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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네 남자가 있다. 분명 서로 다른 이들이지만 결코 다르지 않을 남자들이다. 잘나가는 증권브로커였지만, 결국 금융수사팀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 로랑 달. 토크쇼의 모든 출연자들의 제거를 꿈꾸는 테러리스트 파트리크 네프텔. 더 이상 몰래 하는 자위가 아닌 스와핑 상대를 만나러 아내와 함께 떠나는 티에리 트로켈.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를 글로 엮고자하는 남자, 작가 에릭 라인하르트까지. 성공과 욕망, 출세를 쫓는 네 남자의 이야기가 거미줄처럼 엮어서 진행된다. 서로 다른 네 남자의 이야기가 펼쳐지고, 어느 부분이 누구의 이야기인지를 집중하고 읽어야만 이해(?) 가능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가서는 그게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도 한다. 결국 그들의 이야기와 문제는 한가지로 모아지고 있었기에……. 자본주의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중산층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들의 지금 상황이 불러일으키는 많은 문제들과 그 원인이 결국은 탑(top)으로 향하고자 하는 우리의 욕심과 욕망이라고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라는 족쇄, 혹은 옅어지지 않은 그림자.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이야기 속에서 자주 등장하면서 그 의미가 너무도 깊은 단어이자 대상인 '아버지'. 상사와, 권력에게 굽실거리면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 하고, 당연하게(?) 자신보다 높은 곳에 있는 이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사람. 가정이라는 공간에서의 아버지의 역할이 있음에도 사회적인 위치가 더 많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대상이기에 그럴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음이 안타까울 만큼 사회라는 현실 속에서 때로는 비참한 역할이기도 하고, 가정에서의 자신의 자리는 그리 뚜렷하지도 크지도 않은 듯하다. 최선을 다했건만 결과가 그 빛을 발하지 못할 때는 무너지거나 주저앉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고, 자신의 의미가 점점 옅어지는 모습이 안타까워지는 사람이 아버지라는 존재가 아닐까 내내 생각하게 만들었다. 특히나 파트리크의 아버지가 죽는 장면에서 그 모습은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자식이 몰아붙이는 그 순간 선택한 행동이라니……. 결국 아버지의 죽음이 불러온 파트리크의 정서는 더 이상의 흐트러짐이 나타날 수 없을 만큼 최악의 상황을 몰고 온다. 제대로 성장할 수 없는 기억이 심어지고 모든 것을 부수고 싶은 테러리스트를 만들어버린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악순환을 가져오는 과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듯했다. 한 가정의 붕괴와 가장의 부재가 가져오는 너무나도 큰 영향들이 그대로 비춰지고 있었다.
아버지라는 존재를 가까이 하기도 싫고, 자신의 삶 속에서 불필요한 존재로 심어두려 하면서도 참 모순적인 것은, 결국은 그 아버지라는 대상에게서 위로를 받는 순간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로랑 달이 코너에 몰린 마지막부분을 보면, 어머니를 애타게 찾지만 결국은 마지막대화를 아버지와 하게 되는 것이 의아스럽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관계구조가 아닌가 싶게 만든다. 완전하게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의 이해를 불러일으키는 부분이었다. 우리가 잊고 싶어 하고 지나치고 싶어 하지만, 결국엔 우리가 스스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펼쳐지면서, 우리 역시 다른 이들(그중에서도 특히나 거부하고 싶었던 아버지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어쩌면 모른 척 지나치고 싶었던 것들과 눈이 마주치게 만드는 순간이 아니었나 싶게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었던 작품이었다. 답답하고 피하고 싶지만 결국은 마주하게 될 수밖에 없는 운명 같은 시간이었던 것 같다고…….
읽어가면서 내내,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소설이라는 도구를 통해서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자본주의사회의 현실,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위기들, 그리고 그 속에서 또 한 번 ‘따로 또 같이’일 수밖에 없는 모순들을 이야기하고 싶어 했던 것은 아닐까 하고. 내가 만난 이 책의 주인공들의 모습들이 하나같이 보여주고 있는 것들을 통해서 우리가 접근해야할 문제점들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때로 우리들이 위선적으로 살아가는 삶과 그 결과로 만나게 되는 절망들이, 참으로 냉정한 세상의 모습을 그대로 그려내고 있는 것 같은 섬뜩함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조금은 불편했던 소설이기도 했다. 하지만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는 네 남자의 이야기가 이 시대 중산층의 많은 부분들, 특히나 그들이 품어내고 있을 현실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기에 만나보고 싶어지게 하는 호기심도 같이 만들어냈다. 또 하나, 이들을 통해서 보이는 지금의 현상들 역시나 그 현실 속에서 풀어내야할 숙제 같은 의미로 던져주고 있는 건 아닐까 싶었다. 주식 시장(누군가에게는 부의 축적의 도구가 되겠지만 누군가에는 그것을 한방에 날릴 수 있는 동시에 모든 것을 앗아가는 수단이 되고 있는데도 그 유혹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이야기), 신분상승의 꿈을 이루고자 안간힘을 쓰는 것(신분상승의 수숫단 역시나 많겠지만, 더불어 감당해야할 몫이 많다는 것도 염두에 두어 두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가끔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게 가정인가?' 싶게 오늘날의 가정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이야기(아, 너무나 마음 아픈 순간들이 많이 그려졌다. 아버지의 역할과 존재의 의미, 가정이 갖추어야할 많은 것들이 사라짐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치부해버렸던 기억들, 회복을 위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그저 흘려보냈던 일들이…….), 그리고도 셀 수 없는 많은 문제들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네 남자의 인생이 보여주던 돈에 지배되어 돈이 돈을 낳고 돈을 쫓는 세상이, 한 사람의 인격과 품성이나 재능이 아닌 그의 출신배경이 많은 것을 결정짓는, 지식인이라 부르던 인물들은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의문을 품게 만들고, 비굴하고 비참하고 돈이 지배하고 있는 이 세상을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옳은 것인지를 숙제처럼 던져주고 있었다. 끝까지 다 읽고나면,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많은 말들이, 품고 있는 의문들과 걱정들이 우리 귀에 서서히 들어오고 있는 중이 아닌가 싶다.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그저 이야기로 멈추기에는 너무 현실적인 이야기가 많다. 이 책 역시나 우리가 갖고자 하는 욕망들, 얻고자 하는 계급들, 우리 살아가는 현실에 대한 불편한 진실들이 담겨있는 책이다.
여전히 누군가는 신데렐라를 꿈꾸며 사는 세상. 왜 이런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의 제목이 신데렐라일까 궁금해서 오랜만에 영어사전을 펼쳐들었다. 재투성이 아이를 소재로 한 동화가 아니라 진짜 신데렐라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만나고 싶기도 했기에 찾아봤다. "숨은 미녀. 비참한 처지에 빠진 사람. 갑자기 유명해진 사람(성공, 출세)......" 굳이 더 설명이 필요 없을 듯하다. 이 책 속 주인공들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는 이 한 단어의 많은 의미를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여전히 신데렐라를 꿈꾸는 우리들의 삶을 비웃기라도 하듯 양면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단어인 것 같았다. 성공과 출세를 나타내면서도 비참한 처지에 빠진 사람이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데렐라를 꿈꾸는 우리들의 모습은 완전 모순덩어리인지도 모르겠다. 그 이면을 알면서도 또 한 번 덤벼들려고 애쓰는…….
다 읽고 났을 때, 크게 한번 숨이 쉬어지는 것이 담담했다. 어느 독자가 이 책을 '전투적으로' 읽었다고 했을 때, 두 가지 생각이 들었었다. 책의 두께에 지레 겁먹고 마지막장을 만나기 위한 몸부림은 아니었을까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전투적의 의미를 나 역시 만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고. 그래, 나 역시 전투적으로 읽었다. 상당한 분량에 초조하기도 했고, 줄 바꿈이 없이 빽빽하게 들어선 글자들에게서 전투에서 패한 사람의 기분을 느껴야 했으니까…….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는 끝까지 읽어낸 기분 좋은 느낌도 있었지만, 절대 동화속의 달달한 이야기 같지 않은 내용에 씁쓸하기도 했다.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지만, 우리는 지금 그들과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좀 더 많은 부를 축적하고 싶고, 다른 이들이 나를 우러러 볼 수 있는 명예를 갖고 싶어 하고, 끝도 없을 욕망과 욕심을 채우고 싶어 하는 것.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며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는 그 상황을 이해하게 만들어버리려는 것도……. 많은 것을 갖기 위해 별 감각 없이 무분별하게 취했던 행동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아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고민에 빠져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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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가 왜 신데렐라인지는 아직도 한참을 더 생각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저자의 서문을 읽으면서도 도무지 짐작가지 않는 신데렐라를 펼쳐들고 며칠간 전투적으로 읽었습니다. 읽기 쉽지 않은 책을, 때론 한 줄 한 줄 손가락으로 짚어가면서 누구의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고, 한번도 마주친 적이 없는 이 주인공들을 이어주는 연결인물은 또 누구이고, 아무 관련도 없는 다양한 상황들이 그물처럼 얽혀있는 걸 파헤치며 그 모든걸 아우르며 연결할 수 있는 구멍을 발견해보리라는 결의를 다지며 읽었지만 맥락의 의미를 찾기보다는 그저 이야기의 흐름을 좇아갈 수 있었을뿐입니다. 왠지 신데렐라를 읽은 나 자신이 먼지를 뒤집어 쓴 재투성이가 되어 세상에 묻혀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많은 페이지를 읽은 후에야 글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이 다원적이고 반향적이며 불안정하다고 할 수 있는 이 소설의 형식은 우리가 현실과 허구를 넘나들면서도 균형을 잡을 수 있게 해 주며,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 대한 탐험과 애도는 우리의자화상을 그리는 걸로 이어집니다"(저자서문) 사실 '많은 페이지를 읽은 후에야 글이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이라는 말밖에 들어오지 않지만 그 뒷말 역시 책을 다 읽고 나면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처음 밑도 끝도 없이 등장하여 아무런 설명도 없이 현재 시점에서 네 명의 등장인물들이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지껄이기(첫느낌은 말 그대로 지껄임으로 느껴졌을뿐입니다) 시작했을 때는 당혹스러웠지만 많은 페이지를 넘기면서 차츰 그들의 특성과 관계성, 상징과 의미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책을 덮은 지금도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모호함이 있긴 하지만 아주 조금은 구분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대뜸 시작된 그들의 이야기가 페이지를 넘겨가면서 익숙하게 느껴지기 시작할 때쯤 '현실과 허구를 넘나들면서도 균형을 잡게 해'준다는 말에 동의를 할 수 있게 됩니다. 자본제 사회에서 더 첨예하게 드러나고 유지되는 계급성, 개인의 욕망뿐만 아니라 미디어의 음란성, 왜곡된 자화상, 좌파 지식인들의 실체, 폭력과 계층차별 등등 현실의 적나라한 세상을 바라보게 되며 그 현실의 어디쯤에 내가 있는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책을 읽으며 불편했던 느낌들은 단지 줄바꿈도 없이, 높낮이 없는 이야기를 듣는 것같은 빡빡함때문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 책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의미는 각자 다른 위치에 있는 네 명의 남자들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느끼는, 관음증이 포함된 성적인 욕망과 관계로만 그려지는 것 같아 불편한 느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책을 읽으며 불편한 마음이 들었던 것은 그 모든 것이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불편한 진실이라는 것은 노동착취와 기아와 빈곤에도 있지만, 자신을 중산층이라 생각하며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외면하고 있는 그 모든 욕망과 폭력과 위선과 사회적 모순에도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책에 대한 느낌을 정리해보기 위해 다시 한번 책을 훑어보고 있는데 문득, 처음의 그 불편함은 사라지고 이젠 오히려 몇몇 에피소드에 대해서는 안쓰러움이 느껴지기도 하고 있습니다. 순수함이 조금씩 사라져가는 그를 볼 때, 헛된 욕망을 좇아 무리하게 애쓰고 있는 그를 볼 때, 자신의 참모습을 바라보지 못하고 허황되고 왜곡된 자화상의 거울만을 바라보는 그를 볼 때.... 물론 마리 메르시에를 향한 로랑 달의 연정이 배가 사르르 아플때의 복통의 기운이, 그녀의 집에서 실제 복통을 느끼고 실수를 해버린 모습을 볼 때는 내가 더 참담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여전히 신데렐라는 왜 신데렐라인 것일까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저자 라인하르트 자신이면서 또한 허구적인 인물인 네명의 등장인물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어떠한 욕망을 갖고 있으며 그들에게 내재된 모순과 폭력성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봅니다. 나의 생각에 대한 궁금증과 답은 누구처럼 이 책을 읽을 당신의 몫으로 남겨둡니다. "철학적이거나 기계적인 내 시스템은 하나의 시선을 포함해. 가상의 시선, 이론적인 시선, 견고한 관점 말이야. 관찰자의 눈의 위치가 중요한 초상화처럼. 경우에 따라 이 관점은 팔레루아얄에 있는 느무르 카페의 테라스에 앉아있는 관찰자의 시선이 되기도 하지. ..... 그걸 신데렐라 시스템이라고 해. 이 시스템의 결과로 꽤 많은 수의 불안한 정신적 자화상이 형성되는 거지. ..... 이 시스템은 나의 축소판이기도 해. 이 시스템이 내가 누구인지를 알려주지....."(571-572) 신데렐라 이야기의 수많은 비유와 이 소설의 대칭점에 대한 설명이 길게 이어지고 있지만 책을 읽는 당신 스스로 찾아보라고 남겨둡니다. 이건 어쩌면 아직 나 스스로 라인하르트가 이야기하는 신데렐라 시스템과 그의 자화상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걸 감추기 위한 변명일지도 모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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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처음으로 발간되는 프랑스 소설가 에릭 라인하르트의 작품으로 616p의 다소 묵직한 분량과 빽빽한 글씨들로인해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조금 부담감을 느꼈다. 처음에는 줄바꿈도 없이 진행되는 내용과 구별되지 않는 등장인물들 때문에 한장 한장 읽어나가는 게 너무 어려웠는데 중반부를 넘어서면서부터는 제법 속도가 붙어 지루하지 않게 읽어나갔다.
이 책에는 4명의 남자가 등장한다. 각각의 남자가 주인공으로 전개되는 4개의 단편이 마구 뒤섞여 있는 느낌을 주면서 진행되다가 마지막에 가서야 하나의 큰 틀로 이어진다. 저자의 이름을 그대로 딴 에릭 라인하르트가 등장하고 3명의 남자 로랑 달, 파트리크 네프텔, 티에리 트로켈이 등장한다. 이들은 친분관계가 없는 서로 만난 적도 없는 인물들로 에릭 라인하르트는 가을을 좋아하고 중산층을 모델로 소설을 쓰는 소설가, 로랑 달은 증권 브로커였지만 모든 것을 뒤로하고 우연히 만난 여성을 찾아 떠나고, 파트리크 네프텔은 방 안에 틀어박혀 지내다 테러를 감행하게 되고, 티에리 트로켈은 섹스에 너무나 집착하는 인물이다. 읽다보면 얽혀 있는 조연 몇 명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것을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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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주문하기 전에, 커다란 구두로 된 표지가 눈길을 끌었다. 게다가 여자들의 로망이나 다름없는 [신데렐라]라는 제목도 한몫을 했음이 분명하다. 수 없이 쏟아지는 소설 속에서 책을 선택할 때면 작품 소개나 작가를 보게 된다.
사실 영화도 프랑스 영화는 지루하기 때문에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고, 소설 역시 프랑스 작가의 책을 많이 읽지는 않았다. 그래도 영화보다는 나은 듯 하지만. 프랑스는 내게 있어서도 언제나 꿈꾸는 곳이지만, 왠지 예술의 도시인 파리가 있는 나라답게 좀더 심오하고 형이상학적인 곳이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랑스 작가들의 쓴 그림책, 동화책은 정말 재미있다. 특히나 베아트리스 루에랑 다니엘 포세트는 내가 참 좋아하는 작가이다. 그들의 쓴 아이들의 모습은 귀엽고 사랑스럽다. 절대 모범생이 아니면서 그렇다고 엄청 말썽을 부리는 것도 아닌 일상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가 우리 아이를 떠올리게 한다.
처음엔 [신데렐라]라는 제목에 빠져 구입한 책인데, 헉! 이럴 수가. 한 권의 책이 자그마치 페이지가 600페이지가 넘는 것은 모 출판사에서 나온 [제인에어] 완역본 이후 처음이었던 것 같다. - 아, 이건 순전히 내 기억에 의한 것이고, 내가 읽은 책 중에서 해당하는 것이다. [나니아 연대기]야 말로 1,000페이지가 넘었지만, 난 7권짜리 [나니아 나라 이야기] 책을 구입해서 읽었기 때문이다. [제인에어]는 800페이지가 넘었지만, 어린시절에 읽은 책으로 인해 당연히 줄거리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지만, 이 책을 받고선 얼마나 당황스럽던지...
이왕이면 1,2권으로 나눠 출간해주시지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그렇게 되면 가격이 올라가리란 것은 충분히 예견되는 사실이다. 하지만 들고 다니기 심히 부담스럽고, 게다가 주방에서 식사 준비를 하는 중간 중간 읽기에도 손에 닿는 부분이 너무 두툼한 것은 사실이었다. 우리나라는 보통 긴 책이면 몇 권으로 나눠 출간을 하고, 우리들 역시 그런 책에 익숙해서 그런지
책을 제법 빨리 읽는지라 그래도 하루면 읽을 수 있겠지 싶었지만, 다른 얇은 책에 밀려서 혹은 바쁜 일과에 쫓겨서 장장 3일이란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처음엔 쉽지 않던 책인지라, 끝까지 읽었다는 사실에 뿌듯함이 앞선다.
리뷰를 쓰자니, 줄거리와 느낀점을 달랑 올리기도 힘들고, 꽤 분량이 많은 책에 더욱 주인공까지 한 사람이 아니라서 그런지 왠지 어렵다. 과연 이 책의 작가인 '에릭 라인하르트'는 자신까지 책 속 주인공 중 하나로 등장을 해서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일까?
일단 각각의 주인공부터 만나보자. 가장 먼저 앞서 언급한대로 작가이자 책 속 인물 중 하나인 '에릭 라인하르트' 이다. 책 속에서도 작가로 등장을 한다. 물론 책의 첫번째 등장하는 사람은 '에릭 라인하르트'가 아니다. 그는 '로랑 달'이라는 이름의 증권브로커이다. 무척 잘나가서 집안에는 가정부와 정원사까지 있다. 사회적 지위까지 꽤 높았던 로랑 달이었지만, 궁지에 몰리자 어디론가 떠날 준비를 한다.
그리고 '파트리크 네프텔' 역시 별나다. 아니 무섭다고 해야할까? 텔레비전 생방송 무대에서 유명인사들을 살해하려고 생각하고 있는 위험인물인 것이다. 이쯤 되면 테러리스트 수준이 아닌가! 처음 한국어판 저자 서문을 읽었을 때도 그러했고 파트리크 네프텔이 책 속에 본격적으로 등장했을 때에도 내 마음은 조마조마했다. 꼭 어린 아이를 물가에 내놓은 기분이랄까? 아니면 살얼음이 언제 깨질지 지켜보는 심정이라고 해야하는지...
문제는 이 네 명의 인물이 하나같이 정상적인 범주에서 살짝 아니 많이 벗어나는 것이다. [신데렐라]라는 제목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네 명의 남자 주인공들이 펼치는 삶이라니! 물론 왕자와 공주가 나오지 않으리라는 것은 분명했지만, 내가 너무 책 소개 글을 읽지 않고 주문한 것은 아니었는지 살짝 후회가 되기도 했다. 인간이란 원래 죄인이고 누군가는 법 없이도 살 수 있다고 했지만, 난 적당한 학습과 통제가 없이 사람들의 생활이 평화롭고 자유롭게 이뤄지리라 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 속에 등장하는 범상한 인물들의 숨겨진 욕망들이 아주 이상하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우리의 내면엔 아주 조금이라도 그런 부분이 숨어있지는 않을런지!
책을 마지막까지 읽고 또 한참 생각한 후에야 조금씩 정리가 되었다. 작가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 싶은 건은 무엇일까? 누구나 돈을 많이 갖고 싶고, 사회적 지위가 높으며, 편안한 삶은 즐기기 원한다. 하지만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여자들의 로망이 신데렐라의 구두를 신는 것이라면, 남자들의 로망은 무엇일까? 명예 아니면 권력? 자신의 처한 상황 때문에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도망하려는 로랑 달의 모습이 처음 이 책에 등장했을 때, 난 조금 놀랐다. 가짜 여권을 만들려고 생각하고, 아내와 두 딸의 모습조차 떠올리지 않고 오직 열 달 전 기차에서 만났던 미지의 여인만을 떠올리는 그의 모습.
왜 그는 자신의 소중한 가족이 아닌 그 여인을 떠올리는 것일지. 이미 로랑 달에게 진정한 가정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 의아해하며 책을 읽어나갔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요즘 세상은 옛날 우리 부모님 세대에선 상상할 수도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 과학의 발달과 문화 수준의 차이 뿐 아니라, 사람들의 기본적인 생각이나 성향이 그 때와 많이 달라진 것이다.
인터넷으로 인해, 점점 개인주의화되는 여러 요소로 인해 가속화되거나 인간의 본능을 억재하지 않고 표출하는 게 이유일 수도 있지만, 이대로 가게 된다면 우리 아이들이 우리 나이가 될 때는 사회가 또 어떻게 변하게 될지 걱정스럽다.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성 문화가 달라졌고,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스와핑. 인터넷 몇 번 클릭하면 쉽게 정보를 교환하고 원하는 것을 이루는 세상. 편리한 문명의 이기를 아름답게 쓰는 것이 아니라 교묘하게 이용하고 더 나쁜 행동으로 빠지게 되는 것이다.
얼마 전에 [고령화 가족] 책을 읽었다. 그 책 속에 나오는 등장인물 역시 범상치 않다. 평균 가족 나이를 상상을 초월하는 그 가족의 일원은 큰 형이나 여동생이나 엄마나 조카딸과 본인까지도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었으니까. 하지만 이 책은 더욱 더 그러하다. 현실에서 도피하듯 떠나는 로랑 달이나 스와핑 상대를 만나러 떠나는 티에리 트로켈이나 생방송 중에 토크쇼 출연자들을 죽이기 위해 떠나는 파트리크 네프텔. 그들은 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을까?
책을 읽는 내내 궁금했고,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물음표는 지금도 여전하다. 작가 서문에서 밝힌대로 만일 작가가 한국에 와서 혹시라도 독자와의 만남이 있다면 한번 참석해서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을 정도로 내겐 특별함을 준 책이다. 오래도록 읽는 만큼의 애정이 담겨서일런지, 아니면 아직도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 부분 때문인지는 몰라도 묘한 매력을 주는 [신데렐라] 서평을 끝낸 후에도 조금 더 시간을 내어 다시 한 번 읽어보련다.
두 번째 읽을 땐 작가의 의도를 그리고 등장인물들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보면서...
*** 마지막으로 여담 한 마디!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신데렐라] 이 책을 힐끔 보더니 내게 묻는다. "엄마, 오늘부터는 자기 전에 이 책 읽어줄거지?" 도대체 얘는 이 책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한 것일까 궁금해서 이렇게 대답했다. "이 책, 엄가가 읽는 건데? 어른 책이야." 하고 대답했더니 그 다음 말이 더 황당하다.
"왜? 제목이 신데렐라인데?" 아, 그렇구나! 우리 아이가 알고 있는 신데렐라는 어린 시절 친엄마를 잃고 계모와 두 언니들에게 온갖 구박을 받고 요정 할머니의 도움으로 왕자님의 파티에 몰래 가서 유리구두 한 짝을 잃어버린 그 동화. ㅋㅋ 설마 이렇게 두툼한 책을 보고 그렇게 생각할 줄은 몰랐는데, 오늘 아이 덕에 한없이 웃었다.
주인공이 남자 아이들이 나오는 책을 훨씬 좋아하던 전형적인 남자?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신데렐라 이야기가 은근히 좋았던 것일까!
며칠 동안 이 책 붙잡고 읽는데 꽤 오래 걸렸고, 게다가 서평 쓴다고 하루종일 인터넷 켜놓고 몇 줄 쓰다가 중간 중간 다른 일 하다가 그랬는데 아이의 말 한 마디에 힘든 게 날아가버렸다. 역시 아이의 환한 웃음과 천진한 마음은 엄마를 춤추게 하는 듯 하다. *^^*
나중에 10년 쯤 지나고 어른이 된다면 우리 아이에게 이 책을 주련다. 20대 청년이 된 우리 아이에게 비친 세상의 모습과 작품 속에 비친 세상은 어떨까 사뭇 기대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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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처음엔 에릭 라인하르트라는 작가를 잘 몰랐다. 고전 동화 신데렐라를 차용한 책 제목에서 시와 풍자를 버무린 어른들을 위한 현대 동화를 기대하였다. 그러나 막상 마주한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그런데도 실망감은 없었다. 오히려 예기치 못한 독서 경험이 깊은 인상을 남겼다. 첫 번째 놀라움은 네 개의 서로 다른 이야기가 교차하며 얽히는 구조였다. 두 번째는 제목에서 느껴지는 인상과 달리 등장인물이 전부 남성이라는 점이었다. 세 번째로는 그중 한 인물이 바로 작가 자신이라는 사실이 독자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이후 다른 인물들도 모두 작가가 투영한 다양한 삶의 모습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 소설의 출발점은 흥미롭기는 하지만 처음부터 쉽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작가는 자신을 등장인물로 삼고 그와 닮은 세 명의 분신, 즉 아바타를 교차해 등장시킨다. 그들은 작가가 다른 인생을 살았더라면 실제 그렇게 되었을 법한 인물들이다. 이 중에서도 특히 부유한 주식 중개인인 로랑 달이라는 캐릭터가 집중적으로 그려지며, 나머지 두 사람—자존감 낮은 백수 파트리크와 지질학자 티에리—는 상대적으로 뚜렷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지질학자는 거의 300쪽 가까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도 한다. 한 인물의 기억이 다른 인물에게 영향을 미치고, 그로 인해 인생이 재구성되는 장면들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저자는 전통적인 서사 구조를 벗어나 독특하고 대담한 실험을 감행한다. 각각의 이야기는 따로인 듯하면서도 결국 하나로 수렴되고, 독자는 책장 넘기는 손을 멈출 수 없게 된다. 작가가 작품 속에 자신을 드러낸 이유를 자기애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야말로 이 작품의 핵심이기도 하다. 신화나 특정 상황을 변주하며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방식은 신선하고 흥미롭다. 시간이 지날수록 장르나 형식은 중요하지 않게 되고,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의도가 점점 더 또렷하게 다가온다.
작가는 자신의 삶을 동화 속 신데렐라에 빗댄다. 비평가들의 혹평으로 인해 화려한 마차가 호박으로 변한 자신의 경험은, 평범한 환경에서 출발해 문학이라는 무대에 오르려 했던 이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신데렐라는 작가 자신이었고, 동시에 사회적 제약에 맞서 살아가는 많은 사람의 모습이기도 하다. 또한, 그는 신데렐라의 시선으로 자신이 되지 못했을지도 모를 삶들을 상상한다. 만약 23살 때 마고라는 매혹적인 아내를 만나지 않았다면, 독자들과 인연이 닿지 않았다면 그는 어떻게 되었을까. 자정이 가까워지고 소설이 끝나갈 무렵, 작가는 독자에게 종이와 잉크로 만든 유리구두를 남긴다. 언젠가 그 유리구두가 독자와 작가를 다시 만나게 할지도 모른다.
이 책은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등장인물이 수시로 바뀌고, 이름이나 설정이 겹쳐 혼란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혼란이 서서히 매혹으로 바뀌는 순간이 온다. 불편할 정도로 강렬하거나 음울한 장면도 있지만, 그 안에 담긴 냉소적인 유머와 세련된 문장은 끝까지 독자를 끌고 간다. 무엇보다도 이 작품의 문체는 빠르면서도 꼼꼼하고, 밀도가 높으며, 때로는 지나칠 만큼 서정적이고 풍자적이다. 간결함을 추구하는 부류의 작가와는 달리 작가는 반대로 모든 것을 복잡하게 표현한다. 그는 지나치게 정확한 디테일을 통해 거의 현실에 근접한 묘사를 완성한다. 이 덕분에 독자의 상상력이 끼어들 틈은 줄어들지만, 그 정밀함 자체가 주는 묘한 매력이 있다.
사랑과 섹스, 헤지펀드와 세계화, 가을의 분위기, 샴페인 사회주의자의 위선, 파리의 거리와 카페 테라스, 젊은 여성들의 시선처럼 사소해 보이는 일상적 요소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이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분석하고 기록하며, 독자가 그 세밀한 세계 속에 완전히 들어가도록 만든다. 등장인물들의 삶은 선택받지 못한 수많은 가능성의 흔적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실제로 존재했을지도 모른다고 느껴질 만큼 설득력 있게 묘사된다.
이 소설은 작가 개인의 경험을 넘어서 프랑스 사회의 경제 구조와 관습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을 담고 있다. 네 명의 등장인물을 통해 각기 다른 방식으로 무너지는 삶을 보여준다. 성공에 대한 집착 속에서 좌절을 겪고, 부모와 사회에 대한 분노로 파괴적인 선택을 하고, 성적인 일탈로 현실을 외면한다. 하지만 작가 본인은 사랑하는 사람과 독자들을 통해 그 파멸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하필 작품 이름을 신데렐라로 지었을까? 정해진 운명을 바꾸려는 의지와 그걸 가로막는 벽 사이의 싸움을 암시하기 위함이다. 작가 개인의 성적 강박과 집착도 은근히 드러난다. 사회의 폭력성과 부조리를 날카롭게 비판한 이 작품은, 때론 지루해 보일 수 있는 주식 중개인의 삶에 대한 서술조차도 광기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이 책은 몽상가 기질이 있고 감성적인, 특히 길고 지루하고 정신없는 텍스트에도 잘 견디는 인내심 있는 독자에게 추천하고 싶다. 아마 가을이라는 계절을 사랑하는 이라면 더욱더 잘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문학적 실험이자 매혹적인 혼돈 자체인 이 작품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잊을 수 없는 독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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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섹스 그리고 환상으로 이루어진 세상... 신데렐라를 꿈꾸는 현대인들의 슬픈 자화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