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은 당신의 귀에대고 큰소리로 외친다. "당신과 당신의 회사가 죽어가고 있다. 정신차려라!!" 변화와 혁신이라는 말이 절대선처럼 추앙받고 있는 세상이지만 그 실체는 미사여구와 구호속에 묻혀버리거나 왜곡된 방향으로 흘러가기가 일쑤이다. 이 책 「변화와 혁신의 원칙」(김찬배 지음·시대의창 펴냄) 역시 변화하라, 새롭게 변화하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 목소리가 무척 명확하고도 신랄하다는 것이 특징이다. 먼저 개인과 조직의 잘못된 관행들, 불필요한 관습 등을 구석구석 들춰내고 비난함으로써 혁신을 촉구한다. 항목을 세부적으로 나누고 리더쉽 수준, 시간관리 수준 등을 측정할 수 있는 진단표를 함께 넣는 등 성공, 아니 성공보다는 생존을 위한 지침서라는 느낌을 준다. 이 책의 부제는 'The Symptoms of Slow Death' 점진적 죽음의 증상이란 무엇인가? 개인에게 있어서는 생활 습관이나 의식 내부의 생활 양식, 기업에 있어서는 내부관행 등이 그것이 될 것이다. 일손부족이나 대리점 부도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위기상황에 대해서는 신속히 대처하겠지만 이런 점진적 증상들은 말기에 가서야 결정타를 날리기 때문에 신호를 보내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거대한 차원의 혁신이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 곳곳의 습관들을 신랄하게 들춰낸다. 평생직장도 연공서열도 사라져가는 지금의 세계에서 개인을 지켜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글쓴이는 '몸값'이라고 말한다. 몸값을 키워라.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계발을 게을리 하지말라. 바빠서 못한다는 것은 핑계, 회식 등으로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끊임없이 능력을 개발하고 실무경력을 쌓으라는 것이다. 회사의 차원으로 보자면 더욱 많은 잘못된 관례들을 들춰낼 수 있다. 선물비용이나 경조금으로 회사의 예산을 낭비하고 직원들이 회사물건을 마음대로 쓰는 것을 철저하게 금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접대비를 용돈으로 쓰는 관행이나 회사물건을 슬쩍 집으로 가져다 쓰는 행동 등도 마찬가지이다. 이 책의 지적사항들을 어쩌면 뻔한 이야기가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뻔하기에 한 편으론 감춰져있던 관행들을 명확하게 지적하고 있기에 직장인이라면 고개를 끄덕일만한 내용들이 많이 있다. 습관적인 회의, 시간이 잘 지켜지지 않는 회의로 회의하다 시간을 다 보내는 관행, 의사결정 과정에서 불필요하게 문서를 좋아하는 병폐, 회의나 결재 중에 길게 통화를 하는 등 다른 사람의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행위 등 업무시간의 무원칙한 사용에 비판의 칼을 들이댄다. '남 원망하지 말고 자신의 몸값을 열심히 올려라' '변화에 저항하는 관리자는 추방해라' 등 냉정하게 원칙을 말하는 이 책에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당신도 한 편으로는 글쓴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지 않은지. 지금은 '정글의 시대'라고들 하니까. |
| 한 목재회사에서 벌목공 채용공고를 냈다. 한 남자 스미스씨가 이력서를 제출했고 합격했다. 근무조건은 작업량에 따라 연봉을 달리 한다는 것이다. 스미스씨는 열심히 일했다. 쉬는 시간도 줄이고 도시락도 싸가지고 다니면서 열심히 일했다. 또 다른 한 남자 프랭크가 있었다. 스미스가 보기에 프랭크는 일하는 간간이 앉아서 휘파람도 불며 쉬곤 했다. 점심시간에는 일렁일렁 식당으로 가서 느긋하게 밥먹고 일도 가끔은 설렁설렁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작업량은 프랭크가 훨씬 많았다. 프랭크는 쉬는 틈틈이 도끼날을 면도날 같이 갈았다는 것이다. 스미스도 그날 이후로 도끼날을 갈았다. 물론 작업량이 더 늘었다. 그러던 어느날 관리사무소에서 스미스를 호출했다. 사무소에서 스미스는 해고통지서를 받았다. 스미스는 강력하게 항의했다. 열심히 일했는데 왜 해고냐고? 도대체 이유가 무엇이냐고? 관리사무소 소장이 창문을 열었다. 창밖을 보니 중장비와 전기톱소리가 요란했다. 중장비와 전기톱이 벌목장을 지배하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으니, 이제 도끼의 시대는 갔다는 것이다. 본 책 서두에 등장하는 우화다. 변화하고 혁신하지 않으면 스미스꼴이 되기 싶다. 변화와 혁신은 오늘날 직장인들의 호구지책 견지를 위한 최대의 화두로 떠올랐다. 무슨 땡중의 득도 성불을 위한 면벽수도 공안이라도 된 듯한 느낌이다. 나무아미타불 염불마냥 누구나 변화와 혁신을 웅얼웅얼 중얼중얼 거리고 있다. 문제는 변화와 혁신만 하면 뭐든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변화와 혁신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모두가 절박하게 곧 죽을 듯이 말하고 있다. 혁(革)도 가죽을 뜻하는 한자고 피(皮)도 가죽을 뜻하는 한자다. 그런데 피신(皮新)이라 하지 않고 혁신(革新)이라고 한다. 얼굴의 껍질은 피부라 하고 허리띠는 혁대라고 한다. 피는 천연 그대로의 피부를 말하고 혁은 그 피부를 홀랑 벗겨내어 가공한 것이란다. 혁신에는 생피부를 생짜로 벗겨내는 아픔이 따른다는 말이다. 어느 은행장인가 했다는 그 유명한 솔개 이야기와 같은 맥락이다. 솔개는 40년쯤을 살면 수명이 다되는데 스스로 깃털을 다 뽑아 날려버리고 부리와 발톱을 바위에 쪼고 갈아 뽑아버리면 새 부리와 새 발톱과 새 깃털이 돋아 난단다. 그러면 30년을 더 살수 있다고 한다. 혁신을 해야 살아 남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무위도식하며 천년만년을 산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질(質)의 문제가 남는다. 그러나 양이 쌓이면 질도 자연 높아질 것이다. 상투를 붙잡고 차라리 내 머리를 치라며 울부짖던 사람은 그 시대에는 의인이었지만 이 시대에서는 둘도 없는 바보다. 변화와 혁신이 이 시대에는 대세지만 다음 시대에서는 헛된 짓거리가 될지도 모른다. 물론 우리는 이 시대를 살고 있다. 방관자가 되거나 변화에 거역하라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바보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변화와 혁신이 호구지책에는 필수겠지만 우리가 결국 마지막에 의지하는 것은 변하지 않는 것들이다. 낡고 익숙하고 먼지 묻은 것들 말이다. 선지자의 말씀을 담은 오래된 경전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해는 떳다가 지며 그 떳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이키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그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