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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51 - 고려왕조는 마지막에 충자 돌림을 썼고 1년에 7명씩 99년간 공녀를 원에 바친다.
공민왕시절 모든 제도를 고려식으로 바꾸고 공녀도 없앤다.
1388년 명의 요구에 반발한 우왕은 이성계를 총사령관으로 요동을 치려하지만 위화도에서 쿠데타를
일으켜 고려왕조를 멸망시키고 다시 공녀제도를 부활시킨다.
더 한심한건 아직도 위인전이나 TV에선 고려의 무능을 이성계가 백성을 위해 혁명을 일으킨거라
강연하고 있다.
조선왕조는 12세이하의 어린 소녀는 혼인할 수 없도록 법으로 정해놓았는데 이는 세종6년9월25일에 만든것
으로 명나라에 보내는 공녀문제 때문에 민가에서 10세이하의 어린소녀를 일찍 시집보낸 풍조가 생긴 까닭이
다.-- 현실이 이런데도 우리교과서에선 원나라 공녀때문에 생긴것이라 세뇌교육을 시키고있다.
교과서에 실린 또하나의 이야기 단종과 낙화암 여기선 생략되었다.
창신동 자지동에 자주동천이 있다 여기 정순왕후가 궁여들과 함께 자주색물을 들인 곳인데 이것도
생략되었고 낙산 청룡사에서 단종이 정순왕후와 마지막밤을 보낸곳 옆에 정업원이란 궁녀들의 마지막
안식처가 있었는데 이것도 생략--영영 영이별다리
국회의사당자리는 옛날 양말산이 있던 곳으로 양이나 말을 치던곳인데 여기 궁녀들의 묘지가 있었다.
이것도 생략-- 돈버는 풍수
7궁에 대한 설명 광해군,영조,연산,고종등 설명이 너무 잘되어 있다.
궁녀의 생활상과 중종때의 대장금에 관한 이야기도 자세하다.
옛날 궁녀에 관한 자료를 자세히 찾은 흔적들이 곳곳에 있다.
이 한권의 책으로 더 이상 궁녀에 대한 책을 사서 읽지않아도 되겠다.
궁녀에 관한 설명이 이 한권에 다있다 궁녀에 대해 알고 싶은 독자가 계시다면 꼭 읽으시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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