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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디푸스 왕과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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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10일은 현재를 살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결코 잊지 못할 날로 기억될 것이다. 헌법재판소 이정미 재판관이 말한 이 한 문장 때문이었다.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탄핵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헌정 사상 첫 탄핵 대통령이 되었다. 촛불 민심의 승리라고들 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박근혜 탄핵은 민주주의의 승리이자 민주주의의 산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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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310일은 현재를 살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결코 잊지 못할 날로 기억될 것이다. 헌법재판소 이정미 재판관이 말한 이 한 문장 때문이었다.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탄핵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헌정 사상 첫 탄핵 대통령이 되었다. 촛불 민심의 승리라고들 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박근혜 탄핵은 민주주의의 승리이자 민주주의의 산 교육장이었다. 대통령도 헌법을 지키지 않으면 탄핵될 수 있다는 것을 눈 앞에서 지켜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헌정사의 치욕적인 사건임을 부인할 수도 없을 것이다. 게다가 대다수 시민들의 기대와 달리 사저로 복귀하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자유한국당 민경욱 의원이 대신 낭독한 대국민 메시지를 통해 탄핵 불복을 선언했다. 국정농단에 대한 진솔한 사과를 바랬던 국민들로서는 또 다시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게 주어졌던 소명을 다하지 못해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저를 믿고 성원해주신 국민들께 감사드립니다. 모든 결과는 제가 안고 가겠습니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진실은 언젠가 밝혀지게 되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반성할 줄 모르는 권력의 오만함, 닮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불복 선언을 지켜보면서 문득 떠오른 대사가 있었다. 고대 그리스의 비극작가 소포클레스(Sophocles, B.C 496~406)가 쓴 희곡 <오이디푸스 왕>의 한 대목이었다.


"아폴론이다. 친구여, 나의 불행, 이 쓰라리고 쓰라린 불행을 일으킨 건 아폴론이다. 그러나 내 눈을 찌른 건 내 손. 이 불쌍한 놈의 손이다! 내 눈은 즐거운 일은 하나도 보여주지 않거늘 무엇 때문에 보아야 한단 말이냐?" -<오이디푸스 왕> 중에서-


주인공 오이디푸스 왕은 자신의 범죄와 패륜이 밝혀지자 끔찍하게도 자신의 눈을 찌르는 방식으로 자기 처형을 감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이디푸스 왕의 대사에는 반성할 줄 모르는 권력의 오만함이 짙게 깔려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사저 복귀 후 밝혔던 대국민 메세지처럼 말이다. 오이디푸스 왕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와 결혼해 자식까지 낳은 범죄에 패륜까지 저질렀음에도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기보다는 이 모든 게 아폴론 신탁 때문이라며 항변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엮였다'거나 '기획된 음모'라며 끝까지 진실을 거부했던 모습이 오버랩되는 것은 비단 필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오이디푸스 왕과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진실이 밝혀지는 과정까지도 그야말로 닮음꼴이다.


<오이디푸스 왕>은 테바이의 오이디푸스 궁전 앞에서 탄원하는 백성들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희곡 전체의 내용을 알기 위해서는 그리스 신화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오이디푸스 왕>은 신화에 근거하고 있지만 신화 전체 내용을 평면적으로 나열하지는 않는다. 희곡이 시작되는 전 과정을 알아야 하는 이유다.


아테네 북쪽에 위치한 테바이라는 도시국가에 라이오스라는 왕이 살았다. 라이오스 왕은 이오카스테와 결혼해 아들을 낳았다. 하지만 태어난 아들에게 이름도 지어주기 전에 끔찍한 아폴론의 신탁을 듣게 된다. 알다시피 그리스 신화에서 스틱스 강에 맹세하는 것과 아폴론의 신탁은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다. 아폴론 신탁에 따르면 라이오스 왕과 이오카스테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은 장차 성장해 어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될 운명이었다. 라이오스와 이오카스테는 불행의 씨앗을 막기 위해 아들을 죽이기로 결심한다. 차마 아들을 죽일 수는 없었던지 부부는 아들의 양 발목을 밧줄로 꿰어 목동에게 맡기고는 산 속에 버리라고 명령한다. 하지만 목동도 아이가 산 속에서 죽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목동은 아이를 이웃나라 코린토스의 목동에게 맡기고 테바이가 아닌 곳에서 키워달라고 부탁한다. 



결국아이는 코린토스 왕 폴리보스의 양자가 되고 오이디푸스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오이디푸스는 양 발목이 밧줄에 꿰어 '부은 발'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물론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폴리보스 왕의 양자라는 사실을 모른 채 청년으로 성장하게 된다. 하지만 오이디푸스 또한 친아버지와 똑같은 신탁을 듣게 된다. 자신이 아버지를 살해할 것이라는. 오이디푸스는 이 신탁이 실현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코린토스를 떠나고 이리저리 방황하던 중 테바이로 가는 세 갈래 길에서 마차에 탄 노인과 그 수행원들을 죽이게 된다. 이 노인이 다름아닌 오이디푸스의 친아버지 라이오스 왕이었다. 라이오스 왕은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면 가차없이 사람들을 죽이고 있는 스핑크스라는 괴물을 퇴치할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델포이로 가는 중이었다.


아버지를 죽인 오이디푸스, 박정희 신화의 막을 내린 박근혜


이 사건 이후 오이디푸스는 테바이에 도착하고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고 테바이의 왕으로 추대된다. 오이디푸스는 라이오스의 아내이자 자신의 어머니인 이오카스테와 결혼을 하고 아들 둘과 딸 둘을 낳았다. 오이디푸스가 왕이 된 이후 테바이는 평화와 번영을 누렸다. 그러나 신들은 오이디푸스의 범죄를 묵과할 수 없었다. 신들의 저주로 테바이에는 역병과 기아가 돌았고 모든 백성들이 고통으로 신음했다. <오이디푸스 왕>은 오이디푸스 궁전 앞에서 탄원하는 백성들 앞에 등장한 오이디푸스 왕의 대사로 시작된다.


신들의 저주를 풀기 위해서는 하나의 방법밖에는 없다. 라이오스 왕의 살해범을 밝히는 것이다. 오이디푸스 왕은 백성들 앞에서 당당히 선언한다. 백성들이 원하는 무슨 청이든 다 들어주겠노라고. 아폴론 신탁에 의하면 라이오스 왕의 살해범을 밝히고 테바이에서 추방하는 것만이 역병과 기아를 퇴치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예언자 테이레시아스와 세 갈래 길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의 등장으로 라이오스 왕 살해사건의 진실이 밝혀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오이디푸스 왕은 자신의 결백함에 대해 지나친 오만한 자세로 일관한다. 오히려 처남인 크레온이 테이레시아스를 부추겨 자신을 추방하려 한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이오카스테 왕비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그 사건의 범인이 자신이 아니라고 확신한다. 그의 오만에 찬 한 마디.


"은밀히 나를 배반하는 자가 재빨리 움직일 때에는 나도 재빨리 대책을 세워야 하는 법이다. 가만히 앉아서 그를 기다리고 있으면 그는 목적을 이루고, 나는 망할 것이다." -<오이디푸스 왕> 중에서-


특검과 헌재가 최순실 국정농단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또한 마찬가지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국정농단의 증거가 넘쳐나는데도 부인으로 일관했고 되려 음모론을 주장하기까지 했다. 이런 박근혜 전 대통령의 대응을 두고 혹자는 성장기 청와대에서 고립된 생활을 했고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이십 년 가까이 지속된 은둔생활로 상황 자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분석하기도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자기 확신에 대한 오만함은 탄핵 이후에도 변하지 않고 있다.


진실은 늘 구름 위에 있다고 했다. 구름이 걷히면 언젠가 실체를 드러내는 것이 진실이다. 오이디푸스 왕의 범죄와 패륜이 그랬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사건이 그랬다. 하지만 실체를 드러낸 진실이 썩 유쾌하지만은 않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문학 장르로써의 비극은 '공포와 연민의 정을 불러일으켜 감정의 정화(카타르시스, Catharsis)'를 도모한다고 했다. 물론 초유의 현직 대통령 탄핵이 '민주주의의 승리'라는 성취감을 제공했음은 두말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게다가 오이디푸스 왕이 실제로 아버지를 살해했다면 박근혜 전 대통령은 박정희 신화라는 왜곡된 현실의 종말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것이 확실하다. 하지만 비극은 비극이다. 비극이 비극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 우리 사회는 또 하나의 무거운 짐을 기꺼이 져야 할 것이다. 

y**********o 2017.03.2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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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디푸스 왕(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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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왜 고전을 읽으라고 할까? 그리고 고전은 어떤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를 들 수 있겠지만... 아마도 가장 단순하게 말할 수 있는 방법은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과 읽은 다음에 그 가치를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고전 중에서도 고전으로 통하는 ‘오이디푸스 왕’을 읽으면서 이미 너무 많이 알려졌고, 분석되었고, 평가되어진 이 작품에 더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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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왜 고전을 읽으라고 할까? 그리고 고전은 어떤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를 들 수 있겠지만... 아마도 가장 단순하게 말할 수 있는 방법은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과 읽은 다음에 그 가치를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고전 중에서도 고전으로 통하는 ‘오이디푸스 왕’을 읽으면서 이미 너무 많이 알려졌고, 분석되었고, 평가되어진 이 작품에 더 이상 새로운 의견을 말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며 읽게 되었지만... 역시 고전은 고전이다.

 

소포클레스의 희곡 중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꼽히는 ‘오이디푸스 왕’과 그 이후의 이야기를 담은 ‘클로노스의 오이디푸스’와 ‘안티고네’는 흔히 말하는 ‘비극’의 원형을 담아내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이와 견줄 수 있는 비극이 꼽기 힘들 정도의 완성도를 보이고 있다.

 

따로 줄거리를 설명할 필요나 있을까?

너무 많이 듣게 되어서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읽게 되는 순간 얼마나 모르고 있었는지 알게 되는 것이 고전인 것 같다.

 

삼부작이면서도 각각의 작품의 완결성도 뛰어나서 어떤 순서로 읽던지 작품의 매력을 잃지 않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역시나 ‘오이디푸스 왕’이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두 작품들도 부족함을 느끼기 힘들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오이디푸스 왕’이 가장 현대적인 작품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어떤 의미에서 ‘오이디푸스 왕’은 느와르나 하드보일드 작품과 같은 느낌도 들게 되기 때문이다. 오이디푸스는 그의 어머니이자 부인이 더 이상 알려고 하지 말고 덮어버리라고 말하지만 꼭 진실을 알아야 한다고 불안감을 갖고 의문을 풀어나가고 결국 진실을 알게 되어 혼란에 빠지는 모습이 필름 느와르의 주인공들이 사건을 파고들면서 더욱 추악한 진실을 알게 되어 홀로 고독히 남게 되거나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다는 결론과 유사함을 느끼게 된다. 물론, 이후의 작품들이 영향을 받은 것이겠지만.

 

또한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끊임없이 ‘알지 못하고 그랬다’라고 자신을 변호하고 항변하고 있는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가게 되어가면서 자신의 비극적인 운명을 예감한다는 것이 독특한 구석이 있다. 즉, 그는 알려고 노력하고 알게 되어가면서 고통스러워진다. 아는 것이 힘이고 지식이 권력이라고 하지만... 그의 운명은 슬프게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호기심으로 몰락하게 된다.

 

작품은 개인의 비극이면서도 보편적인 삶과 신뢰, 믿음 그리고 타인에 대한 존중과 국가관 등 다양한 내용들도 함축되어 다뤄지고 있다.

 

그리고 이런 다양한 의미는... 읽어야지만 깨달을 수 있다.

y*******o 2008.11.0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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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간의 비극적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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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디푸스 왕은 소포클레스의 3대 비극 중 하나로, 한 인간의 운명을 비극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내용을 보면 오이디푸스의 운명은 신탁을 통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범한다.'라는 것이었다. 오이디푸스, 그와 그의 아버지, 어머니와 엮인 그의 운명을 피하기에 급급했던 그의 아버지는 급기야 그를 버리게 된다. 하지만 그 운명의 실타래는 끊이지 않고 현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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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이디푸스 왕은 소포클레스의 3대 비극 중 하나로, 한 인간의 운명을 비극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내용을 보면 오이디푸스의 운명은 신탁을 통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범한다.'라는 것이었다. 오이디푸스, 그와 그의 아버지, 어머니와 엮인 그의 운명을 피하기에 급급했던 그의 아버지는 급기야 그를 버리게 된다. 하지만 그 운명의 실타래는 끊이지 않고 현실로 다가왔고, 그 신탁의 말처럼 오이디푸스가 그의 한 노인과 싸움이 붙어 결국 그 노인을 죽이게 되는데, 그 노인이 바로 그의 아버지였다. 또한 그의 어머니가 스핑크스의 문제를 맞히는 사람에게 왕의 권한을 줄뿐더러 자신 또한 그 사람과 결혼한다고 했고, 그가 어렵다는 스핑크스의 문제를 맞혀 그의 어머니와 결혼하게 됐다. 신탁의 말한 운명과 일치했다. 그러했다. 이 이야기를 통해 본 한 인간의 운명은 '아비를 죽이고, 어미를 범한다'라고 정해져 있었다. 여기서의 한 인간은 이세상 모든 사람들을 비추는 거울인 것처럼 모든 사람들 또한 운명이 정해져 있을 거다. 그 운명을 아느냐 모르느냐일 뿐이다.

 하지만 운명은 피한다고 피할수 있는 것이 아니다. 피하고 부정한다고 해서 그 운명이 당신의 운명이 아닌 것이 되지는 않는다. 단지 마음이 조금 편할뿐이다.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점 같은 것을 믿는 경향이 있는데, 보고 좋게 나오면, 점쟁이가 점잘 본다하며 좋아하고 잘못 나오면 점쟁이가 뭘 모른다며 이사람 점 못본다며 투덜댄다.

 한 인간의 비극적 운명 안다고해서 피하지 말고 모른다고해서 쉽게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운명을 대할때는 그의 아버지가 자식의 운명을 알고 피하고 오이디푸스가 몰라서 비극이 일어난 것을 교훈삼아 운명을 안다고 피하고 부정하지 말고 운명을 안다면 더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좋다고해서 좋아하지 말고 안좋다고해서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좋은건 나에게 해 될것 없으니 금방 잊어버리고 나쁜건 예방하는 차원에서 잊지 말고 잘 대처한다면 아무리 운명이 정해져 있다지만, 조금씩 조금씩 나의 노력여부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운명은 바뀔수도 있다'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운명을 단정짓지 말고 노력한다면 밝은 내일이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p********9 2008.12.0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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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과 운명, 그리고 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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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나서 나는 한동안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대충 알고 있던 이야기였지만 다시 책으로 읽고 나니 느낌이 색달랐다. 소포클레스의 삼대 비극이라고 일컬어지는 , , 는 운명의식(運命意識)에 철저히 입각해서 지어졌다. 이 비극을 읽으면서 인간의 힘을 초월해 있는 운명의 힘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가를 실감하게 되었다. 라이오스 왕과 왕비 이오카스테, 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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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나서 나는 한동안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대충 알고 있던 이야기였지만 다시 책으로 읽고 나니 느낌이 색달랐다. 소포클레스의 삼대 비극이라고 일컬어지는 <오이디푸스 왕="">,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안티고네>는 운명의식(運命意識)에 철저히 입각해서 지어졌다. 이 비극을 읽으면서 인간의 힘을 초월해 있는 운명의 힘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가를 실감하게 되었다. 라이오스 왕과 왕비 이오카스테, 그리고 오이디푸스는 자신에게 정해진 운명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애써보지만 결국 그들의 삶을 조종한 것은 그 거대한 운명이었다. 인간은 살다 보면 밀어 낼 수 없는 벽에 부딪친다는 운명의식을 소포클레스는 갖고 있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운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과연 운명은 정해져있는 것이며 우리는 그 정해진 운명대로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는 것인가? 나는 나름대로 운명은 개척하는 것이며 스스로가 자신의 삶을 조각하여 나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더 큰 대가가 주어지리라고 믿는다.
YES마니아 : 로얄 s*****4 2002.01.1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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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과 인간의 자유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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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언제나 알지 못하는 것에 불안을 느끼게 마련이다. 알지 못하는 것 중에서도 미래에 대한 불안이 가장 클 것이다. 지금까지의 과거를 돌아보며 과연 앞으로의 내 미래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하는 물음을 가지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고 일부는 두려움을 조금이나마 해소시키고자 미래를 알기 위해 노력한다. 동양의 사주점, 우리나라의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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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언제나 알지 못하는 것에 불안을 느끼게 마련이다. 알지 못하는 것 중에서도 미래에 대한 불안이 가장 클 것이다. 지금까지의 과거를 돌아보며 과연 앞으로의 내 미래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하는 물음을 가지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고 일부는 두려움을 조금이나마 해소시키고자 미래를 알기 위해 노력한다. 동양의 사주점, 우리나라의 토정비결, 서양의 별자리 점, 타로카드 점 등의 다양한 운세서비스가 그것이다. 그저 재미로 본다는 사람도 있지만 정말 들어맞는다며 맹신하는 사람도 있다. 그 사람들의 말처럼 그렇게 들어맞는다면 인간의 운명이란 정말로 존재하는 것일까?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은 개인의 의지를 벗어난 운명의 힘에 대해 그리고 있다. 신화를 차용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신’의 이야기가 아닌 운명의 지배를 받는 한 ‘인간’의 이야기이기에 전혀 다른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점이 크다고 생각한다. 이 극은 일종의 추리극이다. 오이디푸스는 라이오스 왕을 죽인 자를 찾으려고 하나, 결국 그를 죽인 자는 바로 자기 자신이었고, 자신의 출생의 비밀까지 알게 되자 절망의 늪에 빠진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운명에 이끌려 불행에 빠져든 셈이다. 극의 전개상 이것은 우연이 아닌 필연적인 결과였다. 작가는 은연중에 ‘운명이란 실재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극 중 오이디푸스의 어머니이자 아내인 이오카스테가 이렇게 말한다. “인간이 걱정해 본들 무엇하겠어요? 인간에게는 운명이 절대적이라서, 무엇 하나 앞일은 분명히 알 수 없으니까요. 그저 마음 내키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상책입니다.” 그리스 사람들의 운명론에 대해 잘 보여주고 있는 구절이다. 하지만 이 구절을 읽다보면 너무 나약하면서도 수동적인 모습에 쉽게 동조할 수만은 없다는 느낌이다. 어째서, 미래에 대한 걱정조차 않고 운명에 몸을 맡기며, 마음 내키는 대로 살 수 밖에 없는가. 그러나, 오이디푸스는 그녀와 다른 행동을 보여준다. 그녀처럼 운명에 내맡긴 삶을 살기보다 자신의 운명에 대해 알고자 한다. 왜 이런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었는지 스스로 고민하고 성찰하는 모습에 우리는 운명의 장난감 이상의 오이디푸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비록 운명에 조종당할지언정, 자신의 행동이 담고 있는 의미를 스스로 깨닫는 모습에서 ‘신’과 다른 ‘인간’의 위대함 마저 느끼게 된다. 요컨대, 인간은 결코 나약하지 않다. 운명이란 그저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하나의 관념일 뿐이다. 삶은 스스로 개척해 나가야 할 종류의 것이고, 우리는 결코 운명의 장난감 따위가 아니다. 모든 것은 선택하기 나름이다. 하나하나를 선택하는 과정 속에 우리는 의도를 가지고 자기결정을 하는 주체적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인간이 수동적이고도 무력한 삶에 내맡겨지지 않기 위해서는, 오이디푸스 왕처럼 자신의 행동의 의미를 의식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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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불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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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포클레스의 비극 세편이 묶어져 잇다. '오이디푸스왕','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안티고네' 운명의 목소리는 이사람에게 너무도 가혹하다. 이래도 살래? 자기 아버지를 죽이고 자기 어머니를 아내로 아들, 딸 낳고 '어떤 놈이 울 아버지 죽인겨, 가만 안둘껴' 입버릇처럼 하다 그게 자신인걸 알아도... 그래 처음엔 눈뽑는 정도로 단계적으로 해야지. 그래도 안되겠지, 죽어야지.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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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포클레스의 비극 세편이 묶어져 잇다. '오이디푸스왕','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안티고네' 운명의 목소리는 이사람에게 너무도 가혹하다. 이래도 살래? 자기 아버지를 죽이고 자기 어머니를 아내로 아들, 딸 낳고 '어떤 놈이 울 아버지 죽인겨, 가만 안둘껴' 입버릇처럼 하다 그게 자신인걸 알아도... 그래 처음엔 눈뽑는 정도로 단계적으로 해야지. 그래도 안되겠지, 죽어야지. 이런 나쁜 놈은 자식도 그 시체를 장사지내선 안되지... 의도적으로 나쁜짓 저지른자는 이를 숨기고 호의호식하는데 운명의 덫에 걸린 이 남자는 결국 자기 황당한 처지를 견디지 못하고 죽음으로 치닫고 만다. '남의 불행'이라고 주위에선 욕만 하지 동정심이라곤 없다. 불행을 당한 사람은 보호받아야 하고 그의 처지에서 생각해 주어야 한다.한 여군대위가 자기를 겁탈하려던 남자(병사이기 이전에)를 체벌하려다 불구속 입건된 모양이다. 올바른 법질서가 집행되고 이를 통해 안전을 보장받지 못한다면 사람들은 직접 복수에 나설거다. 상관이 이 사건을 덮으려하자 진술서를 받으려다 생긴 일이란다.'남의 딸'일이라도 그 사람처지에서 생각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s***y 2003.08.0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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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죽인 패륜아의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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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온 오이디푸스의 이야기를 기초로 쓴 소포클레스의 희곡이다. 대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장르는 비극에 들어간다고 말할 수 있다. 소포클레스는 기원전 300년경에 살았던 희곡작가로서 여러 편의 작품을 남겼으나 그중 대표적인 3편중 하나가 바로 오이디푸스 왕 이야기 이다. 오이디푸스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스핑크스의 수수깨끼를 맞춘 인물이기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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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온 오이디푸스의 이야기를 기초로 쓴 소포클레스의 희곡이다. 대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장르는 비극에 들어간다고 말할 수 있다. 소포클레스는 기원전 300년경에 살았던 희곡작가로서 여러 편의 작품을 남겼으나 그중 대표적인 3편중 하나가 바로 오이디푸스 왕 이야기 이다. 오이디푸스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스핑크스의 수수깨끼를 맞춘 인물이기도 하며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인물이기도 하다.(비록 모르고 죽였기는 하지만) 그의 행동은 신에게 용서받을수 없었고 그의 나라에는 역병이 퍼지게 된다. 신은 그의 나라에 있는 살인자를 쫓아내라는 명을 내리고 결국 그는 자신이 자신의 아버지를 죽였음을 깨닫고 뉘우치며 자신의 눈을 찌르고 나라는 떠나게 된다.
x***1 2002.08.2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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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한 운명의 소용돌이를 벗어날수 없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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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포클레스의 비극으로 이책에서는 오이디푸스외에도 스토리가 연결되는 클로노스의 오이디푸스, 안티고네가 담겨있다. 오이디푸스는 책으로 접하지 않더라도 스토리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있다. 나도 그랬었지만 고전으로 가볍게 읽을 수 있어 읽었다. 이 책의 담겨있는 3편모두 비극이고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운명으로 인한 자책감으로 모든것을 잃어버리고, 자신의 나라를 떠나 오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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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포클레스의 비극으로 이책에서는 오이디푸스외에도 스토리가 연결되는 클로노스의 오이디푸스, 안티고네가 담겨있다. 

오이디푸스는 책으로 접하지 않더라도 스토리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있다. 나도 그랬었지만 고전으로 가볍게 읽을 수 있어 읽었다. 

이 책의 담겨있는 3편모두 비극이고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운명으로 인한 자책감으로 모든것을 잃어버리고, 자신의 나라를 떠나 오이디푸스가 죽음, 두 아들의 싸움으로 같이 죽음을 맞이하고, 오빠의 시신을 묻어주려 하다가 붙잡혀서 죽음을 맞이하는 안티고네를 이야기 하고 있다. 

오이디푸스 뿐만 아니라 두 딸들과 두 아들의 운명까지 가혹하다. 그리고 오이디푸스에 이어 왕이된 사람까지 가혹한 운명을 맞이한다. 


개인적으로 그리스고전, 세익스피어 등 극의 대사들이 어렵게만 느껴진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대화의 패턴이 아닌 특유의 패턴으로 함축적인 느낌은 거부감까지도 든다. 

하지만 전체적인 스토리는 흥미를 유발한다. 특히 오이디푸스의 전개는 시대순서가 아닌 현재에서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과거를 되돌아보는 기법을 사용하고있다. 어디선가 얼핏 들기로는 오이디푸스의 스토리, 구성으로 많은 작품에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오이디푸스 캐릭터에 대해서는 정말 안타까움을 느낀다. 

오이디푸스 왕은 스핑크스의 문제를 풀어 왕이되고 나라를 이끌만큼 명석한 두뇌와 지도력을 가지고 있으며, 나라에 닥친 문제에 대해 누구보다 걱정하고 해결하려고하는 모습을 보여줄 만큼 훌륭한 왕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를 죽이게되고, 왕이 되어서 어머니를 부인으로 맞이하고 딸과 아들을 낳게 되어 가혹한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자신의 운명을 미리알고 피하기 위해 자신을 키워준 부모님을 떠나기까지 했는데 전혀 예상지 못한 일로인하여 운명의 소용돌이를 벗어나지 못하고 어찌할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누구보다 순응하고 받아들이려는 모습을 보인다. 비록 오이디푸스 뿐만 아니라 주변사람들 모두 비극을 맞이하는 모습은 삶의 잔인함을 나타내고 있는것 같다. 

p*****f 2017.09.03.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많은 것을 생각케 하는 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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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정의를 어떻게 내려야할까. 무엇보다도 시대를 초월하는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고, 또 성취하고 있는 작품이 고전이라는 데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이 작품은 고전의 하나로 꼽는 데 주저함이 없다. 은 대학에 갓 입학했을 때 읽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좀 더 심화된 수업 내용에서도 이 작품은 빼놓지 않고 다루기 마련이었다. 예전에 한번 읽었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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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정의를 어떻게 내려야할까. 무엇보다도 시대를 초월하는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고, 또 성취하고 있는 작품이 고전이라는 데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이 작품은 고전의 하나로 꼽는 데 주저함이 없다. <오이디푸스 왕="">은 대학에 갓 입학했을 때 읽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좀 더 심화된 수업 내용에서도 이 작품은 빼놓지 않고 다루기 마련이었다. 예전에 한번 읽었던 이 <오이디푸스 왕="">을 다시 읽어본 것도 어쩌면 그런 물음에서 연유했으리라, '과연 무엇이 그리 대단하길래 이 작품이 끊임없는 연구의 대상이 되는 것일까?'하는. 우선, 다시 읽으며 이 작품이 '희곡'이라는 것에 주목했다. 희곡이 기본적으로 문학성과 연극성을 아울러 지녀야 하는 성질의 장르임을 상기하며, 몇몇 장면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그랬더니 이전에 문학으로서만 보았던 이 작품의 연극적 이미지가 뚜렷이 드러나는 게 아닌가. '아, 이거구나'하는 느낌이 들었다면 과장일까. 하여간 모든 희곡 작품이 다 그렇겠지만, 이 작품 역시 머릿속으로 장면들을 그려가며 읽으면 그 맛이 확연히 살아난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카타르시스 이론에 철저히 입각한 극의 구성과, 코러스의 활용 등은 주목할 만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 작품은 많은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운명'과 '의지'와의 관계, 신의 권위와 인간 독존의 역학 관계. 거기서 오이디푸스 왕은 단순히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의 침대를 차지해, 저주받은 '형제자매이자 동시에 자식'을 생산하는" 비윤리적, 비도덕적 인물에 그치지 않는다. 곧 인간으로서 어찌 할 수 없는 거대한 운명 앞에, 그것을 이겨낼 수 없다 할지라도 끊임없이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의지'에 따라 저항하는 오이디푸스의 모습은 그저 운명에 희생된 보통의 선악에 따른 구분의 논리를 거부하게끔 하는 것이다. 이러한 오이디푸스 왕의 모습이야말로, 니체가 말하는 '시지프스적 저항을 그치지 않는' 인물의 한 전형이 아닐런지. 또 <안티고네>에서 보이는 등장 인물들의 대립과 갈등 역시 깊이 생각해볼 문제를 던져주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아직 이 작품을 읽지 않았던 고 3 시절, <안티고네>의 한 지문이 논술 문제의 예문으로 나와 꽤 당황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에, 그때 무슨 말인지 몰라 고민하던 것을 생각하며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듯하다. 한번쯤 꼭 읽어보며, 여기에 던져진 주제들을 스스로 집어내고, 생각해볼 수 있는 고전이라 생각한다.
b********g 2001.10.22.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오이디푸스 그리고 안티고네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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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오이디푸스 왕',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그리고 '안티고네'의 3부작을 싣고 있다. 소포클레스의 이 세 작품은 독립된 것이지만, 3부작으로서의 완벽한 모습을 보여준다. 저주받은 신탁을 받고 태어난 오이디푸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의 침대를 더럽히리라는 예언 때문에 부모에게 죽을 뻔한 그는 자신에게 내려진 저주를 피하기 위해 부모(자신을 낳아준 친부모라고 믿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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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오이디푸스 왕',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그리고 '안티고네'의 3부작을 싣고 있다. 소포클레스의 이 세 작품은 독립된 것이지만, 3부작으로서의 완벽한 모습을 보여준다. 저주받은 신탁을 받고 태어난 오이디푸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의 침대를 더럽히리라는 예언 때문에 부모에게 죽을 뻔한 그는 자신에게 내려진 저주를 피하기 위해 부모(자신을 낳아준 친부모라고 믿고 있던 양부모)의 곁을 떠난다. 그러나, 그러한 몸부림에도 불구하고 예언은 실현되었으며, 테바이는 전염병이 창궐하는 죽음의 도시가 된다. 현명한 오이디푸스는 오만과 독선에 빠지게 외고 자기에게 돌아오게 될 죽음의 저주를 선왕 라이오스의 살인자에게 퍼붓는다. 드디어 비밀이 모습을 드러내고 왕비 이오카스테는 자결하고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두 눈을 찌른다. 콜로노스까지 흘러온 오이디푸스는 두 딸 안티고네와 이스메네를 두고 세상을 떠나지만, 테바이의 두 아들은 왕좌를 놓고 형제간의 전쟁을 벌이는 들 라이오스 왕가에 닥친 비극은 끝이 없다. 오이디푸스의 두 아들이 서로의 칼에 세상을 떠난 뒤 왕위에 오른 크레온은, 테바이를 향해 칼을 겨눈 폴퓨네이케스의 시체를 매장하려는 자는 처형한다는 명을 내리고, 안티고네는 명령을 듣지 않고 시체를 묻다 죽음을 당한다. 크레온은 늦게야 자신의 독선을 후회하지만 때는 늦어서 아들 하이몬과 왕비 에우류디케는 목숨을 끊으며 비극은 끝이 난다. 세 편의 작품에는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의 강력한 힘이 표현되었다. 자신들의 운명에서 벗어나고자 아들을 죽인 라이오스 왕·이오카스테, 부모 곁을 떠난 오이디푸스는 자신도 모르게 실현된 예언 앞에 절망하고 괴로워하며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폴류네이케스, 에테오클레스, 안티고네, 하이몬, 에우류디케 모두 잔인한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인간의 힘으로는 벗어날 수 없는 신이 내린 운명 앞에 인간의 독선과 오만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인간은 발가벗은 아기의 모습으로 들판에 내동댕이쳐진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 정도로 현명한 오이디푸스도 자신에게 닥칠 운명을 알지 옷하고, 다름 아닌 자신에게 저주를 퍼붓게 된다. 그리고 침착한 편인 크레온도 자신의 아들과 아내에게 돌아올 비극을 알지 못한 채 고집 속에 예언을 실현시킨다. 내일의 운명도 알지 못하면서 오늘의 독선에 빠져 있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운명의 힘이란 그토록 거대한 것인지…. 96년도 3월 홍익대에서 '오이디푸스와 안티고네'란 연극을 보았다. 보고 싶었던 연극이라 시간을 내서 갔는데 대학극이라 어설픈 풋풋함과 조명이 나가 횃불을 켜고 어두운 속에서 공연을 하는 재미있는(?) 사건도 벌어졌다. 1막인 '오이디푸스'는 원작을 그대로 따랐지만 2막인 '안티고네'는 해석을 다르게 하였다. 원작에서는 안티고네가 신의 도리를 따라, 크레온이 인간의 독선에 따라 행동하는데 비해, 연극에서는 안티고네와 크레온의 대결을 인간의 자유 의지와 신의 운명의 대결로 보았다. 크레온은 신탁을 지키기 위해 시체의 매장을 금지하고, 안티고네는 신이 자신의 가문에 내린 운명(이라기보다 저주)에 맞서 스스로 죽음을 통해 저항한다. 원작의 '운명 앞에 무너지는 인간의 오만'이라는 주제보다 '신의 부당한 운명(오이디푸스 가문에 내린 신탁은 부당함의 극치이다. 그들은 예언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으나, 아무 이유도 없이 운명은 그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에 대한 인간의 자유 의지'라는 주제에 더 호감이 갔다. 운명 비극이라 불리는 그리스 희곡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인지, 책을 읽으며 기대했던 감동은 받지 못했다. 차라리 신과 인간이라는 연극의 주제가 더욱 인상이 깊었다.

j***g 2000.06.0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