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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되돌려 다시 살 수 있다면...
"시간을 되돌려 다시 살 수 있다면..." 내용보기
최근에 읽은 귀욤 뮈소의 '사랑을 찾아 돌아오다'라는 소설이 생각난다. 생의 마지막 날이 세번이나 반복되어 일어나는 비현실적 설정하에서 지난번의 실패를 거울삼아 보다 나은 선택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는 모습을 담고 있다. 이 소설도 시간을 되돌려 다시 살아갈 수 있다면 우리는 과연 덜 후회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조금은 무거운 주제를 던지고 있다. '시간의 반복'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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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읽은 귀욤 뮈소의 '사랑을 찾아 돌아오다'라는 소설이 생각난다. 생의 마지막 날이 세번이나 반복되어 일어나는 비현실적 설정하에서 지난번의 실패를 거울삼아 보다 나은 선택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는 모습을 담고 있다. 이 소설도 시간을 되돌려 다시 살아갈 수 있다면 우리는 과연 덜 후회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조금은 무거운 주제를 던지고 있다. '시간의 반복' 장치가 우리의 삶에 주는 의미는 무엇일가?


서로 다른 시간의 흐름속에서 반복적인 삶을 살아가는 3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첫번째는 무명화가로 12년간 국전에 참여해 보지만 입선조차 하지 못하는 남자 정수와 그가 사랑하는 여인 지승에 대한 이야기이다.  두번째 남자 '나'는 농산물 직판장에서 경리일을 맡아보는 '나'와 사회복지사인 '그녀'와의 사랑을 그린다. 마지막 남자 '나'는 전직은행원으로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카페를 운영하면서 함께 살고 있는 여인 '라'를 붙잡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삶을 살고 있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사실 작가의 전작품에 등장하는 스토리에 소개된 사람들이라고 한다. 결국 이 작품은 개별 이야기속에 있는 인물들을 작가라는 매개를 통해 서로 연결해 보려는 시도로 읽혀진다. 스토리 속에서 세 사람이 별개의 인물들이 아니라 서로 연결된 점을 여기저기서 보여준다. 예컨데 지승은 세번째 남자에게 버림받고 첫번째 남자 정수와 엮이는 매개적 존재이다. 첫번째 남자와 두번째 남자는 동네 뒷산 팔각정에서 우연을 가장해 만나도록 설정되어 있다. 또한 각자 다른 세계의 주인공들은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과 한때 연결되어 사랑을 누리지만 자신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사랑을 잃어버리는 공통된 우를 범하게 된다.


작가는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메시아 이야기를 등장시켜 각 이야기들의 통합을 시도한다. 작가는 쳇바퀴 돌듯 시간의 반복장치에 얽매여 사는 삶을 인간의 영역을 초월한 삶으로 규정하고 있다. 귀욤 뮈소의 설정과 비교한다면 메시아의 구원이나 불교의 연기론을 연상시키는 종교적, 철학적 측면이 강하다고 하겠다. 소설의 제목에 나타난 '천국으로' 가는 길이 무엇인지는 이 소설을 읽는 독자가 스스로 정리해 나가야 하겠지만 결국 타인에 대한 공감과 소통의 부재, 자신의 이기심에 바탕을 둔 결정을 극복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c******4 2017.03.18. 신고 공감 11 댓글 8
리뷰 총점 종이책
천국으로 - 나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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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를 한동안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림이 과연 남자와 여자의 만남인지 아니면 이별인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커튼의 움직임을 보면 아마도 아래에서 위로 진행되는 것이 맞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남녀의 이별이 맞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표지의 색감이 주는 느낌 역시 <천국으로>는 로맨스 소설이 아닐까라고 생각을 하면서 책장을 넘기게 되는데, 곧바로 마주하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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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지를 한동안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림이 과연 남자와 여자의 만남인지 아니면 이별인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커튼의 움직임을 보면 아마도 아래에서 위로 진행되는 것이 맞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남녀의 이별이 맞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표지의 색감이 주는 느낌 역시 <천국으로>는 로맨스 소설이 아닐까라고 생각을 하면서 책장을 넘기게 되는데, 곧바로 마주하는 작가의 한마디 : <천국으로>는 로맨스 소설이 아닙니다.

 로맨스 소설이라는 선입관과 단도직입적으로 등장한 작가의 이 한마디로 인하여 책장을 넘기면서 나의 머리에는 이 두가지의 생각이 계속해서 교차하게 된다. 이러한 생각의 교차는 과연 <천국으로>는 어떤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라는 의문으로 이어지게 된다.


 팔각정 천장에 올라가서 청춘 남녀의 밀회를 엿보는 정수의 등장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변태 성욕자가 주인공이라니 정말로 작가의 말처럼 이 작품은 로맨스 소설이 아니라는 것인가? 하지만 그가 그러한 상황에 내몰린 사연을 알게 되면서 그래도 남녀의 사랑을 다루고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이어가게 된다. 엿보기를 통하여 성욕을 해소하는 정수의 모습은 다소 극단적이지만, 이러한 설정은 그가 우연히 알게 된 지승에 대한 짝사랑의 애틋함을 더욱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수의 과거 사연은 분명 로맨스 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독자의 동정을 이끌어낼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되었다. 


 두번째로 등장하는 남자의 이야기 역시 그러한 흐름으로 이야기된다. 평범 아니 삶에서 특별한 즐거움없이 그저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는 남자는 길에서 봉사 활동을 하던 여대생에게 묘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평소 숫기없던 그가 그녀에게 다가가게 되고, 그녀 역시 그러한 남자를 받아들인다. 너무나 헌신적이면서도 봉사에 관심이 많던 그녀와 남자의 만남이 아름답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 작품에 대한 작가의 언급으로 인하여 두 남녀의 관계에 대한 위기감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러한 위기감은 실제로 그녀가 남자를 외면하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남자는 자신의 실수를 탓하면서 후회를 하게 된다.


 여기까지 놓고 보면 도대체 왜 저자가 이 작품이 로맨스 소설이 아니라고 말하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곧바로 이상한 상황이 전개되기 시작한다. 여자로부터 외면받은 남자는 특정한 시간의 반복을 경험하면서 그 반복의 시간의 고통에서 허덕이게 된다. 처음에는 이러한 시간의 반복을 통하여 여자를 설득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결과는 항상 같았다. 그러한 비참한 결과를 반복적으로 느끼는 그 남자에게는 시간의 반복이 곧 지옥임을 깨닫게 된다. 그가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곧바로 현실에서 이루어지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기에 그 고통 속에서 영원히 갇혀 있는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이쯤되면 왜 저자가 <천국으로>라는 작품을 로맨스 소설이 아님을 서두에 밝히고 있는지를 직감하게 된다. 악마의 제안을 받아들인 정수가 그토록 그리던 지승과 연인이 되어 결혼에 이르지만, 진정한 사랑을 얻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깨닫는 장면은 스스로 사랑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를 보여준다. 악마가 말한대로 정수가 얻은 것은 지승의 사랑이 아니라 그저 바늘을 품은 미끼를 물었다는 것이다.


 세번째 조각으로 등장하는 남자 상욱의 이야기는 앞서 등장한 두 남자의 이야기보다 그로테스크한 느낌과 더불어 꽤 불편하게 느껴진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위하여 모든 것을 팽개치고 그녀가 원하는대로 지내면서도 정작 불안해하는 그의 모습은 왠지 앞선 두 남자보다 더욱 불안정하게 보인다. 그의 어렸을 적의 친구의 등장으로 인하여 그러한 불안은 쾌락의 극대화로 표현된다. 그런데, 이 표현이 꽤 불편하다. 동성애는 물론이거니와 노골적인 성적 표현으로 인하여 개인적으로는 읽기 쉽지 않았다. 백가흠의 <귀뚜라미가 온다>에서 느꼈던 그러한 불편함이 상욱의 사연에서 느껴진다.


 각기 다른 인물로 등장하였지만, 결국 서로가 또다른 자아라는 저자의 설정이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관음증이라는 변태 성욕, 시간의 반복, 쾌락이라는 욕구의 분출을 도대체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그들이 추구했던 사랑이 왜 이런 고통과 불편함으로 표현을 하려고 한 것일까? 중간에 끼어든 악마가 없었더라면 그들이 추구한 사랑도 우리가 흔히 접하는 일종의 사랑으로 보여질 수 있었을텐데, 왜 이들은 마치 악마의 유혹 또는 시험에 넘어갈 수 밖에 없게 그리고 있는 것일까? 이야기의 후반부에 예수의 최후를 묘사한 글의 등장이 과연 이러한 의문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을까?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선과 기적을 행하고, 타인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는 예수의 모습을 보는 순간 이 책의 제목 <천국으로>가 다시금 떠오른다. 아마도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이하면서 천국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러나, 세 남자는 악마라 예언한 것처럼 천국에 이르지 못하였을 것이다. 타인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한 예수와 사랑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을 추구한 세 남자의 대비를 통하여 과연 저자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는 솔직히 지금도 이해하기 쉽지가 않다. 


 <천국으로>에 등장하는 각각의 에피소드는 사실 기존에 발표한 나서영 작가의 작품들이라고 한다. 해당 작품의 내용을 과감히 줄여서 <천국으로>의 각각의 에피소드로 넣어서 이야기를 연결한 것이라고 한다. 완벽히 매끄럽다고 할 수 없지만, 기존에 발표한 작품들을 <천국으로>라는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낸 것에 대해서는 찬사를 보내고 싶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의도가 자신의 글쓰기에 대한 만족 이외에 과연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가 아닐까 생각된다. 이야기가 끝난 이후에 그가 추가한 '두서없는 가벼운 고백'과 '덧붙이는 이야기'는 오히려 읽는 이에게 부담으로 느껴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굳이 두서없이 이야기를 덧붙일 필요가 있었을까?

 따뜻한 사랑 이야기를 기대한 나로서는 다소 충격적인 책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하지만 <천국으로>라는 책을 통하여 처음 접한 나서영 작가에 대하여 관심을 가질 수 있었기에 나름의 수확도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g*******7 2017.03.20. 신고 공감 5 댓글 4
리뷰 총점 종이책
천국으로 / 나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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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되돌릴 수 있는 시간이 있고, 그 순간을 다시 살 수 있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덜 후회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이 책은 이런 가정을 '시간의 반복'이라는 장치를 갖고 적용해본다. 쳇바퀴 돌듯 반복적인 시간을 사는 남자는 이 행위를 통해 인간의 영역을 초월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처음엔 자유라고 여겼던 초월적 시간이 다시 유한과 구속에 불과했음을 깨닫고 이 반복조차 생의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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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되돌릴 수 있는 시간이 있고, 그 순간을 다시 살 수 있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덜 후회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이 책은 이런 가정을 '시간의 반복'이라는 장치를 갖고 적용해본다. 쳇바퀴 돌듯 반복적인 시간을 사는 남자는 이 행위를 통해 인간의 영역을 초월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처음엔 자유라고 여겼던 초월적 시간이 다시 유한과 구속에 불과했음을 깨닫고 이 반복조차 생의 감옥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여기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자신과 같이 시간의 반복을 되풀이 할 미끼가 필요하다. 이 책에 나오는 세 명의 주인공은 각자 다른 시간의 반복 속을 헤매고 있다. 처음엔 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반복된 시간 속에서 이들은 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세 남자의 역할은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이렇게 하면 안된다는 것을 말하는 듯하다. 첫번째 남자 정수는 무명화가다. 국전에 12년째 참가하고 있지만 입선조차 해본 적 없고 좋아하는 여자-지승-가 있지만 자신의 처지 때문에 다가가지 못한다. 멀리서 바라만 보던 지승이 다른 남자와 교제를 하자 몰래 훔쳐보던 일을 시작으로 10년째 다른 사람을 훔쳐보며 만족하는 변태성욕자가 되었다. 정수에게 악마가 다가와 거래를 제시한다. 정수는 덥석 그 미끼를 물고 말았다.

 

두번째 남자 '나'는 농산물 공판장의 경리과 직원이다. 길거리 자선냄비에서 기부를 독려하는 '그녀'와 사귀게 되지만 그녀는 취업한 복지관에서 장애아를 돌보는 일에 몰두한다. 그녀를 힘들게 하는 아이를 몰래 쥐어박는 장면을 그녀에게 들킨 뒤 그녀는 '나'를 거부했고, 그 아이와 사라져버린다. 나는 그녀를 찾기 위해 시간의 반복 속에 빠져버리고, 자신을 이렇게 만든 것은 정수라고 생각하고 있다.

 

세번째 남자 '나'는 전직 은행원으로 손님이 찾아오지 않는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적자에 허덕이지만 함께 살고 있는 라를 붙잡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어릴 때 알던 친구가 카페에 찾아오면서 '나'는 자유를 구가하는 친구가 이끄는대로 갖은 일탈을 한다.

 

세 사람의 욕구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맺어지는 거였다. 셋은 한 때 사랑을 얻지만 곧 자신의 행동에 의해 그 사랑을 잃어버리고 만다. 그리고 잃어버린 사랑을 찾기 위해 '시간의 반복'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지옥 같은 삶을 반복하고 있다.

 

작가는 위의 세 남자에게 천국은 허락되지 않는 공간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종장에 메시아가 나온다. 메시아는 십자가에 매달려 죽지만 우리는 그뒤 그가 당연히 천국에서 머물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 남자와 메시아의 차이는 뭘까. 이것을 알게 된다면 지옥과 천국의 답을 찾는 것이 아닐까. 세 남자는 자신의 욕구를 위해 사랑을 사용했지만 메시아는 자신을 필요로하는 불특정 다수에게 사랑을 베풀었다는 이타성이 세 남자와 다르다. 그러니 이타성이야말로 천국의 열쇠인 것이다.

 

천국은 하늘 위에 있고, 지옥은 땅 속에 있는 공간일까. 아니면 우리의 인지로는 알 수 없는 다른 차원의 공간일까. 이 책을 가지고 말한다면 지옥은 우리가 잘못된 행동을 통해 사랑을 잃어버리고 괴로워하는 그 시간을 지옥이라고 말한다. 천국은  이타적 사랑을 베푸는 순간이다. 그러므로 천국과 지옥은 지금 현재 자신이 하는 행동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이렇게 읽었다.

 

 종장은 앞의 이야기와 잘 연결되지 않았다. 차라리 앞의 등장인물들처럼 종장에서도 이타성을 실천하는 보통 사람의 이야기로 마무리 했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 혼자 생각해보았다. 재미있게 읽었는데 <두서없는 가벼운 고백>과 <덧붙이는 이야기>는 사족으로 보였다. 어떤 말은 짧을 수록 좋고, 아예 하지 않아도 괜찮을 때가 있다. 너무 많은 이야기는 몰입을 방해한다.

t******e 2017.03.17. 신고 공감 3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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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이끄는 천국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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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으로 ㅡ나서영 , 읽기도 전에 리뷰들을 먼저 봐버려서 기대감을 잔뜩 높인 상태로 책 속으로 빠졌다 . 이런 때는 대게 읽기 전의 감정들이 더 좋다 . 읽으면서 자꾸만 기대 심리를 배반당하는 순간들을 겪어야 하기 때문이다 .  최악의 부분까지 각오를 하고 시작해도 늘 책은 신기한 첫 경험의 상태로 나를 데려 가는 것 같다 . 정보들을 읽은 덕에 무슨 이야기가 진행 될 지 알았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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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으로 ㅡ나서영 ,

 

읽기도 전에 리뷰들을 먼저 봐버려서 기대감을 잔뜩 높인 상태로 책 속으로 빠졌다 . 이런 때는 대게 읽기 전의 감정들이 더 좋다 . 읽으면서 자꾸만 기대 심리를 배반당하는 순간들을 겪어야 하기 때문이다 .

 

최악의 부분까지 각오를 하고 시작해도 늘 책은 신기한 첫 경험의 상태로 나를 데려 가는 것 같다 . 정보들을 읽은 덕에 무슨 이야기가 진행 될 지 알았으면서 호기심에 읽고 읽으면서 , 납득보단 이미 드러난 결과들로 최종장을 향해가는 걸 본다 . 그건 그다지 달콤한 일은 아니다 . 그렇지만 또 하나 모르는 세계를 접한다는 점을 놓고 보면 책을 들고 읽은 시간이 아깝지만은 않다 . 읽지 않고는 모르는 거니까 .

 

역시 이 책으로 이 나서영 작가를 처음 만난다 . 많은 분들이 언질을 주셨는데 까먹고 여자분인 줄 알았다가 놀란다 . 공포영화에서 이 장면 다음은 점프컷이 나올 걸 알면서도 놀라는 것처럼 ...
 
책 속의 인물들은 정수 , 상욱 , 찬정 , 지승 , 라 정도로 압축된다 . 이들은 서로 꼬릴 물듯 서로 연관이 있는데 그 사실을 알기까진 책장을 계속 넘겨 보아야 한다 . 소재 자체가 충격적이고 과장된 성애 묘사들이 있지만 글의 형식을 놓고 볼 때 그렇게 나쁘진 않았다고 생각한다 .

 

세련미랄지가 음, 좀 투박하지만 말이다 . 생각하면 성애 묘사가 충격적이라기 보단 표현하는 언어 자체에서 든 거부감이 오히려 더 컸던 것 같다 . 특히 성기를 놓고 반복적으로 뱀과 연근을 놓고 표현하는 장면이 그랬는데 그 부분은 대체 몇 번이 나오는지 세어 봐 줄까 하다가 작가가 더 잘 알 것 같아서 그만 두었다 .

 

소설은 영화가 아니니 글의 행간을 우린 모두 상상으로 채워 나가며 읽어야 한다 . 그런데 영화는 직적접 성애 장면이나 거친 섹스 장면도 감독의 연출에 따라 분위기가 입혀지기 때문에 각색을 거친 눈으로 보게 되곤 한다 . 성애 소설도 (혹은 로맨스 소설 ?) 있는 껏 표현을 다 해서 색스러운 글보단 어느 정도 절제한 기교로 표현을 끌고 나가는 것에 익숙한 독자들이 더 많다고 생각을 한다 .

 

그렇기에 정제 (된 작가의 의도로는?) 가 덜 된 듯 느끼는 내 입장에선 이 책으로 작가가 뭘 전하고자 한 건지 헤매는 건 다음 수순처럼 당연한 일이었다 . 종교관에 입각 (?) 한 듯 보이는 마지막 (에 가까운 ) 부분의 악마 등장과  예수의 고행은 이 글 자체를 더 그로테스크한 곳으로 몰고 가려는 애씀으로 보였는데 , 없는게 차라리 상상력엔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

 

일방적인 내 생각이지만 , 대놓고 야하려고 하는 건 전혀 야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 그저 흉하다 . 그런 흉함까지 넘어서야 자유를 진정 겪은 것이라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 그런데 그렇게 얻은 자유의 끝은 또 환멸과 반복된 일상일 뿐일텐데 어디까지 가려고 하는 걸까 , 아니 우릴 어디로 데려가고 싶었던 걸까 ?

 

 ㅡ묻는다면 ... 음...작가만의 천국으로 ?!  라고 하겠지 ...


하하핫 . 즐거운 시간이었다 . 소개를 해주신 분께 책의 감상과는 별도로 깊은 감사를 전한다  ...

y*****7 2017.03.31. 신고 공감 3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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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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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다. 삶과 죽음에 대해 벗어날 수 없으며, 항상 흔들리고, 고통스러워 한다. 예기치 않은 상황이 불러오는 절망과 비극에 대해 속수무책이 되어가는 인간의 존재,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인간은 점점 더 자신의 나약함과 마주하게 된다. 작가는 그런 인간의 존재론적인 취약함을 소설 속에 드런내고 싶어 헸으며, 인간이 추구하고 싶어 하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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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다. 삶과 죽음에 대해 벗어날 수 없으며, 항상 흔들리고, 고통스러워 한다. 예기치 않은 상황이 불러오는 절망과 비극에 대해 속수무책이 되어가는 인간의 존재,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인간은 점점 더 자신의 나약함과 마주하게 된다. 작가는 그런 인간의 존재론적인 취약함을 소설 속에 드런내고 싶어 헸으며, 인간이 추구하고 싶어 하는 사랑에 대해서 정수와 지승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인간의 이중적인 모습 속에 숨어있는 사랑의 본질이 영원하지 않으며, 언제나 깨질수 있다는 걸 가상의 인물 지승과 정수를 통해 드러내고 있다.


소설 속 인물 정수는 미술이 전부인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미술을 통해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고 있으며, 국전에 매년 자신의 작품을 내지만 번번히 퇴짜였다. 정수에게는 변태 성욕자라는 꼬리표가 따라 붙었으며, 팔각정 천장에서 누군가를 엿보는 악 취미를 가지고 있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그 은밀한 곳에서 다른 남녀의 사랑을 엿보면서 자신이 가지지 못한 욕구를 채워 나가려는 정수의 마음, 그가 이런 행위를 하는 건 누군가의 사랑에서 비롯되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중학교 국어교사 이지승. 정수는 지인의 추천으로 지승이 다니는 학교에 미술강사로 부임하게 된다. 미술실 한켠에 자신의 작품을 내걸면서 몰래 지승을 관찰하고 있는 정수는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에게 자신의 미술 작품을 보여주고 때로는 그것을 선물로 주곤하였다. 지승은 그런 정수의 모습에 점점 빠져 들었으며, 두 사람은 시화전을 준비하게 된다. 이런 가운데 학교 교감 선생님의 멸시로 인해 정수는 학교에 나올 수 밖에 없었고, 그걸 바라보는 지승의 내면을 엿볼 수 있다. 일개 교사였던 지승은 정수가 내쳐지는 것에 대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으며, 그 불완전함과 나약함이 두 사람의 사랑으로 이어진다.


절망이었고 비극이었다.학교에 나왔던 정수는 그럼으로서 지승과 함께 할 수 있었다. 정수가 사라진 미술실은 또다른 미술강사로 채워졌으며, 그 곳에 지승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은 없었다. 시화전을 준비해야 했던 지승은 정수와 함께 하였으며, 두 사람은 점점 사랑에 빠져들게 된다. 불완전한 존재와 또다른 불완전한 존재가 만나 완전함으로 나아가는 건 어쩌면 그들의 욕심이었다. 지승이 가지고 있는 옛사랑에 대한 기록들은 정수에게 있어서 견딜 수 없는 욕망을 부채질 하였으며, 지승에게 자신을 채워줄 무언가를 요구하고 있다. 자신이 알고 싶어했던 질문에 대한 끊임없는 요구, 그럼으로서 그들은 신을 갈구하였으며 절망과 우울함으로 이어지게 된다.

k*******2 2017.04.0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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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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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직접 이야기를 서술한다.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설명하고 또 깨달은 생각을 설명하며 진행된다.그러면서 조각들이 맞춰진다. 남자 세 명의 이야기는 얽혀있다. 결국 그 모두 하나의 큰 줄기를 쫓았다.어쩌면 그대로 박제된 것처럼 존재했는지도 모른다.하지만 소설에서 비중은 적지만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힘이 있다.그건 작가가 아닌 바로 악마다. 악마의 힘에 의해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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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직접 이야기를 서술한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설명하고 또 깨달은 생각을 설명하며 진행된다.

그러면서 조각들이 맞춰진다.

남자 세 명의 이야기는 얽혀있다. 결국 그 모두 하나의 큰 줄기를 쫓았다.

어쩌면 그대로 박제된 것처럼 존재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설에서 비중은 적지만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힘이 있다.

그건 작가가 아닌 바로 악마다. 악마의 힘에 의해 인간의 시간이 반복되고

의식이 전환되고 합해지는 등의 초현실적인 현상이 일어난다.

이는 작가가 소설 안에 등장하는 악마에게 이야기의 진행을 위임했거나

작가가 악마를 통해 소설 안으로 들어갔다고 봐도 무방하다.

결국 결말은 악마의 의도대로 인간이 그리스도의 길을 쫓으며 고통을 견디는 것이다.

마지막 기도가 인상적이다. 어렵고 어렵다.

b*****a 2017.03.1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