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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라디오 시대>는 일제 강점기 시절, 시대적 변화의 정점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의 삶을 담아낸 소설이다. 처음에는 제목이 한 라디오 프로그램 이름과 같아 호기심에 집어 들게 되었는데, 책장을 열어 보니 빠른 전개로 단숨에 읽어 내려가게 하는 힘이 있는 역사 소설이었다. 씩씩한 재간둥이 호아는 북촌에서 외국인 선교사 메리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타고난 말솜씨가 있어 사람들 앞에 나서서 심청전이라도 한 자락 뽑아내면, 사람들 눈에서 금새 눈물이 뚝뚝 떨어질 만큼 혼을 쏙 빼놓는다. 이야기를 좋아하고 세상에 호기심이 많은 호아에게 근대 문물이 쏟아져 나오는 서울은 놀라움 그 자체다. 특히 '라디오'는 호아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바꾸어 준 놀라운 물건이다. 동네에게 유일하게 전화기가 있는 집이 호아네 집이건만, 라디오는 아무리 들어도 신기하기만 하다. 많은 사람들을 한곳으로 모이게 하는 힘, 모두가 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하는 힘이 있는 라디오에 호아는 마음을 빼앗긴다. 어느 날 호아네 집에 동동구리무 장수 아저씨가 찾아오면서 사건은 시작된다. 호아는 처음 보는 의문의 손님은 그 뒤로 호아네 집에 전화를 걸어 호아의 안부를 묻곤 한다. 호아는 두껍게 분장한 아저씨 얼굴보다 전화 속 목소리를 더 또렷하게 기억하게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호아는 아저씨와의 인연이 우연한 것이 아니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게 된다. 또한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의 지나간 이야기를 접하면서, 이 아픈 시대에 자신들의 삶이 어떻게 얽혀 있는지 하나하나 알아간다. 이제는 목소리만 들어도 알아볼 수 있다던 동동구리무 아저씨와 마주하던 날, 호아는 더 이상 어리기만 할 수 없다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훌쩍 큰 호아는 라디오를 통해서 일본에 핍박받는 조선인들의 목소리를 조용하지만 강한 목소리로 대변하게 된다.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겨 어지러웠던 시대에, 아픔을 지녔지만 당당하고 꿋꿋하게 삶을 이어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또랑또랑한 호아의 목소리를 타고 실감나게 그려진 작품이었다. 한 편의 드라마를 보듯 이야기를 읽어 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근대 역사의 한 자락을 훑어 내려갈 수 있다. 역사 의식에 대한 이슈로 들썩한 요즘, 이 작품을 통해 우리의 근대 역사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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