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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생각』은, 이미 탄핵 역풍을 맞은 임진혁(노무현) 대통령의 번뇌, 대한민국 안팎의 어지러운 현실, 2009년 마지막 선택이었던 그의 죽음까지를 다룬 팩션이다. 정제된 언어 속에 그 분의 웃는 낯빛이 어른거려서, 아무런 힘도 없던 내가 고통스러워서, 읽는 중간에 한 박자씩 읽기를 멈춰야 했다. 사심 없이 권력을 멀리 두고, 대한민국의 현실을 바꿔보겠다는 시도에서 비롯된 조바심, 이대로 방치해선 안된다는 필생의 꿈들은 이루지 못한 채 안타까운 꿈으로 그치고 만다. 종국엔 일찌기 먼 곳을 향해 낙하해야만 했던 끝까지 고독한 사람이었다. 소설 속 야당 대변인 김인수처럼 복수의 칼날로 밑바닥까지 치고 올라와 상대에게 비수를 꽂은 자의 승리였는지, 주류가 비주류를 눈꼴 시려한 탓으로 그 칼 끝은 대통령 한 사람을 향했지만 대한민국 전체를 퇴보시킨다. 저자인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은 한 인터뷰를 통해 『오래된 생각』을, "사실 4할에 상상력 6할을 얹은 소설"이라 했다. 저자 자신의 이야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야기를 따로 써 둔 것을 작년에 두 편을 합쳐 다시 써낸 것이라 했다. 대통령 임기 4년째인 2006년을 중심으로 등장하는 소설의 주인공은 청와대 대변인이자 대통령 연설기획비서관으로 등장하는 진익훈과 대통령 임진혁이며, 실제 인물은 저자인 윤태영 씨와 노무현 대통령을 모델로 했다. 야당 권력의 핵심인 김인수를 가공 인물로 내세웠는데, 2009년 당시 벌어졌던 편파적이고 과도했던 수사를 생각하면 이명박 정권과 우병우 검찰을 절로 떠올리게 한다.
소설은, 청와대 대변인 진익훈의 시선에서 바라본 대통령과 진익훈 자신의 모습이다. 1979년 유신 독재 타도에 앞장 선 대학생들 속에 그가 있었고, 광주 유혈사태에 이어 신군부가 다시 정권을 잡음으로써 투옥되고 제적되다가 군사정권의 몰락 후에야 복학과 졸업을 마친다. 결혼과 아내의 출산으로 취업이 절실해졌고 국회의원 비서직만이 취업 가능한 터에 운좋게 임진혁 의원의 비서관이 되었다. 그 인연으로 2006년 청와대 대변인이 되기까지의 배경을 현재와 교대로 맥을 이어나간다. 진익훈의 죽마고우였던 김인수가 극단의 대척점에 서서 자신과 대통령의 안위 뿐 아니라 대한민국 정치까지 흔들어댄다. 취임한 이래 임기 끝까지 검찰 등 권력기관에 의존하지 않는 첫 번째 대통령에게 무기란 없었으며 오로지 반대 세력에게 설득만 할 뿐이었다. 하지만 선출되지 않은 권력들이 선출된 권력을 흔들었고 그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었다. 북핵 문제와 한미 FTA, 한일관계의 악화 등 대외적으로도 혼란스러운 상황에 국내 세력들이 힘을 모아야 할 때 그들은 모두 대통령 죽이기에 앞장 섰다. 세상 시끄러운 일은 죄다 대통령 탓이었으며 모든 문제의 원인은 대통령의 학력 콤플렉스라고 했다. 대통령이 가끔 내는 화조차 학력에 대비시켰다. 야당은 당연하고 여당조차 어느 곳에서도 대통령을 향한 위로와 배려는 찾을 수 없었고, 상처와 비난 일색이었다. 대통령 재임 시절 내내 그는 공감을 얻는 대통령이기보다 손가락질 받기에 바빴던 대통령이었다. 혈혈단신으로 시작한 정치였기에 세력도 없이 도전했었고, 임기를 마치고 사저로 돌아온 뒤에도 새 정부는 그를 가만 놔두지 않았다. 기록물을 가져갔다며 전직 대통령을 압박한 것이 이유였다. 대통령의 후원자였던 윤 회장은 전직 대통령을 후원했다는 이유만으로 감옥에 갇혔고 검찰 수사는 그 대상이 전방위에 걸쳐 있어 언제 끝날지 가늠할 수도 없었다. 검찰 수사의 표적이 된 측근들, 모두 다 자신을 만난 것에서 비롯된 고통이라 생각했다. 그 고통을 끊어내기 위해, 자연의 순리가 아닌 인위적 선택으로 마지막을 향한다. 지난 이십 년, 정치인 임진혁의 글과 말을 위해 일해온 진익훈은 말한다. "한국 정치에 대한 치열한 애증의 연장선상에 있었던 당신, 다음 세상에선 부디 정치하지 마십시오."
2006년 당시 부동산 가격 폭등, 북한 핵실험에 대한 대응, 헌법재판소장 지명 철회, 작전통제권 환수, 한미FTA 추진, 검찰의 항명 사태, 여당의 노골적인 차별화 등 대한민국 안팎으로 드러난 문제가 부지기수인데 대통령은 대통령대로 자신을 지켜내기도 버거워 보였다. 그럼에도 그의 노력은 멈추는 법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보수 세력과 야당에게 저주받은 대통령, 진보진영에서는 변절자와 배신자로 낙인 찍힌 사람이 되어있었다. 지지자를 잃어버린 대통령이었기에, 힘을 잃은 사람이었기에 임기 일 년을 남겨둔 시점에서 스스로 떠날 생각까지 했었다. 여소야대와 청와대 사이의 갈등과 반목은 숱한 노력을 기울여도 돌아오는 건 좌절 뿐, 기득권 세력의 저항을 어찌 해볼 도리가 없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빛인 동시에 어둠이며 희망인 동시에 절망이었다. 누구보다 민주적인 대통령으로서 탈권위주의와 공명정대함, 국민 참여 등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강력한 빛이었다. 그러한 노무현 정신에 반해 고졸 출신이라는 열등 키워드가 항상 따라다녔고 평범한 국민들의 희망이었던 그것은 기득권 세력들로부터 절망을 불러내는 또다른 이름으로 작용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김영삼 문민정부를 기점으로 비로소 정상 궤도에 올랐으며 그 뒤를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로 이어졌지만 이명박에 이르러 민주화는 또다시 독재라는 가파른 역행을 시작했고 오늘날 박근혜에 이르러 파탄이라는 정점을 찍게 되었다. 박근혜 탄핵 인용 이후, 대선이 5월 9일로 당겨졌다. 한 나라의 리더가 발휘하는 지도력에 따라 국가의 번영과 안정이 있다. 국민들을 개, 돼지로 하대할 제왕이 아닌 국민들에게 봉사하는 제대로 된 대통령을 선택할 수 있는 안목이 있기를 바란다.
"요즘 틈틈이 신영복 교수의 <강의>를 읽고 있습니다. 표현이나 외양이 요란하면 본질이 죽고, 외양이 없으면 투박하다고 합니다. 왕은 역시 관을 쓰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감이 감투를 쓰지 않고 있다 보니 책잡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제가 관을 쓰지 않는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그런 이미지가 되었습니다. 지금이라도 관을 쓴다고 새로 생길 것 같지도 않습니다." -p170~171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고집 센 나라와 가장 힘센 나라 사이에 끼어 있다." -p1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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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3. 22. 수.
2009년 5월 23일 새벽, 고향인 봉하마을 부엉이바위에서 몸을 던지며 저세상으로 건너가버린 故노무현 대통령은 대한민국에 충격을 던져줬었다. 난 뉴스로 이 소식을 들었을 때, 죽음 그 자체보다 무슨 대통령씩이나 하신 분이 그렇게 마음이 약할까...라고 생각했었다. 그렇잖아도 자살률이 OECD국가중 최고라는 불명예를 안고있는 우리나라에서 한 나라의 최고자리에 계셨던 분까지 말도 안되는 길을 택하다니... 아무리 수치스럽고 힘들어도 목숨은 그렇게 쉽게 버리는 것이 아니고, 버리려고 한다고 버려지지도 않는게 사람의 목숨이다. 그런데 왜...라는 의문이 내내 남아 있었었다.
[오래된 생각]의 저자인 윤태영작가는 1988년 13대 국회의원인 노무현의 보좌관으로 처음 만났고, 참여정부시절에는 청와대 대변인과 제1부속실장을 지냈다. 대통령을 수행하며 대통령 평범하면서도 진실된 모습을 가장 가까이서 봤고, 그 모든 모습과 말들을 기록으로 남겼다. 그리고 마침내, 8년 만에 그 시절을 그린 팩션소설을 쓰게 되었다. 소설은 언제나 사실과 허구가 같이 버무려진다. 소설의 허구는 거짓말의 나열이 아니라 작가의 상상력을 통해 진실에 가까이 가기 위한 도구로 사용 되어진다. 이 소설 또한 사실에 밑바탕을 두고 윤태영 작가의 고민과 상상력이 보태져서 만들어진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소설 [오래된 생각]은 두 가지 이야기가 번갈아 가면서 나오다가 하나로 합쳐진다. 하나는 임진혁(참여정부 대통령)이 레임덕 현상을 겪고 있는 마지막 한 해와 그 이후를 그린 이야기이고, 또 하나는 진익훈(참여정부 대통령대변인)의 어린 시절부터 청년시절, 그리고 대통령의 대변인이 되기까지의 과정이 소개된 이야기이다. 박봉의 군인가정에서 열심히 공부만 하며 자란 진익훈, 건설업으로 승승장구하는 가정에서 활발하게 자란 김인수, 의사인 아버지를 둔 유복한 가정의 민희연 등이 한동네에서 자라면서 우정을 나누고, 대학생이 되고 서로의 길이 엇갈리는 것까지 상세하게 나온다. 처음부터 눈치채게 되지만, 기묘한 삼각관계가 유지되다가, 진익훈이 운동권에 합류 감옥에 가게 되고, 김인수는 법대를 다니던 중 사법고시를 패스하며 서로의 길이 갈라진다. 민희연은 어려서부터 변함없이 진익훈을 마음에 뒀었지만, 부모님과 주변의 상황으로 김인수를 택하게 되고, 둘은 결혼을 하게 된다. 그리고 세월은 훌쩍 뛰어넘어 진익훈은 대통령의 대변인이 되어있고, 김인수는 민희연과 결혼을 하고 사법고시에 패스해서 검사가 되었다가 국회의원으로 승승장구한다. 그리고 김인수는 1988년 임진혁이 국회의원시절 국정감사를 할 때, 불려나왔던 아버지 김일권 회장의 현직대통령에 대한 뇌물수수건에 대한 일과, 거기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아버지에게 치명적인 증언을 해준 진익훈에게 복수를 꿈꾸고 있는데...
두 가지 이야기가 하나로 통합되고 뒤쪽으로 가면 어느 정도 아는 얘기가 전개된다. 소설은 전지적 작가 시점이지만, 대부분 진익훈의 눈을 통하여 세상을 바라보고, 임진혁 대통령을 평가한다. 어느 정도 아는 얘기지만, 몰랐던 부분들도 있었고, 인간적인 면이 부각되고 소탈했었던 그 분을 생각하며 읽으니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도 많았다. 하지만, 소설적인 전개에서는 당기는 힘이 부족했고, 극적인 클라이맥스도 없었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도 매끄럽지 않았다. 크게 재미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냥 시작을 했고 故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애도하는 마음으로 읽었다. 소설이 아닌, 에피소도를 주로 하는 에세이로 썼으면 어땠을까. 그게 오히려 더 담담하고 따뜻한 이야기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봤다.
많은 일들을 겪고, 주변에서 받쳐주는 세가 없어서 마음껏 정치를 펼치지도 못했고, 소탈한 부분을 대통령답지 못하다고 평하는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도 받았지만, 개의치 않고 넓게 수용했다고 생각했는데, 그 분에게는 상처가 됐었나보다. 또한 측근의 잘못을 본인이 다 안고 가려했던 그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죽음을 택한 것은 아직도 잘못된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그것도 이겨내고 극복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 분의 유언처럼 이것도 아마 운명인가보다. 돌아가신 후에 오히려 좋아하는 분들도, 그리워하는 분들도 더 많이 생기는 걸 보면, 참 많이 안타깝고 가슴 아프다. 나 또한 살아계셨을 때보다 돌아가신 후에 그 분에 대해 더 알게 되고, 생각하게 된 사람 중의 하나이니. 또 이렇게 서민적이고 원칙과 상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대통령이 나올 수 있을까. 5월 장미대선을 앞둔 현 시국에서 눈 크게 뜨고, 정신 바짝 차리고 대선후보군들을 살펴봐야 할 때가 왔다. 어수선한 정국이지만, 촛불의 의지로 국민의 뜻을 평화롭게 전달하고 승리로 이끈 것처럼, 5월 대선에서 진짜 국민을 생각하는 국민을 위한 대통령이 당선되기를 그저 기도할 뿐이다. 세월호 인양이 시도되고 있는 지금은 3월이다. 아픈 4월 16일 때문에 더 잔인한 4월이 된 우리 나라다. 부디 5월에는 국민이 주인으로 바르게 주권행사를 하고, 국민의 명령을 진정 고개숙여 받드는 대통령이 탄생해서 새롭게 거듭나는 대한민국이 되길 바라고 바란다.
권력자였지만, 권력의 문화에 발을 담그려 하지 않는 대통령이었다. 그는 권력을 얇은 유리처럼 대했다. 권력이란 언제든 자신에게 꽂힐 수도 있는 '양날의 칼'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에게 권력은 누림이 아닌 경계의 대상이었다. --- 28p.
머리 모양에도 큰 차이가 있었다. 대체로 관료들은 기름을 발라 단정함을 유지했다. 정치인들은 염색이나 파마로 부드러운 인상을 갖추려고 했다. 반면 학자들은 대체로 머리카락을 자라나는 대로 방치하여 자연스러움을 유지하는 편이었다. --- 78p.
그는 언제나 '분장'으로 표현되는 일체의 행위를 꺼렸다. 과도한 수식, 도를 넘는 포장, 의도적인 연출, 의례적인 인사 등이 그런 것들이었다. --- 102p.
순방국의 공식 만찬 행사에 다녀올 때마다 거르지 않는 대통령의 주문이었다. 라면 한 그릇을 비운 후 대통령은 믹스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아리랑 담배에 불을 붙였다. 힘들고 어려운 시기에도 그이 얼굴에서 웃음을 지켜준 세 가지 아이템이었다. --- 110p.
"세상이 참 그래서 하는 말이다. 누구는 《전환시대의 논리》를 읽고 세상을 좋게 바꾸겠다는 생각으로 이 짓을 하고 있는데, 누구는 《민법총칙》을 공부하며 바꿔야 할 세상을 지키고려고만 하고 있으니…" 어쨌든 너랑 나라도 점점 엇갈리는 게 많아지는구나. --- 130p.
죄인들을 모아놓은 곳이라 해서 세상과 다른 것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세상의 축소판이었다. '3체8통'이라는 말부터 그랬다. 없어도 있는 체, 못나도 잘난 체, 몰라도 아는 체가 3체였다. 구치소 안에서만 통용되는 처세는 아닐 것이라고 익훈은 생각했다. 8통도 있었다. 밥이 들어오는 식구통, 대소변을 버리는 변기통, 교도관이나 소지를 호출하는 패통, 죄수를 감시하는 시찰통, 공기가 들어오는 환기통 등이었다. '6조지'라는 말도 있었다. 경찰은 때려 조지고, 간수는 헤아려 조지고, 검사는 불러 조지고, 판사는 미뤄 조지고, 집에서는 팔아 조지고, 죄수는 먹어 조진다는 뜻이었다. 진익훈은 인수를 떠올렸다. 자신이 이렇게 '도둑놈들의 법'을 배우는 동안 인수는 도서관에서 '판검사의 법'을 배우고 있을 것이었다. --- 135p.
"모난 돌이 정 맞는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다. 오늘 아침에는 어머니의 이 말씀이 또 귀에 들려오더군요. 육백 년 기회주의 역사를 청산하겠다는 생각으로 이 길로 들어섰는데 그건 아직 시작도 못한 것 같군요. --- 166p.
"요즘 틈틈이 신영복 교수의 《강의》를 읽고 있습니다. 표현이나 외양이 요란하면 본질이 죽고, 외양이 없으면 투박하다고 합니다. 왕은 역시 관을 쓰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감이 감투를 쓰지 않고 있다 보니 책 잡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제가 관을 쓰지 않는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그런 이미지가 되었습니다. 지금이라도 관을 쓴다고 새로 생길 것 같지도 않습니다." 대통령은 검색과 사색을 탐했다. 시간이 있을 때마다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고, 여유가 생길 때마다 책에 빠져들었다. 이 짧은 이야기에는 최근의 대통령이 깊이 고만하는 속내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자신의 이미지를 보는 세간의 편견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하는 이야기였다. 스스로는 끊임없이 서민적이고 소탈한 모습의 대통령이 되고 싶지만, 세상은 오히려 그런 대통령을 못마땅해하는 분위기였다. 그런 사람들이 요구하는 것은 '대통령다움'이었다. 대통령은 '대통령다움'의 실체를 가늠할 수 없었다. -중략- "클린턴의 선거운동은 모두 연출로 이루어졌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팀이 영국으로 건너가 토니 블레어의 선거에 역할을 하기도 했고, 러시아에서도 불렀다고 하네요. 독일 사람인 헤르만 셰어가 쓴 《정치인을 위한 변명》을 보면, 전당대회의 모든 과정이 시나리오로 짜여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 '진짜는 없고 연출만 있다'며 부정적으로 묘사한 대목이 있습니다." --- 171p.
미국의 안보도 중요하지만 한반도의 평화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었다. 그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었다. 대통령은 어떤 형태든 한반도 긴장을 높이는 방향의 제재 조치에는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전쟁을 결정하는 것은 정치인이지만, 막상 전장에서 죽는 것은 군이이다." - 중략 -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고집 센 나라와 가장 힘센 나라 사이에 끼어 있다." --- 181p.
"한마디만 하자. 너 정치 오래 했잖아. 잘 알텐데…. 세상 모든 권력투쟁은 정치야. 정치라는 게 뭐야? 종합예술이다. 민주주의는 뭐냐? 여론정치야. 그러면 이 시대에 권력을 가지려면 여론을 얻어야 돼. 결국은 여론을 우리 편으로 만드는 쪽이 승리하고 권력을 쟁취하는 거지. 자신만 믿지 말고, 또 다른 엉뚱한 곳에 기대지 말고, 여론을 가져야 돼. 이런 사태를 만들지 않으려면 여론을 얻었어야지. 그 수많은 시간 동안 너의 대통령과 정권이 한 일이 뭐야? 여론을 하나하나 팽개치는 일 아니었나? 결국은 여론이야. 그 여론을 얻기 위해서는 악마와도 손을 잡아야 돼. 그것이 정치야!" 308p.-309p.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의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 319p.-320p.
※ 이 리뷰는 위즈덤출판사의 서평단에 당첨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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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희망과 절망, 삶과 죽음을 다룬 최초의 소설'이라는 문구를 보면서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가 떠오르게 된다. 그날 새벽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삶을 마무리한 그분의 소식을 들으면서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다. 비록 사임 이후에 검찰 수사를 받긴 하였지만, 봉하 마을에서의 소탈한 모습과 방문객들을 반갑게 맞이하던 그분의 모습을 떠올려보면서 그의 갑작스런 죽음이 실감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남긴 유서로나마 얼마나 심적으로 힘들었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을 뿐이다. 그래서였을까? 유서의 마지막 문구를 제목으로 쓰여진 <오래된 생각>은 참여정부 당시 대변인 역할 및 제1부속실장을 지냈던 저자의 이력을 감안하면 그동안 우리가 미처 들여다보지 못한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을 갖기에 충분한 책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인 윤태영이라는 인물에 우선 시선이 쏠리게 된다. 누구보다도 노무현 대통령의 곁에서 그분의 모든 것을 함께 한 인물이었기에 허구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이내 우리가 알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사실을 전달하려는 강렬한 의지를 느끼게 된다. 본인을 진익훈으로, 그분을 임진혁이라는 인물로 설정한 이유는 오히려 허구의 형식을 통하여 사실을 전달함에 있어서 편향되지 않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보여진다. 과거 친구 사이였지만, 진세훈과 극한 대립의 상황을 연출하는 김인수는 바로 이야기의 전달에 있어서 균형추의 역할을 하는 야당의 대변인으로 등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설정은 일반인에게는 미지의 공간인 청와대에서의 노무현 대통령의 상황을 독자 스스로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를 파악하는 과제를 줌으로써 이 책을 읽으면서 동시에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 당시 여론에 의하여 우리의 눈에 비친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의 실상을 되돌아보게 하고 있는 것이다. <오래된 생각>은 노무현 대통령의 재임 기간 중에서 중후반에 해당하는 시기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즉,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기각된 이후 그분의 상황을 주요 소재로 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탄핵이 기각되었지만, 그분의 상황은 점점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처지가 되어 버린다. 보수를 자처하는 야당은 물론이거니와 여당 역시 노무현 대통령과의 소통에 문제가 있어 결국 당이 나뉜 상태였으며, 한미 FTA 추진으로 인하여 국민은 물론 그를 지지하던 진보 세력도 돌아선 상황이었다. 거기에 전시작전권 환수로 인하여 군의 불만도 팽배해진 상황이었다. 생각해보니 당시 모든 분야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정책은 극심한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곳곳에서 그러한 정책에 대한 소모적인 논쟁이 벌어졌던 것 같다. 그 와중에 우리는 바로 노무현 대통령의 상황에 대해서는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하였던 것 같다. 언론을 통하여 형성된 그의 그릇된 이미지만이 머리에서 맴돌기만 할 뿐이었다. "이 벽은 무너뜨릴 수 없다, 이 벽은 도저히 넘을 수 없다, 그 대목에서 순교를 생각하게 되는 것 아닐까요? 자기 삶을 어떻게 마감할까 생각하는 것이지요. 당사자가 아니라면 그런 점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어떻든 이 벽을 넘을 수 있다는 판단이 서지 않으면, 자기 삶에 변명거리를 만들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경우는 순교를 생각하는 것이겠지요. 저는 그런 점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 p. 173 - 대통령 임진혁의 이 말이 정말로 노무현 대통령이 한 말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분이 처한 상황이 얼마나 힘들고 고달팠는지에 대해서는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옳다고 믿는 바를 실행에 옮기려고 하였지만, 여기저기 발목을 잡는 상황을 커다란 벽으로 느끼게 되는 상황에서 결국 순교가 현실이 되어버린 그의 삶이 안타깝게 느껴지게 된다. 언론의 힘이었을까? 한미 FTA 비준에 대한 반대와 더불어 역대 정권 중에서 가장 높은 부동산 상승으로 인하여 국민들로부터도 외면을 받게 되는 노무현 대통령에게는 우군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오히려 미국에서 한미 FTA가 미국에 불리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니, 한미 FTA 비준은 노무현 대통령의 실용적인 노선이 잘 반영된 실리적인 정책이었으며, 부동산 정책의 실패는 애초에 미온적인 대응을 한 부분도 있지만, 참여 정부에서 제안한 정책이 제대로 실행되지 못하도록 딴지를 건 각 부처와 국회의 책임을 간과할 수 없음을 우리는 당시에는 깨닫지 못하였던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받게 되는 이러한 과정을 저자는 김인수를 비롯한 당시 야권과 보수층의 음모론으로 그려내고 있는데, 우리 역시 그러한 상황을 초래하는데 일조하지 않았나 생각을 하게 된다. 현재 탄핵되어 검찰 수사를 받게 된 사람이 한때 우리 손으로 뽑은 대통령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의 희망과 절망을 다루고 있다고 하지만, 정작 그의 절망적인 상황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유는 그것이 바로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현실이었음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그의 정책과 행동에는 인간이기에 분명 공과(功過)가 있다. 무조건 그분에 대한 찬양과 동정이 아니라 과연 우리가 그분의 상황에 대한 진실을 제대로 본 적이 있는지에 대하여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저자 역시 작중 내내 임진혁을 옹호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앞서 순교라는 단어를 언급하는 모습은 그의 인간적인 약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며, 자신의 신념이 맞다고 생각하면 고집불통을 연상케 하는 장면도 묘사함으로써 인간 노무현의 모습을 <오래된 생각>을 통하여 전달하고 있는 것이라 여겨진다.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한지 채 10년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까? 현재 우리가 처한 시국을 떠올리면서 그분에 대한 향수와 함께 우리가 알지 못한 진실을 이제서라도 밝히기 위함이 아닐까? 그런 측면에서 <오래된 생각>은 대통령을 가장 가까이 모신 측근이었던 저자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주목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당시 언론 또는 반대파에 의하여 감춰졌거나 왜곡된 노무현 대통령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실제 <오래된 생각>을 통하여 청와대라는 공간에서의 인간 노무현의 고뇌를 새롭게 느낄 수 있었기에 그러한 기대감을 어느 정도 충족된 것 같다. 다만, 진익훈과 김인수, 희연의 삼각 관계는 조금 아쉽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아마 읽는 사람마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된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부분보다는 좀더 노무현 대통령의 알려지지 않은 상황에 대한 이야기에 집중하는 것이 더욱 좋지 않았을까? 그분을 직접적으로 자살로 이끈 검찰 수사와 같은 내용으로 채워졌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이 유서를 작성하고 부엉이 바위에 오르던 노무현 대통령. 유언의 마지막 문구처럼 그는 도대체 얼마나 오래전부터 이런 생각을 품고 있었던 것이었을까? <오래된 생각>이 그러한 의문에 어느 정도 힌트를 주고 있는 것 같다. 진익훈의 입을 빌려 작가가 그랬던 것처럼 나 역시 우리의 곁을 떠난 노무현 대통령에게 말하고 싶다. '대통령님, 다음 세상에선 부디 정치하지 마십시오.' ( 이 리뷰는 출판사 위즈덤하우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쓴 글입니다. ) |
만약에 누군가 내게 그림자처럼 착 달라붙어서 행동거지(行動擧止) 하나하나를 빠짐없이 관찰하고 기록한다면 얼마나 불편할까. 남보다 조금 더 특별하다는 것, 남보다 월등한 권력을 가졌다는 것은 얼마나 축복받은 인생인가. 하지만 ‘신’은 공평의무에 따라 모든 행복을 결코 한 사람에게 몰아주지 않는다. 하나를 얻으면 그에 상응하는 다른 하나를 반드시 내놓아야 하지 않던가 말이다. 그렇다고 목숨을 담보로 하는 조건부 게임이라면 깊이 생각해 볼 일이 아닐까 싶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을 펼쳐들었을 때 가슴이 아팠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두 인물 진익훈(진보진영)과 김인수(보수진영)는 같은 초등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한다. 이들은 같은 대학을 가기로 약속할 만큼 친하게 지낸다. 하지만 진익훈만 전기대학에 합격한다. 불합격한 김인수는 후기대학 법학과에 들어간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주 만나서 함께 시간을 보낸다. 그러던 중, 진익훈은 민주화 투쟁에 앞장서서 학생운동을 하다가 옥고(獄苦)를 치른다. 반면, 김인수는 일찌감치 사법고시를 준비해서 법조계에 발을 들인다. 이처럼 둘의 운명은 정반대의 길을 걷게 된다. 이것은 훗날 그들이 선택하게 된 정치 노선에도 영향을 미친다.
즉, 진익훈은 민주화를 외치며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투쟁했던 임진혁(참여정부 대통령)과 정치노선을 같이하고, 검사 출신의 김인수는 보수진영과 정치노선을 함께 하게 된다. 이처럼 둘은 서로 적대관계가 된다. 권력의 힘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이때 진익훈은 참여정부의 대통령이 된 임진혁의 대변인으로 발탁된다. 이처럼 서로 다른 정치성향으로 인하여 죽마고우였던 둘의 우정은 점점 더 골이 깊어진다. 이에 진흙탕 싸움은 좀처럼 마침표를 찍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소설 속에 묘사된 이런 풍경들은 우리가 평소에도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자주 접하게 되는 정치 스토리인지라 무척 흥미로웠다. 윤태영의 <오래된 생각>(위즈덤하우스, 2017)은 픽션과 논픽션이 적절하게 버무려진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가 직접 체험한 정치적 팩트를 바탕으로 스토리가 구성되었다는 점이 퍽 믿음직스러운 작품이었다. 무엇보다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청와대 경내를 세밀하게 묘사한 대목이나 정치부 기자들의 모습 그리고 대통령의 심리묘사를 콕콕 집어낸 부분들은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게 만들었다. 그런가하면, 아무리 아픈 상처도 세월이 흐르면 딱지가 앉기 마련이고, 그것은 시나브로 굳은살이 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하였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는 정치에 관심이 없어서 딱히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메시지를 전달받았다. 그 중에서 가장 강력한 메시지는 우리나라의 정치인들은 자신과 노선이 다른 쪽 성향을 지닌 경쟁자들을 지나치게 미워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정치인들에게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크든, 작든 집단생활을 하다보면 서로 다른 입장을 표명하는 부류가 있기 마련이다. 그때마다 무조건 반기를 든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처럼 진정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다면 지금부터라도 모든 사람들이 상대방의 입장을 손톱 끝만치라도 배려해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지혜로운 자(者)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역사 속에 아픔으로 기록되는 대통령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책장을 덮는다.
-2017. 03. 17. ⓒ 심은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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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소설을 쓰는 걸까. <오래된 생각> 앞부분을 읽다가 문득 떠오른 질문이다. 소설이 하나의 긴 이야기라면 무언가 할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쓰는 것일 게다. 그러면, 왜 직접 얘기하지 않고 빙빙 돌리고, 꾸미고, 보태고, 심지어 어떤 이야기는 판타지로 얘기하는 것일까. 이쯤에서 나는 소설문학의 존재 이유를 나름대로 인정할 수 있게 됐다. 직접 말할 수 없는 '어떤 사정'이 있기 때문이라고. 대숲으로 들어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친 동화 속의 신하처럼, 너무너무 말하고 싶은 사실이 있는데 직접 말할 수 없을 때 소설(이야기)을 쓰게 되는 거라고. 그렇다면 저자는 노무현 대통령의 이야기를 다룬 <오래된 생각>을 통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이 책의 이야기는 주인공이자 대통령의 대변인인 진익훈과 어린 시절 그의 동네 친구에서 이중의 라이벌로 급부상한 야당 대변인 김인수, 그리고 김인수와 진익훈의 첫사랑 민희연과의 삼각관계가 외연으로 자리 잡고 있다. 가난한 첫사랑을 버리고 돈 있는 남자에게로 간, 세상살이에 영악한 여자 이야기는 이제 신파조처럼 다가오지만 때가 7,80년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래도 이해할 수 있으리라. 아니, 그 여성도 가부장제하의 남성들이 만든 구조의 희생양이리라.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야기의 중심은 탄핵정국을 모면하고 일 년 반의 임기를 남겨둔 대통령 임진혁이 처한 정치적 딜레마와 그 옆에서 보좌하며 지켜본 대변인 진익훈의 상념과 분투, 쥐도 새도 모르게 진행되는 하나의 음모가 중심 흐름이다.
당시 상황과 지지자를 잃은 대통령 임진혁이 느끼는 정치적 부담은 자신의 임기를 단축해서라도 개헌을 추진하고자 하는 다음 말 속에 잘 나타난다. " 아무리 어려워도 극복할 수는 있습니다. 부동산 가격 폭등, 북한 핵실험에 대한 대응, 헌법 재판소장 지명 철회 문제, 작전통제권 환수 문제, 한미 FTA추진 문제, 그리고 검찰의 항명 사태, 게다가 여당의 노골적인 차별화까지... . 그래도 마음만 먹는다면 이 어려움을 뚫고 나갈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뚫고 나가는 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저는 이미 보수 세력과 야당에 저주받은 대통령이 되어 있습니다. 진보진영 일부에서는 '변절자'와 '배신자'로 낙인 찍힌 사람입니다. 누구에게 잘못이 있든 간에, 아니 저에게 잘못이 있지요. 지지자를 읽어버린 대통령은 식구들이 떠나버린 가장입니다. 존재할 이유가 없습니다."(212P)
이 이야기는 어디까지 진실이고 어디부터 허구인지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실화에 바탕을 두고 씌어진 듯하다. 이야기를 읽다보면 87년 민중항쟁이 거둔 민주주의 체제를 완성해야하는 시대적 과제와 경제 살리기, 북핵으로 대변되는 남북갈등 해결과 강대국과의 외교 문제 등 오늘의 한국이 처한 상황과 연결되며 중첩되기에 단지 소설이 아니라 현실의 문제로 다가온다. 대통령 임진혁의 말과 행위엔 노무현 대통령의 소박한 모습과 진정성이 자연스레 녹아있어 마치 생전의 모습을 마주하는 기분이다.
이야기의 중반을 넘어가면서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질문들이 화살처럼 쏟아지는 걸 느낀다. 보수와 진보로 갈라지고, 각자의 이해로 갈라져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대화가 통하지 않는 답답한 한국 정치, 이대로 좋은가. 대통령의 철학은 좌도 아니고 우고 아닌 무당파, 중도여야만 하는가. 순수하고 인간성 좋은 사람은 한국 정치에서 매도당하고 순교자가 되어야 하는가. 우리 사회는 언제쯤 학벌 콤플렉스, 종북 콤플렉스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 그러고 보니 한 편의 진지한 소설이 어느 사회과학 책 못지않게 많은 질문을 던지며 해답을 촉구하는 듯하다.
저자가 이 책에서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일까. 그저 재미로만 읽을 수 없는 우리 현실이 안타깝다. 결과적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몰고온 '대통령 흔들기'가 하나의 커다란 음모 속에서 일찌감치 전개되고 있었다는 의심을 말하고 싶은 걸까. 허구가 현실이 아닌 사회를 바란다면 내가 너무 순진한 걸까, 아니면 이야기 속에 너무 빠진 걸까.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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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에 김용원 작가가 쓴 [대통령의 소풍]을 읽었다. 그 책은 노무현대통령을 소재로 한 소설이었다. 탄핵을 당하고 헌재
판결이 있기 전까지 관저에만 머물러야 했던 시간을 작가는 소풍아닌 소풍에 비유하고 있었다. 이 책 [오래된 생각]은 참여정부에서 대변인과 제1부속실장을 역임했던 윤태영이 썼지만 소재는 [대통령의 소풍]과 마찬가지로 노무현대통령이다. 작품의 내용이 두 권의 책 모두 노무현대통령에
대한 것이고 읽은 시기도 비슷하다 보니 자연스레 두 소설을 비교할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각각의 리뷰를
쓰고 또 별도로 두 작품을 비교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지만, 각각의 리뷰를 쓴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았다. 어쩌면 내용이 똑같을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리뷰라는 이름아래 먼저 읽은 [대통령의 소풍]은 지금의 현실과
비교하여 보았고, [오래된 생각]은 두 작품을 읽으면서 느낀
점을 비교해보고 싶었다.
먼저, [대통령의 소풍]이 노무현대통령이 정치에 입문하던 시기부터 다루고
있다면 [오래된 생각]은 대통령으로 재직하던 시기부터이다. 상대적으로 [오래된 생각]이
좀 더 세밀한 내용을 보이고 있는 것은 아마 저자가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좌하고 있었기에 더 많은 사실들을 알고 있어서 그랬지 싶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보면 [대통령의 소풍]은 현실정치인과 그대로 대입이 가능한 반면 [오래된 생각]은 대통령과 저자를 빼놓고는 누구를 지칭하는지 알기가 어렵다. 어느
것이 더 나은지는 잘 모르겠지만, 몰입도는 소설 속 인물이 현실과 맞아 떨어지는 경우가 더 높지 않을까
싶다. [오래된 생각]을 읽으면서 처음에는 소설 속 인물들이
누구를 가리키는지 생각해보았지만 이내 소설인데 하고 생각하기를 그만두었다.
두
책의 저자 모두 작가의 상상력이 동원된 팩션이라고 했다. [대통령의 소풍]에서는 그런 작가의 상상력이 끼어든 자리를 쉽게 알 수 있었다. 저자도
탄핵이 인용되었다는 가정을 하고서 작품을 썼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래된
생각]에서는 허구가 어디까지인지 아리송했다. 청와대 전산실에
새로 들어온 직원이 정보를 빼내고 대통령 결재까지 위조할 수 있는 것이 허구인지, 소위 말하는 관계기관대책회의가
상상력인지, 아니면 액자식 구성의 한 축을 차지하는 작가 자신의 이야기가 허구인지 분간이 되지를 않았다. 어쩌면 소설에서 허구는 사실보다도 더 사실 같이 묘사되어 작품을 읽는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조금 허술하다. 팩트는
지난 시절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기에 단절이 있고 인과관계가 떨어지더라도 그대로 연결되지만, 허구의 경우에는
그런 단절이 있다면 뭔가 찜찜한 맛을 남기며 자꾸만 돌아보게 만든다. 그것이 소설을 쓰는 한 기법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읽으면서 느끼기에는 그렇다는 것이다.
나는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다. 단지 글을 읽고서 내가 느낀 것들을 쓸 뿐이다. 글을 잘 쓰고 싶은 생각을 가지고는 있지만 아직 그렇지는 못하다. 그럼에도
두 책을 읽고서 아쉬운 점은 저자들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확 다가오지를 않는다는 점이다. 노무현대통령의
삶에 대해서 쓰는 거라면 차라리 평전이 나을 것 같고, 정치인으로써 그의 희망과 절망에 대한 것이라면
에세이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굳이 소설을 쓴다면 설사 허구가 더 많이 들어간다 할지라도 전하고
싶은 메시지 한,두개에 집중하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노무현대통령을
많이 좋아한다. 그가 부산시장에 출마하여 낙선했을 때 그를 처음 좋아하기 시작하여 한때는 나 역시 그를
비난하고 비판하기도 했지만, 그에 대한 애정에는 변함이 없었다.
2009년 5월 이후, 더 이상 그를 볼 수
없게 되었을 때부터 난 그와 관련된 책이라면 무조건 읽었다. 그것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희미해저 가는
그를 내 마음 속에 새롭게 불러낼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우리들
모두가 아직도 그를 그리워하는 것은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원하는 바램인지도 모르겠다.
어찌되었던 요 며칠간은 행복했다. 두 권의 책을 읽으면서 마음껏 그를 생각할 수 있어서 그랬을 것이다. 또 다시 5월이 다가온다는 것이 가슴 아프지만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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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 청와대 대변인, 제1부속실장을 지내며 노무현 대통령을 그림자처럼 수행했던 윤태영이 자신과 노무현 대통령의 ‘오래된 생각’을 담았다. 소설의 형식을 띄고 있지만, 수필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참여정부 시절을 고스란히 이야기한다. 이는 이 책의 강점으로 작용한다.
의무경찰의 거수경례에 대통령이 가벼운 묵례로 화답했다. 상황이 아무리 심각해도 절대 거르지 않는 인사였다. 권력자였지만 권력의 문화에 발을 담그려 하지 않는 대통령이었다. 그는 권력을 얇은 유리처럼 대했다. 권력이란 언제든 자신에게 꽂힐 수도 있는 ‘양날의 칼’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에게 권력은 누림이 아닌 경계의 대상이었다. -p. 27~ 28
읽으면 읽을수록 인간적인 대통령의 모습에 그리움은 짙어만 간다. 그러나 저자는 독자들이 사실과 허구 사이를 끊임없이 가늠하게 함으로써 진실에 좀 더 가깝게 다가가도록 하기 위해 일부러 팩션의 형태를 고수했다고 하는데, 쉬이 공감하기가 어렵다. 오히려 진실에 다가가기가 어렵게 느껴진다. 골프 때문에 낙마한 총리가 누구였더라. 여성 총리는 누구였지. 허구의 포장지를 벗기고 진실에 다가가려면 독서를 멈추고 검색을 해야만 한다. 그리고 참여정부 시절과 진익훈의 과거 이야기가 교차해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전혀 매끄럽지가 않다. 그냥 각자의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는 느낌인데, 저자 인터뷰를 찾아보니 그제야 이해가 간다. 자신의 이야기를 모티프로 쓴 소설과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델로 한 소설을 따로 썼다가 작년에 두 편을 합쳐 다시 썼다고 한다. 저자는 자신의 이력을 이유로 허구를 사실로 받아들이는 독자가 있을까 봐 쓰는 내내 자기 검열을 하게 됐다는 말도 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인물들의 감정이 제대로 드러나 있지 않다. 특히 진익훈이 그러한데, 민희연과 김일권 때문에 김인수에 대해 여러 감정이 있을 텐데, 그저 청와대 대변인으로서의 감정만 보여준다. 가공의 인물 김인수는 어떻게든 대통령을 흔들어 사임시키려고 해놓고는 결정적인 순간에 탄핵의 기억을 떠올리며 그냥 이대로 가자고 한다. 마치 가공의 인물의 역할은 여기까지라고 말하는 듯하다. 128쪽부터는 갑자기 과거형에서 현재형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삶과 죽음을 정면으로 다룬 팩션이기에 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팩션에 담긴 4할의 팩트가 마음을 울린다. 특히 대통령의 말씀 하나하나가 그렇다.
“이 벽은 무너뜨릴 수 없다. 이 벽은 도저히 넘을 수 없다. 그 대목에서 순교를 생각하게 되는 것 아닐까요? 자기 삶을 어떻게 마감할까 생각하는 것이지요. 당사자가 아니라면 그런 점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이 벽을 넘을 수 있다는 판단이 서지 않으면, 자기 삶에 변명거리를 만들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경우는 순교를 생각하는 것이겠지요. 저는 그런 점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p. 173
대통령의 유언도 다시금 크게 다가온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p. 320
윤태영 장편소설『오래된 생각』, 소설로는 아쉽지만, 한없이 보고 싶은 노무현 대통령을 추억하기에는 좋을 듯하다. 대통령님, 많이 그립습니다. 진심을 너무 늦게 알아봐서 죄송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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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 임기 당시 대학생이었던 나는 가는 술자리마다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라는 말을 우스개로 하는 분위기에서 20대 초반을 보냈다. 그가 부엉이바위에서 뛰어내렸다는 뉴스를 봤던 순간을 나는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는데, 당시 내가 느꼈던 굵직한 감정은 미안함이었다. 진짜로 뭘 받았나? 내가 알던 그 사람이 아닌가? 생각했던 나 역시, 공범자였다. 이후 그 죄책감과 죄의식은 그의 얼굴을 볼 때마다, 그의 육성을 들을 때마다 조금씩 되살아나 적어도 그의 죽음에 있어서만큼은 유죄이고 멍청한 국민 중 하나였을 뿐이라는 자괴감에 시달리게 했다.
지난 해 서거 7주기에 맞춰 봉하에 갔을 때, 왈칵 눈물을 쏟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가 6월항쟁의 최전선에서 투쟁하다 처음으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던 당시의 사진을 봤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젊은가, 그럼에도 어쩌면 저리 주름은 깊은가. 저 선한 얼굴의 사진을 보면서도 그가 사랑한 것, 지키낸 것 덕분에 온갖 수혜는 다 받아놓고 결국 오욕속에서 죽어가게 했다는 죄책감이 다시 살아났다.
(그런 미안함 때문에 더욱 그립고, 내가 뭔가 만회할 수 있도록 그가 다시 살아돌아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책상 앞에 두고 수시로 본다. 남편 사진보다 크다. 나는 남들이 흔히 말하는 노빠도 아니고, 정치에 대한 열성이 있는 사람도 아니다. 다만 노무현에 대해서는, 적어도 대한민국 국민과 민주주의 시스템에 대해 이토록 강렬한 열정으로 자신의 삶을 바친 한 인간에 대해서는, 깊은 애정과 존경을 갖게 된다.)
<오래된 생각>은, 노무현과 현대사의 굵직한 궤적들을 견뎌내면서 그의 꿈의 방향과 행동의 주기를 함께했던 윤태영 전 대변인이 쓴 팩션이다. 주인공 진익훈과 대통령 임진혁, 진익훈과 젊은 날을 함께 보낸 친구인 동시에 검찰의 선봉에 서서 정치적 대립각을 세우는 김인수의 이야기가 중심이다. 상고 출신의 대통령이 청와대에 입성한 후 견뎌야 했던 언론, 검찰, 야당 심지어 여당으로부터의 공격의 내용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고 이를 대하는 대통령의 깊은 심중을 읽을 수 있다. 특히 권력의 시녀노릇하던 검찰의 독립을 위해 안간힘을 썼으나 그 검찰로부터 어떤 견제와 모욕을 받았는지, 결국 죽음에 이르면서도 그가 지키려 했던 것은 무엇인지가 잘 드러나 있다.
그는 한국 현대사의 병폐랄 만한 것은 모조리 건드린 대통령이었다. FTA나 전시작전통제권을 필두로 한 미국과의 관계, 자기 세력을 지키기 위해선 원칙도 없고 절차도 무시하는 정치권의 뻔뻔함, 권력의 방향에 따라 허리를 수그리는 검찰과 법원. 어떻게든 적폐를 청산하고자 했던 그에게 돌아온 것은 '이게 다 임진혁 때문이다'라는 조롱뿐이었다.
![]() '모난 돌이 정맞는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어차피 너희 힘없는 민중은 아무것도 못한다는 자조와 포기의 목소리에서 어떻게든 벗어나려 애썼지만 그의 필사의 노력은 인정받지 못했고, 대중도 결국 언론과 검찰의 프레임에 갖혀 그의 진의를 알아주지 않았다. ![]() 윤태영 전 대변인은 작가의 말에서 이 소설을 통해 비로소 '미안해하지 마라'라는 말의 의미를 알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 또한 이 소설을 통해 비로소 그 미안함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소설은, 민중을 사랑한 한 인간이, 그 민중을 핍박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진보하고자 했던 기록을 다룬다. 당연히 노무현을 떠올릴 수밖에 없고 한 명 인물이 등장할 때마다 이게 누구지? 기억을 더듬게 되고 과거를 곱씹게 된다. 우리가 외면했던 당시의 기억, 그에게 힘을 보태지 못했던 나에 대한 자책,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를 진보하게 하는 그의 업적을 추적하게 되는 책이다. 군데군데 소설가로서보다는 명확하고 정확한 전달자로서의 필자가 등장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듯하지만, 그 역시 이 소설의 장점이라고 본다.
오버일런지는 모르겠지만, 이것은 사랑에 대한 책이고 나 역시 그 사랑을 받았던 한 사람으로서 뒤늦은 후회와 고마움을 느끼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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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사실 민주주의라는 단어는 20대로 살아가는 나와 상당히 먼 단어였다. 고등학교에 다니면서도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를 했지만, 어디까지 나는 내가 당한 학교 폭력과 가정 폭력 사이에서 약자를 돕지 못하는 사회 문제를 지적했다. 그리고 대학생이 되어서 나는 우리 교육에 관해 이야기하는 게 전부였다. 나에게 정치와 사회 문제는 제대로 흘러가는 방향을 알지 못했고, 그저 신문과 뉴스를 통해서 보는 이야기가 틈틈이 나를 사회를 보는 시각을 길러줬다. 운이 좋아서 몇 정치인을 만날 기회도 많았다. 그런 내가 본격적으로 우리 정치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사건을 겪은 직후다.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은 내가 사는 김해에 있는 봉하마을에 있었다. 하지만 나는 거리가 가깝다는 이유로 커다란 흥미를 둔 적이 별로 없었다. 그냥 근처에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나는 우리 정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철이 없던 시절이라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 잘 알지 못했지만, 나는 매일 같이 쏟아져 나오는 기사와 책을 읽으면서 정치를 처음부터 공부해나갔다. 비로소 주권의식을 가진 시민이 되었다. 이번에 만난 <오래된 생각>은 또 다른 노무현의 이야기를 소설로 그린 작품이다. 책을 읽는 동안 뒤늦게 영상으로만 본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연설과 생각을 엿볼 수 있어 굉장히 가슴이 먹먹했다. 생전에 한번 찾아뵐 수 있었으면 실제로 들었을지도 모르는 이야기도 있었다. 너무나 안타까웠다. <오래된 생각>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역할을 하는 인물은 임진혁 대통령이다. 임 대통령의 곁에서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건 진익훈이라는 청와대 대변인이다. 진익훈 또한 학생 운동 시절에 적극적으로 운동에 참여하다 갖은 어려움을 겪었던 인물이었는데, 이야기 속에서 굉장히 그 열망이 잘 그려졌다. 특히 어린 시절 함께 자랐지만, 대학에서 길이 엇갈리며 정반대 입장에 놓이게 된 친구 김인수와 갈등을 빚는 모습은 마치 오늘 우리 정치를 보는 듯했다. 이 두 사람의 이야기는 비슷한 친구가 어떤 환경 속에서 어떤 성장을 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마치 오늘 이재명 시장이 그의 형과 겪는 갈등 또한 이렇지 않을까? 같은 핏줄이지만, 걸어온 길이 다르기에 두 사람은 완전히 다른 자리에 서 있다. 한 사람은 구시대의 상징에 죽을 듯이 달려들고 있고, 한 사람은 복지와 적폐 청산을 외치고 있다. 참, 사람의 삶은 묘한 것 같다. 나는 그렇게 <오래된 생각>을 때때로 떠난 그분을 그리며, 때때로 오늘 우리가 마주한 사회를 떠올리며 읽었다. <오래된 생각>은 소설이지만,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마냥 소설로 느껴지지 않았다. 이 책은 저자 전 참여정부 윤태영 대변인의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었기에. 우리는 이제 일찍 찾아온 새로운 기회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 기회를 통해서 그동안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다시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정치를 다시 실현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우리에게 달려있다. 5월 대선을 앞두고 꼭 한 번 <오래된 생각>을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그릇된 실수를 통해 보는 오늘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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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엉이 바위에서 몸을 던지던 날. 아침 다섯 시 사십사 분 삼십이 초에 남긴 글이다.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기라니, 그이는 가시는 날까지 소박하기 그지없었다.
그이는 대화와 타협으로 새로운 민주주의 시대, 나아가 동북아의 평화 공동체를 만들고 싶었지만 역부족이었다. 야당은 그를 ‘친북’이라 매도했고, 진보정당은 그를 ‘신자유주의’로 규정했다. 소속된 여당에서도 그는 ‘인기 없는 대통령’이었다.
이야기는 2006년 3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무렵 노무현 전 대통령은 총리 낙마와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부동산 가격 폭등, 북한 핵실험 등 연이은 난제 속에 지지층의 이반과 여당의 이탈로 대통령직 중도 사임까지 고민해야 했다.
하지만 작가가 쓴 소설은 대통령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는 사적인 자리에서도 대통령의 말은 하나하나가 다 역사라는 생각에서 하나도 빠짐없이 기록하고자 했다. 2006년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꿈꾸었던 많은 꿈이 파편처럼 부서져 버린 해였다.
소설의 주인공은 대통령 임진혁과 청와대 대변인이자 연설기획비서관 진익훈이다. 이와 대척점에 검찰 출신 야당 대변인 김인수가 있다. 김인수는 진익훈의 오랜 친구이지만, 참여 정부를 상대로 음모를 꾸미고 뒤흔드는 중상모략을 일삼는다. 김인수는 나중에 국회의원이 되어 대권 도전에 나서는 것으로 설정된다. 김인수라는 인물은 현실 정치판에서 구악(舊惡)이 어떻게 진화하는지 잘 보여준다.
참여정부 대변인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2009년 5월의 그날 이후, 몸과 마음에 병을 지니고 살았다. 병을 이겨내기까지는 4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2009년 그때 차라리 건너뛰고 살았으면 하고 허튼 기도를 했던 세월이었다. (중략) 돌이켜보면 그분에 대한 미안함이 한 시절을 지배했다. ‘미안해하지 마라’는 남겨놓으신 말이 있음에도 그 의미를 곱씹지 않았었다. 소설을 쓰는 동안 비로소 그 말씀이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이제 나는 그 미안함을 내려놓는다” (334~335쪽)
현재 작가는 안희정 캠프의 TV토론단장을 맡고 있다. 이제 5월이면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한다. 고인이 꿈꾸었던 세상을 되돌아보는 봄이 되었으면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