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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엔 계속해서 책을 읽는다는 건 한가지 해답을 얻고자 하는 일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이 단출한 질문에 여러 함의가 담겨 있다. 그 때문인지 이 질문은 사춘기 아이에게나 고희(古稀)에 이른 노인에게나 공통된 질문이 될 수 있다. 살고 있다는 것은, 자신과 세계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하는 행위여야 한다. 더 이상 질문하지 않을 때, 그 사람은 영혼의 성장을 멈추게 된다. 물리적으로 뇌에 산소 공급이 되지 않을 때와 영혼에 존재에 대한 의혹이 일지 않을 때는 같은 결과를 가져온다. 자못 리뷰를 진중하게 시작할 수밖에 없는 것은 내가 한 권의 철학 책을 논할 것이기 때문이다. 오랜시간 책을 읽어왔다지만, 철학책 한 권을 읽은 후에 나는 언제나 이렇게 무겁게 생각하는 버릇을 버릴 수가 없나 보다. 철학엔 삶과 생각을 진지하게 되돌아 보게 하는 힘이 있고, 그게 내가 철학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젊은 철학자 강신주의 <철학 vs 철학>은 몇 개월 간 내 서재에서 잠자다 겨우 내 눈에 띄었다. 그간 띄엄 띄엄 서양과 동양 편 챕터 한 두 개씩을 꾸준히 읽어왔다. 강신주는 인류 역사의 모든 철학자들을 사유의 링 한 가운데로 끌고 나와 그네들의 사상을 대결 시킨다. 실제의 링이 아니라, 철학자 강신주를 통해 걸러진 대결의 공간을 통해서다. 철학 용어 부록까지 합하면 무려 900여 페이지에 닿는 책을 읽어내기란 보통의 각오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서양과 동양 편 각각 28개 주제, 총 56개 테마로 인류의 역사에 존재했던 철학과 철학자들의 삶, 사상을 총괄적으로 담아냈다. 지금껏 어느 철학 책에서도 쉽게 볼 수 없었던 편집과 서술 방법을 택했다. 단순히 편집의 독특함이 이 책의 모든 것은 아니다. 농익은 저자의 사유하는 힘이 실리지 않았다면, 독자는 이 거대한 사상의 싸움터에서 길을 잃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멀게는 고등학교의 윤리 교과목에서부터 대학 1학년 시절의 교양철학 시간까지, 우리는 철학에 대해 공부해 왔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철학의 시작이자 끝이었다. 시작했지만, 시작은 곧 끝인 격이다. 어렵고 딱딱하기 때문이다. 나름 열심히 공부했지만 철학을 심도있게 공부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왜 철학을 공부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 학생도 없다. 우리 철학 교육의 실태는 이처럼 빈곤하다. 인문학은 곧 문학,사학,철학, 즉 문사철을 학습하는 일이다. 최근 고용노동부 장관은 "반도체, 휴대전화 공장에는 일손이 부족한데 청년실업률이 높은건 대학에서 `문사철'을 과잉 공급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자신들의 정책 실패와 무능으로 빚어진 고실업을 애꿎은 대학 인문학 전공자들에게 떠넘겼다. 인문학이 그렇게 만만해 보이는 학문였을까 ?
대학 강사이기도 한 저자는 이 책의 에필로그에서 한 가지 일화를 들려준다. 대학 신입생들이 들어오면 강의 첫시간에 반드시 그는 이렇게 묻는다고 한다. " 여러분들은 지금 결단의 순간에 서 있습니다. 스무 살로 1학년을 보낼 것인가, 아니면 한 살로 1학년을 보낼 것인가? 결정을 해야만 합니다." 일류 대학 진학을 목표로 사교육과 공교육의 세례를 맘껏 받은 학생들은 무려 20여년 간 자아를 잃고 살아왔다. 20년 동안, 그가 섭취한 지식이란 천편일률이었을 것이다. 그는 주체적인 자아가 아니라 공산품 자아로 `제조되어' 20살에 이르렀다. 저자의 질문 의도는 결국, 생각 없는 공산품으로 나머지 인생을 보낼 것이냐, 아니냐를 이제 선택하라는 것이다. 이 심오한 질문을 받은 것 자체가 행운이다. 고시 준비를 시작하라, 스펙을 쌓아라, 이게 주류 아닐까?
공산품에서 특산품으로 변화하는 공간은 대학이어야 하고, 그 순간은 대학 1년이어야 한다. 그래서 그는 자랑스런 1살로 시작할 수 있다. 이 변화를 가능케 하는 학문이 다름 아닌 철학이라고, 강신주는 말하고 싶었으리라. 인간의 삶의 방향과 좌표를 확인케 해주는 철학은 교양 과목이 아니라 필수 과목, 기본 과목이 될 수밖에 없다. 그는 이제 스스로 사유하는 인간으로 거듭나, 스스로의 삶을 헤쳐 나갈 것이다. 인류 역사속 철학자들은 사유하는 근본에 충실한 인간들이었다. 철학은 철학자들의 철학이 옳고 그르냐를 따지는 것이 될 수 없다. 지구상에 똑같은 인간이 없는 것처럼, 똑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도 없다. 철학의 무용론을 말할 때, 철학자들의 수만큼 철학이란 다채롭다, 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철학의 근본 목표는 사유의 옳고 그름을 밝히는 것과 더불어 반성과 회의를 통해 진리를 찾아가는 여정인 것이다.
데카르트는 "인간이 자신을 반성할 수 있는 이성적인 존재" 라고 말했다면 파스칼은 "인간은 허영을 가진 심정적 존재"라고 분석한다. 이성과 심정은 반대말이다. 누구의 말이 옳고 그르냐,는 단정지을 수 없다. 데카르트가 이성을 강조한 것은 사유의 주체가 합리적 이성임을 밝히고자 한 것이다. 반면, 파스칼은 인간이 이성과 더불어 심정을 가진 직관적 다층적 존재로 분석한 것이다. 인간을 분석하는 그들의 언어는, 결국 인간의 총제적 특성을 파악하는데 보탬이 된다. 그러므로, 데카르트의 철학을 반성하며 도달한 지점이 파스칼의 사유라고 평할 수 있다. 맹자와 순자는 인간의 본성이 선한가? 를 두고 논쟁한다. 맹자는 "인간은 선한 본성을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난다"고 했고 순자는 "성선설 자체가 현실 사회의 공권력과 규범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것이기에 모순에 그친다고 반박한다. 이 논박을 통해 인간의 본질이 다층적임을 파악할 수 있다. 철학적 논의 자체가 본질에 대한 탐구의 생산성을 높인다.
강신주는 철학의 역사 가운데 반대의 논증을 통해 대결을 일삼았던 철학자를 이처럼 한가지 핵심 논거를 통해 재대결 시킨다. 특징적인 것은 동양과 서양을 분명히 나눠 그들만의 리그로 엮어 냈다는 점이다. 칸트가 정약용과 대결 한 것이 아니고, 정약용이 주자와 대결 하는 식이다. 그래서 서양과 동양 철학이 맞붙을 것만 같은 제목(vs)만 보면 약간 싱거운 점도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 강신주는 선굵은 논쟁을 앞장세워 철학자들의 깊고 난해한 사유를 쉽게 해설하면서, 21세기의 현대 철학자가 가진 이점을 맘껏 활용한다. 누구의 손도 들어주지 않고, 누구의 철학에도 집착하지 않으면서, 모든 사유를 검토하고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을 그는 실연(實演)해 보인다.
이 책의 끝에서 자연스럽게 도달하는 한가지 의문이 있다. 철학의 효용은 무엇일까? 이 시대엔 정말 어느 장관의 말처럼, 문사철이 취업에 방해나 되는 학문에 지나지 않는걸까? 왜 철학자들은 단순하게 살지 않고, 복잡한 이론과 사유에 집착했을까? 철학의 효용을 되돌아 볼 수 있게 된 점은, 강신주의 책을 읽는 이들이 가닿는 하나의 결실이다.
자못 우리 시대는 재력의 유무가 사람을 평가하고, 삶의 질을 결정하고, 젊은 이들의 궁극적 삶의 목적이 되고 말았다. 인기 드라마의 기본 구조에는 언제나 재력이 충만한 인간이 등장하지 않으면 이야기의 연결 고리가 형성되지 못한다. 권력보다 더 힘이 있는 것은 돈이다. 권력은 임기가 있으나 재력은 영원하다. 그래서 어떤 재벌은 자신있게 현 정권의 경제 정책을 `낙제점'이라고 평가절하 할 수 있는 것이다. 법이 인간을 보호하는 21세기에도 재벌은 맷값을 주면 사람을 폭행할 수 있다, 고 사유한다. 지금도 어느 대학에선 선후배 간의 폭력이 유대를 끈끈하게 하는 통과의례라고 믿는다. 그래서 폭행당한 후배는 인터뷰에서 당당히 선배가 우리를 미워해서가 아니라 사랑해서 때렸다며 선배의 폭행을 두둔하는 것을 지켜볼 수 있다. 카이스트나 서울대를 다니는 20대의 청춘들이 너무나 쉽게 생을 포기한다. 성적이 안 나오고, 고시에 떨어지고, 취업이 안 된다는 이유로 말이다. 성적 하락과 고시와 취업 실패가 20대의 재기 발랄한 청춘들을 죽음으로 내몰아야 할 이유로서 충분한가? 이 어려운 질문에 철학은 답할 수 있고, 그것이 철학의 중요한 기능이다.
나를 철학의 세계로 이끈 책이 한 권 있다. 20대에 나는 그 책을 통해 철학의 세계에 맛들였다. 20세기 미국의 아마추어 철학자이자 교육자, 자유 사상가였던 윌 듀란트의 저서 <철학이야기>다. 그 책의 서문에서 윌 듀란트는 이렇게 말한다. "진리는, 우리를 부자로 만들지는 못하겠지만 자유인으로 만들기는 할 것이다." 성경 구절과도 비슷한 이 문장에 이르렀을 때, 이 책을 읽어야 할 확신을 얻었다. 철학이 무엇을 탐구해야 하는지, 작은 힌트를 얻기도 했다. 자유인, 소크라테스가 불합리한 법을 지키면서까지 죽음을 선택한 것은 그의 죽음조차도, 불합리한 법조차도, 그를 감금하고 벌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유인으로서 산다는 것은 육체의 문제 보다 영혼의 문제에 가깝다. 불교의 고된 수련 방법은 육체의 고통을 통해, 영혼의 자유를 얻고자 하는 자가 스스로 선택한 고행이다.
윌 듀란트의 말이 바로 철학의 효용에 대한 답변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이 생안에서 절망하고 좌절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존재다. 그것이 인간의 조건이다. 우리를 위협하는 것은 생물학적인 바이러스 뿐만은 아니다. 우리는 바이러스에 대응하기 위해, 예방 접종을 맞는다. 영혼에 예방접종은 허나, 필수 사항이 아니다. 철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우리의 나약한 영혼을 건강하게 만드는 일이며, 절망과 좌절에 맞선 예방 접종의 일환이다. 우리가 살아야 할 이유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사유하지 않는 습관, 철학하지 않는 인간들은 쉽게 실언을 한다. 문사철이 청년실업의 주범이라 하는 것은, 전형적인 실언이다. 폭행이 미덕이라고 하는 것은 노예적 발상이다. 재력이 삶의 목적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어려서부터 배우지 않고, 돈만 벌어야 할 것이다. 실패의 아픔 까지도 인생의 귀중한 경험과 이력의 일부분이란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철학하지 않기 때문이다. 삶의 목적과 희망을 상실하고 하루하루 연명에 지친 노숙자들을 변화시킨것은 사람들의 은전이 아니라, 인문학 공부였다. 어떻게 살 것인가? 란 답이 인문학, 곧 철학속에 있다. 철학 공부는 물고기 낚는 법을 배우는게 아니라 물고기를 낚아야 할 이유, 즉 살아가야 할 이유를 발견하는 과정이다.
"한 권의 철학 텍스트는 하나의 세계를 우리에게 열어 보여 준다. 스피노자의 철학을 접하면, 우리는 그의 시선으로 세상과 자신을 바라볼 수 있고 예전에는 생각하지 못한 것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장자의 철학을 접하더라도 역시 결과는 마찬가지다. 그리고 우리는 이렇게 외칠지도 모른다. `왜 이제야 이 철학자를 알게 된 것일까. 만약 이 철학자를 몰랐다면 나는 지금과 같은 시선을 얻지 못했을 거다'" 강신주, <철학vs철학> p.14 프롤로그
너무 두꺼워서 엄두가 나지 않는 책이 있다. 강신주의 책이 그렇다. 더군다나 모두가 따분해하는 철학이야기다. 도전하기에 쉽지 않다. 그러나, 책장을 열고 차근차근 짚어 나가다보면, 이 책은 누구나 커피 한 잔 놔두고 가볍게 읽어내려갈 수 있는 철학책 임을 깨닫게 된다. 강신주라는 실력있는 철학도가 철학 세계로의 여행을 인도 한다. 그의 철학 가이드는 친절하고, 쉽고, 재미있다. 서재에 앉기 전 타놓은 커피의 맛을 닮았다. 첫맛은 쓰지만 뒷맛은 달콤하며 더군다나 향기롭다. 풍부하고 아름답고 결코 가볍지 않은 맛이다. 입안에 가득 고인 커피향이 깊고 인상적이다. 이 맛에 커피를 다시 마시듯, 이 기억으로 앞으로 철학책을 다시 펴볼 수 있으리란, 확신을 얻는다.
2011.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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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강신주의 책은 따지지 않고 다 보기로 했다. 미학에 진중권이 있고 경제학에 장하준이 있다면 철학엔 강신주다. 그렇게 정했다. 이유를 묻지 마라. 철학은 강신주다.
'동서양 철학의 모든 것'이라는 부제를 단 철학 vs 철학은 온 지구의 철학을 전부 쏟아 부을 기세로 독자를 압도한다. 제목에도 vs, 대결이다. 주제 하나에 적어도 두명 혹은 그 이상의 철학자들이 등장한다. 책의 두께는 전설적인 스티브 잡스 자서전을 훌쩍 넘겨 버린다. 쪽수는 928. 가슴이 답답해질 정도의 부피는 그 안에 담긴 사상의 무게와 질에 비례한다. 철학 vs 철학은 정말로 세상 모든 철학을 보여주겠다는 각오로 날리는 강신주의 초강력 훅이다. 책을 보는 내내 출판사 그린비가 원망스러웠다. 이런 책은 5권 정도로 분권할 수도 있지 않나.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서양편과 동양편으로만 나눌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런데 그린비는 확실히 동서양 철학의 바이블을 만들고 싶어한것 같다. 오로지 한 권. 그 야심만만한 기획에 우선 한 방 맞고 들어간다. 다음은 내용. 강신주에 반한 이유는 그가 아주 쉬운 철학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이었던가? 그 천재 물리학자는 '무언가를 어렵게 설명하는 건 그가 잘 모르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했다(정확치는 않지만 대충 이런 의미였던 것 같다). 그렇다면 강신주는 철학의 대가다. 철학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 그러나 그 쉽지 않은 무게에 머뭇 거리던 사람, 그런 사람에게 철학 vs 철학은 아주 편안한 입문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928페이지의 부담을 이겨낼 자신이 있는 사람에게 말이다. 내용에 대한 두 번째 이야기. 반은 서양 또 반은 동양이다. 우리가 언제부터 서양의 것을 우리것 보다 앞에 두기 시작했지? 지금 당장 나가서 서점을 둘러 보라. 서양 철학은 넘쳐나지만 동양의 것은 쓰는 이도 찾는 이도 드물다. 이에 대한 반발로 한 때 공자니 맹자니 고대 중국 사상이 뜨기도 했지만 대개는 경영과 결합된 상업주의적 관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천박하긴! 철학은 철학으로 남겨 두어라! 철학 vs 철학은 공평하게 책의 반을 동양 철학에 할애한다. 강신주 본인의 전공도 도가다. 그래서인지 동양 철학에 대한 애정이 넘쳐 흐른다. 잊혀진 우리 것을 기필코 제자리로 돌려 놓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뿐만 아니다. 동양이라는 이름으로 한데 묶여 우리 자신 조차 중국 사상의 아류로 생각해 왔던 한국과 일본의 철학까지 소개한다. 비록 그 양이 많지는 않지만 그 의미는 분명하고 또 확실하다. 내용에 대한 세 번째 이야기. 각 28개 씩 56개의 장으로 나뉘어진 철학적 쟁점은 시간의 흐름을 따르기 때문에 그것들의 역사, 즉 철학사까지 포괄하고 있다. 사실 사상의 진보란 앞선 시간의 축적이 포화됐을 때 터져 나오는 빅뱅의 순간 아니던가. 모든 뒤에 것들은 앞선 것에 대한 반발과 저항으로 시작돼지만 사실 그 앞선 것이 없다면 뒤에 것의 저항 또한 애초에 존재할 수 없다. 그러니까 모든 낡은 것들은 혁명의 어머니. 우리가 항상 새로운 것만 찾고, 새로운 것만이 옳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언젠간 기필코 시대착오적이 되고 만다. 역사는 우리를 겸허하게 만든다. 이말은 우리가 겸허해지기 위해서 역사를 배워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이 책이 정말 철학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가? 불행하지만 아니다. 그 누구도 한 권의 책으로 철학 모두를 담을 수는 없다. 그럴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건 너무 오만한거다. 이 책의 임무는 무지한 당신과 나를 철학의 샘, 그 무궁한 지혜의 우물로 인도하는 것이다. 철학 vs 철학은 철학의 샘으로 가는 기나긴 사막, 그 구도에 동행한 한 병의 물이다. 물이 적다고 욕하지 마라 당신은 이 물에 구원받아 비로소 샘에 도달했으니, 이것을 얼마나 먹고 마실지는 모두 우리에게 달린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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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좋은 책입니다. 대부분의 철학개론서는 외서들로 그번역이 매끄럽지 못하고 이해하기가 어려운데, 이 책은 여러모로 너무 읽기가 편하고 그 내용 또한 매우 좋네요.
학교에서 윤리를 가르치는 교사로 수업시간에 매우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사상사의 라이벌로 구성되어 있어 사상을 전체적으로 조명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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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리뷰에 빠지지 않는 말 하나가 있나니, '928페이지의....읽었다.' 그만큼 긴 시간을 어렵게 완독해냈다는 안도감과 성취감 때문이리라. 동감. 그런데, 사실 본내용은 823페이지 뿐이고, 나머지는 인명사전, 개념어, 추천서 등에 대한 부록이다. 높은 허들을 뛰어 넘으려면 도움닫기가 필요한데, 이 책 직전에 읽은 인문서 몇 권, 병행해서 읽은 인문서 몇 권이 이 책을 뛰어 넘는 도움닫기가 돼줬다. 애들 재우고 두어 시간씩 읽기를 34일, 드디어 그 대장정을 마쳤다. 산에 오르는 이유가 바로 이런 느낌이겠지 가늠해본다. 한번 읽은 것으로는 책 내용에 대해 언급하기가 버겁다. 한 번 완독했음을 스스로 치하하는 것 밖에는....총 56장, 언급된 사상가만해도 100명은 족히 되기 때문이다. 두고두고 참고하며 읽어야 할 책이니까, 앞으로 우려 먹으련다. 강신주 특유의 간결하고 가독성 높은 문장들 덕분에 익숙한 내용은 아니었지만 그리 머리를 쥐어짜며 읽지는 않았다. 역시 강신주의 책에는 불필요한 지방이 없다. 읽고 다듬기를 반복한 고통과 인내의 시간을 견뎌냈기 때문이리라. 혹자는 그의 표상 때문에 더러 거부감을 느껴 그의 책에도 그닥 관심이 가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난 그래서 그가 더 좋다. 무례하지 않으면서 그 어떤 속박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살아내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추구하는 삶 아닌가. 최신효과를 감안하더라도 신채호의 글로 시작하는 에필로그에서는 현대, 한국의 철학자로서 그의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베스트셀러류와는 동떨어진 이런 책이 4년 동안 14쇄 찍혔다는 점도 반갑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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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신간코너에서 지승호의 인터뷰집을 봤다. 제목이 "강신주의 맨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이었다. 그동안 이런저런 일로 바빠 신문 잡지나 포털과 멀어지고 있어 강신주가 어떤 사람인지 전혀 몰랐다. 이 책도 순전히 지승호 씨에 대한 팬심으로 찾아낸 셈이다. 책을 읽을수록 강신주란 사람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고 이 사람의 다른 책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본인이 가장 아끼는 세 권의 책 중 한 권이 "철학 VS 철학"이다.
900쪽이 훌쩍 넘는 책이었다. 혼자 읽어선 다 못읽을 것 같았다. 하여 책모임 친구들에게 상금으로 받은 도서상품권으로 선물을 한 후 꼬드겼다. 우리 모임에서 "철학 VS 철학"을 함께 보자고. 만만치 않은 가격의 책을 선물로 받았는데 안된다 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우린 이 책으로 2014년 1월을 시작했다. 그리고 4월 2일 내일 모임을 마지막으로 읽기를 마친다. 일단 완독하는 것이 우리의 가장 큰 목표였다. 세 명 다 완독을 했다. 기쁘고 즐겁다.
프롤로그에서 강신주는 철학을 통해서 철학적 사유에 적응하는 순간, 누구든지 사회학, 정치학, 문학, 공연예술 등 다양한 텍스트가 전제하는 사유 논리를 별다른 어려움 없이 해독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인문학적 감성과 사유 능력을 배양하기 위해 철학 공부가 불가피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한다. 나이가 40을 훌쩍 넘었는데도 고전이라는 걸 읽으면서 10대 때 읽은 것처럼 여전히 뭔 소리야? 이해하기 어렵네. 고전이라는데 좋은 지 모르겠다. 이런 자체 평가를 내리게 되는 책들을 만나게 되면서 당혹스러웠다. 나이만 먹었지 생각은 안늘었나 보다라는 자괴감도 들고 도대체 내가 놓치고 있는 것들이 뭔가 싶었다. 이 프롤로그로 두꺼운 책을 읽어야 하는 동력을 얻었다.
이 책은 거리의 철학자라 불리는 강신주의 철학 공부를 집대성한 책이다. 새롭게 숙고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철학적 쟁점들을 중심으로 각 쟁점에 대해 상반된 입장을 피력한 철학자들의 논쟁을 싣고 있다. 예를 들면 타자와의 소통은 가능한가? 스피노자 VS 라이프니츠 이런 소제목으로 시작한다. 스피노자는 기쁨과 슬픔은 타자와 소통할 수 있는 통로이다며 자신의 삶에 기쁨과 유쾌함을 가져다주는 타자와의 소통과 연대를 끈덕지게 도모하고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라이프니츠는 타자와의 소통은 불가능하며 동시에 불필요하다고 말한다. 인간은 타자와 소통할 수 있는 창이 없다는 것이다. 라이프니츠의 이런 주장은 신이 예정해 놓은 질서에 의해 인간이 움직이고 있다는 견해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서양 28편, 동양 28편이다. 소주제부터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철학자의 말을 듣기 전에 이 주제로 먼저 생각을 열어보고 철학자들의 주장을 들어보고 다시 한번 내 생각을 정리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정말 쉽게 쓰여진 책이다. 나처럼 철학에 문외한인 사람이 읽는 것 자체가 힘들지는 않았다는 것이 그 증거다. 게다가 처음엔 재밌기까지 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어떤 개념은 읽어도 뭔 소린가 싶었다. 개념어사전이 있다는 것을 미리 봤더라면 특히 동양편 읽을 때 도움을 받았을 텐데 나중에야 봤다. 이 때문에 일단 책을 한번 쭈욱 훑어 보고 목차도 유심히 보고 부록이라고 무시하지 말아야 겠다고 다짐했다.
112명의 철학자들이 등장한다. 그들의 주장 중 핵심이라 할 만한 인용구가 등장하고 이게 뭔소리야? 싶으면 어김없이 강신주의 친절한 해석이 뒤따른다. 매주 5장씩 읽었다. 하루에 1장씩 읽으면 된 셈이다. 미리 읽고 모임 전에 한번 더 읽고 밑줄을 그었다. 함께 이야기하기에 좋았다. 읽으면서 철학자들과 그들의 주장에 공감하기도 하고 의문을 갖기도 했다. 서양편이 동양편보다 쉽게 읽혔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웠던 교양철학이 서양철학사 중심이어서 그렇게 느껴졌을 것이다.
철학자 강신주가 애정을 갖고 대하는 철학자들이 눈에 띈다. 에필로그에서 강신주는 유쾌한 기억과 소망스러운 미래를 약속했던 철학자들을 제 위치에 복원시키고 싶었다고 한다. 이런 주장을 하는 철학자들의 글은 더 쉽게 열정적으로 읽힌다. 삶을 긍정할 수 있는 좋은 기억들을 하나씩 쌓아가라.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삶이 더 풍요로워진다. 모른척 하지 말아라. 연대의 끈을 놓지 말아라. 남을 지배하지도 남에게 지배받지도 않는 자유인의 정신을 가져라.우리는 사전에 예측하지 못한 타자와 사건을 만나게 된다. 이런 우발성에 열린 마음으로 적응하라. 이런 주장은 철학자 강신주의 주장이기도 하다.
독창적인 안목을 제시한 철학자들과 그들의 텍스트를 직접 읽도록 유혹하는 역할에 충실하고자 했다고 저자는 말했다. 읽고 나서 이 철학자의 책을 더 읽고 싶다 이런 느낌이 들어야 하는데 아직은 그런 마음이 안생긴다. 내가 이 책을 몇 퍼센트나 받아들였는지는 모르겠다. 다시 읽으면 또 다른 생각이 들어올 것 같은 책이다. 그러고 나면 내가 좋아하는 철학자를 만나게 될 것이고 그의 책을 읽고 싶다는 마음도 들겠지. 평생 읽은 책 중 가장 의미있는 책을 읽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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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 매우 어렵고 추상적인 영역으로 일반인의 접근이 쉽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이러한 어려움을 타계하기위해 추상적인 것을 구체적으로 그려내기 위해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중 하나가 비교와 대조의 방법입니다. 추상적인 내용을 그냥 나열식으로 늘어놓는 것에 비해 철학의 흐름마다 교차되는 것을 비교해 이해하면 쟁점이 쉽게 파악되어 개별 철학자의 사유에도 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러한 비교는 비교를 하는자의 주관이 개입될 수 밖에 없으므로 한쪽으로 치우쳐있거나 지나친 단순화로 인해 철학자의 생각을 다소 왜곡하거나 과장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서점에는 고등학생을 위한 철학입문서 '소피의 세계'부터 성인들을 위한 철학입문서까지 수십종의 철학입문서가 철학자별로 시대별로 주요한 내용을 요약 나열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기때문에 철학자의 생각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고 철학자별로 차이를 알아내기도 어렵습니다. 더우기, 동양의 철학자와 서양의 철학자를 비교한다는 것은 왠만큼 철학공부를 해서는 엄두도 낼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철학자의 사유방법은 서양과 동양이 큰 차이가 없고, 예를 들어 인간의 본성에 대한 설명이 특히 동양의 경우 불교와 노장사상이 거의 다름이 없기 때문에 공통점과 차이점을 일목요연하게 비교한다는 것은 철학의 핵심을 짧은 시간에 정확히 찾아갈 수 있게 합니다. 또 철학에 관심있지만 이를 제대로 공부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앞으로 해야할 철학공부의 지도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아주 의미있고 필요하다고 할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이 이 책은 철학개론서내지 철학입문서로서는 사실 적당하지 않게 보입니다. 모든 철학사 책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에 대한 설명도 없고, 제논의 역설에 대한 설명도 나오지 않는 책으로 대학교양 철학개론 시험을 준비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그런 목적에 맞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반복해서 강조하지만, 추상적인 철학사를 차이점 위주로 정리하여 철학에 문외한인 사람들에게 자신의 영혼을 울리는 철학이 무엇인지를 발견하는데는 크다란 도움이 될 수 있고, 어차피 철학을 통해 우리가 이룰수 있는 것은 플라톤을 공부하나 불교철학을 공부하나 논어를 공부하나 결국 큰 차이가 날 수 없기에 철학의 세계로 소개하는 소개장으로서는 큰 의미가 있을 수 있습니다.
참고로 일반적인 철학사에 대해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저자는 우선 '소피의 세계'를 일독하도록 추천하는 점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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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이름만으로 먼 학창시절의 향수가 느껴지는 이 양반들의 직함을 보면 명함 한두 장으로는 어림없었을 듯하다. 수학자, 과학자, 정치가, 천문학자 등. 그러나 공통적인 이름이 있으니 '철학자'라는 이름이다. 그렇다. 우리가 '도덕'이나 '윤리'라는 과목을 공부하던 시절, 이분들의 성함은 늘 '서양철학'이라는 항목의 맨 처음에 적혀 있지 않았던가. 우리에겐 시험을 위한 답안에 지나지 않은 이름이었지만(사실 윤리시간 주관식 1번 답은 100% 소크라테스였다.ㅋ), 이들의 이름은 사실 모든 학문의 기초로서 우리 머릿속에 새겨졌어할 이름들이다. 단순히 서양철학자라서가 아니다. 공자, 맹자, 노자, 이황, 이이 등 우리가 알아야 할 이름들은 많다. '학문'을 이루는 기초는 바로 '철학'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진정한 학문을 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토익 점수도 아니고 자격증도 아니고, 바로 '철학'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들었다(물론 나 역시 철학과는 거리가 먼 학문을 해왔기 때문에 자신 있게 말할 자신은 없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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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처럼 내 삶과 사유에 대한 확신을 얻고자 철학에 입문한 아마추어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작은 한 발짝을 옮겨갈수록 점점 확신에서 멀어저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인류가 수천년 동안 쌓아온 철학이라는 태산 앞에 맨몸으로 도전한 꼴이다.
이 책은 적어도 그 태산의 크기를 어렴풋이나마 가늠하게 해준다. 또한 56장을 각각 네 부분으로 구성하고 첫 부분에서 각 쟁점을 설명함으로써 철학의 문외한도 쉽게 발을 들여놓도록 배려하고 있다. 각 철학자의 대립적인 쟁점을 다룬 둘째, 셋째 부분은 몰론, 네번째 부분으로 코멘터리는 그 부분만을 따로 떼어 읽어도 크게 도움이 된다.
철학 책이 그것도 무척이나 두툼하다고 해서 겁먹을 필요가 전혀 없을 정도로 쉽다. 저자의 통찰과 글쓰는 능력에 경의를 표하고 싶을 정도이다. 문득 사기를 지은 사마천의 통합적 작업과 비교한다면 너무 과장일까? 적어도 철학전공자가 아닌 아마추어에게 동서양의 철학을 이토록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책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저자의 서술처럼 "철학적 사유에 적응하여 사회학,정치학,문학 등 인문학의 일반적인 사유논리가 별다른 어려움 없이 해독되는 놀라운 경헙"이 내게도 주어지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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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라는 말만 들어도 멀리가 지끈거리고 짜증이 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철학 특유의 어려운 문장 및 어려운 내용들이 철학을 더욱 멀리하게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철학의 단점들을 완전히 날려주고 삶과 사회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책이 철학vs철학이다. 한번 속독해서 보고 끝내지 말고 두고두고 읽으면서 내용을 곱씹는다면 이책의 가치는 더욱 커질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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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값(35,000원) 이 좀 나가서... 구매하진 못했지만, 저자의 노고와 구매자가 이 책을 통해 얻게 될 편익을 고려한다면 상당히 싼 가격이라고 생각한다. '토끼의 지혜'라는 북카페에 갈 때 마다 몇 챕터씩 읽었는데 어느새 다 읽었다. 빨리 구매해서 오래오래 곁에 두고 생각날 때마다 읽고 싶은 책이다. 저자는 철학의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는 '대립'을 통해 서양철학의 플라톤부터 동양철학의 박동환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위대한 철학자들을 조명한다. '강신주' 라는 철학자를 처음 접한 건 한 1년 전 즘 "김수영을 위하여'라는 제목의 인터넷 강의를 통해서였다. 수영을 아는 것보다 수영을 할 줄 알아야 한다" 라고 말하는 그의 말이 참 와 닿았다. 철학자이지만 시인같은 그에게 반했었고 이번에도 정말 큰 선물을 받은 느낌이다. 1000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이 부담스럽지만 않다면, 평수 철학이라는 말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키는 사람이나 철학이라는 숲을 한 번 여유롭게 둘러보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한다. 그리고 되도록이면 천천히 곱씹어 보면서 읽기를 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