 그런 감옥아닌 감옥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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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전 피상적인 리영희에 대해서만 알고 있었다. 70, 80 년대 대학생들 사이에 전설적인 사람이라고. 그에 대해 알고싶다는 생각에 들게된 책이다. 다른 사람이 판단하고 생각하는 그는 어떤 사람이기에 꼭 알아야 하고 읽어야 한다는 것인지를 알고 싶었다. 그래서 다른 책보다 먼저 읽은 책이 된 것이다. 책을 읽고 난 후의 결론은 좀더 다른 책을 읽어야 겠다는 것이다. 리영희의 대화 자서전을 대화형식으로 풀어선 것을 읽어 본다면 그의 생각에 좀더 가까이 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이 책에서 고병권이 얘기하는 생각하는 힘을 기를 수 있을 것 같다. 예전 처음 신입생 시절 밀려오는 지식에 생각이란 것을 해 본적이 없어 멍하게 있기만 했던 시절이 떠올랐다. 세상의 미디어들이 얘기하는 것을 비판적으로 본다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당연히 진실만을 말한다고 배워 왔기에. 말하는 액면 그대로를 믿었는데 그것이 잘못이라고 하면서 그 행간을 읽어야 한다고 했다. 그 때는 그저 건성으로 흘려버렸다. 지금이라도 생각하는 인간이 되어야 겟다. 7,80년대와는 시대가 많이 변했지만 아직도 비슷한 것이 많이 남아있기에 그의 생각은 여전히 유효할 것이다.
그 책을 읽으면서 오늘을 살아가는 방법을 잘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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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 선생에 대해서 지금도 잘 알지 못하고, 그가 어떤 일을 해왔는지 더 조사하지 않은 상태에서 단지 책 한권을 통해 그의 모든 것을 섣불리 긍정하기 어렵긴 하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를 아직도 지배하고 있는 극단적인 '색깔론'에 의해서 리영희 선생이 '빨갱이'라고 몰리는 상황은 우리 사회의 폐쇄성과 경직성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 점은 서평에 앞서 꼭 밝혀 두고 싶다.
솔직히, 책은 리영희 선생의 팔순을 기념하여 쓰여진 책이다.(헌정용은 아니다. 리영희 선생이 원치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래도, 리영희선생에 대해서 우호적인 내용일 수 밖에 없다.
그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제는 돌아가셨지만, 그 당시 백발의 노인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는 점은 놀랍다. 그것이 꼭 도덕적 청결성 때문이라기 보다도, 사고하는 삶, 그 자체 때문이다.
리영희 선생의 많은 작품을 그대로 인용하기도 하고, 작가가 직접 한 인터뷰 내용을 싣기도 하며, 개인적인 리영희 선생과의 인연을 소개하기도 한다.
리영희 선생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에게는, 그와 그의 작품을 추억할 수 있는 책이며, 리영희 선생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다분히 그와 그의 작품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게 한다. 나 역시 책을 읽으며 리영희라는 사람의 생각, 논리, 책, 삶을 들여다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은 소위 진보 진영에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쓰여 졌다. 하지만, 이제는 돌아가신 리영희 선생을 진보주의자의 틀에 가두지 말고, 그저 시대의 선구자, 진실을 알고자, 알리고자 했던 기자, 사람들을 스스로 사고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던 ,그래서 더 고독했던 사람으로 기억하는 건 어떨까 싶다.
하여튼, 그의 대표적인 저서를 꼭 읽어 봐야 겠다.
ps. 정치적으로 논란이 될 수 있는 이야기는 인터넷이라는 공간에 적고 싶지 않았기에, 리영희 선생에 대해서 잘 모르기에, 오늘은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없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