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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으로의 퇴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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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책상이 실은 텅빈 공간 속에서 엄청나게 빠르게 움직이는 전자의 집합이라는 얘기는 얼마나 공허한가! 전자 공간이란 태양계의 행성들 사이의 공간처럼 넓다는 이야기도 또한 얼마나 황당한가! 내 주위의 공기가 1평방 인치당 14파운드의 무게로 내 몸을 누르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웃기는 얘기인가! 내가 망원경으로 관찰하여 분명 지금 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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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책상이 실은 텅빈 공간 속에서 엄청나게 빠르게 움직이는 전자의 집합이라는 얘기는 얼마나 공허한가! 전자 공간이란 태양계의 행성들 사이의 공간처럼 넓다는 이야기도 또한 얼마나 황당한가! 내 주위의 공기가 1평방 인치당 14파운드의 무게로 내 몸을 누르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웃기는 얘기인가! 내가 망원경으로 관찰하여 분명 지금 저기에 있는 저 별들의 별빛이 실은 5만년 전 것이라는 얘기는 또 어떤가!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과학적 진실이)황당하다고 외치는 목소리에 의해 현혹되지 말자. 그런 목소리는 믿지 말아야 한다. 

<우리 수학자 모두는 약간 미친겁니다>,

물리학자 아더 에딩턴의 고백 중에서..

 

진화론이 마치 공공의 적인양 많은 사람에게

까이고 차인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현대 과학의 주도적인 입장에 있는 이론 중에

동네북처럼 아무데서나 뒤통수를 얻어맞는 수모를 겪는 이론이

진화론을 제외하고 어디에 있는가?

 

하기야 진화론이라는 놈이 그리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원숭이가 인간이 되다니!!

뜨뜻미지근한 웅덩이에 번개 몇 번 치고나니 생명이 탄생하고, 

단세포가 진화해서 공룡이 되고, 공룡이 다시 원숭이가 된다니

이따위 이론을 믿으라는 것 자체가 개그인지도 모르겠다.

 

허나 아더 에딩턴의 이야기에서도 등장하지만,

아무도 우리가 만지는 물건이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원자의 집합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으며,

그 작은 원자 내부의 전자 공간이 입자에게 있어 무한히 넓다는 것을,

우리가 보는 별빛이 수천만년 전 공룡 시대의 빛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들은 모두 똑같이 일반적인 직관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얘기지만,

적어도 진화론 만큼 의심 받거나 까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대체 왜?

대체 진화론이 뭐길래. 


 

'과학, 인간의 신비를 재발견하다.'는

(책 속에서)물질주의라는 이름으로 지칭되는

현대과학과 진화론을 까는 책이다.

 

저자인 제임스 르 파누는

진화론에 관련된 의문과 논란점을 수많은 예를 들어 차분한 어조로 설명해가며

진화론의 오류와 논리적 허점, 문제를 조곤조곤 짚어준다.

 

읽다보면 어쩐지 그동안 학교에서 배운 진화론을

아무 생각 없이 믿어 왔음에 분통이 터지는 책.

 

그러나 그렇게 따지자면

다윈 이후 150년간 수많은 생물학자와 진화론 옹호자들은

죄다 사기꾼이거나 제임스 르 파누가 깨달은 점을 깨닫지 못 한 멍청이일까?

 

150년간 수많은 공격을 받으면서도 정설로 굳건히 버티고 있는 이론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짐작해야 한다.

정설이 되어 있는 이론을 까대는 많은 책들이 그러하듯

이 책은 그럴싸 해보이는 논지와 근거로 썰을 풀지만

조금만 따져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예를 들어보자.

 

직립보행과 두뇌 크기의 발달이라는,

원숭이와 인간을 가름하는 중요한 사건의 진화에 있어 저자는

네 발로 뛰는 것에 비해 느리고 불완전한 이족보행이 가져다주는 불리함과

두뇌의 발달로 산모의 산도를 빠져나올 수 없기에

(쉽게 말해 엄마 뱃속에서 다 커서 나오기엔 대가리가 너무 커서)

덜 자란 채로 태어나 1년 이상 보살핌을 받지 않으면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인간의 불리한 특성을 들어

진화가 자연선택에 의한 것이라면

어떻게 이렇게 불합리한 방향으로 진화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저자는 진화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현재의 인간은 자연 선택에 의해 존재하며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지금의 인류가 가진 특성이

생존에 유리하다는 사실의 증명이다.

육식동물에 잡아먹히기 쉬운 느려터진 이족보행과

대가리 크기 때문에 2살 이전엔 걷지도 못하는 특성이 어떻게 유리하냐고?

 

사회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생존의 전략을 r 전략과 K 전략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r 전략은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가능한 순간에 최대한 많은 자손을 짧은 시간에 번성시켜

유전자를 이어갈 확률을 최대한으로 만드는 것이고,

K 전략은 비교적 안정적인 환경 속에서

적응력이 뛰어난 소수의 개체를 낳아

유전자를 이어갈 확률을 높이는 것이다.

 

6.25 시절 중공군의 인해전술이 r 전략이라면

소수의 특공대를 이용한 테러전은 K 전략이며

이 K 전략의 최고의 전략가들이 바로 인간이란 종이란 것이다.

 

두뇌의 발달로 수많은 불리한 환경에 적응하고

넓은 지구에 지겹도록 많은 자손을 퍼뜨린 생명체.

이 쪽수야 말로 인간 진화의 방향성에 대한 증명이 아니라면

무엇이 증명이 되겠는가.

 

갑작스런 변이는 어떨까?

 

저자는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많은 종의 경우 발견되는 화석들에서

갑작스럽게 큰 변화가 일어날 뿐(원숭이에서 갑자기 인간으로 넘어오는 것처럼)

조금씩 변화하며 종이 변해가는 과정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진화론을 공격한다.

 

그러나 이소성(異所性) 이론에 따르면

진화는 커다란 모(母)집단 보다

거기서 떨어져 나간 다른 장소의 작은 집단에서 훨씬 빨리 일어나며

(개체군이 작을수록 변이한 유전자가 빨리 퍼질수 밖에 없다.)

환경이 변했을 때, 거기에 맞게 변화한 작은 집단이 급속도로 주류 집단으로 등장한다.

 

생물이 화석이 될 확률이 그리 높지 않기에

그나마 커다란 집단만이 화석을 남길 확률이 높다는 것을 감안하면

화석은 언제나 비연속적으로 큰 변화만을 보여줄 수 밖에.

 

96페이지의 우주와 그 안의 모든 생명체가

어떻게 질서정연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은 어떨까?

 

저자는 만물은 내버려두면 질서정연할 수 없으며

무엇인가 잃어버린 에너지를 회복시키는 보완적인 힘이 반작용을 하지 않으면

우주가 질서를 유지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질서는 누구의 질서인가?

 

수학의 램지 이론에 따르면

일정 이상의 커다란 집단에서 어떤 종류의 질서를 발견하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어떤 집단이던간에 완전한 무질서를 이루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결국 모든 집단은 나름의 질서를 가지고 있다는 뜻인데

저자가 발견한 질서가 현재의 상태라면

그것은 결국 결과론적으로 현재를 절대화시킨 해석은 아닐까.

 

예를 드는 것도 지겨우니

그만 늘어놓자.

 

이런 식의 논박은 책을 읽는 내내 끝나지 않는다.

저자는 끊임 없이 진화론과 현대 과학에 대한 의심을 내비치지만

이에 대한 반박은 무궁무진한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반박을 저자가 하나도 싣지 않았다는 점이다.

저자의 인용을 보았을 때 분명 에드워드 윌슨이나 도킨스, 스티븐 제이 굴드의

저작을 읽었을 게 분명한데도

그가 공격하는 진화론의 내용에 대해 현대 진화론의 주류인

윌슨이나 도킨스, 굴드의 반박등은 거의 소개되어 있지 않다.

 

책만 읽고 있으면 생물학자들이란

그가 공격하는 진화론의 약점(?)에 대해 인정하면서도

대답이 궁해 그저 모른 척으로 일관하는 비겁자들이거나,

특별한 대안이 없기에 진화론에 문제가 있더라도 

눈과 귀를 틀어막고 진화론만을 고수하는 꽉 막힌 늙은이들로 보이는 것이다.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해

필요한 저자의 주장을 발췌해오지만 필요한 부분만 쏙 빼내어

결과적으로 오해를 의도하는 것이 꼭 조중동;;스럽달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사람들은 왜 진화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가.

 

저자는 18세기 프랑스 철학자인 드니 디드로의 말을

인용하여 이렇게 이야기한다.

 

인간 존재가 없다면, 감동적이고 장대한 장관인 자연은 슬픈 벙어리일 것이다.

만물은 광대한 황야이며, 어두운 곳에서 일어나는 현상은 주목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인간의 독자성과, 인간 정신의 대단함, 그 두뇌의 신비로움과

원숭이에서 진화되었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의 비연속성에 대하여.

생물학이 가져온 인간의 몰락;;(동물 진화의 연속선상에 있는 인간, 245p)과

그 비극에 대하여.

 

저자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결국

잃어버린 인간의 위대함을 되찾고

동물의 연속성 상에 인간을 놓아서는 안된다는 거부감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위대함이란 가치를 너무 날로 먹으려는 것은 아닐까.

인간이 위대한 것은 나락에서 기어오르기 때문이고

주어진 조건에 굴하지 않고 스스로 부여한 가치를 지켜내기 때문이지

태어나길 위대하게 태어난 것은 아니다.  

 

니체는 인간이 존재로서의 스스로에게 위대함을 부여하는 것을 두고 

'숲 속의 개미가 자신이야말로 숲이 존재하는 이유라고 믿는 것'과 같다고 비웃으며

'인간과 세계'라는 명제에서 지상에서 가장 우스운 '과'라는 글자가

저 안에 포함되어 있다고 했다.

 

자신이 세계에 속한 존재가 아니라

그것들과 대등하게 나열될 수 있는 존재처럼 보이고 싶은

인간의 오만이 집약되어 있는 그 놈의 '과'라니.

 

책을 읽는 내내 나를 불편하게 만든 것은

과학에 대한 그닥 의미 있어 보이지 않는 공격이나

저자의 인위적으로 보이는 정보의 취사 선택 같은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에 대한 낯 간지러운 자부와 오만이었다.

 

그러니 사람들이 진화론을 받아들이지 못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신의 형상을 본받아 창조된 인간이

특권을 박탈당한 채 동물계의 한 후손으로 격하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과학의 오만을 경계함으로써

오히려 인간의 오만을 되찾으려는 책.

책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18세기 시인인 알렉산더 포프의 글귀는

이 책이 진정 도달한 지점이 '18세기로의 퇴행',

그 이상은 아니라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지도 모르겠다.

k******0 2010.03.15. 신고 공감 5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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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을 통해 다시 생각해보는 인간의 의미
"진화론을 통해 다시 생각해보는 인간의 의미" 내용보기
1967년 4월 21일 과학기술처 설립을 기념해 이날을 '과학의 날'로 정한 후 매년 이 날을 전후한 일주일을 과학주간으로 운용하고 있다. 과학도는 아니지만 과학코리아를 위하여 과학관련 책 한권 정도는 읽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손에 잡은 책이 "과학, 인간의 신비를 재발견하다.(진화론에 가로막힌 과학)"이다. 지난 해(2009년)는 갈릴레오가 최초로 천체망원경이란 걸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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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4월 21일 과학기술처 설립을 기념해 이날을 '과학의 날'로 정한 후 매년 이 날을 전후한 일주일을 과학주간으로 운용하고 있다. 과학도는 아니지만 과학코리아를 위하여 과학관련 책 한권 정도는 읽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손에 잡은 책이 "과학, 인간의 신비를 재발견하다.(진화론에 가로막힌 과학)"이다. 지난 해(2009년)는 갈릴레오가 최초로 천체망원경이란 걸 만들어 하늘을 관측한 지 400년이 되는 해이며, 다윈이 탄생한 지 200년이 되고 '종의 기원'이 출간한 지 150년이 되는 해였다. 작년에도 다윈의 학설과 관련된 서적 두어권을 읽은 적이 있었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차르르~ 책의 사진을 훝어보면서 이 책도 진화론과 관련된 서적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결론이 조금 다른 책이다. 다윈의 진화론을 버려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책이다.

 

다윈의 진화론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 시대에 버리라니? 아직도 이런 분들이 있나? 하는 생각으로 책을 읽어나간다. 책은 참으로 방대한 진화론자들의 자료를 나열한 다음, 진화론적 주장이 아직 밝히지 못한 두 가지 장벽에 대한 이야기로 풀어나간다. 첫번째 장벽은 모든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이 어떻게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그렇게 정확하게 자신을 재생산하여 물려줄 수 있는가하는 문제이고, 두번 째 문제는 인간의 두뇌활동에 관한 것으로, 수십억 개의 뇌신경의 전기자극이 어떻게 변환되어서 우리가 주변 세계의 모습과 소리를 인식하며, 생각과 감정과 수많은 기억을 갖게 되는가? 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 두 가지 문제에 대하여 현실의 온갖 과학적 증거와 주장을 논리정연하게 소개한 후,진화론과 관련된 충족되지 않은 논리적 허점을 지적해 나가면서 군데군데 자신이 주장하고자하는 내용들을 복선으로 깔아나간다. 우리가 배운 진화론적 이론과 증거들이 빠짐없이 나온다고 할 정도로 방대한 자료가 제시되면서 인간발전의 수수께끼(직립보행과 언어 습득장치)를 제시한다. 그리고 과학의 한계(비실재적인 우주, 파헤칠 수 없는 인간 유전자)와, "종의 기원"등 진화론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는 확실한 논리 및 의심스러운 점(멘델의 법칙과 화석 자료의 완벽성 문제)을 자세히 설명하면서 호기심과 논쟁의 전개를 유도해 나간다. 사실 여기까지는 불완전한 진화론적 이론에 대한 반론으로, 보다 구조적이고 완전한 이론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비판적이고 과학적 분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저자가 유도하는 클라이막스는 진화론에 의하여 인간의 영성이 무시됨으로써 파생된 "인간의 몰락"을 주제로 감성과 과학이 혼재하면서 반격을 시작한다. DNA 연구 결과에 의하면 "돌연변이에 의한 점진적인 진화"라는 가설에 배치되는 증거(동일한 조절 유전자가 각기 다른 모든 생물체의 신체 기관을 결정한다는 것을 발견)과 측정불가능한 뇌의 예를 들면서 "생물학의 토대인 진화론을 버리고 실재의 이중성을 받아들임으로써 침묵을 깨고 우리 자신에 대한 통일적이고 균형잡힌 관점을 회복할 시대가 올 것이고, 진화론을 의심하기 시작할 것이다.(346쪽)"고 결론을 이끌어낸다. 결국 진화론자들에 의하여 '유물론적으로 평가받는 인간'을 다시 '인간다운 인간'으로 자리매김 하겠다는 것이다.
저자는 최종결론으로 물질주의 과학이 인간정신의 탁월성을 부인하고 자아의식과 자유의지가 두뇌활동이 만들어낸 단순한 착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매우 비합리적이라고 정의하면서, 종교와의 새로운 공감은 세속주의의 부흥에 맞서는 '합리적인 신앙'의 불을 계속 타게하고, 현재의 서구문화와 기독교가 압도적으로 지배한 과거의 서구문화사이의 불화를 치유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이렇게 책은 끝난다. 진화론자의 입장에서 보면 한마디로 별 하나도 주기싫은 쓰레기 책이다. 물론 종교론자들은 별 다섯개도 모자라 하늘의 별까지 합쳐주고 싶은 영광스런 책이다. 기독교도도 아니고 종교에 별로 걸림이 없는 나는 끝부분이 마음에 안들기도 하고 진화론자의 주장에 손을 들어주고 싶은 이성의 소리가 있기는 하지만, 인간의 정신적 영역을 중요시하고 비인간적 유물론적 감성을 배제하고자하는 필자의 의도에 양 손을 들어주고 싶다. 나날이 흉폭해지는 물질적 자본주의의 근간에 진화론의 이론이 숨어있다면 당연히 경계하면서 논리를 보완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비판 위에 보완되고 발전한다. 이런 진화론적 논란이 보다 더 과학적 발전을 가져온다면, 그리고 인간의 존엄이 존중되어진다면 이 책의 가치는 충분히 보상받을 자격이 있다고 공감해 본다.

 

 

추신 :
양장본인 이 책의 표지, 종이 질, 편집은 대단히 우수하다. 신경 쓴 내음이 물씬... 시그마북스의 역작이라고 생각한다. 



e***i 2010.04.21. 신고 공감 4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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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인간의 신비를 재발견하다
"과학, 인간의 신비를 재발견하다" 내용보기
다윈이 진화론을 발표했을 초기, 대다수의 사람들은 진화론을 조롱했다. 원숭이가 사람의 조상이라니 말이 되느냐는 것이다. 이들의 반대는 과학적 근거에 의거한 것이 아니라 편견과 고정관념 혹은 종교적 신념에 의한 것이었다. 오늘날의 상황은 정반대에 있다. 사람들은 진화론에 대해 거의 맹신적으로 추종한다. 그런데 진화론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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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이 진화론을 발표했을 초기, 대다수의 사람들은 진화론을 조롱했다. 원숭이가 사람의 조상이라니 말이 되느냐는 것이다. 이들의 반대는 과학적 근거에 의거한 것이 아니라 편견과 고정관념 혹은 종교적 신념에 의한 것이었다.
오늘날의 상황은 정반대에 있다. 사람들은 진화론에 대해 거의 맹신적으로 추종한다. 그런데 진화론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진화론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는 현상은 다윈의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천동설에 대한 지지가 그러했듯 진화론에 대한 대중의 지지는 과학적 판단의 소산이라기 보다는 막연한 편견과 선입견에 의한 것이다.
물론 진화론을 뒷받침해주는 과학적 증거나 데이터는 방대하다. 그 축척된 지식으로 말미암아 진화론은 나름대로 튼튼한 요새 안에 있고 그 요새를 공략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진화론의 약점 역시 화약고처럼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다만 진화론이 무신론(혹은 유물론)과 밀월 관계에 있기에 정직한 (무신론)학자들도 그 화약고를 못 본채할 뿐이다.
<과학, 인간의 신비를 재발견하다>는 말하자면 그 화약고를 터트린 책이다.(물론 견고한 편견을 가진 사람들에게 그 폭발의 의미는 미미할 것이다. 인간의 편견은 그 어떤 논증과 객관적 사실로도 깨드리기 힘들다) 이 책은 다윈의 진화론의 태생적 약점이었지만 그동안 간과되어 왔던 ‘완벽성의 수수께끼’와 ‘생명의 지속성’의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 돌고 있다.
 
저자는 진화론의 확산은 그 과학적 엄밀성 때문이 아니라 당시의 사회적 종교적 분위기와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당시의 많은 과학자들은 진화론이 ‘증명 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과학적인 사고와 조화를 이루었다’고 인정하였기에 받아들였다. 여기에 주목할 것은 ‘대체로’라는 말이다. 쉽게 말하자면 진화론은 겉으로만 그럴듯해 보였던 이론이었다. 그러나 조금만 더 자세히 파고 들어가면 수두룩한 난제와 증명 불가능한 이론으로 가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화론에 대한 맹목적 추종은 계속되었다(개인적으로 이것은 거의 불가사의한 일이 아닌가 생각된다. 다른 모든 과학에서는 증명할 수 없거나 모순되는 이론은 곧 폐기됨에도 불구하고 진화론은 계속해서 살아남았다.) 진화론에 반하는 명백한 증거가 나오면 이를 해결하기 위해 복잡한 이론이 동원되었다. 멘델의 유전법칙을 해결하기 위해서 피셔, 홀데인 등은 복잡한 수학모델을, 이타적 행동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트리버스도 난해한 수학공식을 들고 나왔다. 재미있는 점은 그 난해하고 복잡한 수학 모델이 과연 타당한가에 대한 치열한 논쟁은 없고, 단지 진화로의 골치 아픈 난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재빠르게 받아들여졌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얼렁뚱땅 넘어갔다. 일반적으로 학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진화론에서는 번번이 일어났다. 진화론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이론들은 거의 대부분 엉성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진화론은 너무나 쉽게 반박할 수 있는 이론이며, 진화론이 틀렸다는 가장 결정적인 증거는 바로 인간의 유전자와 뇌라는 것이다.
 
진화론에 대해 잘 모르면서도 진화론을 진리라고 믿고 있었던 사람에게 이 책은 엄청난 충격을 줄 것이다. 그러나 진화론에 대해 이론적인 무장이 갖추어진 사람들에게 이 책은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을 것이다. 진화의 증거가 무수도 많다고.. 어떤 이는 리차드 도킨스를 읽어보라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도킨스는 전혀 증명할 수 없는 전제를 토대로 이론을 전개해 나가고 있다. (잘못된 전제가 뛰어난 천재를 소설가로 만들어 버린 것 같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하는 진정한 핵심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잘못된 이론이 거의 2천여간 과학의 발전을 가로막았듯이, 현재는 진화론이 생물학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다. 진화론을 던져버리면 생물학은 보다 더 깊은 차원에서 생명의 심오한 신비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이 책은 진화론을 과학적으로 논박하고 있다. 이 책을 읽노라면 진화론이 얼마나 엉성한 이론임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사람들 속에 깊이 진리라는 편견으로 새겨져 있었는가를 돌아보게 한다. 이 책을 읽으면 진화론을 걷어차버릴까? 사실 그것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진화론을 지지하던, 하지 않던, 우리 일상은 별로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성과 논리로 무장한 최첨단 과학시대에 산다고 하면서도 한편으로 점이나 운세를 보는 사람들은 조금도 줄지 않고있다. 인간은 참으로 모순적인 동물 아닌가? 중요한 것은 내가 믿고 있는 것이 정말 든든한 기반위에 서 있는가를 돌아보는 것일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은 진화론을 지지하던 그렇지 않던 간에 읽을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l****c 2010.04.01. 신고 공감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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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의 찬반 여부와 관계없이 흥미로울 책.^^
"진화론의 찬반 여부와 관계없이 흥미로울 책.^^" 내용보기
주말 오후, 좋아하는 케이크 한 조각과 함께 편안히 책을 읽으려고 했는데.. 이 책은 단순히 그냥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었다. 아니 솔직히 무신론자에 진화론을 믿어왔던 나에게는 상당히 불편한 책이었다.ㅎㅎ     저자는 생물, 물리, 화학 등 기초과학에 관한 개념들을 아주 쉽게 설명하고자 했다. 가령 DNA의 염기 A,T,G,C를 4개의 색이 다른 원반이라고 표현한 것 처럼.
"진화론의 찬반 여부와 관계없이 흥미로울 책.^^" 내용보기


 

주말 오후,

좋아하는 케이크 한 조각과 함께 편안히 책을 읽으려고 했는데..

이 책은 단순히 그냥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었다.

아니 솔직히 무신론자에 진화론을 믿어왔던 나에게는 상당히 불편한 책이었다.ㅎㅎ

 

 

저자는 생물, 물리, 화학 등 기초과학에 관한 개념들을 아주 쉽게 설명하고자 했다. 가령 DNA의 염기 A,T,G,C를 4개의 색이 다른 원반이라고 표현한 것 처럼.

그런데 '이중 나선 구조 유전자'를 그냥 한 단어 DNA라 하면 될텐데 왜 계속 저렇게 표현하는 것인지..저런 류의 어휘 선택이 몇 군데 있었는데 저자가 이해를 돕고자 일부러 그런 것인지, 역자의 주관인건지는 모르겠지만 조금은 거슬렸다. 원서로 공부하다가 한글로 번역된 책을 보면 용어가 익숙하지 않은 것처럼 처음엔 책에 집중하기가 약간 힘들었다.

하지만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바다달팽이의 민감화 실험이나 장기기억 강화에 대한 시냅스와 신경전달물질들의 메커니즘 설명등 전공 서적에서나 봄직한 내용들이 나왔다. 이 책에서 놀랐던 점은 논문, 서적 등에서 발췌, 인용한 방대한 내용들이다. 마치 한 편의 잘 정리된 리뷰논문을 보는 것 처럼. 본문 뒤에 나열된 엄청난 양의 reference들만 봐도 저자가 이 책을 출간하기까지 얼마나 많이 노력했는지 알 수 있다. 문제는 레퍼런스가 다소 저자중심적이라는 것이지만ㅋ 분명히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학계의 반응은 두 가지 이상 일텐데 말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과학이 표방하는 유물론적 성향과 그것과 반대되는 것은 경시하는 풍조를 비판하고 있다. 유물론적 이론의 핵심인물인 막스, 프로이드, 다윈 중에서 다윈의 진화론에 대해 격하게(?) 비판하고 있다. 헉슬리경을 다윈의 신봉자라 표현한 것만 봐도 얼마나 그를 비난하는지 알 수 있다.ㅋ

저자는 Human Genome Project와 뇌과학의 발달에 대한 이야기로 다윈의 진화론이 재조명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한다. 저자가 진화론의 몰락을 바라는 이유 중에서 내가 흥미로웠던 세가지는 다음과 같다. 

 

 

1. 게놈프로젝트의 결과 인간이 다른 영장류나 곤충 등과 유전학적으로 다른 점이 없다.

생명체의 유전자 해독 결과를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인간은 영장류와 2%정도 다른데 그 2%안에서 인류의 진화를 설명할 수 있을까' '한낱 해수욕장에서 불의의 사고를 제공하는 성게와 인간의 유전자 수가 같다.' 라며 게놈 프로젝트의 결과물에 대해 상당히 회의적이다. 나는 솔직히 생각이 다르다. 저자가 의사라서 거시적인 시각을 소유한지는 모르겠지만 분자레벨에서 연구하는 사람들은 유전자 하나 아니 염기 배열 하나만 달라져도 얼마나 엄청나고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예가 겸상적혈구 빈혈증이다. 그리고 6번 염색체의 유전자 하나의 전좌로 인해 만성골수성 백혈병이 발병하기도 한다. 영장류와 2%차이는 무시할 수 있는 적은 수치도 아닐뿐더러 게놈에는 인트론같은 정크DNA도 상당량 포함되므로 양적 비교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또 아직은 단순히 생명체들의 유전체만 해독한 것으로 각 유전자들의 기능들은 얼마 전에 우리나라 이화여대에서 동맥경화 관련 유전자와 메커니즘을 발견한 것처럼 세계 여러 학자들이 연구 중인 것으로 안다. 무지가 반론의 근거가 되기에는 좀 무리가 아닐까..

 

2. 호모 에렉투스의 직립보행과 두뇌 크기발달은 다윈의 자연선택설에 반(反)한다.

이 부분에서 저자가 설명하는 것은 맞는 말 같다. 직립보행의 결과 하체의 해부학적 변형으로 인한 출산의 어려움은 세대번식의 측면에서 볼때 인간에게 불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린 아이의 입장에서는 달라지지 않을까..? 어린아이는 4발로 구부려 걷는 것보다 2발로 직립하는 것이 커보이기 때문이다. 대형동물의 위협에는 여전히 속수무책이긴 하겠지만 소,중형 동물에게는 유리할 것 같다. 부시맨 영화에서처럼..그렇게 직립보행하던 어린이들이 크면서 자신들의 자손을 낳고 그 자손들 역시 직립을 교육시키면서 자연스레 직립보행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여러번의 세대교체 후 결국 인류가 직립보행하게 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두뇌크기는 커질수록 중력에 반해서 생존에 불리하다고 하지만 그 당시 자연 환경 속에서 그런 단점을 극복할 만큼 지능의 발달이나 두손의 자유화가 더 이득이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많은 생각을 하게끔 만드는 부분이다.

 

 

3. 인간의 자유의지와 영혼의 부분이 PET 스캔으로도 설명이 불가능하다.

이 부분은 사실 나도 동감한다. 측정 불가능한 것이 현재로서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옛날에 어렸을 때 이런 생각을 했었다. 나의 유전자를 복제해서 복제인간을 만들면 나의 기억이나 추억들이 고스란히 전달될 수 있을까?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완벽하게 나와 대체될 수 있을텐데..물론 원래 불가능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현재의 기술로는 -돌리나 영롱이 등의 복제동물만 봐도- 외형만 닮은 새로운 개체가 될 뿐이다.

그렇다면 과연 인간의 자유의지와 영혼, 감정에 대한 메커니즘을 밝힐 수 있을까? 저자는 앞서 나열한 정서적인 부분을 단순히 뇌와 신경물질의 작용이라 단정짓는 유물론적 사고를 비판하면서 다윈 역시 정서적인 부분은 진화론으로 설명하기에는 무리가 있음을 인정했다는 사실을 언급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이타심'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이타심은 적자생존에 반하는 개념이 아니냐고 진화론을 반박한다. 하지만 질투, 탐욕 등의 부정적 감정들도 역시 공존하며 학교나 취업, 직장 등 아직도 사회에서 우리는 누군가를 이기기위해 싸우고 있으며 이는 적자생존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역시 아직은 밝혀지지 않은 미지의 세계니까 단정짓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PET으로 뇌의 언어 운동과 감각 부분을 실험하여 밝혀진 브로카, 베르니케 영역을 저자는 가볍게 치부했지만 이러한 노력들의 축적으로 결국은 저자를 포함한 그들이 표현하는 신의 영역 혹은 설계자의 신비가 풀리지 않을까..?

 

 

 

 

 

저자의 새로운 시각과 방대한 지식에 감탄도 하고 나와 견해가 다른 부분에서는 반박도 해보면서 처음에는 다소 거부감이 들었지만 나중에는 상당히 즐겁게 읽은 것 같다. 다윈의 적자생존이 맬서스의 인구론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사실은 몰랐었는데 솔직히 좀 웃기다.ㅎㅎ 그리고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이 언급됐을때는 대입 면접때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생태계에 인간이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떨면서 말한 기억을 반추하기도 했다. 히틀러의 나치즘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쳤던 헤겔의 우생학 역시 예상대로 언급되었고 감정을 수식으로 표현한 해밀턴, 트리버스 이야기 부분은 신기했다. 이 책은 많이 알려진 이야기도 있었고, 아는 이야기도 있었고, 전혀 몰랐던 이야기도 있었다. 진화론이 모든 상황을 다 설명할 수 있는 완벽한 이론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저자가 진화론을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언급한 멘델의 유전학 조차 예외, 모순되는 부분이 많은 것처럼. 그리고 과학의 유물론적 사고관을 무조건 옹호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오직 진화론 하나만 정설이라고 믿어왔고, 과학의 유물론적 사고 덕분에 의학, 과학등 사회 여러 분야에서 인류가 혜택을 받고있다 생각해온 나에게 이 책은 새로운 사고의 환기를 야기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저자가 진화론을 비판은 하지만 그것에 대체될 만한 이론의 언급은 없다는 것이다. 다만 끝에서 종교에 대해 비판한 세 사람을 새로운 패러다임에서는 몰락할 것이라 표현한 것을 보면 저자의 의중을 가늠할 수는 있지만 그 생각은 나와는 사맞디 아니한 듯 싶다. 

 

 

오랫만에 상당히 역동적으로(?) 독서를 한 것 같다.ㅎㅎ

진화론을 믿든 안믿든, 역설적이게도 그 이론을 논리적으로 반박을 한 이 책만큼 진화론에 대해 정리가 잘 된 책은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시대별 철학 사상과 결부시킨 과학의 발달 흐름을 훑어보기에도 좋은 책 같다. 누군가가 공들여 만든 좋은 책을 보면 나의 가치관과 괴리가 있건 없건 상관없이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다.^-^

f********2 2010.03.07. 신고 공감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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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는 별개로 과학을 연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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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결론은 무얼까? 확실하게 밝히지 않아 정확한 의도는 알 수 없지만 토마스 쿤의 <패러다임>을 들먹이며 혁명 이전의 진리와 혁명 이후의 진리가 급격하게 바뀌는 것처럼 이전의 것은 사장되어 소멸하고 이후의 것은 새로운 시대에 더욱 확대 생산되어 전성기를 맞이할 것이라고 말하며 책을 끝맺었다.     무엇을 얘기하고 싶었던 것일까! 코페르니쿠스를 기점으로 종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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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결론은 무얼까? 확실하게 밝히지 않아 정확한 의도는 알 수 없지만 토마스 쿤의 <패러다임>을 들먹이며 혁명 이전의 진리와 혁명 이후의 진리가 급격하게 바뀌는 것처럼 이전의 것은 사장되어 소멸하고 이후의 것은 새로운 시대에 더욱 확대 생산되어 전성기를 맞이할 것이라고 말하며 책을 끝맺었다.

 

  무엇을 얘기하고 싶었던 것일까! 코페르니쿠스를 기점으로 종교가 쇠퇴하고 과학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등장하였으나 이제 다시 과학이 그런 쇠퇴를 맞이하고 새로운 <종교과학>이란 패러다임이 등장하여 새 시대를 열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분명 이 책은 얼버무리고 있어서 정확하게는 알 수 없으나 글쓴이가 말하는 새로운 과학 패러다임이란 <과학으로 무장한 종교>, 즉, 과학이 파헤쳐 놓은 일련의 성과는 폄하하면서도 과학의 명료한 점만 뽑아 자신들의 교리의 헛점을 메워 새롭게 구성하고 기존 과학의 헛점을 파헤쳐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 자신들의 정당성을 증명하려 하는 것이다.

 

  각설하고, 이 책을 읽는 내내 한심한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다. 굉장히 복잡하고 놀라운 과학의 신비함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과학의 단점을 꼬집고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만 골라내어 흠집내기에 급급하였기 때문이다. 마치 선거철이면 늘 도마에 올라 시끄러운 <네거티브 전략> 마냥 상대방 후보를 비방하는 볼성사나운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물론 과학의 맹점이나 모순점, 비과학성 때문에 스스로 개혁을 해야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들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다시 말해, 모든 것을 과학으로 설명하려는 자세는 위험하며 그럴 필요도 없다는 사실을 종종 망각하여 벌이는 꼴불견이 있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과학만능주의>라는 것인데, 이는 분명 과학이 경계해야할 부분이다.

 

  그런데 더욱 볼성사나운 것은 <종교>가 과학이라는 옷을 입고 짐짓 과학의 잘못된 점을 훈계하는 것이다. 그리고 슬며시 종교가 세상을 지배하던 시절이 그립다는 듯이 종교의 절대성을 은근히 내세운다. 역겹다. 글쓴이가 과학을 이 책에서처럼 꾸짖듯이 지난 천 년동안 암흑시대(중세)에 벌인 숱한 종교의 잘못은 왜 반성하고 각성하지 않는단 말인가. 왜 과학을 흠짐내어 억지로 끌어내리지 못해 안달난 모습을 보이는가 말이다.

 

  글쓴이는 주장한다.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이론이 헛된 것처럼, 프로이드의 꿈(무의식)의 해석이 헛된 것처럼 다윈의 진화론도 곧 그렇게 될 것이라고. 그 어떤 이론도 신이 아닌 이상 완벽할 수 없으므로 결국 헛된 것이다. 그러므로 신의 이름으로 포장된 이론이 아니고서는 절대로 완벽할 수 없다. 따라서 진화론은 틀렸다. 모순되고 헛점이 많은 이론이므로 아직 진화론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할 수는 없지만 결국 틀렸다는 것이 증명될 것이기에 일찌감치 버려야 한다.고 글쓴이는 주장한다.

 

  불쾌하다. 이따위 글쓴이가 <과학자>의 탈을 썼다는 것이 더욱 불쾌하다. 차라리 <신학자>라고 자기소개를 하는 것이 마땅하다. 모름지기 과학자라면 명백한 과학적 증거로 다른 이론을 반박하고 증명하는 것으로써 자기 이론의 정당성을 주장해야 할텐데, 그렇기는커녕 진화론이 모든 것을 설명하는 듯 하지만 모든 것을 설명하지 못하니 틀렸음이 분명하고, 틀렸으니 스스로 물러가 다른 이론(짐작컨데 <지적설계론> - 인간의 지성보다 '더 높은 지성'이 세상을 창조했다는.)이 설자리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은 뻔뻔하다 못해 괘씸할 지경이다.

 

  이 책은 말한다. 다윈의 진화론이 불명확하다고. 장대한 세월을 통해 조금씩조금씩 진화한 결과로 <인간>이 탄생했다고 설명하지만, 다윈 스스로도 아빠엄마의 형질이 계속 유전된다고 말하고선 어떻게 아빠엄마가 원숭이인데 자식은 인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냐. 이건 말이 안 된다. 분명히 진화가 아닌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창조자>가 있어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들었다는 것이 더 명쾌하게 설명되지 않느냐고 말이다.

 

  물론 이 책에서 위와 같은 말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애둘러 표현한 모든 것이 귀결되는 말은 바로 저 말과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나는 인정할 수 없다. 대개의 종교는 <과학>과는 별개로 자신의 존재를 밝히는데 반해, 유독 기독교만은 <과학>을 업신여기고 자기 편을 들지 않는다고 꾸짖는다. 왜 그래야만 하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 이해하기 힘들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다.

 

  <과학만능주의>를 비롯해서 과학이란 이름으로 저지른 잘못은 분명 비판받아 마땅하고 과학적 지성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증명하려는 것은 정말 잘못되었습니다. 그러나 과학을 빙자한 <종교과학>이 과학의 연구성과(진화론을 비롯)비난하는 것에는 찬성할 수 없습니다.



YES마니아 : 로얄 이달의 사락 z******8 2010.03.07. 신고 공감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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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과 지적설계론의 경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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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후반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인류사회 전반의 사고를 포획하고 있는 3대 전환적 사고로서 마르크스와 프로이트, 그리고 다윈을 꼽는다. 저자는 마르크스와 프로이트의 이론은 부실함이 이미 입증된 것이라 단정 짓고, 21세기에도 여전히 인간을 해독하는 사고인 진화론에 대해 명백한 오류를 지닌 과학이라 지적함으로써 물질주의적 기반의 과학은 이제 새로운 패러다임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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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후반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인류사회 전반의 사고를 포획하고 있는 3대 전환적 사고로서 마르크스와 프로이트, 그리고 다윈을 꼽는다. 저자는 마르크스와 프로이트의 이론은 부실함이 이미 입증된 것이라 단정 짓고, 21세기에도 여전히 인간을 해독하는 사고인 진화론에 대해 명백한 오류를 지닌 과학이라 지적함으로써 물질주의적 기반의 과학은 이제 새로운 패러다임을 위해 물러나야 한다는 주장을 전개하고 있다.

이 저술의 전체를 유유히 흐르는 핵심적 사고는‘이중 실재’, 즉 인간의 이해에 있어서는 물질적인 것과 비물질적인 형성력의 존재를 인정해야한다는 논리라 할 수 있다. 인간의 정신작용을 단지 두뇌의 전기적 화학적 작용의 단순한 결과로 말하는 것은 사실을 호도하는 물질중심 과학의 오만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결과론적인 내용만 얘기할 경우 마치 그럴듯한 주장처럼 보일 수도 있다. 이러한 주장의 배경에는 플라톤과 기독교 이원론의 부활, 그리고 데카르트의 영혼설까지를 포함하여 기독교라는 제도종교의 복권이라는 의도가 있으며, 보다 궁극적인 의지는 진화론을 대체할 수 있는 인류미래를 위한 진정한 패러다임으로서‘지적 설계론’을 내세우는 것이다.

사실 책을 구성하고 있는 내용은 과학적 접근처럼 보이지만, ‘신비’와 ‘영혼’이라는 단어의 위력을 설득키 위한 의사과학(擬似科學;pseudo)이라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들은 과학을 비판할 때 항상 신비주의와 영혼을 얘기하며 본질을 흐리게 하는 일관된 패턴을 사용한다.

또한 이 책이 아주 흥미로운 것은 ‘리처드 도킨스’의 저술 중 진화론에 입각한 시정(詩情)넘치는 과학을 이야기하는 『무지개를 풀며』에 대한 모방을 하고 있다는 점인데, 특히 영국 시인‘존 키츠’의 동일한(물론 반대의 의미로서)인용에서부터 유전자와 뇌과학이라는 정확히 일치하는 소재를 이용하고 있음을 발견하면서 마지막까지 자신의 속내를 감추는 저자의 광신적 의지에 실소를 멈출 수 없다는 것이다.

저자가 주장하는 다윈의 진화론이 오류로 점철된 비과학적 이론이라 비판하고 폄훼하며 조롱하는 논리는 그야말로 단순하다. 왜 진화의 과정을 볼 수 있는 증거, 즉 수 백 만년, 수 천 만년 전의 화석뼈가 발견되지 않느냐는 것이며, 또한 캄브리아기의 지층에서 발견되는 고생물 화석의 경우 전 시대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생물이 무진장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다윈의 점진적 진화이론으로는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을 들고 있다. 그러나 저자가 비판의 대상으로 인용하는 진화생물학자인‘스티븐 제이 굴드’는 진화양상은 대부분의 기간 동안 큰 변화 없는 안정기와 비교적 짧은 시간에 급속한 종분화가 이루어지는 분화기로 나뉜다는‘단속 평형설(punctuated equilibrium)'에서 입증하고 있음에 대해서 외면하는 것으로 대처하고 있으며, 화석뼈의 발견은 화학적, 물리적 현상을 이해하고 있다면 거의 억지에 가깝다는 것을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라는 판단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와 같은 진화론의 공박을 지원하기위한 기반으로 게놈프로젝트와 두뇌지도가 사실상 실패한 과학으로 지금까지의 결과 이상의 과학적 성취는 불가능하다고 단언을 내리고 있다.

저자의 이 두 과학적 시도가 지니는 한계와 과학의 오만에 대한 경고가 타당성 있는 지적이라는 점에 공감한다. 인간게놈 프로젝트를 통해 DNA의 서열들과 암호가 말하는 의미를 알았다고 해서 그 암호가 어떻게 인간의 개별 장기들을 만들고 영향을 주는지, 더구나 ‘조절 유전자’의 경우 파리, 쥐, 인간에게 완전히 동일함에도 다른 생물, 형태를 만들어내는 지를 설명치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가능하다고 판단된다. 그리고 뇌의 영역별 기능을 파악할 수 있다고 자만하였지만 뇌의 활성화 상태는 오히려 뇌 전체가 일사불란하게 시스템화되어 움직이는 모습을 당혹스럽게 봐야 하는 결과거나, 동일한 사고와 판단의 상황에서 청년과 노인의 뇌 활동영역이 전혀 다른 곳에서 이루어지는 것과 같이 오히려 더욱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만, 이 저작에 있어서 원형질적인 두뇌에서 일어나는 전기자극이 어떻게 엄청난 범위의 정신생활과 독특한 생각, 기억, 신념이라는 비물질적 형상화를 만들어 내는지에 대한 의문과 이를 위한 반증들은 과학으로서 보다는 철학적 숙고를 요하는 과제라 하는 것이 타당하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에 더해 진화론을 비롯한 과학 만능적 사고가 조성해 낸 오늘의 물화된 세상에 대한 폐해의 지적은 현대 과학에 대한 준엄한 비판으로 수긍할 수 있다. 그러나 과학은 가설에서 출발하여 이를 입증하고 오류를 수정하며 진일보된 이론으로 정착하며, 진리로서의 지위를 획득하는 것이 아닌가?

한계와 불가능이라는 단언적 선언이나 말하지 못함을 이유로 과학을 부정하는 논리는 올바른 도리는 분명 아닐 것이다. 과학이 반성하여야 할 부분은 이 저작의 지적을 넘어 근대산업사회가 시작된 이래 작금의 시장자본주의가 끊임없이 저지르는 인간의 상품화처럼 사고의 대전환과 진정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요구는 수없이 지적되고 시도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진화론을 전면부정하고 지적설계론을 부르짖을 일은 아닌 것이다.

인간의 정신이라는 비(非)물질계에 대한 성찰, 그리고 신유전자 프로젝트들의 겸허한 되돌아봄을 생각케 하는 저술임에 틀림없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배려하는 척하면서 멸시하는 사이비 과학의 대표적 방법론을 구사하며, 진정한 과학에 동기를 부여해야 할 경이로운 감정 대신 그 사생아인‘신비주의’와‘초월성’과 손잡은 음흉한 엉터리 과학을 표방하고 있는 점은 안타까운 점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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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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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인 2009년은 참으로 재미있는 해이다. 왜냐하면 2009년은 과학계에서 매우 중요하고, 큰 획을 그은 찰스 다윈이 탄생한 200 주년이 되는 해이자, 동시에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론을 설명하여 세상을 변화시킨 그의 책인 '종의 기원'이 출간 된지 150 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리고 또한 종교계에서도 역시 매우 중요하고, 큰 획을 그은 종교개혁가 존 칼빈이 탄생한 500주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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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해인 2009년은 참으로 재미있는 해이다. 왜냐하면 2009년은 과학계에서 매우 중요하고, 큰 획을 그은 찰스 다윈이 탄생한 200 주년이 되는 해이자, 동시에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론을 설명하여 세상을 변화시킨 그의 책인 '종의 기원'이 출간 된지 150 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리고 또한 종교계에서도 역시 매우 중요하고, 큰 획을 그은 종교개혁가 존 칼빈이 탄생한 500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그 한 해는 과학과 종교를 대표하는 두 인물을 크게 기념하는 해이니 무척 재미있다.

 작년 한 해에 세계 곳곳에서 두 인물을 기념하기 위해 다양한 행사가 있었다. 특히 다른 때보다 두 인물에 관련된 책이 많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재미있게도 진화론이 허구적인 이론임을 밝히는 수많은 증거들의 발표가 있었다.

 찰스 다윈의 진화론은 발표와 동시에 숱한 논쟁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인간은 원숭이에서 진화했다"는 찰스 다윈의 한 마디 말로 인해 "신이 인간을 창조 했다"고 믿어온 기독교 중심의 서구 사회는 발칵 뒤집어 졌고, 그로 인한 논쟁은 1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과학, 인간의 신비를 재발견하다.'

 

 이 책은 다윈의 진화론을 반박하는 책은 아니다. 그렇다고 그것을 옹호하는 책도 아니다. 그저 인간의 발달과 신비를 과학적으로 살펴보고, 인간을 설명하는 과학의 한계를 지적한다. 어찌 보면 진화론에 맞서는 책이 될 수도 있고, 동시에 그것을 옹호하는 책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고, 지극히 중립적인 입장에서 진화론을 조망한다. 다만 말미에 다윈의 쇠퇴에 살짝 무게를 더한다. 과학적 지식이 없다면 조금 어렵고, 지루하게 느껴지는 책이다. 하지만 지식이 없더라도 관심이 있다면 상당히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인간의 발달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과학에서는 어떻게 설명하고, 그 설명의 한계는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그것에 도움이 될 만한 책이다.

 

 진화론이 논쟁의 대상이 될지는 다윈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이 세상을 크게 놀래킬 것이라고 그도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세상을 완전히 엎고, 막강한 영향력을 오래도록 발휘할지는 그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윈의 진화론으로 인해 세상은 150년 동안 엄청난 갈등과 변화를 겪었다. 과학적으로 상당한 진보를 이루었지만 종교적으로는 매우 큰 쇠퇴를 겪도록 만들었다. 그로 인해 반목과 대립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진화론이 발표된 지는 불과 150년밖에 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 미래를 정확하게 점칠 수는 없다. 하지만 예상하기로 앞으로도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영향력을 끼칠 것이다. 지금 당장 종말이 오거나 진화론을 반박 할 만 한 결정적인 또 다른 과학적 이론이나 신학적 근거가 발표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f********3 2010.06.0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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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과학, 인간의 신비를 재발견하다.
"(서평) 과학, 인간의 신비를 재발견하다." 내용보기
<과학, 인간의 신비를 재발견하다.>   --진화론에 가로막힌 과학--   제임스 르 파누 지음, 안종희 옮김.     다윈의 진화론은 양이 너무 많고 조금 읽다보면 금방 지쳐서 끝까지 읽기는 엄두를   못내고 있었는데 (진화론에 가로막힌 과학)이라는 글귀를 보고 이 책을 먼저 읽으   면 다윈의 진화론도 다시 읽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안고 책장을 넘겼다.   어릴때 교회를 다녀
"(서평) 과학, 인간의 신비를 재발견하다." 내용보기

<과학, 인간의 신비를 재발견하다.>

 

--진화론에 가로막힌 과학--

 

제임스 르 파누 지음, 안종희 옮김.

 

 

다윈의 진화론은 양이 너무 많고 조금 읽다보면 금방 지쳐서 끝까지 읽기는 엄두를

 

못내고 있었는데 (진화론에 가로막힌 과학)이라는 글귀를 보고 이 책을 먼저 읽으

 

면 다윈의 진화론도 다시 읽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안고 책장을 넘겼다.

 

어릴때 교회를 다녀서 진화론에 관심이 많았었다. 교회에서 배울땐 진화론은 무조

 

건 배척해야할 이론이라고 배웠기때문에 진화론이 더 읽고싶어진거 같다.

 

이 책은 다윈의 이론들을 조목조목 짚어가면서 그가 범한 오류들을 찾아낸다.

 

오히려 이 책을 통해 다윈의 이론을 쉽게 알 수 있도록 자세히 써놨다.

 

이 책의 특징은 지루하지 않은 적절한 그림들과 예시들이다. 시그마북스 출판사는

 

이런 과학쪽의 책을 잘 만드는거 같다.

 

나같이 과학에 관심도 없고 무지한 상태에서도 무난하게 읽을 수 있고 과학이 친

 

숙하게 느껴지게 만드니 이보다 재밌는 과학서적은 본 적이 없는거 같다.

 

시간이 좀 더 있었음 한번 더 읽어봤을텐데.. 좀 아쉽긴 하지만 조만간 다시 읽

 

을 생각이다.

 

 

p91 지렁이가 땅에 굴을 파면 땅이 부드러워져서 식물이 뿌리를 내리고 비가 흘러  들기에 적합하게된다.

  (어릴때 지렁이를 너무 죽여서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p215 "두 가지가 내 마음을 경이감과 경외심으로 가득 채운다. 그것은 내 머리 위에서 빛나는 병과 내 안에 있는 도덕률이다."

 

p229 진화론은 '자아' 또는 영혼의 독특한 영적 특성을 부인함으로써 불가피하게 인간 경험을 이해하지 못한다.

 

 

 

p258 두뇌가 하는 모든 일, 즉 보는 것, 사고하는 것, 느끼는 것, 추론하는 것 등 인간의 모든 정신생활이 두께 0.3센티미터인 얇고 주름진 회색 물질층에서'일어나며' 이 주름진 층을 깨끗하게 펴면 중간 크기의 냅킨 네 장 정도 크기이다.

 

--이게 젤 신기했음--

 

p352 자연세계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생존을 위한 경쟁적인 투쟁이 아니라 그 반대인 협력이다. 과거 생물학자들은 생물계의 겉으로 보이는 잔인함과 파괴적인 모습을 우연적이고 무목적적인 진화 과정의 증거로 많이 해석했지만, 더 많은 증거들이 생물계에는 조화와 목적이 있음을 보여준다.

 

 

k******2 2010.03.07. 신고 공감 0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진화론 과연 완벽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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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인간의 신비를 재발견하다라는 제목을 왜붙였을까 하는 궁금함이 이책에 접근하게 만들었습니다. 막상 책장을 넘겨보니 상당히 방대한 인용과 자료를 제시하면서 내용을 전개하고 있는데 진화론을 주축으로 하는 반유물론적 사고관을 가지고 있는 분이라면 공감갈듯한 내용들이 많이 나옵니다.    몇가지 책의 내용을 보자면 과학이 본질적으로 철학적 관점보다는 우월하다
"진화론 과연 완벽한가?" 내용보기
 

과학, 인간의 신비를 재발견하다라는 제목을 왜붙였을까 하는 궁금함이

이책에 접근하게 만들었습니다. 막상 책장을 넘겨보니 상당히 방대한 인용과 자료를 제시하면서 내용을 전개하고 있는데 진화론을 주축으로 하는 반유물론적 사고관을 가지고 있는 분이라면 공감갈듯한 내용들이 많이 나옵니다.

 

 몇가지 책의 내용을 보자면 과학이 본질적으로 철학적 관점보다는 우월하다는 신념을 불러 일으켯다는데 좀더 포괄적으로 볼필요가 있어보입니다. 과학의 의미가 단지 현상을 설명하는것에 국한된다고 필자가 서술한것으로 생각되는데 어떠한 새로운점이 과학의 영역으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일종의 혁명의 구간을 넘어서야 되는데 이 것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해서 철학적관점이 과학점 관점보다 못하다고 못밖아 버리는 것은 과학사 전체적으로 볼때도 의미가 없는 상황입니다.(과학 혁명의구조 -토마스쿤) 중세암흑기를 제외하고 계속 발달해 왔으며, 이 책에서 주로 논하고 있는 진화론 조차 인정받기에 상당한 세월이 소요 되었습니다(저자는 10년이라고 했지만 제가보기엔 확실하게 인정받기에는 1859년 발표 이후 1872년 루이 아가시의 재탐험의 잘못된 항해로 다시 무시되고 실제적으로는 1840년 이후에서야 학자들 사이에서도 본격적으로 인정되기 시작한걸로 압니다)

 

 진화론(1859년) 에 대해서는 깊이 논의하면서 성선택론인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1871년)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전개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 또한 의문으로 남는 책입니다. 성선택론은 두번째로 두고본다고해도 진화론상의 끊어진 사슬이라고 널리 알려져 있는 진화론 자체의 맹점에 대해 은근하게 계속 지적하고 있는 점은 아주 흥미롭습니다. 진화의 증명을 위한 가속화 실험이 계속 이루어지고 있고 조만간 결과를 볼수 있을것으로 생각되어서 저자가 의도한 물음의 답도 곧 나올것 같습니다.

 

 유전특성이 섞이지 않는다는 내용도 푸른눈과 갈색눈이 결합해서 푸른색과 갈색을 동시에 발현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극히 일부에서 오드아이(고양이 뿐만 아니라 사람도 존재합니다)가 있다는 것은 명약관화합니다. 그렇다면 왜 발현되는 확률이 극 히 적은것인가에 대한 물음이 생길텐데 그럴경우 개체내에서도 제거 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라는 상대적인 이유(진화심리학적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 보여집니다. 혼혈에 대한 이야기도 마찬가지 맥락으로 이해됩니다.

 

 심장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과학이 도달하지 못했다고 절반의 효율이라는 점을 또강조하고 있는데 저자가 의사이다보니 이런점에 있어서 전문적인 지식이 논의 되면서 독자를 끌어 당기고 있습니다. 저자의 전체적인 내용에는 동의하지만 흐름에는 동의하기 힘든점이 있습니다. 아직도 인공장기는 발전중이고 끊임 없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창출되고있다는 전체적으로 진행중인 상황이라는 현실입니다.

 

 후반부를 가면서 이타주의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가 나오는데 종의 기원에만 기반한 이야기가 전체적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저자가 논의 하고 있는 이야기들을 보면리처드 도킨스는 많이 나오지만 조지 레이코프나  제프리 밀러등의  이야기는 한줄도 나오지 않아서 약간 실망스럽긴합니다. 저자가 지적한 내용들이 이미 성선택론에 기반한 진화 심리학에서는 상당부분 논의되고 국내에 번역서들도 많이 나와 있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이책을 읽는 분들은 이런 저자의 책들도 꼭 읽어보라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공감하는 내용중에 하나는 프로이트의 붕괴에 관한것인데 관점은 다릅니다. 프로이트가 주장했던 내용들이 무너지기 시작한것은 신경심리학의 등장과 맞물려서 진행되었고 또한 그 제자인 융으로 부터 시작되는 분석심리학은 현재에도 강건한 토대를 유지하고 있으며 많은 제자들을 양성하고 있습니다. 무너진것이 진화론의 오류라고 주장하는 내용때문이 아닌 과학 그자체로 인해 무너져가기 시작한것인점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공감할만한 내용이 많습니다.

 

 지적 설계론에 대한내용이 아주 미세하게 서술되어 있다는 점이 상당히 눈에 띕니다. 몇줄 안되지만 기존 진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눈에 띄는 구절입니다. 이것 한줄로 이책의 성격이 나타났다고 볼 수 있을 정도 입니다.

 

 신경망 이론이 무너졌다고 해서 신경과학의 토대가 무너진것은 아니며, 다른 방식의 과학이 그자리를 대체해가는(양자학처럼)게 과학에 응하는 과학적인 입장입니다. 진화론에 도전할려면 진화론을 굴복시킬만한 묘안을 들고 전체적인 시스템을 보여주어야 가능성이 보일겁니다. 특히, 성선택론도 꼭 살펴봐야할 내용입니다. 이 책을 보고나니 서양에서도 아직 성선택론에 대해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습니다. 

 

 진화론에 관심은 많았지만 뭔가 미덥지 않앗던 분들에게는 내용이 정리되어 있는 권할만한 책입니다.  그럼...

d******p 2010.03.01.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과학 역설적인 그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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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만병통치약처럼 인간의 삶을 휘저어 왔다. 모든 것이 과학이면 다 이루어지고 심지어 인간의 생각, 느낌까지도 과학으로 조명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을 했다. 그리고 과학을 바탕으로 해서 그 근원에 있다고 생각되고 그렇게 오랫동안 인식되어 왔던 다윈의 진화론은 인간의 모든 것을 밝혀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이 책도 그러한 내용을 기반으로 하고 반론을 펴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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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만병통치약처럼 인간의 삶을 휘저어 왔다. 모든 것이 과학이면 다 이루어지고 심지어 인간의 생각, 느낌까지도 과학으로 조명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을 했다. 그리고 과학을 바탕으로 해서 그 근원에 있다고 생각되고 그렇게 오랫동안 인식되어 왔던 다윈의 진화론은 인간의 모든 것을 밝혀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이 책도 그러한 내용을 기반으로 하고 반론을 펴고 있다. 참으로 과학은, 진화론은 인간 영혼의 문제까지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결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한다. 이 글은 그 불가능함을 과학적으로 차근차근히 제시해 내고 있다. 많은 근거를 들어 진화론이 가지고 있는 허구성을 밝혀내고, 과학이 다가갈 수 없는 영역을 얘기하고 있다. 역설적이게 과학을 통해 과학의 부족함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해서 분석하고, 그 타당성을 말하면서 신비의 영역에서는 어떻게 할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참으로 이제까지 지녀왔던 과학에 대한 지식에 금이 갈 수 있는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그만큼 ‘인간이 신비하다’라는 뜻이리라. 인간의 뇌구조를 분석해서도 게놈 연구를 통해서도 인간의 신비를 제대로 밝혀낼 수가 없다는 말이다. 물리적인 요소들은 조각을 내어보면 알 수가 있다. 그러나 그것이 뭉쳐져 합성이 되어 나타나는 정신적인 분야는 어떻게 할 수가 없는 듯하다. 아니 그것은 합성의 이름으로 얘기될 수 있는 성질도 아니다. 새롭게 만들어진 개념으로 보아야 옳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도록 그 결과는 난해하다. 


19세기의 고고학자들은 다른 무엇보다도 석기시대 동굴에 살았던 원시인들이 인간의 지성을 놀랍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에 대해 매우 당혹스러워 했다. 인간이 그렇게 아득한 과거에 탁월한 예술적인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고 상상하기는 어려운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알타미라의 동굴 벽화를 우연히 처음 발견했지만 어느 누구도 믿지 않았다. 현대인들의 눈에 비친 크로마뇽인의 모습이다. 그 예술적 능력, 지각이 점진적인 발전으로 이루어졌다고는 생각할 수가 없다. 획기적으로 나타난 결과물로 밖에 볼 수 없는 것이 고인류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된다. 여기에서 과학적으로, 고고학적으로 우린 다윈이 주장한 진화론의 내용을 인정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에 부딪히게 된다.


인류 진화의 유산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는 찰스 다윈이 1859년에 저술한 <종의 기원>으로 시작된다. 이 책의 핵심 주장은 생명체의 모양, 형태, 특성의 무한한 다양성이 최초의 가장 단순한 생물에서 진화해 왔으며, 이 최초의 생물은 수십억 년 전 지구 표면에 “따뜻하고 작은 웅덩이‘에 녹아 있는 다양한 암모니아와 인산염으로부터 저절로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다윈이 주장한 진화론의 핵심이다. 이 내용을 급작스럽게 나타난 고등 의식을 가진 인간들의 모습으로 변환시킨다는 것은 상당한 어려움을 내포한다. 많은 자료들이 그와 같은 것을 반증한다. 이 책은 그것에 끝없는 의문을 표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영장류와 인간이 공존하는 부분임을 증명하지 못하다면 진화론의 원리는 완벽한 것이 아니었다. <인간의 유래>에서 밝힌 다윈의 핵심 주장은 이렇다. ‘정신 능력 면에서 인간과 고등 동물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점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들 사이의 현저한 차이점은 분명히 ‘정도의 차이’일 뿐 ‘전혀 다른  종류의 차이가 아니다. 이러한 결론을 의심하게 만드는 것은 단지 우리 선조들의 천성적인 편견과 오만 때문이다.’ 글쓴이가 다윈의 진화론 주장에 대해서 반론을 펴고 있는 부분이다. 과학적인 오만과 편견이 정확하지 않은 지식을 일반화시켜 나간 잘못을 범하고 있지 않나 생각하고 있다. 정서적인 부분과 느낌 부분에서 아무리 구조적인 분석을 해도 그 내용의 결과를 도출해 낼 수 없는 현실에서 맹목적으로 진화론으로 모든 것을 몰아가고 있는 일에는 무리가 있다는 내용이다.


이 책을 읽어보면 내용이 과학을 통한 인간 신비의 확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윈의 진화론으로 인간의 모든 모습을 다 확인할 수 없는 것을 밝혀내고 그것을 신비로 이끌어 나가는 책이다. 사실 그런 것 같다. 인간의 이지적인, 감성적인 내용까지 과학으로 분석, 인지할 수 있다면 인간의 사람은 물질적인 것에 예속되고, 만물의 영장이란 이름을 내려놓아야 할 지 모른다.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인간이 가진 것들에 대한 신령스러움을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네 삶이 거룩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근거도 확보할 수 있다. 삶에 힘들어 하는 사람들에게, 과학을 맹신하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j****3 2017.02.2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