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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대 후반전, 치열하게 살아보자꾸나
"이십대 후반전, 치열하게 살아보자꾸나" 내용보기
<이십대 전반전>, 문수현 외 4명(2010) 100926       이십대 후반전, 치열하게 살아보자꾸나       “우리 20대 전반전은 세상이 얼마나 가혹한지 배워가는 시기였지만, 후반전은 함께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세상이 돼야 한다. 전반전에 겪은 모순과 아픔은 후반전을 준비하는 데 가장 큰 힘이 될 것이다.”(11쪽)     내 나이 스물다섯. 평균나이 24.6세의 여자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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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대 전반전>, 문수현 외 4(2010)

100926

 

 

 

이십대 후반전, 치열하게 살아보자꾸나

 

 

 

우리 20대 전반전은 세상이 얼마나 가혹한지 배워가는 시기였지만, 후반전은 함께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세상이 돼야 한다. 전반전에 겪은 모순과 아픔은 후반전을 준비하는 데 가장 큰 힘이 될 것이다.”(11)

 

 

내 나이 스물다섯. 평균나이 24.6세의 여자 대학생 다섯 명이 공저한 이 책의 분류에 따르면, 나는 이제 막 이십대 후반전에 들어선 셈이다. 이들은 20대 전반전에 세상의 가혹함을 배웠다는데, 그 시절 나는 무얼 했던가? 이 질문에 성의껏 답하려면, 나의 인생을 개괄적으로 풀어봐야 할 듯 하다. 실상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은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은 독자로써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이자 이행해야 할 의무이다. 이로써 나는 저자들과, 그리고 세상과 소통하게 될 것이다. 미리 귀띔하자면, 나 또한 20대 전반전에 세상을 배웠다. 비록 그 과정은 매우 더뎠지만.

 

 

나의 전반전

 

나는 낙관주의자였다. 선천적이고 또 후천적으로, 흔들림 없는 낙관주의자였다. 상황이 그랬다. 부산에 살아서 그런지 빈부격차나 경쟁압력을 그다지 느끼지 않았다. 또한 우리 집은 다행히도 IMF에 별 다른 타격을 받지 않았다. 게다가 누나는 공부를 꽤 하는 편이었다. 자연히 나도 어떻게든 잘되겠지라고 생각했다.

 

이런 믿음 덕에 나는 욕구와 욕망에 충실하며 내키는 대로살았다. 부모의 통제를 벗어난 중·고생 시절부터는 공부에는 일절 손대지 않았다. 암기 위주의 공부는 퍽이나 재미없었으니까. 그대신 나의 일상은 즉각적으로 쾌락을 제공하는 것들, 컴퓨터 게임과 알코올과 이성교제로 채워졌다. 중학교 때, 부모님의 권유(?)로 마지못해 보습학원을 다녔다. 하지만 내가 학원에 가는 건, 6일 수업 중에 평균 3-4번에 불과했다. 전화기 코드를 뽑거나, 수화기를 비틀어 놓아 통화중으로 만드는 것은 내 특기였다.

 

고등학교 때는 아예 학원을 끊었다. 자유롭게 주구장창 놀았다. 아무 걱정 없이 잘도 지냈다. 헌데, 2겨울방학에 갑작스레 불안이 엄습해왔다. 살면서 처음 느끼는 불안이었다. ‘대학은 왠만큼 가야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불안을 추진력으로 바꾸어, 6개월 간 수능공부에 전력투구했다. 성적은 노력한만큼 나왔고, 원서질도 적당히 성공했다. 그래서 학기 초에 목표로 했던 대학에 무사히 진학했다.

 

드디어 20대 전반전 시작. 05학번이었다. 불안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취업걱정 따윈 전연 없었다. 그 시절 분위기가 그랬는지, 아님 내가 현실에 무뎠는지 잘은 모르겠다. 어쨌든 낙관주의가 다시 강림했다. 대학 공부 역시 재미없었다. 그 덕(?)에 다시 컴퓨터 게임과 알코올과 이성교제로 빠져들었다. 재미 없는 공부에 지쳐 1학년을 마치고 휴학을 신청했다. 카투사를 준비한답시고 1년을 쉬었다. 현실감각이 없었는지 몰라도, 군대 가기 전 1년 정도 노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 때 카투사 커트라인은 토익 700. 영어 공부는 한 달 만에 끝났다. 다시 컴퓨터 게임과 알코올과 이성교제. , 거기다 과외와 알바를 병행했다. 돈 벌고 놀고 돈 벌고 놀고. 풍요롭게 잘 놀았다.

 

운은 없었다. 카투사 추첨에 떨어지고, 육군에 갔다. 군대에서 들어가서야 비로소 세상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피상적인 관계에선 맛보기 힘든, 인간 본연의 악한 측면을 원 없이 느낄 수 있었다. 아니, 군대에선 사회생활을 배운다는데, 그럼 사회가 이렇단 말이야? 돈 없고 힘 없으면 가차없이 잡아 먹히겠네? 이런 경험을 하면서 미래를 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군대에서 어떻게, 무엇으로 미래를 준비한단 말인가? 떠오르는 건 독서밖에 없었다. 이래봬도 초등학생일 때 독서를 제법 했었다. 이제 다시 독서를 해야지. 무엇을? 자기계발 해야지! 재테크 서적을 필두로 나의 독서는 시작되었다. 당연한 귀결이었다. 나는 그제까지 기성질서와 사회체제에 대해 털끝만큼의 의심도 품어본 적 없었기에.

 

군대 시절 나는 자기계발의 선두주자였다. 자기계발서는 나의 정신으로 승화되었다. 나는 정신과 태도를 철저하게 갈고 닦았다. 나는 일분일초도 허비하지 않았다. 벤자민 프랭클린을 뺨치는 철저한 생활태도였다. 그리고 나의 낙관주의는 더욱 강력해졌다. 고진감래는 내 신조였다. 자본주의 사회는 노력만하면 성공하는 사회니까. 남들보다 두 배, 세 배 노력해서 고생 끝에 낙을 얻자! 성공해서 일부는 사회에 환원하자! 나는 자본주의 경쟁논리, 미국식 청교도주의의 완벽한 체현자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의아스러울 정도로 사회의식·현실인식이 부족했다. 어쩜 그럴 수가? 나는 08년 촛불정국 때 무엇을 했는가? 군인이었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군인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 특정 이념·이익을 대변하는 정치적 행동(집회 참여)은 절대 금물이다! 해서, 그것은 나에게는 하등의 영향도 미칠 수 없었다. 상병 정기휴가 땐가, 청계천 뒤편에서 춤추는 소녀들을 본 적이 있다. 잠깐 멀뚱히 쳐다보다가 왜 저래?’ 하고 지나쳤던 기억이 남아있다. , 군대에서 잠깐 신문을 읽은 적도 있었다. 현실 공부 좀 하려고. 한겨례였다. 스크랩까지 해가며 열심히 읽었다. 헌데, 하필 경제 위기 때였다. 나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이해하려다 머리가 하얗게 불타버렸다. 그 놈의 경제, 경제, 경제! 나는 2달을 버티지 못하고 중도하차 해버렸다.

 

08 3. 드디어 전역이었다. 내 머릿속은 서부 개척 시대에 미국인들이 품었던 아메리칸 드림 못지 않은 원대한 포부와 낙관적 희망으로 가득했다. 나는 자기계발서계의 고전 카네기 인간관계론과 명저 네 안에 잠든 거인을 깨워라를 생활태도로 완벽하게 체득했고, <젊은 Googler의 편지 <20, 나만의 무대를 세워라를 읽으며 한국에서의 스펙 전쟁을 대비한 정신 무장을 끝마쳤다. 곧바로 스펙 경쟁에 뛰어들었다. 학점을 철저리 관리했고, 네이버 스펙업까페와 싸이 씽유를 전전하며 시류를 파악했다. 대외활동과 봉사활동을 차근차근 해나갔고, 교환학생을 염두에 두고 토플을 공부했다. 그렇게 나는 스펙 전쟁의 최전선에서 열심히 싸워나갔다. 성공은 목전에 있는 듯 했다.

 

작년 10, 심혈을 기울였던 토플공부를 마무리했다. 불현듯 피폐함과 공허함을 느꼈다. 신문도 티비도 보지 않는 나. 정치·사회·경제에 무지한 것이 다소 답답하게 느껴졌다. 앎에 대한 근원적인 갈증이었을까? 그래서 다시 책을 손에 잡았다. 그때 나는 자기 성찰과 자성의 시간을 필요로 했다. 보자, 내가 이토록 성공을 좇은 것은 행복하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옛 성현들은 무엇이 행복이라 생각했을까? 현 시대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까? 나의 독서는 이 질문에 대해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탐독을 시작했다. 사회와 인간에 대한 지식이 갈급했기에, 인문학과 사회과학 교양서가 주를 이루었다. 구체적으로는 진화론, 인권, 한국현대사, 인물 자서전들, 진보와 보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등등. 근데 이상하다? 분명 가열차게 독서를 하고 있는데, 의문이 해소되기는커녕 물음표는 점점 커져만 갔다. 어라? 인간이란 참 요상한 존재네? 게다가 한국 사회·정치·경제는 왜 이래? 어쩌다 이렇게 됐지? 알면 알수록 당황스러웠고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몇 가지는 분명해졌다.

 

깨달은 바를 간략하게 써보자. 요컨대, 나는 여태껏 성공에 대한 환상을 열심히 좇고 있었다. 처절하게 발버둥치며 남들을 밟고 올라서려는 열망으로. 그런데 헛된 노력이었다. 이미 한국의 계급과 계층은 공고화되어 있었다. 부와 권력은 일부 특권계층이 독차지하고 있었다. 개인의 노력에 의한 성공은 70-90년대에나 가능했던 신화에 불과했다. 부동산과 학벌이란 경로를 통해 특권계층의 자녀들이 안정적으로 부를 대물림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결국 성공한답시고 들이는 내 노력과 시간은 전적으로 가진 자들의 이익에 복무하는 꼴이었다. 무엇보다 행복은 성공을 쟁취하려 노력하는 과정에 존재하지 않았다.

 

마침 근래에 읽던 책에 현실 사회를 깔끔하게 설명하는 구절이 있어서 옮겨보았다.

 

“(젊은이들은) ‘자기계발하기 위해 뭔가 끝없이 읽고 공부하고 있다. (…) 경쟁에서 패배할 가능성이 높은 대다수는 스스로 자기 정신의 키를 낮추고 자본의 도구가 되는 종속을 택한다. 그것이 당장 안전해 보이기 때문이지만, 이는 결국 자유로부터 도피하여 루저로서의 삶을 완성하는 것이다. 반대로 위너의 자리에 갈 가능성이 있는 소수의 인간들은 자본의 운동 원리에 자기 삶을 합체시킨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지배의 하수인이 되고 비인간(非人間)으로서 행동한다. 그러나 그들도 스스로에게 부과되는 불안을 결코 극복할 수 없다. (…) 신자유주의적인 세속 윤리의 틀, 루저위너의 이분법과 그 명명의 굴레로부터 벗어나지 않으면 모두가 패배한다. 필요한 일은 경쟁바깥으로 탈주하는 것이다. (…) 자본과 질서는 우리를 소모품으로 이용해 먹다가 결국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리영희 프리즘>,「책 읽기와 청년, 그리고 자유」, 천정환, p55~p56)

 

나의 깨달음과 사유는 이미 몇몇 리뷰에 반복 서술했다. 궁금하면 다음 링크를 참조하길. 생각의 좌표>, 홍세화 // 삼성을 생각한다>, 김용철 // 입시전쟁잔혹사>, 강준만. 혹시 더 관심이 있으면 다음 링크에서 도서 목록을 보고 몇 권 읽어보면 도움이 될 거다. 인상 깊게 읽은 책들의 모음이다. 질문하고 독서하기 

 

나의 20대 전반전 및 후반전 극초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나의 후반전

 

나는 20대 후반전에 들어서야 급격하게 깨어난 셈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차이도 몰랐던 내가 이렇게 정치적이 될 줄이야(사실 별 차이는 없더라.) 늦게 배운 도둑질은 무서울 수 밖에 없나. 현실의 부조리와 모순을 깨닫고 충격에 휩싸인 나는 수많은 고민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대학에서 난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 역시 자발적 가난만이 정녕 자유로이 살 길인가? 아님, 노동운동에 투신하는 것이 진리인가? 또는, 생태공동체를 찾아서 자급자족적인 삶을 꾸릴까? 이러한 고민들로 거의 분열증에 가까운 상태였다. 그런 와중에 작성한 글이 이것이다(고민고민고민). 불과 서너 달 전만 해도 나는 참 극단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정말 근본적이고 매우 급진적이었으니. 그 후 책 읽고, 사유하고, 토론하면서 다행히도 나는 점차 안정과 균형을 되찾았다.

 

지금은 나만의 입장과 입지를 세우는 중이다. 일단은 사회와 인간을 총체적으로 파악하는 데 좀 더 주력할 작정이다. 동시에 글쓰기에도 심혈을 기울여, 담론 형성 능력을 배가해야지. 그리고 상황에 따라 현실적·실천적인 행동을 감행할거다. 일부 좌파들에 비하면, 깨달음이 조금 늦은 편이었다. 하지만 조급해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어떤 경험이라도 버릴 것은 없으니까. 자기계발에 심취했던 덕에, 나는 지금 스펙 경쟁에 몰두해 있는 이들을 십분 이해할 수 있다. 또한 급격한 사고의 전환을 겪은 덕에, 극단적인 사상으로 현실에 길항하며 분열증을 앓고 있는 이들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이해와 공감은 그들을 포섭하는데 가장 강력한 힘이 되어줄 것이다. 이제 좀 더 욕심을 내본다. 함께 손잡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이를 위해선 능력을 기를 필요가 있다. 예컨대 체제가 주입하는 의식을 꿰뚫어보는 통찰력, 세계정세를 파악하는 안목, 시대의 흐름을 읽어내는 혜안, 공고한 체제와 제도를 넘어 다른 세상을 꿈꾸는 상상력.

 

지금 나는 치열하게 정신과 의식을 제련하면서, 이러한 능력들을 배양하는 데 주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런 능력들로 단단히 무장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의 적자생존·승자독식의 가치관은 시시때때로, 전방위적으로 온존재를 사로잡으려고 달려드니까.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을 때, 나는 끊임없이 발전하는 존재로 거듭날 수 있으리. 사실 이런 삶의 방식이 순탄치만은 않다. 화폐 경제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는 이상, 이대로 산다면 필시 분열을 겪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나는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 시시각각 숨을 죄어오는 신자유주의의 마수로부터 도망치고 또 저항하며. 자유로운 세상에 대한 열망으로 스며드는 불안과 두려움을 물리치면서.

 

 

그녀들과의 만남

 

우리의 책으로 인해 대단한 변화가 일어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우리가 쓴 글이 한 조각의 짱돌이 되어 누군가의 마음에 울림을 줄 수 있다면 그걸로 좋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글을 쓰면서 이십대인 우리 자신을 좀 더 이해하고 돌아볼 수 있었다. (…) 게임의 구조는 거듭 이야기되어야 한다. 특히, 그 자신의 입을 통해서.”(268)

 

이런 삶을 사는 나에게 이 책은 힘찬 응원을 보내주었다. 그녀들의 이야기는 나의 고민과 강렬하게 공명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누구나가 자신의 가치와 가능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받을 수 있는 세계를 만들기 위해 싸워나가야 한다는 마음가짐에서는 나 역시도 그녀들과 다를 바 없으니까. 혼자서 자유로울 수 없으니까. 모두가 자유로운 세상은 함께 만들어가야 하니까.

 

이 책에서 그녀들은 하나같이 뱃속까지 진지했다. 글 하나하나가 매우 진솔하고 허심탄회했다. 게다가 필력마저 매우 뛰어났다. 특히 문수현(「괴담을 넘어 살아가기」,「원생 블루스」, 박은하(「촛불은 왜 횃불이 되지 못했나」「기로에 선 지식인」) 이 두 사람의 글을 읽을 땐, 대학 사회나 지식 사회에 대한 공감을 넘어 감탄이 터져 나왔다. 어쩜 이렇게 글을 잘 쓸까? 세상에 공짜는 없다. 아마도 학내 언론에서 부지런히 갈고 닦았을 것이다. 또한 이 책을 내느라 필설로 표현치 못할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으리라. 그로부터 나온 것이 이 작품일거다. 뛰어난 필력, 치열한 고민, 그리고 솔직함이 어우러져 강렬한 호소력을 갖는. 그래서였을까? 나는 책을 읽는 동안 마치 그녀들과 마주 앉아 조근조근 대화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 책은 여태껏 읽은 20대가 저자인 책 중에 내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녀들 덕분에 나의 20대 전반전을 돌아보고, 후반전에 임하는 다짐을 새로이 할 수 있었다. 가까운 날에 그녀들과 얼굴을 마주보며 담소를 나누고 싶다. 그들의 고민과 꿈꾸는 미래에 대하여. 생생한 기운과 각자의 희망을 주고받으며.

 

나의 이야기를 담은 이 리뷰는 그녀들에게 보내는 감사와 고마움의 표현이다. .

 

 

 

 

구절

 

“(왕따 현상이) 내 탓도 그 애들 탓도 아니라 이 세상 탓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 훨씬 마음이 편했다. 세상을 탓할 수 있는 것,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에 책임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상처를 치유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제도에 적응하지 못하는 내가 이상한 것이 아니라 제도 자체에 결함이 있을 수도 있다. 스펙이 부족한 내가 문제가 아니라 고용체계 자체가 왜곡되어 있는 건지도 모른다. 나는 왜 이 모양일까, 사회에 맞는 인간이 되기에 뭐가 부족한 걸까. 그렇게 고민하고 자책하는 것을 넘어서, 이 빌어먹을 세상 때문에 내가 고생하고 있음을 자각하게 되면 뭐가 정말 문제인지를 조금은 알 수 있게 된다. 사실 문제는 낙오자라는 허상을 만들어내고 멀쩡한 사람을 낙오자로 여기게끔 하는, 그리하여 스스로를 혐오하게 만드는 쪽에 있다.”(21)

 

내가 씩씩하게 살아간다고 해도 방세가 터무니없이 비싸다는 사실은 여전하다. 당장 어디에서 살아야 할까,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제대로 살 수 있을까, 이런 불안감은 나에게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열악함이 나아질 가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 그 열악함이 결코 공정함의 결과가 아니라는 사실, 누군가가 필요 이상으로 사치스러운 공간에서 사는 만큼 다른 누군가는 인격유지가 어려울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불안하게 한다. (…)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내 주거환경이 나쁜 것이 내가 무능해서가 아니라는 걸, 이성적인 가격의 집을 요구해야 한다는 걸 계속 이야기해 나가는 것이겠지.”(47~48)

 

사회적으로 어떤 괴담이 계속해서 유통되고 확산될 때에는 단순히 불안의 환기를 넘어서 괴담 자체가 정치성을 획득하게 된다. 이를테면 2008년의 광우병 괴담과 같은 것이 그렇다. (…) 진위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계속해서 유통되는 것은, 그러한 정보 자체가 가치 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피해자 집단이 처해있는 사회적 입장의 공통성을 환기하려는 의도이다. 피해가 빈번하게, 또는 일방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집단에서 공분(共憤)을 유도하는 것이다. (…)

따라서 괴담은 뜬금없이 유행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 조건으로 인해 불안을 짊어지고 살 수 밖에 없는 사람들, 그러나 누구도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주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괴담은 대담한 질문을 던진다. 당신을 불안하게 만드는 진짜 근원은 무엇이냐고. 불안을 초월하여 살기 취한 첫 걸음은 괴담이 끄집어내는 현실적 불평등을 직시하는 것이다. (…)

괴담이 상기시키는 현실이 누구의 현실인가를 확인하고 현실의 불평등을 문제 삼아 나서는 것, 변화의 필요를 소리 높여 외치는 것, 그것이 불안을 넘어 살아갈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59~60)

 

상담이라는 일이 계속해서 내 감정을 부정해야만 하는 일인지라 스트레스가 날로 쌓여 갔다. 상담을 통해 만나는 고객과 난 결코 동등한 인간일 수 없었다. 고객의 생각과 감정을 존중하기 위해선 내 생각과 감정을 죽여야만 했다. 화가 나도 참고, 짜증이 나도 참고, 울고 싶어도 참고, 전화를 끊고 싶어도 참아야지. 세상은 이런 걸 서비스 정신이라고 불렀다. (…)

일이 끝나면 하루 동안 억눌린 감정을 쏟아낼 곳이 필요했다. 만약 그때 친구와 같이 살지 않고 혼자 기숙사에 살았다면 아마 그 일을 금방 그만 뒀을지도 모른다. 친구에게 오늘 하루 만난 진상 고객들 욕을 하고 나면 그나마 가슴이 조금 후련해졌다. ‘나도 사람이거든? 니들만 감정 있는 거 아니거든?’ 하루 종일 하고 싶었던 이 한마디를 집에 와서야 털어 놓을 수 있었다. 고객은 왕이니 어쩌니 하는 헛소리르 다신 내 입 밖으로 꺼내지 말자고 다짐한 게 이때다. 친절과 서비스 정신은 누군가가 자신 역시 감정을 지닌 인간임을 끊임없이 부정당하는 가운데 탄생하는 것일 수 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60~70)

 

진로를 선택할 때에 고려해야 할 요소는 많다. 자기가 처한 조건 속에서 선택할 수 있는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부모의 권유 혹은 강요를 어디까지 무시하고 어디까지 받아들일 것인지,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고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그 직업이 자기와 딱 맞아서 할 수도 있고, 별로 맞지 않아도 몇 가지 특징들이 마음에 들어서 할 수도 있다. 여러 가지 제반 상황들 때문에 할 수도 있고,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되기도 한다.

제약사항들도 많고 걱정해야 할 걸도 많다. 하지만 그런 걱정거리와 불안요소를 감수하고서 진로고민이라는 사치를 누리려고 애쓰는 것만으로도 세상의 불평등한 구조를 깨뜨리는 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밤에 불을 끄고 누운 후에 잠들기 전까지 나의 진로에 관해서 제한 없는 그림을 그려보는 것, 이게 내 혁명의 시작이다.”(100)

주류를 따르지 않는 모든 생각과 행위는 그 자체로서 도망이자 저항이다.

 

요컨대 오늘날 한국의 대학에서는 배움이 실종되었다. 대학은 배움의 기관이 아니라 인맥이나 학벌과 같은 끈과 간판의 제공자로 스스로의 가치를 축소시켰다. 그리고 그 대학에서 개개인들은 인맥과 학벌의 소비자가 되는 수 밖에 없다. 정치적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그 누구와도 할 수 없다. 교양이란 이름으로 와인 매너를 배우고,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대기업에서 마련해 준 도서관에서 공부를 한 뒤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오늘날 대학생의 일상이다. 이런 환경에서 대학에서 친구를 만든다는 것, 엄밀히 말해 인생에 대해 고민하고 사회적 이야기를 나눌만한 관계를 형성해 나가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 된 것이다. (…) 대학생다움을 고민하려는 시도는 학교 안팎에서 운동권으로 몰렸으며, (…) 시장화된 대학에서 그래도 어떻게 살아야할지 고민하려던 학생들은 안주할 공동체 없이 방황하거나 부적응자가 돼야 했다.”(205~206)

마치 내 개인적인 경험을 쓴 것 같다. 이런 정황을 어떻게 이처럼 명확하게 집어냈을까. 대단허이. -.-

 

촛불정국 와중에서 총학생회의 집회 참여에 찬성을 했느냐 마느냐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더 중요한 점은 논쟁했다는 사실이다. 촛불집회 참여에 찬성한 쪽이건 반대한 쪽이건, 논쟁을 통해 민주주의가 무엇이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자유주의에 입각한 절차적 민주주의부터 공화주의적 시민공동체까지, 정치학 교과서에만 있던 이론들은 그 순간만큼은 지금 여기를 구성하는 고민이 됐다. 설령 그 이름은 모른다고 할지라도, 시험지에 학자들의 이론을 줄줄 읊는 것보다 당신의 논쟁이 훨씬 더 살아있는 공부였다.

더욱이 논쟁은 새로운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해 주었다. 많은 학생들이 학교 식당에서의 미국산 쇠고기 사용 여부에 관심을 가지면서, 학내 이슈와 정치사회적 이슈가 서로 분리되는 일만은 아님을 깨달았다. 여대생 군홧발 구타 동영상을 보면서 분노했다. 단순히 학벌과 학점의 소비자로서가 아니라 공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고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폭력에 분노하는 인간으로서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발견이 있은 뒤 대학은 참여와 행동의 공간으로 재구성될 수 있었다.

대학생 깃발부대의 부활이 의미 있었던 것은 그들의 참여가 바로 이러한 과정을 거친 결과이기 때문이다. 실질적 민주주의란 일회적 표결을 통해 다양한 맥락과 가능성을 확인해나가면서 보다 배려 있는 주장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다수결 내지 표결은 그러한 과정의 최종 확인 절차가 되어야 한다. 익명의 다수로서 참여하는 추상적 공동체가 아니라 눈에 보이는 구체적 공동체에서 그러한 논의가 진행될 때, 우리의 논쟁 역시 구체적이고 섬세해진다.”(207~208)

 

학문이 보통의 공부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낡은 인식체계에 새로운 통찰을 불어넣는다는 점일 것이다. 그 과정에서 기존의 논의에서 허점이나 약점, 또는 간과하고 있는 점을 끄집어내고 비판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따라서 학자는 뛰어난 독자인 동시에 능란한 반동분자여야 한다. 더 나아가 허술한 부분을 헐어낸 자리에 새로운 건축물을 설계하고 짓는 건축가여야 한다. 따라서 학자라면 미래의 필요와 미학을 고민하는 여유를 특기처럼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런 여유를 통해 비로소 학자는 사회와의 소통에서 열려 있을 수 있다.”(213~214)

 

성장과 더불어 세상과 내가 이룰 수 있는 무수한 관계에 눈을 떠갔다. 세상과 나의 관계 맺기란 결코 하나의 직업 속에서 형식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 직업을 통해 새로운 가치와 도덕을 발견하는 일, 내가 가진 장점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일, 직업을 넘어선 나의 존재의의를 키워가는 일이 모두 그 관계 맺기의 일환이었다. 교수가 되어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수란 학문의 연구와 전수가 주된 임무이니만큼 그들은 자신들의 가치와 도덕을 세상에 관철시켜 나가는 데 있어서 가장 막강한 무기를 쥐고 있는 셈이었다. 그 자리만큼 진지하게 자신의 존재를 성찰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재발견해 나갈 수 있는 자리도 없을 것이다.”(215)

위에 밑줄 그은 부분이 일상이 될 수 있는 직업을 가졌으면 한다.

 

스펙전쟁은 대학생 A가 취직하기 위해 토익 점수를 얼마나 더 따고 재수강을 얼마나 해야 되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누군가는 영원히 제대로 된 일자리를 잡지 못한다는 것. 누군가는 영원히 가난하고 취직한 사람도 늘 불안한 시대가 펼쳐지고 있음을 알리는 증언이다. 나와 내 옆 사람과의 전쟁이 아니라 살아남기 힘들어진 개인과 개인을 그렇게 만드는 시스템 간의 전쟁인 것이다. 내 옆 사람을 쏘아 승률을 높여봤자 결과는 가난뱅이가 되는 것이고(이미 소수의 부동산 재벌, 기업 재벌들이 부를 독차지하고 있기에, 기껏 경쟁에서 이겨봐야 그들 밑에서 일하는 것에 불과하므로) 전쟁을 포기하며 하류 혹은 잉여의 처지로 떨어진다. 잉여가 되지 말라고 겁주는 사회에서 잉여로 살아가는 것은 하나의 저항일 수 있지만, 저항이 현실을 바꾸어내지 못한다면 잉여짓은 그야말로 패배다. 함께 이길 방법이 필요하다.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 그래서 절실하다. 기성세대가 말하는 것이나 매스컴에서 떠는 것을 그대로 들어서는 안 된다. 가난뱅이 혹은 하류가 되라는 양극단의 틀을 부수고 내 멋대로 살 수 있어야 한다. 타인을 배려하지 않으면서 자기 욕망만 충족하자는 것이 아니다. 주어진 질서가 무엇을 노리는지 명확하게 꿰뚫고 이것을 비껴가는 상상을 할 수 있는 것이 진짜 내 멋대로의 삶이다. 진짜 내 멋대로 살아가기 위해 학교 교육과 같은 제도권 시스템 혹은 잉여문화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제각기 다를 것이다. 하지만 하나만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전쟁에서 살아남는지 여부는 제도권이냐 아니냐가 가르는 것이 아니다. 각자가 얼마나 고민하는지에 달렸다.”(262~263)

 

 

b******a 2010.09.26.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이해와 공감의 손길을 내민 20대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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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쓴 저자들은 대한민국의 평범한 사람들의 부러움과 시샘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소위 S대학교를 졸업했거나,재학중이면서 서울대학교 학생자치언론 교육저널 기자들이다.내가(대부분이)  생각하는 그들은 가까이 하기엔 왠지 거리감이 느껴지고 우리와는 많이 다를 것 같았는데,글을 읽으면서 그들이 느끼는 것들이 보통사람들과 너무 똑같아서 오히려 놀랐다.에라테스테노스의 체
"이해와 공감의 손길을 내민 20대의 이야기" 내용보기
이 책을 쓴 저자들은 대한민국의 평범한 사람들의 부러움과 시샘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소위 S대학교를 졸업했거나,재학중이면서 서울대학교 학생자치언론 교육저널 기자들이다.내가(대부분이)  생각하는 그들은 가까이 하기엔 왠지 거리감이 느껴지고 우리와는 많이 다를 것 같았는데,글을 읽으면서 그들이 느끼는 것들이 보통사람들과 너무 똑같아서 오히려 놀랐다.에라테스테노스의 체에 걸러진 숫자같은 그들이지만,그들의 생각은 이 시대의 20대가 느끼는 것들을 똑같이 느끼고 공감하고 있었다.!  물론 그들이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난체하는 부류가 아니어서 그러리라 생각하지만.물론 나는 20대가 아니다.그래서 20대를 안다고 하기엔 교만할지도 모른다.하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시대의 20대의 생각을 엿보고 공감할 수 있었다.

 

 사람 사이에 가장 어려운 것은 이해와 공감이다.그나마 이해는 되지만 공감은 자신이 경험한 일 외에는 어렵다.현재 대한민국의 가장 큰 문제는 어쩌면 소통의 결여가 아닐까 생각해본다.그들은 에세이처럼 써 내려간 짧은 글에서 이 시대의 20대에게 소통의 창을 열고 있다.홍지선님에게 1998년은 집단 따돌림의 아픈 기억이 있다.현재까지도 학교에서 계속되고 있는 집단 왕따가 사라질 날이 있을까? P22-지식인 같지 않은 지식인들은 못난 사람은 낙오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하고 있다.

 

 박은하님은 어느 시골 양아치 출신 경찰의 이야기를 들려준다.그는 현재 경력 34년차 베테랑 경찰인 자신의 아버지다.70년대 자신의 아버지가 있던 자리에 현재는 수업시간에 대놓고 잠을 자는 이불공주가 있다고 말한다. 부모에게서 자립하고 싶은 20대. 학교 근처로 어쩔수 없이 고시원이나 옥탑방을 찾아야 하는 주거문제의 열악함을 그냥 감내할 수밖에 없는 그들 20대.그래서 학교 괴담처럼 '차취방 괴담' 시리즈가 유행한다.P60 -지난 대선 때는 부재자 투표를 신청했지만 등기를 받아줄 사람이 없어 투표용지를 받지 못했다.의도치 않은 기권이었다.서민을 직접 느끼지 못하고 몽상 속에서 추진된 허울 좋은 새로운 학자금 대출제도, 그들의 시각으로 본 청와대는 마리앙뚜아네트의 트리아농 소궁이다.

 

 너무 비싼 등록금 때문에 많은 20대가 아르바이트를 경험한다.그러나 어른들도 힘든 사회생활이 준비되지 않은 그들에게 알바는 경험보다 사회의 추악함을 너무 일찍 맛봐버린 쓰라린 경우가 더 많다. 요즘 세상은 돈 없이는 놀기도 힘든다.그들은 놀이조차도 모두 돈이 들어간다.초등생인 내 두 딸도 뛰어 놀기 위해서 돈 내고 트럼플린을 한다.이상과 현실,꿈과 조건 사이에서 고민하는 그들에게도 사람사는 냄새가 난다.P108-니가 별로 가진거 없이도 행복해 하는 거 보면서 참 고맙더라고,니네 엄마가 말하더라.이 부분은 나를 찡하게 했다.

d********3 2010.04.07.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나의 이십대 후반전을 위하여
"나의 이십대 후반전을 위하여" 내용보기
참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유희열, 이적, 김동률, 루시드폴, 스윗소로우 등등 내가 좋아하는 가수는 명문대 출신이었으니.. 결코 내가 그들의 학벌을 보고 좋아한 건 아니었다. 학벌을 보고 뮤지선의 노래를 판단한다는 자체도 참 우습지 않은가.  어쩜 똑똑한 사람들은 다른 것도 잘하는거지?  그래서 좋은 대학에 가야하는 건가?  샤대학만 간다면 나도 그들처럼 내 능력을 맘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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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유희열, 이적, 김동률, 루시드폴, 스윗소로우 등등 내가 좋아하는 가수는 명문대 출신이었으니.. 결코 내가 그들의 학벌을 보고 좋아한 건 아니었다. 학벌을 보고 뮤지선의 노래를 판단한다는 자체도 참 우습지 않은가.

 어쩜 똑똑한 사람들은 다른 것도 잘하는거지?

 그래서 좋은 대학에 가야하는 건가?

 샤대학만 간다면 나도 그들처럼 내 능력을 맘껏 뿜어내리라! 라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면 거짓말일테지만

 난 그럴 위인이 못될거라고 나를 자꾸 낮췄던 것 같다.

 

 서울에 있는 학교 중에 그렇게 작은 대학교가 있나 싶을 정도, 게다가 산 위에 위치해있던 여대를 다니다가

 내 발로 그곳을 나와 또 아주 좁은(시야도 좁고, 학교면적도 좁은) 특수목적대학교를 들어간 나로서는

 아주 큰 대학교(학생 수도 많고, 학과도 아주 많은 종합대에다가 면적도 무지무지 넓은 그런 학교)는 로망일 수 밖에 없었다.

 그 곳에서 학교를 다닌 학생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우리의 좁디 좋은 학교에서 나는 우물 안 개구리는 되기 싫다면서 발버둥을 쳤지만

 결국 난 그 우물 안 속의 개구리가 되어버렸다.

 우리 학교에서 사회적 문제란 임용티오와 통폐합 정도였으니까..

 내가 정말 존경하는 교수님께 물어본 적이 있다

 왜 선생님을 그만두고 교수가 되셨는지.

 자신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더 어려웠다고,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 싶다고. 사회적 문제를 외면하지 말라는 말씀이셨는데

 난 어느새 내 안위만 걱정하며,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내 미래만으로 벅찬 그런 좁은 사람이 되고 있었다.

 

 이 책의 저자 중엔 반갑게도 나와 같은 나이인 또래도 있었고, 대체로 한 두살 쯤 어린데

 내가 나의 안위만을 걱정하며

 4년동안 학교에서 짜준 커리큘럼을 아무 생각없이 의무적으로 착실히 수행하며

 사회적 문제와는 담을 쌓고 살아가는 동안

 그들은 치열하게 고민하고, 다양한 분야의 사람을 만나고, 현재 부조리한 상황을 잘 못 되고 있다고 똑부러지게 이야기 하다니!

 뭔가 억울하다.

 내 이십대 전반전은 생각만 하다, 계획만 세우다 우물쭈물하다 종쳤다!

 공동체보다 나 한명의 개인이 더 중요하지. 내 앞가림이나 하자.. 라는 생각으로 살았던 내가 참 부끄럽다.

 끝없는 경쟁.. 내가 이 문턱 하나를 넘고 자리보전한다고 해서 경쟁에서 살아남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내 아이들이, 내 자식들은 경쟁으로 내몬 사람이 되지 않을까.

 

 휴... 이 책을 읽고

 느낀 점도 많지만 그때문에 마음이 참 무겁다.

 그렇지만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진 이 책은 희망이다.

 이제 펼쳐질 내 이십대 후반전.

 조금 더 골치 아파지겠지만 외면하지는 말자.

g******a 2010.10.3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