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주위에 죽은 사람이 좀있답니다 그래서 죽음에 민감하져.... 저같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죽고싶다보다는... 죽음을 직면하기 싫다가 더 직접적인 감정일겁니다 그런저에게... 이책은 죽음을 말하지 않습니다 죽음을 통해 ''삶''을 말하고자 하거든여 기본적으로 술술 읽히는 책이 좋은책일테져 책이란 읽혀져야만 존재의 이유가 있을테니깐여 저역시 그런책들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전 이책을 읽으면서 수없이 책장을 덮었습니다 너무 많이 울었거든여 새벽에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는데... 가슴은 따뜻해서.... 그런 감정을 느껴본지가 하도 오래되서... 책장을 덮고 가슴에 담긴 감정들을 만끽했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겁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죽을때 여지껏 살아온 나의 인생을 후회하면 어떻게 하나.... 후회하지 않는 삶이란 존재하지 않겠지만 적어도 죽을때 만큼은 많이 사랑하고 많이 사랑받았다고.... 그런 생각을 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더군여 눈으로....가 아닌 머리로....가 아닌 가슴으로 와 닿아버렸습니다 많이 감정적인 평일테지만... 저에게 이책은 가슴으로 밖에 평할수가 없네여 가슴으로 읽어버렸거든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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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3시. 그 날도 잠이
오지 않아, 잠든 아가 옆에서 뒤척거리고 있었다. 짓누르는
우울함에 정신은 흐리멍덩한데도, 눈은 말똥말똥. 그러다가
우연히 지대넓얕 ‘김도인’님(사랑합니다. 궁서체임)의
SNS에서 이 책을 보게 되었다. 그러다 문득 책장으로 눈길을
돌렸는데 이 책이 꽂혀 있었다. 우리 집에 있는지도 몰랐던 책이다. 내
책이 아니었기에 책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 그런데도 순간 정말 눈에 확! 들어왔다는 설명이 맞을 듯 하다. 그렇게 이 책은 인연적이게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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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적이거나 중요하지 않은 관계란 없습니다.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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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울 준비가 된 사람에게만 스승이 나타난다는 것을.
(p.70)
힘든 시기에 읽어
보기에 충분히 가치가 있는 책이다. 내가 이 책을 읽어야만 하기에 그런 식으로라도 만나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내가 읽을 준비가 되어 있는(심적, 정신적 방황시기), 어쩌면 읽어야만 하는 책이기에 그렇게 스승이, 이 책이 나타난 듯 하다. (평소라면 1도 관심 없을 제목에, 표지다.)
책을 읽는 데
오래 걸리진 않았지만, 곱씹는데 몇 주, 필사하는 데 몇
주, 서평 쓰는 데 몇 주가 걸렸다. 특히 필사는 내가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했고, 평소에 하던 필사양의 몇 배가 되는 양이어서 훨씬 더 오래 걸린 듯 하다. 얼른 서평을 쓰고 싶은 마음에도 불구하고, 더디게 더디게 진행될
수 밖에 없었다. 그만큼 공들여지고, 마음을 주고, 대화를 나누고, 의지하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은 죽음을
앞둔 이들을 마주하는 저자들이 그들로부터 인생에 있어서 우리가 알아야 하는, 명심해야 하는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많은 사회에서 터부시 되어 오고 있지만, 이들은 죽음을 마주한 이들이 혹은 죽음을 경험할 뻔한 이들이 어떻게 ‘삶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지를 이야기 해준다. 죽음으로 어두운
분위기를 예상한다면, 오히려 희망차고 밝아 보이는 미래를 그려내는 이 책에 놀랄지도 모른다. 오히려 유한한 삶이기에 우리는 더 값지게 여기고 잘 다듬어 살아나가야 한다.
크게 보면 이
책은 행복, 용서, 관계,
사랑, 상실, 배움 등등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이를 한 사람의 인생에서 어떻게 녹여낼지,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생각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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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필요한 배움 : 두려움, 자기 비난, 화, 용서에
대한 배움, 삶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배움, 사랑과 관계에
대한 배움, 놀이와 행보에 대한 배움(p.19 정리)
특히 이렇게 우리의 인생에서 배움이 반드시 필요하고, 그 배움을 통해
자신을 찾아, 자신만의 삶을 잘 살아낼 수 있다고 전한다. 이러한
내용은 어느 누구에게든 중요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평소에는 생각해보지 못할 그런 내용들이 많을지도 모른다. 나와 같이 절망 속에 허우적거리고 있다거나, 앞이 보이지 않는다거나, 무기력한 사람들 아니면 많은 것들에 분노하게 되는 사람들이라면 꼭 읽어 보는 편이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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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을 얻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의 인생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중략)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고 자기 자신과 더 평화롭게 지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p.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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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고, 다른 사람에게서도 그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하는 것, 이것이 바로 삶의 궁극적인 배움입니다.
(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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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나 무능력한 면들만 바라보면, 그 부분에
자신을 가두게 됩니다. “난 지금까지 부족했어. 하지만 이제부턴
더 나은 사람이 될거야.” 하고 스스로 말하면서 끝없이 ‘더
많은 것’을 추구하는 위험한 게임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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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대개 강한 자기 정체성을 이루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희망 사항에 신경을 쓰며, 착한 아이가 되어야 한다고 배웁니다. (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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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틀림없이 자기가 뭔가를 잘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다가 자신의 존재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믿게 됩니다. (p.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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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평생 동안 다른 이들에게 가혹했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게 가혹했습니다. (p.132)
난 지금 오롯이 나 자신이고 싶어하고 있다. 내가 나 스스로가 누구인지
궁금해졌고, 그걸 알기 위해서 몸부림치고 있는 것이 이 우울과 절망으로 점철되어 있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어둠이 있어야 빛이 있는 법. 내가 알고자 하는 것들을 풀어 내기
위해 시험 문제와 같은 어둠에 빠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그 동안 나 스스로가 나에게 얼마나
가혹했으며, 용서하지 않았고, 항상 분노하고 화 내는 것을
멈추지 않았음을 알았다. 그렇게 나는 더 많은 것을 추구하는 게임을 항상 하고 있었던 것이다. 화수분처럼 끝나지 않는 부족함을 채우기 위한 발버둥이었다.
나를 있는 그대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최대한 항상 나 자신을
그대로 보는 마음을 가지고, 부정적인 모습에도 솔직해지며 그걸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 물론 쉽지 않다. 아직도 잘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런 방향이 정해졌다는 것이다. 흘러가는 나의
시간이 무작정 몰아치는 태풍우가 되어 내리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방향으로 시내가 바다로 흘러가듯 움직이고
있다고 믿는다.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이 아니라 어제도 나는 나였고,
오늘도 오늘의 나이며, 내일도 결국은 그냥 내일의 나임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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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이 좋은 쪽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신뢰하는 것. 인내심을
갖는다는 것은 바로 신뢰하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p.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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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내일이 와서 상황이 바뀔 때까지는 행복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내일 행복이 가능하다면 오늘도 가능할 수 있습니다.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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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대부분 행복을 어떤 사건이 가져다주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행복은 우리 주위에서 진행되는 일과는 별 관계가 없는 마음의 상태입니다. (p.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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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마음, 정신, 영혼은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처음부터 프로그램되어 있고, 모든
선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누구나 행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올바른 장소에서 그것을 찾는 것입니다. (p.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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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찾는 것이 우리 삶의 목적이라고 믿는 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p.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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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행복을 결정하는 것은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닌,
바로 당신입니다. (p.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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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가 아니라, 일어난
일을 어떻게 다루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행복도 일어난 일을 우리가 어떻게 해석하고, 인식하고 그 전체를 어떤 마음 상태로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결정됩니다.
(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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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보다는 지금의 행복을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가
행복할 때는 지금 이 시간입니다. (p.244)
지금은 행복해질 시간이다. 내일도 아니고 1분 뒤도 아닌 바로 지금 나는 행복해져야 한다. 행복에 관련된 여러
책들을 보며 내가 행복하지 않다는데 왜 자꾸 행복을 강요하는 건가에 대해서 울분을 터트린 적이 있다. 내
안에서, 내가 기준이 된다면, 행복하지 못한 것도 다 내
책임이 되니 그 무능함을 들킨 것 같아 화가 났던 것이다. 하지만 내가 나 자신을 모르니 내 안에 행복이
있다고 아무리 이야기 해 본들 아무 소용이 없었던 것이다. 행복은 나 자신에 있는 게 맞을 것이다. 그렇게 태어났다고들 하니까. 하지만 내 안에 있는 행복을 찾기 위해
나 자신을 잘 생각해보고 알아보는 배움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게다가 내가 행복해지겠다고
마음을 먹었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 결국은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아야 한다. 하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나 자신의 탐구에서 행복이 발생할 기원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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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마지막 순간에 바다와 하늘과 별 또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마지막으로 한번 만 더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마십시오. 지금 그 들을 보러 가십시오.
(p.261)
우리는 우리의 마지막을 정할 수 없다. 물론 정하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마지막이 진정한 마지막이 아닐 수도 있다. 하루 하루를 열심히
살아낸 후에 값지게 맞이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마지막, 죽음이다. 그
때 내가 가치 있게 여기던 것들을 놓치지 않았기를, 행복하고 마땅히 받아들일 수 있는 죽음이 될 수
있도록 시간을 보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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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를 들춰 넘겨서부터 한참을 멈추게 됩니다. 누구나 예외없이 삶이라는 학교에 등록한 것이며, 수업시간이 하루 24시간인 학교에서 살아 있는 한 그 수업은 계속되고 이 학교의 과목은, 사랑, 관계, 상실, 두려움, 인내, 받아들임, 용서, 행복 등이라고 담담히 이야기해주고 있는 책입니다. 얼마전 류시화 작가의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 보지 않는다> 책을 (계기는 생각나지 않는데) 도서관에서 대여해 읽었습니다. 소장해야겠단 생각에 구매를 하며 어렸을때 읽었던 류시화 작가의 잠언 시집과 함께 <인생수업>을 구매하였는데 표지부터 뇌를 깨우는 구절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모든 만남과 일에는 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 책과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 보지 않는다>를 작년에 만났으면 깊이 공감하지 못하고 흘러 들었을거에요. 작년 12월부터 인생,사명,죽음,중심,중요한것,노년,나이 등에 대한 생각과 고찰이 많아졌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생활들과 어떻게 나이 들고 싶은지, 노년이 된 나를 상상하며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어떤걸 말하고 싶을지에 대한 생각들이 깊어졌어요. 그러던 참에 책장에 있던 (아,계기가 떠올랐네요) 류시화 작가의 <시로 납치하기> 책을 꺼내 다시 읽었는데 이분의 다른 책이 궁금해져서 도서관으로 갔죠. 그렇게 <인생 수업> 까지 만나게 된게 정말 인생의 큰 감사라고 생각이 되어집니다. 제가 좋았던, 감명깊었던 책이 누구에게나 다 좋을 수 없습니다. 사람마다 다 때가 다른것인데, 이미 그 때를 만난 분도 계시고, 저는 지금이 때인것 뿐이기 때문에 책선물이나 추천은 조심스럽게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리뷰도 잘 안 쓰긴 하는데 지금 쓰는 이 글은 다만 제게 흔적을 남기고 싶어서 일수도 있고 혹시라도 저와 같은 고민들을 하고 계신 분이 계시다면 이 책을 만날 수 있도록, 그 시간을 조금 앞당겨주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 남깁니다. 표지에서 한참,10페이지에서 또 한참. 책장을 쉬이 넘기지 못하는 책입니다. 완독하는데 한참 걸릴것 같아요. 구절구절이 나를 명상하게 하고, 꿈꾸게 하며, 위로하고, 자유롭게 합니다. 삶이 하나의 기회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잡고 싶고, 가지고 싶은 좋은 기회들을 위해 간절하게 바라고 기도한 경험들이 있는데 이 삶이, 정말정말 내가 바라고바라던 간절했던 기회였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며 아찔해졌습니다. 깨어있지 않은 의식속에서 그냥그냥 살아내고 있는건 아닌지, 삶이라는 큰 기회를 감사히 얻었음에도 소소하고 작은 기회들만 바라고 일희일비했던건 아닌지, 그리고 인생, 건강에 대한 감사함을 너무 표면적으로만 마음가짐 했던건 아닌지, 진정으로 내 삶에 대한 가치와 소중함에 대해 생각해본적이 없었던 것이 그 구절로 인해 머리가 띵 울리며 한참을 멈춰 명상케 했습니다. 감히 추천드립니다. 류시화 작가님의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 보지 않는다>책도 함께요. 그리고 인생책 만난것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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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처음 읽었을 때 우울증이 극한일 때 읽었던 지라, 상태가 많이 안 좋았다. 메모 곳곳에서 몹시 힘들었던 흔적이 보인다. 그런데 더 슬픈 건 내 흔적이 공감되면서 지금의 모습과 크게 다른 점이 없다는 것이었다. 여전히 난 잡히지 않았고, 안정되지 않았고, 슬픔에 젖어 있는 듯 하다. 그래도 2년 전 나보다 조금 더 크게 볼 수 있게 되었다. 각 문장의 의미도, 의도도 조금은 더 확실하게 이해한 듯 하다. 그래, 그간 많은 경험을 만들어가며 나를 찾아가고 있으니 달라지긴 했겠지.
여전히 문장 문장들이 마음에 스며들었다. 줄 친 부분에 형광펜으로 줄을 덧 치고,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부분들을 보물찾기 하듯 책을 읽었다. 주옥 같은 문장들이 너무 많아, 나중에 문서로 정리 하는데 시간이 어마무시하게 걸렸다. 처음에 읽었을 때 필사할 때도 엄청 시간이 오래 걸렸는데, 타이핑 치는 것도 만만치 않다. 몇 번 더 읽다 보면 책을 다 치게 되려나 싶을 정도로. 역시 인생책.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은 책. 올해가 가기 전에 꼭 원서로 읽어야겠다. 저자의 다른 책들도 반드시 다 읽어야겠다.
아무 생각 없이 살다가, 아이를 낳고 삶에 대해 처음으로 생각해본 듯 하다. 얼마나 아무 생각 없이 살았으면.. 이렇게 늦은 시기에 그 가치를 생각해보았을까?
- 배움을 얻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의 인생을 사는 것을 의미,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고 자기 자신과 더 평화롭게 지내는 것을 의미. (중략) 삶의 배움을 얻는다는 것은 삶을 완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삶을 받아들일 줄 알게 되는 것. (19)
내 인생을 내 인생으로 살지 못하고, 허공에 부유하는 시간으로 낭비하며 허송세월 보내버린 뒤에야 나는 발을 내렸다. 다른 사람과 세상에 대해 이해할 수 있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해 지금 노력하고 있으리라. 평화롭게 사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음을, 아둥바둥하며 분노하면서 살던 내 예전의 모습을 버리기 위해서는 그저 있는 그대로의 나의 삶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포레스트 검프>의 유명한 초콜릿 상자 대사. 개인적으로 그 대사보다 이 파이 이야기가 더 마음에 든다.
- 삶이란 마치 파이와 같지. 부모님께 한 조각, 사랑하는 사람에게 한 조각, 아이들에게 한 조각, 일에 한 조각. 그렇게 한 조각씩 떼어 주다 보면 삶이 끝날 때쯤엔 자신을 위한 파이를 한 조각도 남겨 두지 못한 사람도 있단다. 그리고 처음에 자신이 어떤 파이였는지조차 모르지. 난 내가 어떤 파이였는지 알고 있단다. 그것은 우리 각자가 알아내야 할 몫이지. 난 이제 내가 누구인지 알면서 이 생을 떠날 수 있단다. (36)
나눠주고 나눠주다 보니 내가 무슨 파이였는지조차 잊게 되는 사람들이 많다. 각자의 몫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 몫을 온전히 이해하고 잘 쓰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자신의 파이 조각을 잘 분배해서 잘 활용하고, 그 안에서 자신을 잃지 않고 잘 지킨 사람이야말로 잘 살았으며, 삶을 끝낼 때 미련 없이 떠날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러면 우린 우리의 파이를 잘 살피고 있을까? 어떤 파이이며, 어떤 부분을 떼 주고 있는지, 알고 있을까? 어쩌면 그걸 잘 알고 활용할 줄 아는 사람만이 삶을 온전히 잘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 인생의 중심은 나여야 한다. 중심이 다른 사람들로 가득 찬 사람들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잃어버린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가.
- 언제나 당신이 중심입니다. 당신이 자기 자신의 운명을 만들고 있습니다. 자기 앞에 놓인 문제에서 어떤 배움을 얻을 것인가가 당신이 할 일입니다. 상대방은 당신의 문제와 당신 자신을 들여다보도록 독특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중략) 상대방을 비난하기 전에 문제가 상대방에게 있는지, 관계에 있는지, 아니면 자기 자신에게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라는 것입니다. (74)
- 용서란 과거를 인정하고 보내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중략) 당신은 평생 동안 다른 이들에게 가혹했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게 가혹했습니다. (중략) 다른 사람들과 스스로를 용서할 때, 자기 비난은 더 이상 따라다니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기 비난이 아니라 용서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132)
문제가 나 자신일 수도 있다. 내 앞에 놓인 문제를 못 본 척 할 수도, 혹은 다른 이에게 떠넘기기도 한다. 나 자신이 문제가 된다면 회피할 일이 아니라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렇다고 그렇게 문제를 만들어 낸 나 자신에 대해 가혹할 필요는 없다. 나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실수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며, 그런 실수 한 번으로 큰 일이 생기진 않는다. 그 어떤 누구보다도 나 자신을 학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 또한 그런 부류로, 내가 내 자신을 망치고 있는 주된 문제였다. 현명하게 생각하지 못하고, 좋은 행동을 하지 못한 나 자신을 비난하며 학대한다. 거기서 끝날 일이 아니다. 문제를 직시했다면, 용서 해줄 수 있는 시간 또한 필요하다. 중요한 점은 오직 나 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만이 나 자신을 비난할 수 있듯이 나만이 나 자신을 용서해줄 수 있다. 나에겐 용서할 자격도, 용서 받을 자격도 있으니까.
내가 싫어하는 끝, 이별, 실패. 그 실패가 얼마나 슬프고 고통스러운지. 잔뜩 겁 먹고, 어떻게든 그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서 고군분투한다. 이별해본 사람만이 잘 이별할 수 있다고, 실패해본 사람만이 잘 실패할 수 있다고. 아무리 이야기 해도 들어먹질 못한다.
- 변화는 대개 지금까지의 문이 닫히는 것으로 시작되는데, 그 문들의 이름은 끝, 완성, 이별, 죽음 등입니다. 그런 다음 우리는 불안정한 시기 속으로 들어갑니다. 이 시기는 닫혀진 문을 보고 슬퍼하면서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불확실한 시기입니다. 이 시기가 가장 힘이 드는 때입니다. 그러나 더 이상 견디기 힘들다고 느끼는 바로 그 때 새로운 일이 일어납니다. 새로운 시작의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변화에 맞서 싸운다면 평생 싸움만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변화를 껴안는 방법, 아니면 적어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발견해야만 합니다. (136)
변화의 시작임을 어찌 그리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일까. 지금 겪고 있는 그 상황이 전부 내게 일어나야만 하는 일임을, 그렇게 나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인데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쉽게 마음을 주지 않는 것인가? 그 누구보다 다른 이들에게 편한 사람이라 생각했던 나 자신을 난 얼마나 잘못 이해하고 있었던 것인가? 시작하면 끝이 있다는 사실을 본능이 너무나 잘 알아 시작 자체를 하지 않으려고 하는 성향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힘들었다. 계속 힘들기만 했다. 변화와 싸우기만 하고 있었다. 변하지 않겠다고 구질 구질하게 싸우고 있었다. 변화의 한 과정임을 알고 시작과 끝이 있음이 당연하고, 끝이 끝이 아니라는 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수련이 더 필요하다.
요즘 최대 관심사는 이놈의 폰 중독을 어떻게 고칠 것인가. 특히 아이와 함께 하고 있을 때라도 폰을 내려놓을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 삶의 마지막 순간에 바다와 하늘과 별 또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마십시오. 지금 그들을 보러 가십시오. (261)
폰을 내려다보는 내 모습만을 아이가 기억하게 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배워 어느 순간 나도 아이의 폰을 보는 모습만 보게 될까 두렵다. 지금 당장 우리 아이의 눈동자를 바라보고 싶다. 그 안에 내가 담겨 있음을 확인하고, 내 눈 안에 우리 아이만이 살아 움직임을 알게 하고 싶다. 내 마지막은 그 때 가서 생각하자. 지금 너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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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다 읽은 후 독후감을 어떻게 작성해야 할지 고민의 시간이 꽤 길었다. 모든 내용이 명문이라 간단히 요약하는 것이 불가능할 뿐 아니라 이 책에 대한 나의 감상은 어떤 식으로든 사족에 불과하다. 그러나 유익하고 훌륭한 이 책을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읽기 바라는 내 간절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전달되길 소망하며 펜을 들었다.
약 5년 전부터 ‘죽음학(thanatology)’을 천착하면서 만난 여러 책에서 거의 빠짐없이 소개되는 인물이 바로 이 책의 공동저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였다. 정신과 의사로서 평생 인간의 죽음에 대해 연구했고, 의료계에서 세계 최초로 호스피스 운동을 전개했다. 하여 이 책을 읽는 것은 나에게 필연이었는데, 책장에 꽂혀있는 수많은 책 중 이 책을 먼저 선택한 계기는 책 뒷면에 있는 명쾌한 문구, “생의 마지막 순간에 간절히 원하게 될 것, 그것을 지금 하라.”가 뇌리에 박혔기 때문이다. 그 워딩은 나에게 “죽기 전에 읽기를 간절히 원하게 될 책, 그 책을 지금 읽어라.”라고 응용되었다. 『인생 수업』. 이 대담한 제목을 보라.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살아가는 동안 배워야 할 것이 수없이 많겠지만 ‘진짜’ 배워야 할 것, 하지만 죽음을 앞두고서야 깨닫는 것. 또는 많은 이들이 죽을 때까지 배우지 못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꼭 배워야 할 ‘인생 수업’ 아니겠는가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와 그녀의 제자이자 호스피스 운동의 또 다른 선구자 ‘데이비드 케슬러’는 죽음을 앞둔 사람들 수백 명과 인터뷰하고 상담한 내용에 개인적 경험과 깨달음을 덧붙여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관한 통찰과 지혜를 이 책을 통해 전해준다. 그들이 제시하는 바는 결코 ‘기술’이 아니다. 우리 안에 있어 언제든 발현할 수 있고, 변화할 수 있는 ‘태도’이자 ‘자세’이다. 자아, 사랑, 관계, 상실과 이별, 감사, 죄의식, 시간과 순간, 두려움, 분노, 놀이, 인내와 받아들임(순응), 용서, 행복. 몇 가지 키워드로 소개하기엔 이 책은 너무나 깊고, 넓고, 아름답다. 철학, 윤리, 처세, 자기 계발 등 내가 아는 그 어떤 분류에도 포함되지 않고 오히려 이 모든 것들을 포괄한다.
자기 인생과 책을 사랑하는 이들이여. 이 책을 꼭 읽어라. 인생을 살아가면서 반드시 수강해야 할 수업이다. 수업을 받은 나는 이제 숙제를 해야겠다. ‘언젠가 죽는다.’라는 사실을 실존적으로 인식하는 자에게 ‘죽음’은 가능성이 아니라 확실성이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 얼마 남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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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만 놓고 보았을 때, 명상 관련 내용인 줄 알았다. 목차를 보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는 내용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저자에 대한 소개를 보고 죽음을 앞둔 사람들에게서 진정한 삶을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배운 것을 실천하고 다른 이들에게 알린 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책의 인쇄 부수를 확인해 보니 100쇄가 넘게 책이 발간되었다. 그만큼 많은 이들이 읽어 간 책임을 알 수 있었다.
책 속에서 말한다. 사람들이 진정한 삶을 살아갈 때는 죽음을 앞두었을 때라고. 우리는 죽음의 날이 알지 못하므로, 그래서 막연한 오늘을 살아간다. 그러나 죽음의 날이 정해진다면...
저자는 말한다. 삶은 소중하다. 그러니 오늘 진정으로 존재하는 삶을 살라고. 용서하고 사랑하라고. 그것이 진정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아침에 일어나 한 줌의 햇빛을 바라볼 수 있다는 행복. 지금 이렇게 손가락을 움직여 글을 쓸 수 있다는 것. 매사가 행복이다.
이 책은 이런 기쁨을 찾도록 도와주었다. 두고두고 몇 번 더 읽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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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이틀동안 읽었습니다. 저는 읽으면서 살짝 지루함을 느낀 책입니다. 죽음을 앞둔사람들에 인생을 배우는,,,,??? 많은 예시들이 있어서 좋았던 부분도있지만 저는 읽으면서 살짝 피곤함이.....ㅠㅠ 좋은말들, 인생에관해 다시한번 생각을 해보게되는 계기를 갖는 말들도 많지만 많은 공감은못했습니다. 호불호가 많이 갈릴것같은 책,..,, 저하고는 안맞았어요ㅠ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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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때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는 경우는 결혼식이었다. 친구들을 축하해주고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옛날 이야기하며 즐겁게 보냈던 기억이 있다. 30대가 되니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는경우는 서로의 아이가 태어났을 때, 혹은 돌잔치 등의 일로 만나는 경우가 많았다. 결혼한 친구와 결혼 하지 않은 친구들이 섞여 더 젊었을 때를 기억하며 육아, 결혼생활등의 이야기가 제일 많았던 듯 하다. 40대가 되니 이제는 좋은 소식뿐만 아니라 누군가의 죽음 앞에 친구들을 종종 만나곤 한다. 나이가 드니 죽음도 점점 가까워 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작년 봄 나와 가까운 사람과 영원한 이별을 했다. 너무 갑자기라 일어난 일이라 꿈 같던 그 헤어짐. 헤어지고 나서 마지막 영정사진에 인사를 건네며 미안함이 느껴졌던 건 왜일까? 언젠가 내가 맞이할 더 가까운 사람과의 이별을 생각하게되었고, 지금 내옆에 있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다시한번 느끼게 되었던 순간들이었다. 이제는 만날 수 없는 나와 헤어진 사람을 생각하면 마음이 먹먹해진다. 자신보다는 주변 사람을 더 챙기며 살았던 사람이어서, 힘든 인생을 살던 사람이어서 그의 마지막이 외로웠을 것 같아서이다. 이 책은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이 가득하다. 죽음을 앞 두고 내가 느끼게될 감정들을 미리 그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알려주고 있다. 넉넉하지 않은 가정에서의 둘째딸, 두아이의 엄마이자 한 남자의 아내, 한 집안의 유일한 며느리, 내가 돌봐야할 사람들이 있는 직장에서의 역할. 이런 것들을 잘 해야 한다고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말아야 한다는 ‘ 해야만 하는 ’ 것들 속에서 살고 있다. 나는 과연 죽음 앞에서 ‘해야만 하는’ 것들에 대한 후회를 할까? 좀 더 내가 될 수 있도록 나를 보살펴주고 내가 기분 좋을 수 있도록 노려하고, 나를 사랑하는 일들로 삶을 채워야 했었다고 후회하진 않을까? 후회없는 삶을 위해서 언제 올지 모르는 죽음앞에서 ‘ 하고 싶은’ 것들을 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인생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고 이 삶을 누리기 위해 이곳에 왔다는 생각으로 즐겁게 인생을 살아야 한다. 언젠가 내가 맞을 죽음 앞에 후회하지 않도록 미래의 행복보다는 지금의 행복을 찾아야 한다.
나의 소중한 삶. 한순간한순간 모두 소중하다 모든 날을 최대한으로 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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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만에 읽고 코로나에 마음이 비워있었는데.. 마음도 채워지고 이책을 연말에 읽게 된 것을 정말 감사하게 되었다.. 2020년 죽음준비교육을 온라인으로 받고 읽게된 책... 누구나 한번은 읽어 보시길 강추합니다.. 언제든 이별해야 하는 우리.. 준비한 이별과 준비되어 있지 않은 이별은 고통입니다.. 류시화선생님께 감사한 마음입니다.. 지인들에게 선물하고 공유하고 있습니다.., 벌써 한 분은 읽으시고... 연락을 주셨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좋은책 알려주시고 가족의 소중함과 지금... 지금을 소중하게 여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도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지금을 소중하게 감사하게 하여 주셔서요!' 2020년 마무리 잘 할 수 있게 해준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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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참 쉽게 다친다. 수만 번도 더 지나다닌 내 방 책상 모서리에 옆구리를 부딪혀 멍이 들고, 식탁 의자에 발을 찍혀 살갗이 벗겨지고, 현관문 틈에서 손을 빼기도 전에 문을 닫아 버려 손가락에 상처를 남기고, 수백 번은 더 오르락내리락 한 계단을 헛딛어 발목이 꺾이고 만다. 몸과 머리의 연동에 오류가 있는 사람인가. 이것이 나란 주인공의 소설이라면, 주인공 캐릭터 설정을 바꾸고 싶을 정도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매일 하루에 몇 번씩 연고를 발라도 쓰라리고 진물만 나던 상처가 어느새 아물었다. 새 살이 돋고 희미한 한 줄기 선만 남았다. 몸에 난 상처는 이렇게 아무는데 내 삶에 난 상처는 어떻게 해야 아무는 것일까.
# 삶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배움은 무엇인가
이 책은 ‘삶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배움은 무엇인가’로 시작한다. 내 삶에 난 상처들을 들여다본다. 그 상처들의 꼬리를 따라가다보니 그 끝에는 내가 나를 진정으로 사랑할 줄 모른다는 사실에 이른다. 만약 어떤 신적인 존재가 나타나 딱 한 가지를 알려주겠다고 말한다면 나는 서슴없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란 사람과 사이좋게 지내는 법을 알려달라고.
나는 내가 가장 어렵고 불편하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리고 어쩌면 앞으로도 그럴지 모른다. 내 자신을 나 스스로가 진정으로 아껴주지 못하기에 때때로 답답하고 외롭고 슬프고 허전하다. 나와 친하지 못해서 나 이외의 무언가로 이 구멍을 메우려 하기도 한다. 가끔은 좋아하는 사람들 덕분에 구멍이 느껴지지 않지만 결국 나는 안다. 절대로 나 이외에는 메울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가 배워야 할 과목들은 사랑, 관계, 상실, 두려움, 인내, 받아들임, 용서, 행복 등이다. 나아가 이 수업은 궁극적으로는 나 자신이 진정 누구인가 하는 깨달음으로 우리를 데리고 같다. 그것이 이 수업의 완성이다.”(p10)
삶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배움이 무엇인가에 대해 죽음을 앞둔 이들을 통해 살펴본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에게 필요한 배움은 결국 누구에게나 같다. 그것은 두려움, 자기 비난, 화, 용서, 받아들임, 사랑, 관계, 놀이, 행복에 대한 배움이라고 덧붙인다. 그러나 이러한 배움들이 가리키는 것은 오직 하나다.
“배움을 얻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의 인생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 삶의 배움을 얻는다는 것은 삶을 완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삶을 받아들일 줄 알게 되는 것입니다.”(p19)
즉 자기 자신으로 살기 위해 배워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나는 나로 태어났지만 어른이 되어가며 내가 아닌 누군가가 되어 간다. 그리고 우리는 생의 어느 시점에서 이렇게 묻곤 한다. “이것이 진정 내가 원하는 삶일까?(p10)”라고. 나 자신으로 살지 않은 삶은 살아있는 것이 아니며 단지 ‘아직 죽지 않은 사람’일 뿐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살아 있는 삶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 사랑
사랑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사랑을 어렵게 하는가. 해변의 조개를 줍듯 모아둔 책 속 구절들을 하나하나 읽어 본다. 읽고 생각하는 동안 내 것이 된 문장도 있지만 도저히 마음속 서랍에 넣을 수 없는 크기의 문장들도 만난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 주위에 언제나 있는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모든 장벽을 없애는 것입니다.”(p52)
사랑에 대한 저자의 수많은 표현 모두 마음에 흔적을 남겼지만 그중에서도 사랑이란 경계를 허무는 것이라는 이 말에 가장 오래 머물게 된다. 쉽게 소화되지 못한 문장이자 쉽게 소화하고 싶지 않은 문장이기도 하다.
나 자신에 대한 경계, 타인에 대한 경계, 이 경계를 허물 때 비로소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될 것만 같다. 나는 나로 태어난다. 아기일 때는 아기인 척 연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감에 따라, 우리는 ‘나’라는 사람의 연기를 하게 된다. 부모가 원하는 나, 이상 속의 나, 사회가 존경하는 나, 그런 나들만 남고 진짜 나는 사라진다. 그렇게 우리는 자신 안에 수많은 선을 긋는다. 그 선들이 이어져 원이 되고 사각형이 되고 오각형이 되어 틀이 만들어지고 이 틀은 경계가 된다. 그렇게 나란 사람이 만들어진다. 이 틀 속에 갇힌 나는 어쩔 수 없이 때때로 숨이 막히고 외롭고 허전함을 느끼게 된다.
이것은 타인에 대한 사랑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분명 나는 그를 사랑하고 있다고 믿지만 진짜 사랑은 모른다. 내가 가진 사랑은 어린 시절의 흔적일 뿐이다. 사랑은 주는 것임을 머리는 알지만 두려움에 사랑을 주기보다는 받기만을 바라게 된다. 사랑을 움켜쥐고 있기에 불안하고 불안하기에 내가 그린 그림 안에 그를 넣어야 안심이 된다. 이렇게 타인과의 사랑에 있어서도 선이 생기고 선은 틀을 만들고 틀이 모여 경계가 된다.
“사랑하는 관계에서 자신이 미리 갖고 있는 기준을 버릴 때, 누구를 얼마나 오래 사랑할 것인가의 문제에서도 해방될 수 있습니다. 신에게 선물 받은 위대한 사랑을 찾기 위해서는 이런 한계들을 뛰어넘어야 합니다.”(p80)
내 안에 생긴 경계, 나와 그 사이에 생긴 경계. 이 경계는 한계가 되고 규정이 되고 불가능이 되며 구별이 된다. 이 경계를 뛰어넘지 못하는 한, 나는 자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고 나는 그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다. 경계는 뛰어넘기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나는 기억해야 한다.
# 관계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할 때 이보다 더 적절한 비유는 보지 못했다. 그것은 김애란의 <바깥은 여름> 중 ‘침묵의 미래’라는 단편이다. 이 단편 속 주인공은 소수언어박물관의 화자들이다. 그들은 모두 이 세계에서 단 하나뿐인 언어를 구사하는 마지막 화자들이며 오래전에 버려진 존재이며 말에 대한 지독한 향수병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다. 관계를 생각하면 나는 언제나 김애란 작가의 이 단편이 떠오른다.
우리는 모두 마지막 화자들이다. 나의 언어를 이해하는 사람도 없으며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도 이 세상에는 없다. 우리에게 모어는 호흡이고 생각이고 문신이라서 안하고 싶다고 그만둘 수도 없다. 우리는 언어와 헤어지는 데 실패했다. 말을 안 해도 외롭고 말을 하면 더 외로운 날들이 이어졌다. 그녀의 이런 표현에 감탄하면서도 한편 마음이 아리다. 그녀의 모어와 나의 모어는 서로 다르지만 그럼에도 나는 김애란 작가의 호흡이 담긴 그녀의 책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때로 텅 빈 공간이 되라. 다른 사람이 지나다니게 하라. 자신 안에서 세계의 영혼을 발견하고, 인간 안에서 신의 정신을 보라. 그것이 진정한 관계이다.”(p61)
우리는 타인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으며 나를 이해시킬 수도 없다. 우리는 서로를 변화시킬 수 없다. 만약 변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자기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서다. 이 사실을, 이 한계를 우리는 인정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이 책의 저자가 말하듯 다른 모어의 상대를 있는 그대로 수용할 수밖에 없다. 텅 빈 공간이 되어 그가 내 안에서 자신의 모습 그대로 머물 수 있게 해야 하며, 나 또한 그 안에서 나 그대로 머물 수 있을 때, 그럴 때 우리의 진정한 관계는 성립이 된다.
# 상실
상실에 대해 우리가 기억해야 할 중요한 두 가지가 있다. 그것은 ‘결국에는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잃게 된다’는 것과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다는 내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모든 것들과 작별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결국엔 자신의 내면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무언가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p94)
나는 누구인가. 나는 나를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나의 재산도 학력도 경력도 명예도 재능도 내가 될 수 없다. 내가 가진 소유물은 내가 아니다. 사실 나는 아직 이 말의 의미를 가슴으로는 이해하지 못했다. 모든 것이 사라져도 영원히 사라지지 않은 무언가. 그것이 무엇인지 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사라져도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무언가. 나에게 있어 그것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글은 나에게 있어 육신이 없는 영혼의 공간이다. 내 글이 뛰노는 곳에는 이름도 없고 학력도 경력도 재산도 아무것도 없다. 이 글 안에는 오직 나의 이야기만이 들어 있다. 각 생의 시점에서 만난 사람과, 그 시점에서 읽은 책, 그때의 숙성되지 못한 인생의 고민들이 서툴게 뒤섞여 있다. 글 속의 나는 목소리만 있고 생각만 있고 추억만 있다. 몇 년 전 글을 읽으며 그때의 나를 만난다. 변함없는 나도 있고 변한 나도 있다. 만약 지금 내가 당연한 듯 가지고 있는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잃게 되어 종국에는 모든 것이 사라진다 할지라도, 그 글 속의 나는 영원히 나로 살고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을 잃어도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그 무언가가 무엇이냐고 만약 지금의 나에게 묻는다면 글이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이 글 또한 영원하지 않음을 안다. 어느 날 갑자기 글을 쓸 수 없는 날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욕심에 쓸 수 없을 수도 있고 또는 쓸 수 있는 행위 자체를 할 수 없는 육신이 될 수도 있다. 이마저 사라진다면 나는 결국 무엇으로 나를 표현할 수 있을까. 나는 무엇으로 내가 살아있음을 알 수 있을까.
# 두려움
두려움이 무엇인지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음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된다. 두려움은 우리를 지켜 주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두려움은 사랑과 행복, 자기 존재의 확인 등 모든 것을 가로막는 그림자이기도 하다. 두려움은 종종 분노, 불안 등의 다른 옷을 입고 있어서 쉽게 알아보지 못한다. 그래서 두려움을 알고 있다고 믿기 쉽고 당연하게 필요한 감정이라고 오해하기 쉽다.
“우리의 내면에는 (...) 사랑 또는 두려움만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입니다. 그 두 가지 감정을 동시에 느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 두려움이 있는 곳에 사랑이 설 자리는 없습니다. (...) 둘 중 어느 쪽 편에 설 것인지 결정해야만 합니다. 그곳에 중립지대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적극적으로 사랑의 감정을 선택하지 않으면 당신은 자신 안에서 두려움이나 두려움에서 비롯된 부정적인 감정을 발견하게 됩니다.”(p159)
우리에게는 수많은 감정이 있지만 그 근원에 있는 것은 사랑과 두려움 두 가지뿐이다. 사랑인지 두려움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설탕 반, 소금 반처럼 사랑과 두려움을 적절히 넣은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의 두려움은 가끔 걱정이나 분노, 방어 등의 가면을 쓰고 누군가를 향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 근원을 파헤쳐보면 밑바닥에 있는 것은 두려움이다.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 다른 감정들로 덧칠한 것일 뿐이다. 두려움은 항상 과거에 일어난 어떤 경험이나 일에 근거를 두고 있다. 따라서 살아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두려움을 이겨내야 한다. 두려움에 맞설 용기가 필요하다.
나에게는 오랜 삶의 숙제가 있다.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 삶의 의미를 아는 것이 그것이다. 나 자신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한다면 타인 또한 제대로 사랑할 수 없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과거에 살지 않을 것이며 오지 않은 미래를 위해 오늘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과 타인을 사랑하는 것, 그리고 삶을 살아 있는 자로 사는 것, 이 모든 것은 하나로 이어져 있다. 그래서 이것은 중요한 삶의 숙제가 된다. 나는 이 숙제를 풀기 위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를 고민한다. 글을 읽고 쓰는 것, 이것이 지금의 내가 아는 최선의 방법이다.
# 인내
언제부터였을까. 어떤 순간 때문이었을까. 어릴 때부터 나는 나를 보며 인내와 끈기가 부족한 사람이란 생각을 해왔다. 입버릇처럼 나에게는 인내가 부족해, 라고 말하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인내가 가장 어렵다. 늘 삶은 나를 기다리라고 한다. 바로 주는 것이 없다. 나의 단 하나의 소원은 언제나 보류다. 보류인지 불가능인지 이 또한 삶은 알려주지 않기에 낡아빠지고 헤져버린 소원을 주머니 속에 꽁꽁 숨겨둔채 버리지도 못한다. 그런 나에게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인내가 주는 한 가지 배움은 원하는 것을 언제나 얻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원하지만 한동안 얻을 수 없는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설령 자신이 생각한 것과는 다른 방식일지라도 결국에는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얻게 될 것입니다.”(p202)
인내의 중요한 비밀은 “다른 방식일지라도 결국에는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얻게 된다”는 점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와 다만 그것은 다른 방식이라는 것. 바로 여기에 삶에 대한 믿음에 들어 간다. 나에게 인내가 부족했던 이유는 나에게는 이러한 삶에 대한 믿음이 없었기 때문임을 이제야 비로소 알게 된다.
“인내심의 열쇠는 모든 것이 잘 되리라는 믿음, 인간이 모르는 큰 계획이 존재한다는 신뢰를 키우는 데 있습니다.”(p203)
인내란 단지 고통스럽게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겨울 너머에 봄이 기다리고 있음을 믿으며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바꾸고 개선해야 하는 것도 있겠지만 가만히 내버려 두어도 되는 것, 어떤 일이 일어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삶이라는 커다란 시선에서 보면 내가 생각한 것이 반드시 정답이 아닐 수 있다는 것. 그것을 아는 것이 인내다.
# 받아들임
받아들임이 무엇인가를 처음으로 나에게 알려준 것은 알렉상드르 졸리앙의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이 나를 강하게 만든다>라는 책이다. 그에게 있어 받아들임, 내려놓음은 누구보다 중요한 인생의 숙제였다. 그는 선천적 뇌성마비로 세 살부터 17년간이나 요양시설에서 생활에야만 했고 매 순간 자신의 장애, 결핍과 동거하는 법을 배워야만 했다. 그에 의하면 내려놓음이란 무엇이든 확정하지 말되, 그렇다고 부정하지도 않는 자세라고 한다. 또한 내려놓는 삶의 태도란 자신의 나약함을 물리쳐야 할 적으로 여기지 않는 자세라고도 표현한다. 또한 치유가 아니더라도 그 상처와 더불어 살아갈 수 있음을 깨닫는 것이 받아들임이라고 그는 말한다.
많은 이들이 말하는 받아들임에 대해 읽기는 했지만 사실 아직 나는 받아들임이 진정으로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모든 진리는 자신이 직접 체험함으로써 알 수 있으며 그 진리는 말로 표현될 때 더 이상 진리가 아니게 되며 그것은 그저 한 사람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어떤 이는 말했다. 나는 나의 삶을 통해 받아들임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밖에 없다. 내 삶에서 받아들임이 무엇인지, 내 삶이 나에게 알려줄 그때, 그 순간을 위해, 지금은 이렇게 다양한 비유를 통해 추측할 수밖에 없다.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왜 일어나는지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 이유를 알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삶은 우리에게 겸허함을 요구합니다. 삶은 신비이며, 때가 되면 모든 것이 밝혀질 것입니다.”(p215)
받아들임이란 싸움을 멈추는 것이고 줄다리기 게임을 끝내는 것이라고 이 책의 저자는 표현한다.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 내 계획대로 하고자 하는 것이 강인함은 아니며, 상황에 자신을 맡기는 것 또한 나약함이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받아들임은 포기가 아니다. 선척적 뇌성마비로 육신의 자유가 없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삶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병에 걸린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 것, 그것이 받아들임이다. 어떤 상황 하에서도 우리에게는 선택권이 있음을 아는 것, 그것이 참된 받아들임이다. 그럼 언제가 받아들여야 할 때인가.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무엇인가 바꿔야 하고 당신에게 그것을 바꿀 힘이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합니다. 하지만 바꿀 수 없는 상황을 인정하는 방법도 배워야 합니다. (...) 평화를 느끼지 못한다면, 삶에 순응할 때입니다. 인생이 마음먹은 대로 풀리지 않는다면, 받아들일 때입니다.”(p223)
받아들일 때와 행동해야 하는 때를 아는 지혜. 이 지혜가 우리에게는, 나에게는 필요하다. 받아들이기로 마음 먹은 후에는 삶이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다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하면 된다.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삶은 우리 인간이 생각할 수 없을 만큼 크고 신비하다. 작은 나의 생각으로 찾아낸 답이 유일한 정답이 아니라는 사실을, 삶의 흐름에 자신을 놓을 줄 아는 것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배움이라는 사실을 나는 알아야 한다.
# 내가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인가
삶을 위해 우리가 배워야 하는 것들은 참 많다. 하지만 그것은 중고등학교 시간표처럼 누군가가 대신 채워 넣은 수업시간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자신에게 필요한 배움이 무엇인가를 스스로 깨닫고 찾아야 한다. 나에게 이 책은 인생의 책이다. 삶의 문제를 만날 때마다 언제든 꺼내어 보게 되는 책이다. 생의 순간마다 삶이 나에게 던지는 숙제는 다르기 때문에 나에게는 인생의 책이다.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고, 다른 사람에게서도 그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하는 것, 이것이 바로 삶의 궁극적인 배움입니다.”(p22)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삶의 배움은 사랑, 관계, 두려움, 상실, 인내, 받아들임이다. 이 배움을 통해 나는 나로 살고 싶다. 삶의 의미를 알고 싶다. 내 곁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싶다. 그리고 삶의 어두운 시간에도 나는 성장하고 있음을 믿고 기다리고 싶다. 이를 통해 살아있는 사람으로 현재를 살고 싶다. 즉 나는 나로 ‘존재하는 법’을 알고 싶다. 수많은 ‘~싶다’를 품은 나에게 저자는 또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두 살 된 아이를 잃은 부모는 그 아이가 부모에게 자비와 사랑을 가르치기 위해 여기에 왔을 수도 있음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배우는 것을 쉽게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도 모를 때가 많습니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배운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이번 삶에서는 깨닫지 못하게 될 배움들도 많습니다. 때로는 그것을 배우지 못하는 것이 배움입니다.”(p127)
수많은 ‘싶다’ 속에서 배움으로써 ‘삶을 완전하게’ 하고자 욕심부리는 내가 있다. 이런 나에게 돈 미겔 루이스는 자신의 책 <내가 말을 배우기 전 세상은 아름다웠다>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그것이 바로 우리 삶의 예술이라고. 즉 우리 모든 인간은 예술가이다.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예술품인 자신만의 삶을 창조하고 있다. 예술가인 우리에게 한계는 없으며 창조는 계속 진행되고 있고 끝이 없으며 매 순간 모든 곳에서 창조가 있다. 그러므로 예술품인 각자의 삶에 불완전함이란 있을 수 없다. 당신은 지금 그대로 충분히 완전하다. 이 사실을 믿고 우리는 자신의 예술품을 완성하면 된다. 나에게는 지금 이러한 배움이 필요하다. |