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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자를 제외하고 20세기의 최고의 기독교 변증가로 꼽자면 프란시스 쉐프와 c.s. 루이스를 꼽을 수 있다. “살아있는 신”을 읽으면서, 그 변증가의 대열에 티머시 켈러를 넣어도 손색이 없으리라 생각되었다. (티머시 켈러가 비록 신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교수직으로 활동했다 해도 학자로서의 경력보다는 목회자로서의 경력이 더 두드러진다)
우선 티머시 켈러의 이력이 이채롭다. 그는 온갖 세속주의의 요람이라고 할 수 있는 뉴욕에서 교회를 개척하고 주 목회 대상을 대도시 전문직 종사자로 삼았다. 저자도 밝히고 있듯이 많은 사람들에게 이것은 무모한 도전처럼 보였다. 그러나 티머시 켈러는 훌륭하게 이 사역을 감당하고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이끌었다. 아마도 그는 신의 존재를 회의하는 많은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그들의 주장의 핵심과 그것을 어떻게 반박할 수 있는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살아있는 신”은 그의 이러한 독특한 목회 경력의 산물이라고할 수 있다. 켈러는 무신론으로 무장한 엘리트를 향하여 그들이 반박할 수 없는 논리로 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다. 켈러는 무신론자들을 조롱하거나 비웃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들의 주장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그들의 논리를 따라간다. 그리고 그 논리를 따라가다보면 그것이 신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이 존재를 강력히 요청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책은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자들의 논리와 근거가 얼마나 부실한 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성도들 중에는 신의 존재를 불신자들에게 이야기하면 광신자처럼 취급당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신이 존재한다는 것은 종교적 영역에서만 진리가 아니다. 신이 존재한다는 것은 지구가 존재하는 것만큼이나 자명한 사실이다. 이 책은 신자들로 하여금 무신자들의 회의를 이해하도록 돕고 그들에게 효과적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설득하는 방법을 제공해 준다. 더불어 우리가 믿고 있는 이 믿음이 진리라는 것을 보다 확고히 인식하도록 도와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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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머시 켈러의 <살아 있는 신>은 변증서입니다. 변증서란 변호하는 것이지요. 기독교에 대한 변증을 하는 내용입니다. 기독교의 입장에서 보면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이란 책이 몇년 전 베스트 셀러가 되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혼란에 빠지게도 했습니다. 반면 최근에는 한국의 지성인인 이어령교수님께서 기독교로 개종하고 <지성에서 영성으로>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신의 존재에 대한 관심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모든 증거들을 가져다가 신이 없음을 증명해 보이려고 하고, 또 어떤 분들은 그 증거들을 가지고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하니까요. 그것이 과학계에서 말하는 진화론과 창조론의 논쟁이 아닐까 합니다. 변증서 하면 '코넬리우스 반틸'이 생각나는데, 최근에는 '리 스트로벨'도 그 이름을 더합니다. 저자 티머시 켈러의 신학의 바탕이 복음주의 신학의 계열에 있다는 것이 그를 바라보는 신학자와 목회자들의 마음을 끌어내고 있습니다.
"세상은 종교를 두고 양극화 하는 중"이라는 말에 공감합니다. 어느 한부분은 더 종교적이 되고 있고, 또 한 부분에서는 종교에서 멀어지고자 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서구 유럽에서는 동양종교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는 글을 본적이 있습니다. 영화를 통해서도 영화배우들을 통해서도 종교에 관한 영화를 보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입니다. 책의 마지막 표지에서 말하는 "신이 없다고 믿는 사람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반드시 무언가 다른 대상을 신처럼 섬기게 마련이다"라는 말이 마음에 와닿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무언가를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돈이든, 건강이든 말이죠. 심지어 '내 주먹을 믿는다'라고 하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8분의 신학자와 목회자 그리고 인사들의 추천사가 흥미롭기도 했습니다. 한권의 책에 이처럼 많은 이들의 추천사가 실리는 경우는 아주 보기 드문현상입니다. 그만큼 티머시 켈러의 <살아 있는 신>이 영향력이 있다는 말이겠지요.
책은 일곱 챕터를 제1부 의심의 도약으로 하고 있고, 나머지 일곱 챕터를 제2부 우리는 왜 믿는가?로 설명을 합니다. 1부는 기독교 변증을 말하고 있는 것이고, 2부는 그리스도인들의 정체성을 말한다고 하겠습니다. 신학을 공부한 사람들에게는 책의 내용에 사용한 단어들이 익숙하지만 일반인들이나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 볼 때는 약간 어려운 단어들이나 철학적이고 신학적인 전문용어들이 많이 나와 조금 혼란스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저자의 경험들을 말하는 것을 보면 변증서라는 장르로서의 딱딱함 보단 좀 부드러운 용어를 쓰고 있다는 생각도 합니다. 부록으로 담긴 DVD "우리 모두 거듭나야 하리라"는 사도요한이 전하는 그리스도의 수난 설교 시리즈입니다.
이 글을 올리는 시기와 참 적절한 DVD요,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2010년 3월 28일은 종려주일 29일부터 4월 3일까지는 고난(고난)주간이거든요. 바로 4월 4일은 부활주일이기에 그 의미가 아주 컸습니다. 이런 좋은 기회를 허락한 저자 티머시 켈리와 베가북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계획하고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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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들어 청년들과 얘기를 하다보면 참 많이 답답해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느 순간부터 너무나 회의적이 되어버리고 힘들어 하고 있는 아이들! 신앙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지금껏 초,중,고등학교를 거쳐서 이젠 나름대로 이성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대학생의 신분이 되고 나서였을까? 아이들은 거의 대부분 그 과정들을 거친다.
어릴 적엔 거의 한 번도 해 보지 않던 것들을, 이제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일 수도 있겠다, 부모와 여러 상황이 만들어 놓은 것에 순응하여 흘러가다가 이젠 자립의 시간이 되어 자신이 만나는 하나님과 자신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과정일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들!
사람이 살아가면서 절대자인 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작금의 현실을 보면, ( 신앙을 가진 우리들의 눈에 보이기에도) 하나님이 세상을 외면하시는 것 같은 착각을 느낄 때가 많이 있다. 타민족에 대한 이유없는 적대감으로 인한 모스크바에서 이유없이 죽어간 우리 젊은 청년들!, 아무런 이유없이! 갑자기 닥쳐온 지진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간 아이티! 갑자기 학교 가다가, 놀이터에서 놀다가 어른들에게 희생당한 우리의 어린 딸들! 이런 작금의 현상들을 보면서 어떻게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냐고! 묻는 사람들! 그들에게 오늘 이 < 살아있는 신 >은 여러 예화와 아울러 맘을 다치지 않지만 이유있는 말로, 이성적인 논조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얘기해 주고 있다.
어릴 적 학교 다닐 적에 나 역시 신학을 하면서도 침묵하시는 하나님이 용납이 되지 않았던 적이 있다. 왜 이런 고통 앞에 이렇듯 침묵을 하실 수 있을까? 어떻게 그러실 수 있을까? 등으로 참 많이 고민했던 적이 떠오른다. 기독교를 이성적으로 아주 잘 변증을 해주는 분으로 영국의 문호인 C.S. 루이스를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데 이 책에 많은 부분이 인용이 되어 있었다. 이 책은 총 2부로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하는 의심들인 7가지 의심에 대해서 제1부는 되어있고, 제2부는 그에 반하는 신이 있는 증거들인 우리는 왜 믿는가?에 대한 부분으로 구성이 되어 있었다.
선하신 하나님이 고통을 허락하실리 없어! 사랑의 신이 인간을 지옥으로 어떻게 보내지? 과학으로 증명된 기독교의 틀림, 저 낡은 책을 그저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등등!
이 책을 읽으면서 결코 쉽게 넘어가지 않고 다시 되돌아 오는 페이지에 놀랐고, 티머시 켈러 목사님의 명철에 참 감사했다. 억지가 아닌 설득력을 가지고 신앙을 가진, 그리고 신앙이 없는 사람들을 만나고 계신 모습에 감사했다.
덧붙여서 우리 모두는 거듭나야 하리라 라는 DVD는 특별히 사순절 기간에 내게 주신 멋진 선물이었다. 참 설교도 사람들에게 잘 전달이 되게 전하심에 너무나 감사했다.
인간의 고난과 고통 앞에 침묵하시지만, 결국 그 고통속에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느끼고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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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새벽 2시쯤 책을 펴곤
무척 많은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스타워즈 다스베이더의 영화 속 대사로
한마디로 노련하지만 교묘하진 않은
정말 답하기 어려운 문제들에 대해
한국에도 이런 설교를 행할 수 있는 이가
이런 모든 아쉬움과 뿌듯함을 떠나 '살아있는 신'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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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는 영혼을 위한 희망의 카운터컬처라는 부제가 있는 책입니다. 그래도 저는 다행이고 감사라는 생각이 새삼 들더라구요..)
복음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어렵게 믿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저는 이제껏
저자는 의구심과 신앙이 모두 증가하고 있는 요즘의 상태에서
기독교의 배타성에 관한 오해와 질문들, 거기서 나오는 편협적인 질문들과 갈등들, 그 무수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심들과 실망감, 분노, 패배감, 소외감 ... 모든 의심을 수면위로 떠올려두고는 이야기 해보자고 권하고 있답니다. 그 책이 요약적 질문과 답변이라면 이 책은 서술적, 포괄적 질문과 답변 같습니다.ㅎㅎ)
작가의 말처럼 신이 존재한다 할지라도 그는 실험실에 갖다놓고 경험적인 방법으로 분석할 수 있는 어떤 물체가 아닙니다.
신이 있다는 단서들, 죄악 그 해결책 예수 그리스도, 진짜 십자가 이야기, 부활의 실재 등 피조물들로부터 달아나려는게 아니라 그들을 갱신하고 회복시키려는 것이라 정정해줍니다. 예수가 나를 위해 죽었을 때, 그는, 함께 춤을 추자고 손을 내민 것이라고 알려줍니다. 그가 나를 위해 자신을 기꺼이 내주었듯이, 나도 예수를 중심으로 내 삶의 모든 것을 두기 시작하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믿고 따라간다 하면서도 여전한 불안과 의심을 갖고 있으며 신앙없다 치부될까 인정하지조차 않고 있는 나약한 크리스챤에게도 여러가지 의심과 불안, 두려움에 사로잡혀 예수 그리스도 그 참 빛의 은혜 안에 거하지 못하는 사람은 더더욱, 추천하고 싶은 책이네요. 재미있는 전개는 아니지만 논리와 실제 예화들이 쉽지 않아보이는 책의 여정을 부드럽게 인도해줍니다. 이 길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따라가볼 것을 함께 걷고 있는 사람으로 마음다해 권하고 싶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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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속담이 있다. 아무리 고생스럽게 살더라도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좋다는 말이다. 살아있다는 것이 그 자체가 행복이자 축복이다. 어떤 사건이나 병으로 죽을 고비를 넘긴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그들은 살아있는 것 자체가 고맙다고 한다. 아름다운 꽃들로 자연의 신비를 마음껏 느낄 수 있는 계절이다. 어디를 가든지 꽃으로 천지를 이루고 있다. 아름다운 꽃을 보는 것만으로도 살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를 느끼게 된다. 인간도 살아있다는 게 더 좋다는 데 살아있는 신(神)들이야 물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우리는 각기 저마다의분야에서 최고의 경지에 다다른 사람들을 가리켜 살아있는 신이라 한다. 마치 월스트리트의 살아 있는 신으로 불리는 20세기 최고의 펀드 매니저 조지 소로스나 '주식투자의 신' 버핏처럼 말이다. 신(神)은 신앙의 대상으로서 저지전능하고 초자연적인 능력을 가진 존재다. 이미 우리는 주변에서 살아있는 신이라는 인물들을 많이 봐왔다. 멀리 이집트의 파라오도 단순한 정치지도자가 아니라 살아 있는 신 자체였다 하고, 가까이 일본에서는 천황이 살아있는 신으로 추앙 받고 있다고 한다. 전지전능한 신이 되어버린 지 오래인 김일성에 이어 김정일도 살아 있는 신이라는 말을 듣고 있다. 또한 스스로를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사이비 종교의 교주들도 있다. 이들은 모두 그들이나 배후세력들이 자신이나 왕을 살아 있는 신으로 만들어놓고, 배후에서 그들을 조정 하여 그 권위를 최대한 이용하여 통치하고 이익을 취하려는 전략이다. 세상이 돌아가는 형편을 보면 과연 신이 존재하는가? 되묻고 싶을 때가 있다. 악이 선을 이기는 현실을 보고 겪으면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어린이나 어른 할 것 없이 “신은 있다, 신은 없다!” 하는 문제가 끝없는 논쟁거리다. 신이 없다는 측에서는 신이 살아있다면 우리 인간이 이렇게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말을 한다. 신과 관련된 주장은 어느 주장이 맞는지는 아무도 증명하지 못한다. 우연히 ‘살아 있는 신’이라는 책을 보게 되었다. 사실 '살아있는 신”은 살아가는 인간들의 고민과 지적 갈등을 해결하는 심리치유서와도 같다는 소갯글이 마음에 들어 인간으로 태어나 떨칠 수 없는 각종 고민을 해결하는 방법을 배우고 싶어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티머시 켈러라는 미국 목사다. 1989년 뉴욕에서 Redeemer 라는 이름의 장로교회를 창립해 이끌고 있다. 옮긴이는 서울대를 졸업하고 미국의 모건은행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권기대 번역가가 번역하고 베가북스에서 출판한 책이다. 이 책은 2부로 나뉘어져 제1부에서는 의심의 도약이라는 주제로 참된 종교는 오직 하나뿐인지? 하나님이 선하다면 왜 고통을 허락하는지? 기독교의 가혹한 속박과 엄청난 부정은 교회의 책임이다고 하면서 사랑의 신이 인간을 지옥으로 보낸 것이 맞는지 기독교는 틀렸다고 과학이 증명했다면서 성경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야 없다고 역설적으로 살아 있는 신의 존재를 이야기하고 있다. 제2부에서는 우리는 왜 믿는가?라는 주제로 신이 있다는 단서들을 소개하면서 신을 안다는 것과 죄악이라는 문제, 종교와 복음, 부활의 실재와 춤추는 신이라는 제목으로 신의 존재에 대해 확실하게 설명해주려 하고 있다. 저자는 '신이 있다면 세상의 고통을 왜 그대로 두고 보는가', '기독교는 왜 다른 종교를 포용하지 못하는가' 등의 질문에 대해 나름대로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티머시 켈러가 신의 존재에 대해 오히려 의문을 더하고 부정을 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느낌을 받게된다. 저자는 최근 미국 기독교 지도자들에게 한 여론조사에서 ‘미국 내 가장 영향력 있는 목회자’라고 한다. 저자는 회의하고 방황하는 젊은 이들이 전혀 거부감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열광하게 만든다며 전 세계의 목회자들이 그의 전도 방식을 배우려고 꾸준히 뉴욕을 찾고 있다고 한다. 그의 설교 방식에는 남다른 점이 있다. 책의 곳곳에서 소개하고 있다시피 저자는 이 책에서 목회활동을 하면서 들었던 질문들을 인용하고 있는데 그 질문들은 예배가 끝날 때마다 질의, 응답한 내용이라는 것이다. <살아있는 신>에서 ‘신은 어째서 이 세상의 고통을 그냥 두고 보는 걸까?’, ‘하나님이 사랑의 신이라면 어떻게 인간을 지옥으로 내몰 수 있는가?’, ‘신의 이름을 걸고 그토록 많은 전쟁이 벌어졌는가?’등 모든 사람들이 생각하는 문제에 대해 답을 해주고 있다. 사랑의 하나님이 왜 심판하느냐는 문제는 “하나님의 분노는 그의 창조물에 대한 사랑의 기쁨에서 비롯되는 것”이고, “신의 분노는 고약한 성질의 폭발이 아니라 신이 모든 것을 걸고 사랑하는 인류의 내부를 좀먹는 암(癌)에 대한 차분한 저항”이라고 답했다. 하나님의 분노와 신의 분노의 차이점을 알려주고 있다. 이 시점에서 이 책은 종교란 무엇인지 종교의 정의를 찾아보게 만든다. 종교란 무엇인가? 엄밀하게 종교를 한마디로 정의하는 일이 어렵다. 왜냐하면 종교에 대한 정의도 제시되기만 하면 언제나 반대 논리가 제시되기도 한다. 따라서 종교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것도 학자마다 다 다르다. 티엘(C.P. Tiele)은 “진실로 종교란, 우리가 경신(敬神)이라고 부르는, 마음의 순수하고 경건한 성향이나 상태를 말한다.”라고 하고, 브래들리(F.H. Bradley)는 “종교란 우리 존재의 모든 측면을 통해서 선(善)의 완전한 실재를 표현하는 시도”라고 한다. 그리고 마티노(James Martineau)는 “종교란 영원히 살아 있는 신, 즉 우주를 다스리고 인류와 도덕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신의 뜻과 의지에 대한 믿음”이라고 정의 하였다. 누구의 정의가 가장 올바른 정의라는 것을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여기서 종교에 대한 정의를 찾아보는 이유는 과연 신에 대한 문제를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부정의 부정, 즉 역설적인 방법으로 신앙의 기초적 지식을 알려주고 자신의 지식을 총동원하여 무신론자들을 설득하고 있다. 이 책은 읽어갈수록 신에 대한 회의가 한 순간에 풀린다. 아니 어쩌면 신의 존재가 더욱 또렷하게 느껴진다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각종 고민과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가 없다. '살아있는 신”은 살아가는 인간들의 고민과 지적 갈등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는 심리치유서와도 같은 책이다. 오늘 어느 하나의 종교만이 옳고 다른 종교들은 다 틀렸다고 할 것이 아니라 세속적인 종교문제를 떠나 살아가면서 자신의 존재가 위협받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면 이 책을 통해 그 답을 얻기 바란다. 신자나 비신자를 막론하고 인생살이에 다소나마 도움이 될 것으로 보여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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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신 태초부터 지금까지 인류에게 주어진 숙제는 "과연 신은 있는가?" 이다. 또한 나는 신의 존재를 믿어야 되지는 그것에 대한 물음을 끝도 없이 반복하면서 살아왔고 또한 우리의 후손들도 살아갈 것이다. 그것은 생각을 가진 인류가 짊어지고 가야할 자기 정체성에 대한 뫼비우스띠와 같다. 그리고 그 해답 없는 질문으로 인해서 생기는 여러 문제들 그것은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로 분류 되어져 이질감을 느끼면서 지구촌은 분열되고 있다. 만들어진 신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서 자신은 신이라는 존재를 절대 믿지 않는다고 했다. 또한 그는 여러 가지 논리와 증거를 가지고 과거에서 지금까지의 종교 즉 신을 믿는 행위에 대해서 반박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가정 즉 "현재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전쟁과 분쟁으로 인한 죽음이 거의 대부분 종교적인 문제로 발생하고 있다"라고 말하며 종교가 없는 세상이 오히려 더 평화롭고 행복하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여러 가지 논쟁의 중심에서 이러한 생각을 해본다. 결국 신을 믿느냐 아니면 신을 믿지 않느냐의 선택은 그 누구의 권한도 아니다. 그것은 오로지 나 자신의 문제 나 자신의 자유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절대 그 해답을 찾을 수 없다. 믿고 싶으면 믿는 것이고 믿기 싫으면 믿지 않는 것이다. 때로는 맹목적인 신앙인 또는 믿지 않는 것을 맹목적으로 믿는 일반인들 사이의 견해 차이에서 또 다른 분쟁이 생기기도 한다. 결국 믿지 않게 하는 자 믿게 하려는 자로 나누어져 세상은 일정한 싸이클로 계속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티머시 켈러의 살아있는 신. 아마도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에 반박하려는 의지가 엿 보이는 제목이라 생각한다. 이 책의 중심은 신은 절대적으로 존재하며 인간의 생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즉 신이라는 존재가 인간의 가진 내세의 두려움으로 인해서 만들어진 단순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티머시 켈러. 살아있는 신의 저자이며 미국 뉴욕 Redeemer presbyterian Church를 창립한 목사이다. 티머시 켈러 목사의 설교는 젊은 층을 겨냥한 즉 분석적이며 논리적인 설교로 정평이 나 있다. 그래서 그는 전문직 종사자, 미국 문화를 이끌어 가는 젊은이들에게 많은 각광을 받고 있다. 또한 그는 미국 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목회자 중 한사람으로 평가 받고 있다. 그는 살아 있는 신을 통해서 기독교가 받고 있는 여러 가지 상처와 질타에 대한 해답을 보여주며 결국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하는 명확한 이유와 증거들을 보여주고자 한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첫 부분은 의심의 도약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있고 두 번째 부분은 우리는 왜 믿는가라는 주제를 가지고 있다. 1부에서는 현재 기독교가 지탄 받고 있는 거의 모든 사항들에 대해서 요목조목 자신의 견해를 이야기 한다. 그 동안 대충 알고는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물어 오는 질문에 확실하게 대답하지 못했던 문제들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듣고 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 느낌이다. 또한 신이 있다는 증거들을 말하며 우리는 왜 그런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지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 들려주는 것이 두 번째 주제의 목표이다. 분명한 것은 기독교가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문제점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인간이 만들어 낸 문제임을 직시해야 한다. 또한 우리의 과오 즉 기독교가 행했던 많은 잘 못들에 대해서 우리는 반성해야 한다. 앞으로 더욱 많은 의심의 세계에 빠져 들어 갈 것이다. 그리고 믿는 것과 믿지 않는 것의 모호함 속에서 더욱 관용적인 세상이 펼쳐 질 것이다. 이에 기독교인들은 어떠한 자세를 가져야 하겠는가? 마지막으로 이러한 논리를 생각해 보자. 신이 없다고 믿는 것 그것 또한 신앙이다. 그것 또한 아주 맹목적이고 헌신적이며 공격적인 신앙 행위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신이 만들어 졌다고 말하는 것 그리고 그것의 이유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 자체가 무신론 신앙의 결정체가 아닐까? 이 책은 인간이 가지는 신앙에 대한 많은 질문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하는 매력이 있다. 그래서 신앙을 가지는 것에 대한 의문에 대해서 많은 해결점을 제시함에 높은 평가를 하고 싶다. 기존 기독교인에게는 반성의 시간을 기독교를 믿지 않는 많은 이들에게는 신의 존재가 확실하게 있음을 전하는 책이라 말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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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머시 켈러의 <살아있는 신>. 뉴욕 타임즈 종교 부문에서 아마존 닷컴 종교부분 장시 베스트 1위. 처음에는 '살아있는 신' 이라는 제목에 먼저 관심이 갔었다. 하지만 '과연 신이란 인간의 상상력과 공포심이 만들어 낸 것일까?'라는 글귀를 보고 더욱 읽고 싶었다. 나도 예전에 이런 비슷한 생각을 햇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뉴욕 타임즈 종교부분에서 1위를 한 것은 얼마나 대단하단 말인가.. 그 문구를 보고 종교를 떠나서 한번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은 있는가? 아니면 없는가?라는 분쟁은 많은 사람이 분쟁하고, 나 또한 한번쯤 생각해 보았던 문제이다. 신은 정말 있을까...? 나는 잘 모르겠지만.. 믿음은 있다고 생각한다. 신은 어떻게 생겼고, 어떻게 살아가는지...말이다.
이 책을 읽고 많은 생각을 했었다. 제 1부에는 의심의 도약 제 2부에는 우리는 왜 믿는가? 로 나누어져 있다. 예시로 설명을 잘 해주어서 이해하기 쉬웠다. 이 책을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가 담겨져 있었다. 희망, 사랑, 믿음... ! 그외의 많은 이야기들.. 책 내용도 재미있어서 지루 하지 않았다. 이 책을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이 읽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한 !!! 방황하는 영혼을 위한 희망의 카운터컬쳐 부록 DVD 사도 요한이 전하는 그리스도의 수난 설교 시리즈도 함께 들어있어서 좋았다. 아직 보지는 못했지만..시간이 나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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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교회 소그룹 모임에서 신앙에 대해서 나눈 적이 있었다. 그때 어떤 분이 믿음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눈물을 흘렸던 것을 기억한다. 그 분은 모태신앙이면서 10년 넘게 교회학교 교사를 해 오시는 분이었다. 그런 분이 도대체 믿음이란 어떤 것인가라는 질문을 하면서 막연히 성경 말씀을 믿는 것, 그리고 예배드리는 것만이 믿음의 전부는 아닌 것같다고 말씀하셨다. 평소의 자신의 삶의 모습에서 믿음 있는 삶을 찾아보기 힘들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성경말씀을 지식적으로 믿는 것에는 문제가 없다고 말을 하면서 하지만 자신의 마음은 실제로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믿음이라는 어떤 걸까? 무엇을 믿는 것이며, 어떻게 믿는 것이 믿음일까? 그 자리에 모인 나이 드신 권사님께 여쭤 봤더니, 믿음은 그냥 믿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너무나 단순한 말씀이어서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그저 웃기만 했는데 사실 웃고 넘길 일은 아니었다. 그냥 믿는 것, 사실 그게 정말 믿음일 테니까. 이처럼 신앙생활을 오래해 오던 사람들조차도 믿음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믿는 것이 믿음인가에 대해서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그저 우리는 기독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신앙 생활해 오기 때문에 이러한 것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고 이런 질문이 필요치 않았던 것일 것이다. 하지만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도대체 믿음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믿는 것이 믿음인가? ‘살아있는 신’, 이 책은 참 어려운 책이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책이며, 우리의 믿음이 헛된 믿음이 아니라는 것을 비 그리스도인들에게, 또한 기독교신앙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믿음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이들에게 강하게 역설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는 비기독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의문이자, 안티성 질문들을 통해 기독교의 진리를 설명해 나가고 있다. 이 내용은 단순히 비기독교인들을 향한 대응 메시지가 아니라, 기독교인들 조차도 잘 모르고 단순히 믿고 있는 것에 대한 가르침이다. 그러므로 저자는 안티기독교인들을 향해 메시지를 선포하고 있으면서 기독교인들에게 믿음을 확고히 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독교 진리를 설명하고 있다. 과학이 최첨단으로 발달하는 시대에서 점점더 기독교의 메시지가 힘을 잃어가고 있다. 사람들은 무엇이든 과학적으로 증명되어야 믿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증명하고 싶어 하는 마음속에는 어쩌면 차디찬 과학 문명이 가져다 준 고독을 극복하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어머니의 품과 같이 따뜻한 사랑의 품이 그립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그들에게 사랑으로 다가간다면 굳이 증명하지 않아도 우리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이 증명되지 않을까하는 마음이다. 분명 하나님이 살아계심이 증명되어야겠지만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