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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침체될수록 유연한 사고가 사라져 간다. 자국민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이유로 외국인들을 향해 날선 눈빛을 보내는 이들이 증가하고 있다. 보다 높은 생산성을 달성하기 위해 노동력을 쥐어짜는 행태는 격해지는 반면 취업을 못해 허덕이는 이들에게는 눈높이를 낮추라는 충고가 이루어지고 있다. 과연 이러한 현실이 바람직한가. 세계에서 최장시간 노동을 하면서도 부유함은 둘째치고 행복의 근처에도 도달하기가 힘든 나날들을 겪으며 많은 사람들이 묻고 있다. 자본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움직임까진 아니지만, 적어도 현실이 잘못되었고 무언가 달라져야 한다는 데에는 의견을 같이 하기 시작한 셈이다. 지난 세기 인류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인물 중 하나로 늘 빠지지 않는 이가 칼 마르크스다. 그는 혁명가라는 단어에 부합하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행동만 앞섰던 게 아니다. 실제로 많은 저서를 남겼는데, 러시아 등지에서 있었던 혁명은 그의 이론을 실현하기 위한 실천의 일환이었다. 백 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로부터 해법을 구하려 드는 건 무리수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더구나 지난 공산주의 시도가 처참하게 실패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의 힘이 너무도 막강해지면서 개개인은 자유의 말살, 더 나아가 인간성의 상실을 경험했다. 다시는 그와 같은 체제가 뿌리내려선 안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국토가 반으로 갈린 채 반 세기 이상의 시간을 보낸 우리나라에선 그 정도가 더욱 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를 읽어야 한다면 그 이유가 무엇일지. 일본에서 나온 얇다면 얇은 책 한 권을 읽으며 나는 묻고 또 물었다.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마르크스 입문서 정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 책이었다. 대학 교수인 저자는 자신의 제자들에게 마르크스를 소개하는 차원에서 이 책을 저술했다. 알고 있다 여겼지만 실상 아는 것은 별로 없었던 인물 마르크스에 대해 덕분에 한층 쉽게 다가설 수 있었다. 마르크스가 태어난 시기는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 새로운 분위기로 유럽 전역이 뒤덮이던 시점이었다. 당연히 이어받던 왕의 지위가 하락했고, 국민이 지도자를 선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던 시절이었다. 마르크스는 격동의 분위기에 잘 적응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시대를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싹수가 노랗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그는 꽤 어린 시절부터 독자적인 사상을 발전시키기 시작했다. 청년 헤겔파로 출발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이를 비판했다. 그는 스스로를 부정함으로써 더 높은 차원으로 나아가는 변증법을 삶을 통해 실천했으며, 그 과정에서 탄생한 게 유물론이었다. 저자는 오늘날 그가 태어났더라면 더 많은 것을 이룰 수 있었을 것이라 짐작했다. 급진적인 마르크스의 사상을 시대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위험하다는 이유로 각국에서 추방되기 일쑤였던 마르크스의 삶은 엥겔스의 도움이 아니었더라면 유지가 버거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나는 마르크스에게 주어진 사명은 마르크스가 태어난 시대로 인해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아직 자본주의의 모순이 한층 심화되기 전이었기에 그의 통찰력은 오늘날까지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모든 게 불분명, 불명확한 상황 속에서 그가 보여준 통찰력은 치밀한 뒷받침 연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오늘날이라 하여 당시보다 나을 거라는 저자의 생각에 대해서도 난 부정적이다. 겉으로는 자유와 민주를 표방하고 있으나 진정 자유와 민주를 따르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사회는 힘을 지닌 소수의 입김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마르크스가 누구도 손 못 댈 정도로 부유한 집안 출신이 아닌 다음에야 연구에만 몰두한 상태로 생계를 유지할 순 없을 터이다. 자본주의 아닌 다른 것을 연구하는 그를 지원할 기업이나 재단 등은 없을 것 같고, 오히려 각국에선 그의 동태 파악에 촉각을 곤두세울 듯하다. 그만큼 그는 위험한 인물이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변함없이.
젊다는 이유로 허락되는 것들이 참 많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젊은이들은 일찌감치부터 경쟁 전선에 뛰어든다. 끝이 보이질 않는 경쟁에 지친 나머지 젊어도 젊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과연 저자가 외치듯 어느 한 가지에 열과 성을 다해 매달릴 수 있는 에너지가 젊은이들에게 존재할지, 그리고 젊은 친구들이 당장 취업에 도움되는 것도 아닌 마르크스에 흥미를 느끼고 파고들지, 나로서는 의문이다. 하지만 사회가 요구한다고 거기에 무조건 동조해서는 곤란하다. 어느 순간부터 나를 잃고 일하는 기계가 될 수도 있다. 최소한, 인간으로서 살아남기를 바란다면 마르크스를 파고드는 수준까진 아니더라도 현 세태에 대해 의문을 품고 더 나은 사회를 고민해 볼 수 있어야 한다. 모든 변화는 작은 의심으로부터 시작된다. 연못에 아주 작은 돌이라도 던져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용기, 누구보다도 나에게 주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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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00년간 가장 위대했던 사상가가 누구인가?" 4위 다윈 3위 뉴턴 2위 아인슈타인 1위 마르크스 1999년 영국 BBC가 국내외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이다. 그런데 마르크스가 누구지? 2위인 아인슈타인은 말할 것도 없이 뉴턴, 다윈은 초등학생에게까지 이름은 들어 본 사람인데 반해 대망의 1위인 마르크스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드물다. 우리들 대부분은 공산당의 교조, 즉 빨갱이의 원조로 알고 있다. 그러니 군사독재정권시대를 어린시절로 살아온 사람들이나 그런 사람들의 자녀로 자란 사람들에게는 입에 담기가 조심스러운 금기어일수밖에 없다. 아니...이런 사람이 영국 BBC 시청자들에겐 천년내 가장 위대한 사상가로 뽑히다니 황망스럽기 짝이 없다. 도대체 우리가 알던 빨갱이 마르크스와 위대한 사상가로 불리는 진짜 마르크스는 동일인인가? 동명이인인가? 마르크스를 간단히 소개하자면 <자본론>으로 대표되듯, 자본주의 사회를 정밀하게 분석한 학자이자 자본주의 사회의 결함을 극복하기 위해 사회 개혁을 호소한 혁명가이다. 그가 연구한 학문의 영역은 크게 세계관(철학) / 경제 이론 / 자본주의 이후 다가올 미래 사회(사회주의, 공산주의)론 / 자본주의 개혁.혁명론 등 4개 분야로 나눌 수 있다. '공산당 선언'에서 마르크스는 '이제까지 사회의 모든 역사는 계급 투쟁의 역사이다.'라고 인류역사를 통찰하기도 한다. 이러한 사상가인 마르크스가 한낱 빨갱이 교조로만 알려진 이유는 러시아 독재자였던 '스탈린'에 의해서라고 한다. 스탈린은 자신의 독재정권을 정당화하기 위해 세계의 공산주의자들에게 마르크스라는 권위를 이용했다는 것이다. 그 뒤 미.쏘 냉전시대를 통해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양진영간의 간극은 더욱 벌어지게 되고 한국의 경우 군사독재정권에 의해서 빨갱이는 우리의 주적이라는 개념이 고착화되었다. 마르크스는 한국 보수기득권층의 선거가 불리해질때마다 전가의 보도마냥 휘두르기만하면 승리를 가져다 빨갱이 프레임의 교조, 그 자체였다. 이 책은 이렇듯 오해받은 마르크스에 대해 단 한 권으로 마르크스의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하자는 의도로 만든 책으로 아주 쉽게 마르크스의 사상에 대해서 알려준다. "마르크스는 '지금의 사회가 어떤 상황인가'뿐만 아니라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나아가서는 '그런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중요한 문제를 제기합니다. 이것이야 말로 마르크스의 재미를 이끌어 내는 큰 축입니다." 내가 살고 있는 사회 구조를 파악하고 , 사회와 나의 관계를 생각하며, 나의 성장에 대한 희망을 갖는 일. 독서를 통해 내가 배우고자 하는 이 3가지를 한낱 빨갱이 교조였던 마르크스가 가르쳐준다고 한다. 으앜. 내가 여지껏 알았던 세상이 무너졌다. 자고일어나면 다른 세상을 살고 있겠네. 이것이 바로 독서의 힘이다. 그러니 읽자. 덧) 아직도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헷갈린다. 마르크스는 같은 개념이라고 했는데 ... 뭔가 미묘한 차이가 있을텐데 말이지. 좀더 책을 찾아봐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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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 웬 마르크스냐, 고 생각할지 모른다. 이미 패배한 사상을 알아서 뭐하게? 소련은 해체됐고, 중국은 배신했고, 북한은 망해가는 중인데. 마르크스? 공산주의? 당신 빨갱입니까? 공산주의라고 하면 대한민국 사람들은 으레 북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떠올리기 때문에 그것이 진짜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은 '도대체 너는 누구 편이냐?' 고 묻는 저급한 폭력에 시달릴 수 밖에 없다. 이런 폭력을 간신히 피했다 하더라도 우리는 무지라는 더 큰 산을 앞에 두고 한숨을 쉬어야 한다. 내가 대학 시절 겪었던 얘기를 하나 해주겠다. 나는 영화를 공부했다. 친구들과 함께 영화 수업을 들었는데 영화 수업이란 대개 워크숍 형태로 진행되기 때문에 다양한 토론이 오간다. 특히 시나리오를 발표하는 날은 굉장히 치열하다. 갑론을박, 이야기의 당위성을 방어하기 위해 매서운 말들이 쏟아진다. 어느 날 친한 놈 하나가 시나리오를 발표했다. 내용인즉, 공산주의자 히틀러가 여전히 살아 있다고 믿는(그의 죽음에 대해선 음모론이 많다) 주인공이 히틀러와 닮은 한 남자를 납치, 감금해 살해한다는 내용이다. 이 세상에 공산주의가 퍼지는 걸 막기 위해. 한 마디로, 자유를 위해! 이 얘기를 듣고 그 어떤 이질감도 느끼지 못한 사람은 지금부터 내가 하는 얘기를 잘 듣기 바란다. 나는 친구가 시나리오 낭독을 끝낸 순간 일반적인 대한민국 사람들의 머리 속에 '공산주의=북한=독재=전쟁=학살=나쁜 놈' 이라는 강력한 도식이 형성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전쟁을 일으키거나 민간인 또는 정적을 학살하고 독재를 하면 '공산주의자'인 것이다. 아직도 뭐가 잘못됐는지 모르겠는가? 히틀러는 나치였다. 극우주의자란 말이다. 공산주의는 극좌, 즉 히틀러 집권 시절 그와 가장 치열하게 싸운 적이었다!! 내가 그 얘기를 해주자 친구는 전혀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히틀러처럼 나쁜 놈이 공산주의자가 아니면 도대체 누가 공산주의자란 말인가? 녀석의 멍청한 표정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교수님이 그 점을 정확히 지적해줬음에도 녀석은 수업 내내 나를 의심의 눈초리로 노려봤다. 물론 그 놈은 2차 시나리오 발표 때 내용을 대폭 수정하긴 했다. 녀석은 히틀러가 공산주의자라는 내용을 완전히 삭제했다. 대신 유대인 학살을 이렇게 정의했다. 유대 자본이 세상을 지배하는 걸 막기 위한 과감한 혁명. 자본주의=돈=유대인=물신숭배=사치=향락=IMF=나쁜 것 이라는 도식이 히틀러를 자본으로부터 이 세계를 구원하려 한 순교자로 만든 것이다. 나는 학기 내내 그 놈의 무지를 모욕하고 영화 내용의 오류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이번엔 그 놈도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놈은 온갖 모욕을 참아내며 끝끝내 영화를 완성한다. 영화는 그 해 중앙대학교 영화제에서 금상을 수상, 100만원의 상금을 받는다. 무지의 심연은 이토록 깊고, 또 어둡다. 하나의 사상이 세상을 통째로 바꿔버렸다. 관념(생각)의 힘은 이토록 놀랍다. 그런데 그 사상의 주인공이 관념보다 실재를 중시했던 유물론자 마르크스라는 사실은 우리를 놀랍게 한다. 어쩌면 마르크스의 사상은 그 본질에서부터 오해의 씨앗을 잉태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유물론자'의 '관념'이 세상을 혁명한다. 그 사상은 스탈린과 마오쩌둥을 거쳐 교조주의적 정치 강령으로 변했고 정적을 제거하는 명분과 독재의 구실이 되었다. 마르크스는 일부 자본가들이 독점하는 생산 수단을 국유화해 자본이 노동자를 착취하는 것을 막고, 그 생산의 결과물을 모두가 골고루 나눠 가진 뒤, 짧아진 노동 시간으로 생긴 여가를 자기계발과 취미에 투자하는 창발적 사회를 만들길 원했다. 그것이 바로 마르크스의 공산주의였던 것이다. 그나마 공산주의라는 말이 살아있을 땐 그걸 호환마마 보듯 하더니 막상 자본주의가 세상을 지배하고 나자 사람들은 다시 마르크스를 찾기 시작했다. 아마 한국인의 99%는 현재의 자본주의 사회가 크게 잘못됐으며 뭔가 대단한 변화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이 세계가 곧 자멸할 것이라 말할 것이다. 끊임없이 오른쪽으로 질주하는 자본에 고삐를 달아 왼쪽으로 끌고올 힘이 필요한 시대. 우리는 우리 스스로 쓰레기통에 버렸던 마르크스를 다시 찾는 중이다.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은 자본론, 공산주의는 커녕 마르크스라는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들도 쉽게 읽을 수 있는 가벼운 책이다. 물론 인용문의 번역이 별로라는 점, 또 마르크스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너무 너무 싱거울 수 있다는 건 아쉬운 점이다. 제목 그대로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 에 충실한 책. 그러나 책의 두께와 디자인에 대해선 두 엄지를 백번을 치켜세워도 모자랄 정도로 훌륭하다. 이 책은 들고만 있어도 행복해지는 디자인을 갖고 있다. 사상과 철학을 골치아파 하는 사람이라도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크게 잘못됐다는 건 쉽게 인지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삶을 산건 우리가 처음이 아니었다. 100년 전, 자본주의가 처음으로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그 시점에 우리와 똑같은 고민을 하고 똑같은 고통, 아니 어떤 면에선 훨씬 큰 고통을 받아온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세상을 바꾸기 위해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행동을 했을까? 그들의 노력이 실패했기 때문에 우리가 여전히 힘든 삶을 사는 거 아니냐, 는 회의주의에 빠질 필요는 없다. 그들의 삶을 조금만 지켜봐도 역사가 진보한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멈추지 말아야 한다. 현실 세계 곳곳에서 우리는 최저 임금 인상에 실패하고, 고용 안정화에 실패하고, 대량 해고를 막지 못하는 듯 보이지만 이는 우리를 포기하게 만들려는 저 높은 곳의 계략일 뿐이다. 모든 저항은 '앎'에서 시작한다. 뭔가가 잘못됐다는 건 느끼지만 그걸 어떻게 바꿔야 할지 모른다면 그 잘못이 생산되는 구조를 면밀히 파악해볼 필요가 있다. 마르크스 철학의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다. 세상을 바꾸고 싶지만 그 방법을 몰라 발만 동동 구르는 사람이라면 이 책으로 시작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깨달음은 호기심으로, 호기심은 더 많은 깨달음으로, 더 많은 깨달음은 더더더더더더 많은 호기심으로 이어져 결국 우리를 거리로 나가게 만드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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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에서 '빨갱이 사냥'에 가장 신경질적인 지역을 꼽는다면 중근동과 지난날의 한국이다. 박정희 군사정권이 맹위를 떨치던 1970년대 중반, 몇 개월간 한국을 여행했다." -후지와라 신야, '여행의 순간들' p.43- 후지와라 신야의 여행에세이 '여행의 순간들'을 보면 70년대 중반 한국을 여행하면서 겪은 이야기가 나온다. 목포를 여행하는 내내 감시당하고 경찰에게 심문을 당했던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마지막에는 혐의가 풀린 후 경찰과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고 경찰이 보여준 수첩에는 적군파 멤버의 얼굴 사진이 붙어있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에 흥미가 돋는다면 나름북스 출판, 이시카와 야스히로 지음, 홍상현 옮김,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을 읽어보면 좋을 것이다. 책의 시작에 저자는 무려 16페이지에 이르는 분량으로 한국의 독자를 위한 글을 실었는데, 부제가 '일본에서의 마르크스 수용 역사'이다. 독자에게 쓰는 글을 이렇게 흥미진진하게 읽은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이다. 마르크스에 대한 부당한 평가의 근원부터 시작해서 한국과 일본에 마르크스의 학문이 들어오게 된 배경과 국제 정세 등을 깔끔하게 정리해준다. 본격적인 내용에 들어가는 데도 큰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이다. 본문으로 들어가면 마르크스의 성장과 더불어 발전한 그의 사상을 따라갈 수 있으며 그 길은 "내가 사회 구조를 파악하고, 사회와 나의 관계를 생각하며, 끝내는 나의 성장에 대한 희망을 갖는" (32p) 것과 명확하게 연결할 수 있다. 본문에 관한 구체적인 언급은 하지 않겠다. 읽은 후, 입문서로서 더하거나 뺄 것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냥 쭉 읽으면 된다. 책의 뒷부분에는 마르크스를 공부하는 방법도 친절하게 소개한다. 마르크스뿐만 아니라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공부법이라고 생각해도 될 것이다. 말미에는 저자와 지도 학생의 학습회 풍경을 '체험판'으로 실어놓았다. 전체적으로 보면, 이 책으로 입문하고, 소개한 공부법으로 읽고 공부하고, 마지막엔 함께 학습하는, 딱딱 실질적인 공부에 적용할 수 있도록 책이 구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 이라는 제목을 다시 생각해본다.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 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말 그대로 마르크스를 처음 접하는 독자이기도 하고, 그동안 이래저래 잘못 알려진 마르크스가 아니라 '정말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 이라고 소개해주는 저자이기도 하겠다. 마르크스를 제대로 알게 되는 첫 만남의 기회를 이 책을 통해서 잡았으면 좋겠다. 고등학교 시절 형은 독서토론회 동아리 연합회장이었는데, 형을 따라 운동권 서적을 전문으로 하는 조그마한 서점에 간 적이 있다. 그 서점에서 형이 무슨 책을 샀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초등학교(그래, 국민학교다. 쿨룩)에서 '똘이장군'을 보고 반공 만화를 사봐야 했던 나에게 서점에 당당히 꽂혀 있던 비봉출판사의 '자본론'의 위엄은 어렴풋이나마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다. 그 기억이 남아 있는 것은 아마 어떤 두려움 때문이었으리라. 반공교육을 받지 않은 독자는 물론이거니와 나와 비슷한 기억이 있는 사람들도 이제 그런 두려움을 떨치고 마르크스를 만나자. 여행에서 후지와라 신야처럼 '빨갱이 사냥'의 고초를 겪어야 했던 시절은 이제 아니지 않은가. 아니라고 확언하기에 석연치 않은 심정을 느낀다면 그것이 바로 더욱더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이다. 게다가 두려워하기엔 김보통작가가 그린 표지의 마르크스가 너무 귀엽단 말이다. 흐흐흐. 귀여운 마르크스에게 인사. "안녕하세요!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 반가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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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에 관심이 있습니다. 마르크스의 사상적 위대함은 이미 알고 있었죠. 하지만 그에 대한 공부는 거의 없었습니다. 러시아가 아닌 독일 출신의 공산주의의 창시자 뭐 그 정도? 자본주의의 문제점이 점점 더 많이 또 심각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저와 비슷한 청년 세대들의 삶을 보면 답이 나오네요. 세상은 변해야 합니다. 한 번에 확 바뀔 순 없겠죠. 하지만 마르크스처럼 바뀌리라 믿어야 하고,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덕분에 이 책의 내용이 더 잘 와 닿았습니다. 촛불 집회에서 증명 됐습니다. 다수의 국민이 주권자로서 목소리를 발하고, 때론 투쟁하면서 의지를 표명한다면 이 세상은 바뀔 겁니다. 저 같은 젊은이들, 자신만 행복한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재능을 사용하길 원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합니다. 마음이 따뜻해질 거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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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 레닌, 스탈린. 어디선가 들어본적은 있지만 학창시절 이과라는 변명으로 사회학이나 인문학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던 나는 이들의 이름만 알고 있을 뿐 제대로 된 지식이 없는 사람이다. 사전지식이 너무 없는 상태이다 보니 알고 싶어도 쉽게 공부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는데 쉽게 쓰여진 책을 발견하여 읽게 되었다. 이 책은 마르크스 사회과학은 연구하는 일본인 교수가 마르크스를 처음 접하는 학생들 혹은 마르크스에 대해 알고 싶은 그 누구에게는 접하기 쉽고 호기심을 생기도록 쉽게 써낸 책이다.
지식이 없는 나에게 마르크스란 "공산주의 = 소련의 붕괴 및 북한, 중국과 같은 공산주의 국가 = 옳지 못한 것 혹은 실패한 것" 이라는 이미지였다. 그런데 책을 읽고 내가 얼마나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저자는 마르크스라는 사람의 인생과 그의 철학을 통해 결국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해볼 기회를 가지라 이야기한다. 마르크스는 인간의 행복을 추구하고 이를 위해 결국 인류와 사회의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는 인생철학을 가지고 이를 실천할 방법을 찾기위해 평생을 바친 사람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결국 사회는 자본을 위한 생산을 추구한다. 생산에 필요한 노동력을 제공하는 노동자의 행복은 고려하지 않는것이 자본주의 사회라는 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부분일 것이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결국 궁극적으로 인간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자본이 자본가를 개인의 소유가 아닌 사회의 소유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것이다.
이전에 알파고가 화재가 되면서 읽게 된 책에서 미래에는 인공지능과 기계가 노동을 대신 할 것이고 인간은 남는 시간과 자본을 어떻게 이용하며 살아갈 것인지를 연구해야 하는 사회가 올지 모른다는 예측을 접한 적이 있다. 나는 자본주의가 승리하면서 공상주의란 결국 실패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공산주의 사회, 대표적으로 소련, 북한 등은 진정한 의미의 공산주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인공지능과 기계가 노동을 대신하는 사회에서는 정말로 마르크스가 꿈꾸었던대로 자본이 사회, 즉 모든 인간의 공동소유가 되고 인간은 노동에서 자유로워지며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사회가 오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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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고 가볍다. 그래서 읽기 편하다. 왜 마르크스를 읽어야 하는지, 마르크스 철학이 이 시대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앞으로의 공부를 위해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을지 친절히 다룬다. 대학 선배가 신입생 후배에게 해주는 얘기를 듣는 기분이다. 대학 신입생 시절 읽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대학생이라면 마르크스 철학에 관심이 없더라도 읽으면 좋을 책이다. 김보통 작가님의 귀여운 표지 일러스트는 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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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와 공산주의에 관한 책들은 이미 여러 번 읽어 보았다. 학교 다닐때는 과제 때문이었고, 이후에는 과제 때문에 읽은 책을 오랜만에 발견하고 나서 였다. 우리에게 공산주의는 민주주의의 반대편에 선, 공격성을 드러내기에 알맞은 어느 지점에 있는 것이었다. 그것이 정치적으로 이용되어 온 이유 때문이든, 아니면 주입식 교육으로 학교에서, 사회에서 굳어진 인식 때문이든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은 마르크스를 부드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라 한다. 억지가 더해진 것이 아닌 자연스럽게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게 이끌고 있다. 어렵고 딱딱하지 않은 접근이 인상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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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통 작가가 그린 표지의 마르크스는 잠옷 입은 산타클로스 같다. 빨간 산타 복장을 입기 전 파자마 차림의 마르크스의 모습에 끌려 구매한 이 책은 마르크스 = 공산당이란 생각을 바꿔주었다. 마르크스가 가졌던 생각은 실제로 현재 복지 국가들이 채용한 내용들이 대부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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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만큼 인류에 많은 변혁을 몰고 온 사상가는 거의 없었다. 공산주의에 대해 빨갱이라고 비난을 하는 사람들은 마르크스의 사상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수많은 경제학자 중에서 마르크스만이 처음으로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해서 따뜻한 감성으로 이론을 정립했다. 사회주의가 몰락했다고 하지만 마르크스의 사상은 아직도 많은 곳에서 변혁을 위한 토대가 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 책은 마르크스 주의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을 위한 입문서 내지 소개서로서 쉬운 문체로 설명해 주고 있다. 마르크스의 책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 우리나라에서는 구속을 시키고 빨갱이라고 낙인찍는 분서갱유보다 더 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사상을 검열하지 말고 많은 사상을 청소년들이 접해 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