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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려서부터 음악을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35세에 주의 종으로 부르심을 받기까지 계속 성가대원으로 활동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난 뒤 대학 생활과 군대 생활을 하기까지는 세상 음악에 깊이 심취해 있었다. 그러다가 전공을 바꿔 음악을 전공하게 되었고 음대를 졸업한 뒤에는 유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교회음악연구소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거기서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회심했다. 그때부터 교회음악연구원으로서 찬양과 예배 세미나 강사 및 칼럼리스트로 활동했고, 각종 예배 속에서 경배와 찬양 인도자로 봉사하며 오랜 세월 동안 음악이 절대적인 도구였던 삶을 살았다. 그러다가 1997년도에 십자가의 도를 깨닫고 성경암송으로 말씀을 붙잡은 후 거리로 뛰쳐나가 전도하기 시작했다. 그때로부터 성령께서는 성가대원, 음악전공자, 경배와 찬양 인도자, 교회음악연구원으로서 음악이 중심 도구였던 삶으로부터 점점 음악의 의존도를 낮추셨다. 골방에서는 성경을 암송하는 기도와 찬양으로, 거리에서는 말씀을 선포하는 전도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도록 훈련시키셨다. 20여 년이 흐르는 동안 성령께서는 음악을 절대적으로 의존하던 예배자에서, 음악의 유무와 상관없이 골방에서 성경을 암송하고 거리에서 전도하는 예배자로 세우셔서 광야 속 예배의 영성으로 주의 길을 예비하게 하셨다. 음악에 치우쳤던 삶에서 벗어나 성경 암송과 거리 전도에 순종한 결과는 놀라웠다. 1년 3개월만에 하나님이 복음을 전파하는 주의 종으로 선택하신 것을 알게 되었다. 사명자로 영광스러운 부르심을 받았다. 그리고 신학대학원 재학 중 이스라엘 땅을 2번 밟고 오게 하시면서 역대하 20장 1-30절을 통해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노래하는 군대가 적진으로 나아가 승리를 이루는 비전과 함께, 세계 선교의 부르심을 받게 되었다. 결국, 그 부르심을 따라 세계의 중심인 뉴욕 맨해튼 거리 한복판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세계 선교 사역을 감당하게 하셨다. 급기야 성령께서는 유럽 및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음악인과 예술인들 그리고 그들이 속한 도시와 영역 속으로 다시 들여보내주셨다. 세상의 음악과 예술의 영역 안에 갇혀 있던 나를 건져주시고 그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주셔서 구속하시고 죄 사함을 허락하신 뒤 (골 1:13-14), 나를 다시 세상 예술의 영역과 그 영역 안에 있는 자들을 구속하시려고 보내시는 것이다 (요 20:21).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 여호수아, 사무엘, 다윗, 선지자들, 세례 요한, 제자들, 바울 그들은 광야의 영성을 소유한 예배자들이었다. 우리의 삶도 광야다. 삶 속에서 정서를 달래줄 음악을 떠올릴 틈도 없이 갑작스럽게 광야에 던져질 때가 많다. 그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무엇을 붙잡아야 하는가? 광야는 ‘미드바르’인데 ‘말하다’라는 뜻의 ‘다바르’에서 파생되었다. 광야는 주님이 말씀하시는 곳이다. 광야 속 예배의 영성은 오직 성경을 통해 성령님만을 의지하는 신앙이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배할 장소가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배하는 산도 아니고 예루살렘도 아니며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계신 바로 그때라고 하셨다. 예수님이 계신 바로 그곳이 예배할 장소였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를 나눈 그 장소도 광야였다. 즉, 광야 속 예배의 영성은 시간, 순서, 틀, 장소, 음악에 구애받거나 한 사람의 설교에 의존하지 않고, 오직 성령께만 집중하기 위해 말씀만을 붙잡는 신앙이다. -말씀 그대로 예배하라 중 발췌
현대 교회의 예배는 이전 시대의 예배에 비해 상당히 화려해지고 다양해졌다. 이전 시대의 예배가 청각 중심의 예배였다면 현대의 예배는 오감을 다 사용케 하는 예배가 되어졌다. 일종의 공연장화되어졌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저자 지용훈 선교사는 하나님의 말씀의 총합으로 주어진 성경을 중심으로 순전히 하나님 한분만을 예배함이 가장 합당하며 그로 인해 오직 하나님께만 신자의 중심이 집중케 됨을 강조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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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는 음악이 거의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예배를 드리고 있다 “예배합시다!”라는 말에 누군가 기타를 들거나 피아노 앞에 앉아야 하고, 노래를 불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요소가 없어서 예배 드리는 게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음악에 많이 의존하는 상태이다 1990년대 교회음악연구원 시절에 “말씀은 밥, 음악은 밥그릇”이라는 칼럼을 쓴 적이 있었는데, 온누리교회 담임이셨던 고 하용조 목사님도 비슷한 견해를 남겼다 복음을 전해야 한다 “복음과 문화를 혼돈하지 말라 그릇에 담긴 물을 마시는 것이지 그릇을 먹는 것이 아니다 문화를 통해 복음을 마셔야 한다 복음을 전해야 한다. 문화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되 그것에게 심취하지 말라 그릇은 필요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깨끗한 물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문화가 아닌 복음의 진리이다” 한국 교회에 음악을 도구로 한 경배 찬양의 열기가 뜨겁다 분명히 그 예배를 주님이 기쁘게 받으실 것이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시기에 그러나 음악에 의한 감정충만은 성령충만과는 별개다 성령충만은 말씀충만이다 성령님이 진리이시기 때문이다 (요일 5:6) 성령께서 역사하실 수 있는 예배의 요소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음악이 아니라 진리인 성경 말씀이다 초대교회의 부흥이 전세계를 휩쓸 때 사탄은 복음적이며 유대적인 예배를 제거하고 태양 숭배 종교 예배 의식을 교회에 스며들게 투입시켰다 또 하나님의 백성들을 사제와 평신도로 분리시켜 계급화했고, 사제들이 집례하는 복잡한 의식과 강연 스타일 설교에 회중들이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예배로 묶어버렸다 그리고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인 상태의 예배로 바꾸어버렸다 이 변질된 예배의 잔재를 과감히 버리고 예배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새로운 예배를 개발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하나님이 성경에서 말씀하신 예배의 방법으로 돌아가면 된다 거룩한 예배의 핵이 이미 우리 손에 있다 말씀이 온전히 회복되는 예배가 되어야 한다 “아, 당연하죠 말씀이 회복되어야 합니다”라며 이미 알고 있는 개념이라는 속단을 잠시 내려놓자 단순히 “찬양할 때 가사에 집중하세요”라거나 “설교가 핵심입니다 설교에 목숨 걸어야 합니다”라는 차원도 아니다 초대교회의 모든 회중들은 각 가정에서부터 이미 신명기 6장의 말씀대로 토라를 입에서 떠나지 않게 하는 말씀충만의 예배에 순종했다 다 같이 모여서도 토라를 소리 내어 읽고 암송하는 것이 중심인 예배를 드렸다 그것은 그들이 개발한 독특한 방식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모세와 여호수아에게 가르치신 방식이었고, 성경 속의 하나님이 선택한 수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기쁨으로 순종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져 초대교회까지 내려온 것이었다 음악은 자연에서 일어나는 물리적인 현상으로,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운 것이다 주님이 주신 예술적 재능을 극대화하여 예배를 드리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며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음악을 도구로 하여 예배가 더 풍성해질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을 떠난 가인의 문화에서 악기가 먼저 나왔고 (창 4장), 인본주의를 가장한 다신론을 기초로 한 헬라철학에서 오선지 음악이 나왔다는 것도 염두에 두고 음악 사용에 대해 영적으로 분별해야 한다 음악에 절대적으로 의존된 예배에 대한 의식을 과감히 내려놓아야 한다 음악이 처음에 등장하면 안 되고 음악적인 예배를 반드시 내려놓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하나님의 음성(소리)을 영으로 듣기 위한 말씀충만의 예배를 위하여 혼을 자극하는 음악이라는 소리가 오히려 방해될 위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예배에서는 예술보다 성경 말씀이 본질이다 음악을 적극 사용하여 찬양하도록 했던 다윗도 토라 자체를 입에서 떠나지 않는 것을 우선시하는 예배자였다 (시 1:2, 19:14) -말씀 그대로 예배하라 중 발췌
저자 지용훈 선교사의 말대로 한국 교회는 물론 세계 교회가 음악을 중심으로 한 엔터테인먼트 예배가 대세를 이루고 있는 실정이다 어느 경우에는 예배의 중요 요소인 하나님의 말씀 선포가 사라지고 각자의 묵상 내지는 깨달은 바를 나눈다는 형태로 변질되어져 가고 있다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각자 기준에 따라 무엇이 옳고 그른지의 무엇을 분별하는게 아니라, 유일한 진리의 기초이자 원천인 성경으로 우리의 존재와 삶을 투영해 하나님께 바른 예배를 드리기 위해 주어졌는데, 현대교회는 이를 버리고 개인의 감정을 극대화하는 편으로 이동해 가고 있는 안타까운 실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